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순수함과 솔직함이 차별점

“오늘 완전히 드라마 찍었어요.” ‘커피 프린스 1호점’의 고은찬(윤은혜)이 최한결(공유)에게 웃으며 건네는 말이다. 그런데 상황을 보면 그게 웃을만한 일은 아니다. 둘이 사귄다는 사실을 알고 찾아온 할머니가 돈 때문이냐며 헤어질 것을 강요하는 장면을 두고 한 말이기 때문이다.

고은찬의 말처럼 이런 장면은 드라마에서 흔히 등장하는 장치다. 그런데 ‘커피 프린스 1호점’의 주인공들은 보통의 드라마가 하듯 반응하지 않는다. “촌스럽게 왜 그래?” 할머니의 반응에 한결이 이렇게 말하듯, 그런 반응은 적어도 ‘커피 프린스 1호점’에서는 ‘촌스러운’ 것이다.

“우리 결혼할까? 물론 결혼 안 하고 그냥 살 수도 있지만 아이가 3일은 우리 집, 3일은 당신 집 이렇게 사는 건 이상하잖아.” 최한성(이선균)이 아기가 생긴 한유주(채정안)에게 하는 말이다. 결혼하지 않고 아기가 생긴 그들이지만 상황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적어도 그들에게 결혼이란 껍데기 정도로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커피 프린스 1호점’이 보여주는 연애와 사랑의 방식은 우리가 드라마를 통해 익히 보아왔던 그것과는 다르다. 그것은 이미 고은찬이 남장여자로 등장하고 그녀가 “남자라고 해도 너를 사랑하겠다”고 최한결이 얘기하는 부분에서 극적으로 드러난 바 있다. 이들의 사랑법에는 관계 자체를 구속하는 사회적이고 관습적인 어떠한 틀도 존재하지 않는다. 굳이 그 사랑법을 정의하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음가는 대로’.

이것은 이 드라마와 여타의 드라마를 구분 짓는 가장 큰 차별점이다. 청춘 멜로 드라마든 트렌디 드라마든 거기 등장하는 남녀들의 사랑과 연애에는 덕지덕지 붙어있는 것들이 많다. 그것은 때론 나이가 되기도 하고, 때론 돈이 되기도 하며 좀 구질구질한 것이지만 심지어 출신성분이 거론되기도 한다. 이것은 어찌 보면 현실이기 때문에 아무리 세련된 드라마라 해도 피해가기 어려운 구석이 있다.

‘커피 프린스 1호점’ 역시 캐릭터가 가진 설정만으로 보면 여타의 드라마들이 갖고 있던 상투성을 거의 다 갖추고 있는 게 사실이다. 대기업 사장 아들과 가난하지만 씩씩한 여성의 로맨스, 아들이 가진 숨겨진 과거, 삼각 사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인물구도 모두 익숙한 것들이다. 그런데도 왜 이 드라마는 다른 드라마들과 다르게 느껴지는 걸까. 그것은 이 트렌디한 설정을 다루는 방식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대기업 사장 아들과 가난하지만 씩씩한 여성이란 설정이 틀에 박힌 신데렐라 이야기로 가지 않는 것은 이들의 사랑 속에 돈에 대한 냄새가 애초부터 배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최한결이 외제차를 끌고 다녀도 그건 그냥 그런 것일 뿐, 외제차가 가진 부를 상징하진 않는다. 그것은 최한결과 최한성의 집이나 그들이 누리는 생활 방식에서도 마찬가지다. 거기에는 과시라는 측면이 없고 그냥 좋은 것이라는 솔직함만 존재한다.

최한결의 숨겨진 과거도 이 드라마에서는 특유의 상큼함으로 처리된다. 친아버지를 만났지만 그는 자신이 그걸 알고 있다는 사실을 끝내 친아버지에게 밝히지 않는다. 굳이 그걸 밝히는 것이 무슨 필요가 있을까. 좋은 감정으로 헤어지고 또 만남을 기약하면 그뿐이다. 게다가 그 사실을 알았다고 해서 길러준 부모와의 관계에 어떤 변화가 생긴 것도 아니다. 이 드라마는 이렇게 기존 드라마가 관행처럼 사용한 관계의 틀을 벗어남으로써 전혀 다른 쿨함을 확보한다.

