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 일방적 메시지, 악플.. 이젠 SNS의 일상이 된 풍경들

 

'이제 인스타그램을 그만하려고 합니다. 최근에 있었던 일 때문은 아니구요(물론 아주 영향이 없진 않지만) 활동이 많이 없어 늘 소식 목말라하는 팬들과 소통하고자 했던 공간인데 이거 은근히 신경도 많이 쓰이고 쉽지 않네요. 우리 팬들과는 다른 방식의 소통 생각해볼게요.'

 

가수 이효리가 인스타그램에 이런 글을 남기고 계정을 결국 삭제했다는 소식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도 그럴 것이 SNS에 올라간 사진만으로도 늘 화제가 되곤 했던 이효리였다. 과거 결혼해 제주도에 내려가 살게 되면서 이효리의 근황을 전하는 소통의 창구 역할을 했던 게 바로 SNS였으니 그걸 삭제한다는 의미는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항간에는 최근 MBC 예능 <놀면 뭐하니?> 환불원정대를 시작하면서 그 부캐 이름을 정하다 우연찮게 나오게 된 '마오'라는 이름 때문에 쏟아졌던 '악플 테러' 때문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라고 이효리 스스로가 밝혔다.

 

실제 이유는 이효리가 카카오TV에서 하고 있는 <페이스아이디>라는 웹예능을 통해서 드러났다. 요가하는 장면을 찍기 위해 여러 차례 시도를 하고 그 중 괜찮은 사진을 골라내며, 차를 한 잔 마시면서도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기 위해 발가락으로 찍는 이효리의 모습은 웃음을 주기도 했지만, 사실 그건 우리가 얼마나 SNS에 목매여 살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화보를 찍으러 가서도 사진을 찍어 올리고, 화장을 고치면서도 연실 SNS를 확인하던 이효리는 인스타그램을 삭제하겠다고 마음먹은 진짜 이유로 너무 습관적으로 하루 1-2시간을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들었다. 그 사실을 깨닫게 해준 건 고양이 순이였다. 인스타그램을 보고 있는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고양이 순이를 깨닫게 된 순간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는 것. SNS에 집중하다 정작 주변의 소중한 존재들을 도외시하고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또 다른 이유로 이효리는 "돈 빌려달라는 부탁"이 DM으로 너무 많이 온다는 사실을 들었다. 사실 다 해줄 수도 없고 하기도 어려운 일이라 무시하면 되지만 이효리는 쉽게 지나치지 못하곤 했다는 거였다. SNS의 손쉬운 연결이 소통을 쉽게 해주긴 하지만, 그래서 생겨나는 잘 모르는 이들의 일방적인 메시지가 주는 부담감은 이제 SNS를 하는 누구나 느끼는 일이 아닐까.

 

악플이 주원인은 아니라고 했지만 이 역시 원인의 하나일 수 있다는 걸 부정하진 않았다. 연예인으로서 감당해야할 일이라고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일까. 이것 역시 SNS 같은 다소 사적인 공간이 때때로 공적인 공간처럼 변모해 악플로 도배되기도 하는 디지털 현실을 말해주는 대목이었다.

 

<페이스아이디>를 통해 의도적으로 한 건 아니겠지만 이효리가 인스타그램을 삭제하는 과정을 담아낸 건 그래서 의외로 SNS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면들이 있었다. 너무 빠져들어 실제 일상의 소중한 시간들을 빼앗기고, 연결되어 있는 통로로 일방적인 메시지들이 날아와 부담을 주며, 때론 악플로 상처를 입는 현실. SNS 시대에 이제 우리가 겪고 있는 일상이 거기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사진:카카오TV)

'밤을 걷는 밤', 카카오TV에 최적화된 콘텐츠의 매력

 

이걸 만일 지상파에서 방송으로 만든다면 가능했을까. 카카오TV <밤을 걷는 밤>은 그 콘셉트가 단순하고 명쾌하다. 어둑해진 밤에 유희열이 나서는 마실을 따라가는 것. 그가 첫 번째로 선보인 '밤마실'의 장소는 청운효자동이다. 그 곳은 유희열의 어린 시절 추억이 묻어있는 곳이다.

