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 예능의 특별함은 어디에서 나올까

 

이제는 웹 예능이라는 말이 그리 낯설지 않은 시대가 됐다. 유튜브는 물론이고 카카오TV 그리고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같은 새로운 플랫폼들이 점점 주력 미디어로 떠오르고 있고, 다양한 웹 예능 콘텐츠들을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피식대학

나영석 PD의 도전, 이젠 OTT 전략이 됐다

2015년 첫 시즌을 방영한 나영석 PD와 신효정 PD가 공동 연출한 <신서유기>는 네이버TV를 통해 방영된 웹 예능이었다. 1인 미디어들이 등장하고, 플랫폼이 인터넷이나 모바일 같은 웹으로 옮겨가는 시대의 변화를 읽었던 나영석 PD의 모험적인 선택이었다. 당시 이 웹 예능은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하며 화제가 됐다. <신서유기> 특유의 게임, 여행이 접목된 웃음은 웹의 성격에도 잘 어우러졌다. 지상파나 케이블 예능들이 어떤 공적인 요소들(재미만이 아닌 의미 같은)을 요구하던 것과 달리 웹에서는 그저 순전히 포복절도의 재미를 추구하는 분위기가 있었고 그걸 간파한 것이 <신서유기>의 시작이었다. 

 

그 후로 <신서유기>는 시즌2에 웹에서 보여준 후 방송에 편성되었고 시즌3부터는 tvN에서 정규편성되어 방영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잦은 편성 변경은 초창기 이 웹 예능의 시도가 화제는 됐지만 성공을 거두지는 못한 결과 때문이었다. 다행히 정규편성된 시즌3가 성공을 거뒀고 그 후 <강식당>, <아이슬란드 간 세끼> 같은 스핀오프 프로그램도 시도되었다. 나영석 사단은 네이버TV에서 유튜브로 플랫폼을 옮겨 채널 십오야를 세웠다. 처음에는 나영석 사단이 만드는 정규 방송들의 예고나 미방영분 혹은 편집판을 내보내는 플랫폼처럼 시작했지만 구독자수가 급증하면서 ‘달나라 공약’ 해프닝 같은 일들이 엄청난 화제가 됐다. 정해진 기간 안에 100만 구독자가 넘으면 이수근과 은지원을 달나라로 보내주겠다는 공약을 걸었다가 실제 100만 구독자가 넘자 나영석 PD가 구독자들에게 ‘구독 취소’를 애원하는 해프닝이 벌어진 것.

 

웹 예능이 점점 화제가 되면서 tvN 플랫폼을 오히려 웹 예능의 홍보창구처럼 활용하는 역전현상도 일어났다. 즉 <신서유기> 멤버들을 통해 런칭한 스핀오프 프로그램들인 <삼시네세끼>, <나홀로 이식당>, <라끼남>, <언제까지 어깨춤을 추게 할 거야>, <마포 멋쟁이>, <출장 십오야> 같은 웹 예능들은 tvN 정규방송에 짧게 편집되어 소개됐는데, 이건 일종의 웹 예능 홍보영상처럼 활용된 것이었다. 이렇게 단 몇 년 사이에 웹 예능의 위상은 정규 방송을 위협할 정도로 높아졌다. 게다가 최근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가 새로운 콘텐츠 소비 플랫폼으로 등장하면서 구독자를 확보하기 위한 OTT들의 오리지널 예능 경쟁도 치열해졌다. 티빙에서 오리지널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진 <신서유기 스프링캠프>는 그간 나영석 사단이 시도해온 일련 웹 예능들이 이제는 OTT의 전략적 프로그램이 될 정도로 성장했다는 걸 보여준다. 