네 캐릭터들이 엮어내는 사각관계 역시 멜로 드라마들이 상투적으로 써왔던 질투와 질시로 이어지는 대결구도를 벗어난다. 그들에게 사랑은 진실된 감정이고 그 감정의 흐름에 정직한 행동은 용서받지 못할 행동이 되지 않는다. 최한성의 순간적인 감정의 흔들림은 결과적으로 자신 속에 오래 전부터 있어왔던 한유주에 대한 사랑을 극적으로 깨닫게 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이 모든 차별점을 만들어내는 중심에는 ‘마음이 말하는 것에 솔직한 젊은 감성’ 이 있다. 거기에는 트렌디 드라마가 갖는 돈도 지위도 직업도 쿨하게 넘어서게 만드는 그 무엇이 있다. 그러나 이렇게 예쁜 그들의 사랑법이 환타지로 느껴지는 것은 그만큼 현실이 더 계산적이기 때문일까. 좋아하면 좋아한다 말하고,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며, 기쁘면 기쁘다고 말하는 이들의 ‘마음가는 대로의 사랑법’은 그래서 문득 문득 잊었던 청춘의 순수한 사랑의 열정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 무엇도 감히 사랑과 연애를 구속하지 못했던 그 순수했던 때 말이다.

드라마 속에 꼭 있는 화제의 장면들

종영한 ‘쩐의 전쟁’의 한 장면. 갑자기 사채업소인 동포사가 춤바람에 휘말린다. 금나라(박신양)와 서주희(박진희)가 음악에 맞춰 스텝을 밟으며 춤을 춘다. 단지 발랄하고 경쾌한 분위기만 드라마 상의 감정라인과 조우할 뿐 스토리와는 그다지 상관없는 장면이다. 하지만 이 몇 장면이 가진 효과는 커서, 다음날 인터넷에는 어김없이 이 장면들에 대한 이야기가 네티즌들 사이에 화젯거리가 된다.

‘커피 프린스 1호점’의 한 장면. MT를 간 카페 직원들과 사장이 함께 냇가에서 물놀이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이 장면은 그대로 UCC로 변모하면서 ‘완소한결’, ‘어라라은찬’ 같은 문구들이 달라붙는다. 극중에서 은새(한예인)가 이 UCC를 올려 카페가 인기를 끌게 된 것처럼, 드라마가 방영된 후, 인터넷은 이 UCC 동영상이 화제가 되었다.

드라마와 인터넷은 언제부턴가 긴밀한 관계를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그저 방영된 드라마에 대한 평가에서 그치지 않는다. 드라마에서 나온 이야기는 이제 인터넷으로 오면서 새롭게 재창조되기도 한다. 장면들이 재편집되거나 서로 다른 드라마들이 엮어져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패러디는 물론이고, 캐릭터에 간략한 특징을 붙여 만드는 사자캐릭터 창조는 이제 일상화되었다.

이러한 인터넷의 화제성을 가장 잘 활용한 드라마가 ‘거침없이 하이킥’이다. 거의 모든 캐릭터에 사자캐릭터가 붙은 이 시트콤은 그 날 밤 어떤 장면을 연출했는가가 어김없이 다음날 화젯거리가 되었다. 이순재가 야동을 보고 악플을 다는 장면이 네티즌들에게 큰 호응과 반응을 얻어낸 것은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이 시트콤이 처음부터 인터넷의 화제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던 결과이다.

