예능의 자격, 몸 개그 말 개그보다 더 필요한 공감

'남자의 자격'의 '남자, 새로운 생명을 만나다'편이 우리에게 준 감동의 실체는 무엇일까. 먼저 이번 소재가 다름 아닌 생명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여기 등장한 개들은 인간에게 한 번씩 버림을 받았던 존재들이다. 그러니 그들을 거두어 그 상처 입은 생명을 보듬고 마음을 여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이 어찌 감동이 없을까. 이 감동은 제작진이 이 소재를 101가지 아이템 중 하나로 선정하는 순간부터 예고되어 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일까. 아무리 학대를 받아온 덕구가 가진 이야기가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을 아프게 한다고 해도, 그 덕구를 진심으로 쓰다듬어주고 아낌없이 사랑을 줌으로써 그 마음을 열게 하는 김국진이 있지 않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따라서 이 예능이 준 감동의 다른 반쪽은 다름 아닌 멤버들의 진정성에서 나온다. 그리고 이 소재에서 진정성이란 꾸며지기조차 어렵다. 그 상대가 해주는 대로 반응을 보이기 마련인 개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개들은 마음을 닫고 있다).

물론 '남자의 자격' 제작진은 이 소재가 줄 수 있는 감동 포인트를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아무런 인위적인 조미료를 첨가하지 않는다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이 소재에서 주로 주목받는 짝은 덕구와 김국진, 그리고 제제와 김성민이다. 물론 이건 상대적이다. 모든 개들이 보여준 변화는 그 자체로 감동이지만, 어느 정도 각각의 짝들 간의 소통에는 차이가 느껴진다.

특히 김태원은 짝을 이룬 깜돌이에게 기타로 '넬라 판타지아'를 연주해주었지만 여전히 어색한 관계를 보여주었다. "나하고 안 맞는 것 같다"는 솔직한 얘기가 나오고, 거기에 대해 이경규가 모든 사람에게 애견을 강요할 수는 없다는 취지의 말을 자연스럽게 건네는 것은 덕구와 김국진이 기적 같이 서로를 공감하게 된 이야기만큼 중요하다. 진정성은 이런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균형 감각에서 나오게 된다.

억지로 감동을 강요하지 않는 것처럼, '남자의 자격'은 또한 억지로 웃음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이번 소재에서 '남자의 자격'이 주는 웃음 포인트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김국진의 재치있는 멘트들, 예를 들면 서로 애정을 확인한 후부터 "밤새 잠을 자지 못했다"는 진술이나, 이경규가 남순이에게 "네가 말만 하면 팔자를 고칠 수 있다"고 말하거나, 김성민을 그대로 빼닮은 개의 행동, 또 마지막에 개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이는 김태원에게 개들이 서로 모여들고 영역표시(?)를 하는 장면 등 웃음 포인트 자체가 소소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웃기기 위해서 어떤 인위적인 설정을 가미하거나 하지 않는 것이 '남자의 자격'이 가진 웃음의 특징이다.

이렇다보니 '남자의 자격'은 말 개그나 몸 개그에 그다지 집착하는 모습이 별로 없다. 그럼에도 '공감하는 재미'가 있다. 이런 점은 자극으로 치닫는 작금의 예능 프로그램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근 예능 프로그램들은 작정한 듯 상황을 시끄럽게 몰고 간다. 심지어 시끄럽지 않으면 인기 없는 프로그램이 되는 것처럼. 이런 분위기 속에서 무개념 후배가 자신에게 굴욕을 주었다고 말한다거나, 한때 사귀었거나 사귈 뻔한 동료 연예인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얘기하는 것은 심지어 자연스러워 보일 지경이다.

이경규는 우스갯소리로 개에게 "말을 해. 고맙다고."라고 말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남자, 새로운 생명을 만나다'편이 우리의 마음을 울린 것은 거기에 말이 아닌 온 몸으로 전해지는 진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극적인 말이나 행동이 사라진 곳에서 우리는 공감을 발견한다. '남자의 자격'이 보여주는 이 '자연스러운 공감'은 작금의 예능이 가져야할 새로운 자격이 아닐까. 예능 하면 우리는 화려한 개인기나 포복절도의 몸 개그 아니면 현란한 토크를 떠올린다. 하지만 그것만이 예능의 자격은 아닐 것이다. 적어도 '남자의 자격'은 지금 예능들에서 좀체 찾기 힘들지만 반드시 필요한 그 자격을 보여주고 있다.

