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폐된 캐릭터들, 신에게 도전하다

 

<신들의 만찬>은 결국 화해를 그리며 종영했지만, 과정에서 많은 문제들을 남겨다. 배우와 작가 사이에 불협화음이 나고 있다는 이야기가 기사화된 것은 그 때문이다. 물론 제작진은 이것이 사실 무근이라 밝혔다. 어느 쪽 이야기가 사실인 지는 당사자들만이 알 수 있다. 하지만 제 아무리 직접적인 갈등이 표면화되지 않았다고 해도, 이러 기사가 나왔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이 드라마 제작에 있어서 어딘가 균열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신들의 만찬'(사진출처:MBC)

아마도 최재하(주상욱)라는 캐릭터의 문제가 가장 클 것이다. 이 드라마에서 최재하는 주인공인 고준영(성유리)과 어린 시절부터 이미 엮어진 캐릭터다. 하지만 진짜 하인주인 고준영이 부모를 잃은 채 다른 삶을 살아오는 동안, 가짜 하인주(서현진)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당연히 최재하는 가짜 하인주와 결혼을 약속한 관계가 된다.

 

하지만 진짜 하인주인 고준영이 나타나면서 문제가 복잡해졌다. 최재하는 고준영에게 마음이 흔들리고 결국 가짜 하인주를 버리게 된다. 이 지점에서 최재하라는 캐릭터는 조강지처를 버린 인물로 낙인찍히게 된다. 게다가 최재하가 고준영이 진짜 하인주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그는 핏줄은 다르지만 어쨌든 한 부모의 자식인 자매를 좋아하게 된 것. 마치 언니를 버리고 동생을 사랑하는 것 같이 되어버린 관계는 최재하를 옴쭉달싹 못하는 캐릭터로 만들어버린다.

 

여기에 김도윤(이상우)이란 캐릭터가 비집고 들어오자 최재하는 모든 걸 잃어버리는 캐릭터가 되어버린다. 고준영에게 김도윤이 과감하게 접근하면서 그 둘 사이는 급물살을 탄다. 물론 운명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 지는 신만이 알 일이지만, <신들의 만찬>의 캐릭터들이 겪는 관계의 변화는 너무 부자연스러운 느낌이 강하다. 이것은 관계가 바뀐 것이 본래 의도대로건, 아니면 갑작스럽게 바뀐 것이건 상관없는 문제다. 그저 작가가 보는 캐릭터 설정 자체가 무리하다는 문제이다.

 

이 의도된 관계 속에서 최재하는 불쌍한 존재가 되었고, 김도윤은 갑자기 끼어든 인물이 되어버렸으며, 고준영은 이리 왔다 저리 갔다 하는 일관성 없는 캐릭터가 되어버렸다. 물론 여기에는 인물이 뒤바뀌었고 그 바뀌어진 인물이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는 복잡한 과정이 작용한 탓이다. 캐릭터가 민폐로 전락하는 과정에는 결국 이런 과도한 애초의 설정 자체가 무리가 있었다는 얘기다.

 

이른바 '출생의 비밀'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그 운명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모습이 때로는 작가의 악취미 같다는 인상을 받는 건, 바로 이 과도한 설정 탓이다. 작가들은 그것이 드라마의 극성을 높이는 것이기 때문에, 시청률을 위해서 선택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현실이기도 하다. 실제로 '출생의 비밀'은 시청률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캐릭터들은 힘들어도 그 상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번 <신들의 만찬>에서 일어나는 불협화음(그것이 가시화되었건 그렇지 않건)은 그런 점에서 대단히 흥미로운 사건으로 보인다. 물론 이런 일이 처음 있었던 일은 아니다. 이미 배우와 작가 사이의 갈등이 표면화되어 사건으로 번진 사례는 여러 번 있었다. 이것은 신으로 존재하는 작가들의 설정에 의해 이리저리 휘둘리던 캐릭터들이 일으킨 반란처럼 보인다. 결국 민폐나 불쌍한 존재가 되어버린 캐릭터들은, 그것을 연기하는 연기자에게 그대로 영향을 미친다. 때론 캐릭터 논란은 연기력 논란으로 전화하기도 한다.

