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을 다뤄도 '나의 가해자에게' 같은 진지함이 있어야

 

학교폭력은 이렇게 조심스럽게 다뤄져야 하지 않을까. KBS 드라마스페셜 2020에서 마련한 단편 <나의 가해자에게>가 학교폭력을 다루는 방식은 매우 조심스럽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존재한다고 해서 단순히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복수를 가하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걸 이 드라마는 알고 있다.

 

이 단편 드라마가 학교폭력에 접근하는 방식이 남다르다 여겨지는 건 그 이야기 구도 자체에서부터 느껴진다. 학생시절 집단 괴롭힘을 당했던 기간제 교사 송진우(김대건)가 바로 그의 가해자였던 유성필(문유강)을 동료 기간제 교사로 맞게 되는 것에서 시작하고 있으니 말이다. 과거에는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뉘어 있지만 지금은 그런 학교폭력이 벌어졌을 때 이를 올바르게 바로잡아줘야 할 똑같은 선생님이라는 점이 문제의식을 입체적으로 만들어낸다.

 

즉 유성필에 대한 복수심을 느끼는 송진우는 동료 교사가 온다는 소식에 밤을 새워 학교 전반적인 업무 내용이 담긴 OJT 자료를 만들었지만, 그가 과거 자신을 괴롭혔던 가해자라는 사실을 알고는 자료를 찢어버리고 원본 파일까지 삭제해 버린 것. 자신이 과거 당했던 그 일을 학생들을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학교'라는 문구를 모니터에 붙여 놓고 다짐하던 송진우는 유성필을 마주하며 과거 그에게 당하며 복수를 꿈꿨던 학생시절의 자신이 다시 떠오른다.

 

그렇게 소신이 흔들리는 그에게 학교 이사장의 손녀인 박희진(우다비)은 그의 끓어오르는 복수심에 불을 붙인다. SNS에 떠돌던 과거 송진우가 집단 괴롭힘을 당하는 영상을 찾아내고 그가 유성필에게 복수하고 싶어 한다는 걸 알게 된 박희진은 이 약점을 쥐고 송진우에게 복수를 하게 해주는 대가로 "1년 간 담임으로서 최선을 다해 달라"는 요구를 한다. 그런데 그 요구는 알고 보니 박희진의 '놀이(짝을 괴롭히는 것)'를 묵과해달라는 것이었다.

 

즉 <나의 가해자에게>는 송진우라는 인물이 이제는 교사가 되었지만(그것도 남다른 소신을 갖게 된) 자신이 과거 당했던 학교폭력이 현재에도 계속 반복되게 되는 이유를 묻는다. 이사장의 손녀라는 권력은 그가 가해자가 되어도 교사들이 그걸 바로잡으려 하지 않는 이유가 된다. 그래서 심지어 피해자가 학교를 전학가거나 그만둬야 하는 엉뚱한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 게다가 피해자가 학교를 그만둔다고 해도 학교폭력은 사라지지 않는다. 가해자가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여전히 거기 남아 있어 또다른 피해자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나의 가해자>는 학교폭력이 권력과 함께 어떤 시스템으로 만들어지고 반복되는가를 다루고 있고, 그 상처가 피한다고 해서 사라지는 게 아니고 평생 피해자를 따라다니는 고통을 안긴다는 걸 보여주며, 나아가 그것을 근절하기 위해 진정한 어른들(교사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말해준다. 각성한 송진우가 자신이 과거 당했던 폭력 영상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그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아는 자신이 자기 반에 벌어지는 피해자를 외면하려 했다는 것에 사죄를 하며 지금이라도 자신을 믿고 이를 바로잡자고 말함으로서 학생들과의 연대로 이 문제에 맞서는 장면은 그래서 감동적이다. 또한 그 장면은 학교폭력이 단순히 복수 같은 방식으로 해결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시청률 1.5%(닐슨 코리아)의 단편 드라마지만 이 드라마를 보면서 내내 떠오르는 건 무려 14.5%의 시청률을 내고 있는 SBS <펜트하우스>다. <펜트하우스>에도 학교폭력이 일상화된 아이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학교폭력을 자극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그 복수를 당장의 사이다를 주는 카타르시스 정도로 담는다. 학교폭력이라는 결코 간단하지도 가볍지도 않은 소재를 시청자들을 자극적으로 끌어들이는 방식 정도로 활용하는 것. 그런 점에서 이 1.5% 시청률의 드라마가 갖는 가치는 저 14.5% 시청률의 드라마보다 훨씬 크지 않을까.(사진:KBS)

