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껏 사랑하세요... 로운과 조이현이 선사한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엔딩

혼례대첩

‘마음껏 사랑하세요.’ KBS 월화드라마 <혼례대첩>은 엔딩과 함께 그런 자막을 덧붙였다. 멋드러진 성곽 위에서 서로의 생사와 사랑을 확인한 정우(로운)와 순덕(조이현)이 서로를 꿀 떨어지는 눈으로 바라볼 때 카메라가 뒤로 쭉 빠지며 해지는 그 아름다운 전경을 담는다. 슬슬 날아다니는 눈발. 엔딩크레딧이 오르며 그간 16회를 달려오며 시청자들을 눈호강시켰던 달달하고 코믹하기도 한 명장면들이 스틸컷으로 보여진다. 

 

그런데 거기에 흐르는 엔딩음악이 어딘가 크리스마스에 어울릴 법한 곡이다. 종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고 창밖으로는 눈발이 날릴 것 같은 느낌의 노래. 마치 현대물의 로맨틱 코미디 엔딩에서 종종 등장하는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퓨전사극인데 크리스마스 분위기라니. 마침 종영일이 크리스마스라 그렇게 선물처럼 맞춘 엔딩일 테지만, 어딘가 이 독특한 퓨전사극에 이 음악이 잘 어울리게 느껴진다. 조선판 로맨틱 코미디의 가능성을 충분히 느끼게 해준 작품이 아닌가. 

 

결국 엇갈렸던 인연의 실타래가 풀리고 저마다 연모했던 이들과 이뤄져 달달한 신혼의 단꿈을 꾸는 모습은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찾아오곤 했던 <러브 액추얼리> 풍의 로맨틱 코미디를 떠올리게 한다. 좌상집 딸 조예진(오예주)은 어머니 박씨부인(박지영)이 가문을 위해 결혼시키려던 병판집 자제 이시열(손상연) 대신 자신이 연모하는 윤부겸(최경훈)과 이뤄져 순덕의 아들 근석(김시우)에게 글공부를 해주는 광경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정순구(허남준)와 혼례를 치른 맹삼순(정보민)은 그가 너무 잘 해줘 글이 안써진다며 귀여운 투정을 부린다. 

 

입만 열면 막말이 튀어나오던 맹두리(박지원)는 마음이 갔던 병판댁 자제 이시열과 혼인해 여전히 걸쭉한 입에도 달달해진 신혼의 한가로운 나날을 보여주고, 목숨을 건 가슴 절절한 사랑을 해왔던 여주댁(박환희) 역시 딸이 흐뭇하게 보는 가운데 안동건(김동호)과 조촐한 혼례를 치른다. 그리고 왕의 사약을 받고 죽은 줄 알았던 정우는 깨어나 역시 자진한 줄 알았던 순덕을 다시 만나 왕이 허락한 광부 원녀 소탕(?)을 위한 암행길에 나선다. 이보다 완벽한 로맨틱 코미디의 엔딩이 있을까.  

 

그런데 잘 들여다보면 <혼례대첩>이 담은 로맨틱 코미디 서사는 현대물의 그것들을 조선판으로 그려낸 것들이 적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좌상집 딸 조예진(오예주)이 혼롓날 예복을 입은 채 도주하는 장면은 결혼식날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진짜 사랑하는 연인을 향해 달려가는 신부가 떠오른다. 연애소설을 쓰던 맹삼순과 아픈 상처 때문에 연애에는 담을 쌓고 살던 정순구가 서로의 연모하는 마음을 확인하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사실 잘 들여다보면 돌싱인 정우와 순덕이 남을 연결해주는 중매를 하다 저들끼리 연모하게 되는 것도 현대물 로맨틱 코미디에서 익숙한 설정이다. 

