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니스’가 묻는 행복, 팬데믹 속에서도 우리의 선택은

해피니스

“그래. 가까운 데 있었어. 이현아 너 혹시 사귀는 사람 있어? 있어? 너 코 고니? 이 갈아? 우리 결혼할까?” tvN 금토드라마 <해피니스> 첫 회 엔딩에서 윤새봄(한효주)은 정이현(박형식)에게 대뜸 결혼을 이야기한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인연이 있었고, 정이현은 윤새봄에게 “우리 사귈래?”하고 물었을 정도로 그에게 설렘을 느낀 바 있었다. 하지만 당시 윤새봄에게 거부당했던 정이현은 그의 갑작스런 결혼 제안이 너무 친해 던지는 농담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윤새봄은 농담이 아니라고 정색하며 진지한 얼굴로 정이현을 바라본다. 

 

이 장면은 사실 <해피니스>가 첫 회에 보여준 좀비 아포칼립스 장르의 전조들과는 사뭇 대비된다. 윤새봄과 정이현이 그런 대화를 나누는 곳은 다름 아닌 군 당국이 새로이 창궐한 감염병으로 좀비처럼 변해 목을 물어뜯는 증상(?)을 보이는 이들을 임시로 수용해놓은 폐 대학교다. 좀비처럼 변해 공격해온 경찰특공대 교육생 이종태(남상우)와 사투를 벌이다 손에 상처를 입게 되면서 윤새봄은 중대본 위기대응센터 소속 한태석(조우진) 중령의 명령에 의해 그곳으로 수용됐다.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윤새봄은 그러나 감금된 방 벽에서 의문의 핏자국을 발견하고, 수용된 건물 전체에서 들려오는 괴성들을 듣는다. 건물 방 곳곳에 감염된 자들이 수용되어 짐승 같은 괴성을 쏟아내고 있었던 것. 평범한 사건처럼 시작된 이야기는 이제 세상 가득 좀비들로 채워져 종말론적 위기에 들어설 암울한 세상을 예고한다. 그런데 그런 상황 속에서도 윤새봄과 정이현은 엄청난 충격에 빠지기보다는 의외로 담담한 모습을 보인다. 심지어 윤새봄이 정이현에게 멜로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결혼을 이야기할 정도로. 

 

<해피니스>는 알 수 없는 감염의 원인으로 좀비들이 창궐하는 종말론적 팬데믹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어둡지가 않다. 아니 어둡기는커녕 윤새봄과 정이현 사이의 설렘 같은 멜로 감정까지 느껴진다. 물론 갑작스레 좀비로 변한 인물들과 육박전을 벌이는 장면이나, 그 사태의 원인을 찾아내기 위해 감염자가 먹었다는 약을 추적하고 그 약이 심한 부작용으로 퇴출됐던 약 ‘넥스트’라는 걸 알아내는 과정은 액션 스릴러가 주는 긴장감과 공포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래도 <해피니스>의 전체적인 극의 분위기는 발랄하다. 

 

그 이유는 암울할 수 있는 팬데믹 분위기와는 상반되게 의외로 이에 침착하게 대응하고 낙천적인 성격을 가진 인물들 때문이다. 윤새봄은 한태석이 찾아 본 인사기록카드에 적혀 있듯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극도로 침착’한 인물이고. ‘머리가 좋고 생존력이 뛰어나’지만 ‘지나치게 호기심이 강한 것이 문제’인 인물이다. 그는 조사를 받기 위해 폐 대학교에 감금되어서도 아침에 출근 걱정 없이 푹 잘 수 있어 너무 좋다고 말하는 그런 성격을 가졌다. 

 

팬데믹의 암울함과 대비되는 낙천적인 인물들의 모습. 아마도 이것은 <해피니스>가 갖고 있는 여타의 좀비물과 차별화되는 지점일 게다. <해피니스>는 위기 상황을 그리긴 하지만 그걸 절망적으로 담지는 않는다. 이건 어떻게 가능해진 것이고 왜 작가는 이런 설정을 의도적으로 그리고 있는 걸까. 

