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소식만으로도 제 궤도 찾은 <무도>

 

<무한도전>이 다시 방송을 재개했다. 무려 24주간이다. 그 긴 공백을 채우는 데는 아마도 일종의 예열이 필요했을 게다. 돌아온 <무한도전>은 ‘무한뉴스’ 형식으로 그간의 멤버들의 소식과 예능 판세를 정리하고 앞으로의 각오와 다짐을 새롭게 하는 자리로 채워졌다. 그리고 나머지 반은 파업에 갑작스럽게 돌입하면서 그 결과를 보여주지 못했던 ‘하하 vs 홍철’의 대결을 복기하는 것으로 채웠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한때 ‘스페셜 재방송’으로 채워지며 4%까지 떨어졌던 시청률이 단박에 14%까지 올랐다. 본격적인 ‘도전’을 보여주지 않았음에도 동시간대 최고 시청률을 회복한 것은 이 프로그램에 대한 갈증이 얼마나 깊었던가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물론 이 ‘무한뉴스’와 ‘하하 vs 홍철’의 축약본으로 그 갈증이 채워질 수는 없다. 그래서 어서 본 궤도에 오른 <무한도전>을 바라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본격적인 <무한도전>은 사실상 8월부터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김태호 PD도 트위터를 통해 "오늘은 정말 인사만 드리는 거고~! 다음 주 워밍업 끝내면 8월 방송부터 본격적으로 달릴 수 있을 듯"이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다시 업무에 복귀했다고 해도 제작진이나 출연진이나 시간은 필요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무한뉴스’가 그간의 멤버들의 근황을 일일이 언급한 것은 그 준비과정으로서는 꽤 중요한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무한도전>은 결국 캐릭터쇼가 핵심이다. 그동안 방송을 통해 보이지 않았던 멤버들의 일상사 공개는 그 일상을 담은 리얼한 캐릭터를 먼저 환기시키는 작업인 셈이다.

 

많은 일들이 있었다. 정준하는 결혼을 했고, 정형돈은 쌍둥이 아이를 가졌으며 <고쇼>에 고정으로 자리를 잡았고, 정형돈은 형돈이와 대준이를 통해 개가수로서 주목받게 되었다. 박명수는 <나는 가수다>의 진행을 맡으면서 꽤 많은 비판을 받게 되었고, 길은 <보이스 코리아> 출연으로 가수로서의 이미지를 세웠으며, 유재석과 하하는 <런닝맨>으로 승승장구했다.

 

만일 <무한도전>이 계속 방영되고 있었다면 이 자잘한 일들로 인해 변화하고 발전하는 캐릭터의 모습을 프로그램을 통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무한도전>의 핵심적인 재미는 프로그램 안에서만의 캐릭터가 아니라, 바깥에서도 여전히 이어지고 영향을 받는 캐릭터의 변화다. 실제로 정준하는 결혼한 후의 캐릭터를 고민하고 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특히 정준하가 직접 손으로 작성해와 보여준 그간 예능의 흐름을 낱낱이 보여준 것도 의미가 있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다양해졌고, 파업으로 MBC 예능이 전체적으로 가라앉았다는 것을 확인하며, 심지어 경쟁 프로그램까지 예를 들어 덕담을 해주는 풍경은 <무한도전>이 예능 위에 예능이라는 것을 은연 중에 드러나게 했다. <개그콘서트>의 용감한 녀석들이 <무한도전> 재개를 바라는 멘트를 날렸던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하는 장면은 이 프로그램이 갖고 있는 초 방송사적인 특성을 잘 말해주었다.

 

‘하하 vs 홍철’의 대결을 굳이 복기하고 다음 회에도 한 회를 배분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대결의 속성 상 그간의 이야기 흐름을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런 감흥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이 대결은 묵은 아이템이 되어버린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미 파업 전에 대결을 시작한 마당에 결과를 보여주지 않을 수는 없다. 시청자와 당시 참여했던 관객들에게도 그건 예의가 아니다.

