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러와>와 <해투>, 그 위기의 원인은

 

유재석의 MC로서의 최대 강점은 게스트들의 캐릭터를 뽑아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예능에 있어서는 거의 무명에 가까운 배우들이나 가수들조차 유재석이 캐릭터로 발굴한 예는 부지기수다. <해피투게더>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 박미선은 대표적인 사례다.

 

'놀러와'(사진출처:MBC)

자신을 전면에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게스트들을 앞으로 끌어내는 그의 토크 방식은 그래서 그를 배려의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이런 특성은 그대로 토크쇼에 묻어났다. <놀러와>와 <해피투게더>는 약간의 형식적인 차이들이 존재하지만 유재석의 이런 특징이 깔려있다는 점에서 그 토크쇼의 본질은 유사하다. 모두 게스트를 편안하게 해주고 부각시켜주는 ‘긍정의 토크쇼’인 셈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른바 유재석 토크쇼가 흔들리고 있다. <놀러와>는 최근 400회 특집(사실 400회라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다!)을 보여줬지만 시청률은 고작 4%에 머물렀다. 한 때 20%에 육박하던 <놀러와>로서는 위기가 아닐 수 없다. <해피투게더>는 그래도 나은 편이다. 조기에 <개그콘서트>의 개그맨들을 투입, 좀 더 공격적인 토크방식을 부여함으로써 어떤 변신을 하려 노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만큼 그 효과가 두드러지는 건 아니다. 물론 12% 정도의 시청률을 유지하지만 요즘 토크쇼는 시청률보다 중요한 게 화제성이다. 화제성에 있어서 <해피투게더>는 최근 들어 과거만큼의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유재석 토크쇼의 위기상황을 불러왔을까. 먼저 달라진 대중들의 기호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들어 토크쇼는 ‘넓이’보다는 ‘깊이’에 천착하는 경향이 생겼다. 즉 버라이어티한 면보다는 한두 사람이 나와도 그 사람과의 깊이 있는 대화에 더 집중하게 된 것. <힐링캠프>의 성공은 이 ‘깊이’있는 토크쇼의 성공이라고 볼 수 있다. 또 한때는 기세등등했던 <강심장>이 <승승장구>에게 밀리고 있는 것도 비슷한 이유 때문이고 <라디오스타>가 홀로 잘 버티고 있는 <황금어장>에 <무릎팍도사>의 빈자리가 여전한 것도 그 때문이다. 수박 겉핥기식의 가벼운 웃음과 재미보다는 차라리 마음을 울리는 이야기에 더 몰입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토크쇼에 대한 대중들의 기대가 달라지게 된 것은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그만큼 대중들은 각박한 현실 속에서 ‘위안’을 찾고 있다는 얘기다. 이것은 최근 서점가에 불고 있는 ‘위로형 에세이’들의 열풍과도 무관하지 않다. 가벼운 웃음으로 잠시 동안 현실을 벗어나는 것만으로는 현실의 무게가 너무 크다는 방증이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라고 깊게 말해주는 그 위로와 공감을 대중들은 더 원하고 있다.

 

물론 유재석 토크쇼가 위로와 공감을 주지 않는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그 화법이 대화보다는 ‘버라이어티’에 더 가깝고, 깊이보다는 넓이에 더 가깝다 보니 토크쇼의 느낌도 그렇게 대중들에게 인식되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이런 변화를 모를 리 없는 제작진들은 왜 토크쇼를 ‘넓이’에서 ‘깊이’로 전환시키려 하지 않는 것일까. 여기에는 유재석이 가진 유일한 한계점이 숨겨져 있다.

 

유재석은 배려의 아이콘이고 캐릭터 발굴의 달인이지만 그에게도 부족한 점이 있다. 그것은 게스트를 때론 쿡쿡 찌름으로써 그 안에 숨겨진 ‘깊이’를 끄집어내는 토크에 약하다는 점이다. 사실상 유재석 토크쇼의 이런 부분은 다른 MC들이 맡기 마련이다. <해피투게더>의 박명수가 그렇고, <놀러와>의 이하늘(지금은 빠졌지만)이나 김나영이 그런 역할을 하는 MC들이다.

 

깊이는 주고받는 데서 나올 수밖에 없다. 상대방의 마음 속 깊이 들어가려면 그걸 끄집어낼 수 있는 과감한 질문이 필요하다. 이것은 또한 자신의 속내를 먼저 드러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유재석은 그런 점에서 그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MC다. 그것은 늘 남을 배려하고 자신을 낮추는 오랜 습관에서 비롯된 것일 게다. 하지만 이 좋은 습관은 현재의 달라진 화법 속에서 약점이 되기도 한다. 유재석처럼 진행의 달인이 본인의 이름을 딴 1인 토크쇼를 갖지 못한 것도 어쩌면 이런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 장점이자 약점 때문이 아닐까.

