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꼬집는 비현실, <낭만닥터>의 판타지

 

출세 만능의 시대. 출세를 위해서라면 양심도 생명도 이해타산에 밀려버리는 시대. 어쩔 수 없다는 변명으로 타인의 희생조차 정당화해버리는 사람들. 힘이 없다는 이유로 힘 있는 자들에게 찍히고 싶지 않아서 반쯤 눈감은 채 진실을 외면하는 사람들. 그러한 이들의 비겁한 결속력이 기득권이란 이름으로 세상에 군림하고 있었으니.”

 

'낭만닥터 김사부(사진출처:SBS)'

SBS 월화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에 강동주(유연석)의 목소리로 깔리는 이 내레이션은 요즘 같은 시국에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병원을 다루는 의학드라마에서 진실이니 비겁한 결속력이니 기득권이니 또 군림이니 하는 단어들이 등장한다는 건 이 드라마가 가진 날선 현실 인식을 드러낸다. <낭만닥터 김사부>는 병원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과거 천재적 외과의사로 세간의 시선을 받던 부용주(한석규)는 현 거대병원 원장 도윤완(최진호)이 꾸민 계략에 의해 철저히 추락하게 됐다. 송현철(장혁진)이 수술 중 사망한 환자를 그가 수술한 것으로 둔갑시키고 병원의 의사들과 간호사들까지 입막음함으로써 결국 병원을 떠나게 만들었던 것. 이후 부용주는 김사부라는 이름으로 돌담병원에 들어와 신분을 속인 채 살아가게 되었다. 결국 그렇게 거짓과 비겁으로 결속된 그들이 기득권이 되어 세상에 군림하고 있다는 것.

 

<낭만닥터 김사부>는 거대병원이라는 부패한 시스템을 표징하는 공간을 통해 출세와 권력을 위해서라면 양심도 생명도 버리는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 대한 냉엄한 비판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그 현실 비판의 방식이 독특하다. 그것은 비현실적 공간인 돌담병원이라는 이상적 병원을 통해서다. 도윤완으로 대변되는 거대병원이 우리네 부패한 시스템의 현실을 드러낸다면, 김사부로 대변되는 돌담병원은 그 정반대의 비현실적인 이상적 시스템을 그려낸다.

 

돌담병원은 우리가 흔히 겪었던 자본화된 병원들과는 사뭇 다르다. 물론 시설이나 의료기기, 의료진의 수 같은 규모는 조악하기 이를 데 없다. 하지만 이곳은 적어도 수술비 문제 같은 것은 전혀 우선시되는 분위기가 아니고 전공과를 두고 벌어지는 병원 내 알력이나 권력 투쟁 같은 것들은 찾아보기 힘든 곳이다. 오롯이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것에만 맞춰진 진짜 병원’. 하지만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비현실이 되어버린 이상이 바로 돌담병원인 셈이다.

 

그래서 <낭만닥터 김사부>가 보여주는 건 비현실을 통해 현실을 꼬집는 우화 같은 것이다. 거대병원에서 저 마다의 상처를 안고 돌담병원으로 온 강동주나 윤서정(서현진)은 그래서 김사부를 만나면서 새로운 대안적인 시스템을 경험하고 성장해간다. 그들이 그 과정을 통해 거대병원 같은 부패한 시스템에서 겪었던 상처를 치유해가는 과정은 그래서 시청자들에게는 마치 지금 현실이 주는 허탈함과 황망함 같은 것들을 어루만져주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물론 이건 지극히 낭만적인생각이다. 하지만 그 낭만이 현실을 꼬집는 힘은 의외로 강력하다. 이성적으로 판단하면 계란으로 바위치기같은 짓은 누구도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성을 뛰어넘어 바위를 향해 계란을 던지는 그 낭만은 그 비현실적 행위를 통해 현실의 남루함을 드러내게 해준다. <낭만닥터 김사부>의 낭만은 그래서 그저 심쿵하고 달달한 남녀 간의 사랑 같은 걸 말하는 게 아니다. 그 날선 비판의식으로 작금에 우리가 처한 시국에도 충분한 울림을 전해주는 그런 낭만.

