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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해진 <런닝맨>, 달리지 못할 곳이 없다

 

공항을 가득 메운 팬들, 일일이 한글로 적은 응원의 글들과 광장을 가득 메운 인파, 어디든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고 때론 스스럼없이 함께 게임에 참여하는 모습, 심지어 이광수처럼 기린 캐릭터를 따라하는 코스프레와 프로그램에서 잠깐 나왔던 이지송을 따라 부르는 장면까지... 한류의 풍경으로는 낯설지 않다. 하지만 예능 프로그램에는 발견하기 힘들었던 <런닝맨>에 대한 이 해외의 팬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런닝맨'(사진출처:SBS)

<런닝맨>이 아시아 레이스라는 글로벌하게 마련한 특집에서 보여준 해외 팬들의 출연 멤버들에 대한 사랑은 각별해보였다. 특히 이광수의 인기는 상상 이상이었다. 공항을 나오자마자 팬들은 그의 이름을 연호하기 시작했고 이광수는 답례하듯 특유의 춤을 선사하기도 했다. 송지효와 개리의 월요커플, 능력자 김종국, 하로로 하하, “필! 촉!”을 외치면 “크로스”라고 따라하는 팬들. 무엇보다 유재석은 아시아에서도 유느님이었다. 어떻게 이런 반응이 가능했던 걸까.

 

물론 사전에 <런닝맨>이 온다는 정보를 알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게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이들이 보여준 <런닝맨>에 대한 깊은 관심이다. 그들은 캐릭터는 물론이고 프로그램을 속속들이 꿰고 있었고 심지어 함께 참여하는 게임에도 익숙하게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것은 <런닝맨>을 빼놓지 않고 시청하기 전에는 나올 수 없는 반응이다.

 

이런 반응이 가능해진 것은 역시 유튜브 같은 SNS의 위력이다. 과거 <프리즌 브레이크> 같은 미드 열풍으로 “석호필”을 연호했던 우리들의 모습이 거기에는 그대로 들어있다. 미국에서 방영되자마자 누군가에 의해 자막이 달린 드라마가 국내에서도 볼 수 있었듯이, 지금 우리네 인기 프로그램도 해외 팬들에게 똑같이 그네들의 자막이 달린 채 회자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유튜브에 올라온 <런닝맨> 영상들을 보면 그 자막이 꽤나 섬세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유독 <런닝맨>에 이런 열광이 생기는 데는 이 프로그램이 가진 특별한 이유가 있다. 먼저 게임이라는 만국 공통의 소재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 그렇다. 일견 몸으로 주로 부딪치는 게임이 단순해 보일 때도 있지만(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바로 그 단순함이 해외 팬들에게도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거기에 <런닝맨> 특유의 캐릭터들이 얹어지자 팬덤이 생겨날 수 있었다.

 

유재석은 그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다. 이미 <X맨>에서부터 <패밀리가 떴다>을 거쳐 <런닝맨>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게임 버라이어티쇼의 계보는 그 안에 반복적으로 출연해왔던 유재석과 몇몇 인물들(이를 테면 김종국 같은)을 해외 팬들의 뇌리에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무한도전> 역시 해외에서 인기 있는 예능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그러니 유재석 사단이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캐릭터들과 익숙한 게임 버라이어티쇼가 하나의 맥락을 만들었던 것은 당연한 일일 게다.

 

이번 <런닝맨> 아시아 레이스 특집은 그간 동남아에서 펼쳐졌던 몇몇 미션들을 통해 조금씩 그 낌새를 보였던 예능 한류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무엇보다 마카오의 피셔맨 워프에서 팬들을 만나고, 마카오 타워 233미터에서의 번지점프 같은 미션과 마치 서울에서 부산으로 달려가듯 마카오에서 베트남으로 장소를 이동하는 일련의 움직임은 <런닝맨>의 무대가 이제 글로벌하게 열렸다는 자신감을 보여주었다.