 

하지만 이 익숙함이 조선사회라는 시공간에서 펼쳐지고, 그 시공간이 갖는 풍속과 문화들을 극적인 서사로 그려내면서 동시에 아름다운 연출로 그려낸 것이 <혼례대첩>의 차별점이었다. 물론 꽤 많은 퓨전사극들이 이런 시도들을 해왔지만, <혼례대첩>이 달랐던 건 그 완성도였다. 따라서 이 작품이 보여준 건 완성도만 높다면 조선판 로맨틱 코미디가 갖는 남다른 묘미와 아름다움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연등들이 곳곳에 빛을 드리우는 조선의 밤거리에서 아름다운 한복과 정취 가득한 갓을 쓴 청춘 남녀들이 만남을 갖는 광경이나, 마치 신윤복의 그림 ‘월하정인’의 한 장면을 보는 것만 같은 담벼락을 배경으로 수줍게 만나는 조선의 청춘들을 담은 연출들, 또 마치 김홍도의 풍속화 속 한 장면처럼 단오 풍속의 정경 속조선 특유의 축제 분위기가 만들어내는 흥에 조선 청춘들의 설레는 마음이 느껴지는 장면들이 그렇다. 이런 그림들은 조선이라는 배경이 아니면 만들어질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껏 사랑하세요’라는 자막과 함께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엔딩으로 마무리된 <혼례대첩>은 조선판 로맨틱 코미디의 가능성을 분명히 보여준 면이 있다. 물론 그 그림의 완성은 로운과 조이현 같은 아름답고 귀여운 배우들의 호연이 가능하게 한 것이지만, 이런 과감하면서도 정성이 느껴지는 섬세한 연출 또한 칭찬 받아 마땅하다. 역사의 무게감을 훌훌 털고 상상력을 마음껏 펼쳐낸 조선판 로맨틱 코미디 <혼례대첩>은, 마지막 자막처럼 시청자들 역시 마음껏 사랑하게 만든 작품으로 기억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KBS)

‘나쁜 엄마’, 웃기면서 울리는 배세영 작가 필력에 모두가 인생연기

나쁜 엄마

“진영순이 너 나와! 너.. 어떻게 나한테 이랴. 어떻게 나한테 끝까지 이랴. 나 미친 년 만들어놓고 어딜 간다고? 웃기는 소리 하지 마! 나는 인정 못햐. 야 요즘 세상에 죽을병이 어딨어? 아니, 못 고치는 병이 어디 있어! 그러니까... 당장 가서 고쳐 와 이년아! 너 아무 데도 못가 이년아. 그러니까 내 옆에서 평생 나랑 싸워야지, 이년아, 이년아.” 

 

JTBC 수목드라마 <나쁜 엄마>에서 영순(라미란)이 위암 말기라는 사실을 알게 된 박씨(서이숙)는 영순의 멱살을 잡고 화를 낸다. 그런데 그 눈에는 눈물이 가득하고, 목소리는 감정을 주체 못해 떨린다. 아들 삼식(유인수)이가 도둑질에 감방까지 갖다 와 영순의 아들 강호(이도현)와 늘 비교되는 걸로 마음의 앙금이 있어 겉으로는 퉁명스럽게 대하지만, 그러면서도 영순을 동생처럼 챙기는 따뜻한 인물이 바로 박씨다. 

 

화를 내지만 절절한 마음이 깃든 박씨의 이 묘한 대사는 <나쁜 엄마>의 무엇이 이토록 시청자들의 마음을 잡아 끌었는가를 잘 보여준다. 배세영 작가는 희비극에 능수능란한 베테랑이다. 코미디를 잘 쓰고, 무엇보다 캐릭터를 생생하게 만들어내는 이 작가는 그 웃음 속에 깃든 삶의 비의나 페이소스를 정확히 알고 있다.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처럼, 코미디의 웃음에는 저마다의 비의가 있을 수 있다는 걸 이 작가는 즐거운 반전을 보여주는 인물들과 톡톡 튀는 대사들을 통해 그려낸다. 

 

박씨 역할을 한 서이숙의 연기가 그 어떤 작품에서보다 빛이 나는 건 이런 캐릭터의 매력이 이 베테랑 연기자의 연기력을 쿡쿡 찔러 끄집어내기 때문일 게다. 이건 서이숙만의 이야기가 아니니까. 이미주(안은진)와 그의 엄마 정씨(강말금)가 나누는 대화 속에서도 이 두 사람의 연기자로서의 매력은 피어난다. 딸을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정씨는 딸이 강호를 좋아하는 걸 반대한다. 강호가 제 정신으로 돌아온 줄 모르는 정씨는 딸이 자기처럼 남편 수발하느라 인생을 힘겹게 살아가는 걸 원치 않기 때문이다. 

