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부터 촛불집회까지, ‘한끼줍쇼’에서 이런 이야기 들을 줄이야

용산구 한남동에서 펼쳐진 JTBC 예능 <한끼줍쇼>는 쉽지 않은 난관들이 많았다. 주인이 돌아오지 않은 집들이 많았고, 특히 외국인들이 사는 곳에 많아 소통에도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으로 두 팀이 모두 실패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문을 열어준 두 집 덕분에 극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그만큼 힘들게 한 끼를 얻어먹을 수 있게 되어서였을까. 아니면 한남동이라는 공간의 특성상, 외국인과 결혼한 한국인의 가정이 많아서였을까. 이번 <한끼줍쇼>는 그 이야기가 지금껏 봐왔던 여타의 동네들과는 사뭇 다르게 다가왔다. 특히 주목을 끈 건 강호동과 유병재가 들어가게 된 남편은 한국인이고 아내는 싱가포르인인 다문화가정이었다. 

남편은 사진을 찍고 아내는 싱가포르 언론의 기자였던지라, 한류가 매개가 되어 만나게 된 두 사람은 그렇게 결혼까지 골인했다고 했다. 아내인 창메이춘은 그 싱가포르 매체의 1호 한국 특파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한국에 들어와 일한 지는 3년 정도 됐다고 했지만, 그 3년 동안 한국은 꽤 큰 사건들이 계속 벌어져 정신없이 보냈다고 했다. 마침 싱가포르에서 북미정상회담이 벌어졌던 터라 그는 더 바쁜 나날들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는 것.

어딘지 당차고 자기 주관이 확실히 보이는 그에게 강호동은 진짜 궁금하다며 “한국에서 수많은 기사를 썼을 텐데 가장 기억에 남는 기사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런데 돌아온 답변이 너무나 의미 깊은 것이었다. 그는 세월호 1주기에 남편과 함께 단원고에 방문했을 때 너무나 슬펐던 마음을 이야기했고, 위안부 할머니 만나기 위해 나눔의 집에 방문했을 때는 한 할머니가 일본군으로부터 도망치려다 다친 상처를 보여줘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물론 기자이기 때문에 그렇겠지만, 우리도 직접 찾아보지 않은 우리의 아픔을 외국인이 찾아가 가까이서 들여다봤다는 사실은 어딘가 아이러니한 느낌마저 주었다. 그런 이야기를 외국인을 통해 듣고 있다는 사실도 그랬다. 아마도 그런 자리를 갖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그 날의 밥동무 강호동과 유병재가 그의 말에서 느꼈을 뭉클함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 했다.

강호동은 문득 “외신기자의 눈에 비춰진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이냐고 물었다. 그 질문에 창메이춘은 차분한 목소리로 ‘촛불집회’의 놀라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회사에서 제가 첫 특파원이었어요. 제가 이 곳에 온 이후 모든 일들이 정말 빠르게 돌아갔습니다. 한국에 수많은 대형뉴스들이 터졌고 그건 한국만이 아니라 아시아 전체에 영향을 미친 사건들이었습니다. 제가 오기 전 대부분의 싱가포르 사람들이 영화, 드라마, K팝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었어요. 하지만 제가 한국에 온 이후 사람들은 한국을 한 국가로서 더 많이 알게 되었고 한국 사람들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음.. 촛불집회죠? 당시 제 친구가 물어보더라고요. 100만 명의 군중이 거리에 나와 시위를 하는데 어떤 폭력도 없었고, 모두 대통령 탄핵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니... 그 뭉친 국민에 모두가 감명을 받았어요. 대단해요. 한국사람 어떻게 이런 일 할 수 있는지.”

순간 <한끼줍쇼>가 아닌 <비정상회담>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외국인의 시선에 비친 지난 3년 간의 시간들. 정신없이 지나가버린 그 3년 간 엄청난 큰일들이 우리에게 벌어졌었다는 걸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변화들은 우리만이 아니라 아시아 전체, 아니 세계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일들이라는 것도.(사진:JTBC)

‘군함도’, 이런 판을 만들어준 류승완 감독에게 박수를 

지난해 송혜교는 미쓰비시 자동차 회사의 중국 광고 모델을 거절했다. 미쓰비시는 다름 아닌 최근 개봉한 <군함도>의 실제 모델인 하시마섬(군함도라 불림)에서 탄광을 운영했던 ‘전범기업’이다. 최근에 송혜교의 공개 연인인 송중기는 <군함도>를 찍었다. 그는 기자 간감회에서 송혜교 광고 거절 사실을 언급하며 마음으로 박수를 보냈다고 했다. 

