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시대

“사랑해 널 이 느낌 이대로- 그려왔던 헤매임의 끝. 이 세상 속에서 반복되는 슬픔 이젠 안녕-” 거리에서는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가 울려 퍼졌다. 시민들은 그 노래를 따라 부르며 응원봉을 흔들었다. 이건 콘서트나 축제의 현장이 아니다.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에 거리로 나온 시민들의 시위 현장이다. 아마도 소녀시대는 자신들이 부른 노래가 시위 현장에서 우려퍼질 줄은 몰랐을 게다. 그것도 응원봉과 함께라니. 

 

이번 시위가 펼쳐진 광장에서는 다양한 K팝이 울려퍼졌다. 물론 여전히 ‘아침이슬’이나 ‘임을 위한 행진곡’ 같은 80년대 광장에서 울려퍼졌던 민중가요들도 빠지지 않았지만, 그 사이 사이를 에스파의 ‘슈퍼노바’나 로제의 ‘아파트’, 샤이니의 ‘링딩동’, 지드래곤의 ‘삐딱하게’, 방탄소년단의 ‘불타오르네’ 같은 K팝들이 채웠다. 응원봉도 저마다 가지각색이었다. 특정 아티스트를 응원하던 응원봉이 시위 현장을 색색으로 물들였다. 과거 촛불 시위에서 똑같은 촛불들이 한 자리에 모여 횃불이 되던 풍경을 떠올려보면, 색색의 응원봉과 LED 촛불이 만들어내는 다채로운 색깔은 시위문화에도 다양성을 추구하는 변화가 생기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이 흥미로운 광장의 변화는 외신들도 주목했다. 로이터 통신은 ‘K팝 야광 응원봉이 한국의 탄핵 시위에서 불타오르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응원봉이 ‘비폭력과 연대의 상징’으로 떠올랐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 통신도 ‘K팝 응원봉이 한국의 시위 참가자들을 하나로 묶었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서울의 경관은 K팝과 정치가 결합한 화려한 디스플레이로 변했다”며 “K팝의 밝은 분위기가 정치적 혼란상을 가려주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시위 참가자들이 상황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또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에서는 “엔터테인먼트 요소가 들어간 축제의 북적임을 보여주면서도 질서정연했다”며 “차세대형 민주주의의 모습이 떠오른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광장의 진화는 어떤 과정을 통해 이뤄진 걸까. 

 

본래 광장은 시민들의 것이었다. 민초들이 모여 권력의 비리를 꼬집고 그 아픔을 토로하며 또 공감하던 공간은 다름 아닌 마당에서부터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독재 권력이 등장했던 80년대에는 광장의 헤게모니 싸움이 치열했다. 신군부 쿠데타로 권력을 쥔 전두환 정권이 여의도에서 ‘국풍81’을 대대적으로 벌인 건, 시민들의 광장을 선점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 독재정권은 87년 6월 광화문 광장으로 나온 시민들에 의해 무너졌다. 최루탄이 터지고 전경들의 폭력적인 진압이 이뤄지던 당대의 광장의 풍경은 비장할 수밖에 없었다. ‘님을 위한 행진곡’이나 ‘광야에서’,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같은 노래들이 당대의 광장에는 울려퍼졌다. 

 

그토록 비장했던 광장의 풍경이 2002년 월드컵 시즌에는 완전히 달라졌다.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운 ‘붉은 악마’의 물결은 과거 광장과 밀실의 시대가 가진 트라우마를 밀어내는 듯한 상징으로 다가왔다. 레드 콤플렉스를 뛰어넘는 붉은 물결이 하나의 축제로 광장을 물들였기 때문이다. 그 광장에서 윤도현은 ‘오 필승 코리아’를 불렀고, 시민들은 그 노래를 따라부르며 우리 팀을 응원했다. 한 목소리의 응원은 월드컵 4강 진출로 ‘꿈은 이루어진다’는 캐치프레이즈를 현실화시켰다. 시민들이 한 자리에 모인 축제의 광장이었다. 

