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의생', 이번에도 빛난 조정석 특유의 웃음과 페이소스

 

조정석 아니면 이런 느낌의 연기를 누가 소화해낼까. 늘 유쾌하고 주변 사람들을 기분 좋게 만들지만, 그 웃음의 끝에는 어딘가 쓸쓸함 같은 페이소스가 묻어난다. 조정석의 코미디 연기가 남다른 지점이다. 처음 대중들에게 그 존재를 알렸던 영화 <건축학개론>의 납득이 때부터 남달랐던 그의 코미디 연기가 정점을 찍었던 건 SBS <질투의 화신>에서였다. 물론 SBS <녹두꽃>에서 절절한 정극 연기도 잘 소화해냈던 조정석이지만, 역시 그의 연기 맛은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보여주고 있는 바로 그 우습고 유쾌하면서도 페이소스가 가득한 역할에서 빛난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그가 연기하는 이익준의 첫 등장은 얼굴에 다스베이더 헬멧을 쓰고 아들 우주(김준)와 함께 병원에 들어온 모습이었다. 우주가 본드를 헬멧에 발랐는데 그걸 모르고 뒤집어써서 헬멧이 머리에 붙어버린 것. 결국 익준은 다스베이더 헬멧을 쓴 채 응급을 요하는 환자를 수술하러 들어가는 진풍경(?)을 보여줬다.

 

익준이라는 캐릭터가 독특한 건 굉장히 심각한 일 앞에서도 좀체 화를 내는 법이 없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받아들이는 면이다. 오래도록 떨어져 지냈던 아내가 외도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이혼을 했지만 그게 별 일도 아니라는 듯 병원에서 그의 모습은 예전 모습 그대로 유쾌하기 이를 데 없다. 그 속이 어찌 괜찮을까 싶지만 그는 내색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가 등장하는 장면은 늘 웃음과 농담이 넘치는 유쾌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그에게 벌어진 많은 일들과 홀로 아이를 양육하며 살아가는 그 삶을 알고 있는 절친들로서는 그런 유쾌함의 이면에 드리워진 상처 같은 걸 느낄 수밖에 없다. 그 절친의 시선이 바로 시청자들의 시선이기 때문에 익준이라는 캐릭터는 눈물 흘리는 인물보다 더 짠하게 다가오게 된다.

 

익준의 이런 캐릭터는 대학시절부터 짝사랑했던 채송화(전미도)에게 좀체 다가가지 못하고 짐짓 친구처럼 늘 옆에만 있는 모습이 더욱 안타깝게 느껴지는 이유다. 그는 채송화가 후배 의사인 안치홍(김준한)에 대해 좋게 말하고 같이 밥을 먹자고 하는데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걸 받아준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알고 있다. 그가 말하지 않고 티내지 않아도 속으로 얼마나 마음을 끓일지를.

 

게다가 익준은 자신의 사랑은 서툴면서도 안정원(유연석)과 장겨울(신현빈)이 서로 좋은 감정을 갖고 있지만 잘 엮어지지 않은 걸 도우려 애쓴다. 안정원에게는 은근히 장겨울에 마음이 있는 걸 알고 있다며 머리보다는 가슴이 시키는 대로 하라고 말해주고, 장겨울에게는 그의 남동생을 남자친구로 알고 있는 안정원에게 당분간도 그렇게 하라고 조언해준다.

 

열이 나 아픈 우주를 돌보려 잠을 설치고, 갑자기 병원에서 온 콜에 채송화를 불러 우주를 돌보게 한 후 병원까지 갖다 오느라 한 숨도 잠을 자지 못했지만, 돌아와 잠든 채송화를 위해 아침을 준비하는 익준. 그런 익준이 채송화는 마음 한 편이 무겁다. 그래서 묻는다. "익준아. 넌 요즘 널 위해 뭘 해주니?" 그 질문에 익준이 답변에 담은 채송화에 대한 마음이 짠하게 다가온다. "이렇게 너랑 같이 밥 먹는 거? 너랑 같이 밥 먹고 커피 마시고 난 나한테 그거 해줘." 실로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조정석이 있어서 더욱 유쾌해졌고 더욱 짠해졌다.(사진:tvN)

‘굿캐스팅’의 캐릭터 판타지, 스파이 액션은 덤이다

 

한국판 <미녀삼총사>처럼 보인다. 똘끼 넘치는 막강 요원 백찬미(최강희)에 싱글맘 요원 임예은(유인영) 그리고 보험아줌마로 살아가며 임무를 수행하는 황미순(김지영)이 그 삼총사. SBS 새 월화드라마 <굿캐스팅>은 <미녀삼총사>를 우리 식으로 해석했다는 게 그 인물 구성을 통해서 먼저 느껴진다.