 

어쨌든 <무한도전>이 다시 재개됐다는 것만으로, 또 그간의 소식들을 <무한도전> 특유의 뉴스 형식으로 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대감을 갖게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무한도전>은 프로그램 특성상 제작진도 시간이 필요하고, 그걸 보는 시청자도 일종의 준비기간이 필요한 프로그램이다. 돌아온 <무한도전>에 아쉬움이 남았다면 그것은 그만한 기대감을 갖고 있다는 반증일 게다. 8월부터 시작될 본격적인 <무한도전>의 행보가 기다려진다.

<고쇼>, 예능늦둥이 김응수 돋보인 이유

 

도대체 이런 끼를 어떻게 숨기고 살아왔을까. 이미 <라디오스타>를 통해 가능성을 보였던 김응수였다. <고쇼>에 출연한 그는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특유의 예능감을 보여주었다. '감수성의 제왕'이라는 부제로 이종혁, 이경실, 조권이 함께 출연한 자리에서 김응수는 단연 발군이었다.

 

 

'고쇼'(사진출처:SBS)

사실 '감수성'이라는 키워드로 모아 놓긴 했지만 이들 네 사람은 서로를 어색해했다. 이경실과 조권은 같이 예능을 했던 경험이 있었지만, 예능 경험이 별로 없는 이종혁이나 김응수에게 이들은 낯설 수밖에 없었다. 한동안 침묵하고 있던 이종혁은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침묵을 깨려고 노력한 건 역시 예능이 익숙한 이경실이었다. 관계의 어색함을 풀기 위해서인 듯 그녀는 좀 더 공격적으로 다른 게스트들을 밀어 붙이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약술을 많이 담근다는 김응수가 '약술'을 주지 않겠다고 하자, 이경실이 "인간성 더럽네"라고까지 쏘아부친 것은 사실 조금 불편한 상황을 만들기도 했다. 여기에 대해서 김응수는 약술을 안주겠다는 이유가 대부분 남자들에게만 좋은 것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김응수는 어색함 때문에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이종혁을 '동문서답'의 캐릭터로 만들기도 했다. 질문과 상관없이 엉뚱한 답변을 한다는 것. 이런 캐릭터가 부여되자 이종혁은 더 편안하게 토크를 이어갈 수 있었고 내놓고 자기 자랑하는 모습으로 '자화자찬' 캐릭터를 보여주기도 했다.

 

이종혁과 김응수가 주말 저녁 동시간대에 방영되고 있는 <신사의 품격>과 <닥터 진>을 놓고 자기가 출연하는 드라마가 서로 낫다고 말하는 대목도 흥미로웠다. 김응수가 <신사의 품격>의 제목이 막연하다는 애매한 이유로 몰아붙이고, 여기에 대해 다른 MC들이 "<신사의 품격>에는 장동건이 출연한다"고 말하자, 김응수는 "<닥터 진>에는 내가 출연한다"고 응수하기도 했다.

 

또 그가 들려준 영화의 비하인드 스토리도 큰 웃음을 주었다. <말죽거리 잔혹사>에 이종혁이 캐스팅될 수 있게 감독에게 압력을 넣었다는 얘기나, 복도를 내달리는 신을 찍으며 마신 오토바이 배기가스 때문에 폭삭 늙었다며 임상수 감독에게 "소송을 준비 중"이라고 눙치는 모습은 김응수라는 독특한 성격의 소유자를 주목하게 만들었다.

 

물론 김응수가 '예능늦둥이'로서의 가능성을 보인 것은 단지 그가 엉뚱한 발언이나 '개나리송' 같은 노래로 스튜디오를 발칵 뒤집어놓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공격적인 발언을 하는 듯 보이지만 그것을 캐릭터화 함으로써 상대방을 곤란하게 만들지 않는 점이 보는 이들을 편안하게 해주었다는 점이다. 상대를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기보다는 자신이 스스로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 그러면서도 조권이 특유의 깝으로 춤을 출 때면 진심으로 박수를 쳐주는 그런 포용력이 그를 돋보이게 하는 이유다.