'펜트하우스', 사람은 없고 작가가 만든 사이코패스들만 넘쳐난다

 

죽고 또 죽고... 벌써 몇 명이 죽은 걸까. SBS 월화드라마 <펜트하우스>는 매회 인물이 죽어나간다. 드라마 시작부터 헤라팰리스 고층 건물에서 누군가에 의해 추락 사망하는 민설아(조수민)로 문을 열었다. 민설아가 떨어질 때 전망엘리베이터를 탄 심수련(이지아)은 그와 눈을 마주친다. 그리고 민설아는 이 주상복합의 상징처럼 세워진 헤라 조각상 위로 떨어져 피투성이가 된 채 사망한다.

 

아마도 이런 시작은 <펜트하우스>가 거대한 욕망의 표상처럼 보이는 헤라팰리스가 민설아 같은 이들의 피 위에 세워졌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드라마는 그 장면에 그런 의미를 담기보다는 이곳에 살아가는 인간 같지 않은 이들이 벌이는 폭력들을 병치함으로써 시청자들의 뒷목을 잡게 만든다.

 

그 폭력들은 지독할 정도로 상투적이다. 돈과 권력을 가진 이들이 그걸 이용해 더 큰 돈을 벌고(물론 여기에도 서민들의 피가 깔려 있다), 불륜과 향락에 빠져 살아간다. 그들만의 네트워크 속에서 아이들도 실력이 아닌 핏줄과 연줄에 의해 성패가 갈라지고 가진 것 없는 이들의 기회는 박탈된다. 심지어 능력으로 그 곳에 들어오려는 민설아 같은 인물은 감히 그 세계를 넘봤다는 이유로 집단 폭행을 당한다.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제시되지 않는다. 이유라고 하면 저들이 특권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 정도다. 그래서 특별한 이유 없이 저지르는 폭력의 연속은 그들의 악행을 태생적인 것으로 만든다. 그들은 사람이 아니다. 사이코패스다. 없는 이들은 짓밟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밟히는 이들을 죽음에까지 이르게 할 수 있지만.

 

오윤희(유진)의 트로피를 빼앗고 그가 더 이상 성악을 할 수 없게 만들어버린 천서진(김소연)은 심수련의 남편 주단태(엄기준)와도 불륜에 빠지는 '도둑년'이다. 하지만 주단태는 더한 인물이다. 심수련의 친딸인 민설아를 다른 아기와 바꿔치기 하고, 그 산소호흡기에 의지해 살아가는 아기를 심수련에게 친딸로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필요 없어지자 그 산소호흡기를 자신이 떼어버린다.

 

죽은 민설아의 사체를 그가 사는 동네로 옮겨 유기하고 그 집에 불까지 내 자살로 위장한 주단태는 그 지역에 재개발이 이뤄질 거라는 정보를 얻고는 그 사건으로 가격이 폭락한 그 집을 되 사려고 하는 인물이다. 그는 누군가를 제 손으로 살해하는 일이나, 사체를 유기하는 일, 나아가 자신이 하는 재개발 사업으로 수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일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행한다.

 

<펜트하우스>에는 사람이 잘 보이지 않는다. 대신 사이코패스들만 넘쳐난다. 그들에 의해 불쌍한 약자들은 억울하게 죽어나간다. 그걸 보며 분노하는 시청자들은 심수련이나 오윤희 같은 인물들이 그들에게 처절하게 응징하고 복수하는 걸 보고 싶어진다. 김순옥 작가가 지금껏 해왔던 '가족 복수극'의 클리셰들이 여기서도 여지없이 등장한다.