 

<신들의 만찬>의 캐릭터 논란은 그런 점에서 작가가 작품을 대할 때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잘 드러내준다. 캐릭터는 물론 작가가 창출한 존재지만 그렇다고 마음대로 휘둘릴 수 있는 그런 허수아비는 아니다. 신들이 벌이는 만찬도 어느 정도다. 그것이 과도하거나 제 멋대로일 때 캐릭터들은 반란을 일으킬 수 있다.

시트콤, 굳이 심각해질 필요 있을까

 

<스탠바이>는 확실히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만큼 화제가 되고 있지는 않다. 시청률에 있어서도 5% 정도에 머물러 있다. 역시 시트콤에 있어서는 김병욱 PD가 갖는 존재감이 그만큼 크다는 반증이다. <하이킥> 시리즈가 시트콤들 중에서 가장 도드라진 지점을 차지하는 이유는 그것이 좀 더 현실을 반영한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하이킥>은 그 자체가 낮은 자들이 높은 자들에게 날리는 것이니까.

 

 

'스탠바이'(사진출처:MBC)

그래서 <하이킥> 시리즈를 볼 때 우리는 조금 진지해진다. 캐릭터가 표상하는 현실 반영적인 지점을 찾아내려 하고, 그들 사이의 권력 관계와 그 변화를 예민하게 바라본다. 또 이야기 소재에 있어서도 그 스토리가 갖는 풍자적 의미 같은 것을 찾아내려 한다. 당연히 이런 지점들은 <하이킥>이라는 시트콤에 화제성을 높이는 요소다.

 

하지만 때로는 과도한 의미화가 시트콤이 갖는 발랄함을 자칫 무겁게 만들 수 있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이 후반부로 가면서 동력을 잃었던 것은 그 무거움 때문이었다. 이것은 어찌 보면 현실을 반영한다는 점이 갖는 양날의 검이라고 할 수 있다. 코미디와 해피엔딩을 기대하는 시청자들에게 현실의 무게는 시트콤을 블랙코미디와 심지어 비극으로 몰아가기도 한다(그것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다만 과도할 때 시트콤의 본질을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스탠바이>가 가진 <하이킥>보다 나은 지점들이 보인다. <스탠바이>는 전형적인 시트콤에 충실한 작품이다. 긴 서사보다는 말 그대로의 상황(시추에이션)에 더 집중하고, 아이디어만큼 캐릭터에 신경을 쓰는 시트콤. 확실히 <스탠바이>의 최대 장점은 견고한 캐릭터들에 있다.

 

능력은 조금 떨어지지만 특유의 천사표 마음을 갖고 있는 류진행(류진)은 과도한 결벽증이라는 캐릭터로 우스운 상황을 만들어낸다. 사소한 흐트러짐조차 가만 두고 보지 못하는 그 성격은 특별한 사건이 개입되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습관적으로 반복되어 드러나면서 서서히 웃음의 강도를 높여간다. 류기우(이기우)와 고교시절 같은 학교 출신이었지만 그것을 숨기고 있는 하석진(하석진)은 극단적인 개인주의의 캐릭터이고, 류진행을 짝사랑하는 털털한 성격의 김수현(김수현)은 겨털 에피소드처럼 한없이 망가지면서도 귀여운 면모를 잃지 않는 매력의 소유자다.