동시 종영하는 수목극들, 이들이 준 위로

 

이 허전함을 어떻게 메울까. 지상파 수목드라마 3편이 동시에 종영한다. SBS <질투의 화신>, KBS <공항 가는 길> 그리고 MBC <쇼핑왕 루이>. 시청률은 엎치락뒤치락했지만 오랜만에 지상파 3사의 수목드라마가 어느 한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지지 않고 고르게 인기와 화제를 모았던 작품들이다. 색깔은 조금씩 달랐지만 이들 세 드라마는 저마다 각각의 독특한 화법으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질투의 화신(사진출처:SBS)'

패자와 소수의 관점을 담은 <질투의 화신> 

SBS <질투의 화신>은 코미디와 짠내의 절묘한 결합을 보여준 로맨틱 코미디였다. 질투의 관점으로 풀어낸 사랑이야기는 지금껏 우리가 삼자구도의 멜로드라마에서 봤던 그 상투적인 문법을 깨고 패자의 관점을 새롭게 보여줬다. 절친인 고정원(고경표)과 사랑하는 여자 표나리(공효진)의 사랑을 지켜봐야 하는 이화신(조정석)의 관점은 짠내 나는 상황들의 연속이었지만, 드라마는 그것을 코미디로 엮어내는 절묘함을 보여줬다.

 

물론 결국은 이화신과 표나리의 사랑이 이뤄지고 고정원 역시 이화신과의 우정을 이어가는 해피엔딩을 예고하고 있지만, 드라마 전편에 깔려 있는 소수자에 대한 관심은 각별한 것이었다. 유방암에 걸린 남자, 앵커를 꿈꾸는 기상캐스터, 무성애자, 부모가 없거나 엄마가 둘인 아이들 등등. 결국 이화신과 표나리의 사랑을 지지하는 이면에는 사회적 편견이나 차별을 받는 이런 소수자들에 대한 지지가 깔려 있었다고 보인다.

 

흔히들 질투하면 지는 거다라는 표현을 쓰지만, 그건 가진 자들 앞에서 못 가진 자들이 그래도 버텨내려는 안간힘을 말하는 것일 게다. 결국 <질투의 화신>이 담은 세계는 멜로로 치환된 못 가진 자들의 공감대를 통한 연대 같은 것이 아닐까. 이런 점들이 있어 시청자들은 이 드라마를 통해 위로받을 수 있었다.

 

진정한 관계에 대한 따뜻한 시선, <공항 가는 길>

KBS <공항 가는 길>은 기혼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불륜이란 소재를 다뤘지만, 드라마가 추구하는 메시지는 불륜 그 자체가 아니라 진정한 관계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마치 매듭의 씨줄과 날줄이 이어진 것처럼, 인연에 인연이 겹쳐져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된 최수아(김하늘)와 서도우(이상윤)의 사랑을 다뤘다.

 

이 드라마가 불륜 소재를 넘어서 시청자들에게 심지어 위로와 위안을 줄 수 있었던 건 두 인물이 처한 현실적 상황들에 대한 공감대와 그 아픔과 고통에 대해 배려하고 상대방에게 안식을 주려는 두 사람의 사랑방식 덕분이었다. 그것은 자극적인 일탈로서의 불륜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위한다는 그 진정한 관계가 주는 작은 숨통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섬세한 심리에 대한 천착이 돋보이는 스토리와, 이를 공간이 만들어내는 정서와 제대로 결합해낸 연출 그리고 이야기를 살아 숨 쉬게 하는 연기자들의 디테일한 연기는 오랜만에 보는 어른들의 드라마같은 진중함을 안겨주었다.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잔잔한 시선. 그것만으로도 눈앞에 펼쳐진 답답한 현실을 무화시키는 힘이 되어주었다.