 

영화, 드라마에 이어 K팝까지 영역이 넓혀진 한류에 예능이라고 못할 건 뭔가. 특히 우리네 예능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리얼 버라이어티(해외의 리얼리티쇼와는 다른 연예인 캐릭터쇼)는 몸으로 부딪쳐 보여준다는 점에서 예능 한류의 가능성이 가장 많은 형식이다. 유재석을 필두로 <런닝맨>은 과연 그 길을 열어줄 것인가. 적어도 이제 이 글로벌해진 예능이 달리지 못할 곳은 없어 보인다.

Posted by 더키앙

법 속의 이야기 vs 법 바깥의 이야기

금요일 밤의 SBS 프리미엄 드라마 ‘신의 저울’은 여러모로 ‘프리즌 브레이크’를 닮았다. ‘프리즌 브레이크’의 마이클 스코필드(앤트워스 밀러)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이제 사형을 앞두고 있는 형을 구해내기 위해 저 스스로 법을 어기고 감옥으로 들어간다. 한편 ‘신의 저울’에서는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된 형, 장준하(송창의)를 위해 동생 장용하(오태경)가 대신 죄를 뒤집어쓰고 수감되며, 형은 누명을 벗고 동생을 구해내기 위해 검사가 된다. 이 두 드라마는 모두 억울하게 누명을 쓴 자가 있고 그래서 교도소에 들어간 자가 있으며 바깥에 남은 이는 그를 구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는 점에 있어서 유사하다.

또한 이 두 드라마는 똑같이 어떤 식으로든 법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를 내보인다. ‘프리즌 브레이크’에서 스코필드가 형을 직접 구하기 위해 범법행위를 저지르는 순간, 법에 대한 이 드라마의 태도가 드러난다. 법은 믿을 수 없는 것이며 그러니 탈옥을 꿈꾸게 되는 것이다. ‘신의 저울’에서도 법에 대한 태도는 이와 다를 바가 없다.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동생이 대신 감옥에 들어가게 되는 순간, 법은 믿을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무전유죄, 유전무죄’의 세상, 그러니 저 스스로 법을 집행하는 권력자가 되어 동생을 구해내려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간 자를 끄집어내기 위한 주인공들의 선택에서 이 두 드라마는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된다. ‘프리즌 브레이크’는 애초부터 법을 버림으로써 말과 말이 부딪치는 법정싸움은 포기하고 추리를 방불케 하는 스릴러와 액션의 세계로 나아간다. 반면, ‘신의 저울’은 법을 선택함으로써 칼과 칼의 부딪침보다 더 살벌한 말의 전쟁인 법정드라마의 길을 걷게 된다. 철학적인 질문보다는 짜릿한 퍼즐게임 같은 탈옥 드라마를 선택한 ‘프리즌 브레이크’와 달리, ‘신의 저울’은 “정의란 무엇인가”, “법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같은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다.

‘신의 저울’에 대한 기대감은 이러한 철학적인 질문을 가능하게 만드는 인물설정에서 비롯된다. 가해자라고 할 수 있는 김우빈(이상윤)과 그의 아버지인 청렴한 검사 김혁재(문성근)는 그 운명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사건 이후에 법과 함께 서 있던 자기 존재가 흔들리게 된다. 깨끗한 법조인의 대명사인 아버지를 본받아 살려했던 김우빈은 죄책감에 점점 타락의 길을 걷고, 김혁재는 자신의 아들의 범법사실 앞에서 흔들릴 수밖에 없다. 한편 이 결정적인 살인사건을 후에 조사하게 될 인물이 장준하와 김우빈의 중간에 서게 될 여자, 신영주(김옥빈)라는 점은 드라마를 더욱 극적으로 만든다.

