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은 서민들과 어떻게 만났나

‘아마데우스’, ‘파리넬리’, ‘피아노’, ‘홀란드 오퍼스’, ‘불멸의 연인’, ‘레드 바이얼린’, ‘샤인’... 클래식을 소재로 한 영화는 많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클래식을 소재로 한 드라마는 왜 거의 없는 걸까. 분명하지는 않지만 추정하자면 아마도 드라마라는 좀 더 대중적인 장르에 클래식이라는 고급스러운(?) 소재가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다 느꼈을 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거의 유일무이한 본격적인 클래식 소재 드라마였던 ‘노다메 칸타빌레’를 통해 우리는 알게 되었다. 클래식은 충분히 대중들이 즐길 수 있는 소재가 된다는 것을. 우리네 드라마 지형도에서 클래식을 다룬 ‘베토벤 바이러스’가 등장한 배경에 ‘노다메 칸타빌레’의 영향력을 배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같은 소재라고 드라마도 같을까. ‘베토벤 바이러스’에는 ‘노다메 칸타빌레’에는 없는 그 무엇이 있다.

‘베토벤 바이러스’와 ‘노다메 칸타빌레’, 무엇이 닮았나
클래식이라는 소재를 대중적으로 그린다는 것이 쉽지 않아서일까. ‘베토벤 바이러스’와 ‘노다메 칸타빌레’는 여러모로 닮은 구석이 많다. 먼저 주인공이 한 번 음을 듣기만 하면 전부 외워버리는 타고난 음악 천재라는 점이다. ‘노다메 칸타빌레’의 노다메가 그렇다면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건우(장근석)가 그렇다. 노다메와 그가 좋아하게 되는 치아키의 관계는, 강건우와 두루미(이지아)의 관계와 성별이 달라졌을 뿐 그 구도는 유사하다. 여기에 ‘노다메 칸타빌레’의 절대적인 스승이 되는 세계적인 지휘자 슈트레제만은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김명민)와 유사하며, 치아키가 지휘를 배우게 되는 과정 또한 강건우가 지휘자의 길을 걷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

인물 설정 이외에도 이 두 드라마는 스타일이 유사하다. 아마도 클래식이라는 소재가 가진 선입견 때문일 것이다. 드라마는 오히려 그 선입견을 깨기 위해 진지해지기보다는 코믹하고 가볍게 굴러간다. 클래식을 소재로 했기에 그 음악이 주는 힘을 드라마 속으로 끌어들이는 방식도 유사하다. 이렇게 보면 마치 ‘베토벤 바이러스’와 ‘노다메 칸타빌레’는 거의 같은 작품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 두 작품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있다. 그것은 작품의 디테일을 구성하는 인물의 면면이 다르다. 그 인물들을 파고 들어가 보면 ‘베토벤 바이러스’가 우리네 정서에 어떻게 적응하고 있는지, 또 ‘노다메 칸타빌레’에는 없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클래식이 서민 정서와 만났을 때
‘베토벤 바이러스’가 그리는 인물들의 특징은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아줌마 첼리스트 정희연(송옥숙)을 보면 알 수 있다. 음대를 졸업했지만 남편과 자식 뒷바라지를 하다가 어느덧 아줌마가 되어버린 정희연(송옥숙). 누군가 “아줌마!”하고 부를 때 그녀는 “제 이름은 정희연이에요.”하고 말할 정도로 자기 정체성을 찾고 싶어한다. 하지만 20년 간의 공백은 벽이 높다. 악명 높은 지휘자 강마에(김명민)는 그녀의 형편없는 실력을 가차없이 ‘똥 덩어리’라 표현하며 인간적인 모멸감을 준다. 강마에 식의 표현으로 말하자면 여기 오케스트라를 구성하는 인물들은 대부분이 클래식과는 어울리지 않는 ‘똥 덩어리’들이다.

후배를 상사로 모시면서 갖은 굴욕을 당하면서도 정작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은 하지 못하는 콘트라베이스 주자 박혁권(정석용)은 우리네 보통 샐러리맨들의 자화상이며, 한 때 서울 시향에서 연주할 만큼 실력을 가졌지만 정년 퇴직한 후 노인네 취급을 받는 오보에 주자 김갑용(이순재)은 우리네 노년층의 자화상이다. 밤무대 연주자라는 이력밖에는 없지만 꿈은 오케스트라 연주자인 배용기(박철민)는 우리네 마이너리티의 표상이고, 돈이 없어 음악공부는 고사하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하이든(쥬니)은 우리네 저소득층 자녀들의 현실이다. 이 서민적 이미지를 가진 단원들은 모두가 저마다의 사연 하나씩을 들고 클래식이라는 세계로 들어간다. 그러니 클래식이라는 낯선 공간에 대한 도전은 이제 서민들의 잊고 있었던 꿈에 대한 도전으로 전화되면서 대중적인 공감대를 확보한다.