 

그 역시 영순을 친 동생처럼 여기고, 그래서 그의 아들 강호가 사고로 7살 기억으로 돌아간데다, 영순마저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는 마치 자신의 일처럼 슬퍼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미주 앞에서는 아이들이 강호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그들의 관계를 반대한다. 딸 걱정 하는 마음이 더 큰 것이다. 그런 반대에 미주가 던진 한 마디는 정씨를 아무 말도 못하게 만든다. “엄마 닮아서.” 미주는 아빠가 그렇게 속을 섞였어도 끝내 아빠를 챙겼던 엄마에 대한 고마움을 꺼내놓는다. 미주에게 아빠라는 존재를 엄마가 끝내 지켜준 것에 대한 고마움이다. 

 

<나쁜 엄마>는 이처럼 인물을 단편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그 인물이 가진 여러 결들을 겹쳐놓고 그래서 반전의 매력을 꺼내놓는다. 윤항기가 부른 “나는 행복합니다-”를 습관처럼 들으며 애써 밝게 살아가는 영순 역할의 라미란이 그 밝음 밑에 깔린 깊은 상처를 통해, 그 강박 같은 습관이 사실은 불행했던 삶의 깊이를 말해주는 거라는 것까지 표현해낸 것처럼, 차가운 검사에서 7살 아이 같은 해맑은 모습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따뜻한 강호의 본 모습을 연기한 이도현에게서는 이제 한층 깊어진 연기의 맛이 느껴진다.  

 

도둑질을 하고, 사채업자에게 쫓기는 가볍디 가벼운 방삼식이라는 인물을 연기한 유인수도 그렇다. 그 가벼워 보이는 인물의 뒤에 숨겨져 있는 선한 면모들이 유인수라는 연기자를 통해 제대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조우리 마을 사람들 역할을 한 김원해, 장원영은 물론이고 아역의 기소유, 박다온 또 짧게 등장해 강렬한 인상을 남긴 트롯백 역할의 백현진에 이 마을에 들어와 어쩌다 ‘귀농 청년’이 된 소실장, 차대리 역할의 최순진, 박천, 또 늘 얼굴에 팩을 한 채 등장했던 이장부인 역할의 박보경까지 <나쁜 엄마>에는 빈틈없이 채워진 인생연기들이 가득하다. 

 

드라마의 긴장감을 끝까지 챙겨준 송우벽, 오태수 역할의 최무성, 정웅인과 그 악역의 희생자가 된 오하영 역할의 홍비라도, 또 카메오로 출연한 류승룡도 빼놓을 수 없다. 배세영 작가는 이 여러 인물들이 겹쳐진 사건들을 코미디와 스릴러, 휴먼드라마를 오가며 풀어가면서도 출연 배우들이 출연한 작품들의 패러디까지 집어넣는 여유를 선보였다. “지금까지 이런 마을은 없었다. 이것은 조우리인가 천국인가....” 류승룡이 등장해 <극한직업>을 패러디한 대사를 선보이는가 하면, 방삼식과 함께 이미주가 병원에 감금된 오하영을 구출할 때 의사 옷에 안경을 낀 미주를 보며 “아주 슬기로워 보여”라고 하는 대목으로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패러디했다. 

 

<나쁜 엄마>는 영화 시나리오 작업으로만 주목받았던 배세영 작가가 드라마 작업에서도 베테랑다운 작품 세계를 펼쳐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작품이다. 특히 코미디의 세계를 깊이 이해하고 그래서 웃음 뒤에 숨겨진 눈물을 끄집어내는 이 작가가 들려준 반어법은 비정한 세상을 꼬집는 사회적인 의미까지 담았다. 나쁜 엄마가 아니라 나쁜 세상이 있었다는 걸 보여주고, 벌써 아쉽게도 끝을 내려는 ‘나쁜 드라마’다. 시청자들의 마음을 이토록 사로잡아놓고 떠나는 이 드라마에 대한 여운이 이토록 진하게 남았는데. 먼저 간다는 영순에게 “아무 데도 못가 이년아”라고 말하는 박씨의 마음이 이럴까 싶을 정도로. (사진:JTBC)