 

물론 <놀러와>나 <해피투게더>는 좋은 프로그램이다. 거기에는 유재석만이 가진 배려의 화법이 오래도록 배어있었다. 그러니 그 오랜 세월동안 장수할 수 있었던 것일 게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은 유재석 토크쇼에 새로운 도전을 요구한다. 물론 그렇다고 유재석이 강호동이 될 수도 없고 김구라가 될 수도 없을 것이며 그렇게 되도 안될 것이다. 유재석만이 가진 자신만의 진솔한 대화법을 찾아낼 필요가 있다. 이것은 점점 나이를 먹어가는, 그래서 어떤 시점에는 토크쇼가 진정 어울리게 될 유재석이 앞으로도 더 오랫동안 대중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이 되기도 할 것이다.

'라디오스타', 누가 나와도 되는 이유

'라디오스타'(사진출처:MBC)

현재 토크쇼는 '게스트쇼'가 되었다. 게스트로 누가 나오느냐에 따라 재미의 편차도 크고, 시청률의 등락 폭도 크다. '힐링캠프'는 박근혜, 문재인이 나왔을 때만 해도 시청률이 급상승했지만 이민정, 이동국, 최민식이 나왔을 때는 다시 시청률이 뚝 떨어졌다. 그러다 최근 차인표가 나오자 다시 시청률이 반등했다. 이런 사정은 '놀러와'나 '승승장구'도 마찬가지다. '놀러와'는 '세시봉' 이후로 끊임없는 추락을 경험했는데 '기인열전'을 했을 때 잠깐 반등했을 뿐이었다. '승승장구' 역시 MC스페셜로 '이수근편'을 했을 때의 주목도와 다른 게스트들의 주목도 차이는 크게 나타났다. 결국 현재의 토크쇼들의 성패는 거의 대부분 '섭외'가 관건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된 것은 토크쇼들이 일제히 '게스트 중심'으로 선회했기 때문이다. 약간의 방식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현재의 토크쇼들은 '게스트를 편안하게 모시는' 분위기다. 그러니 게스트 자체의 힘에 의존할 수밖에. 차인표처럼 웃음과 감동, 의외의 발견까지 해줄 수 있는 예능의 블루오션 게스트가 등장할 때와 그렇지 않은 보통의 게스트가 나왔을 때는 편차가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게스트에 따른 편차가 없는 토크쇼도 있다. 바로 '라디오스타'다. '라디오스타'는 이제 누가 나와도 '재미있는' 토크쇼로 자리했다. 그 비결은 게스트가 아니라 호스트, 즉 MC들에 있다.

'라디오스타'를 보는 재미는 게스트들의 인생역정이나 특이한 이야기 그 자체가 아니다. 오히려 MC들이 게스트로부터 어떻게 토크 어장(?)을 발견하고 그것을 콕콕 찍어서 끄집어내는가 하는 그 과정에서 나온다. 김진아, 임성민, BMK처럼 그다지 핫(hot)하게 여겨지지 않는 게스트들이 나왔을 때 김구라가 던진 첫마디는 "홍보할 게 없는 분들이기 때문에 사심 없는 방송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여타의 토크쇼들과 비교해보면 발상의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홍보 포인트가 없는 이들에게서 더 과감하고 솔직한 이야기를 끄집어낼 수 있다는 것.

외국인과 결혼했다는 그 하나의 공통점으로 묶여 출연한 이들에게 처음 만났던 이야기와 문화적인 차이에서 비롯된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을 하나 둘 끌어내면서 MC들은 끊임없이 거기에 토를 달고 살을 붙인다. 김진아가 출연했던 '수렁에서 건진 내 딸'을 소개할 때 뒤에서 유세윤이 지나가는 소리로 "귀한 딸이네요."라고 덧붙이는 것으로 빵 터트리고, 엉뚱하게도 블랙호크를 몰았던 BMK의 남편에게 직업을 알선해준다며 헬기를 잘 안다는 고영욱에게 물어보겠다는 식으로 웃음을 만들어낸다.