‘노다메 칸타빌레’에서 경쟁하는 인물들 간의 팽팽하고도 흥미로운 이야기 그 이상을 발견하기 힘들었던 것은 바로 이 같은 ‘베토벤 바이러스’가 보여주는 우리네 정서와의 교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베토벤 바이러스’는 바로 우리 주변에 있는 흔하디 흔한 인물들 속에서 비범함을 찾아내려 안간힘을 쓴다. 그리고 오케스트라에 있어서 그것은 혼자되는 일이 아니라, 여럿이 모여 함께 했을 때 가능한 것으로 드라마의 감동을 증폭시킨다. 사실 이 시대에 클래식이란 흔히 오인되어 왔던 것처럼 더 이상 어느 한 계층만의 전유물이 되지 못한다. ‘베토벤 바이러스’가 클래식이라는 소재를 통해 말하려는 것도 그런 것이 아닐까. 현실에 허우적대면서 감히 내 전유물이 될 거라 꿈꿔보지 못한 것들을 이제는 꿈꿔보라고. 너무 높아 꾸지 못할 꿈은 없는 거라고.
(본 원고는 청강문화산업대학 사보 100도씨(100C)에 게재된 원고입니다)

독특한 소재 클래식, 우리 식으로 풀어내

현대극이 사극을 넘었다. ‘주몽’이후, 현대극과의 경쟁에서 연전연승하던 사극불패 신화가 깨졌다. 그것도 고구려 사극의 연장선상에 있는 대작 ‘바람의 나라’와 퓨전사극의 새로운 역사를 열 ‘바람의 화원’과 동시에 맞붙은 결과이다.

물론 ‘바람의 화원’은 이제 막 시작했기 때문에 아직 ‘베토벤 바이러스’의 완승을 말할 단계는 아니다. 하지만 본래 초반부터 강세를 보이기 마련인 사극의 시청률 경향을 봤을 때, 이제 11%대를 넘기고 있는 ‘바람의 화원’이 17%대를 향해 가는 ‘베토벤 바이러스’의 상승곡선을 꺾기는 만만찮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시청률이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단지 현대극의 부활을 알리는 하나의 지표로서 ‘베토벤 바이러스’의 가치를 논하기 위해 시청률을 거론했을 뿐이다. 작품의 완성도만을 두고봐도 ‘베토벤 바이러스’라는 드라마는 그동안 침체를 겪었던 현대극의 부활을 예고하기에 부족함이 없기 때문이다.

틀에 박힌 삼각관계나 신데렐라 이야기, 늘 있던 재벌가 스토리 같은 옛 드라마의 흔적을 ‘베토벤 바이러스’에서는 거의 발견하기가 힘들다. 소재 자체가 드라마로서는 국내에서 처음 시도되는 클래식을 다루고 있고, 스토리 또한 지금껏 봐왔던 여느 드라마들과는 궤를 달리한다.

사실 이 작품은 ‘노다메 칸타빌레’라는 일본 드라마를 연상시키는 부분이 많다. 하지만 만일 그 정도에 머물렀다면 이처럼 폭발적인 반응을 얻지는 못했을 것이다. 거기에는 독특한 ‘베토벤 바이러스’만의 클래식에 대한 재해석이 들어가 있다. 클래식이라 하면 떠오르는 어딘지 상류층의 문화 같은 이미지의 편견을 이 드라마는 보기 좋게 깨고 있다.

그것은 이 ‘베토벤 바이러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면면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음대를 졸업했지만 남편과 자식 뒷바라지로 “다음에, 다음에”하다가 어느덧 아줌마가 되어버린 정희연(송옥숙). 누군가 “아줌마!”하고 부를 때 그녀는 “제 이름은 정희연이에요.”하고 말한다. 익명의 아줌마보다는 정희연이라는 첼리스트로서의 이름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0년 간의 공백을 안고 나간 자리에서 악명 높은 지휘자 강마에(김명민)는 그녀를 “똥 덩어리”라 부르며 인간적인 모멸감을 안겨준다. 그리고 그 똥 덩어리는 자신의 한계를 넘고 정희연이라는 자기 이름에 책임을 지는 연주를 해낸다. 똥 덩어리로 살아왔던 그녀가 사실은 자신이 금 덩어리였다는 것을 알게되는 순간이다.

오케스트라가 하고 싶어 모인 인물들은 대개가 정희연 같은 보통 사람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공무원으로 살아가며 귀가 먹기 전에 오케스트라를 한 번 더 하고 싶은 두루미(이지아), 서울시향을 정년퇴직했지만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연주 기회를 얻지 못하는 김갑용(이순재), 밤무대 연주자 배용기(박철민), 재능은 있어도 돈이 없어 음악공부를 못하는 하이든(쥬니) 등등. 강마에 식으로 표현한다면 클래식이라는 고급스런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인물들이다.

이렇게 보통 사람의 눈높이로 인물들을 배치하고, 그들 앞에 우리가 흔히 클래식이라면 느끼는 위압적인 선입견으로서의 강마에를 세워놓은 이 드라마는 결국 이들이 함께 음악을 연주하는 그 길을 향해 달려간다. 바로 이 부분에서 시청자들은 자신의 잊고 있던 꿈을 이들 보통 사람들의 노력을 통해 다시 발견하는 공감의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클래식이라는 음악 자체가 갖는 새로운 감동의 오브제가 그 경험을 증폭시키고, 기성배우보다는 신인들(혹은 드라마에 한동안 보지 못했던)이 대거 포진된 신선한 연기자들의 연기가 드라마라는 악기를 신명나게 연주해준다. 무엇보다 김명민이라는 연기자의 힘은 다른 연기자들의 연기를 빨아들일 만큼 강력한 블랙홀로서 드라마 전체를 이끌어간다.

사실상 사극의 성장은 퓨전사극이라는 새로운 틀의 등장과 함께 이루어진 것이지만, 동시에 현대극, 그 중에서도 트렌디 드라마의 몰락과도 연관이 있다. 하지만 ‘베토벤 바이러스’는 현대극이 늘 받아왔던 이 선입견, 즉 트렌디의 그림자를 거의 벗겨내고 있다. 작년 현대극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커피 프린스 1호점’에 이어 ‘베토벤 바이러스’가 어디까지 현대극의 지평을 넓혀놓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