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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앙트완>, 엄마 연기도 자연스러워진 한예슬

 

아마도 한예슬의 대표작을 고르라면 여전히 <환상의 커플>을 지목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 드라마에서 한예슬은 안나조라는 캐릭터를 통해 비로소 자신의 가능성을 터트리며 대중들의 주목을 받았다. 어딘지 가볍고 엉뚱할 것 같은 안나조라는 캐릭터는 한예슬에게 맞춤이었고, 바로 그 점은 한예슬에게 연기생활의 득이면서 독이 되기도 했다.

 


'마담 앙트완(사진출처:JTBC)'

그 이상의 캐릭터를 연기해내지 못한다는 건 연기자로서는 한계를 드러내는 일이다. 한예슬이 딱 그랬다. 무얼 해도 안나조의 잔상을 털어내지 못했고, 그 캐릭터보다 더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타짜>,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는 물론이고 <스파이 명월>, <미녀의 탄생>까지 그녀는 연기변신을 하지 못했다. 연기에서 주목받지 못하자 그녀가 보이는 건 광고 이미지뿐이었다.

 

그렇게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만난 <마담 앙트완>. 한예슬도 나이를 먹었다. 물론 여전히 예쁜 미모를 갖고 있지만 10년 세월이 드리운 얼굴의 흔적은 아무래도 숨겨지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그렇게 나이를 먹은 한예슬에게서 비로소 연기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것도 늘 나오는 드라마마다 소비되곤 하던 사랑에 빠진 여주인공의 연기가 아니다.

 

한 아이의 엄마다. 그것도 이혼해서 다른 여자와 결혼한 전 남편에게 가겠다는 아이의 엄마. 갓난아기 때부터 집 나간 남편 대신 키워온 애지중지 딸이 그 전 남편과 함께 살겠다는 편지를 읽으며 한예슬은 조용히 숨죽여 흐느끼는 엄마의 절절한 속내를 연기한다. 울다가 온 딸과의 전화에서 한예슬은 마치 <발리에서 생긴 일>의 조인성처럼 눈물을 숨기는 연기를 한다. 이제 자신의 딸을 키워줄 전 남편의 여자에게 다가가 자기 딸이 어떤 음식에 알레르기가 있고 성격은 어떻고 하는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늘어놓으며 눈물을 흘린다.

 

<환상의 커플>의 잔상이 강하게 남아 한예슬이 그간 보여준 연기라고는 코미디적인 웃음이 대부분이었다고 믿었던 시청자들로서는 <마담 앙트완>에서 엄마 역할로 보여주는 눈물 연기가 새롭게 느껴질 것이다. 게다가 그 눈물 연기에 대한 깊은 공감까지 갖게 되었으니 한예슬이 달리 보일 수밖에.

 

<마담 앙트완>에서 한예슬의 연기는 확실히 이전 작품들과는 다른 느낌을 준다. 그것은 세 남자들과 밀당을 벌이며 보여주는 멜로 연기에서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다른 작품에서 보여준 연기가 한예슬의 엉뚱 발랄한 한 가지 이미지였다면, <마담 앙트완>에서는 그 엉뚱 발랄함에 때때로 보여주는 진중함까지를 덧붙였다.

 

물론 이건 연기자 한예슬의 새로운 시작점일 것이다. 이제 겨우 삶의 폭이 넓어져 연기가 자연스러워진 것일 테니 말이다. 한없이 사랑스럽고 귀여운 이미지는 이미 한예슬이 10년 전에 확보한 것들이다. 이제 그녀는 조금은 성숙해진 모습을 보여줄 때가 되었다. 심리 분석을 통해 그 속내까지를 살짝 들여다보는 <마담 앙뜨완>이라는 드라마 속에서 고혜림이라는 인물은 한예슬이라는 여배우의 새로운 면면들을 충분히 이끌어내 줄 것으로 보인다

Posted by 더키앙

부재한 만화적 상상력, 사회극으로 연출된 ‘꽃남’

고교생이 함께 호텔에 들어가고 바에서 술을 마시고 나이트 클럽에서 춤을 춘다. 단지 서민이라는 이유로 계란과 밀가루 세례를 받고, 사생활이 찍혀 공개되는 등 자극적인 왕따 문화가 그려진다. 돈 앞에 지나치게 고개를 숙이는 금전만능주의를 그려 서민들의 삶을 왜곡한다. ‘꽃보다 남자’에 쏟아진 논란들은 그 끝을 예상하기가 쉽지 않다. 도대체 왜 그럴까.