'라디오스타'에서는 일반 토크쇼에서는 통상적인 소개에 그치는 이름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김구라는 김진아씨의 이태리식 남편 이름을 아는 척 하다가 틀리자 "희성이시네요"라고 덧붙이고, 임성민 남편의 미들 네임이 안소니라고 하자 뜬금없이 "보수적이시네요"라고 툭 던진다. 그러자 주워 먹는 토크의 달인인 윤종신이 나서서 "개방적인 이름은 소니"라고 덧붙인다. 여기에 유세윤도 "남편의 성을 붙여 성민 엉거라고 부르냐"고 한 숟가락을 얹는 식이다. 즉 이 기묘한 토크쇼는 게스트들의 이야기만으로 흘러가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끊임없이 추임새를 붙이고 엉뚱한 해석을 하고 이야기에 상상력을 덧붙이는 식으로 전혀 다른 이야기 흐름을 만들어낸다.

이 '삼천포 토크(?)'가 갖는 매력은 토크의 내용이 아니라 그 엄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토크 속에서 드러나는 게스트의 반응에서 나온다. 심지어 사실과 다른 이야기로 비화되고 과장되지만, 그것을 웃음으로 받아주고 농담으로 받아치는 과정에서 게스트들의 몰랐던 매력이 끄집어내진다는 얘기다. 다른 토크쇼에도 여러 번 나왔던 이준이 유독 '라디오스타'에 나와 주목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이 '삼천포 토크' 속에서 그만의 엉뚱한 매력이 자연스럽게 뽑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이런 점으로 보면 기존의 '게스트 중심 토크쇼'들은 게스트들의 삶과 이야기를 소비하는 것으로 동력을 얻는 반면, '라디오스타'는 오히려 이 안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생산하는 것으로 동력을 얻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즉 게스트 편차와 상관없이 누가 나와도 된다는 얘기다.

어찌 보면 토크쇼는 그저 상대방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이야기의 내용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한 건 그 즐거운 분위기 즉 형식이다. '라디오스타'는 물론 내용을 갖고 접근하지만, 그 내용 바깥으로 끊임없이 빠져나가려는 MC들의 '삼천포 토크'에 의해 내용 그 이상의 것을 포착하는 토크쇼다. 이 놀라운 토크쇼가 그 어떤 게스트가 나와도, 아니 심지어 홍보 포인트가 없는 게스트일수록 더 재미를 주는 이유는, 그 토크의 주도권이 온전히 MC들에 의해 쥐여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라디오스타'를 통해 어떤 게스트들의 인생역정을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오히려 MC들이 그 게스트들을 갖고 어떤 '삼천포 토크'를 할 것인가를 궁금해 한다. 바로 이 점이 거의 유일하게 게스트에 좌우되지 않는 '라디오스타'를 만드는 가장 큰 힘이다.


'라디오스타', 이런 빨대 같은 예능이 있나

'라디오스타'(사진출처:MBC)

연기돌 특집으로 임시완, 유이, 제이, 이준을 게스트로 초대한 '라디오스타'는 먼저 유이에게 애프터스쿨에서의 포지션을 물어보는 것으로 그 포문을 열었다. 가수로서 노래가 포지션이 아닌 유이가 재치있게 "자신의 위치는 포스트"라고 말하자 유세윤은 이것을 "유이는 애프터스쿨의 채치수"라는 말로 받아 넘겼다. 게스트에게 시작부터 툭 치고 들어가는 이런 공격적인 토크 방식은 '라디오스타'만이 가진 일종의 신고식인 셈이다. 윤종신은 이제 군대에 간다는 트랙스의 제이에게 "첫 등장인데 고별방송"이라고 툭 치고 들어갔고, 김구라는 이준에게 아예 노골적으로 "엠블랙보다 비스트가 낫다"고 특유의 직설어법으로 상대를 당황하게 했다.

'라디오스타' 특유의 공격적인 어법은 그러나 이 프로그램만이 가진 게스트 배려방식이다. 이것은 여러모로 김구라가 툭하면 양배추를 들먹이는 방식 그대로다. 겉으로 보기엔 독설처럼 여겨지지만 그럼으로써 상대를 주목받게 만든다. 단 게스트가 공격을 넘어서 주목을 받으려면 조건이 하나 있다. 이 공격적인 흐름을 잘 타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게 흘러가는 대로 받아치고 인정하고 하는 과정을 거치다 보면 지금까지 봐왔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게스트의 면모가 발견될 수밖에 없다. 이준이 갑자기 주목받게 된 것은 그 때문이다.