 

초반에 이경실이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강하게 밀어붙이는 모습을 보였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고쇼> '감수성의 제왕'편에서 가장 주목받은 인물은 김응수였다. 그리고 김응수의 때론 괴팍해보이고 때론 엉뚱하며 때론 공격적으로 보이는 모습 속에서도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주는 면모는 이경실 같은 베테랑 개그우먼조차 배워야 할 덕목으로 보인다. 예사롭지 않은 예능늦둥이가 탄생했다.

<1박>, 당장의 웃음보다 중요한 것은

 

'이게 진짜 뭐하는 건지...' <1박2일>이 인제로 떠난 예능인 단합대회에서 코끼리코를 열 번 돌고 바늘에 실을 꿰는 예능올림픽(?)을 이수근이 할 때 깔리는 자막. '예능인 단합대회'라는 기치를 내건 것처럼, <1박2일>은 아예 대놓고 몸 개그로 웃음을 만들어보겠다 작정했다. '이게 뭐하는 건지' 하는 자막에는 웃음을 주기 위해 이런 짓까지 하고 있다는 '노력'의 의미와, 이런 짓까지 해야 한다는 '자조'의 의미가 섞여 있다.

 

 

'1박2일'(사진출처:KBS)

실제로 이런 대놓고 하는 몸 개그가 웃기긴 하다. 뭐 그다지 생각할 필요도 없고 그저 무너지는 출연자들을 보며 웃기만 하면 되니까. 어지럼증에 몸을 비틀대면서도 열심히 바늘을 꿰려는 이수근의 모습이나, 아예 바늘을 찾지 못하는 김종민의 모습은 우습다. 뒤로 삼단 뛰기, 손에 신발을 꿰고 손으로 제기를 차면서 발을 동시에 들어 올리는 예능 제기차기도 모두 재밌다. 하지만 어딘지 부족하다. 한참 웃긴 웃었는데 별로 남지가 않는다.

 

의미를 얘기하는 게 아니다. 그 웃음이 맥락이 되어 그 날을 기억하게 하는 하나의 스토리라인이 없다는 얘기고, 또 그런 스토리 속에서 새롭게 발견되는 캐릭터가 없다는 얘기다. 캐릭터와 스토리가 생기지 않는 게임은 반복되면 질릴 수밖에 없다. 당장의 웃음의 허기는 채울 수 있지만, 앞으로의 지속적인 웃음 텃밭을 만드는 데는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많은 게임의 덫에 걸려버린 리얼 버라이어티쇼들이 바로 당장의 웃음의 허기를 채우려다 결국 무너져 내렸다. '패밀리가 떴다'는 그 형식의 특징 상 게임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었지만, 그 와중에도 시즌1이 꽤 괜찮은 흐름을 가질 수 있었던 건 유재석이라는 발군의 캐릭터 발굴 MC가 있었기 때문이다. 시즌2에 와서 그 중심이 사라져버리자 캐릭터도 보이지 않게 되었고, 그러자 스토리 없는 게임만 반복됐다. 결국 종영되고 말았다.

 

'천하무적 야구단'은 괜찮은 소재의 리얼 버라이어티쇼였다. 초반 캐릭터가 잡혀나가는 단계는 그 어느 예능 프로그램보다 그 뛰어난 성장 가능성을 보였다. 하지만 중반 이후부터 야구경기에 몰두하기 시작하면서 스토리가 점점 사라졌다. 결국 예상보다 일찍 종영되었다. '청춘불패'는 시즌1에서 꽤 괜찮은 호응을 얻어냈다. 한 시골마을에 정착하면서 그 마을 사람들과 어우러져가는 스토리가 보는 이들을 흐뭇하게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즌2에 와서 점점 추락하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아예 시골 이야기는 없고 시골 게임 버라이어티가 되어가는 중이다. 위험한 상황이다. '청춘불패' 시즌2는 재미뿐만 아니라 명분도 잃었다.

 

그렇다면 <1박2일> 시즌1의 게임은 뭐가 달랐을까. 먼저 시즌1은 게임을 하는 이유부터가 자연스러운 스토리 위에 놓여 지기 마련이었다. 그저 자 이제부터 게임합시다, 하고 모여 게임을 하는 인위적인 상황이 아니고, 먼저 게임을 하게 되는 동기를 만들어낸다. 강호동이 나영석 PD와 팽팽한 대결구도를 갖는 것은 이 스토리를 좀 더 쉽게 하기 위함이다. 제작진의 압제(?)에 한번 이겨보자는 연기자들의 의기투합이 이어지고 나면 게임은 그 맥락 위에서 보이게 된다.