 

지상파의 한계를 뛰어넘은 웹 예능의 저력

<신서유기>가 처음 네이버TV에서 방영됐을 때 웹 예능이 기성 플랫폼의 콘텐츠와 확연한 차별화가 가능하다는 걸 가장 잘 드러내준 건, 상품명을 나열하는 게임이었다. 기성 플랫폼에서는 할 수 없어 지워지거나 삐 처리될 수밖에 없는 상품명들이 ‘속 시원하게’ 출연자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게임은 웹이어서 가능한 표현이나 소재가 있다는 걸 알려줬다. 유튜브로 채널 십오야를 열고나서는 시청률이 아닌 ‘구독’ 관점의 예능들은 팬들과의 소통이 중요하다는 걸 드러냈다. 그래서 간간히 소식도 알리고, 때론 ‘얼토당토한 공약’으로 해프닝도 만들어내면서 구독자가 늘어났고, 그 과정 자체가 하나의 콘텐츠라는 새로운 인식도 생겨났다. 특히 웹 예능은 웹의 특성상 짧은 분량으로 나누어진다는 점에서 그 특성에 최적화된 콘텐츠들이 가능하다는 것도 알게 됐다. 놀라운 건 ‘구독’ 개념으로 묶여진 구독자들의 막강한 팬심이다. 스스로 채널을 선택한 찐팬들은, 기성 플랫폼 시청자들보다 더 유대감이 높았다. 

 

이런 특성들에 최적화된 콘텐츠들을 내놓음으로써 새로운 전성기를 마련한 대표적인 사례가 ‘피식대학’이다. KBS <개그콘서트>와 SBS <웃찾사>의 개그맨 3인이 결성해 유튜브에 만든 이 채널은 ‘한사랑 산악회’, ‘B대면 데이트’, ‘05학번이즈백’ 같은 상황극 콘텐츠로 큰 인기를 끌었다. 기존 지상파에서 하던 무대개그처럼 캐릭터가 강조된 개그코드를 갖고 있지만, 이들 콘텐츠들은 실제 현장 속으로 들어가 보여주는 즉석 상황극이라는 점이 달랐다. 특히 지상파가 아니라는 점에서 표현이나 소재가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피식대학은 구독자들이라는 찐팬들이 모여드는 공간이라는 점이다. 특정 콘텐츠들의 상황극과 캐릭터는 그래서 무대 개그와는 달리 하나의 세계관으로 받아들여졌고, 이 가상의 캐릭터 놀이를 바탕으로 하는 세계관은 실제 현실로 걸어 나와 소비되는 확장의 경향을 보이고 있다. ‘B대면 데이트’에서 이호창이라는 재벌3세가 ‘시가총액 500조원의 코스피 1위 기업’인 김갑생할머니김의 미래전략실본부장으로 등장하는데 실제로 성경식품과 협업해 내놓은 ‘김갑생할머니김’이 3시간만에 완판되는 일이 벌어진 것. 이른바 ‘믹스버스(Mixverse : Universe+Mix)’ 굿즈는 이제 웹 예능이 만들어내는 세계관들과 협업하며 구독자들의 또 다른 즐거운 소비로 이어지고 있다.

 

웹 예능, 레거시 미디어 예능을 압도하는 이유

<개그콘서트>의 폐지와 상반되는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의 승승장구는 지금 현재 웹 예능이 기성 레거시 미디어의 예능을 압도하고 있는 현실을 드러낸다. 더 이상 지상파에 설 무대가 없어진 개그맨들은 저마다 유튜브 채널을 열고 새로운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미 등장하고 있는 카메라 어플을 적용해 탄생한 월클돌 매드몬스터(탄, 제이호)라는 캐릭터를 탄생시킨 곽범, 이창호도 그 대표적인 사례다. 유튜브 채널 ‘빵송국’에서 탄생한 매드몬스터는 실제 음원과 뮤직비디오를 발표하고 아이돌로 활동 중이다. 

 

