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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김병철, <푸른바다> 황신혜, <낭만닥터> 최진호의 유사점은

 

사실상 드라마의 반은 악역들이 만들어낸다. 악역이 있어야 갈등이 생기고 드라마도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갈등유발자로서의 악역은 시대와 무관하지 않다. 그 시대가 밟고 있는 지평 위에서 가장 민심을 건드릴 수 있는 악이 캐릭터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드라마의 주제의식은 주인공만큼 악역에게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사진출처:tvN)'

그런데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드라마들을 보면 악역들의 유사점들이 발견된다. 그들은 멀쩡한 얼굴로 거짓말을 일삼는 자들이고, ‘세치 혀를 놀려 사실상 모든 권력의 정점에 서서 전횡을 일삼는 인물들이다. 대중들 앞에서는 선한 척 명분을 내세우지만 그 실체는 추악하기 이를 데 없는 괴물들. 이 시대가 이른바 비선실세라고 부르는 그들.

 

tvN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에서 간신 박중헌(김병철)은 어린 왕을 세우고 그 왕을 조종해 세상에 군림하려는 자다. 알고 보면 이 <도깨비>의 모든 갈등의 근원은 바로 이 박중헌이라는 악역으로부터 비롯된 일들이다. 그의 세치 혀에 의해 외세를 물리친 김신(공유)은 왕을 위협하는 역적으로 몰아세워지고 결국 그와 그의 여동생까지 죽음에 이르게 만든다.

 

백성들의 간절한 기도에 힘입어 부활한 도깨비 김신은 그렇게 9백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오며 자신을 영원히 무()로 보내줄 도깨비 신부를 기다리지만 막상 만난 그녀를 김신은 사랑하게 된다. 그들 앞에 다시 나타나 세치 혀를 놀려 파국을 노리는 자가 바로 박중헌이다. 그는 김신과 함께 지내는 저승사자(이동욱)가 바로 그들을 죽게 만든 왕이었다고 말한다. 등장하면서 검은 세치 혀를 날름대는 장면은 박중헌이라는 악의 근원은 바로 그 말이라는 걸 말해준다.

 

SBS <푸른바다의 전설>에서 계모로 들어와 단란했던 가족을 붕괴시켜버린 강서희(황신혜) 역시 입만 열면 거짓말을 일삼는 악역이다. 자신이 함께 살았던 이들을 모두 죽음으로 몰아넣는 이 희대의 악녀는 결국 허준재(이민호)의 부친이자 그녀의 남편인 허일중(최정우)의 시력을 점점 잃게 만들더니 결국은 살해한다. 허준재를 만난 후 그녀를 의심하게 된 허일중이 그녀가 주는 약을 먹지 않고 버릴 때 그 모습을 바로 앞에서 보고 있는 장면은 마치 공포물의 한 장면을 연상시킬 정도로 소름을 돋게 만든다.

 

누군가의 눈을 멀게 하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하는 악역이란, 여러모로 허수아비를 세워 놓고 눈과 귀를 가리며 결국은 파국으로 이끄는 비선실세의 캐릭터 그대로다. 허일중의 죽음은 그래서 허준재를 각성하게 만든다. 가짜 행세를 해온 강서희와 그녀의 아들 허치현(이지훈)을 몰아내고 제 자리를 찾는 일이 그 무엇보다 중대한 사안으로 다가오는 것. 이만큼 현 시국과 닮은 상황이 있을까.

 

SBS <낭만닥터 김사부>에서 악의 근원은 도윤완(최진호) 거대병원 원장이다. 그는 과거 김사부(한석규)의 대리 수술을 실제로 주도한 인물이지만 그 문제가 불거지자 모든 죄를 김사부에게 뒤집어씌운다. 그는 실질적인 권력을 갖고 병원을 좌지우지하는 인물이지만 그렇다고 그가 병원의 주인은 아니다. 실제 주인은 신회장(주현)과 그의 딸(김혜은)이지만 도윤완이 주인 행세를 하는 격.

 

그는 권력을 이용해 어떻게든 김사부를 내쫓고 자신의 입지를 지켜내려 한다. 그러면서 실제로 김사부가 그 어려운 인공심장 교체 수술을 해낸 걸 마치 자신의 치적인 양 가로챈다. 신 회장은 자신의 건강상의 문제 때문에 병원 경영에서 한 발 물러서 있었지만 차츰 이런 현실을 알아차린다. 그 잘난 세치 혀로 사실상 비선실세의 역할을 해온 도윤완의 전횡을 김사부가 어떻게 저지하고 무너뜨리느냐가 이 드라마가 꿈꾸고 있는 사이다 결말이다.

