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급증과 성과주의가 <스플래시>의 비극을 낳았다

 

요즘 <우리동네 예체능>의 이예지 PD는 방송하는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프로그램이 다뤘던 종목들, 즉 탁구, 볼링, 배드민턴이 세간에 화제가 되면서 해당 스포츠 동호인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기 때문이란다. 스포츠 협회들의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도 어느 때보다 뜨겁다고 한다. 자신의 종목을 소재로 해달라는 요청이 끊이지 않는다고.

 

'우리동네 예체능(사진출처:KBS)'

이예지 PD는 “엘리트 스포츠 중심으로 되어있는 우리네 스포츠를 선진국들이 그렇듯이 생활 스포츠 중심으로 바꿔나가는 것에 자신들이 일조하고 있다는 걸 가장 큰 보람으로 여긴다”고 말했다. 방송의 힘은 실로 커서 실제로 해당 스포츠용품의 판매량이 급증했다고 한다. G마켓에 의하면 올 상반기 탁구용품은 28%, 배드민턴 용품은 20%, 그리고 볼링용품도 지난해에 비해 12%나 판매량이 늘었다고 한다.

 

<우리동네 예체능>의 사례는 스포츠 예능 프로그램의 정답처럼 다가온다. 과거 스포츠 소재 콘텐츠라는 것은 대중들이 직접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수동적으로 보고 응원하는 것 중심이었다. 스포츠 중계는 이러한 후진국형 관중 스포츠 문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스포츠 프로그램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대신 선진국형 참여 스포츠 문화를 이끌어내는 프로그램은 그리 많지 않았다.

 

<날아라 슛돌이>나 <천하무적 야구단>이 생활 스포츠를 정면에서 다룬 거의 유일한 프로그램들이었고 기껏해야 <무한도전>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기획성으로 비인기종목을 조명했던 것이 대부분이었다. 반면 <우리동네 예체능>은 아예 생활 스포츠 육성을 그 목표로 세우고 있는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다양성의 측면에서나 또 집중도에 있어서나 훨씬 진일보한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들어 참여형 생활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리얼 예능의 소재로서 스포츠 같은 ‘각본 없는 드라마’가 각광을 받으면서 스포츠 소재 예능이 생기고 있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우리동네 예체능>처럼 성공적인 것은 아니다. 최근 논란으로 촬영이 중지된 MBC <스타 다이빙쇼 스플래시>는 똑같이 스포츠를 다뤘지만 오히려 역효과를 본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다. 다이빙 국제심판 민석홍 감독은 모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스플래시>로 다이빙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생길 것으로 기대했지만 오히려 ‘위험한 스포츠’라는 인식이 만들어진 것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렇게 된 데는 프로그램의 지향점과 목표가 달랐던 데서 비롯된 바가 크다. <스플래시>의 경우 스포츠 자체를 조명했다기보다는 다이빙이라는 종목이 가진 스펙터클에 더 집착한 바가 크다. 공중에서 두려움을 극복하고 뛰어내린다는 점과 그 사이에 회전을 하는 등 기술을 선보인다는 점 그리고 입수의 공포를 짜릿한 쾌감으로 바꾼다는 점에서 다이빙이라는 소재는 확실히 자극적인 맛이 있다. 여기에 맨 몸을 드러내는 스포츠가 갖는 원초적인 끌림까지 더하면 이 프로그램의 성공은 그 기획만으로도 따 놓은 당상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는 달랐다. 결국 전문 프로 선수가 하는 경기가 아니라 아마추어들이 도전하는 경기라는 점에서 생활 스포츠일 수밖에 없는 이 경기에서 프로처럼 보이려는 과욕은 부상 논란의 시발점이 되었다. 같은 프로그램에서 해외의 경우 6개월 이상의 준비기간을 주는 반면 지난 5월부터 갑자기 준비한 프로그램의 무리수는 결국 촬영 중단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빠르게 어떤 결과를 보이려는 조급증과 성과주의가 무리수가 되었던 것.

