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퀴즈' 유재석, '개콘' 폐지에 "여러분 잘못이 아니다"

 

tvN <유퀴즈 온 더 블럭> 옆에는 <개그콘서트> 특집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tvN 예능 프로그램이 KBS 프로그램을 주제로 삼는다는 건 어딘지 이색적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충분히 공감되는 이유가 있었다. <개그콘서트>가 21년 만에 폐지됐다는 소식이 주는 안타까움만큼 이 프로그램과 동고동락했고 이 프로그램을 통해 꿈을 키웠던 개그맨들을 위로하고 응원하는 마음이 거기 담겼기 때문이었다.

 

프로그램은 시작부터 '개그맨'을 강조했다. 유재석이 등장해 1991년도에 데뷔했다며 한 말은 "29년 차 개그맨 유재석"이었다. 조세호는 "개그맨 20년 차 조세호"라고 했고, 이용진 역시 "공개코미디 16년 차 개그맨 이용진"이라고 했다. 이들을 포함해 이 날 출연했던 출연자들인 이진호, 김민경, 손민수, 임라라, 이재율, 전수희 모두 자신을 개그맨, 코미디언으로 소개했다.

 

이렇게 된 데는 이날 출연한 개그맨들이 이구동성으로 혹여나 개그맨이나 코미디언이라는 직업 자체가 사라지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 섞인 목소리를 내고 있어서였을 게다. 그만큼 지상파에서 끝까지 버텨내다 결국 종영을 선언한 <개그콘서트>는 개그맨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우려에 대해서 원로 개그맨인 임하룡은 "선배로서 미안한 감정이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망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집이 무너졌단 생각이 들지만 새로운 집을 지을 터전이 생긴 거니까 희망을 갖고 열심히 해야죠." 이제 공채개그맨도 뽑지 않는 상황에 개그맨이라는 직업 자체가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유재석의 우려 섞인 질문에 임하룡은 의미심장한 답변을 내놨다.

 

"코미디가 없어지는 건 아니고 각 분야로 녹아 들어갔다. 우리가 개그맨이지만 원래는 코미디언이기 때문에 원래 뜻은 희극배우 아냐. 웃기는 연기를 하는 사람들이라고. 그러니까 없어졌다 생각지 말고 각 분야에 가서 또 그냥 일을 하고 언제 또 콩트 코미디가 부활할 수도 있잖아." 그는 과거 <유머일번지>나 <쇼 비디오자키>가 큰 인기를 끌다 사라진 후 <개그콘서트>가 생겼듯이 또 다른 스타일의 코미디가 등장할 거라고 했다.

 

그리고 이런 일들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는 걸 이 날 출연자들과의 토크를 통해 들을 수 있었다. 최근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개그우먼 김민경은 한때 같이 했던 신봉선 같은 친구가 잘 될 때 너무나 부러움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 과정을 거쳐 지금은 누구보다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운동뚱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면서 누군가의 희망이 되기도 한다는 것.

 

신인 개그맨으로 <개그콘서트>에 들어왔지만 종영을 맞게 된 이재율과 전수희는 그간 개그맨이 되기 위해 갖가지 알바를 하는 등 고생을 했지만 그럼에도 즐거웠던 '시간들이었다고 털어놨다. 프로그램 종영이라는 아쉬움이 그 무엇보다 클 상황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밝은 얼굴이었다. 유재석은 이 신인개그맨들은 물론이고 그간 함께 고생해온 <개그콘서트> 개그맨들 그리고 제작진들에게 "수고했고 감사했다"며 "여러분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말을 꼭 드리고 싶었다고도 했다.

 

지금도 tvN <코미디 빅리그>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이용진과 이진호 역시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건 마찬가지였다. 이제 공개 코미디가 모두 사라진 마당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코미디 빅리그>가 언제까지 계속 될 수 있을까가 걱정이라는 거였다. 하지만 프로그램 말미에 나온 손민수, 임라라 커플 크리에이터는 임하룡이 말했던 것처럼 코미디가 여러 분야로 들어가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걸 보여줬다.