 

갑자기 가족을 잃고 류진행에 의해 같이 살게된 시완(임시완)은 뭐든 잘 하는 캐릭터로, 뭐든 잘하는 게 없는 김경표(고경표)와 비교되는 캐릭터이고, 진행의 아버지인 류정우(최정우)는 특유의 가부장적인 아버지 캐릭터를 극단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웃음을 준다. 이밖에도 방송사의 간판 아나운서인 박준금(박준금)이나 노총각 작가인 김연우(김연우), 또 류정우가 운영하는 스파게티 가게의 종업원인 쌈디(사이먼디), 그리고 정육점하는 아버지를 둔 덕(?)에 고기로 남자친구를 유혹하는 여고생 김예원(김예원)까지 소소한 캐릭터들조차 반짝반짝 빛나는 면모가 있다.

 

아무래도 캐릭터에 집중하고 있고, 그 반복적인 행동과 말투를 과장되게 보여주기 때문에 <스탠바이>는 캐릭터들의 유행어가 유독 많은 편이다. 박준금은 입만 열면 "○○가 장난이야?"를 반복하고, 김연우는 "저는 왜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요"하는 말을 습관적으로 하면서 뭐든 다 튀어나는 그 요술 가방(?)에서 기상천외한 것들을 꺼내주는 것으로 캐릭터가 구축되어 있다. 하석진은 직장에서의 일로 화가 나면 차에 앉아서 "나랏말쌈이 뒹국에 달아..."를 연발하는 습관이 있고, 류진행은 특별히 반복하는 대사는 없지만 늘 억울한 얼굴로 굴욕을 당하는 것으로 캐릭터가 만들어지고 있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이 늘 불안하게 여겨졌던 것은 전작이었던 <지붕 뚫고 하이킥>의 새드 엔딩의 잔상이 강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후반부로 갈수록 과연 누가 비극적인 엔딩을 맞이할 것인가에 대한 불안감도 높아졌었다(물론 이건 기우에 불과했지만). 그런 점에서 전형적인 시트콤의 발랄함을 유지함으로써 심적 부담감을 주지 않는다는 점은 <스탠바이>의 가장 큰 장점일 것이다. 무엇보다 이렇게 스탠바이 된 캐릭터들은 차츰 시트콤이 진행되면서 점점 힘을 발할 가능성이 높다.

 

<스탠바이>는 물론 그 <하이킥>시리즈가 가졌던 블랙코미디적인 요소 즉 현실을 떠올리게 하는 소재들이 많지 않다. 그래서 화제성이 조금 떨어지는 게 있고 시청률도 낮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바라보면 <스탠바이>는 그 부담 없는 시트콤이라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 될 수도 있다. 다만 <스탠바이>는 이제 이미 충분히 날린 잔 펀치들만이 아니라, 묵직한 한 방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 한 방이 있다면 이 준비된 시트콤은 어쩌면 좀 더 대중들의 편안한 저녁의 부담 없는 웃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브레인', 심지어 컬트적인 문제작

'브레인'(사진출처:KBS)

"이건 우리의 마음이거든요. 사람이 마음을 만질 수 있다는 게, 신경외과 의사가 정말 멋지지 않습니까. 이토록 경이로운 뇌를 만져온 인생을 바친 저는 여한이 없습니다. 뇌를 통해서 사람을 이해했고 연민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브레인'의 뇌의학자 김상철(정진영) 교수의 이 진술은 마치 작가의 진술처럼 들린다. '브레인'의 작가는 드라마 속 캐릭터들의 뇌를 들여다보고 만짐으로써 그들을 이해하고 연민하는 지금까지 어떤 드라마도 시도하지 않은 방식으로 이 드라마를 이끌어왔기 때문이다.

'브레인'은 확실히 지금까지의 어떤 드라마와도 다르고, 특히 그 어떤 의학드라마와도 차별화되어 있다. 환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의사의 이야기를 다루는 이 드라마는 그러나 흥미롭게도 그 의사를 환자처럼 다룬다. 이강훈(신하균)은 어린 시절 뇌수술을 하다가 갑자기 죽음을 맞게 된 아버지의 기억을 깊은 트라우마로 가진 인물로, 오로지 실력 하나로 세상과 대적하려 한다. 실력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심지어 인물을 유아적으로까지 비춰지게 만든다. 그는 사랑에 있어서 어린아이 같고, 함께 사는 삶에서 오로지 맨 꼭대기에만 서려 한다. 자신의 결점이나 실수를 용납하지 않고 인정하지 않으려는 완벽주의. 그는 어쩌면 현대인들이 겪고 있는 이런 병을 앓고 있다.