원작만화가 그렇다면 끝?
가장 큰 이유는 연출력 부재에서 비롯된다. ‘꽃보다 남자’의 스토리는 대부분 일본 원작만화에서 그려진 그대로다. 하지만 같은 스토리라도 만화 속에서와 드라마 속에서는 전혀 느낌이 다르게 그려진다. 금잔디(구혜선)네 집의 아이 같은 어른과 어른 같은 아이 설정은 만화에서라면 당연히 가벼운 웃음으로 넘어갈 수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드라마 속에서 그려진 이 아이 같은 부모들이 구준표 앞에서 보여준 비굴함은 웃음보다는 인상을 찌푸리게 만든다.

구준표의 거만한 태도 역시 만화 속이라면 이해되고 심지어 그 기성사회에 대한 도발이 통쾌할 수 있는 설정이다. 하지만 드라마 속에서 멸치를 보며 “이게 무슨 벌레냐”고 묻는 구준표를 보고 마냥 웃을 수만은 없을 것이다. 고교생 앞에 무릎을 꿇고 앉는 금잔디네 부모의 모습이나, 고교생들이 한 학생을 두고 벌이는 집단따돌림은 초창기부터 원작만화가 가진 왜색문화에 대한 논란을 일으켰다. 리메이크 과정에 있어서 원작을 수용하기만 했지 우리 식의 해석이 들어가지 않았던 데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이런 비판들에 대해 제작사측은 시종일관 원작만화가 그렇다는 식으로만 말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이 원작만화로 돌리는 핑계가 납득될 수 있는 일일까. 이것은 오히려 이 드라마의 연출력 부재를 스스로 자인하는 것은 아닐까. 최근 불거져 나온 드라마 내내 깔리는 OST의 논란은 이제 이 드라마의 연출력 부재가 총체적인 부실로 드러나고 있음을 말해주는 증후로 보여진다.

‘꽃보다 남자’는 원작만화를 잘 그려내지 못했다
만화가(그것도 외국의) 드라마로 리메이크 되려면 연출에 있어서 재해석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된다. 물론 재해석에 있어서 원작만화에 충실하려 했다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실제로 ‘꽃보다 남자’가 원작만화를 잘 그려냈다고 볼 수 있을까. 만화의 스토리를 살리려 했다면 단순히 스토리의 재연이 아니라 스토리를 만화적으로 연출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했다.

우리는 이미 ‘메리대구 공방전’이나 ‘환상의 커플’, ‘경성스캔들’을 통해 드라마의 만화적 연출 가능성을 목도한 적이 있다. ‘메리대구 공방전’은 광각 카메라를 통해 앵글 자체를 만화적으로 활용하고, 컷을 만화의 단 나누듯이 연출해 그 만화적 스토리의 경쾌함을 만들어냈다. ‘환상의 커플’은 안나조(한예슬)라는 독특한 말투와 대사의 캐릭터를 창조함으로써 그 만화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냈고, ‘경성스캔들’은 일제시대라는 무거움을 과감하게도 만화적 연출을 통해 가볍게 그려내는 실험성을 돋보였다.

이들 일련의 수작들과 비교해보면 ‘꽃보다 남자’의 연출은 만화적이라기보다는 사회극의 분위기를 자아낼 정도로 무겁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드라마의 자극적인 전개를 강화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즉 사회극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현실적인 연출들, 예를 들면 심각할 정도의 집단따돌림 장면이나, 주인공을 위기로 몰아넣기 위해 강간 같은 장면을 연상시키는 연출은 거꾸로 이 드라마의 만화적 존재들인 F4와 극명한 대비를 통해 그 일차적인 자극을 높이려는 의도다.