2015년 네이버TV처럼 출시됐던 카카오TV는 작년 9월 자체 제작 드라마, 예능 등을 공격적으로 쏟아내며 종합 동영상 서비스를 시작했다. 여기서 등장한 웹 예능들은 기성 플랫폼에서는 본 적 없는 색다른 시도들이 화제가 됐다. 마치 누군가의 일상을 모바일 카메라를 통해 들여다보는 것 같은 형식을 취한 <페이스 아이디>나 도시의 밤길 산책을 따라가는 <밤을 걷는 밤> 같은 시도들이 대표적이다. 특히 주식을 소재로 한 <개미는 오늘도 뚠뚠> 같은 웹 예능은 지상파가 하지 못하는 표현 수위로 실질적인 정보에 관심을 가진 구독자들을 끌어 모았다. 즉 실제 주식종목명을 거론하고 실제투자하며 그 결과를 보는 ‘진짜 정보들’이 담겨 있었던 것. 비슷한 주식 소재 예능을 시도했던 MBC <개미의 꿈> 파일럿이 정규가 되지 못했던 건, 실제 투자 종목을 거론할 때 묵음 처리되는 한계를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예능은 보다 일상에 맞닿아 있는 장르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훨씬 더 리얼한 일상의 풍경들이 담겨진 예능을 보고 싶어 한다. 기성 레거시 미디어들이 그 위상의 책임감 때문에 스스로 표현과 소재를 제한하고 있을 때, 웹 예능들은 저들이 하지 못하는 영역에 뛰어들고 있다. 그건 차별화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달라진 시대에 대중들이 요구하는 눈높이에 맞추려는 노력의 소산이기도 하다. 이런 흐름으로 계속 가게 된다면, 웹 예능이 레거시 미디어 예능을 압도하는 현실을 마주할 수밖에 없을 게다. 만일 기성 플랫폼의 예능들이 위기에 맞는 대대적인 혁신을 일으키지 않는다면.(글:LH사보, 사진:샌드박스)

'가짜사나이'에 이은 '김계란의 찐서유기'가 카카오TV에 시사하는 것

 

김계란은 어느새 그 이름 석 자만으로 그가 내놓는 콘텐츠에 기대감을 갖게 만드는 인물이 됐다. 지난해 거센 논란과 함께 유튜브 방송을 중도에 멈췄던 <가짜사나이> 시즌2는 커다란 파장을 불러 일으켰지만 김계란이라는 기획자이자 독보적인 캐릭터를 대중들에게 각인시키기에는 충분했다.

 

사실 <가짜사나이> 시즌1이 처음 공개됐을 때 대중들을 놀라게 했던 건 기존의 유튜브 콘텐츠들이 대부분 1인 크리에이터들이 만들어가는 일상 방송이었던 것과 달리, 여러 크리에이터들이 한 자리에 모여 만들어낸 블록버스터급 웹예능이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물론 제작비는 기존 레거시 미디어의 예능 프로그램에 턱없이 적은 규모지만, 웹예능으로 보면 블록버스터급이었던 것. 하지만 그 콘텐츠의 파장이나 영향력 그리고 실질적인 수익성은 훨씬 높았다.

 

김계란의 기획력이 돋보였던 건 그것이 기존 레거시 미디어의 예능 프로그램들과 차별화된 웹예능만의 특징을 잘 담아냈다는 점이었다. 그는 기존 예능 프로그램들을 패러디했다. MBC <진짜사나이>를 패러디해 내놓은 <가짜사나이>는 그 패러디를 통해 지상파 예능이 가진 리얼리티의 허구를 오히려 풍자했다. <가짜사나이>라고 했지만 <진짜사나이>보다 더 리얼한 군대 훈련 상황을 담아냄으로써 가짜와 진짜를 뒤집는 리얼리티를 보여준 것. 물론 너무나 리얼했던 게 가학 논란까지 불러 일으켰지만.

 

아마도 <가짜사나이> 논란은 그런 걸 의도한 게 아니었던 김계란에게는 적잖은 충격과 상처를 주었을 게다. 하지만 그는 역시 기획자였다. 바로 그런 자신의 상황 또한 콘텐츠로 풀어내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인 피지컬갤러리로 몸도 마음도 지쳐 귀농하겠다는 이야기를 꺼냈고 그것이 <찐서유기>라는 귀농예능 콘텐츠로 이어졌다.

 

눈치 챘다시피 <찐서유기>는 나영석 PD의 <신서유기>를 패러디한 제목이다. 여기서도 그는 기존 예능과 일종의 비교지점이자 대결구도를 세우고, 자신이 만드는 웹예능이 '찐'이라는 걸 내세운다. '진짜' 대신 '가짜'라 이름 붙이며 도발적인 패러디를 했던 김계란은 이제 '찐' 예능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겠다 선언한다.