 

순수에 대한 판타지를 담은 우화 <쇼핑왕 루이>

MBC <쇼핑왕 루이>는 아예 대놓고 비현실적 판타지를 담았다. 사고로 인한 기억상실 때문에 엄청난 부호의 손자 루이(서인국)가 산골에서 상경해 동생을 찾는 가난한 소녀 복실(남지현)과 함께 살아가며 만들어낸 판타지란 빈부나 출생과 상관없이 함께 살아가는 삶에 대한 이상적인 풍경에서 나온다. 결국 기억을 되찾고 동생도 되찾은 루이와 복실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과정은, 빈부 격차가 점점 첨예화되어가는 현실의 정반대를 그려냈던 것.

 

골드라인 같은 거대기업이 루이의 매개를 통해 복실이 새롭게 시작한 싱싱라인 같은 작은기업과 동등한 위치에서 손을 잡고 사업을 해나간다는 이야기는 얼마나 비현실적인가. 하지만 이 비현실적 접근은 <쇼핑왕 루이>를 하나의 우화로서 기능하게 만든다. 비현실에 대한 판타지가 현실을 비춰주는 거울 역할을 해준다는 것이다.

 

결국 <쇼핑왕 루이>가 이런 우화를 통해 담으려 했던 건 우리네 현실이 잃어버린 순수에 대한 희구다. 세상과 유리된 채 살아온 데다 기억 상실까지 겪으며 하얀 도화지가 되어버린 루이라는 캐릭터와 산골에서 살아와 도시의 삶과는 완전히 다른 순수를 보여주는 복실이 만들어가는 우화는 그래서, 욕망으로 점철된 현실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작은 위로를 전해줄 수 있었다.

 

물론 드라마 한편이 굉장한 일을 해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힘겨운 삶에 잠시간의 위로를 전해준다는 건 어떤 면에서는 굉장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동시에 종영하는 지상파 3사의 수목드라마들이 우위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모두 저마다의 지지를 받았던 건 바로 그래서일 게다. 특히 요즘처럼 위로가 필요한 시기에는 더더욱.

<낭만닥터>, 거대병원과 돌담병원의 대결구도가 말하는 것

 

복수하려면 저들보다 나은 사람이 되라.” SBS 월화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에서 돈 없고 빽 없어 아버지의 죽음을 맞게 된 어린 강동주(윤찬영)에게 다가와 남긴 김사부(한석규)의 그 말 한 마디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다. 결국 이 드라마는 한 편의 복수극이라는 것. 하지만 그 복수극이 여타의 복수극들과는 사뭇 다르리라는 것.

 

'낭만닥터 김사부(사진출처:SBS)'

이 예감을 보다 확실하게 만드는 건 이 드라마가 그려내고 있는 거대병원과 돌담병원이라는 대결구도다. 어찌된 일인지 거대병원에서 예사롭지 않은 실력을 가진 외과의였던 김사부는 산 속에 위치해 환자들이 전혀 찾아올 것 같지 않은 돌담병원의 외과과장으로 지내고 있다. 그리고 프로포즈를 받는 날 난 사고로 남자가 죽고 상심한 윤서정(서현진)이 등산을 하다 낙상해 손을 다친 채 이 병원에서 살아가고, 어떻게든 기회를 잡아보려 무리하게 VIP 수술을 하다 사망한 환자 때문에 좌천하게 된 강동주(유연석)가 이 병원으로 온다. 결국 이 구도는 거대병원에서 어떤 사정들로 인해 밀려나게 된 인물들이 돌담병원을 통해 무언가를 이룬다는 이야기의 전제처럼 보인다.