 

2016년 탄핵을 부르짖으며 광화문 광장에 모인 이들은 저마다 촛불을 들었다. 시국이 불러일으킨 진지함이 있었지만, 이 때의 광장 문화는 87년의 그것도 또 2002년의 그것도 아닌 새로운 것이었다. 마치 87년과 2002년을 합쳐 놓은 듯한 광장의 풍경이랄까. 무려 190만 명이 운집했지만 분위기는 투쟁이 아니라 촛불이 상징하듯 차분한 공감과 기원에 가까웠다. 심지어 전경들의 등을 두드려주는 시민들의 성숙한 모습들이 등장했고, 차분한 분위기에서 이승환과 전인권 그리고 양희은 같은 가수들이 노래를 불렀다. 그 와중에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는 한 여권 정치인의 발언은 아날로그 초가 LED초로 바뀌는 계기가 됐다. 바람이 불어도 절대 꺼지지 않는 촛불이 등장한 것이다. 

 

2024년의 광장은 이 일련의 과정을 통해 진화해온 시위 문화가 또 한 차례 진화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것은 ‘다양성’이라는 새로운 시대적 가치가 투영된 광장이었다. 민중가요와 더불어 K팝이 울려퍼지게 됐다는 건, 광장을 찾은 세대가 얼마나 다양했는가를 잘 말해준다. 거기에는 80년대 민주화 시대를 거친 세대들도 있었지만, 그걸 겪어보지 못했던 2,30대도 있었다. 그래서 이들 세대를 대변하는 노래들이 다양하게 울려퍼졌고, 그들의 문화 또한 한 자리에서 어우러지는 양상을 보였다. 민중가요나 민주화가 익숙하지 않은 젊은 세대들은 당대의 세대들을 이해하는 시간이 됐고, 거꾸로 기성세대들은 요즘 세대들이 즐겨듣는 K팝을 함께 흥얼거리며 그 팬덤 문화를 공유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또한 광장의 시위 문화를 바꾼 중요한 요소 중 빼놓을 수 없는 건 ‘디지털 기술’이다. 시위 현장을 응원하기 위해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 현장 근처의 카페에 송금 결제를 통해 시민들에게 커피를 나눠주는 기막힌 광경이 펼쳐졌다. 아티스트들은 응원봉을 들고 나온 팬들을 위해 핫팩을 주문해 보내주기도 했고, 직접 참여하기 어려운 시민들은 후원금을 소액 결제하는 방식으로 보태기도 했다. 아날로그의 광장 저 편으로 디지털 광장이 겹쳐져 있는 새로운 풍경이었다. 

 

민주주의를 위한 엄중한 메시지를 내면서도 동시에 보다 다양한 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축제같은 경쾌함이 넘치는 광장. 10대부터 50대까지 그 문화가 공존하는 다양성을 담보하는 광장. 나아가 아날로그와 더불어 디지털이 함께 하는 광장. 이것이 현재 대한민국의 진화된 광장의 모습이 됐다.(글:이데일리, 사진: SM엔터테인먼트)

주말극 같은 장르물, 이건 ‘열혈사제’의 진화인가 퇴행인가

분명 장르물의 색깔을 지녔는데 어딘지 주말극 같다. 나쁜 놈들 때려잡는 전직 요원 출신의 신부. 동료애 하나만큼은 분명히 갖고 있지만 두려움 때문인지 트라우마 때문인지 조폭들에게 휘둘리는 형사. 마음 한 구석에 살해당한 신부님을 외면하지 못한 채 살아가지만 성공하고픈 욕망 때문에 흔들리는 검사. 이들이 정치인에서부터 경찰, 검찰, 조폭들까지 결탁해 구담시를 좌지우지하는 악의 카르텔과 대적해가는 이야기. SBS 금토드라마 <열혈사제>는 분명 액션이 더해진 장르물의 구조다. 하지만 이야기가 전개된다기보다는 캐릭터 중심으로 자잘하고 일상적인 코미디에 더 집중하는 이 드라마는 어딘지 전형적인 주말극을 닮았다. 

시청률표를 보면 금토에 SBS가 새롭게 시간대를 마련해 들어온 이 드라마가 완벽한 성공을 거두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전국시청률이 16.1%(닐슨 코리아)에 이르고, 특히 타깃시청률이라고 할 수 있는 2049시청률 또한 9.4%를 달성하고 있다는 건 실구매층으로 여겨지는 젊은 세대들 또한 이 드라마에 몰입하고 있다는 걸 말해주니 말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어딘지 변종이다. 지금껏 시청자들이 OCN이나 tvN 등에서 자주 봐왔던 장르물과는 너무나 다른 색깔을 지니고 있어서다. 예를 들어 OCN에서 방영됐던 <나쁜녀석들> 같은 드라마와 <열혈사제>를 비교해보면 그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사실 <나쁜녀석들>이나 <열혈사제>나 그 이야기 설정과 구조만 보면 그리 다른 장르물은 아니다. 현실을 대변하는 악의 무리들이 존재하고(이들은 대부분 권력과 결탁해 있다), 검찰이나 경찰 같은 법집행기관은 부패해 있다. 그러니 더 ‘나쁜 놈들’이 나서 그들과 싸우거나, 참다못한 열혈신부가 나서 그들과 대적해나간다. 그리고 이들은 혼자가 아니라 비슷한 부류의 소외된 이들과 함께 팀을 이룬다. 