 

여기에 다이빙이 단체 스포츠가 아니라 개인 경쟁이라는 점과 <스플래시>가 일종의 오디션 형식을 갖고 있어 서바이벌의 갈급함이 더해졌다는 점도 문제를 키운 원인의 하나다. 생활 스포츠는 경기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동호인들 간의 친목이다. 다이빙을 생활 스포츠의 하나로 포착하려 했다면 바로 이 친목을 만들어내는 팀워크에 더 집중했어야 하지 않을까. 화려함보다는 동호인 특유의 정 같은 것이 더 중요한 정서였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우리동네 예체능>이 만들어가고 있는 방송 출연자들 그 이상의 끈끈한 팀워크는 생활 스포츠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전국의 동호인들을 상대로 벌인 배드민턴 대결에서 예체능 팀은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경기가 끝나고 나서 펑펑 울기도 하고 자책하기도 하면서 아쉬움을 토로한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이런 얘기를 한다고 한다. “저 분들은 몇 년 간을 하신 분들인데 고작 두 달 남짓 한 우리가 지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무리하지 않고 소걸음으로 다가가는 것. 또 경쟁 그 자체보다는 그 사이에 쌓여지는 친목과 단합을 도모하는 것. 이것이 생활 스포츠를 다루는 방송의 기본이다. 보는 시대는 지났고 이제 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여전히 스포츠를 엘리트의 영역으로 세워두고 그 도전 자체를 프로에 도전하는 것처럼 그려내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거기에는 여전히 엘리트 스포츠 중심적인 사고방식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생활 스포츠로 관심이 바뀌고 있는 요즘, <스플래시> 같은 불상사가 다시 발생하지 않으려면 철저히 생활 스포츠적인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걸 <우리동네 예체능>은 보여주고 있다.

<1박>, 당장의 웃음보다 중요한 것은

 

'이게 진짜 뭐하는 건지...' <1박2일>이 인제로 떠난 예능인 단합대회에서 코끼리코를 열 번 돌고 바늘에 실을 꿰는 예능올림픽(?)을 이수근이 할 때 깔리는 자막. '예능인 단합대회'라는 기치를 내건 것처럼, <1박2일>은 아예 대놓고 몸 개그로 웃음을 만들어보겠다 작정했다. '이게 뭐하는 건지' 하는 자막에는 웃음을 주기 위해 이런 짓까지 하고 있다는 '노력'의 의미와, 이런 짓까지 해야 한다는 '자조'의 의미가 섞여 있다.

 

 

'1박2일'(사진출처:KBS)

실제로 이런 대놓고 하는 몸 개그가 웃기긴 하다. 뭐 그다지 생각할 필요도 없고 그저 무너지는 출연자들을 보며 웃기만 하면 되니까. 어지럼증에 몸을 비틀대면서도 열심히 바늘을 꿰려는 이수근의 모습이나, 아예 바늘을 찾지 못하는 김종민의 모습은 우습다. 뒤로 삼단 뛰기, 손에 신발을 꿰고 손으로 제기를 차면서 발을 동시에 들어 올리는 예능 제기차기도 모두 재밌다. 하지만 어딘지 부족하다. 한참 웃긴 웃었는데 별로 남지가 않는다.

 

의미를 얘기하는 게 아니다. 그 웃음이 맥락이 되어 그 날을 기억하게 하는 하나의 스토리라인이 없다는 얘기고, 또 그런 스토리 속에서 새롭게 발견되는 캐릭터가 없다는 얘기다. 캐릭터와 스토리가 생기지 않는 게임은 반복되면 질릴 수밖에 없다. 당장의 웃음의 허기는 채울 수 있지만, 앞으로의 지속적인 웃음 텃밭을 만드는 데는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많은 게임의 덫에 걸려버린 리얼 버라이어티쇼들이 바로 당장의 웃음의 허기를 채우려다 결국 무너져 내렸다. '패밀리가 떴다'는 그 형식의 특징 상 게임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었지만, 그 와중에도 시즌1이 꽤 괜찮은 흐름을 가질 수 있었던 건 유재석이라는 발군의 캐릭터 발굴 MC가 있었기 때문이다. 시즌2에 와서 그 중심이 사라져버리자 캐릭터도 보이지 않게 되었고, 그러자 스토리 없는 게임만 반복됐다. 결국 종영되고 말았다.