하지만 만화가 사회극의 뉘앙스를 가져와 논란을 만들어내고, 또 논란이 불거졌을 때 원작만화라는 핑계로 숨는 것은 당당하지 못한 태도일뿐더러 이 드라마의 연출력 부재를 드러내는 반증이기도 하다. 만화적 대사, 스토리를 그대로 끌어오고도 그것이 만화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연출은 그 만화적 속성과 드라마적 속성의 괴리로 인해 논란을 양산할 수밖에 없다. 지금 불거져 나온‘대사보다 OST’라는 비판은 이 부재한 연출력을 OST(사실 OST라고 할만한 다채로움도 별로 없다. 단 한 곡이 거의 반복될 뿐이다.)로 보완해보려는 안일한 연출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

Posted by 더키앙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포스트 트렌디 드라마들
올해는 사극은 약진하고 현대극들은 주춤했던 한 해였다. 처음에는 월화 드라마를 ‘주몽’이 잠식하더니, 주말 드라마에 ‘연개소문’과 ‘대조영’이 포진하고, 수목 드라마마저 ‘황진이’가 장악하면서 현대극들은 설 자리를 잃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과거 형태의 구태의연한 답습을 거듭하는 트렌디 드라마는 더더욱 살아남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꿋꿋이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은 드라마들이 있다. 시청률과는 무관하게 특별한 시도와 보다 높은 완성도를 무기로 이들은 우리네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었다.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며 ‘포스트 트렌디 드라마’의 징후를 읽게 해준 그 드라마들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웰 메이드 드라마, ‘연애시대’
‘연애시대’가 끝난 지 꽤 되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그 금단증상을 이야기한다. ‘연애시대’를 축으로 그 이전의 드라마가 있고, 그 이후의 드라마가 있다고 할 정도로, 스토리면 스토리, 연기면 연기, 연출이면 연출 어느 하나 군더더기 없는 이 드라마로 인해 여타의 드라마들이 어딘지 시시해 보인다는 것. 영화인들이 참여해 만들어낸 이 드라마는 드라마 제작에 있어서 사전제작에 대한 논의가 일어날 정도로 완성도를 높였다. 감우성, 손예진의 감칠맛 나는 연기에 주연만큼 빛났던 공형진, 이하나는 물론이고 김갑수, 서태화, 오윤아, 문정희까지 어느 조연하나 뺄 수 없이 드라마의 독특한 감미료가 되어주었다. 이러한 연기자들의 호연을 바탕으로 악역이 없는 대신 내적 갈등을 만들어 상황을 관조하게 하는 설정과, 충분한 공감을 일으키면서도 도발적인 ‘이혼 후 시작된 연애’라는 소재, 시간의 씨줄과 날줄을 엮는 연출력이 잘 어우러졌다. 이로써 ‘연애시대’는 지금까지 드라마가 해온 그 이상을 만들어내며 ‘웰 메이드 드라마’의 성공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새로운 내러티브의 실험, ‘굿바이 솔로’
최근 들어 종종 볼 수 있는 새로운 내러티브로서 다중스토리 구조를 들 수 있다. 하나 혹은 둘의 주인공 캐릭터가 나와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전통적인 스토리 구조가 아닌 여러 인물들이 똑같은 비중으로 각자의 이야기를 해나가면서 어떤 울림을 만들어가는 내러티브 방식이다. ‘러브 액추얼리’와 ‘숏컷’ 그리고 ‘크래쉬’라는 영화를 통해 우리는 그 현상을 목도한 적이 있다. 노희경 작가가 ‘굿바이 솔로’를 통해 무려 10여 명에 달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은 개인화되고 파편화되는 현대인들의 드라마 구조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전통적 스토리 구조가 역부족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해체된 가족으로부터 상처받은 이들 캐릭터들은 하나둘 카메라 속으로 모여들어 유사가족을 만들어낸다. 카메라 안으로 들어온 인물들은 서로 아파서 부둥켜안으면서 상처를 핥아준다. 노희경 작가는 이들 여러 인물들과 그들의 어우러짐을 주관 개입을 극도로 절제하면서 카메라 속에 넣는데 성공함으로써 이 시대 가족드라마(가족보다 이웃이 낫다)의 새로운 형식을 보여주었다.

드라마에 대한 만화적 접근, ‘환상의 커플’
만화적 감수성이 하나의 장르적 틀로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걸 보여준 드라마가 ‘환상의 커플’이다. 원작만화를 드라마화한 게 아니지만 만화만큼 재미있는 ‘환상의 커플’의 성공요인은 ‘만화 같은 이야기’가 더 이상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었다. 이제 더 이상 그 말은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라던가, 완성도가 떨어진다던가 하는 의미가 아니다. 이 드라마를 통해서 그것은 상상력과 캐릭터가 독특하며, 이야기 진행이 유쾌하면서도 나름대로의 진지성이 있는 긍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게 되었다. 특히 만화적 캐릭터를 제대로 소화해낸 한예슬은 수많은 유행어를 남길 만큼 영향력을 발휘했다. 이 코믹 드라마는 기존 트렌디 드라마들의 상투적인 진지함을 벗어나 만화적 편안함과 유쾌함을 만들어주었다.