사진출처:영화<군함도>

아마도 <군함도>를 보고 나오는 관객들의 마음이 마치 송중기가 송혜교에게 마음으로 박수를 보냈던 그 마음이지 않을까. 결코 제작환경이 녹록치 않은 작품이다. 군함도 실제 크기의 2/3에 해당하는 초대형 세트를 제작했고 적지 않은 배우들과 엑스트라들이 참여했다. 실제를 방불케 하는 탄광 내에서의 혹독한 환경을 그대로 재현하기 위해 조명과 각도까지 세심하게 배려한 흔적이 역력하다. 

황정민, 소지섭, 이정현, 송중기 등 원톱을 해도 충분히 가능한 배우들이 이 영화 하나에 기꺼이 모이게 된 것도 그저 우연이라 보기 어렵다. 거기에는 물론 류승완 감독에 대한 신뢰가 그 기반이었을 테지만, 그것보다도 다름 아닌 군함도라는 실제 우리네 역사의 아픈 생채기를 다시금 복원한다는 그 뜻이 주는 무게감도 적지 않을 것이다. 

MBC <무한도전>이 대중들에게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이 군함도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을 때 우리를 공분하게 만든 건 그 곳이 근대화의 상징처럼 포장되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관광객들의 관광 상품이 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물론 유네스코측은 그 곳의 역사적 사안들을 공개하라고 요구했지만 지금껏 이는 묵살되어오고 있다. 

어른은 물론이고 여자, 아이들까지 동원되어 탄광 속에서 사투를 벌였던 그 역사적 사실이 묻히고 있는 현실 속에서 <군함도>라는 영화 한 편이 주는 가치는 빛날 수밖에 없다. 아시아는 물론이고 세계로 뻗어나가는 한류스타들의 해외에서의 입장을 떠올려보며 선뜻 선택하기 쉽지 않은 작품이었을 테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했던 건 ‘전쟁의 참혹함’이 그렇게 묻히고 사라지는 사안의 중대함이 아니었을까. 

<군함도>는 실제 현실이 아마도 더 참혹했을 영화다. 하지만 자극은 오히려 사안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류승완 감독은 영화가 너무 자극적으로 흐르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렇게 희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참혹한 상황들을 바라보는 건 괴롭기 그지없다. 

그렇지만 그 괴로움을 털어내기 위해 괜한 판타지로 채색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 <군함도>는 있는 사실을 재현하는데 충실한 한편, 조선인들의 탈출기라는 가상의 이야기를 덧붙였다. 살아남기 위한 사투와 그 안에서 엮어지는 휴머니즘, 그리고 무엇보다 친일에 대한 엄중하고 날선 비판의식을 세웠다. 

현재의 촛불집회를 연상시키는 장면들을 집어넣어 당대의 군함도에서 있었던 이야기가 그 때 그 곳의 특정한 사건이 아니라 지금 현재에도 한번쯤 반추해 봐야할 사안이라는 여운도 남겨뒀다. 괜한 반일 감정을 부추기는 영화라기보다는 전쟁이라는 상황 속에서 벌어지는 지옥도를 끄집어냄으로써 ‘반전 영화’의 방향성을 확실히 드러냈다. 

영화는 결코 즐거울 수 없고 통쾌함을 느낄 수도 없으며 또 그래서도 안 된다. 이것은 일종의 전쟁으로 인해 희생된 분들을 위한 진혼곡에 가깝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영화를 보며 우리는 묵직한 울림을 느낄 수 있다. 특별한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이역만리에 끌려 온 한 소년의 “고향으로 가고 싶어요”라는 외침 하나에 모든 것이 다 들어있기 때문이다. 