<나쁜녀석들>과 <열혈사제>는 이야기 구조는 비슷해도 장르물의 색깔은 완전히 다르다. <나쁜녀석들>은 긴장감 넘치는 대결구도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사건이 어떻게 전개될지 또 언제 어떤 반전이 생겨날지 알 수 없는 그 이야기에 시청자들을 몰입시킨다. 반면 <열혈사제>는 정반대다. 시청자들은 이미 이 전직 요원 출신의 신부와 지금은 악의 무리들에 반쯤 발을 걸치고 있는 형사와 검사가 이 구담시라는 곳에서 살아가는 선량한 이들과 힘을 합쳐 결국은 정의를 세울 거라는 걸 알고 있다. 

이야기 전개도 전혀 빠르지 않고 어떤 면에서는 동어반복적인 같은 상황이 빙빙 도는 듯한 느낌마저 준다. 이 드라마의 전제가 되는 이영준 신부(정동환) 살해사건은 일찌감치 벌어졌지만 아직 그 갈피조차 잡지 못했다. 대신 악의 세력들과 결탁한 불량급식업체의 비리를 캐나가는 김해일(김남길) 신부의 이야기가 몇 회에 걸쳐 이어진다. 대신 이 드라마는 느린 전개 속에 자잘한 캐릭터 코미디를 채워 넣는다. 마치 만화에서나 가능할 법한 우스꽝스런 장면들이 연출되고, 실제로 태국인 출신 노동자인 쏭삭(안창환)이나 배부르게 먹으면 놀라운 청력을 발휘하는 요한(고규필)이 보여주는 코믹한 캐릭터 플레이는 의외의 정감과 재미를 더해 넣는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또 다른 의미의 ‘시간 순삭(순간삭제)’을 경험한다. 뭐 별 이야기도 아직 진행된 게 없는 것 같은데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리는 경험. 하지만 그건 긴장감 넘치는 전개 때문에 생겨나는 ‘시간 순삭’과는 사뭇 다르다. 이야기는 실제로 별로 전개되지 않지만 대신 깨알 같은 캐릭터들의 유머 코드들이 채워져 있어 시간가는 줄 모르고 보게 되는 그런 의미에서의 ‘시간 순삭’이다. 

이건 도대체 어떻게 봐야할까. 장르물이 지상파 주말극이라는 시간대를 공략하기 위해 시도된 새로운 의미의 진화일까. 아니면 본래 속도감 있는 사건 전개로 팽팽한 긴장감을 주는 장르물의 퇴행일까. 여러모로 아슬아슬한 지점에 서 있는 <열혈사제>지만 그 느린 전개에도 남다른 몰입감을 느끼며 젊은 시청자들까지 들여다보게 되는 건 이런 장르의 변종이 그 안에 들어 있어서다. 

장르물은 이제 드라마의 중요한 트렌드가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지상파들은 여전히 그 플랫폼이 지금껏 유지해온 색깔과 시청층들(신구세대를 모두 아우르려는)을 겨냥해 본격 장르물보다는 변종들을 시도해왔다. 멜로에 가족까지 더한 이른바 ‘복합장르물’ 같은 게 대표적인 사례다. 그런 점에서 보면 <열혈사제>는 또 하나의 변종 장르물이라 여겨진다. 장르물이지만 주말극 같은 느슨함을 오히려 장점으로 만들어내고 있는.(사진:SBS)

신구세대의 조화, ‘무도’가 꿈꾸는 진화의 길

방송이 나오기 전 이미 박명수가 다시 군에 입대한다는 사실은 예고편을 통해서도 알려진 바 있다. MBC <무한도전> ‘1시간전’ 특집으로 꾸려진 각 출연자들에 최적화된 미션들에서 박명수는 그동안 프로그램에서 스스로 ‘최고의 전성기’라 공언했던 그 군대 체험을 다시 하게 됐다. 시청자들이 보고 싶었던 미션이었고, 힘들긴 하지만 박명수 스스로도 어느 정도는 원하는 미션이었다. 