'무한도전', '1박2일' 그리고 '남자의 자격'이 보여준 진심의 힘

링 바깥에서 극도의 긴장감에 연실 토하면서도 링 위에서 애써 건재함을 보이려한 정형돈. 통증으로 경기 1시간 전에 응급실에 누워 있었지만 마치 언제 그랬냐는 듯 링 위에서 엄청난 카리스마를 보여준 정준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부족했던 기술을 고통스럽지만 한 번 더 하라고 말하는 하하. 분위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완벽한 악역을 소화해내는 길. 부족한 기술이지만 특유의 쇼맨십으로 장내를 장악해버린 박명수와 노홍철. 리더로서 팀원들을 독려하고 걱정하며 늘 솔선수범하는 유재석과 손스타. 이들이 살과 살의 부딪침으로 연출해낸 '무한도전 WM7'은 그저 '리얼'이라는 수식어로는 담아지지 않는 그 무엇이 있다. 그것은 마음이다. 정형돈이 괴로워할 때, 저 링 위에서 싸이가 부르던 '연예인'이라는 노래의 가사, "그대의 연예인이 되어 항상 즐겁게 해줄게요"가 오버랩될 때 느껴지던 그 진심.

바로 이 진심은 '남자의 자격'에서 각양각색의 합창단원들을 진두지휘하는 박칼린의 눈빛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때론 자애로운 눈빛으로 단원들을 독려하고 때론 엄하게 꾸짖으며 단원 한 명 한 명을 마치 악기 조율하듯 섬세하게 매만지는 그녀의 눈에서 우리가 느끼는 것은 '하모니'에 대한 강렬한 열정이다. '남자의 자격-남자와 하모니'편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합창이라는 소재가 갖는 힘이기도 하다. 한 사람 한 사람 저마다의 사연을 갖고 합창단에 합류해 저마다의 목소리를 내던 그들이 하나의 음악 속에서 완벽한 하나가 되는 그 기적 같은 경험. 예능 프로그램이지만 쉴 새 없이 던져지는 농담 속에서도 늘 진지함을 잃지 않는 박칼린과, 그녀의 지휘에 따라 합창단 전체의 마음이 노래 속에서 하나가 되는 그 과정을 어찌 '리얼'이라는 단어로 다 말할 수 있을까.

'1박2일'의 멤버들이 다섯 코스로 나뉘어 둘레길을 따라 걷는 그 여정에서도 우리는 곳곳에 묻어나는 진심을 읽을 수 있다. 강호동과 은지원이 길 위에서 만난 혼자 길을 걷는 청년에게서도, 그들이 민박집에서 만난 가족들에게서도, 또 늦은 시간에도 한상 떡 차려 내어주시는 인심 좋은 민박집 주인에게서도 그 따뜻한 진심이 묻어난다. 이승기가 한 정자에서 우연히 만난 할머니와의 특별한 인연은 물론이고, MC몽에게 참치캔을 내어주던 청년들, '1박2일' 팬이라며 이수근에게 잠자리와 먹을 것을 내어주시던 이장님까지, 이 조미료 쏙 뺀 다큐 예능이 보여준 것은 그들의 마음이었다. 길 위에서 팀원들이 주인공이 되기보다는 거기서 만난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세우는 모습은 '1박2일'이 본연의 여행이라는 취지의 버라이어티로 돌아왔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어두운 밤길에 여전히 자신을 알아볼까 저어하는 김종민에게 지나치며 '파이팅'을 외쳐주는 행인들의 그 마음은, '다큐'라는 타이틀을 내걸은 것처럼 리얼 그 이상의 따뜻함을 담아낸다.

이른바 리얼 버라이어티쇼라는 말은 이제 너무 흔해져버렸다. 그래서 이 진심까지 잡아내고 그 마음을 전해주는 버라이어티쇼를 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표현이 되었다. 버라이어티쇼는 이제 재미는 기본이고 교감의 즐거움을 주고 있다. 그 어떤 말보다 살과 살이 부딪치는 것으로 정직하게 그 마음을 전하는 '무한도전'이나, 합창을 통해 저마다의 마음이 하나로 묶여지는 기적 같은 경험을 전해주는 '남자의 자격', 그리고 길 위에서 그 길을 걷지 않았던들 경험해보지 못했을 소중한 만남의 따뜻함을 전하는 '1박2일'이 모두 감동을 주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한때 인위적인 웃음이었던 예능은 '리얼'로의 변신을 통해 마치 다큐 같은 실제상황을 끌어들였고 이제는 그것을 넘어 그 날것이 전해주는 신산한 진심까지 담아내고 있다. 웃음을 주는 버라이어티쇼를 보며 마음 한 구석이 먹먹해지는 경험은 이제 전혀 낯선 것이 아니다.