 

경기 자체나 결과가 뭐가 중요할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경기의 흐름에 따라 생겨나는 캐릭터와 이야기들이다. 족구 경기를 하나 해도(심지어 그게 저질이라도) 시즌1에서 더 주목도가 높았던 건 단지 복불복이란 설정 때문이 아니다. 그 게임을 하면서 계속 제작진과 연기자들 사이에 쌓여진 스토리가 전제되기 때문에 게임은 하면 할수록 재미가 있을 수 있었다. 이것은 시즌2의 '예능인 단합대회'가 보여준 게임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게임 하나를 하더라도 인위적인 느낌이 아닌 자연스러운 흐름을 타려면 누군가 이를 촉발할 수 있는 구심점이 있어야 한다. 이른바 '악역'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1박2일> 시즌1에서는 강호동이 그 역할을 했고, 또 때로는 나영석 PD가 그 역할을 했다. 강호동이 짜증을 내고, 나영석 PD가 얄미울 정도로 "땡!"을 외칠 때, 게임은 그저 게임이 아니라 그 안에 스토리를 갖게 되었다.

 

결국 <1박2일> 시즌2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이런 악역을 자처할 캐릭터다. 그것이 연기자들이든 아니면 제작진이든 누군가 나서는 사람이 있어야 미션 구조로 되어 있는 이 버라이어티쇼의 이야기 흐름이 자연스러워진다. 이게 없으면 그저 해야 하는 게임을 하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또 게임을 하더라도 게임 자체의 결과에 주목할 것이 아니라 과정에서 끊임없이 캐릭터를 뽑아내는 자세가 요구된다. 예능인 단합대회에서 연기자와 제작진이 한 족구대회가 밋밋했던 것은 이 자세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족구대회에서 가장 주목받은 건 경기를 한 연기자나 제작진보다 오히려 본래 심판 캐릭터(?)를 갖고 있던 조명감독이었다.

 

<1박2일>은 시즌2에 들어와 안타깝게도 많은 외적인 악재를 겪었다. 그러면서 시청률도 뚝 떨어졌다. 최재형 PD는 인터뷰를 통해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고 피력했다. 그간은 뭐든 시도하는데 주저함이 있었지만, 이제는 뭐든 할 수 있지 않느냐는 것. 하지만 뭐든 하는 것이 게임 같은 보다 편한 웃음 만들기가 돼서는 안 된다. <1박2일>만이 가진 여행의 묘미를 제대로 가져올 수 있는 스토리를 발굴해야 되고, 게임에서도 게임 자체보다는 캐릭터에 몰두해야 한다. 당장의 웃음보다 장기적인 관점의 이야기 흐름을 만들어야 <1박2일>은 본래의 궤도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전광렬을 보면 '빛그림'이 보인다

 

이제 누가 누구의 편에 서있는가 하는 것은 이제 놀랄 일도 아니게 되었다. '빛과 그림자'의 캐릭터들은 언제든 어제의 적이었지만 오늘의 동지가 될 준비가 되어있는 모양이다. 이 전형적인 복수극의 근본적인 대립구도는 강기태(안재욱)와 그 가족을 몰락하게 만든 장철환(전광렬)과 조명국(이종원) 그리고 차수혁(이필모)이다. 하지만 이 초반의 관계는 중반을 거쳐 종반에 이르면서 끊임없이 변화했다. 복마전도 이런 복마전이 없는 셈이다.

 

 

'빛과 그림자'(사진출처:MBC)

이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 장철환이다. 장철환은 정장군(염동현)이 실권을 장악하면서 그를 세운 차수혁, 조명국과 대립하게 되고, 새롭게 돌아온 강기태와도 손을 잡는다. 장철환은 그러나 정장군의 신임을 다시 얻어 차수혁을 추락시키고 조명국을 다시 끌어들인다. 이제 다시 그는 강기태와 각을 세운다.