역시 군대에서의 박명수는 기대 이상의 웃음 폭탄을 만들었다. 아무 것도 모른 채 어쩌다 끌려 나온 연병장 한 가운데 서서 어쩔 줄 모르는 모습에서부터, 무작정 도망치다 잡혀오는 모습은 그가 보여줄 멘붕 상황들을 기대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번 미션에서는 하나의 중요한 변수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조세호가 그와 함께한다는 점이었다. 

이미 동장군 콘셉트의 분장을 하고 새벽같이 나와 일일 기상캐스터 미션을 했던 조세호로서는 또 한 번의 미션을 수행한다는 그 자체가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무한도전>의 신참답게 조세호는 주어진 상황을 신속하게 받아들였다. 박명수 옆에 나란히 서게 된 조세호가 어리둥절해하는 모습은 그래서 박명수와 함께 조화를 이루며 웃음의 시너지를 만들었다. 

이렇게 박명수 혼자가 아닌 조세호까지 군 입대 미션에 투입되게 된 이유로 군측에서 동반입대가 혼자 하는 것보다 정신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동반입대는 그 자체로 이 미션을 새롭게 만들어주었다. 사실 박명수의 군대 체험이 주는 리액션들은 이미 과거에 충분히 보여진 바 있다. 그러니 그것만 반복해서는 재탕의 느낌을 줄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조세호의 투입은 박명수가 하는 엉뚱한 행동들에 대해 웃음을 참을 수 없어하는 반응들이 자연스럽게 그를 통해 보여지게 했고, 무엇보다 둘 사이의 비교점을 가능하게 했다. 이러한 비교점이 웃음을 만들어낸 가장 큰 사건(?)은 가상으로 치러진 교전상황에서였다. 어딘지 잘 적응하지 못할 것 같던 조세호가 갑자기 스나이퍼 기질을 발휘하며 적들을 차례차례 사살(?)하는 전과를 냈던 것. 

조세호의 맹활약은 동시에 박명수의 끝없는 수난과 병치되며 큰 웃음을 주었다. 앞서 나서다가 지뢰를 밟아 부상을 당한 박명수는 이후에도 총을 두 번이나 맞는 부상을 당하면서도 죽지 않는 오뚜기 병사의 모습을 보여준 것. 하지만 정작 저질체력으로 쓰러지고픈 박명수는 죽지 않는 자신의 상황을 투덜대는 모습으로 웃음을 줬다.

어쩌다 이뤄진 박명수의 군 입대 미션이었고, 여기에 신참으로서 조세호가 함께 하게 된 것이지만, 이번 프로젝트가 특별하게 다가오는 건 그것이 마치 <무한도전>의 신구세대가 꾸려내는 조화를 보여준 것처럼 느껴져서다. 아무래도 이제 반백의 나이에 가까워지는 <무한도전>의 원년멤버들은 여러모로 젊은 시절의 체력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을 수밖에 없다. 또 했던 미션들이 많은 만큼 새로 하는 것도 겹쳐지는 소재가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조세호 같은 신참이 투입되자 박명수의 미션은 조금 안정적인 느낌을 주었고, 또 신구세대의 차이 같은 것을 통해 비교점을 만들어내면서 했던 미션도 새롭게 변주될 수 있었다. 어쩌면 이건 <무한도전>의 향후 행보에 있어서 중요한 진화의 길이 아닐까. 조세호나 양세형 같은 신세대들의 활약이 오래도록 <무한도전>에서 저마다의 족적을 남긴 원년세대들과 시너지를 만드는 일. 이번 군대 미션은 그 가능성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사진:MBC)

‘집밥 백선생’, 제자들이 있어 가능해진 새로운 볼거리들

tvN 예능 프로그램 <집밥 백선생>은 어느덧 시즌3 40회를 앞두고 있다. 시즌1이 스페셜까지 합쳐 38회, 시즌2가 36회를 했으니 통산 100회를 훌쩍 넘은 셈이다. 사실 요리 레시피라는 한 가지를 갖고 이렇게 오래도록 예능 프로그램을 이어가기는 쉽지 않다. 물론 요리 프로그램이라면 교양으로서 충분할 수 있지만, 레시피를 알려주는 것 하나만으로 하는 예능 프로그램으로 이만큼을 이어온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집밥 백선생(사진출처:tvN)'

그래서 시즌3를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살짝 불안했던 게 사실이다. 새로 제자로 투입된 이규한, 남상미, 윤두준, 양세형이 있었지만 결국은 ‘요리 무식자’에서 요리를 알아가는 그 스토리텔링은 시즌1이나 시즌2 그대로일 것이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즌3는 이전 시즌들과는 살짝 다른 면들을 보여줬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제자들의 변화가 만들어낸 새로움이었다.