이강훈의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만든 김상철 교수는 그 죄책감에 기억을 지우고 성인군자처럼 살아가지만, 그 이면에는 그 상처가 만들어내는 괴물 같은 욕망이 꿈틀댄다. 누르고 눌렀던 기억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그것은 뇌에 종양으로 자라난다. 그러자 김상철 교수는 마치 에일리언이 침투한 사람처럼 종양이 자란 뇌의 조종을 받게 된다. 난폭해지고 성격이 급변하는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정상하고 비정상의 차이가 뭐죠? 정상이라... 포장하고 사는 거겠지요. 저는 포장지가 다 뜯어져버렸나 봅니다." 그는 포장을 뚫고 나온 죄책감의 기억에 시달리는 환자다.

이처럼 '브레인'의 의사들은 저마다 뇌의 병을 앓고 있다.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만든 서준석(조동혁) 교수는 그 일 때문에 수술실에 심지어 발을 들이지 못하는 공황장애를 겪게 되고, 심지어 환자에 대한 배려가 지나칠 정도로 강한 윤지혜(최정원)가 이강훈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그 상황 역시 뇌 사진을 통해서다. 어쩌면 '브레인'에서는 사랑이라는 감정 또한 하나의 뇌의 반응으로 읽고 있는 지도 모른다. 마음은 뇌의 조종을 받고, 또 뇌는 마음의 영향을 받는다. 그러니 이 드라마의 캐릭터들은 우리가 흔히 보던 드라마의 전형적인 캐릭터들과는 전혀 다를 수밖에 없다.

드라마의 캐릭터란 일관성을 갖게 마련이다. 하지만 '브레인'에서 탐구하듯 열어 보이는 캐릭터들의 뇌는 이 캐릭터의 일관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연약한 것인가를 잘 말해준다. 뇌의 작은 부분 하나만 건드려도 캐릭터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하기도 하니까. 따라서 '브레인'의 캐릭터들은 그 성격이 급변하고 그 변화의 폭도 대단히 넓다. 이것은 만일 '브레인'이 캐릭터들의 뇌를 진단하고 열어 보이지 않았다면 설득될 수 없는 캐릭터일 것이다. 하지만 뇌의 변화까지 근거로 제시하는 '브레인'의 인물들은 사실상 전날 성인군자였다가 다음날 폭군으로 변하는 인물도 수긍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이 부분은 이 드라마가 가진 때로는 기괴하게까지 여겨지고, 심지어 컬트적이라고 생각되는 상황들을 가능하게 하는 지점이다. 이강훈을 포함해 김상철, 서준석, 고재학(이성민) 같은 인물들이 서로 욕망을 위해 연합하고 대립하지만 그 누가 선이고 악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된 것은 '브레인'의 이 캐릭터를 바라보는 독특한 시점 때문이다. '브레인'에는 선악이 없다. 다만 저마다 (크고 작건 간에)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인물들이 있을 뿐이다.

보통의 드라마들이 대미에 와서 서로 행동이나 대사를 통해 부딪치는 것으로 그 갈등을 해소시킨다면, 이 드라마는 그래서 이 모든 인물들을 수술실로 불러들인다. 단지 겉으로 드러나는 성격적인 문제가 아니라 뇌라는 문제까지 동시에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상철 교수의 뇌 종양 제거수술에 이강훈이 메스를 들고, 서준석이 보조를 하는 건 이 모든 갈등을 단번에 풀어내는 효과적인 설정이다. 이 수술 장면으로 김상철 교수는 각성수술을 통해 자기의 뇌를 바라보고 쓰다듬는다(이 얼마나 컬트적인 장면인가!). 마치 자신의 아픈 과거를 담은 뇌를 인정한다는 듯이. 이강훈은 늘 자신의 앞에 있다고 생각하는 김상철 교수의 뇌수술을 하는 것으로 그 콤플렉스를 넘어선다. 물론 서준석은 공황장애를 이겨낸다.