남자의 눈물을 보여준 ‘투명인간 최장수’
이른바 ‘남성신파시대’라고 불릴 정도로 극중에서 남자들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것은 과거와는 달라진 남녀의 사회적 위상이 반영된 결과. 드라마를 보는 주 시청자는 여성이지만 그들은 더 이상 우는 여성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 따라서 하나의 현상처럼 나타난 것이 남자의 눈물이다. ‘투명인간 최장수’는 이 시대에 가족에게 있어 ‘투명인간’이 되어버린 가장의 이야기. 알츠하이머에 걸린 최장수를 통해 가족들에게 소중한 기억으로 남고싶은 아버지의 모습을 제대로 담아냈다. 이 사나이 울리는 신파 드라마는 그러나 웃으면서 우는 연기가 물에 오른 유오성으로 인해 아버지의 초상을 제대로 그려낸 신파 이상의 의미를 만들어냈다. 새로운 드라마 시청층의 가능성을 보여준 드라마이다.

장르의 폭을 넓힌 ‘돌아와요 순애씨’
‘투명인간 최장수’의 정반대편에 선 ‘돌아와요 순애씨’는 아줌마들의 웃음을 공략하며 인기를 끌었다. 이 40대 아줌마와 20대 처녀의 영혼이 바뀐다는 황당한 설정의 드라마는 그러나 그 전하려는 메시지에 있어서 아줌마들의 감성을 매료시켰다. 시트콤에나 가능할 것 같은 이러한 설정이 수목드라마에서 제대로 시청자들에게 소구한 것은 장르적으로 선택한 코미디에 진한 페이소스를 달아놓았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여자들의 연대에서부터, 생활력에서부터 만들어진 아줌마 속성에 대한 웃지 못할 풍자, 젊은 여자에 대해 갖는 남자들의 속물근성 등등 남녀 관계에 대한 다양한 시각들을 다룬다. 40대 아줌마에서 20대 처녀로 탈바꿈한 순애씨의 거침없는 비판과, 욕망의 분출은 TV 앞에 앉은 수많은 우리 시대의 아줌마들에게 커다란 카타르시스를 주었다. 새로운 시도에 대한 진지함이 시청자에게 얼마나 공감을 줄 수 있는가를 보여준 드라마다.

상큼발랄 아줌마 트렌디, ‘발칙한 여자들’
우리네 드라마 세상에서 아줌마들이란 ‘불륜’과 ‘신파’를 오가며 살아왔다. 하지만 ‘발칙한 여자들’이 꿈꾸는 세상은 끈적임 없는 상큼 발랄 경쾌한 세상이다. 과거 아줌마 이미지에서 기름기와 물기를 쪽 빼내 비로소 ‘여자’를 보기 시작한 드라마, 바로 ‘발칙한 여자들’이다. 이 질척하지 않은 발칙한 여자의 복수극이 상큼했던 것은 ‘스스로를 사랑할 줄 알고 경제적으로도 독립했고, 혼자서도 충분히 행복한 아줌마’ 캐릭터로부터 가능해진다. 자신을 사랑할 줄 알게된 여자는 이제 다른 남자들에게 사랑 받을 자격이 갖춰진 셈이다. 이로써 ‘발칙한 여자들’은 ‘아줌마의 사랑 = 불륜’이라는 악의적인 등식을 깨고 당당한 ‘중년여성의 사랑’을 보여준 드라마다.

사회적 편견과 맞선 진짜 트렌디, ‘여우야 뭐하니’
‘여우야 뭐하니’는 과거와는 달라진 사랑방정식으로 보여준 트렌디 드라마다. 이 드라마는 먼저 재벌집 아들도 아니고 신데렐라를 꿈꾸는 여자도 아닌 보통 남녀의 사랑으로 선회한다. 이 밋밋해 보이는 설정에 드라마성을 가미해주는 것은 최근의 결혼풍속도라 할 수 있는 연상연하 커플. 나이와 나이에 따른 현실 등이 사랑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편견과 맞선 트렌디라 할만하다. 결국 사랑이야기에, 그 사랑에서 선택해야할 것이 현실이 아닌 마음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드라마이지만 요즘의 트렌드를 제대로 읽어낸 진짜 ‘트렌디 드라마’라고 볼 수 있다.