 

이들이 앞으로 펼쳐나갈 이야기는 물론 국제적인 산업스파이이자 동료 요원들을 살해한 마이클 리를 잡기 위한 작전이지만, 사실 그것보다 더 시청자들의 마음을 끄는 건 이들 캐릭터들의 면면이다. 작전 수행을 위해 교도소에 들어가 살인무기 같은 액션으로 순식간에 그 곳을 장악해버리는 백찬미가 통쾌한 걸 크러시의 매력을 보여준다면, 요원이라기보다는 보험아줌마에 가까운 황미순은 주부로서의 공감대를 끌어오며 웃음을 선사하는 인물이다. 또 현장보다는 안전한 데스크로 오래오래 버티는 게 꿈인 임예은은 홀로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으로서의 면면이 시청자들을 더 공감하게 만든다.

 

즉 <굿캐스팅>은 스파이액션에 뛰어들게 되는 지극히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요원들의 이야기가 핵심이다. 그런데 그 이야기는 싱글맘이나 주부 같은 우리네 현실 정서를 담아낸다는 점에서 <미녀삼총사>와는 궤를 달리한다. 어찌 보면 국정원 요원이긴 하지만 소외된 주변인물로 살아가는 아웃사이더들이 작전을 수행해가는 캐릭터 판타지를 이 드라마는 담으려 하고 있다.

 

<미녀삼총사>에 세 미녀를 관리하는 찰리가 있었다면 <굿캐스팅>에는 동관수(이종혁)가 그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도 우리 식의 정서가 이 캐릭터에 들어간다. 백찬미와 사내커플이었다가 헤어진 동관수는 어딘지 팀장이긴 해도 이들 3인방에게 질질 끌려 다닐 것 같은 그런 캐릭터다. 3인방이 보여줄 통쾌하고 유쾌한 작전 과정 속에서 그들에게 짓눌리면서도 인간미를 보여줄 동관수의 코미디가 기대되는 이유다.

 

전반적으로는 코미디에 방점을 찍고 있지만, 드라마의 추진력은 권민석(성혁)이 마이클 리에게 살해당한 사건이다. 임예은의 남자친구였고 그가 키우는 딸 소희(노하연)의 아빠였던 권민석이 사망한 그 사건현장에는 백찬미도 황미순도 있었다. 그의 죽음은 특히 당시 팀장이었던 백찬미에게 작지 않은 상처로 남았을 터였다. 그러니 마이클 리를 추격하게 하는 강력한 동기가 이들 모두에게 추진력을 만들어줄 것으로 보인다.

 

월화극으로 편성된 <굿캐스팅>은 그 편성 시점에 있어서도 운이 좋다. 동 시간대에 방영되고 있는 경쟁작들이 이렇다할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tvN <반의 반>은 12부작으로 조기종영을 앞두고 시청률이 1%대 밑으로 떨어질 위기에 처해있고 차기작인 <외출> 역시 2부작 단편이다. KBS <본 어게인>은 3%대 시청률에 머물며 이렇다 할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고 JTBC는 드라마페스타 단편 2부작 <탁구공>을 재방송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니 적수가 없는 <굿캐스팅>은 첫 회부터 12.3%(닐슨 코리아)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물론 <굿캐스팅>에도 약점이 없는 건 아니다. 전체적으로 코믹한 캐릭터에 집중하다 보니 작전 과정에 있어서 다소 개연성이 떨어지는 장면들은 시청자들의 몰입을 방해하는 면이 있다. 이 드라마는 코미디가 맞지만 그 코미디가 진지한 작전 상황을 뒤집는 데서 나온다는 걸 염두에 두면 작전 자체가 갖는 긴박감과 개연성 또한 중요하다는 걸 인지할 필요가 있다. 이런 약점들을 보완해나간다면, <굿캐스팅>은 정서적으로나 캐스팅으로나 편성에 있어서나 괜찮은 결과를 낼 것으로 보인다.(사진:SBS)