 

본래 공개코미디 방송에서 개그맨 활동을 했지만 쉽지 않은 현실에 부딪쳐 공황장애까지 겪었던 손민수는 임라라를 만나 '사랑의 힘으로' 이를 극복하고 유튜버라는 새로운 길을 열었다고 했다. 그것 역시 쉬운 길은 아니었지만 서로를 생각하고 챙겨주는 커플의 모습은 힘겨워도 다독이며 버텨낸 것이 지금의 그들을 만들었다는 걸 확인시켜줬다.

 

<유퀴즈 온 더 블럭>이 마련한 <개그콘서트> 특집은 그 프로그램만이 아닌 개그맨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웃음을 주려 노력하는 이들을 위한 헌사였다. 이제 개그맨이라는 직업 자체가 사라지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는 그들에게, 코미디는 그래도 영원하다는 걸 이 프로그램은 여러 분야에서 여전히 활동하고 있는 개그맨들을 통해 보여줬다.(사진:tvN)

<KBS연예대상>, 스타 예능MC들 사이 김종민이 대상인 이유

 

<2016 KBS연예대상>의 대상은 김종민에게 돌아갔다. 후보로 김종민과 함께 유재석, 김준호, 이휘재, 신동엽이 올랐지만 이미 많은 이들은 그가 대상을 받을 것이라는 걸 예감하고 있었다. <12>이 같이 하고 있는 김준호는 대상 발표 전에 이미 김종민에게 축하를 해줬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KBS연예대상(사진출처:KBS)'

그러고 보면 <12>에서 김종민 특집을 했던 것은 그가 이 프로그램에 그만큼 큰 공헌을 했다는 것에 제작진도 또 시청자들도 공감했다는 걸 뜻한다. 그는 실로 무려 9년 동안 <12>PD가 바뀌고 출연자들이 교체되면서도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켜왔다. 스스로는 슬럼프에 빠진 적도 있고, 군대를 다녀오느라 공백기도 있었지만 그래도 시청자들에게는 늘 한결같은 모습이었다.

 

KBS로서는 정말 바보스러울 정도로다른 곳에 눈 돌리지 않고 <12>만을 지켜온 그에 대한 고마움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지 않았을까. 물론 예능프로그램으로서의 기여도 역시 적은 건 아니었다. 언제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말과 행동으로 웃음을 주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가 중요했던 건 항상 낮은 자세로 시청자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12> 특유의 서민 정서를 느끼게 해주는 모습이었다. 그는 늘 튀는 MC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자기 역할을(그리고 그건 결코 작은 역할이 아니다) 꾸준히 잘 해온 MC였다.

 

김종민의 대상은 그래서 충분히 공감 가는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대상의 의미를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KBS 예능 전체의 차원에서 들여다보면 또 다른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 그건 예능 프로그램의 주역들이 한 때 개그맨이나 코미디언 같은 웃음을 전문적으로 주던 직업군에서 벗어나 배우나 가수 혹은 일반인으로까지 확장되어왔고 이제는 그것이 정착 단계에 들어섰다는 것이다.

 

알다시피 김종민은 본래 가수였지만 지금은 예능인으로서 더 자기 존재감을 드러내는 인물이다. 그가 해왔던 가수활동보다는 <12>의 김종민이 더 자연스러울 정도. 수상 소감에서 그는 자신이 유재석, 김준호, 이휘재, 신동엽과 대상 후보에 올랐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고 했지만 시청자들에게는 오히려 그가 후보이고 대상을 받은 것이 더 자연스럽게 다가온다는 점이다.

 

올해의 <KBS연예대상>을 보면 유독 개그맨 출신이 아닌 비예능인들이 많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최우수상을 받은 정재형(토크&쇼 부문), 이동국, 라미란(버라이어티 부문)이 그렇고, 우수상 버라이어티 부문의 기태영, 이범수가 그렇다. 박진영은 <언니들의 슬램덩크>에 걸그룹 언니쓰를 도와줬다는 공로로 프로듀서 특별상을 받았고, 인기상으로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아이들이 받았다. 이밖에도 베스트 엔터테이너상의 남궁민, 신인상에 윤시윤, 민효린도 비예능인으로서 상을 받았다.