 

거대병원과 돌담병원. 이 대결구도는 그래서 이 작품이 리얼리티를 추구한다기보다는 한 편의 우화 같은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는 걸 잘 말해준다. 물론 김사부를 중심으로 어린 강동주와 청년이 된 강동주가 인연을 이어 돌담병원에서 다시 만나고, 또 산에서 낙상한 윤서정을 하필이면 김사부가 발견해 돌담병원에서 치료해주고 함께 지내게 되는 이야기에 개연성 부족을 지적하는 건 타당한 일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개연성보다는 이 구도가 가진 우화적 메시지에 더 집중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대결구도는 어떤 메시지를 던지려고 구축된 것일까. 이미 강동주가 겪음으로써 알게 된 것들이지만, 그는 현실이 실력보다는 스펙이나 집안 같은 관계에 의해 다른 대우를 받는 차별의 시대라는 걸 드러내는 인물이다. 제 아무리 수석의 실력을 갖추고 있지만 그는 집안 좋은 친구에게 늘 밀리게 되는 현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는 그런 부조리한 시스템 속에서도 성공에 대한 욕망을 버리지 못한다. 그래서 그런 집안에서 태어나지 못했을 바에는 차라리 힘 좋은 VIP와 친분을 쌓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한다. 물론 그래서 무리하게 시도한 수술에서 그는 실패해 좌천하게 되지만.

 

거대병원이 권력과 성공을 지향하고 그 시스템은 실력이 아닌 스펙과 집안 같은 태생이 무엇이냐는 것에 의해 굴러간다면, 돌담병원은 그런 권력이나 성공 따위는 그다지 중요해보이지 않고 오로지 환자를 살린다는 목적이 중요하며 나아가 실력만이 시스템으로 굴러가는 곳이다. 그래서 김사부라는 캐릭터는 권력과 성공 같은 욕망이 아닌 의사의 본질적인 직업적 소명이라고 할 수 있는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는 의사로 상징되는 인물이다. 그의 밑에서 진정한 의사의 길을 배워나가는 강동주와, 트라우마를 극복해내는 윤서정의 이야기가 이 드라마의 중요한 스토리다.

 

돌담병원 같은 우화적인 공간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역시 우화적인 인물들을 이 드라마가 굳이 구축해 보여주는 이유는 그것이 거대병원 같은 현실의 부조리한 시스템에 대한 경종을 울리기 위함이다. 어딘지 성공지향적인 과거의 시스템에 머물러 있으며, 생명보다는 자본주의의 논리에 의해 굴러가는 거대병원은 어쩌면 우리네 현실의 축소판 같은 뉘앙스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시스템을 벗어나 온전히 생명으로서의 인간에 집중하는 돌담병원의 휴머니티는 그 자체로 비판적 우화의 틀을 만들어낸다.

 

김사부에게 어떤 힐링과 위로를 기대하게 되는 건 그래서다. 매일 같이 쏟아져 나오는 부조리하고 비뚤어진 욕망의 시대에 김사부가 전하는 휴머니즘이 만만찮은 의미를 던져줄 것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실력 있는 그들이 저 산골로 좌천되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우화가 가진 웃픈 현실의 단면을 읽어낼 수 있지 않은가. 그러고 보면 복수하려면 저들보다 나은 사람이 되라.”는 말은 단순한 복수를 뜻한다기보다는 올바르게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복수라는 뜻이 아닐까.

상실의 시대, <쇼핑왕 루이>가 주는 위로란

 

지켜주고 싶다. MBC 수목드라마 <쇼핑왕 루이>의 복실(남지현)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생각이다. 그녀는 현실에선 존재하지 않는 순수함 그 자체다. 산골에서 할머니와 남동생 그렇게 셋이 오순도순 살아왔던 만큼 세상의 때가 하나도 묻지 않은 인물.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남동생 복남(류의현)마저 가출하자 그녀는 동생을 찾기 위해 상경한다. 순수하기 그지없는 복실에게 각박한 서울 살이는 모험이다.

 

'쇼핑왕 루이(사진출처:MBC)'

그런 그녀 앞에 사고로 과거의 모든 기억을 잃어버린 루이(서인국)가 나타난다. 길거리 노숙자가 되어 살아가는 루이를 복실은 단지 동생과 비슷한 옷을 입었다는 것만으로 거둬 먹인다. 그녀가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기억이 돌아와 동생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저 그 루이의 처지를 지나칠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낯선 타지에 의지할 사람 하나 없는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낸다.