'히트맨', 명절 특수 누릴 복병으로 떠오르나

 

권상우 주연의 영화 <히트맨>은 사실 제목부터가 그리 확 당기지는 않는다. 게다가 권상우가 총과 연필을 양 손으로 쥐고 전면을 노려보는 포스터도 어딘가 B급 유머의 뉘앙스가 풍긴다. 그래서 영화관을 찾은 관객 분들 중 이런 선입견 때문에 굉장한 기대감을 갖고 있지 않았다면 영화를 보는 내내 의외로 웃기고 의외로 액션 터지는 <히트맨>에 적이 놀랐을 게다. 도대체 어딘지 허술해 보이는 이 영화의 무엇이 관객들을 들었다 놨다 하게 된 걸까.

 

한때 국정원에서 살인무기로 키워진 이른바 ‘방패연’의 전설적인 인물이었던 암살요원 준. 그는 웹툰 작가가 되고 싶어 죽음을 위장해 국정원을 탈출한다. 그리고 한 참의 세월이 지나 아내와 딸을 둔 웹툰 작가로 연재하는 작품마다 악플 신기록을 경신하던 그는 술김에 1급 비밀인 자신의 과거를 그린 작품을 공개해버린다. 하루아침에 초대박이 나지만 그건 암살요원 준을 노리는 이들과 국정원 사람들이 그를 찾게 되는 이유가 되어버린다.

 

전직 국정원의 전설적인 인물이 정체를 숨기고 생활고에 허덕이는 일상인으로 살아간다는 설정은 그리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영화는 다소 의도적으로 과장된 이야기와 연기, 연출을 더하면서 웃음을 만들어낸다. 뭘 그렇게까지 말하고 행동할까 싶은 장면과 대사들이 연달아 이어지고 연출 또한 과장되어 있어 전체적으로 B급 코미디의 정서를 만들어낸다.

 

<히트맨>이 빵빵 터지기 시작하는 건 준(권상우)과 그를 키워낸 악마교관 덕규(정준호)가 다시 만나게 되고 국정원 요원들을 암살해온 제이슨(조운)과 그 일당들은 물론이고 국정원 형도(허성태)의 추격을 받게 되면서 벌어지는 거의 코미디 콩트에 가까운 상황들이 벌어지면서다. 두 사람은 웹툰 속 전설적인 인물들이지만 서로 티격태격하는 모습에서는 마치 어린아이들 같은 모습을 보여주며 웃음을 만들어낸다.

 

그러면서 과장된 코미디는 역시 과장된 액션과 절묘하게 더해지면서 웃음과 동시에 액션이 주는 쾌감을 선사한다. 상황들은 웃긴데 액션은 의외로 고급지다.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건 역시 배우들이다. 권상우는 과거 <말죽거리 잔혹사> 이래 꾸준히 보여줬던 액션에 코믹한 캐릭터 연기까지 더해 마치 성룡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명절하면 떠오르던 성룡 영화가 지금은 찾아보기 어려운 시점, 권상우가 그 자리를 차지해도 충분할 것 같은 새로운 면모다.

 

정준호 역시 지금껏 봐왔던 어떤 역할보다 이 작품 속 망가지며 웃기는 코미디 연기가 제격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준다. 여기에 최근 <싸이코패스 다이어리>를 통해 악역만이 아닌 코믹 연기도 잘 한다는 사실을 보여줬던 허성태나, 역시 코미디 연기에 가능성이 더 보이는 이이경과 황우슬혜가 더해지니 연기만 봐도 웃음이 풍성하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귀요미 이지원의 연기. <스카이캐슬>에서 제대로 눈도장을 찍었던 이지원은 이 영화에서 관객들을 울리며 웃기는 기이한 체험을 하게 만들어준다.

 

사실 이번 설 연휴에 압도적으로 관객의 시선을 잡아끄는 영화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남산의 부장들>이 이병헌이나 이성민, 곽도원 같은 굵직한 배우들을 통해 시선을 끌고 있지만 영화가 너무 무거워 명절 흥행을 보장한다 말하기는 어렵다. <미스터주>나 <해치지 않아> 같은 동물 소재의 영화들이 자리했지만 역시 관객몰이를 하기에는 확실한 재미를 주고 있는지가 의문이다.