시즌3 39회에 소개한 돼지갈비를 이용한 갈비탕, 갈비볶음 그리고 육개장을 보면 그 자체가 사실 파격이다. 주로 갈비탕이라고 하면 흔히 떠올리는 소고기가 아니라 돼지고기를 사용한다는 점이 그렇다. 하지만 동남아에서 해먹는 요리법을 응용한 이 요리들은 간편하면서도 깊은 맛으로 제자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시청자들로서는 상대적으로 값도 싸고, 요리도 간편하며, 맛도 그만인 이 요리를 한 번쯤 해보고픈 욕망이 생길 법하다. 

즉 백종원은 이번 시즌에서 상식을 깨는 요리법을 종종 소개해 제자들은 물론이고 시청자들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지난 회에 했던 집에서 간단하게 해먹을 수 있는 닭칼국수는 물론이고 들깻가루를 이용해 만드는 너무나 간단한 들깨칼국수 그리고 비빔칼국수도 지금껏 우리가 쉽게 생각하지 못했던 레시피였고, 김밥 하면 다양한 재료를 준비해야 한다는 상식을 깨고 단일 재료로도 충분히 맛을 냈던 어묵김밥이나 건새우김밥도 새로운 레시피였다. 

그런데 이런 상식을 깨는 요리는 그냥 나온 게 아니라 일종의 응용편이라는 점이다. 돼지갈비로 만든 육개장이 가능한 건, 이미 육개장을 해본 그 경험에 돼지갈비라는 재료에 맞는 약간의 응용이 있어서였다. 돼지갈비볶음이 설탕과 양파를 먼저 넣어 충분히 볶아주는 것만으로도 맛을 낼 수 있다는 건 이미 양파를 충분히 볶았을 때 풍미가 높아진다는 걸 다른 요리들을 통해 배웠기 때문에 더 쉽게 이해가 된다. 즉 이번 시즌3가 흥미로웠던 건 기존 시즌1,2에서 소개됐던 요리 방법의 그 원리들이 응용됨으로서 더 깊은 요리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었다는 점 때문이다. 하다못해 이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양념으로서 액젓은 이제 요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재료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백종원의 레시피 응용편만큼 시즌3를 빛낸 건 바로 제자들이다. 물론 시작점에서 양세형은 확실히 다른 제자들보다 요리능력자로서의 면면을 뽐냈지만, 뒤로 갈수록 그 차이는 점점 줄어들었다. 그만큼 다른 제자들도 성장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 백종원은 자신이 요리를 하기 전에 각자 아이디어를 보태 요리를 내보이라는 미션을 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김밥을 저마다의 아이디어로 만들어보라는 주문에 윤두준은 간장계란밥을 응용한 밑간을 한 김밥을 내놨고, 이규한은 모짜렐라 치즈를 녹여 속재료로 만든 김밥을 내놓았다. 이런 응용은 이 프로그램을 하며 배운 요리법들을 김밥이라는 과제에 적용해 만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제자들은 단지 먹방과 요리의 성장만 보여준 것이 아니다. 이번 시즌에서 제자들이 달라졌던 건 ‘맛 표현’ 부분이다. 양세형이 먼저 나서서 보여줬던 섬세한 맛 표현은 차츰 다른 제자들의 각기 다른 표현방식으로 이어졌다. 사실 눈과 귀로만 백종원식의 새로운 레시피로 만들어진 음식의 맛을 전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제자들은 누구나 맛봤을 기존 음식의 맛을 인용해 그 맛 표현에 활용했다. 마치 <신의 물방울>에서 와인 맛 설명을 위해 갖가지 묘사들을 동원하듯이.

이런 제자들이 있어 가능해진 건 다음 회에 예고된 것처럼 이제 제자들이 백종원을 위해 한 때의 요리를 대접하는 것이다. 그간 배웠던 것들을 응용해 제자들이 어떤 요리를 내놓을까 하는 점이나, 그 요리를 먹고 백종원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하는 점이 새로운 관전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풍성해진 볼거리로의 진화가 가능했던 건, 역시 제자들이 함께 하는 그 시너지가 있어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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