 

드라마 악역들이 이처럼 비선실세들로 넘쳐난다는 사실은 어쩌다 겹친 우연처럼 보이지가 않는다. 그것이 현재 우리 사회가 처한 악의 근원이라는 걸 드라마들은 놓치지 않고 꺼내놓고 있다는 것. 그들의 세치 혀가 농단한 세상을 다시 본래 자리로 돌리는 것이 드라마들이 꿈꾸는 결말이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네 서민들이 꿈꾸는 결말이기도 하다

Posted by 더키앙

<푸른바다>의 눈 먼 어른은 진실에 눈 뜰 수 있을까

 

과연 그는 진실을 마주할 용기를 낼 수 있을까. SBS <푸른바다의 전설>이 진실이라는 새로운 카드를 꺼내들었다. 사라진 아버지를 찾기 위해 몰래 집으로 들어가 아버지와 마주친 허준재(이민호)는 어두컴컴한 방에서 시력을 잃어가며 죽어가고 있는 아버지에게 소리쳤다. “도대체 여기서 뭘 보고 계신 거냐구요? 여기 더 있다간 아버지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구요.”

 

'푸른바다의 전설(사진출처:SBS)'

허준재의 이 외침은 어째 예사롭지가 않다. 점점 시력을 잃어가며 앞을 보지 못하는 그의 아버지 허일중(최정우)이란 캐릭터 역시 마찬가지다. 그저 심청전의 심봉사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캐릭터처럼 보였지만, 거기에는 또한 눈이 있어도 앞을 보지 못하는 어른들을 표상하는 의미가 담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허일중은 아들의 그런 이야기가 다 거짓말이고 사기 같다. “여긴 내 집이야. 내 집에서 내가 무슨 일을 당한다고 그래.” 자신이 있는 곳이 바로 집이기에 자신이 거기 감금되어 있다고는 상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허준재는 허일중의 비서 남부장(박지일)이 사고를 당한 것도 또 아버지가 이렇게 된 것도 모두 새 어머니 강서희(황신혜) 때문이라고 폭로한다.

 

하지만 허일중은 그걸 믿으려 하지 않는다. “니가 지금 여기 어떻게 들어왔는지 모르겠지만 10년 만에 집에 들어와서 한다는 짓이 어머니를 모함하는 거냐?” 그것을 받아들이는 일은 허일중 자신의 과거 선택이 잘못됐다는 걸 인정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 아버지 선택은 잘못됐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다.” 그렇게 허준재는 얘기하지만 허일중은 그걸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다.

 

니가 뭔데 그걸 판단해. 내 선택이야. 내 인생이고. 잘못 되지 않았어. 난 행복했다. 겨우 시력이 조금 떨어지는 걸 가지고 내 선택이 내 인생이 실패했다고 말하고 싶은 거냐? 이 눈, 수술하면 다 나아져. 내 몸 상태가 나빠서 수술 못하고 있을 뿐이야. 수술만 하면은.” 그는 여전히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하고 심지어 자신의 인생이 행복했다고 말한다. 그것이 사실은 강서희에게 농단된 삶이었다는 걸 인정하지 못한다.

 

아버지는 눈앞에 있는 저만 못 보시는 게 아니네요. 아무것도 못 보시네요. 아버지 인생이 어디로 떨어지고 있는지 볼 생각조차 없으시네요.” 허준재의 이 말은 사실이다. 과거의 잘못된 선택을 인정하지 못하는 허일중은 진실을 모른다기보다는 진실을 바라볼 용기가 없는 것이다. 그것을 보고 인정하는 순간 자신이 살아왔던 삶이 무화되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애써 부정한다. “17년을 같이 산자신이 강서희를 누구보다 잘 안다고 믿고 싶다.

 

어째서 이들의 대화는 드라마 속의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을까. 허일중이라는 눈 먼 어른의 캐릭터를 통해 담아내고 있는 이 이야기는 우리가 지금 처해 있는 일부 눈 먼 어른 세대들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다가온다. 눈 앞에 이미 저들에 의해 농단된 현실을 마주하면서도 그것이 모두 거짓이라고 말하는 일부 눈 먼 어른들. 그들이 목소리를 높일 때마다 도대체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않고 생각했던 그들.

 

하지만 그렇게 진실을 바로 바라본다는 건 실로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푸른바다의 전설>은 에둘러 말해준다. 그 선택은 분명 잘못됐었지만 그걸 인정하는 건 자신의 삶을 부정하는 일처럼 다가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 역시 이미 알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걸 인정하지 않는 한 멀어가던 눈을 다시 뜰 수는 없다는 걸 말이다. 과연 <푸른바다의 전설>은 어떤 결말을 보여줄까. 그들은 다시 눈을 뜰 수 있을까. 흥미로워지는 대목이다

Posted by 더키앙

<푸른바다>가 갖고 있는 흥미로운 심청전의 재해석

 

심하게 멍청해서 심청이다? SBS <푸른바다의 전설>에서 인간세상으로 나온 인어에게 허준재(이민호)는 그렇게 반 농담을 섞어 심청이란 이름을 붙여준다. 사실 바다와 관련 있는 심청이란 고전소설의 인물이 인어의 이름으로 떡하니 붙여진다는 건 흥미로운 접근방식이다.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공양미 삼백 석에 팔려 바다로 뛰어든 효녀. 하지만 용왕에 의해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온 인물. 인어란 가상의 존재가 결국은 그렇게 바다로 사라져버린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수많은 그리움들이 만들어낸 것이라면, 심청 역시 그 부활의 기저에는 비슷한 맥락이 깔려 있지 않았을까.