 

그는 이번에도 이미 저마다의 열광적인 구독자들을 보유하고 있는 유튜버들을 기획에 참여시켰다. 사실상 <가짜사나이>의 탄생을 불러일으킨 공혁준(그는 여기서 저팔계 캐릭터를 맡았다)이 이번에도 함께 했고, 뭐든 직접 뚝딱 뚝딱 만들어 심지어 워터슬라이드까지 만들어내는 콘텐츠로 유명한 집나온 부식과, 요리하는 유튜버로 굳이 사먹는 게 훨씬 편한 요리를 직접 해놓고는 "사드세요 제발"하는 멘트로 유명한 승우아빠가 참여했다.

 

강원도 철원에서 펼쳐지는 <찐서유기>의 이야기는 딱히 정해진 무언가가 있다기보다는 현장에서 부딪치며 벌어지는 에피소드들로 채워진다. 마치 <인간극장> 같은 한가로운 오프닝 음악에 특유의 번득이는 대머리와 휘날리는 가짜 수염을 달고 자연 속에 몸을 던지고 있는 김계란은 어딘가 자연인의 풍모가 느껴진다.

 

집나온 부식과 김계란이 아궁이를 직접 만들고 한겨울 계곡에 입수해 엉뚱하게도 킹크랩을 잡아와 그 아궁이에 얹은 솥단지에 승우아빠가 요리를 해먹는 첫 회는 나영석 PD가 했던 <삼시세끼>와 <신서유기>를 김계란식 '찐' 체험으로 보여준다. 뜬금없이 2회에는 철원군청 군수님이 찾아오고 3회에 말을 키우겠다며 승마에 놀라운 재능을 보여주는 김계란의 모습이 등장하며 4회에는 얼음물 산메기 매운탕을 해먹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사실 대단할 것 없는 일상 체험의 이야기들이지만, 김계란 특유의 캐릭터가 살아있고, 여기에 간간히 개그콤비처럼 웃음을 만드는 공혁준과의 토크가 담기는데다, 무엇보다 아직 제대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집나온 부식과 승우아빠의 이야기가 기대된다. 소소하지만 각각의 캐릭터가 워낙 매력적이라 한번 보면 그 일상을 계속 함께 들여다보고 싶게 만든다.

 

<김계란의 찐서유기>는 김계란이라는 유튜브를 기반으로 그 특징에 맞는 콘텐츠를 만들어온 기획자의 콘텐츠라는 점에서 그 영상이 오리지널로 선공개 되고 있는 카카오TV(시차를 두고 유튜브에도 방영되지만)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웹콘텐츠라는 새로운 세계에 야심차게 뛰어든 카카오TV가 기성 연예인들을 주인공으로 세우고 기성 미디어 출신의 PD와 기획자들을 통해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것과 비교해보면, 김계란의 콘텐츠는 너무나 가볍지만 가성비가 뛰어나고 기성 콘텐츠들과 차별화되는 면들을 보여준다.

 

냉정한 이야기지만 지금의 10대, 20대 유튜브 콘텐츠에 익숙한 세대들에게 이경규와 김계란을 놓고 누가 나오는 콘텐츠를 더 보고 싶냐고 물어보면 사실 답은 정해져 있다. 굳이 가성비 없는 선택으로 지상파나 케이블에서 봤던 영상들을 웹으로 끌어올 필요가 있을까. 김계란이라는 기획자가 툭툭 던져놓는 콘텐츠들이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다.(사진:카카오TV, 피지컬 갤러리)

'며느라기'의 담담해 보여도 날카로운 시월드 폭로

 

'그런데 내일 아침에 엄마 미역국 끓여드리면 진짜 좋아하실 것 같은데 아무래도 힘드시겠죠? 내일 출근하셔야 하니까.' 카카오TV <며느라기>에서 남편 구영(권율)의 여동생 미영(최윤라)은 시어머니 박기동(문희경)의 생신에 민사린(박하선)에게 미역국을 끓여드릴 수 있냐고 넌지시 메시지를 보낸다. 에둘러 요구하는 그 메시지에 민사린은 마치 당연한 걸 잊고 있었다는 듯이 "미처 생각을 못했다"며 그러겠다고 한다. 그러자 미영은 고맙다며 엄마가 '황태' 미역국을 좋아한다는 걸 마치 팁이라도 되는 양 알려준다.