 

이 끝없는 변화의 과정에서 장철환이라는 캐릭터는 조금은 과장되고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인물이 되어버렸다. 특유의 야비한 표정과 말투는 화제가 될 정도. 거의 대부분의 장면에서 욕을 하고 분노를 터트리고 책상 앞에 있는 것은 뭐든 집어던지는 그의 모습은 심지어 묘한 중독성까지 갖게 만든다. 왜 그렇지 않을까. 일관성을 찾기 힘든 이 욕망의 노예가 된 인물이 진중함을 유지하긴 어려울 것이다.

 

한때는 이쪽 편에 있었는데 다른 순간에는 정 반대편에 서는 이런 배신과 변심의 연속은 '빛과 그림자'의 마지막 남은 동력인 모양이다. 처음 장철환과 손을 잡았다가 강기태와 함께 해외 도피 생활을 하고 돌아온 조태수는 강기태와 함께 복수를 꿈꾸다가 다시 장철환과 손을 잡는다. 차수혁은 장철환과 초기에 같은 권력에 있었지만 정장군(염동현)을 새로운 권력의 핵심으로 세우면서 대립하는 관계가 된다. 조명국은 차수혁과 함께 장철환과 대립하는 관계였지만 후에 다시 장철환과 손을 잡는다. 강기태의 적이었던 노상택(안길강) 단장 역시 후에는 강기태의 빛나라 기획에서 일하게 된다.

 

사실 더 자잘한 것들까지 일일이 열거하면 캐릭터들의 변심은 끝이 없다. 양태성(김희원)은 이정혜를 돕고자 강기태와 함께 일을 하는 인물이지만 그가 모시는 이현수가 장철환과의 관계를 희망하자 어쩔 수 없이 변심하는 인물이다. 강기태의 애인인 이정혜(남상미) 역시 강기태가 해외로 도피한 사이 차수혁과 관계를 유지해오다 강기태가 돌아오자 그에게로 다시 돌아간다. 그리고 강기태와 이정혜의 관계 역시 단순하지 않다. 이정혜의 친 아버지인 이현수(독고영재)는 강기태가 아버지처럼 모시는 김풍길(백일섭)과 일본에서 악연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어찌 보면 끝없는 대립구조는 드라마의 추진력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빛과 그림자'의 캐릭터 놀이(?)는 조금 지나치다 싶다. 제 아무리 욕망에 의해 의리도 없는 복마전의 세계라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논리는 있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캐릭터들은 점점 우스꽝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빛과 그림자'의 전광렬이 하는 연기에 대한 열광은 그래서 그 안에 빈약한 스토리와 억지스러운 캐릭터 변화에 대한 일종의 조소가 섞여 있다. 역시 전광렬은 어떤 상황에서든 120%의 연기력으로 그 우스움을 승화해내는 연기자임에 분명하다.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도 어떤 일관성을 만들어내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거꾸로 이 드라마가 전광렬이라는 연기자의 거의 모든 것을 우려내고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이 끝없는 도돌이표 드라마의 한계는 연장 방송의 폐해이기도 하다. 단 몇 회면 끝날 이야기가 수회에 걸쳐 반복되고, 어느 정도 일관성을 가져야 할 캐릭터들은 이리 저리 휘둘린다. 스토리라인도 거의 비슷해서 마치 아이들의 놀이처럼 보일 때가 많다. 적이 나타나서 아군을 괴롭히고 그것을 물리치는 이 단순한 스토리라인의 무한 반복인 셈이다.

 

'빛과 그림자'가 기획단계에서부터 관심을 끌어 모았던 것은 그간 잘 다뤄지지 않았던 우리네 쇼 비즈니스와 시대극을 절묘하게 엮었다는 점 때문이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의 연예계와 그 뒤안길을 따라가면 거기서 발견하는 시대의 어둠. '빛과 그림자'는 이 두 개의 바퀴로 굴러가는 드라마로 기대되었다. 하지만 이제 종반을 향해 치닫는 이 드라마의 실체는 어떤가. 과연 이 드라마는 그 기획의도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을까. 의문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