그 밖의 다양한 시도들
이밖에도 저 김윤석이라는 배우의 가능성을 읽게 해주었던 ‘인생이여 고마워요’, 금요드라마는 불륜드라마라는 공식을 깬 ‘내 사랑 못난이’, 공백을 메꾸려 채워졌지만 호평을 받으며 사회드라마의 가능성을 보여준 ‘내 인생의 스페셜’, 최근 아직 종영하지 않았지만 불륜과 불치에 대한 새로운 공식을 써나가는 ‘90일 사랑할 시간’ 등등 열거하지 못한 많은 트렌디 드라마들의 시도가 있었다. 그것은 어찌 보면 주6일사극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으로 인해 더 치열했다고 말할 수 있다. 비록 시청률은 저 사극들의 빛에 가려졌지만, 보다 완성도를 높이려는 시도를 한 몇몇 드라마들이 있어 트렌디를 뛰어넘는 포스트 트렌디를 기대하게 만든다.

Posted by 더키앙

환상 속의 커플이 환상적인 커플이 되다

‘환상의 커플’은 웃음이 드라마에서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가를 보여주었다. 드라마의 완성도나 리얼리티 같은 걸 잠시 접어두고 우리는 드라마 내내 웃음을 터트리다가 어느새 종영을 맞았다. 어찌 보면 조금은 허탈할 수 있는 이 웃음폭탄은 그러나 마지막에 와서 1%의 눈물을 보여주면서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그 공감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이 한예슬이라는 연기자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나상실 혹은 조안나라는 캐릭터이다.

환상적인 커플, 환상 속의 커플
드라마 종영의 시점에 와서 ‘환상의 커플’이란 드라마 제목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었다는 걸 알게된다. 그것은 만나기만 하면 서로를 못 잡아먹어 으르렁거리면서도 차츰 마음을 열게되는 나상실과 장철수(오지호 분), 이 안 어울리는 듯 잘 어울리는 커플을 ‘환상적인 커플’이라는 의미로 지칭하는 ‘환상의 커플’이다. 그런데 후반부로 가면서 이 ‘환상의 커플’은 현실이 아닌 ‘환상 속의 커플’이란 의미가 하나 더 덧붙여졌다.

조안나로 돌아온 나상실에게 빌리박은 말한다. “모든 걸 환상이라고 생각해.” 그러자 그녀는 이렇게 대꾸한다. “환상이라면 이렇게 아플 리가 없어.” 빌리박은 또 묻는다. “당신은 나상실이야? 조안나야?” 그러자 그녀가 말한다. “그 둘 다가 나야.” 이 일련의 대사들은 그녀 안에서 조안나와 나상실이 서로 공존하며 부딪치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그녀에게는 두 개의 현실이 있는 셈이고 빌리박은 조안나가 현실이며 나상실은 환상이라고 강변하는 것이다. 재미있는 건 이 두 인물의 공존이 웃음도 만들고 눈물도 만들었다는 점이다.

99%웃음의 주역, 조안나인 나상실
‘환상의 커플’이 그 특유의 톡톡 튀는 웃음을 시종일관 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나상실이라는 독특한 캐릭터에 있다. 어마어마한 부자에 싸가지녀였던 조안나가 기억상실과 함께 나상실이 되는 그 지점은 그 자체로 웃음의 진원지가 된다. 과거의 우아했던 영광은 사라지고 몸빼 바지에, 자장면, 막걸리를 먹으며, 소파에서 자야하는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아있는 조안나적인 도도함의 습성은 시청자들을 웃게 만들면서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었다.

자칫 동정의 대상이 될 수도 있었던 캐릭터가 도도함을 유지하면서 여전히 “꼬라지하고는”하고 툭툭 내뱉는 대사에 어찌 웃음이 터지지 않을 수 있을까. 그녀 자신의 꼬라지 역시 그다지 우아하지 않은 상황에서 말이다. 드라마의 만화적인 과장된 연출과 패러디, 그리고 교차편집은 이런 나상실의 캐릭터를 극대화시켜주었다. 막걸리에 취해 춤을 추는 장면과 연회 장면의 교차편집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면서 점점 서민들의 생활에 익숙해져가는 나상실에게서 우리는 이 도도녀의 내면 속에 숨겨진 따뜻한 정을 발견하게 된다. 처음 나상실이라는 이름과 캐릭터는 장철수에 의해 지어진 환상이었으나 점차 그녀는 자신 속에 숨겨진 나상실을 찾아내게 된 것이다.