이준은 요즘 '해를 품은 달'로 최고로 잘나간다는 제국의 아이들의 임시완과 비교되면서 오히려 이 토크쇼의 중심으로 조금씩 자리했다. MC들은 심지어 가리마가 정반대라는 것까지 짚어서 임시완과 이준이 가는 길이 반대라고 몰아붙였다. 하지만 이런 일련의 공격에 이준은 반박하기보다는 순순히 상황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자세를 견지했다. 솔직히 비스트가 엠블랙보다 더 잘 나간다고 수긍하는 한편, '닌자어쌔신'에 캐스팅될 때 영어를 못해 겪은 굴욕 에피소드로 웃음을 주기도 했다. 그러자 MC들은 유이와 제이에게 연기돌로서 했던 연기를 선보이라며 그 받아주는 역할로 이준을 지목했다. 심심할 수 있었던 연기 재연 장면은 이준을 세움으로써 빵빵 터지는 큰 웃음의 소재가 되었다.

이준은 '꽃보다 남자' 캐스팅이 유력했지만 할 수 없었던 이유로 당시 '닌자 어쌔신'에서 머리를 박박 밀었었기 때문이라고 밝혔지만 이 안타까운 사연 역시 '탈모F4'는 어떠냐고 묻는 김구라에 의해 웃음으로 바뀌었다. 이준은 이런 상황에 맞춰 자신만의 독특한 예능감을 드러냈다. 스스로 돈을 아낀다는 그에게 "가장 돈을 많이 쓰는데"가 "이온음료를 살 때"라고 말하는 한편, 한예종 무용과에 입학할 정도로 있어 보이지만 '아침 조 뛸 깅'으로 조깅의 뜻을 알 정도로 무식하다고 몰아세워졌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불쾌해하기는커녕 이준은 거꾸로 무식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겠다는 듯 돌발 퀴즈를 내서(오히려 무식이 탄로 나는 것이었지만) 좌중을 포복절도하게 만들었다.

"이를 잘 닦지 않는다는 소문이 있다"는 얘기에 "맡아 보세요"라고 말하고, 소속사에 대한 불만에 "올드보이처럼 만날 김치볶음밥만 사준다"며 "미각을 잃었다"고 얘기하며, 스스럼없이 자신을 '벗는 담당'이라 밝히며 생방송 중 '흉점 노출'로 겪었던 에피소드를 천연덕스럽게 던지는 이준은 그래서 '라디오스타'를 통해 전혀 다른 모습을 드러내 주었다. 어찌 보면 MC들의 집중공격으로 너덜너덜해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럼으로써 이준은 훨씬 예능감 넘치고 심지어 여유까지 있어 보이는 예능돌로 거듭날 수 있었다. "말만 하면 팬들이 떨어진다"는 MC의 지적에도 선선히 그걸 인정하면서 "하지만 말을 줄일 생각은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를 사랑해줬으면 합니다."고 말하는 대목에서는 이준의 솔직한 매력까지 드러났다.

이로써 '라디오스타'의 연기돌 특집으로 기획된 이 프로그램은 의외로 이준이라는 예능돌의 발견이 되었다. 게스트에게 뭐든 콕콕 찔러서 빼먹을 건 다 빼먹는 '라디오스타'만의 토크 방식은 그 상황에 잘 적응하고 겪어내기만 한다면 '재발견'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걸, 이준이라는 예능돌의 탄생을 통해 보여준 셈이다. 프로그램 말미에 이르러서도 '라디오스타'의 '빨대 토크'는 계속 이어진다. 이준에게 "김종민 같다"고 하고는, 앞으로 '백지돌' 특집을 하자고 말한다. 시크릿의 한선화랑 같이.


'승승장구'에서 '라스'까지, '개콘' 전성시대

'라디오스타'(사진출처:MBC)

'승승장구'에 MC가 아니라 게스트로 출연한 이수근은 그간 한 번도 꺼내놓지 않았던 불우했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통해 좌중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무속인인 어머니, 투병중인 아내, 장애를 가진 아들 이야기는 늘 밝게 웃으며 우리에게 큰 웃음을 주고 있는 이수근이라는 개그맨을 다시 보게 해주었다.

한편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유세윤와 개식스(김준호, 김대희, 장동민, 유상무, 홍인규)는 돈독한 우정과 탁월한 개그감으로 웃음과 눈물의 롤러코스터를 선사했다. 힘겨웠던 과거의 아픔과 치부는 물론이고 심지어 눈물마저 개그로 풀어내는 그들은 진정한 개그맨이었다. 유세윤이 드러낸 화려함 이면에 있는 우울은 보는 이를 먹먹하게 만들었다.