 

<쇼핑왕 루이>의 이야기 구조는 마치 동화 같다. 산골에서 살던 집을 떠나와 모험을 떠나는 복실의 이야기가 그렇고, 역시 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온 루이가 사고로 기억을 잃은 채 그녀를 만나 그려가는 이야기가 그렇다. 이 동화 같은 이야기는 그래서 그 발랄한 흐름만 봐도 대충의 결론을 예측할 수 있다. 결국 복실은 동생을 찾는 것이고 루이는 기억을 찾고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이며 두 사람의 사랑은 이뤄지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쇼핑왕 루이>는 예측대로의 결말을 향해가고 있다. 이 특별히 새롭다고도 할 수 없고 그렇다고 진부하지도 않은 이야기가 초반의 부진을 털어내고 점점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하더니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놀라운 반전의 힘을 보여준 까닭은 무엇일까. 그 시작은 멍뭉이로까지 불리던 루이라는 캐릭터의 순수함이 가진 판타지가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 끌었기 때문이지만, 이제 결말에 가까워지면서 새삼 느껴지는 건 복실이라는 캐릭터가 주는 위로가 만만찮다는 점이다.

 

프랑스로 돌아간다며 복실에게 보낸 루이의 기억 노트에는 그간 그가 그녀와 함께 지내며 했던 추억들이 단어들로 빼곡하게 적혀 있다. ‘복실, 토스트, 막심골드, 부산, 500, 장미, 컵라면, 설거지, 버스정류장, 천둥번개, 우산, 운동화, 파마.’ 그 단어 하나하나들은 루이의 기억 속에 각인된 복실과의 추억들이 묻어난다. 갈 곳 없던 그를 보살펴주고 챙겨줬던 복실에게 느꼈을 루이의 고마움이란. 루이는 어색한 글씨로 그녀에 대한 마음을 남긴다. ‘안녕. 복실 머해? 잘 지내? 보고 싶다. 가치 라면 먹고 시퍼. 밥 먹자. 미아내. 내가 마니 미안해. 내가 마니 고마워. 내가 많이 좋아해. 내가 많이 보고싶어. 복실... 이젠 정말 안녕.’

 

그 어떤 물적 보상으로도 채워주지 못할 고마움을 루이는 그 노트의 글자들로 대신한다. <쇼핑왕 루이>라는 이 드라마의 제목이 드러내듯, 물건을 파는 사람과 물건을 사는 사람으로 나뉜 세상이지만, 루이와 복실은 그것을 뛰어넘어 마음과 마음이 서로에게 이어진 소중한 존재들로 자리 잡는다. 이 부분은 요즘 같은 상실의 시대에 특히 우리들의 마음을 울리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토록 찾았던 복남이 루이 대신 죽었다고 믿게 된 그녀가 모든 걸 잃게 되는 상황에 이르게 되면서 시청자들의 복실을 지켜주고픈 마음은 그래서 더 간절해진다. 결국 복남은 죽지 않았고 그런 복남을 찾아낸 루이가 차중원(윤상현)과 김호준(엄효섭), 허정란(김선영) 그리고 조인성(오대환)과 남준혁(강지섭) 등을 모두 동원해 그녀를 위한 깜짝 서프라이즈 만남을 준비하는 일이 엉뚱하면서도 유쾌할 수 있었던 건 바로 이 시청자들의 복실을 지키고픈 마음 역시 거기에 공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믿었던 최소한의 것들까지 무너져 내리고 있는 시국이다. 상실감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 심지어 흘러나오는 순실의 시대라는 말 속에는 그 상실감이 자리해 있다. 그래서일까. 마치 동화 속 이야기처럼 순수함을 끝까지 지켜내고 부자든 거지든 상관없이 보듬어주는 복실이라는 인물이 주는 위로는 더 크게 다가온다. 우리에게 그녀 같은 청춘들이 그 순수함을 끝까지 지켜낼 수 있는 복실의 시대는 요원하기만 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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