 

아침에 미역국을 끓여드린다는 말은 단순히 음식을 한다는 의미만이 아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생일상을 차리라는 이야기고, 그러려면 전날부터 시댁에 가서 하룻밤을 보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남편 구영이 요구한 건 아니지만, 사린은 그래서 스스로 전날 시댁에 가겠다고 나선다. 그리고 시댁에 도착해서도 시어머니를 챙긴다며 설거지를 하고 시댁 식구들이 TV를 보고 있을 때 과일 깎아 내놓는다.

 

그런 사린에게 시어머니는 마치 며느리를 꽤나 생각하는 듯이 "회사 다니랴 살림하랴 힘들지?" 하고 말한다. 그런데 그 말은 며느리가 힘들어서 걱정한다기보다는 마치 회사를 다니지만 살림도 당연히 며느리가 해야 한다는 뉘앙스가 담겨있다. 힘들어도 회사일, 살림을 다 챙겨야 한다는. 피곤해하는 아들에게는 먼저 들어가서 자라고 하고 며느리에게는 더 이야기를 하자고 하는 시어머니에게서 "힘들지?"하고 묻던 그 말의 진심은 휘발되어 버린다.

 

아내가 힘들 거라는 걸 모른 채 눈치도 없이 들어가는 남편. 시어머니가 줄줄 늘어놓는 아들 자랑은 심지어 결혼 전에도 선보라고 연락이 많이 왔다는 이야기까지 이어진다. 사린은 "인기 많은 남편"이 좋다고 애써 웃어주지만, 시어머니의 그 말에는 다른 뉘앙스들이 담겨 있다. 이렇게 인기 많은 남편이니 잘 하라는 것.

 

다음 날 아침 모두가 자는 시댁에서 혼자 일어나 사린은 생신상을 차린다. 미영의 조언대로 황태를 넣은 미역국을 끓이고, 불고기에 반찬들까지 내놓으며 스스로 뿌듯해한다. 연애 때는 엄마가 끓인 미역국을 보온병에 담아 사린의 생일을 챙겨줬던 남편이지만 지금은 아내가 그 고생을 할 때 쿨쿨 잠만 자고 있다. 뒤늦게 일어난 미영이 도와드렸어야 한다는 맘에도 없는 말을 꺼내놓고, 사린이 요리를 엄청 잘한다며 칭찬한다. 칭찬에 뿌듯해 하던 사린은 그러나 나중에 상 차릴 일 있으면 자기에게 부탁해야겠다는 미영의 말에 기분이 묘해진다.

 

그건 마치 시댁사람들과 자신 사이에 어떤 선 같은 게 그어지기 때문일 게다. 힘들지 않았냐고 묻는 말에 누그러지다가도 알고 보니 황태 넣은 미역국을 원한 건 전날 회식으로 과음한 미영이었다는 걸 알고는 마음이 언짢고, 시댁 식구들의 대화에 끼어들 틈이 없어 혼자 먼저 밥을 다 먹게 된 사린은 그 자리가 점점 불편해진다.

 

그런데 이런 사린에게 암묵적으로 강요되는 독박 노동을 친정 엄마는 자신도 모르게 동조한다. '사린아. 어제 시댁에서 자느라 불편했지? 아침에 늦잠 안자고 일찍 일어났는지 모르겠네. 엄마가 깨워준다는 걸 깜빡했어. 사부인 생신상은 잘 차려 드렸니? 네가 잘못하면 다 엄마 흉 되는 거 알지? 우리 사린이야 말 안 해도 잘 하겠지만 예의 바르게 공손히 잘 하고 출근 잘 해라.' 사린에게 보낸 친정 엄마의 메시지에는 며느리의 시댁에서의 노동은 당연한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러려니 참고 있던 사린이지만, 설거지 하는 동안 깎아 내놓은 과일을 다 먹고는 남은 거라도 먹으라며 "너랑 나랑 한 개씩 먹어치우자"라고 하는 시어머니의 말에 서운함이 폭발한다. '먹어치운다'는 그 표현 때문에 더욱 그렇다. 며느리가 뭐 남는 거나 먹어 치우는 그런 존재인가.