송혜교는 광고를 거부했고 송중기는 그런 그녀에게 마음의 박수를 보내며 <군함도>에서 열연을 보였다. 그리고 이제 객석에서 그 고통의 역사를 공유하며 우리들도 그 대열에 참여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런 판이 가능하게 해준 류승완 감독에게 진심어린 박수를 보내고 싶다.

시국비판과 여혐 사이, DJ DOC수취인 분명

 

오는 10DJ DOC가 촛불집회 무대에 오른다. 지난달 25일 시국을 비판한 수취인 분명을 발표하고 애초에 26일 촛불집회 무대에 오를 예정이었지만 가사 내용 중 일부 가사들의 표현이 여성혐오를 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면서 무산됐다. 비판이 지목한 가사들은 미쓰박’, ‘쎄뇨리땅’, ‘얼굴이 빵빵’, ‘(차 뽑았다) 널 데리러 가같은 대목들이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DJ DOC가 촛불집회 무대에 오르게 된 건 이 노래가 궁극적으로 가진 비판의 칼날이 여성혐오보다는 박근혜 정부에 맞춰져 있다는 걸 어느 정도는 수용했다는 이야기다.

 

'DJ DOC(사진출처:SBS)'

물론 그렇다고 수취인 분명의 가사들이 갖고 있다는 여성 혐오에 대한 비판이 의미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분명 지적한대로 미쓰박이라는 표현에는 미스라는 지칭에 여성을 낮게 바라보는 시선이 깔려 있는 것이 사실이고 얼굴이 빵빵이나 널 데리러 가같은 표현 속에도 여성은 그렇다는 식의 편견이 들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즉 시국을 비판하는 노래 속에 굳이 여성 비하의 의미를 담고 있는 표현들이 들어간다는 건 그 노래를 여성들이 편하게 듣기가 불편해지는 상황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이 표현들이 여성 혐오가 의도된 것이라기보다는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를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란 입장도 만만찮다. 미쓰박이라는 표현은 단지 미스로 낮춰보는 여성의 시선이 들어가 있다기보다는 미스(테이크)’ 박의 중의적 의미로 힙합에서 자주 쓰이듯 미스와 미스테이크를 언어유희한 측면이 있다. 쎄뇨리땅역시 새누리당을 지칭해 비하할 뿐 여성 비하와는 상관이 없고, ‘얼굴이 빵빵이라는 표현도 대통령의 불법 시술 의혹을 담은 내용이라는 것이다. ‘널 데리러 가라는 가사는 오빠차라는 노래의 가사에서 가져와 사실은 구속하러 간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수취인 분명이라는 노래는 여성적 관점으로 바라보면 분명 불편함을 느낄 수 있는 여혐으로도 해석이 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라는 특정인과 현 시국을 비판하는 관점으로 바라보면 여혐과는 상관없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렇게 된 것은 현재 우리가 젠더에 대한 감수성이 변화하고 있는 지점에 서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즉 과거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던 말들이 사실은 민감한 젠더 문제들을 담고 있는 표현들이었다는 게 지금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DJ DOC수취인 분명은 그래서 의도했다기보다는 과거부터 해왔던 표현들을 그저 이번 시국비판에 끌어왔던 것으로 보이며, 그렇기 때문에 젠더 문제에 있어서는 그만큼 민감하지 못했던 탓에 이런 문제의 소지들이 가사에도 담기게 됐을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바라보면 수취인 분명이라는 곡이 이번 촛불집회 무대에 오르는 것에는 두 가지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

 

그 하나는 뮤지션들의 사회참여의 의미다. 표현에 있어서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수취인 분명처럼 분명하게 시국에 대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음악인들의 사회참여가 특별한 일이라기보다는 당연한 일이라는 걸 보여줄 수 있다. 물론 음악인들은 이미 사회참여를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던 게 사실이다. 다만 우리네 음악 소비가 거대 기획사 중심으로만 흐르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사회참여적 노래들이 조명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봐도 DJ DOC수취인 분명같은 노래의 의미는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갖고 있는 잘못된 젠더 의식에 대한 문제 역시 수취인 분명은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이 곡이 무의식적으로라도 갖고 있는 여성 혐오적 뉘앙스는 시국 비판에 대한 환호와 함께 동시에 잊지 말아야할 대목이다. 그런 점에서 수취인 분명은 현재 변화하고 있는 젠더 감수성을 비판적 관점으로 바라보게 하는 의미를 가진다. 이런 경우 비판적 수용이라는 측면은 중요하다. 비판할 지점은 비판하면서 수용할 지점은 수용하는 자세. 그것이 뮤지션들의 사회참여의 길을 열면서도 동시에 놓치기 쉬운 비판적 관점 역시 챙기는 일이 될 것이다