1%눈물의 주역, 나상실인 조안나
그런데 점점 그녀가 나상실이 되면서부터 1%의 눈물이 시작된다. 나상실이란 이름을 지어준 장철수에게 그녀가 마음을 열게 되자, 문제는 복잡해진다. 사실 나상실은 환상이고 조안나라는 현실의 인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점점 다가오기 때문이다. 조안나로 돌아온 그녀는 그렇지만 과거의 조안나가 아니다. 그녀 속에 또 한 명의 인물, 나상실이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안나로 돌아오고 나서도 그녀는 여전히 막걸리를 찾고 소파에서 잠이 들며 나상실이란 캐릭터의 언저리를 배회한다.

우연히 버스정류장에서 장철수를 만나게 된 나상실이 자신의 진짜 이름을 밝히려 하자 장철수가 듣지 않으려 하는 것은 그가 그녀를 영원히 나상실로 기억하고 싶기 때문이다. 장철수는 내민 그녀의 손을 잡지 않고 떠나며 “그 손을 잡으면 다시는 놓지 못할 것 같다”고 말하고, 그런 장철수를 뒤에서 꼭 껴안은 그녀는 “내 이름은 조안나”라고 말한다. 그 장면에서 뚝 떨어지는 장철수와 조안나의 눈물에 시청자들 역시 똑같은 공감을 가졌을 것이다. 그 이름은 장철수와의 이별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뒤집어진 환상으로 공감을 만들어낸 ‘환상의 커플’
우리는 누구나 현실에서 벗어나 무언가 다른 사람이 되고 싶은 환상을 꿈꾼다. 그것은 대체로 ‘신데렐라 콤플렉스’같은 형태의 환상이다.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없고, 지위도 상승되는 그런 변신 말이다. 하지만 이 ‘환상의 커플’은 그 환상의 방향을 거꾸로 뒤집어 놓는다. 완벽하고 뭐하나 부족한 게 없는 인물 조안나가, 온통 부족한 것 투성이의 꼬라지인 나상실로 변하는 것이다.

상향되는 변신이 어떤 로맨틱한 행복감을 예감케 하는 반면, 추락된 변신은 무언가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는 정반대의 유쾌한 캐릭터를 창출했다는 데서 큰 의미가 있다. 코믹으로 드라마를 전개했다는 것, 만화적인 설정들을 잘 활용했다는 점은 자칫 복잡해질 수 있는 이 나상실-조안나 캐릭터에 단순한 힘을 부여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런 하향적 변신에서도 유쾌한 캐릭터가 가능했던 것은 사실 조안나가 겉으로 보기엔 완벽해도 속으로는 부족함 투성이었다는 것이며, 그 부족함을 역시 부족해 보이기만 한 장철수와 그 주변사람들이 채워주었다는데 있다.

환상 속의 커플이 환상적인 커플이 되다
그 주변사람들 중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은 강자이다. 대부분의 드라마나 영화에서 바보들이 늘 결정적인 역할을 해주었던 것처럼 그녀 역시 무거울 수 있는 나상실 주변을 맴돌며 그 무게를 가볍게 해주었다. 나상실로서 “사랑할 수도 없고” 조안나로서 “사랑 받을 수도 없어” 옴짝달싹할 수 없는 ‘얼음’ 상태를 ‘땡’해주는 인물이 강자이다. 강자의 ‘땡’은 남해에 눈이 오는 기적(?)을 만들고, 떠나려는 조안나를 붙잡으며, 그녀 앞에 장철수를 데려다놓는다. 장철수는 이제 그녀를 조안나로도 나상실로도 받아들인다.

그녀가 조안나든 나상실이든 그 행복했고 행복한 만큼 아프기도 했던 것들은 모두 그녀에게 현실이다. 드라마를 보며 현실 속에서 환상을 꿈꾸고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우리의 마음 속에서 일어난 행복감과 아픔이 모두 현실인 것처럼 말이다. ‘환상 속의 커플’이 ‘환상적인 커플’이 되는 이 어쩔 수 없는 유쾌함 앞에서 잠시 현실을 잊고 환상에 젖는 것은 인지상정이 아닐까.