 

그러니 등장인물들은 이 가족복수극의 계획된 '공분의 스토리텔링 틀 속'에서 다소 허망하게 죽어버린다. 조상헌(변우민)은 허무하게 자기 집 2층에서 추락사하고, 그와 몸싸움을 벌인 윤태주(이철민) 역시 육교 위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것 같은 장면이 연출되었다.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는 알 수 없다.

 

이렇게 매회 죽음이 아무렇지도 않게 등장(살인, 사체유기 등)하다 보니 시청자들로서는 이 드라마의 이런 자극적 설정들이 하나의 게임처럼 둔감해진다. 처음에는 놀랍지만 차츰 누가 죽어도 그리 놀랍지 않은 느낌이 되어버린다. 드라마가 힘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래서 더 많은 죽음들이 필요하다. 앞으로도 이 죽음의 행진은 계속될 것이다.

 

<펜트하우스>에서 인물들은 그래서 작가가 고안해 놓은 자극의 틀을 위해 소비되는 소모품 같은 느낌을 준다. 개연성은 자극에 가려지고 갈수록 현실감을 잃어간다. 사실 이렇게 계속 어이없는 죽음들이 이어진다는 것 자체가 개연성과 현실감이 사라지고 있다는 증거들이다. 그래서 개연성도 없고 인물들도 소모될 뿐, 인간의 모습으로 그려지지 않는 <펜트하우스>는 위태롭기 그지없다. 거기에는 가난에 대한 지독함 혐오와 죽음에 대한 경시 같은 그림자들이 부지불식간에 들어 앉아 있다.

 

물론 작가가 의도하는 건 자극적인 스토리와 이를 통해 얻어지는 시청률일 것이다. 하지만 그 자극과 시청률이 교환되는 과정에서 인간이나 생명에 대한 가치들은 한없이 가벼워진다. 그저 스토리이고 드라마일 뿐이라고? 아니다. 스토리는 가상이지만 우리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갈 것인가를 에둘러 알려주는 공공의 장이기도 하다. 그러니 그게 별거 아니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시청률의 뒤편에서 어른거리는 건 돈 냄새다. 돈이 되면 뭐든 용서된다는 것. 그건 <펜트하우스> 속 헤라팰리스에 사는 사람들이 하는 생각이다. 드라마는 그게 잘못됐다는 걸 복수극의 형태로 그려내려 하고 있지만, 그 이야기 전개 과정은 마치 헤라팰리스 사람들의 생각처럼 돈이 되면(시청률이 되면) 다 용서된다는 식으로 흘러가고 있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사진:SBS)

'펜트하우스'가 불쾌한 건, 가난 혐오가 도를 넘어서다

 

"저게 얼마짜리 조각상인데 왜 하필 저기 떨어져 죽느냐고 왜?" SBS 월화드라마 <펜트하우스>에서 민설아(조수민)는 헤라펠리스 고층 건물에서 누군가에게 밀쳐져 추락했고 조각상 위에 떨어져 사망한다. 그런데 조각상 위에서 사망한 민설아를 올려다보며 이 헤라펠리스에 살고 있는 이른바 0.1% 상류층이라는 이들은 한 생명의 죽음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이 건물을 세운 주단테(엄기준)는 조각상 걱정이 먼저고, 강마리(신은경)는 이런 사건이 집값을 떨어뜨릴까 걱정한다.

 