 

'천하무적 야구단'은 괜찮은 소재의 리얼 버라이어티쇼였다. 초반 캐릭터가 잡혀나가는 단계는 그 어느 예능 프로그램보다 그 뛰어난 성장 가능성을 보였다. 하지만 중반 이후부터 야구경기에 몰두하기 시작하면서 스토리가 점점 사라졌다. 결국 예상보다 일찍 종영되었다. '청춘불패'는 시즌1에서 꽤 괜찮은 호응을 얻어냈다. 한 시골마을에 정착하면서 그 마을 사람들과 어우러져가는 스토리가 보는 이들을 흐뭇하게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즌2에 와서 점점 추락하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아예 시골 이야기는 없고 시골 게임 버라이어티가 되어가는 중이다. 위험한 상황이다. '청춘불패' 시즌2는 재미뿐만 아니라 명분도 잃었다.

 

그렇다면 <1박2일> 시즌1의 게임은 뭐가 달랐을까. 먼저 시즌1은 게임을 하는 이유부터가 자연스러운 스토리 위에 놓여 지기 마련이었다. 그저 자 이제부터 게임합시다, 하고 모여 게임을 하는 인위적인 상황이 아니고, 먼저 게임을 하게 되는 동기를 만들어낸다. 강호동이 나영석 PD와 팽팽한 대결구도를 갖는 것은 이 스토리를 좀 더 쉽게 하기 위함이다. 제작진의 압제(?)에 한번 이겨보자는 연기자들의 의기투합이 이어지고 나면 게임은 그 맥락 위에서 보이게 된다.

 

경기 자체나 결과가 뭐가 중요할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경기의 흐름에 따라 생겨나는 캐릭터와 이야기들이다. 족구 경기를 하나 해도(심지어 그게 저질이라도) 시즌1에서 더 주목도가 높았던 건 단지 복불복이란 설정 때문이 아니다. 그 게임을 하면서 계속 제작진과 연기자들 사이에 쌓여진 스토리가 전제되기 때문에 게임은 하면 할수록 재미가 있을 수 있었다. 이것은 시즌2의 '예능인 단합대회'가 보여준 게임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게임 하나를 하더라도 인위적인 느낌이 아닌 자연스러운 흐름을 타려면 누군가 이를 촉발할 수 있는 구심점이 있어야 한다. 이른바 '악역'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1박2일> 시즌1에서는 강호동이 그 역할을 했고, 또 때로는 나영석 PD가 그 역할을 했다. 강호동이 짜증을 내고, 나영석 PD가 얄미울 정도로 "땡!"을 외칠 때, 게임은 그저 게임이 아니라 그 안에 스토리를 갖게 되었다.

 

결국 <1박2일> 시즌2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이런 악역을 자처할 캐릭터다. 그것이 연기자들이든 아니면 제작진이든 누군가 나서는 사람이 있어야 미션 구조로 되어 있는 이 버라이어티쇼의 이야기 흐름이 자연스러워진다. 이게 없으면 그저 해야 하는 게임을 하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또 게임을 하더라도 게임 자체의 결과에 주목할 것이 아니라 과정에서 끊임없이 캐릭터를 뽑아내는 자세가 요구된다. 예능인 단합대회에서 연기자와 제작진이 한 족구대회가 밋밋했던 것은 이 자세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족구대회에서 가장 주목받은 건 경기를 한 연기자나 제작진보다 오히려 본래 심판 캐릭터(?)를 갖고 있던 조명감독이었다.

 

<1박2일>은 시즌2에 들어와 안타깝게도 많은 외적인 악재를 겪었다. 그러면서 시청률도 뚝 떨어졌다. 최재형 PD는 인터뷰를 통해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고 피력했다. 그간은 뭐든 시도하는데 주저함이 있었지만, 이제는 뭐든 할 수 있지 않느냐는 것. 하지만 뭐든 하는 것이 게임 같은 보다 편한 웃음 만들기가 돼서는 안 된다. <1박2일>만이 가진 여행의 묘미를 제대로 가져올 수 있는 스토리를 발굴해야 되고, 게임에서도 게임 자체보다는 캐릭터에 몰두해야 한다. 당장의 웃음보다 장기적인 관점의 이야기 흐름을 만들어야 <1박2일>은 본래의 궤도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천하무적 야구단', 야구는 예능과 어떻게 만났나

찰떡궁합이다. 각본 없는 드라마인 스포츠와, 역시 각본 없는 웃음을 주는 예능이 잘 어울린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아는 사실일 것이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야구와 예능은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천하무적 야구단'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 아마도 어디서부터 해야할 지 난감했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달려라 슛돌이'의 축구와 '천하무적 야구단'의 야구는 확실히 다르다. 축구는 공을 상대방 골에 넣으면 되는 비교적 간단한(?) 룰을 갖고 있지만, 야구는 책으로 공부해야 할 정도로 룰이 복잡하니까.