Posted by 더키앙

‘누나’, ‘환상의 커플’, ‘눈의 여왕’의 여성들

요즘 드라마를 보면 여성 캐릭터들의 변신이 눈에 띈다. 그 중 주목을 받는 캐릭터는 이른바 ‘싸가지 귀족녀’들이다. 도대체 돈 걱정이라고는 해본 적도 없는 이들은 온갖 명품들을 마치 아바타 놀이하듯 줄줄이 입고 나와, 돈 자랑을 해댄다. 게다가 그녀들은 주변인물들을 하인 다루듯 하며 뭐든 문제가 생기면 돈으로 해결하려는 싸가지를 보인다. 재미있는 건 이 현실에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분노마저 일으킬 캐릭터들이 TV속으로 들어오면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다.

나도 그들을 꿈꾼다
MBC 주말연속극 ‘누나’의 승주(송윤아 분)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전형적인 귀족의 삶을 살았다. 온갖 명품들로 치장된 옷을 입고 리조트 사업을 하는 아버지와 함께 공식행사에 돌아가신 어머니 역할을 해내는 그녀에게 두려움이란 없었다. 심지어 그녀는 작은 아버지, 작은 엄마를 마치 하녀처럼 대하면서도 당당했다.

한편‘환상의 커플’의 안나조(한예슬 분)는 기억상실을 당하기 전까지 뭐든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아왔다. 오죽 했으면 그녀의 입에 붙은 말이 “꼬라지하고는”과 “맘에 안 들어”일까. 그녀의 한 마디에 그녀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은 그녀를 위해 바뀌었다.

어마어마한 부를 가진 집안에서 태어난,‘눈의 여왕’의 김보라(성유리 분) 역시 도도함을 지나쳐 싸가지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녀 역시 하인처럼 고순자(장정희 분)와 그녀의 딸 박득남(정지안 분)을 대한다. 자기 몰래 득남이 자기 명품 스카프를 했다고 그 자리에서 가위로 잘라버린다. 하지만 이런 그녀들의 싸가지 없는 행동들에 대해 어느 누구도 뭐라 하지 않는다. 왜? 부자니까.

사실 누군가 욕을 한다 해도 명품을 입고 싶고 좋은 차를 타고 싶고 좋은 집에서 아무런 걱정 없이 살고 싶은 건 누구에게나 있는 욕망이 아닌가. 이 싸가지는 없지만 뭐 하나 부족한 게 없어 보이는 캐릭터에 잠시 감정이입을 하면서 그 욕망을 대리충족하는 것이 무에 이상하다고 할 것인가.

신데렐라 벗어나기
중요한 것은 과거 트렌디 드라마에서 단골악역으로 등장했던 이 캐릭터들이 이제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트렌디 드라마에서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자극하는 평범한 여성들이 왕자 같은 남자들을 만났다면 이제는 상황이 역전되었다. 이것은 이제 시청자들이 ‘신데렐라 콤플렉스’가 너무나 순진한 발상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자인 사람들은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들은 더 가난해지는 사회 속에서, 부가 그렇게 하루아침에 갑자기 나타난 왕자님에 의해 얻어질 수 있다고 말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것은 오히려 세습되는 것이며, 변할 수 없는 운명의 벽처럼 쉽게 편입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이런 인식 속에서 TV 드라마는 어떤 방식으로 여성들의 욕구를 풀어주고 또한 공감을 얻어낼 수 있을까. 그것은 평범한 캐릭터의 신데렐라 되기가 아니라 거꾸로 부자들의 보통사람 되기가 될 것이다.

부자들의 보통사람 되기
삶에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못하던 그녀들은 어떤 계기를 만나게 된다. ‘누나’의 승주는 졸지에 가난이라는 낯선 세계를 경험하게 되고, 거기서 그녀를 지켜주는 평범한 남자 건우(김성수 분)를 만난다. ‘환상의 커플’의 안나 조는 기억상실을 통해 장철수(오지호 분)를 만나게 되고 그에게서 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인간적인 정을 느끼게 된다. ‘눈의 여왕’에서 김보라는 어린 시절 만났던 한태웅(현빈 분)을 만나면서 얼음의 궁전 속에서 지내며 얼음처럼 차가워졌던 마음을 녹이게 된다.