 

이미 리얼리티쇼가 예능의 중요한 트렌드로 자리하고 있는 상황에 이러한 비예능인들의 예능 진출은 이제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예능의 변화를 염두에 두고 보면 다른 최우수상 후보들 즉 유재석, 김준호, 이휘재, 신동엽 중에서 본래 가수출신이었던 그가 대상을 탔다는 것이 새삼 의미 있게 다가온다. 물론 김종민은 웬만한 개그맨들보다 더 웃음을 줬던 인물이지만, 그래도 쟁쟁한 개그맨 출신 스타 MC들 사이에서 대상을 받았다는 건 꾸준히 자기 자리를 지켜오며 자신의 영역 안에서 최선을 다한 그 노력의 보상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런 점은 이제 예능이 단순히 웃음만이 아니라 그 사람의 노력이나 그 안에 담겨진 진심 같은 것들에 더 방점을 찍는 시대라는 걸 말해준다. 김종민은 충분히 잘 해왔고 대상받을 만 했다.

김원해, <아수라> 작대기와 <혼술남녀> 학원장 사이

 

사실 <SNL코리아>에 김원해가 크루로 들어왔을 때 그가 누구인지 아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어디선가 많이 봤던 얼굴이지만 그리 주목된 적은 없는 단역들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SNL코리아>에서 워낙 코믹한 연기를 잘 소화해내는 그를 보면서 아마도 시청자들은 코미디언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을 게다.

 

'혼술남녀(사진출처:tvN)'

하지만 김원해는 아주 조금씩 자신이 연기자라는 것을 작품을 통해 보여줬다. 영화 <명량>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던 배설 장군 역할을 잘도 소화해냈고, <해적>이나 <타짜2>에서도 조금씩 그만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특히 <시그널>에서 그가 맡았던 김계철 경사 역할은 시청자들에게 배우 김원해를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의 이런 잠재력은 영화 <아수라>에서 드디어 엄청난 에너지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사실상 이 영화의 도입 부분에 들어가 있는 김원해가 연기한 작대기라는 인물은 영화 전체의 어둡고 처절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마약에 취한 채, 밟아도 밟아도 죽지 않고 꿈틀대는 벌레 같은 이미지의 작대기라는 인물을 김원해는 거의 온 몸을 던져 연기했다.

 

스스로 머리를 밀어버리고 게슴츠레한 눈빛에 비리 형사에 의해 이리저리 휘둘리다가 막판에 몰리자 그 형사에게 도리어 이빨을 드러내는 모습은 관객들의 뇌리에 강렬한 잔상으로 남았다. 이 김원해가 <SNL코리아>의 그 김원해와 같은 인물이 맞나 싶을 정도. 우리가 그동안 김원해의 진가를 잘 몰랐었다는 걸 그는 <아수라>를 통해 보여줬다.

 

그의 놀라운 연기의 폭은 현재 방영되고 있는 tvN <혼술남녀>에서 그가 연기하고 있는 학원장 역할을 통해서도 보여진다. 그는 스타 강사인 진정석(하석진) 앞에서는 비굴하게 아부를 하는 인물이지만, 실적이 별로 없는 강사들에게는 당장 짐 쌀 준비나 하고 있으라고 으름장을 놓는 갑질 학원장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처세에 밝은 학원장에게서는 인간적인 냄새도 물씬 풍긴다.