 

"너 가사도우미 면접 보러 가니?" 남자친구네 저녁초대를 받아 부모님을 보러 간다는 회사 동료가 밥 먹고 나서 설거지는 자신이 해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는 모습에 다른 동료가 툭 던지는 일침은 사린이 시댁에서 보낸 그 하루를 곱씹어보게 만든다. 사린이가 시어머니 생신날 겪은 하루를 통해 <며느라기>는 결혼 후 며느리들에게 암묵적으로 강요되는 부당한 처우를 끄집어낸다. 그래야 예쁨 받고 칭찬 받을 수 있다는 사회적 통념이 만들어낸 강요들.

 

사실 <며느라기>는 다소 평범하고 담담하게 시월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평범하고 담담하게 느껴지는 건 그 상황에 대해 별다른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 않았을 때 이야기다. 그래서 문제의식을 갖고 들여다보면 시댁에서 벌어진 하루 간의 말 한 마디나 어떤 행동들 하나까지 어떻게 문제들을 만들어내는가를 실감하게 된다. <며느라기>의 담담함이 못내 불편한 현실로 느껴지게 되는 것.(사진:카카오TV)

'페이스아이디', 이효리를 통해 보이는 삶의 공감들

 

사실 처음 카카오TV <페이스아이디>의 콘셉트는 연예인의 사생활을 들여다보는 것이 아닐까 여겨진 면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누군가의 사생활을 보는 것이 호기심을 자극하긴 하지만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우려도.

 

하지만 <페이스아이디>를 통해 이효리의 일상을 들여다보면서 여타의 방송 프로그램이나 무대에서 봤던 이효리와는 사뭇 다른 그의 진짜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유기견 봉사 10년 차에 걸맞게 보호소를 찾아가 땀을 흘려가며 봉사하는 모습과 화보 촬영을 하기 위해 한껏 화려하게 차려입고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겹쳐졌다.

 

오랜 지인인 사진작가 김태은의 집을 찾아가 익숙하게 강아지들과 인사하고 밥을 먹으며 나누는 수다는 연예인으로서의 이효리가 아니라 우리네 모습과 거의 똑같은 일상인 이효리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옛 결혼식 사진과 영상을 다시 찾아내 보며 그 때의 추억에 젖어드는 두 사람은 영상 속 젊었던 자신의 모습을 보며 웃고 그 때를 회고하며 지금과 비교하는 수다를 떤다. 이상순과 이효리가 직접 혼인서약서를 읽고 다짐하는 자유로운 분위기(?)의 결혼식에서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는 자신을 보며 이효리는 새삼스럽게 웃음이 터진다.

 

그 결혼식 영상 속에 있던 반려견 순심이는 그 때와 지금의 모습이 너무나 변했다. 2012년 이효리와 순심이의 이야기가 담긴 에세이집의 사진 속 순심이는 통통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2020년 현재 순심이는 살이 쪽 빠졌다. 누구나 사진을 보면 느끼게 되는 그 때와 지금 사이의 시간의 흔적들을 이효리는 순심이의 모습을 통해 읽어낸다.

 

최근 들어 MBC <놀면 뭐하니?>로 싹쓰리 프로젝트를 마치고 환불원정대까지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이효리는 그 프로그램 속에서 강렬하고 센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린다G와 천옥이라는 부캐를 끄집어내 연예인으로서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모습을 사뭇 즐기는 모습이다.

 

하지만 <페이스아이디>는 그것이 이효리의 일부분일 뿐 그의 전부는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그 바쁜 스케줄 속에서 살이 쪽 빠졌다며 되도록 많이 챙겨먹으려 한다고 말하고, 그 와중에도 반려견들의 보호소장(?)으로서 해야 할 일들을 하고 있다 말한다. 반려견들과 더불어 살아가다 보니 집이 점점 보호소화 되어가고 있다는 것 또한.

 

<페이스아이디>는 특별한 내용을 담지 않아서 특별하다. 이효리의 일상 속 여러 얼굴들을 보여줌으로써 누구나 자신의 일상에서 다양한 얼굴을 갖고 살아간다는 걸 공감시킨다. 그래서 누군가 더 화려해 보여도 사실 친구를 만나고 수다를 떨고 옛 추억에도 잠기고 나이 들어가는 그런 삶은 누구나 비슷비슷하다는 걸 보여준다. 이효리의 진짜 얼굴을 보면서 느끼게 되는 건 그래서 더 이상 호기심이 아니라 커다란 공감과 위로다.(사진:카카오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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