예능 프로그램이 일부 야구팬들만을 대상으로 할 수는 없는 노릇. '천하무적 야구단'은 복잡한 룰을 전혀 야구를 접해보지 못한 일반인들까지 대상으로 보여주면서, 야구도 하고 또 예능도 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게다가 '천하무적 야구단'에 들어온 인물들도 야구를 아예 모르는 초보자들이 대부분이었다. 마르코는 룰 자체를 몰랐고, 김준은 겉보기와 달리 거품(?)이었으며, 마리오는 외모는 메이저 리그였지만 실력은 동네야구 수준이었다. 다른 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야구 룰은 알고 있어도 몸이 따라주지 않는 늙은 사자 이하늘, 의욕은 충만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과욕이 되곤 하는 김창렬, 나이 어린 동호, 부실한 몸의 한민관... 그나마 야구를 곧잘 하는 오지호와 김성수가 있었지만, 그것은 공격 이야기고 수비로 들어가면 이들 역시 구멍이었다.

그러니 전적은 지금껏 3승이 고작인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바로 이 해야할 일이 산적해 있다는 점이 '천하무적 야구단'에는 오히려 약이 되었다. 이 예능은 바로 이 실제 야구와 현실인 예능 사이의 거리만큼 리얼 버라이어티쇼로서의 성장스토리를 보여줄 수 있었다. 매번 마르코를 내세워 경기 룰을 가지고 퀴즈를 내고, 후에는 백지영을 단장으로 포섭해 상대적으로 야구에 관심이 덜 한 여성 시청층까지 공략했다. 그들이 차근차근 룰을 공부해가고 경기를 하며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야구는 조금씩 시청자들에게 친숙해지기 시작했다. 일반인들에게 결코 쉽지 않은 야구는 오히려 축구보다 좋은 리얼 버라이어티의 소재가 되었던 것.

바로 이 점은 야구라는 스포츠에도 그대로 큰 도움을 주었다. 야구라는 조금은 거리가 있어보이는 스포츠의 저변을 넓히는데 이만큼 강력한 방법은 없었던 것. 리얼 예능이 가진 독특한 스토리 방식, 즉 웃음을 주면서도 쉬운 것에서부터 차츰 복잡한 것으로까지 이야기를 넓혀나가는 이 스토리의 힘은 야구를 보다 가까이 시청자들 앞에 가져다 놓았다. 프로야구협회에서 '천하무적 야구단'에 상을 주고, 7명의 내로라하는 프로야구 감독들이 이들을 위한 일일코치를 자처하는 등의 전폭적인 지지를 해주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두산 베어스의 김경문 감독은 가르쳐주는 입장에서도 오히려 "고맙다"는 말을 거듭 전했다. 그리고 이 감독들의 일일코치를 담은 영상들은 하나의 쉽고 재밌는 야구교본을 방불케 했다.

야구의 저변을 넓히는 것 이외의 효과로서 프로야구경기에 '천하무적 야구단'이 부여한 '야구에 대한 실감'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아마도 '천하무적 야구단'을 시청해온 분들이라면 2009년 프로야구 한국시리즈가 조금은 다르게 느껴졌을 것이다. 우리는 '천하무적 야구단'이라는 리얼 스포츠 버라이어티쇼를 통해 야구가 누구나 공을 던지고, 때릴 수 있는 그런 쉬운 경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프로야구에서 흔히 보이던 더블 플레이 하나에도 손에 땀을 쥐고 바라보고 감탄을 했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프로야구가 보여주는 실책 없는 경기나 담장을 넘기는 홈런에 남다른 실감을 가질 수 있었다.