이 그녀들의 하향곡선은 시청자들의 TV 속 환상과 TV 밖 현실 간의 미묘한 타협으로 인하여 공감의 틀로 만들어진다. 드라마를 통해 현실에는 도저히 꿈꿀 수 없는 귀족적 삶을 꿈꾸면서도 또한 TV를 끄고 현실로 돌아왔을 때의 안도감을 줄 수 있는 ‘그들도 우리와 같은 보통 사람’이란 인식을 끌어내는 것이다. 이들 드라마에서 보여지는 것은 화려한 세계일지 모르나 이들 드라마가 하려는 얘기는 그러한 부가 인간의 행복에는 그다지 관계가 없다는 사실이다.

부자 길들이기 혹은 현실
부자들이 이렇게 부의 세계에서 현실로 내려올 때, 발생하는 것은 그네들보다 우리가 현실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다는 착각이다. 그들이 먹어보지 않았던 자장면과 막걸리에 대해서, 그들이 살아보지 않았던 단칸방에 대해서, 그들이 경험해보지 않은 저잣거리의 재미에 대해서 우리가 더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드라마는 이들 문제 있는 캐릭터들에게 바로 이 작은 현실의 행복감을 보여주고 변화를 촉구한다.

하지만 우리가 더 잘 알고 있다고 말하는 현실은 가난에 다름 아니다. 현실은 더 팍팍하고 각박하다. 드라마는 정반대의 주장을 하고 있지만 사실 이 사회는 부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한다. 싸가지 귀족녀들의 보통사람 되기가 갖고 있는 재미는 저 신데렐라 콤플렉스의 정 반대편에 서 있는 또 다른 환타지일 가능성이 높다. 그것은 우리가 저네들보다 더 잘 알고 있어,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현실이란 우리 스스로의 위안일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일시적 환상이라도 해도 그 위안이 그토록 간절한 것을.

Posted by 더키앙

너무 착해서 개성이 잘 안보이는 arboleda merlot


요즘은 착한 것보다는 개성 넘치는 것, 차라리 욕을 먹을 지라도 무언가 특색이 있는 것이 더 추앙 받는 시대입니다. 이미 착하다는 것은 그 어떠한 가치도 상실한 그 마지막에 겨우 꺼낼 수 있는 카드 같은 것이 되어버렸나 봅니다.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캐릭터들을 보면 알 수 있죠. 관심을 끄는 캐릭터들은 ‘싸가지가 없거나(환상의 커플의 한예슬)’, ‘막말을 한다거나(여우야 뭐하니의 고현정)’, 심지어는 ‘매력 가득한 악마(타짜의 김혜수)’같은 그런 캐릭터들입니다.

와인에도 그런 것들이 있습니다. 이른바 맛은 그런대로 괜찮은데 그다지 특징이 잘 보이지 않는 그런 와인 말입니다. Arboleda 시리즈 중에서 멜로가 그렇습니다. 칠레 와인의 명문가인 Errazuriz社와 미국의 명문가 Robert Mondavi社가 만났으니 그것은 칼리테라(Caliterra : ‘la calidad de la tierra’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quality(calidad)와 the finest land(tierra)를 의미한다)라는 칠레 와인의 아이콘 지역과 몬다비라는 명성과 노하우의 만남이 분명했을 터입니다. 아마도 Arboleda 시리즈의 까베르네 소비뇽 혹은 쉬라는 훌륭한 맛을 낼 것이 틀림없습니다.

멜로 85%에 까베르네 소비뇽 8%, 까르메네르 5%, 쉬라 2%의 이 와인은 멜로의 부드러움과 적절히 강한 까베르네 소비뇽의 거침, 그리고 달콤한 까르메네르의 초콜릿 향과 무거운 쉬라의 묵직함이 잘 조화된 와인임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뿐 이 와인만이 갖는 특별함을 찾기는 좀 어렵습니다. 너무도 착한 캐릭터의 느낌을 주는 것이죠.

그렇더라도 이 와인은 너무 강한 개성의 와인들을 주로 접하셨던 분이라면, 그저 편안한 친구와의 부담 없는 자리에서 내놓기 좋은 와인입니다. 특히 특별한 와인의 보조역으로 그만인 와인이죠. 그만큼 개성을 내세우지 않으니까 말입니다. 선물을 보내기 전 간단하게 마시는 와인이나, 두 병 정도의 와인을 마시는 자리에서 먼저 내놓는 와인으로 괜찮을 것입니다. 3만6천원대. 알코올은 14.2%입니다.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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