진심과 진심 사이의 거리, '신데렐라 언니'

진심과 진심 사이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신데렐라 언니'의 인물들은 대부분 가까운 가족관계지만, 그 마음과 마음 사이의 거리는 너무나 멀다. 혹독한 삶을 살아온 송강숙(이미숙)은 진심을 믿지 않는다. 그녀에게 사람이란 '뜯어먹을 게'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일 뿐이다. 그녀는 피붙이를 위해서 진심 따위는 사치라 여기게 되었다. 그런 그녀가 오열한다. 이미 고인이 되어버린 남편 구대성(김갑수)의 진심을 드디어 보게 됐기 때문이다. 다이어리에 적혀진 "내 인생이 그 사람 없이 계속 되는 것, 나는 그게 가장 두렵다"는 글귀는 꼭꼭 닫아뒀던 송강숙의 마음을 열었다.

이 닫혀진 마음을 여는 진심의 힘은 '신데렐라 언니'가 그토록 호소력이 있는 이유다. 이 드라마는 진심을 믿지 않는 송강숙, 그리고 그런 엄마 때문에 마음을 닫아버린 은조(문근영)가 대성도가에 들어오면서 차츰 진심을 받아들이는 그 과정에 주목한다. 은조는 처음 기훈(천정명)을 통해 마음이 설레었고, 그가 사라지자 그 흔들리는 마음을 새아버지 대성이 잡아주었다. '뜯어먹을 게 있어 좋아하는' 것을 알면서도 "내가 사랑하면 됐다"고 말하는 대성은 진심을 믿지 않고 외면하던 두 모녀의 단단한 껍질을 깨버린다.

대성은 이미 죽었지만, 그가 남긴 무조건적인 사랑은 남은 사람들의 마음까지 열어놓는다. 대성과 똑같은 사랑의 방식으로 살아온 효선(서우)은 자신을 미워하고 밀어내는 송강숙과 은조를 자꾸 등 뒤에서 껴안는다. 그러면서 그 밀어내는 '서운한 감정' 또한 "자신이 사랑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고 말한다. 대성의 말에서 유전된 그녀의 "내가 사랑하면 그걸로 됐다"는 말, "아파도 괜찮다"는 진심의 말은 은조의 딱딱한 마음을 아프게 찌른다.

이 과정, 진심을 믿지 않고 외면하는 이들이 마음을 여는 과정은 각박한 세상에서 상처받지 않기 위해 굳건히 마음의 빗장을 채워둔 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마음을 울린다. 아내 송강숙(이미숙)이 다른 남자를 만나도, 또 "뜯어먹을 게 있어" 자신을 좋아해도 "괜찮다"고 말하고, 믿었던 기훈(천정명)이 자신의 술도가를 손아귀에 넣으려고 했다는 사실로 쓰러져 죽기 직전에도 그저 "괜찮다"고 말하는 대성. 그는 진심이 버려진 세상에서 가면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를 무장해제 시킨다. 은조와 송강숙의 뒤늦은 참회와 눈물은 그걸 바라보는 우리의 눈물과 그렇게 맞닿아 있다.

'신데렐라 언니'는 진심의 드라마다. 우리가 흔히 알던 신데렐라 이야기를 그 언니의 입장에서 다시 보게 만든 것은, 본래 이야기 속에 숨겨져 있던 그네들의 진심을 끄집어내기 위함이다. 드라마는 사건 전개에 급급하기 보다는 사건 사이에서 겪게 되는 인물들의 진심에 천착한다. 대사 속에서 혹은 내레이션을 통해서 전해지는 진심의 강도는 의외로 세다. 그토록 독한 계집애 은조가 그토록 불쌍하고 가엽게 여겨지게 된 것은 그 껍질 이면의 진심을 우리가 바라봤기 때문이다. "봐도 괴롭고 안봐도 괴롭지만 그래도 보면서 괴로운 것이 낫겠다"는 사랑을 하는 그녀의 마음이 무엇인지 이제는 우리가 알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가깝게 보여도 그 사람들 속의 진심 사이의 거리는 의외로 멀다. '신데렐라 언니'는 그 먼 거리에 놓여진 진심을 조우하게 되는 감동을 선사한다. 각박하게 살아가며 없는 것처럼 치부했던 그 진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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