 

10시만 되면 알람이 울리고 회식을 하다가도 어김없이 일어나는 민진웅에게 와이프에게 그렇게 쩔쩔 매는 이유가 뭐냐며 지청구를 날리던 김원해는 그의 어머니의 부음 소식을 듣고 그것이 오랫동안 병원 생활을 해온 어머니를 찾아간 것이었다는 걸 알고는 그의 어깨를 토닥여준다. 그는 강사 위에 있는 학원장이고 그래서 잔소리를 늘어놓지만 그들의 입장을 자신의 일처럼 이해하는 인간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김원해가 갖고 있는 서민적인 이미지는 그래서 그가 다채로운 연기의 폭을 갖고 있으면서도 일관되게 그에게서 느껴지는 것들이다. <아수라>에서 그가 작대기라는 인물을 통해 보여준 섬뜩함 속에서도 또 <혼술남녀>의 학원장의 잔소리 속에서도 어떤 따뜻함 같은 것이 느껴지는 건 그래서다. 대부분의 신스틸러들이 그러하듯이 어떤 상황, 어떤 색다른 인물을 연기하면서도 그 안에 그만의 독특함을 새겨 넣는 배우. 이것이 그간 우리가 잘 몰랐던 김원해라는 배우의 진가다

선배들 챙기는 코미디언들, 그 묵직한 울림

 

4회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 개막식에는 성화 봉송 이벤트가 있었다. 마치 올림픽처럼 성대한 행사라는 걸 보여주기 위한 이벤트였는데, 그 마지막 주자는 개막식에 직접 성화를 들고 무대 오르게 되어 있었다. 이경규와 김용만이 사회를 맡은 개막식에서 그 마지막 주자가 발표됐다. 바로 송해 선생님이었다. 이제는 마지막으로 남은 현역 최고령 코미디언. 당연한 성화 봉송 마지막 주자였다.

 

'전국노래자랑(사진출처:KBS)'

그런데 송해 선생님이 성화를 들고 단상으로 올라가 뛰어갈 때 문제가 생겼다. 성화의 불이 꺼져버린 것. 주최측이나 진행요원들 그리고 사회를 맡은 이경규, 김용만은 물론이고 거기 있던 코미디언 후배들은 모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경규는 역시 베테랑답게 이 불이 꺼져버린 성화라는 상황 자체를 코미디로 승화시켰다. 세상에 이런 성화 봉송은 최초라는 것. 장내에 웃음이 터졌다.

 

송해 선생님이 단상에 오르기 전 김대희가 재빠르게 다가가 라이터로 성화에 다시 불을 붙였다. 그러자 이경규가 또다시 이런 성화 봉송은 없었다며 꺼진 성화를 라이터로 다시 붙인 성화 봉송의 해프닝을 웃음으로 바꿔놓았다. 우여곡절(?) 끝에 단상에 오른 송해 선생님은 뜬금없이 노래 한 곡을 부르겠다고 하셨다. 이애란의 백세인생이었다.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을 해야 하니 못 간다고 전해라-”라고 개사한 곡은 한 마디로 히트였다. 송해 선생님의 그런 모습은 객석에 웃음과 함께 잔잔한 감동마저 주었다.

 

그 자리에서 확연히 느낄 수 있었던 건 코미디언들의 선후배 관계가 그토록 돈독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선배를 챙기기 위해 후배들이 모두 나서서 호응해주고 받아주고 하는 모습들이 그렇게 보기 좋을 수가 없었다. 또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송해 선생님은 박명수 같은 후배가 디제잉을 선보일 때 벌떡 일어나 덩실덩실 춤을 추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난 27일 오전 159, 원로 코미디언 구봉서 선생님이 별세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못 간다고 전해라-”하던 송해 선생님의 노래 한 자락이 무색하게 먼저 구봉서 선생님은 그렇게 먼 길을 떠났다.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측은 애도의 뜻을 담아 추모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일찌감치 조문을 떠난 후배들도 있었고, 현재 부산에 공연이 잡혀 있는 팀들은 공연이 끝나는 대로 조문에 합류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어찌 보면 공교롭게 하루 사이로 벌어진 일들이지만 거기서 유독 눈에 띄는 건 코미디언들의 따뜻한 정과 선후배를 챙기는 마음이었다. 구봉서 선생님의 별세를 애도하고 다시금 기억해내려는 후배들의 모습은 요즘처럼 각박한 현실에서 그래도 코미디언들의 선후배들만큼은 살만하다는 걸 보여주었다. 송해 선생님이 들고 가다가 꺼진 성화가 후배가 다시 붙여 불을 피우듯, 그들의 서로를 위하는 마음은 따뜻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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