 

코로나19가 종식된 근미래 설정은 여기에 대한 답을 해준다. 이 팬데믹을 겪으면서 우리는 ‘행복’에 대한 새로운 관점들을 새삼 절감한 바 있다. 그저 마스크 없이 편히 숨 쉴 수 있다는 사실이나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함께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이었던가를 우리는 팬데믹 상황에서 오히려 깨닫게 됐다. 게다가 이런 위기 상황은 완전히 종식되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적응되는 것이고 그래서 우리의 삶이란 그런 위기와 더불어 지혜롭게 살아내는 그 방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 또한 알게 됐다. 

 

<해피니스>는 바로 이런 팬데믹 이후의 달라진 인식 기반 위에 세워진 드라마다. 윤새봄과 정이현은 그래서 새로운 감염병이 창궐하고 좀비 세상이 도래하는 그 위기 속에서도, 의외로 침착하고 자잘한 행복들과 서로에 대한 마음들을 꺼내놓는다. 결국 <해피니스>라는 제목에 담겨 있듯이 그런 진정한 행복이 암담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가 건네는 따뜻한 이야기나, 손길에 의해 가능하다는 걸 드라마는 대놓고 꺼내놓는다. 좀비 아포칼립스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설렘 가득한 멜로의 분위기가 이상하게도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좀비 장르는 어둡다? 바로 이 지점은 좀비 장르가 마니아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게 한 중요한 이유다. 물론 넷플릭스 같은 전 세계에 분포된 좀비 장르 마니아들을 가진 플랫폼이라면 문제될 게 없지만, 우리네 지상파, 케이블 등에서 이러한 마니아적 성격을 가진 좀비 장르는 그만큼 리스크가 크게 느껴진 게 사실이다. 그런 점을 생각해보면 색다른 행복에 대한 인식 기반을 통해 어둡지 않고 설렘까지 담아놓은 <해피니스>의 이야기는 좀비 장르를 보다 폭넓은 시청자들 앞에 내놓을 수 있는 가능성이 되지 않을까. 남다른 기대감을 갖게 되는 대목이다.(사진:tvN)

시간과 추억..'서울촌놈'이 제대로 잡은 색다른 여행의 맛

 

어찌 보면 그저 평범한 아파트다. 아마도 청주 율량동에 사는 많은 주민들은 일상적으로 지나치던 공간이었을 게다. 하지만 그런 일상이 특별해져 감정이 몽글몽글해지고 눈가에 물기가 촉촉해지는 이들도 있다. 바로 그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이들이다. tvN 예능 <서울촌놈>이 청주에서 그 곳을 이승기와 함께 찾아간 한효주가 바로 그 인물이다. 한효주는 "기분이 이상하다"며 급기야 좀체 보이지 않던 눈물을 보였다.

 

아파트 입구를 들어설 때마다 지하로 내려가는 곳이 무서워 눈을 감고 지나쳤다는 한효주에게 그 평범한 공간은 어린 시절의 시간으로 돌아가는 타임 터널 같은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았을까. 아이들과 뛰어 놀던 놀이터에서 지금은 사라져버린 그네의 자리를 떠올리고 괜스레 지나는 주민에게 "저 여기 살았어요"라고 말한다. 그 때 다녔던 학교를 찾아가 자신이 학창시절을 보냈던 그 시간들을 마주하고는 울컥한다.

 

한효주와 동행한 이승기 역시 그 곳에서 길 건너편에 자리한 아파트에서 2년 정도를 살았다고 했다. 한효주가 "기분이 이상하다"고 하는 모습을 보며 아마도 '그게 뭐라고' 생각했을 이승기는 그러나 막상 길을 건너 자신이 살았던 그 아파트 근처로 다가가자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단다. 상가 건물이 눈에 들어오고 자전거를 타고 오르곤 했던 오르막을 기억해낸다. 이건 <서울촌놈>이 찾아낸 소박하지만 특별한 여행의 발견이다.