‘신의 저울’이 ‘프리즌 브레이크’의 설정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다른 기대감을 갖게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진지한 질문들 때문이다. 결국 법이란 ‘신의 저울’이라는 허울을 쓰고는 있지만 사람에 의해 그 무게가 달아지는 ‘인간의 저울’일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신의 저울’은 과연 복수극이라는 단순함을 넘어서 이 법정드라마의 근원적인 질문에까지 다다를 수 있을 것인가. 그 향배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Posted by 더키앙

사전제작만이 해답이다

한류는 가고 미드(미국드라마)가 오나? 인터넷을 통해 유포되던 미드는 케이블TV를 통해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더니 어느덧 공중파에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 ‘CSI 마이애미’가 현재 방영되고 있는 상황이며 곧 미드라는 불꽃에 휘발유를 끼얹은 ‘프리즌 브레이크’도 공중파를 통해 방영될 예정이다.

이것은 최근 ‘히어로즈’, ‘프리즌 브레이크’, ‘섹스 앤 더 시티’, ‘그레이 아나토미’ 같은 미드를 보지 않으면 대화에서 소외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는 미드의 수요를 방송사들이 읽은 것이다. 미드에 푹 빠진 이들은 우리 드라마가 시시해서 볼 수가 없다고 하는데, 우리 드라마가 좇아가지 못하는 대중의 트렌드를 미드의 어떤 면들이 사로잡은 것일까. 거기서 혹 우리가 배워야할 것이 있는 건 아닐까.

전체를 관통하는 스토리
평범한 사람들이 어느 순간 자신만이 가진 능력을 깨닫게 되고 그 능력을 발휘해야 하는 소임을 갖게 되면서 흥미진진한 사건들이 벌어지는 ‘히어로즈’에는 히로(마시 오카)라는 캐릭터가 나온다. 그는 시공간을 넘나드는 텔레포트의 능력을 갖고 있다. 이 드라마에서 히로가 갖는 의미는 지대하다. 그의 능력은 이 드라마가 가진 스토리를 무한히 해방시킨다.

드라마가 진행되는 와중에 갑자기 미래에서 온 히로가 다른 능력자에게 “지금 당신은 당장 치어리더를 구하러가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미리 벌어질 일에 대한 예고이자 그 예고를 지금 바꾸는 것이 능력자들의 소임이라는 걸 말해준다. 중요한 것은 이런 스토리가 가능하려면 이미 전체 이야기를 손아귀에 쥐고 있어야만 한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은 사전제작이 보편화된 미드의 최대강점이다. ‘프리즌 브레이크’에 열광하는 것은 그 시리즈물의 연속성에서 에피소드 하나 하나가 마치 정교한 피스를 조립하는 듯한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다. 석호필(스코필드)의 철저한 탈옥을 위한 준비는 사실 드라마 제작자들이 드라마를 만들어 가는 철저한 사전준비와 거의 일치한다.

사전제작은커녕 쪽 대본을 들고 찍는 우리 드라마가 가장 부족한 점은 바로 이 부분이다.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된 스토리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최소한 사전에 이야기의 얼개를 거의 완벽하게 짜놓아야 가능하다. 지금 방영되고 있는 ‘히트’ 같은 작품에서 아쉬운 점이 바로 이것이다.

처음부터 전체 얼개인 연쇄살인범과 차수경(고현정)의 대립구도를 잡은 상태에서 차근차근 에피소드를 진행했다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사전 제작된 초반부의 내용과 주단위로 드라마를 찍어낸 중반 이후의 내용이 잘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차수경이 아무리 입체적인 캐릭터라고 하더라도, 초반부의 차수경과 지금의 차수경은 너무나 다른 면모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굳이 전문직 드라마뿐만 아니라 멜로 드라마에서도 마찬가지다. 최근 종영한 ‘마녀유희’의 실패는 아무리 좋은 재료라도 제대로 만들지 못하면 외면당한다는 것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탄탄한 스토리는 이제 명망 있는 연기자들보다 더 중요한 드라마의 성패 요인이 되었다. 그렇다면 같은 멜로 드라마라고 해도 미드와 우리의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왜 미드는 멜로라도 뽀송뽀송한 걸까
우리의 멜로드라마는 퇴조하고 있는 형국이 뚜렷하다. 멜로라 하면 트렌디한 설정의 드라마들이나, 혹은 최루성 신파를 떠올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드의 멜로로 대표적인 ‘그레이 아나토미’나 ‘섹스 앤 더 시티’ 같은 드라마들을 보고 있으면 분명 우리 드라마에는 없는 그 무엇이 감성을 자극한다. 그것은 ‘어쩌면 저렇게 뽀송뽀송한 걸까’하는 느낌이다.