화제를 일으키는 방법도 가지가지. 그 중 여성 캐릭터들의 주먹다짐 역시 화제를 끌어 모으는 한 장치가 되었다. ‘내 남자의 여자’의 화영(김희애)을 업어치는 은수(하유미)의 장면은 오래도록 네티즌들 수다의 소재가 되어주었다. 최근 ‘강남엄마 따라잡기’에서 강북엄마 현민주(하희라)와 강남엄마 윤수미(임성민)가 한바탕 붙는 장면에서 ‘내 남자의 여자’의 주먹다짐을 연상하게 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과거라면 그저 심한 말다툼 정도로 처리되었을 이런 장면들은 이제 머리끄댕이 제대로 잡아 당겨주고 주먹과 발길질이 오가는 막싸움으로 변모했다. 그만큼 화제성이 충분한 장면이기 때문이다.

이미 화제가 되었던 장면을 다시 끌어다 쓰는 경우도 있다. 최근 종영한 ‘불량커플’의 준수(유건)가 한영(최정윤)에게 피아노를 치며 프로포즈하는 장면은 ‘파리의 연인’에서 박신양이 했던 장면을 그대로 패러디한 것. 창피해 자리를 뜨려하는 한영에게 “어이 거기, 핑크는 자리에 좀 앉지”라고 외치는 장면에 이은 유리상자의 ‘사랑해도 될까요’ 열창은 화제가 된 시퀀스 전체를 가져와도 여전히 화제가 된다는 것을 보여준 경우이다.

드라마가 네티즌 혹은 시청자를 의식한다는 것은 그만큼 드라마들의 홍보경쟁도 치열해졌다는 것을 말해준다. 네티즌들의 입 소문은 이제 드라마를 소위 띄우는데 있어서 절대적인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팬 서비스 같은 이런 장면들의 연출은 드라마의 흐름과 잘 맞물리는 한 그다지 나쁠 게 없다. 하지만 때론 화제가 공감으로 가지 않고 비호감으로 가는 경우도 생긴다. 과도한 장면들의 남발이 그것이다. 드라마 진행과 상관없는 과도한 노출이나, 아직 충분히 무르익지도 않은 관계의 남녀가 갑자기 키스신을 보여준다든지 하는 것들은 공감보다는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가장 좋은 것은 드라마 자체가 갖는 이야기와 화제가 될만한 장면이 빈틈없이 딱 맞는 경우이다. 특별히 연출할 것도 없이 그런 장면들은 고스란히 화제가 되고 후에도 명장면으로 남는다. 그 대표적인 예가 ‘커피 프린스 1호점’의 연타석 홈런을 날린 은찬(윤은혜)과 한결(공유)의 포옹신에 이은 키스신이나, ‘쩐의 전쟁’에서 금나라와 서주희가 보여준 오이키스신 같은 것들이다. 저 드라마에 흔하디 흔한 포옹과 키스 장면이 이다지도 가슴 떨리고 오랜 잔향을 남기는 것은 그 이면에 있는 수많은 감정들이 그 한 장면에서 느껴지기 때문이다. 화제를 만들어내는 장면의 연출보다는 장면의 극적 상황 자체가 화제가 될 때, 시청자들은 깊은 공감 속에 기꺼이 화제에 동참할 것이다.

윤은혜, 이준기, 수애, 그들의 변신에 박수를

연기자가 연기 변신을 하는 것은 자기 존재에 대한 증명인 셈. 하지만 이게 그리 쉽지 않은 것은 대중들이 바라는 이미지와 변신한 이미지의 간극이 클 경우이다. 너무나 강렬한 이미지로 고정되는 것은 그만큼 인기가 있다는 걸 의미하지만, 동시에 연기자들에게 그것은 족쇄로도 작용한다.

한번 가수출신 연기자라는 연기논란에 휘말린 이미지를 가지면 하는 역마다 연기논란을 일으키고, 한번 미소년 이미지로 강한 인상을 남기면 터프한 연기가 잘 먹히지 않으며, 청순 가련 이미지로 고정되면 명랑한 역을 맡기가 어려워지는 것이 그것이다.

