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의 기억력 퀴즈, '남자의 자격'의 눈물

버라이어티쇼의 리얼리티에 대한 추구는 어디까지일까. 연기가 아닌 실제상황을 연출해내기 위한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실험은 땀과 눈물에 이어 심지어 기억에 이르기까지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남자와 눈물'이라는 미션으로 진행된 '남자의 자격'은 웃음을 주는 리얼 버라이어티쇼에서는 이색적으로 남자들이 눈물을 흘리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남자가 눈물을 흘린다'는 이 기막힌 설정은 그러나 '울고 있어도 웃음이 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보여줌으로써 희극과 비극이 교차하는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무한도전 - 궁밀리어네어'편은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패러디해 퀴즈쇼를 표방했지만 그 핵심은 '인간의 기억력'이란 새로운 영역을 리얼 버라이어티쇼로 끌어들인 것이었다. 일주일 전 서울의 고궁에서 미리 퀴즈형식으로 곳곳을 경험하게 한 후, 퀴즈쇼를 통해 그 기억을 더듬어가는 과정은 리얼리티의 또 한 측면을 끄집어내게 해주었다. 이것은 '무한도전'이 '정신감정'을 통해 여섯 남자들의 뇌구조를 그려냈던 그 리얼리티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리얼 버라이어티쇼에서 리얼리티를 확보하기 위해 가장 먼저 사용한 것은 '땀'. '무한도전'의 초기버전인 '무모한 도전', '무리한 도전'에서는 이 연기될 수 없는 땀을 연출해내기 위해 포크 레인과 인간의 삽질이 대결하는 등의 상황을 설정했고, 이것은 현재까지도 지속되는 리얼리티의 기본 소재가 되고 있다. 끝없이 달리고 생고생을 하며 땀을 흘리는 모습은 그 자체로 쇼의 리얼함을 드러내준다.

배고픔의 고통 혹은 음식 앞에서의 식욕 역시 리얼리티의 한 요소로 자리했다. '1박2일'이 매회 보여주는 복불복 게임의 진수는 어쩌면 굶주림과 식욕이라는 숨길 수 없는 본능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패밀리가 떴다'의 음식 재료 구하기와 밥 해먹기가 프로그램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 이유일 것이다.

여기에 동시적으로 엮이는 게임은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 리얼 버라이어티의 또 한 축을 이룬다. 게임은 운동에서부터 단순한 복불복 게임, 심리를 알아보는 게임은 물론이고 최근에는 한 순간의 선택으로 미래가 바뀌는 행운을 점치는 게임까지 발전했다. '무한도전'이 'Yes or No 인생극장'에서 시도한 게임은 한 번의 선택으로 자장면을 먹기 위해 마라도까지 가야하는 상황을 연출해 보여주었다.

한편으로 '눈물'은 리얼 버라이어티쇼를 종종 감동적으로 만드는 리얼리티 요소로 자리해왔다. '무한도전'이 '댄스스포츠 편'에서 마지막 아쉬움에 흘린 눈물이나, '봅슬레이 편'에서 팀원들이 고생 끝에 결국 흘린 눈물, 또 '1박2일'이 오지 산골 어르신들과의 하룻밤을 통해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흘린 눈물은 진정성을 드러내주는 리얼리티였다. 그런 면에서 '남자의 자격'이 이끌어낸 눈물을 통한 웃음과 감동은 진정성을 담보한 실험성이 돋보인 코너로 평가받을 만하다.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리얼리티 추구를 위한 도전은 끝이 없다. 그것은 이미 육체적인 본능을 담아냈고, 숨길 수 없는 감정을 쇼로 끌어들였다. 우리는 이 독특한 쇼 속에서 어쩌면 인간의 진면목을 이끌어내는 일련의 실험을 보고 있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거부할 수 없는 재미 속에서 한편으로 우려되는 것은 자칫 이 끝없는 '리얼'에 대한 집착이 버라이어티쇼의 기본이랄 수 있는 다양성을 제한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물론 기우에 불과한 것이겠지만.

새로운 아이템보다는 캐릭터의 호감도가 더 큰 문제

지금 '일밤'이 처한 위기 상황은 한때 SBS의 예능 프로그램들이 처했던 그것과 유사하다. '새로운 코너를 계속해서 시도해보고, 형식을 바꿔보기도 하지만 상황은 좀체 좋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백약이 무효'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그런데 '일요일 일요일 밤에'라는 장수 버라이어티쇼가 왜 갑자기 이런 문제에 봉착한 걸까.

우선 지적되어야 할 것은 '일밤'을 대표할만한 MC가 부재하다는 점이다. 현재 '일밤'에는 신동엽, 김용만, 탁재훈, 김구라, 신정환, 이혁재가 '퀴즈 프린스'에 투입되었고, 소녀시대의 '공포영화제작소'에는 소녀시대, 유세윤, 조혜련, 김신영이, 또 '우리 결혼했어요'에는 황정음과 김용준 커플을 중심으로 신영일, 오영실, 김태현, 유채영이 포진해 있다.