스승이 제자를 위해 자신의 뇌를 수술하게 하는 이 장면은 어찌 보면 '허준'에서 스승인 유의태가 자신의 몸을 제자에게 맡기는 장면처럼 감동적으로 그려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브레인'은 이미 마음을 조종하는 뇌를 본 마당에 이런 낯간지러운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 "우리나라 최고 뇌 의학자의 뇌수술 아무나 하겠습니까? 교수님의 뇌에 메스를 댄다는 것 자체가 교수님의 뒤를 잇는다는 것인데. 제가 이 좋은 기회를 놓칠 리 있겠습니까?" 이강훈은 늘 그렇듯 도전적으로 김상철교수에게 이렇게 말하고, 김상철 교수는 "끝까지 나를 마지막까지 이용할 생각이구만."하고 답한다. 이것은 분명 애정의 표현이지만, 뇌를 다루는 그들에게 애정표현이란 이렇게 쿨한 면모가 있다.

이것은 이강훈과 윤지혜의 멜로에서도 드러난다. 이강훈은 아픈 윤지혜를 찾아가 그녀를 보살펴주지만, 깨어난 그녀 앞에서 어린 아이처럼 마음을 숨긴 채 버럭 댄다. 그런 이강훈에게 윤지혜는 뜬금없이 노래를 불러달라고 한다. 어찌 보면 어색하기 이를 데 없고, 거기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코미디가 될 수도 있지만, 이강훈이 실제로 노래를 읊조리듯 부르는 순간 상황은 반전된다. 그 장면에서 왜 우리는 마음 한 구석이 뭉클해졌던 걸까. 그것은 이강훈이라는 마치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면서 어떻게 사랑표현을 해야할 지 몰라 투덜대기만 하던 인물이 그 아픔을 넘어서 자기 마음을 표현하는 치유의 장면처럼 읽히기 때문이다. '브레인'에서는 멜로조차 하나의 치유로 그려진다.

'브레인'은 문제작이다. 여러 드라마들이 지금껏 캐릭터를 그려내면서 그 일관성이니 전형성이니 또 성장이니를 운운했다면, 이 드라마는 캐릭터를 뇌 차원으로까지 확장해 그 고전적인(?) 캐릭터 작법을 무너뜨린다. 이 얘기는 캐릭터로 인해 구축되는 장르들 예를 들면 멜로나 스릴러, 미스테리 같은 장르들 역시 그저 하나의 관습적인 약속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준다. 때론 멜로처럼 보이다가 때론 공포처럼 읽혀지는 '브레인'이 가능한 것은 그 캐릭터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심지어 사랑의 차원까지 뇌를 통해 만질 수 있는 어떤 것으로 그려낸 '브레인'은 그래서 기존 드라마들 바깥에 세워진 새로운 세계를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물론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이 이런 캐릭터를 가능하게 해준 신하균이나 정진영 같은 발군의 연기자들일 것이다. 그들이 있어 '브레인'이라는 놀라운 드라마는 가능했다.

 연장된 '몽땅 내 사랑', 그 한계와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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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땅 내 사랑'(사진출처:MBC)

'몽땅 내 사랑'이 애초 120회에서 200회로 연장됐다. 시트콤으로 인기를 끌었던 '거침없이 하이킥'과 '지붕 뚫고 하이킥'이 각각 167회, 126회로 끝난 것에 비하면, 그다지 시청률에서도 반응 면에서도 미지근한 '몽땅 내 사랑'이 이렇게 연장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다른 대안을 새로 만드는 것보다, 그래도 10% 초반대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몽땅 내 사랑'을 발전시키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분명한 한계를 보이고 있는 '몽땅 내 사랑'에 어떤 가능성은 있는 것일까.