하지만 시대가 자신이 가졌던 이미지와 다른 변화된 캐릭터를 요구한다면 어쩔 것인가. 그저 자신의 이미지가 먹힐 시대가 또다시 오기를 기다리기만 할 것인가. 아니면 과감히 연기변신을 시도할 것인가. 이런 면에서 보면 지금 윤은혜, 이준기, 수애가 몸부림치는 연기변신은 이들만의 과제가 아니다. 지금 연기자들 앞에 펼쳐진 시험대. 그것은 변신이다.

여자는 울고 남자는 인상쓰던 시대는 지나갔다. 청순가련형 여성 이미지와 마초적이기만 한 카리스마의 남성 이미지는 이제 더 이상 소비되지 않는 시대다. 언제부턴가 TV 속의 여성들은 점점 강인한 인상을 보이기 시작했고, 눈물을 흘리더라도 질척할 정도로 드러내지 않게 됐다. 반면 남성들은 거꾸로다. 오히려 눈물을 흘리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이미지가 더 많이 소비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대조영’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카리스마를 가진 캐릭터에서도 그렇게 다르지 않다.

이것은 IMF 이후 급격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남성들과, 감성적인 사회가 요구한 여성인력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사회진출이 활발해진 여성들로 전도된 남녀 관계와 무관하지 않다. 무너진 욕망을 대체하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캐릭터들이 포진한 남성 타깃 드라마(사극이나 전문직 장르 드라마 같은)와, 종속적이지 않고 독립적인 연애방식으로 상큼 발랄한 관계를 꿈꾸는 여성 타깃 드라마(청춘 멜로 드라마)가 공존하는 상황이다.

이 변화된 상황 속에서 고정된 이미지를 갖고 있는 연기자들은 변신이 불가피해졌다. 윤은혜는 ‘궁’과 ‘포도밭 그 사나이’를 통해 명랑 소녀의 이미지를 굳혔지만 늘 따라다니는 꼬리표는 ‘가수 출신 연기자’의 연기논란이었다. 획기적인 변신이 아니면 넘기 어려운 이 꼬리표를 떼낸 것은 명랑 소녀에서 한발 더 나아간 남장여자라는 캐릭터이다. 여자를 포기하자 윤은혜는 새로운 이미지의 창출이 가능해진 것. 중요한 것은 그 남장여자라는 캐릭터가 지금 시대의 새로운 트렌드라는 점이다. 보이시한 여성이 인기가 있는 것은 수직적인 남성과 여성의 관계가 마치 남성과 남성 같은 우정의 관계로까지 수평적으로 발전되었다는 걸 보여주는 징후이다.

‘9회말 2아웃’이 보여준 수애의 변신은 이제 더 이상 울지 않는 여성 캐릭터 시대에 가장 잘 우는 연기를 소화해내는 연기자가 어떻게 생존해야 하는가를 말해주는 경우이다. ‘해신’에서부터 주목받은 수애의 연기는 이병헌과 호흡을 맞춘 ‘그 해 여름’을 통해 우는 연기자의 이미지로 굳어져갔다. 그런 수애가 아무렇게나 헝클어진 머리에, 술 먹고 주사를 부리는 모습의 홍난희 역할을 맡은 것은 연기자로서의 대단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한편 ‘왕의 남자’를 통해 여성적인 이미지를 갖게 된 이준기의 경우는 거꾸로 남성적인 카리스마 변신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상황이었다. ‘개와 늑대의 시간’에서 보여준 그의 연기변신은 일단 성공적으로 보여진다. 살해된 부모의 복수극이라는 점도 연기자 이준기의 입장에서 보면 연기변신에 힘을 더해주는 요소이다. 새롭게 맞닥뜨린 원수 앞에서 분노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부들부들 떠는 연기는 보는 이의 모골을 송연하게 만들 정도의 연기변신이었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물론 고정적 이미지를 가진 연기자들이 모두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연기자들에게 있어 고정적인 이미지는 양날의 칼과도 같다. 좋은 작품에서의 호연을 통해 얻어진 이미지는 고정화될 위험성을 늘 내포하고 있다. 여기에 그 이미지를 팔려고 하는 기획사와 시장이 만나면 자칫 그 이미지에 눌러앉게 되어버리는 경우도 생긴다. 연기자들이 연예인이 아닌 예술가로 느껴지는 순간은 그 속에서 늘 자신을 다잡고 새로운 연기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일 때이다. 그들의 도전에 박수를.