'공포영화제작소'는 애초부터 소녀시대라는 아이콘을 활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MC는 그다지 중요한 위치가 아니다. 이것은 '우리 결혼했어요'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퀴즈 프린스' 같은 코너는 말 그대로 MC들이 나서줘야 되는 코너다. 이 코너의 MC들은 물론 한 때를 풍미했던 인물들이 분명하지만, 현재로서는 그 스타성이 예전 같지 못하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경규가 KBS '남자의 자격'으로 들어가면서 '일밤'은 대표 MC 공백 상태에 놓이게 된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치명적이라고 할 수 있다. 보통 착각하는 것이 새로운 형식의 프로그램이 어떤 성공을 가져와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리얼 버라이어티가 대세가 된 작금에는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이라고 하더라도 그 속에서 리얼한 반응을 보여주고 이끌어내는 대표 MC가 없으면 성공은 요원해진다.

여기서 대표 MC의 중요성은 그 능력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더 중요한 건 매력도다. 신동엽이나 김용만, 이혁재, 신정환, 김구라 같은 MC들이 가진 능력은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누구나 아는 것이다. 능력으로만 따진다면야 '패밀리가 떴다'의 이천희나 박예진 같은 출연자는 이들을 따라갈 수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호감도로 보면 상황은 정반대다. 리얼 버라이어티가 보편화된 상황에서 시청자들은 특별한 형식보다 거기 보고 싶은 캐릭터가 있는가를 먼저 살핀다.

'일밤'의 위기를 가져온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이 호감가는 인물들을 찾아내기가 어렵다는 데 있다. 그렇다면 '공포영화제작소'의 소녀시대는 어떨까. 이것은 거꾸로 코너 자체가 소녀시대의 이미지를 깎아내는 경향이 강하다고 여겨진다. 여전히 시청자들은 소녀시대를 보기 위해 이 코너에 눈길을 주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소녀시대 때문이지 이 코너가 재미있어서가 아니다. 그런데 이 코너의 형식은 소녀시대의 이미지를 깨는 데서 나온다는 아이러니가 있다.

'우리 결혼했어요'는 대표 MC의 부재를 출연자들의 호감으로 대체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프로그램이었다. 알렉스-신애, 서인영-크라운제이가 있던 초창기 커플들에서부터 최근 강인-이윤지, 태연-정형돈에 이르기까지 풋풋한 캐릭터들의 가상결혼이 주는 설정의 판타지는 그 자체로 강한 호감을 이끌어내 주었다. 하지만 판타지가 주는 한계는 곧 드러났고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 꺼낸 카드가 황정음-김용준이라는 실제 커플이었다.

아마도 판타지의 한계를 뛰어넘고 리얼이 주는 화제성과 자극적인 부분들을 이끌어내기 위함이었을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이것 역시 적절한 선택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가상결혼의 커플이 리얼이냐 판타지냐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이것도 결국은 호감도의 문제로 귀결된다. 황정음과 김용준이 실제 커플인 것은 맞지만 과거 네 커플이 해나가던 다채로운 결혼의 판타지 이야기를 대신할 만큼 매력적인 캐릭터인지는 의문이다.

차라리 판타지라면 적절한 캐릭터 설정이라도 하겠지만 리얼을 강조하다 보니 이제는 약간의 설정조차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를 위험에 처해버렸다. 반면 '패밀리가 떴다'를 보면 오히려 해답은 보인다. 대본 공개와 함께 리얼 논란이 나왔지만 '패밀리가 떴다'는 여전히 건재하다. 이유는 리얼이냐 판타지냐에 상관없이 캐릭터들이 여전히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매너리즘의 문제가 불거져 나오자 '패밀리가 떴다' 역시 약간의 변화를 모색했지만, 그래도 그 형태 자체를 깨지는 않았다.

'패밀리가 떴다'는 정체된 캐릭터를 매력적인 게스트의 힘으로 끌고 나갔다. 여러 사정으로 박예진과 이천희가 나가고(여기에는 물론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박해진, 박시연이 그 자리에 대신 들어오게 되었지만 이 프로그램은 특유의 판타지적 설정이 기본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에 충분히 새 멤버들 속에서도 어떤 매력을 끄집어낼 공산이 크다. 그만큼 형식 자체가 인물들의 호감을 끌어내기 좋은 구조로 되어 있는 게 이 프로그램의 최대 장점이다.