'몽땅 내 사랑'이 가진 가장 큰 한계는 좀 더 과감한 캐릭터쇼를 선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트콤이 드라마와 다른 점은 캐릭터에 대한 과장의 차이일 것이다. 드라마에서 과장된 캐릭터는 개연성을 떨어뜨려 몰입을 방해하지만, 시트콤은 정반대다. 한 캐릭터를 과감하게 과장시키면 그 자체로 큰 웃음을 만들어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수백 회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캐릭터에 대한 집중도도 높일 수 있다. 또 캐릭터에 집중하지 못하고 전체적인 스토리의 흐름에 끌려가다 보면 시트콤이 일일드라마처럼 밋밋해지는 상황을 맞이하기도 한다.

'몽땅 내 사랑'은 애초에 콘셉트로 '막장 시트콤'을 가져왔다. 그 기대감은 컸다. 왜냐하면 이 막장 설정의 시트콤은 패러디 형식으로 비틀어주기만 하면 그 자체로 큰 웃음을 유발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예를 들어 '출생의 비밀' 같은 막장드라마의 전형적인 코드들을 가져와 그 비현실성을 오히려 드러낸다면 그것은 웃음을 넘어 어떤 카타르시스까지 유발할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몽땅 내 사랑'은 '출생의 비밀'을 거의 막장 드라마들이 사용하는 그대로 활용하고 있다.

김원장(김갑수)이 애타게 찾는 잃어버린 딸이 윤승아라는 걸 알게 된 박미선과 황금지(가인)가 이를 숨기려고 안간힘을 쓰는 장면들이 그렇다. 물론 그 자체 구성은 과장된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어딘지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 좀 상황 설정에 있어서 과감해질 필요가 있다. 즉 '지붕 뚫고 하이킥'은 어떤 상황을 그릴 때, 거의 끝까지 밀어붙이는 면모를 보인다. 학교에서 몰래 데이트를 하는 이순재가 학생들의 눈을 피해 달아나는 장면에서 2층 창문을 뛰어내리고 담벼락을 넘는 장면은 그 과장 때문에 웃음과 함께 캐릭터가 살아난다.

다행스러운 것은 '몽땅 내 사랑'에도 가능성 있는 캐릭터들이 있다는 점이다. 그 대표적인 캐릭터가 윤승아의 할머니 김영옥과 김원장의 비서인 김집사(정호빈)다. 김영옥이 윤두준의 발 냄새를 없애기 위해 마치 대장금처럼 각종 비전(?)을 펼치는 식으로 김영옥을 달인으로 표현하는 에피소드들은 오랜만에 '몽땅 내 사랑'을 시트콤답게 만들어주기도 했다. 김집사는 '욕망의 불똥' 하나 만으로도 충분히 캐릭터화 되어 있는 인물이다. 윤두준도 가능성이 있는 캐릭터다. 금지와 헤어지고 아무렇지도 않다며 끊임없는 먹는 장면은 우스우면서도 찡한 구석이 있다.

'몽땅 내 사랑'의 스토리가 나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화이트 데이에 옥엽(조권)이 좋아하는 승아와 함께 사탕배달을 하면서 은근슬쩍 자기 마음을 고백하는 스토리는 꽤 괜찮다. 하지만 '몽땅 내 사랑'은 시트콤이다. 먼저 웃음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충분히 캐릭터를 통해 웃음을 준 이후에는 사실 멜로를 하든 심지어 비극을 그려도 상관없지만 그 본연의 웃음을 먼저 주지 못한다면 자칫 어설픈 드라마로 보일 위험성이 있다. 스토리를 끝까지 밀어 붙이고, 그 속에서 캐릭터를 세운다면 '몽땅 내 사랑'도 시트콤으로서 주목받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어차피 200회 연장을 하게 되었다면 그만한 합당한 근거를 '몽땅 내 사랑'이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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