뮤지컬 영화 선입견 깬 ‘영웅’, 그 압도적인 감동의 이유

영웅

뮤지컬 영화는 안된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선입견이 있다. 극장에서 보는 영화가 주는 몰입감을 극 중 노래나 춤이 오히려 깨버리는 결과가 종종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뮤지컬 자체가 익숙하지 않은 대중들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대사를 하다 노래를 하는 광경이 주는 이질감이 낯설어 생겨나는 결과다. 

 

게다가 이미 오래도록 무대에 오른 뮤지컬 공연이 원작이라면? 원작을 가진 작품들이 갖는 숙제처럼 원작과의 비교가 부담으로 다가온다. 이미 뮤지컬로 본 작품을 굳이 영화관에서 또 봐야 하나 하는 질문이 따라온다. 또 뮤지컬은 극장을 찾아갈 때부터 관객들이 그 형식을 기대하지만, 영화에 익숙한 관객들이 극장에서 뮤지컬을 보는 경험은 기대를 깨는 일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윤제균 감독의 <영웅>은 다르다. 눈이 하얗게 쌓인 벌판을 눈보라를 뚫고 걸어 나가는 안중근(정성화)의 스펙터클한 광경으로 문을 여는 이 뮤지컬 영화는 그 장면만으로 원작과는 다른 영화만이 보여줄 수 있는 게 있다는 걸 체감시킨다. 실로 그건 중간 중간 등장하는 스펙터클만이 아니다. 공연장에서 배우들이 펼치는 연기는 노래와 동작 정도를 통해 그 감정이 전해지지만, 영화는 그 배우가 노래하며 흘리는 눈물과 비장한 얼굴 표정, 떨림 하나하나까지 포착함으로써 감정을 극대화시킨다. 

 

또 장면이 교차되거나 판타지를 더한 환상적인 연출도 가능해진다. 그런 연출과 편집은 뮤지컬과는 달리 영상에 스토리텔링을 더해주고, 장면 전환에 있어서도 속도감을 부여한다. 이처럼 영화만이 갖는 강점들을 <영웅>에 가져온 윤제균 감독은 이를 통해 뮤지컬과 영화 사이의 간극을 메워버린다. 실로 뮤지컬을 봤던 필자의 경험을 빌어 단언하건대, 뮤지컬도 좋지만 영화가 주는 감동은 뮤지컬을 압도한다.

 

안중근을 소재로 하는 스토리 역시 <영웅>이라는 작품에 선입견을 만든다. 이미 너무나 많이 알려진 역사적 사실들이라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제균 감독은 <영웅>을 통해 안중근을 전기 속에 등장하는 역사적 인물로만 그리지 않았다. 윤제균 감독이 가장 잘 하는 것이지만, 그는 이 작품 속에서 독립을 위해 투신하는 투사들을 모두 웃고 울고 농담도 하는 사람냄새 나는 인물로 그렸다. 

 

시작은 ‘단지동맹’을 하는 안중근과 동지들의 비장함으로 열지만, 금세 영화는 이들이 만두가게에서 보여주는 너무나 평범하면서도 웃음이 터지는 일상적인 면면을 담는다. 윤제균 감독이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서도 밝힌 바지만, <영웅>은 소재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히는 긴장감과 비장미로 채워질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그래서 윤제균 감독은 그 사이사이에 숨통을 틔워주는 이완의 요소가 필요했다고 했다. 그건 주효했다. 영화는 비장함과 동시에 따뜻함과 유쾌함이 더해져 감정을 요동치게 만든다. 윤제균 감독이 잘 하는 ‘감정적 롤러코스터’에 올라타게 만든다. 