작금의 '일밤'이 처한 위기에는 물론 시의적절한 아이템이나 기획을 하지 못한 문제가 크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아이템이라도 그걸 살리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면에서 프로그램을 만들어가는 캐릭터의 부재 혹은 캐릭터들의 떨어진 호감도가 더 큰 문제로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일밤'의 꼬여버린 위기 상황은 바로 이 캐릭터의 문제에서부터 풀어나가야 어떤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마추어리즘이 예능의 새 트렌드가 된 사연

“왜 이래? 아마추어같이.” 이 유행어만큼 작금의 예능 트렌드를 보여주는 게 있을까. ‘개그콘서트’의 종료된 코너 ‘많이 컸네 황회장’에서 황현희가 히트시켰던 이 유행어에는 “알 거 다 아는 사람들끼리 왜 이러냐”는 핀잔이 들어있다. 그런데 이 말이 웃음을 주는 것은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실상은 아마추어 같은 유치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황현희는 조직의 회장이지만 체신머리 없이 일개 실장과 사소한 말싸움을 하면서 이 말을 내뱉는다. 프로라면 보여주지 않을 속내가 살짝 드러났을 때 터져 나오는 웃음. 아마추어리즘은 이렇게 리얼리티 시대에 예능의 새 트렌드로 자리하고 있다.

‘너는 내 운명’에서 발연기 논란을 빚었던 박재정이 ‘상상플러스’의 MC로 자리한 사연은 이 드라마에서 비난받았던 아마추어리즘이 어떻게 예능 프로그램 속에서 빛을 발하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박재정이 보여준 어색한 연기는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그 자체로 리얼이 된다. ‘상상플러스’에서 그가 보여주는 특유의 ‘손발이 오그라드는’ 멘트는 프로정신으로 똘똘 뭉친 MC들이 보여주었던 틀에 박힌 모습을 순간적으로 깨버린다. 이처럼 리얼리티 시대에 연기되지 않는 리얼함은 어색함을 어떤 진면목으로 평가절상시키는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박명수는 콩트 개그 시대에도 활동해온 개그맨이다. 즉 설정에 맞는 연기를 기본적으로 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라디오 DJ로서의 박명수는 겉으로 보기엔 어수룩한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그것이 하나의 설정이며 진행자체는 꽤 매끄럽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방송에서도 마찬가지다. ‘무한도전’이나 ‘해피투게더’에 출연하는 박명수는 MC의 자질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한다. 멘트는 앞뒤가 맞지 않고, 단어 사용은 부적절하며, 발음 또한 어색하기 이를 데 없다.

하지만 그런 모습은 진행본능을 갖고 있는 유재석과 대비되면서 그 상황을 형식적인 것이 아닌 리얼한 것으로 전환시키기도 한다. 유재석은 박명수의 그런 면들을 잘 포착해 전체 분위기를 리얼하게 이끌어나간다. 이렇게 보면 박명수는 어색함을 캐릭터로 활용해 리얼함을 만들어낼 줄 아는 흔치 않은 개그맨으로 볼 수 있다. 아마추어처럼 하는 것이 오히려 그의 프로 정신을 드러낸다는 말이다.

‘무한도전’의 캐릭터들이 리얼하게 그려진 것은 그들이 거의 방송 부적합자들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웃기지 못하는 개그맨으로 불린 정형돈, 사고만 저지르는 바보 정준하, 정신을 쏙 빼놓는 돌+아이 노홍철 같은 캐릭터들은 그 방송에 적합하지 않은 어색함으로 오히려 리얼 버라이어티를 살렸다. 이것은 이후 봇물처럼 쏟아져 나온 리얼 버라이어티쇼들에서 이른바 뜬 캐릭터들의 면면을 보면 확연하게 드러난다.

‘1박2일’의 초딩 은지원, 버라이어티에서 다큐를 찍는다 핀잔 받는 김C가 그렇고, ‘패밀리가 떴다’에서 주목을 받았던 엉성 캐릭터 이천희가 그렇다. 이들 리얼 버라이어티쇼에서 유재석과 강호동이 확고한 메인 MC로서 자리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프로와 아마추어를 넘나드는(진행에 있어서는 프로이면서도 설정에 있어서는 아마추어처럼 행동하는) 능력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거꾸로 예능 프로그램이 점점 웃기는 것을 전문으로 하는 개그맨들보다는 그것이 비전문인 가수나 배우들을 더 선호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들은 웃기려고 하기보다는 그저 그 다른 형식 속에서의 부적응을 통해 엉성함을 드러내는 것만으로 리얼한 웃음을 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자 문제가 되는 것은 오히려 그들이 차츰 그 형식에 적응되는 그 상황이다. 리얼 버라이어티쇼가 하나의 트렌드로 제시하는 도전과제들이 점점 독해지고 상상하기 어려워지는 것은 그 적응상태를 깨기 위한 것이다.