'개그콘서트(이하 개콘)'의 존재감이 갈수록 빛을 내고 있다. 단지 시청률이 전체 예능 1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더 중요한 건 '개콘'이 배출하고 있는 개그맨들의 존재감이 빛난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제 '개콘'이라는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한정짓기 어려운 영향력을 방송 전체 예능 프로그램에 미치고 있다.

'1박2일'의 중추가 된 이수근, '라디오스타'는 물론이고 'UV신드롬' 등을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유세윤, '정글의 법칙' 같은 극한 예능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김병만, '무한도전'의 미친 존재감이 된 정형돈처럼 이미 '개콘' 바깥에서 확고한 자신의 위치를 구축한 개그맨들뿐만이 아니다.

현재 '개콘'의 수장 역할을 하고 있는 김준호를 비롯해, 각 코너에서 주목받고 있는 최효종, 김원효, 정범균, 허경환은 '해피투게더 시즌3'에 출연해 그간 정체된 분위기를 일소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개콘'이 배출한 신봉선은 이 토크쇼에서 때론 게스트들을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 스스로 망가지기를 주저하지 않는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이처럼 '개콘' 출신 개그맨들이 '개콘' 안팎으로 활약할 수 있게 된 배경은 결국 '생존'에서 찾을 수 있다. 많은 개그맨들의 무대가 있었지만 내홍을 겪으며 전부 사라지는 와중에도 '개콘'은 굳건히 살아남았다. 그것도 그저 살아남은 게 아니라 예능을 대표하는 프로그램으로. 이렇게 버텨낼 수 있었기 때문에 수많은 개그맨들의 산실이 될 수 있었다. 현재 예능의 새 피를 수혈해주는 거의 유일한 프로그램이 '개콘'이 된 것이다.

'개콘'의 이런 경쟁력은 그 독특한 시스템에서 나온다. 마치 샐러리맨처럼 출퇴근제를 하고 있는 '개콘'은 매일 개그맨들이 모여 아이디어를 짜고 연습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과정에서 선후배 간의 독특한 위계질서가 생겨난다. 무조건 선배가 주인공을 하는 그런 식이 아니라 아이디어에 걸맞는 최적의 인물을 찾아서 서로 꽂아주고 세워주는 협업시스템이 '개콘'의 진정한 힘이다. 매일 서로의 개그 스타일을 보기 때문에 아이디어를 짜면서도 상대방의 스타일을 염두에 두고 활용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개콘' 출신 개그맨들이 서로를 생각해주는 마음이다. 이수근은 '개콘'에서 봉숭아학당을 할 때만 해도 이미 그만두려는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하지만 서수민PD가 "후배들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만 기다려 달라"는 말 한 마디에 아무 조건 없이 6개월을 버텨주었다고 한다.

'승승장구'에서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각별한 우정을 느끼게 해준 이수근과 김병만처럼, 유세윤을 생각하는 장동민과 유상무의 마음 역시 각별하다. 누가 잘 나가든 누가 조금 못나가든 그런 것과 상관없이 서로를 생각하는 우정은 '라디오스타'에서 유세윤과 유상무가 잠깐 보인 눈물 속에 모두 들어가 있다.

한편 '개콘' 선배들이 후배를 바라보는 시선은 유세윤이 김준호, 김대희에게 "'개콘' 출신 개그맨이 타 방송 개그 프로그램('코미디 빅리그'를 말하는 것이다)에 나오는 걸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김대희의 답변 속에 들어있다. 그건 방송사들의 문제이지, 개그맨들은 각자 위치에서 개그를 하면 된다는 그 말에는 선배로서 후배 개그맨을 생각하는 진심이 담겨져 있다.

'개콘'은 이제 그저 하나의 개그 프로그램을 넘어서 전체 예능에 영향을 미치는 프로그램이 되었다. '개콘'을 발판삼아 성장해 나온 개그맨들의 성공담은 그래서 현재 '개콘'에서 묵묵하게 조연 역할을 해주고 있는 젊은 개그맨들에게는 하나의 꿈이자 희망이 되고 있다. 그리고 그 꿈은 전체 예능을 꿈꾸게 만드는 동력이 된다. 이제 김병만이 없는 '정글의 법칙'을, 이수근이 없는 '1박2일'을, 유세윤이 없는 '라디오스타'나 'UV'를 떠올릴 수 없는 건 그들의 꿈이 만든 예능의 새로운 세계를 실감하게 한다. '개콘'을 통해 더 많은 개그맨들의 꿈이 예능 전체로 퍼져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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