여자의 로망과 남자의 로망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이 욕망하는 캐릭터의 트렌드는 달라지기 마련. 최근 두 아이콘이 그 트렌드의 정수를 헤집는 중이다. 하나는 ‘궁’의 명랑소녀에서 ‘커피 프린스 1호점’의 미소년으로 온 윤은혜, 그리고 또 하나는 ‘왕의 남자’의 미소년에서 ‘개와 늑대의 시간’의 남자로 온 이준기다. 이 두 아이콘의 변신은 이 시대 남녀 각각의 로망을 끄집어낸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청춘 멜로의 진화, 명랑소녀에서 미소년으로
‘커피 프린스 1호점’의 고은찬(윤은혜)은 남장여자. 겉모습은 남자이고 실제는 여자이니 남자와의 트렌디한 연애는 애초부터 글러먹었다. 그래서 이 남장여자는 한참을 우정과 의리로 우회해 사랑을 찾아가는 중이다. 그런데 그 사랑의 과정을 담은 청춘 멜로 드라마의 캐릭터가 가진 색다른 결은 굉장한 파괴력을 갖고 있다. 그것은 기존 멜로 드라마들이 트렌디해지면서 주지 못했던 설렘 같은 것이다. 마치 잊고 있던 청춘의 한 때를 기억하며 가슴이 뛰는 느낌을 갖는 것. ‘커피 프린스 1호점’은 한 마디로 불감증에 걸린 가슴을 ‘두근두근’하게 만드는 드라마다.

그런데 왜 하필 남장여자라는 캐릭터였을까. 바로 여기에 해답이 있다. 여성 캐릭터의 진화는 여성들의 사회진출과 함께 비례적으로 변화를 거듭해왔다. 과거 최루성 멜로 드라마 속의 여성 캐릭터는 눈물 하나로 충분히 당대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여성 캐릭터들은 신파로 오인 받는 눈물을 거두고 가슴 설레는 신데렐라의 로망을 꿈꾸게 되었다. 신데렐라는 차츰 가녀린 모습에서 가난하지만 씩씩한 명랑소녀로 변신했고 이 부분이 윤은혜가 등장하는 시점이다. 소녀장사 이미지의 윤은혜는 ‘궁’의 채경을 만나서 명랑소녀 전성시대의 정점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 또한 남성에 의해 거두어지거나 보호받는 캐릭터로 여전히 남성의 그늘이 남아 있었다. 완전히 남성의 테두리를 벗어나 오로지 독립적인 여성으로서 오히려 남자를 선택할 수는 없는 걸까. 여성의 사회진출이 남녀관계의 진정한 동등함을 요구할 때 윤은혜는 명랑소녀에서 미소년으로 변신했다. 남장여자가 되자 먼저 종속적이던 여성의 모습은 사라졌다. 그들은 의리와 우정으로 만남을 시작하지 구질구질한 남녀관계로 서로를 작업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이 고은찬이란 캐릭터는 그러면서도 두 남자를 한 손아귀에 쥐고 있는 캐릭터란 점이다. 여기가 여성들의 로망을 살짝 드러내는 부분이다.