 

누구나 자신이 나고 어린 시절 자랐던 곳은 있기 마련이다. 그 때의 기억 속에 있던 곳은 변하기도 하고 때론 변함없이 그 때 그대로의 모습이기도 하다. 변했건 변하지 않았건 그 곳에 다시 서면 저도 모르게 시간의 중첩을 경험하기 마련이다. 청주편에 한효주와 함께 게스트로 출연한 이범수는 자신이 살았던 곳이 사라져버리고 건물이 들어선 것이 못내 아쉽다. 하지만 그 골목길을 다녔던 기억들이 새록새록하다. 아이들을 데리고 한번 다시 찾아와보고 싶을 정도란다.

 

<서울촌놈>이 조금씩 확고한 색깔을 갖기 시작했다. 부산과 광주를 거쳐 청주로 오면서 한결 여유가 느껴진다. 부산편이 첫 시작의 부담감 때문인지 그 지역 토박이와 서울촌놈들의 대결구도를 갖가지 게임으로 채워 넣었다면, 광주편에서는 게임보다는 조금씩 그 지역의 특징을 파고들었고, 청주편에 와서는 이제 그 곳 토박이 게스트들의 '시간여행'이라는 특별한 지대를 찾아낸 느낌이다.

 

청주편은 터미널 분식집에서 만나 이 곳의 사투리와 사람들의 특징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부터 웃음이 빵빵 터졌다. 자신들은 '중부지방' 사람이라며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는 이범수는 그래도 어미를 길게 늘이는 방식의 사투리를 들려줬다. '이이-'라고 하는 전라도의 '거시기'에 해당하는 표현을 알려주고, 충청도 사람들 특유의 직접적으로 이야기하거나 말하지 않는 '배려' 넘치는 언어습관을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웃음바다가 됐다.

 

어린 시절 가곤 했었다는 50년도 훌쩍 넘은 설렁탕집이나 중앙공원의 900년이 넘은 나무와 오래 전부터 '만남의 광장'이었던 철당간이라는 공간 자체가 <서울촌놈>의 시간여행을 더욱 의미심장하게 만들었다. 게스트들이 호스트가 되어 서울에서 온 촌놈들(?)에게 자기 고장의 자랑거리를 알려주는 <서울촌놈>은 그렇게 지역을 알린다는 취지 자체도 좋지만, 여기에 자신이 나고 자란 곳을 찾아간다는 이 여행의 특색이 살아나는 느낌이다. 역시 유호진 PD표 여행은 어딘가 다를 것이라는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서울촌놈>은 일요일밤의 편안한 시간여행을 선사하고 있다.(사진:tvN)

'골든슬럼버' 어리바리 강동원, 미스 캐스팅 우려 잠재우다

영화 <골든슬럼버>는 원작이 일본 소설이다. 일본에서는 2010년에 영화화되어 큰 화제가 된 바 있다. 사실 일본 원작의 작품을 리메이크할 때 가장 먼저 우려가 가는 건 그 정서가 우리에게 맞게 제대로 변환되었는가 하는 점일 게다. 하지만 <골든슬럼버>는 적어도 일본 원작 영화에서도 우리가 정서적으로 공감하는 면이 충분한 작품이었다. 그것은 평범함 서민과 그를 둘러싼 추악하고 거대한 권력과의 사투라는 점이 국적을 초월하는 힘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영화 제목의 모티브가 된 비틀즈의 명곡 ‘골든슬럼버’라는 음악이 감동적인 장면들 속에 배경음악으로 깔리는 점도 이런 국적 차이가 만드는 정서를 하나로 묶어주는 힘으로 작용한다. 다른 것도 아니고 비틀즈의 노래가 아닌가. ‘골든슬럼버’라는 곡은 그래서 이 작품을 특정 국적의 색깔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 글로벌한 콘텐츠의 느낌으로 만들어준다. 