 

여기에 뮤지컬 영화가 갖는 노래는 이러한 감정들을 더욱 극대화한다. 정성화는 말할 것도 없고 김고은, 박진주 같은 배우들은 노래 잘 하기로 이미 유명하지만, 이들은 <영웅>에서 그저 노래를 위한 노래를 부르는데 머물지 않는다. 영화이기에 더욱 그것이 강조된 것이겠지만, 이들은 노래 또한 연기의 하나로 풀어낸다. 정성화의 비장함은 기막힌 노래실력과 더불어 부릅뜬 눈빛만으로도 관객들을 압도하고, 김고은의 노래는 하나의 절규가 되어 듣는 이들의 폐부를 찢는 듯한 소름을 안긴다. 여기에 때론 귀엽고 때론 우습다가도 때론 아프디 아픈 박진주의 노래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안중근의 어머니 조마리아 역할의 나문희가 부르는 ‘사랑하는 내 아들, 도마’는 그 유명한 편지 속 문구 “항소는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니 그냥 죽어라”라는 대사와 함께 절절한 엄마의 마음을 담아 관객들의 가슴을 휘저어 놓는다. 제 아무리 뮤지컬로 몇 차례를 봤고, 이 내용을 소설이나 역사를 담은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전해 들었어도, 나문희의 노래 앞에서는 누구나 펑펑 눈물이 터질 수밖에 없는 장면이다. 

 

<영웅>이 담고 있는 안중근의 서사는 세 면모가 겹쳐져 있다. 하나는 독립운동을 위해 기꺼이 한 목숨을 던지는 의사 안중근의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한 부모의 아들이자 아내의 남편이자 아이들의 부모인 인간 안중근의 모습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마치 예수가 죽을 것을 알면서 고뇌하면서도 그걸 외면하지 않고 기꺼이 그 곳을 향해 걸어 나가는 구도자이자 메시아 같은 도마 안중근의 모습이다. 이 세 면면은 <영웅> 속 안중근을 비장하면서도 인간적이고 그러면서도 숭고한 인물로 각인시킨다. 

 

최근 극장은 굳이 그 곳을 찾아야 하는 이유를 제시해야 될 상황에 놓였다. <아바타:물의 길>이 그 이유로 스펙터클한 체험을 제시하고 있다면, <영웅>은 시각적, 청각적 체험은 물론이고 감정적 체험까지를 제시하고 있다. 극장 체험이 결코 아깝지 않은 영화다. 심지어 뮤지컬을 봤던 관객일지라도. (사진:영화'영웅')

섣부른 사이다도 뻔한 고구마도 싫다...하이퍼 리얼리즘 드라마

며느라기2

카카오TV <며느라기2>가 돌아왔다. 시즌1에서 <며느라기>는 이른바 ‘하이퍼 리얼리즘 드라마’라고 불렸다. 주말드라마에서 틀에 박힌 모습으로 반복되던 시월드가 아니라, 바로 우리가 실제로 겪는 시월드를 지나치게 극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담아냄으로써 더 큰 공감대를 이끌어서다. 

 

실제로 드라마가 늘 소비하던 시월드는 ‘악마화’되어 표현되는 경향이 있었다. 며느리에게 대놓고 집안 운운하며 무시하고, 막말까지 일삼는 빌런화된 시어머니는 그래서 현실적이라기보다는 ‘드라마 속 캐릭터’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저런 시어머니가 요즘 어딨니?”하고 실제 시어머니들이 말할 정도로. 

 

하지만 <며느라기>는 달랐다. 너무나 평범하고 또 며느리를 나름 배려하는 모습까지 보이는 평범한 시월드 속에서 민사린이라는 초보 며느리가 겪는 ‘미세 먼지 차별’을 담고 있어서다. 빌런화되지 않은 시월드 속 먼지 차별은 그것이 특수한 사례가 아닌 누구나 별 문제시하지 않고 당연하게 받아들여 생겨나는 가부장적 시스템의 부조리라는 걸 드러낸다. <며느라기>의 가치는 바로 이 하이퍼 리얼리즘이 주는 격한 공감과 그것이 드러내는 시스템의 문제를 우리 모두 고민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시즌2의 첫 회는 시즌1과 달라진 남편 무구영(권율)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민사린이 시월드에서 겪는 차별들을 갈등들을 통해 인식하게 된 무구영은 시즌1에서 보여줬던 시어머니 생일상 에피소드와는 다른 시즌2에서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내가 일이 바쁘다며 자신이 여동생 무미영(최윤라)과 생일상을 차리겠다고 나선 것. 시댁 식구들은 여전히 며느리가 시어머니 생일상도 안차린다며 ‘도리 운운’ 하지만, 여기에 대해서도 무구영은 “며느리 도리가 어딨냐?”고 민사린을 방어하고 나선다. 