‘그레이 아나토미’가 시작할 때 타이틀 롤을 보면 이 드라마의 성격을 단적으로 볼 수 있다. 외과의의 나이프가 화면 위에 떠올랐다가 사라지면, 이어서 여성들의 눈썹집게가 화면에 이어진다. 수혈되는 피를 따라가면 붉은 빛의 와인 잔이 다음 장면으로 이어진다. 즉 이 드라마는 의사라는 전문직과 여성들의 사랑이라는 멜로를 엮은 작품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였다면 즉각 비판이 나왔을 멜로와 전문직의 결합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그 이유는 이 드라마가 매 에피소드마다 내세우는 주제에서 비롯된다. 우리의 멜로 드라마들은 주제가 너무 피상적이고 무겁다. 예를 들어 불치와 불륜이 많이 나오는 것은 멜로의 주제가 삶이나 죽음까지 맞닿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미드가 가진 멜로드라마의 주제는 ‘실용적’이다. ‘그레이 아나토미’의 부제들을 봐도 ‘전투에선 이기고 전쟁에선 지다’, ‘남자 없는 세상’처럼 무거움이나 과도한 심각함이 없다. 똑같은 ‘고통’이란 주제를 다룰 때, 우리 드라마가 삶의 어려움 같은 무거움을 넣어 캐릭터를 울리는 반면, 미드는 마치 실험실의 화학반응을 보여주듯 담담하게 여러 고통의 모습들을 유머를 섞어가며 그려낸다. 시청자의 느낌은 확연히 달라진다. 눈물 젖은 질척함과 뽀송뽀송한 유쾌함으로 나눠지는 순간이다.

사전제작만이 답이다
우리드라마는 지금 위기이자 기회의 시간들을 갖고 있다. 변화의 길은 분명 저 앞에 보이고 있지만 지금 당장의 변화는 현실이 용납하지 않는다. 우리 드라마의 최대 수입국이었던 일본이 자체적으로 한류에서 힌트를 얻은 멜로 드라마를 양산하고 있고, 동시에 미드라는 강력한 드라마들이 FTA로 활짝 열린 TV로의 진출을 예고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도 얻은 것은 있다. 그것은 안일한 기획이나 몇몇 스타들만 내세운 드라마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면 남은 건 단 하나다. ‘철저한 제작’이다. 100% 사전제작이 당장 어렵다면 적어도 전체 틀을 관통하는 철저한 대본이라도 사전 제작되어야 한다.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초기의 힘을 잃고 쉬운 방식의 전통적인 멜로로 흐르는 것 역시 사전 제작이란 틀 안에서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Posted by 더키앙

드라마에 부는 전문성과 오다쿠적 감수성의 요구

최근 들어 미드(미국드라마), 일드(일본드라마)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그것은 과거부터 있어 온 것이지만 요즘의 열기는 수면 위로 올라와 있다는 점이 주목할만한 이유다. 한때는 ‘한류’라는 태극마크에 우쭐하던 우리네 드라마 세상에서 갑자기 미드, 일드가 부상하는 이유는 무얼까. 그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가장 큰 것은 한류의 ‘한 때 부흥’에 들떠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은 우리네 드라마의 진화 속도가, 오히려 한류로 드라마에 더 관심을 갖게 된 시청자들의 드라마를 보는 높은 수준을 따라잡지 못한 데 있다.