영화는 인기 아이돌을 강도로부터 구해준 선한 서민들의 영웅 택배기사 김건우(강동원)가 고교시절 함께 밴드를 했던 신무열(윤계상)을 만나면서 시작한다. 그의 눈앞에서 차기 유력 대권후보로 지목되던 정치인이 폭탄 테러로 사망하고, 신무열은 건우에게 이 모든 것이 그를 암살범으로 만들기 위한 조직의 계획이라고 말하고는 결국 사망하게 된다. 

조금 어려운 사람을 그저 지나치지 못하고 선하다 못해 심지어 어리바리해 보이기까지 한 건우는 그래서 그를 죽이기 위해 쫓는 거대 권력 조직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매스컴에 의해 서민 영웅으로 추대되었던 김건우였기에 갑자기 테러범으로 오인된 그는 모든 주변인물들을 믿을 수 없게 된다. 신무열이 죽기 직전 “그 누구도 믿지 말라”고 했던 말이 자꾸만 떠오른다. 

게다가 건우는 자신으로 인해 주변인물들마저 죽거나 고통을 겪게 되는 걸 알게 된다. 함께 카페를 하려던 후배는 살해되고, 과거 함께 밴드를 했던 장동규(김대명), 최금철(김성균), 전선영(한효주)에게도 조직의 인물들의 협박과 회유가 이어진다. 너무나 엄청난 권력을 가진 조직의 힘 앞에서 건우는 그저 힘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몰린다. 

아마도 이런 주인공을 이 작품의 원작이 내세웠던 건 일본이 갖고 있는 집단주의적 풍토 속에서 쉽게 희생되어버리는 개인의 문제를 건드리고 싶었기 때문일 게다. 때론 조직은 그들의 이익을 위해 미디어를 통한 이미지 조작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힘없는 개인들은 아무런 토로조차 하지 못한 채 희생되어버린다. 

하지만 기묘하게도 이런 정서적인 동질감이 지금의 우리에게도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국내의 리메이크판 ‘골든슬럼버’가 토착적인 느낌을 주는 이유다. 이 착하기만 하고 ‘조금 손해보는 삶’이 뭐가 나쁘냐고 항변하는 건우라는 인물은 지금의 우리네 대중정서가 가진 소시민적 영웅의 단면을 보여준다. 그래서 그가 거대 조직과 맞서 싸우고, 또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세상 속에서 그를 여전히 믿고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는 심정적 지지를 갖게 만든다. 

이 작품을 얘기하면서 강동원의 공을 빼놓을 수 없다. 그가 이 작품에 캐스팅되었다는 사실은 어딘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는 인상을 줬던 게 사실이다. 그 잘생긴 얼굴이 지극히 서민적인 캐릭터와 부조화를 이루지 않을까 저어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동원은 이 작품을 통해 미남이 아닌 아주 평범한 얼굴에 그저 선한 눈빛을 담은 건우라는 인물에 전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몰입을 보여줬다. 아마도 그의 선한 눈빛만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뭉클해지는 감정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사진:영화'골든슬럼버')

빈틈 많아도, 상상력을 끝까지, <W>의 가치

 

우리에게도 이런 드라마가 가능하다니 놀라운 일이다. 종영한 MBC <W>는 지금껏 우리네 드라마에서 좀체 보기 힘든 시도를 보여줬다. 웹툰의 세계와 현실 세계가 뒤엉켜버리는 어찌 보면 빈틈도 많고 복잡한 이야기는 어떻게 시청자들을 열광하게 만든 걸까.

 

'W(사진출처:MBC)'

<W>의 가장 가치는 결국 상상력이다. 만일 우리가 웹툰의 세계에 들어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마도 시작은 거기서 부터였을 것이다. 웹툰의 주인공인 강철(이종석)과 사랑에 빠지게 되고, 허구의 캐릭터가 각성하는 걸 자신을 삼켜버릴 괴물로 인식한 작가 오성무(김의성)가 맥락 없이 그를 죽이려 하고, 오로지 강철에게 강력한 동인을 심어주기 위해 그의 일가족을 몰살시킨 얼굴 없는 진범역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각성하게 되면서 <W>라는 웹툰의 세계는 상상력이 폭주하는 세계가 되었다.