 

즉 이제 시즌1의 초보 며느라기 시절은 지났다는 걸 시즌2 첫 회는 그리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달라진 모습을 담는 이유는 시즌2의 이야기가 이제 며느라기의 다음 단계로 넘어갈 거라는 걸 예고한다. 그것은 제작발표회에서도 소개된 것처럼 임신, 출산, 육아 관련 문제들이다. 아이는 언제 갖느냐고 자꾸만 부추기는 시어머니 앞에서 고민하고 갈등하는 민사린과 무구영은, 마치 그것이 결혼하면 당연한 일처럼 치부되지만 사실은 직장 가진 여성이 겪어야할 엄청난 현실의 격랑을 예고한다. 

 

시즌1에 이어 <며느라기> 시즌2에도 요구되는 건 오히려 담담하게 현실을 포착하는 시선이 아닐까 싶다. 너무 과한 섣부른 판타지 사이다도 또 뻔한 고구마 전개도 아닌 표현 그대로의 하이퍼 리얼리즘의 시선. 늘 봐왔던 극적 대립을 의도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각자 인물들이 저마다 마주한 상황 속에서 보여주는 리얼한 반응들이 촘촘히 쌓여가며 부딪치고 그 과정 자체의 공감을 일으키는 드라마가 그것이다. 

좋좋소

이 달에 공개를 앞두고 있는 왓챠 오리지널 콘텐츠 <좋좋소> 시즌4에 대한 시청자들의 기대도 <며느라기2>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 직장을 소재로 하는 드라마 속에서도 <좋좋소>가 말 그대로 ‘격공’ 드라마로 큰 인기를 끈 것 역시 ‘하이퍼 리얼리즘’으로 들여다 본 너무나 리얼한 중소기업의 직장생활 현실이 공감됐기 때문이다. <좋좋소>는 조충범(남현우)이라는 사회 초년생이 정승 네트워크라는 중소기업에 들어가 겪는 자잘한 일상의 부딪침들을 담담하게 담아낸 작품이다. 

 

물론 코미디가 깔려 있지만 거기에는 중소기업의 조악한 현실이 있는 그대로 드러난다. 믿음으로 가는 거라며 계약서도 잘 쓰지 않으려는 정사장(강성훈)이나 회사에 불만을 드러내며 독립해 나가는 백차장(김경민), 가장의 무게가 웃프게 느껴지는 이과장(이과장), 그리고 당차면서도 현실적인 이미나 대리(김태영), 사회생활이 익숙하지 않아 보이지만 남다른 에너지로 사무실을 밝게 만드는 이예영(진아진)까지. 이 드라마는 어느 특정 인물을 빌런화하지 않고 저마다의 장단점이 서로 부딪치는 이야기를 담아냄으로써 오히려 큰 공감대를 얻었다. 

 

<며느라기>의 시월드나 <좋좋소>의 직장생활은 그간 숱한 드라마들이 다소 뻔한 방식으로 극화해온 소재다. 갈등을 만들어내기 위해 심지어 선악 구도를 세우고, 한 사람을 빌런화함으로써 고구마 설정으로 뒷목을 잡게 만들거나, 그들을 뒤집는 방식으로 사이다 판타지를 줬던 게 그 방식이다. 하지만 이런 시점으로 우리가 일상으로 겪는 이런 상황들에 대한 공감을 얻던 시대는 지났다. 있는 그대로 자질한 디테일들을 애써 극화하지 않고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 진짜 이 갑갑하고 답답한 현실을 살아내고 있는 시청자들은 이제 오히려 조미료를 뺀 이들 하이퍼 리얼리즘에 격공하고 있다.(사진:카카오TV, 왓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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