언제부턴가 시청자들은 우리나라 드라마의 공식을 꿰뚫고 있으면서 그 공식에 딱딱 맞게 무한 생산되는 드라마들을 외면하고 있다. 작년부터 본격화된 이런 현상은 이른바 ‘트렌디 드라마’, ‘멜로 드라마’의 몰락을 불러왔다. 모든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트렌디 드라마’는 구태의연한 드라마의 대명사로, ‘멜로 드라마’는 통속적인 신파로 싸잡아 인식되었던 것. 우리네 드라마가 이런 시청자들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있는 동안에도 미드와 일드는 그 시청자 욕구의 빈자를 찾아 매일 거의 실시간에 가까운 속도로 인터넷을 넘나들고 있었다. 그렇다면 미드와 일드 어떤 점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헐리우드와 시즌제 드라마의 만남
우리는 헐리우드 영화가 헐리우드 시스템에 갇혀 무언가 새로운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 헐리우드는 영화라는 장르에서 시즌제 드라마라는 장르로 새로운 부흥의 돌파구를 찾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매회에 영화 제작비에 버금가는 투자가 이뤄지고 유명 감독들과 스타들이 포진하는 이 시즌제 드라마는 그저 갑자기 나타난 괴물이 아니다. 이 괴물은 우리가 과거 ‘육백만불의 사나이’, ‘소머즈’에서부터 ‘V’, ‘맥가이버’를 거쳐 ‘X파일’을 통해 익숙한 헐리우드라는 강물 아래서 꾸준히 커왔고 수면 위로 올라와서는 거침없이 세계의 시장을 향해 질주를 시작했다.

미드가 가진 특징은 헐리우드 영화들이 갖는 특성 중 하나인 전문성이다. 특정 직업에 대한 심도있는 접근은 미드가 가진 최대의 장점이다. 형사(CSI)와 의사(그레이 아나토미)는 물론이고 탈옥전문가(프리즌 브레이크) 같은 혀를 내두를 정도의 전문성은 시청자들의 시선을 붙박아두기에 부족함이 없다. 또한 한 편 한 편에 들이는 영화 수준의 완성도는 전체적인 연결성을 두고 이어지면서 파괴력을 높인다. 어느 중간에 한 편을 봐도 충분히 재미를 느끼게 하는 데다 자꾸 찾아보게 만든다는 것이다. 게다가 시즌제를 통해 무한복제되는 양상은 두렵기까지 하다. 최근에는 방송형태에 있어서도 PMP를 통한 방식을 취해 언제 어디서나 쉽게 드라마를 볼 수 있게 되었다니 드라마 폐인의 탄생은 이 정도면 당연한 결과로 보여진다.

오다쿠적 드라마의 중독성
반면 일드의 특징은 편집증적이라 할 만큼 집요한 디테일과 섬세한 감정 묘사이다. 우리네 드라마에 비해 좀 템포가 느리다거나 다이내믹하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영상문법에 있어서 우리보다는 좀더 고도의 우회를 거치기 때문이다. 우리 드라마는 한 장면을 묘사할 때 A=A로서 얘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일본 드라마는 A=B이고 B=C라는 전제를 충분히 깔아놓은 상태에서 A=C라고 말한다. 그러니 시청자 입장에서는 더 수고를 해야 그 감정 선을 읽을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언뜻 보면 답답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일단 이런 방식에 익숙해지면 그 중독성은 더 커진다. 일방적인 전달보다 강한 것은 상호 교감이라는 것. 이것이 오다쿠적인 일본 드라마의 중독성이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튼튼한 문화의 기반이 있기 때문이다. 스토리로 승부하는 수많은 소설들이 또한 각종 권위 있는 상을 휩쓸고 있는 건 우리네 소설계 풍토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또한 만화를 하위장르가 아닌 하나의 가치 있는 상위장르로 보고 있으며, 엄청나게 많은 소재와 다양한 접근이 시도되고 있다는 것은 드라마처럼 늘 소재발굴에 목마른 장르에게는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미드와 일드 앞에 우리 드라마는?
이러한 미드와 일드의 약진 속에서 작년 우리 드라마가 내민 성적표는 그다지 좋지 않다. 좀 과장되게 말한다면 작년 한 해 우리의 드라마는 사극과 논란드라마, 그리고 트렌디 드라마의 공식을 깨는 몇몇 실험적인 드라마로 나뉠 수 있을 것이다. 사극은 드라마적인 재미에 있어서 가능성을 보인 것은 사실이나, 또한 민족주의적인 접근이 갖는 한계성을 내포한다는 점에서 미드와 일드에 대적할 수 있는 힘이 약하다. 논란드라마는 드라마의 퇴진과 시청률 지상주의가 가져온 병폐로 진화보다는 퇴화가 가까울 것이다. 그나마 몇몇 트렌디 드라마의 공식을 깨는 실험적 드라마들(예를 들면 ‘90일 사랑할 시간’이나 ‘환상의 커플’같은)이 겨우 우리 드라마의 가능성을 보여줬을 뿐이다.