'천하무적 야구단', 이 야구와 예능의 만남은 양쪽에 모두 행복한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예능은 특별한 이야기를 구성하지 않고도 야구 자체가 가진 재미를 통해 특유의 리얼 성장 스토리를 보여줄 수 있었고, 야구는 이 예능을 통해 야구라는 스포츠가 가진 매력을 보다 많은 이들에게 알릴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이 좌충우돌 야구단은 한 발 더 나아가 보다 큰 꿈을 꾸기 시작했다. 사회인 야구를 위해 '꿈의 구장'을 지으려는 것. 야구와 이 예능이 가진 찰떡궁합의 행복한 공존을 통해 볼 때, 이것이 결코 꿈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꿈은 이루어진다. 꿈꾼다는 것만으로도 현실적인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특히 꿈을 향해 달려가는 성장 스토리를 근간으로 삼는 리얼 예능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버라이어티가 꾼 꿈, 어떻게 현실이 됐나

그 누가 쇼는 그저 쇼일 뿐이라고 했던가. ‘무한도전’이 말도 안 되는 포크레인과 삽질의 대결을 벌이던 시절에, 쇼는 그저 쇼일 뿐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것은 아무런 맥락도 의미도 없이 그저 쇼가 보여주는 흥미로운 볼거리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몇 해가 지나면서 우리는 ‘무한도전’이라는 쇼 프로그램이 실제로 현실을 바꿔나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들은 봅슬레이를 빌려서 경기에 출전하던 국내 봅슬레이의 열악한 상황을 감동적인 도전을 통해 순식간에 바꿔버렸다. 현재 올해 벤쿠버에서 열리는 동계올림픽 출전권까지 따놓은 한국 봅슬레이팀은 그 누구보다 관심을 받는 존재가 되었다. 그들은 한식의 세계화를 위해 뉴욕으로 날아가 한 레스토랑에서 메뉴 런칭을 선보이기도 하고, 불황에 힘겨워하는 음식점들을 기습공격(?)해 무한 매출을 올려주기도 한다. 그들에게 도전은 이제 쇼이면서 동시에 현실이 되기도 한다.

‘1박2일’은 몇 년 간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여행 버라이어티를 통해서 국내에 숨겨진 여행지들을 발굴해내고 있다. 이를 통해 국내여행에 대한 인식도 바뀌고 있으며, 캠핑 열풍 같은 여행 문화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실제로 해외 관광객들 중에는 ‘1박2일’을 보고 국내를 찾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무엇보다 ‘1박2일’이 거둔 가장 큰 수확은 도시에 상대적으로 소외된 시골에 대한 따뜻한 향수와 정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이 연장선 상에 있는 ‘청춘불패’ 역시 마찬가지. 강원도 홍천의 유치리라는 동네에 정착해가는 걸 그룹 아이돌들의 모습을 통해 도-농 간의 소통의 과정이 훈훈한 감동까지 전해주는 이 버라이어티는, 실제로 이 자그마한 동네에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제 시청자들은 유치리라는 동네에 사는 이장님이나 로드리(동네 이장님 친구 분의 애칭)를 마치 우리 동네 어르신처럼 가깝게 느끼게 됐다. 걸 그룹 아이돌들이 찾아간 상점에는 일부러 찾는 관광객들이 생길 정도. 한쪽 벽에 붙여진 그들과 함께 찍은 사진들은 쇼와 현실의 공존을 잘 보여준다.

‘천하무적 야구단’은 보다 실제적인 꿈을 꾸며 그 꿈을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다. 아마추어 야구인들을 위한 ‘꿈의 구장’을 건립하는 것이 그것. 이들은 이 꿈을 실현하기 위해 먼저 5개 지역을 찾아가 야구장 부지를 타진했다. 야구장 건립은 100억 대에 이르는 대규모 공사지만 그것이 불가능한 꿈은 아니다. ‘천하무적 야구단’이 꾸고 있는 그 꿈에 대해 많은 이들이 지지하고 동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엔터테이너들이 광대로 딴따라로 폄하되던 시대, 쇼는 여흥의 하나일 뿐이었다. 하지만 펀(fun)이 사회를 움직이는 하나의 추동력이 되어가는 이 시대에 쇼는 여흥을 넘어서 현실을 바꾸는 힘이 되고 있다.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은 이제 국회나 상아탑에서의 심각한 고민과 진지한 토론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꿈을 꾸고 그 꿈이 많은 이들의 지지를 얻을 때, 사회는 어떤 변화를 허락한다. 스튜디오의 폐쇄된 공간 속에서 여흥거리만을 고민하던 버라이어티쇼들. 이제 스튜디오를 벗어나면서 이들은 현실 속에서 꿈을 꾸기 시작했고 그 꿈은 조금씩 현실을 바꿔가고 있다. 올해는 더 많은 꿈들을 버라이어티 속에서도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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