 

죽었던 인물을 꿈으로 설정해 되살리고, 진범이 작가의 얼굴을 빼앗아 오히려 작가를 꼭두각시로 만들어버리며, 총에 맞아 죽어가는 실제 인물 오연주(한효주)를 웹툰의 세계로 옮겨 다시 살려내는 등, <W>는 기존의 드라마 문법을 상상력으로 뛰어넘겠다는 듯 반전스토리로 이어갔다. 그것이 가능하게 된 건 웹툰의 세계라는 허구의 공간이 실재하고 그 안의 인물들도 저 마다의 법칙에 의해 스스로 움직인다는 이 드라마의 가정 덕분이다.

 

결국 결론은 오성무라는 작가의 희생으로 강철과 오연주가 살아남아 사랑을 이루는 해피엔딩이었지만 그런 끝은 사실 이 드라마에서 중요한 건 아니다. 또한 굉장히 복잡하고 한 치 앞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변화무쌍한 이야기 전개들 하나하나를 그것이 왜 벌어졌는가 어떻게 가능한가를 따져보는 일도 사실 그리 중요하지는 않다. 더 중요한 건 그래서 <W>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 했는가 하는 점일 게다.

 

웹툰의 인물을 마치 현실처럼 받아들이고 거기에 빠져드는 세태. <W>는 그것이 전제되지 않으면 그저 황당하게만 읽히는 드라마가 될 수밖에 없다. 가상의 세계가 더 이상 그저 가짜로만 치부되지 않고 마치 진짜처럼 여겨지고, 심지어 그 가상의 인물들과 사랑에 빠지는 <W>의 이야기는 그래서 콘텐츠의 시대가 보여줄 미래의 세계를 슬쩍 보여주는 면이 있다.

 

이미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같은 기술들이 가상을 통해 현실을 바꿔가고 있는 것처럼 <W>의 세계는 그저 한 편의 드라마라고만 말할 수 없는 우리의 가상이 갖는 무게감을 잘 드러냈다고 보인다. 가상이라고 하더라도 작가가 제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바로 <W>의 세계였다. 가상의 인물들은 창조되고 설정된 이후에는 그 고유의 힘에 의해 끝까지 움직이기 마련이다. 작가의 개입은 오히려 세계를 망치고 자신을 망치는 길이 되기도 한다. <W>의 반전에 반전을 이어가는 이야기는 결국 이 캐릭터들과 작가의 싸움에서 비롯됐던 일들이다. 허구라고 해도 이제는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세계. 우리는 이미 그 세계 속으로 들어와 있다.

 

<W>는 허구의 시대가 현실을 압도하고 바꿔나가는 우리 앞에 펼쳐진 새로운 세계를 그려냈다. 결코 쉽지 않은 이야기지만, 어쨌든 끝까지 엔딩을 이뤄냈고 물론 허점도 많은 이야기지만 시청자들의 욕망을 추동시킴으로써 그 빈틈을 채워 넣는 기발함과 능숙함도 보여줬다. 결국 작품은 작가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그건 이제 작가가 창조한 캐릭터의 자생력과 그걸 보는 독자와의 긴장감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어떤 것이 되었다. ‘잡아먹히느니 잡아 먹겠다는 경구는 지금의 작가들이 처한 딜레마를 드러내는 것일 뿐, 이제 작품은 온전히 작가의 것이 될 수 없는 시대다.

 

그저 잠깐 상상으로만 했을 수 있는 세계. 하지만 송재정 작가는 그것을 끝없이 발전시켜 상상력이 폭발하는 세계로 만들어냈다. <W>의 가치는 아마 거기에 있을 것이다. 늘 드라마라고 하면 머릿속에 공식처럼 떠오르는 그런 세계가 아니라도 충분히 흥미진진한 세계가 가능하다는 것. 그걸 <W>는 우리 눈앞에서 펼쳐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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