 

그래서 이번 명절에 <히트맨>은 의외의 복병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남산의 부장들>에 이어 흥행 2위를 기록하고 있는 상황. 굳이 찾아서 볼 정도의 영화라 말하긴 어렵지만, 명절을 맞아 어떤 영화든 보겠다며 영화관을 찾은 관객들에게는 의외로 <히트맨>처럼 조금은 별 생각 없이 깔깔 웃고 시원한 액션을 볼 수 있는 작품이 선전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사진:영화'히트맨')

‘시동’, 한 발 뒤로 물러선 마동석이어서 더 좋았던 건

 

마동석은 마동석을 연기한다는 말이 있다. 또 마동석은 하나의 장르라는 얘기도 있다. 그만큼 마동석이 등장하는 작품에서 그의 존재감이 작품 전체를 장악한다는 뜻일 게다. 물론 그건 좋은 의미지만 마동석에게도 또 작품에도 반드시 좋을 수만은 없다. 결국 작품이란 여러 배우들이 골고루 보여야 그 울림이 커질 수 있고 마동석 자신도 자신이 아닌 다양한 캐릭터를 만나야 배우로서도 더 확장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영화 <시동>은 마동석을 대단히 현명하게 활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보통 관객들이 ‘마동석 영화’라고 부르는 작품에는 늘 기대하는 것들이 있다. 손바닥 하나에 붕붕 날아가는 악당들의 모습이 그것이다. 물론 <시동>에도 그런 장면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시동>은 그런 요소들을 전면에 내세우진 않는다.

 

대신 이 작품에 등장하는 다른 캐릭터들, 이를테면 학교도 중퇴하고 공부보다는 돈을 벌겠다며 가출한 택일(박정민)이나 어쩌다 사채업 일에 빠져들게 된 그의 친구 상필(정해인), 만만찮은 복싱 실력으로 걸 크러시를 보여주는 경주(최성은) 또 주방장을 꿈꾸는 배달원 배구만(김경덕) 같은 인물들이 저마다의 이야기들을 입체적으로 들려준다.

 

물론 마동석이 연기하는 거석이라는 인물은 가출한 택일이 찾아가게 된 장풍반점의 주방장이지만 특별한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포스가 저절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장풍반점을 두고 벌어지는 깡패들의 폭력 앞에 그는 전면에 좀체 나서질 않는다. 대신 거석이 초반 내내 보여주는 건 이 캐릭터가 주는 유쾌한 코미디적인 요소들이다.

 

<시동>은 그래서 이 만만찮은 포스를 숨기고 있는 거석이 언제 폭발할 것인가를 계속 기대하게 만들며 영화에 몰입시킨다. 그러면서 장풍반점에 오게 된 사람들과 그 반점을 운영하는 공사장(김종수) 그리고 택일의 친구인 상필과 택일의 엄마 정혜(염정아)가 처한 녹록찮은 현실들을 찬찬히 담아낸다.

 

코미디적 요소로 웃음을 계속 유발하지만 그 뒤에 남겨지는 짠한 현실들이 어떤 페이소스 같은 걸 그려낸다. 그것은 청춘들의 막막한 삶이고 또 가진 것 없는 서민들이 점점 더 밑바닥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는 우리네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래서 웃음은 조금씩 짠한 연민과 공감으로 이어진다.

 

이른바 마동석 영화들이 이런 현실에 대한 통쾌한 주먹질로 사이다 판타지를 제공해왔다면, <시동>은 그보다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선택한다. 결국 제목에 담긴 것처럼 영화는 어떻게 삶의 새로운 시동을 걸 수 있는가에 대한 단순하지만 묵직한 메시지를 전한다. 누군가가 주는 판타지를 기대하기보다는 “소중한 건 스스로의 힘으로 지켜야 한다”는 메시지.

 

마동석이 한 발 뒤로 물러나 있어서 <시동>은 훨씬 좋은 작품이 되었다. 뻔한 마동석 영화가 아니라 여러 인물들이 살아나 그 이야기를 통해 어떤 분명한 메시지를 전하는 영화가 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마동석이라는 배우에게도 새로운 시동을 걸 수 있는 계기로 작용했다고 보인다. 작품을 자신의 존재감으로 끌고 가기보다는 한 발 뒤로 물러나 작품을 살리는 배우 본연의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니 말이다.(사진:영화'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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