<무도>의 꺼지지 않는 현실 인식, 이러니 국민예능이지

 

이걸 보면 사람들이 박수를 쳐요.”, “죽을 것 같은데 살아나요.”, “뜨거운 데 만질 수 있어요.”, “엄청 많은 사람들이 이걸 들고 만났어요.” 7살 어린이가 또박또박 던지는 말들이 새삼 가슴에 콕콕 박힌다. 아이가 이야기하고 있는 건 촛불이다. 정답을 확인한 <무한도전> 멤버들은 조금은 숙연해졌다. 정준하는 죽을 것 같은데 살아난다는 아이의 표현에 그게 중의적인 표현이었네라고 한 마디를 덧붙였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물론 아이가 촛불집회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은 엄청 많은 사람들이 이걸 들고 만났어요라는 말 하나일 것이다. “이걸 보면 박수를 친다는 건 아무래도 생일을 떠올리는 광경일 테고, “죽을 것 같은데 살아난다는 건 바람 앞에 꺼질 듯 꺼지지 않는 촛불을 그대로 표현한 것일 게다. 하지만 시국이 시국인지라 아이가 던지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무한도전>이 아이의 목소리를 담아 그걸 퀴즈로 낸 건 이렇게 에둘러 촛불집회에 대한 마음을 전하기 위함이었음이 분명하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이른바 산타를 뽑는 미션을 가진 산타 아카데미라는 특집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잘 읽어내는 테스트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무한도전>은 현실 인식을 놓지 않았다. 산타복을 입은 멤버들의 가슴에는 그 빨간 산타복 때문에 더 선명하게 보이는 노란 리본이 달려 있었다. 아마도 다음 주는 예고된 대로 산타 아카데미가 본격화되며 한바탕 몸 개그의 향연이 벌어질 것이다. 하지만 자막을 통해서건 특별한 상황들이 연출되건 <무한도전>은 현 시국에 대한 의식을 놓지 않을 거라는 게 그 노란 리본 속에 담겨있었다.

 

알고 보면 북극곰의 눈물특집 역시 곳곳에 사용된 자막의 표현들은 현 시국에 대한 정서들을 반영한 것들이 있었다. ‘분노라는 단어도 사지라는 표현도 예사롭지 않았다. 지구온난화로 아직 바다가 얼지 않아 북극해를 건너지 못하는 북극곰들의 기다림은 마치 온 국민이 염원하고 기다리는 모습처럼 안타까움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바다가 조금씩 얼어가는 모습에서 희망을 발견하기도.

 

후일담 형식으로 만들어진 기분 나쁜 날<기분 좋은 날>을 패러디한 것이지만 여러모로 현 시국의 대중정서를 제목을 담은 것이 분명했다. 캐나다에서 북극곰을 보고 돌아온 박명수와 정준하에게 이것저것 묻는 과정에서 엉뚱하거나 무지한 답변을 반복하는 그들을 세워두고 무시하거나 몰아세우는 일종의 상황극으로 그들을 기분 나쁘게하는 콘셉트. “요즘 웃을 일이 없다는 유재석의 멘트로 시작한 코너는 다시 웃을 수 있는 날을 기약하며 끝을 맺었다.

 

마지막으로 유재석이 예고한 2017년 신년 프로젝트 국민내각특집은 <무한도전>이 지금의 시국에 던지는 한바탕 사이다 예능이 될 것으로 벌써부터 기대되고 있다. “그야말로 국민 여러분들의 의견을 듣고자 한 것이라고 소개한 국민내각특집에 대해서 유재석은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 어떤 법이 생겼으면 좋겠다 등의 의견을 자유롭게 제시해 주시면 된다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참여와 소통의 의지를 보여주는 <무한도전>은 그 자체만으로도 이 시국에 대한 이야기를 건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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