리얼리티에 대한 프로그램의 이 같은 집착은 때론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PD까지 아마추어로 포장하게 만든다. ‘무한도전’에서 실패했던 미션, 좀비 특집이나 ‘1박2일’에서 기상악화로 가려던 제주도를 포기하고 보낸 영종도에서의 하루 같은 실패담은 과거라면 절대로 보여줄 수 없는 어떤 것이었을 것이다. 밤새워 새로 찍던가 아니면 방영을 포기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리얼리티 시대에 이 실패한 미션들은 가감 없이 방영되고, PD들은 자막으로 시청자에게 사죄를 하는 모습을 연출한다. 하지만 이 성의 없어 보이는 아마추어리즘을 표방한 영상들은 오히려 그 리얼리티를 보장함으로써 대중들에게 사랑 받는다.

리얼리티 시대, 예능 프로그램은 프로로서의 매끄러운 진행보다는 아마추어처럼 거칠지만 생생한 장면을 보여줄 수 있는 예능인들을 요구하고 있다. 일부러 어색하게 행동하고, 상황은 어색함을 드러낼 수 있게 조장되며, 연출은 그 어색함을 극대화해서 포착해낸다. 하지만 그들이 이렇게 아마추어같이 행동한다고 해서 진짜 아마추어일까. 지금은 가장 자연스럽게 아마추어같이 행동하는 이가 프로인 세상이다. 그런 면에서 농담처럼 던지는 “왜 이래? 아마추어같이.”라는 말은 이들에게는 핀잔이 아닌 칭찬인 셈이다.

'1박2일', '패떴', '남자의 자격', 그 삼색여행의 묘미

여행은 되는 아이템이다. 특히 리얼 버라이어티 시대에 여행이 갖는 메리트는 분명하다. 여행에는 현실에서 탈출한다는 판타지가 있고, 현장에서 벌어지는 의외의 사건이 주는 리얼리티가 있으며 때론 현재의 나를 바꿔보기 위한 도전이 있다. 이 판타지와 리얼리티 그리고 도전의 요소는 그대로 작금의 리얼 버라이어티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무한도전'의 한 부분에서 파생되어 나온 '1박2일'의 성공은 '패밀리가 떴다', '남자의 자격'으로 그 여행 버라이어티의 범주를 넓혀가고 있는 중이다.

'1박2일'은 스스로 야생버라이어티를 주창하고 나선 것처럼 '고생하는 여행'을 특징으로 한다. 까나리 액젓과 야외취침을 두고 벌이는 복불복 게임이 이 버라이어티의 백미인 것은 그것이 야기하는 생고생에 이 여행의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의미한 생고생만을 한다는 건 아니다. '1박2일'에는 마치 배낭여행이나 무전여행이 갖는 낭만과 체험의 의미가 바탕에 깔려 있다. '1박2일'의 여행이 갖는 묘미는 그 리얼리티에 있다. 갑자기 기상악화로 본래의 목적지에 가지 못하는 것조차 버라이어티의 한 부분으로 끌어들일 때, '1박2일'의 여행은 빛을 발한다.

반면 '패밀리가 떴다'는 리얼리티보다는 판타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것이 이 여행이 현장을 리얼하게 체험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현장을 찾은 패밀리들의 단합대회(?)를 위한 성격이 짙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여행에서는 외적인 현장 체험보다는 동반자와의 내적인 관계 체험에 더 몰두한다. 여행이라는 특별한 경험 속에서 일상적 관계들은 허공에 약간 들려진 듯한 들뜬 분위기로 새로운 판타지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것은 이 버라이어티에서 중심적인 아이템으로 자리하고 있는 밥 해먹기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것은 일상적인 것이지만, 그렇게 일탈된 공간에서는 특별한 경험으로 치환된다.

한편 새롭게 시작한 '남자의 자격'은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 여행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치 산사체험이나 군대체험 같은 류의 이 여행의 목적은 그 도전을 통해서 나를 돌아보고 또 나를 바꾸는 것이다. 중년의 남자들이 출연진인 점은 이 여행의 도전이 지극히 현실적인 부분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제 꺾어진 나이이기에 그 여행의 도전은 자신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가족을 위한 것이 되기도 한다. 그들의 응원이 버라이어티 뒤편에 자리할 때, 이 여행의 울림은 더 커진다.

무전여행 '1박2일'과 MT '패밀리가 떴다', 그리고 도전여행 '남자의 자격'이 모두 일요일 저녁에 포진되어 있다는 점은 어쩌면 되는 아이템에 쏠리는 우리네 대중문화의 한 경향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여행의 결은 조금씩 다르며, 저마다의 특색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누군가는 여행을 떠나 이제는 돌아올 시간에 TV 앞에 앉아 여행을 대리하는 시청자들이 있다는 점은 그만큼 이 여행 버라이어티의 존재감을 높여준다. 리얼리티와 판타지와 도전을 제공하는 여행과 버라이어티의 절묘한 만남. 여행 버라이어티 3종세트 시대가 도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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