그래서 올 들어 새롭게 등장하는 것이 소위 ‘전문직 드라마’다. 이것은 분명 미드와 일드의 영향이 가져온 결과다. ‘하얀거탑’, ‘외과의사 봉달희’같은 병원드라마는 그저 화제에 머무는 것이 아니고 지금 현재 우리 드라마의 지반을 변동시키는 큰 동인이 되고 있다. 과거의 향수로서 드라마를 대하는 시청자들은 이들 전문직 드라마보다는 드라마의 원형에 가까운 가족드라마와 사극에 아직도 마음을 빼앗기고 있지만 이들은 미래의 시청자가 아니다. 미래의 시청자들은 굳이 TV가 아니라도 인터넷 등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드라마를 보는 세대다. 이들 세대들을 겨냥하는 더 많은 전문직 드라마의 등장이 예고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변화된 환경, 시청률에도 질적 개념이 필요하다
재미있는 것은 어떠한 장르든 인터넷과 연결되면 ‘매니아화’된다는 점이다. 그것은 인터넷의 속성이다. 인터넷은 누구든 쉽게 접근하고 쉽게 주장을 펼치고 거기에 좀더 많이 빠져들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기 때문이다. ‘하얀거탑’의 시청률은 상대적으로 낮지만 인터넷에서의 폭발력도 낮은 것은 아니다. 이 ‘충성도 높은 시청자’는 ‘그저 심심풀이로 보는 시청자’와는 다르게 분류해봐야 할 것이다. 시청률도 양적인 개념이 아닌 질적인 개념이 도입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문제는 변화된 매체환경 속에서 미드와 일드가 각자 자신들이 가진 개성과 힘으로 무장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만의 무기를 갖고 있느냐는 것이다. 외부의 영향으로 인해 변화를 촉발하게 된 우리네 드라마는 현재 퓨전 사극과 전문직 드라마들에 올인하는 느낌이 있다. 이것은 매너리즘에 빠진 우리네 드라마에 활기를 줄 훌륭한 시도임에 틀림없으며 또한 인터넷 환경에서 자꾸만 요구되는 전문성과 오다쿠적 감수성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다.

한편으로 아쉽게 느껴지는 것은 과거 한류드라마의 틀을 이루었던 ‘멜로드라마’에 대한 무관심이다. 이것은 한류에 기대 몇몇 유명 한류스타를 내세워 성공하려했던 제작사들의 책임이 크다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언제까지 이들 졸속 멜로드라마들에 대한 백안시 때문에 ‘완성도 높은 멜로드라마’에 대한 실험이 이뤄지지 않는 것은 우리가 가졌던 힘을 버리는 행위는 아닐까. 멜로는 드라마의 원형이라는 점에서, 전문성에 매니아적 감수성 그리고 여기에 덧대진 질 높은 멜로의 틀이 완성될 때 우리 식의 독특한 개성이 나타나지 않을까.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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