민설아가 떨어져 죽는 그 순간, <펜트하우스>는 1주년 파티를 하고 있는 헤라펠리스 사람들을 교차 편집해 보여준다. 마치 베르사이유 궁정의 파티를 연상시키는 의상에 가발까지 쓴 이들이 무도회를 즐기고, 불꽃놀이 폭죽까지 터트려 올릴 때 민설아는 그 꼭대기에서 누군가에게 쫓기다 밀쳐져 추락해 사망한다. 이런 교차 편집은 다분히 의도적이다. 사이코패스나 다름없는 헤라팰리스 사람들의 악마 같은 욕망들을 드러내고 그들에 의해 처참한 죽음을 맞게 되는 가난한 한 인물의 비극을 부각시킴으로써 시청자들의 공분을 일으키려는 의도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여기서 더 나아가 민설아의 사체를 끌어내 그가 살고 있는 아파트 꼭대기에서 홀로 비관해 자살한 것처럼 꾸미고, 심지어 집에 불을 지른다. 한 생명이 살해당했고 그 사체가 유기됐으며 심지어 그가 살던 집에 방화까지 벌어졌지만, 헤라펠리스의 파티는 계속된다.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사체 유기를 도운 이들의 몸에는 저마다 민설아의 피가 흔적처럼 묻었지만 그들은 아무런 죄의식이 없다. 심지어 그 1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파티에 참석한 시의원 조상헌(변우민)은 화재 소식을 듣고도 "내가 소방관이야" 라며 가난한 이들이 사는 곳의 화재 따위는 상관없다는 태도를 보인다.

 

<펜트하우스>가 시청자들의 공분을 끄집어내 불편하고 불쾌하지만 계속 보게 만드는 방식은 끊임없이 '가난 혐오'를 끄집어내는 것이다. 민설아라는 캐릭터는 사실상 '가난 혐오'의 대상으로 등장해 지속적인 괴롭힘과 폭력에 시달리다 결국 살해되고 사체마저 유기되는 것으로 그 공분을 끌어내기 위해 탄생한 인물이다. 게다가 드라마는 이 인물이 주단테에 의해 바뀐 심수련(이지아)의 친 딸이라는 걸 드러낸다. 눈앞에서 자신의 딸이 떨어져 죽는 걸 목격한 심수련의 피의 복수가 예고되는 대목이다.

 

<펜트하우스>에 대한 논란이 시작부터 거셌던 건, 여기 등장하는 중학생 아이들이 민설아에게 저지르는 폭력만큼, 이들이 갖고 있는 '가난 혐오'가 보기 불편할 정도로 시청자들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부자라는 이유로 선민의식까지 가진 이들은 자식의 미래까지 돈으로 척척 결정해버리지만, 없는 자가 실력으로 그 곳에 오르려하면 "어디서 감히"라며 짓밟는 천민자본주의의 민낯을 드러낸다.

 

그래서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는 명백하다. '가난 혐오'의 막장을 보여주는 인물들에 대한 극도의 분노와 처절한 복수가 그것이다. 화려해 보이지만 천박하고 더럽기 그지없는 그들의 민낯을 끄집어내 폭로하고, 헤라펠리스의 추악함을 드러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드라마가 취하는 방식은 너무나 작위적이고 의도적이다. 민설아라는 한 인물을 마음껏 유린하다 버리는 그 방식은 이 작가가 갖고 있는 작품에 대한 태도를 잘 보여준다. 목적을 위해서는 뭐든 있는 대로 끄집어내는 것.

 

문제는 시청자들이 드라마를 목적만을 위해 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 과정이 주는 납득할만한 공감대를 충분히 제시하지 않으면 목적을 이룬다한들 그 과정이 보여준 불편함을 지워낼 수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 단 한 순간의 목적을 위해 끊임없이 불편함과 불쾌함을 감수해야 하는 일. 이것이 김순옥 작가의 <펜트하우스>를 보는 시청자들이 겪는 일이다.

 

드라마의 목적은 바로 그 '가난 혐오'에 대한 복수를 담는 것이지만, 너무나 자극적인 과정들은 오히려 '가난 혐오'의 시각을 드라마가 드러내고 있다는 인상을 만든다. 본말이 전도됨으로써 생겨나는 일이다. 다소 뻔한 틀을 가져오고, 상투적 상황들을 반복하지만 불편함과 불쾌함이 주는 자극의 강도는 더 세진 <펜트하우스>를 보며 느끼게 되는 우려도 그 자극만큼 더 커졌다. 과연 이래도 괜찮은 걸까.(사진:SBS)

'펜트하우스', 이게 정말 15세 시청가 맞나요?