전문직 장르 드라마의 부활, 미소년에서 남자로
반면 ‘개와 늑대의 시간’의 이수현(이준기)은 평범한 듯 보이면서도 강력한 카리스마를 내재한 캐릭터다. 눈앞에서 킬러에 의해 어머니가 살해되는 장면을 목격했으니 애초부터 평탄한 삶은 글러먹었다. 그래서 일상에 지쳐 나른한 남성들의 아드레날린을 자극해 칼과 총알이 날아다니는 모험의 세계로 인도할 이 오딧세우스는 태국이라는 이국적인 공간 속에 온 몸을 던지는 중이다. 그런데 이 평탄한 삶을 던져버리고 거친 복수의 길로 뛰어든 이수현이란 캐릭터는, 사회적으로 고개 숙인 남성들의 피를 끓게 하는 구석이 있다.

이준기는 왜 그의 명성을 만들어준 미소년이란 캐릭터를 그다지도 버리고 남자로 서고 싶었을까. 사회의 남녀 성차가 사라지는 것과 비례해서 드라마 속 남성캐릭터들은 마초적인 캐릭터에서 한없이 미소년으로 변모해왔다. 그것은 드라마의 주 시청층이 여성이라는 점에서 그 여성 캐릭터의 변화에 발맞춰 변모된 결과. 남성 캐릭터들은 한없이 친절해졌고 심지어 울기 시작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사극과 전문직 장르 드라마에서 남성시청자들의 존재가 증명된 뒤, 남성 캐릭터는 다시 카리스마의 부활을 예고하고 있다. ‘주몽’이나 ‘하얀거탑’은 끝없이 욕망을 분출하는 남성의 로망이 투영된 드라마다.

최근 들어 등장했던 ‘히트’나 ‘에어시티’같은 전문직 장르 드라마들은 남성 캐릭터들은 다시 미소년으로 갈아치웠다는데 있다. 멜로와 장르 드라마의 부조화에서 불거져 나온 문제의 근원은 남성 캐릭터가 너무 친절하다는 점이다. 이준기가 미소년의 대명사로 등장한 것은 한창 남성 캐릭터들이 예뻐지다 그 정점에 올랐던 2006년. ‘왕의 남자’의 공길(이준기)은 사실 그 예쁘게 우는 남성 캐릭터의 극점이었다. 그것은 이준기라는 연기자의 성공과 동시에 커다란 족쇄를 의미했다. 그 이미지를 버리려 남자가 되려는 이준기라는 연기자의 축과, 남성의 로망을 다시 끄집어 내줄 새로운 카리스마가 필요해진 전문직 장르 드라마라는 축이 만난 것이 ‘개와 늑대의 시간’이다. 여기서 이준기가 연기하는 이수현이란 캐릭터는 과거의 그저 마초적이기만 한 카리스마가 아닌, 겉으로는 공길 같은 부드러움이 있지만 내적으로는 야수 같은 강렬함을 가진 카리스마를 갖고 있다.

여자의 로망과 남자의 로망
재미있는 것은 이 두 연기자의 이미지 변신이 한 발작이 아닌 반 발작 정도의 지점에 있다는 점이다. 윤은혜는 과거의 이미지를 그대로 가져왔지만 캐릭터가 주는 소명대로 소년의 이미지를 부가시켰다. 이준기는 여전히 미소년의 풍모를 가졌지만 순간순간 숨겨진 야수성을 보여준다. 이렇게 된 것은 이 두 연기자가 자신의 이미지 변신과 연기자로서의 평가를 제대로 받기 위해 들인 치열한 노력의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이 한 발작이 아닌 반 발작이란 의미는 이들의 변신이 단지 오버에 의해 억지로 창조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방증한다.

멜로드라마의 쇠퇴 이후 그 대안처럼 등장한 전문직 장르 드라마의 부침은 이제 이 두 장르의 공존을 모색하는 시기로 넘어가는 듯 하다. 그것은 여성 시청자층으로 대변되던 과거에서 점차 남성 시청자층이 늘고 있는 현재가 만나는 지점이다. 그 핵심에는 여자의 로망과 남자의 로망이 있고 그걸 대변하듯 등장한 연기자들은 바로 윤은혜와 이준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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