 

동네는 과거의 풍경을 그대로 갖고 있는 곳도 있고 달라진 곳도 있다. 유희열은 그 길을 걸으며 과거에 대한 기억과 현재의 마음의 시차를 맞춰 나간다. 당시 골목길에서 같이 뛰놀던 친구들을 떠올리고, 저녁 어스름해질 때면 부르는 소리에 모두 집으로 돌아간 그 길에 홀로 덩그러니 서 있던 자신을 기억해낸다.

 

유희열은 어머니가 늦게까지 일을 하시느라 집에 없었다고 했다. 그리고 길을 따라 걷다가 문득 한 버스정류장 앞에 잠시 쉬었다 가자고 말을 꺼낸다. 알고 보니 그 곳은 늦게까지 일하시던 어머니가 버스에서 내리던 곳이었다. 버스가 서면 엄마가 왔나 돌아보곤 했다는 유희열은 자신보다 자신을 발견한 엄마가 더 기뻐하셨던 걸 기억해낸다.

 

<밤을 걷는 밤>은 밤이어서 깨어나는 새로운 감각들을 담는다. 사실 빛은 많은 것들을 희석시키기 마련이다. 너무 노출된 것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밤이어야 적당히 가려진 곳에서 우리가 보지 못했던 것들과 듣지 못했던 소리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한다. 유희열은 그 길을 걸어가며 밤이 깨어나고 있는 걸 온 몸으로 느낀다.

 

"너무 좋다"고 말하는 그의 모습은 그 길을 영상으로 따라가는 시청자들의 마음 그대로다. 서울하면 번잡한 풍경들만 떠올리곤 했던 시청자들이라면, 그렇게 조용하고 고즈넉한 밤 시간의 마실에 마음이 차분해지고 새로운 감각들이 깨어나는 그 기분을 만끽하는 유희열에 빙의될 수밖에 없다.

 

이토록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밤거리를 걸으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 콘텐츠가 될까 싶지만, 바로 그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밤을 걷는 밤>의 진짜 매력이다. 아카시아 나무가 있던 곳을 지나며 한창 꽃이 피어날 때는 향기를 떠올리고, 윤동주 문학관의 시인이 걷는 길을 따라 걸으며 괜스레 시인이 된 듯한 감성을 느껴본다.

 

시인의 언덕이라는 곳으로 가려다 그 곳에서 연인들을 발견한 유희열은 서둘러 그 곳을 벗어나며 이 길이 연인들이 같이 걷기에 최적이라는 걸 말해준다. 손잡기 딱 좋은 조금 어둑해진 길을 따라 오르고, 아름다움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뜻의 '무무대'라는 장소에서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서울의 야경을 발견하고는 그 곳이 프러포즈하기 딱 좋은 곳이라는 팁을 준다.

 

밤, 걷는 속도, 별 특별한 것 없는 편안한 이야기들... <밤을 걷는 밤>은 이 단순하지만 강력한 감성을 담아내면서 카카오TV라는 매체에 딱 어울리는 편집과 구성을 보여준다. 세로 화면에 유희열이 하는 멘트들이 마치 카톡 메시지처럼 올라오는 것도 재밌고, 이 영상과 더불어 카카오맵이 전하는 산책코스 정보 또한 실용적이다.

 

카카오TV는 지난 1일 웹 콘텐츠의 시대를 열겠다는 포부로 새로운 플랫폼을 열었다. 새로운 플랫폼은 거기에 맞는 내용과 형식들이 담겨져야 비로소 차별화된 콘텐츠로서의 힘을 발휘할 수 있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밤을 걷는 밤>은 카카오TV라는 플랫폼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콘텐츠가 아닐 수 없다. 그저 편안히 유희열을 따라 그 밤마실을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이 색다른 플랫폼의 맛을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사진:카카오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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