 

SBS 월화드라마 <펜트하우스> 이야기의 모티브는 JTBC <SKY 캐슬>과 유사하지만 이야기 전개는 극과 극이다. <SKY 캐슬>이 보다 진지하게 우리네 사교육의 문제를 극적인 이야기 구성으로 흥미진진하게 풀어나갔다면, <펜트하우스>는 그 이야기 틀을 가져와 학대와 폭력 그리고 불륜 같은 자극의 전시장으로 풀어놓고 있다.

 

최고층 주상복합 헤라팰리스에 살아가는 이들은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모두 악마의 탈을 쓰고 있는 이들이다. 실력은 없지만 돈과 권력이 있어 선민의식을 갖는 인물들. 천서진(김소연)은 부모찬스로 오윤희(유진)가 차지할 1등을 가로챈 인물이고, 심수련(이지아)에게서도 남편 주단태(엄기준)를 유혹해 불륜을 저지르는 인물이다. 그래서 첫 회의 부제 '도둑년'은 바로 천서진을 지목하는 말이다.

 

그런데 그건 천서진과 오윤희 사이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그들의 자녀인 하은별(최예빈)과 배로나(김현수)가 청아예고에 들어가기 위해 성악 시험을 보는 과정에서도 이들의 과거가 재연된다. 실기시험의 시험관으로 들어간 천서진은 블라인드 시험에서 목소리와 신발을 통해 그게 오윤희의 딸 배로나라는 사실을 알고는 시험관들을 움직여 불합격시킨다.

 

주단태 역시 악의 축이다. 헤라팰리스를 만든 그는 약자들의 터전을 강제로 철거해 그 위에 빌딩을 세워 돈을 쓸어 모으는 인물. 천서진과의 불륜은 물론이고, 아이들에게 상습적인 학대를 저지르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의 딸 주석경(한지현)이 시험지 답안에 답을 쓰지 않고 낸 사실을 알게 된 그는 체벌을 하기 위해 마련된 밀실로 그를 끌고 들어가려 하고 대신 맞겠다는 쌍둥이 오빠 주석훈(김영대)을 체벌한다.

 

부모들이 이 지경인데 아이들이 온전할 리 없다. 헤라팰리스에 과외선생으로 온 민설아(조수민)는 석경에 의해 도둑으로 몰려 아이들에 의해 집단 폭행을 당한다. 수영장에 빠뜨리고는 돈을 던져 세탁비에 보태 쓰라는 석경의 모습은 중학생 아이의 모습을 하고는 있지만 막장드라마 속 어른들이 하는 행동을 그대로 한다는 점에서 더 충격적이다.

 

하지만 폭력적인 장면은 그게 끝이 아니다. 사실 아이들과 동갑인 중학생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개연성이 너무나 떨어지는 설정이다) 주단태에게 뺨을 맞고 아이들에 의해 폐차에 감금된 채 집단적인 괴롭힘을 당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아이들이 사실상 악마들처럼 그려지는 이 상황들은 시청자들이 불편함과 불쾌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과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물론 <펜트하우스> 그리려는 건 저 <SKY 캐슬>이 다루었던 우리네 교육문제와 이른바 상위 1%라고 불리는 이들의 허위의식 같은 것일 게다. 하지만 너무 과한 설정과 과장, 개연성 떨어지는 이야기들 속에서 자극을 위한 자극적 상황들이 연달아 벌어지면서, 그런 주제의식은 가려져 버린다. 대신 남는 건 불쾌함이 가득한 자극일 뿐.

 

결국 메시지는 보이지 않고 자극만 남는 본말이 전도된 드라마가 지향하고 있는 건 시청률만이 아닌가 하는 의심하게 만든다. 실제로 이 드라마는 2회 만에 10%대 시청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에게는 피로감만 가득하다. 전반적으로 높은 데시벨을 가진 드라마 속 인물들의 악다구니 속에서 악마 같은 아이들의 행태를 보고 있는 처참함이라니. 이런 드라마가 과연 15세 이상 시청가능하다는 게 납득이 잘 가지 않는다.(사진:SBS)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