 

'푸른바다의 전설(사진출처:SBS)'

그저 코미디의 하나로 농담 반 진담 반 심청이란 이름이 붙여진 것이 아니라는 게 명확해진 건 그녀가 사랑하는 허준재의 아버지 허일중(최정우)이 처한 위기가 하필이면 눈이 멀어가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희대의 악녀인 강서희(황신혜)가 바꿔치기한 약으로 인해 서서히 눈이 멀어간다. 허일중이 심봉사의 재해석이라면, 강서희는 뺑덕어멈의 재해석이다.

 

<푸른바다의 전설>은 그래서 어우야담에 등장하는 담령과 얽힌 인어이야기로부터 시작하지만, 후반부에 이르러 심청전의 모티브들을 상당 부분 끌어와 재해석한다. 허일중과 그 가족이 처한 위기가 인어 심청(전지현)이 처한 위기보다 더 긴박하게 전개된다. 허일중과 허준재 그리고 모유란(나영희)의 단란했던 집안을 갈기갈기 찢어놓은 건 강서희와 그의 아들 허치현(이지훈)이다. 강서희는 상습적으로 남편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그 유산을 가로채는 꽃뱀에 가까운 인물. 친구였던 모유란과 그 아들까지 몰아내고 대신 그 자리에 자신과 자신의 아들 허치현을 세웠다.

 

<푸른바다의 전설>이 보여주는 건 그래서 허준재의 진짜 가족이 다시금 회복되어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가의 문제다. 그건 아들 행세를 하고 아내 행세를 하며 사실은 허일중이 가진 것들을 빼앗아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려는 가짜 가족을 몰아내야 하는 일이다. 흥미로운 건 마대영(성동일)이라는 인물이 강서희, 허치현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초반 이 연결고리는 의문스럽기 그지없었으나 차츰 그들이 또 하나의 가족이 아닐까하는 심증이 점점 확증이 되어가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 대결구도를 보면 허일중-허준재-모유란이라는 진짜 가족과, 마대영-허치현-강서희라는 또 하나의 가족이 드러난다. 허준재의 가족이 사랑으로 얽혀있다면 허치현의 가족은 욕망으로 얽혀있다. 허준재의 가족이 각각 뿔뿔이 흩어져 있으면서도 서로에 대한 그리움을 늘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면, 허치현의 가족은 그 연결고리들이 욕망으로만 이어져 있다.

 

<푸른바다의 전설>이 심청전에서 모티브를 가져와 가족 대 가족의 대결을 그리게 된 건 이 드라마가 메시지로 제시하고 있는 진정한 인연의 문제와도 무관하지 않다. 전생의 좋은 인연은 현생의 좋은 인연으로 또 이어진다. 하지만 전생의 악연은 현생에서도 또 다른 악연으로 반복된다. 좋은 인연과 악연을 가르는 건 그 관계가 무엇에 의해 형성되었는가에 의해서다. 단순한 구도지만 <푸른바다의 전설>이 내세우는 그 두 개의 관계 축은 사랑과 욕망이다.

 

인어와 사랑의 관계를 맺은 허준재가 있는 반면, 인어를 물욕의 대상으로 관계를 맺은 마대영이 있다. 그리고 이런 구도는 역시 심청전에서 심청의 효와 공양미 삼백 석이라는 물질이 등가를 이루는 그 이야기 속에도 그대로 등장한다. 인어가 어떤 순수한 사랑의 결정체라면, 우리 식으로 그런 사랑을 스스로 바다에 몸을 던져 보여준 인물이 심청이 아닌가.

 

그래서 <푸른바다의 전설>은 서구의 인어공주 이야기를 어유야담의 담령과 인어의 이야기로 재해석하고는 이제 심청의 이야기로 결말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과연 심청의 자기희생적인 도움으로(허준재를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뭍으로 나온 그녀의 자기희생은 눈 먼 아비를 위해 바다로 뛰어든 심청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허준재는 잃었던 자신의 가족을 회복할 수 있을까. 결국 이 전설이 담고 있는 건 그 어떤 욕망보다 더 간절한 진짜 가족의 회복인 셈이다. 어쩌면 우리 시대에 점점 희미해져가고 있어 더 간절해진.

Posted by 더키앙

<푸른바다>, 그저 인어판타지로 치부할 수 없는 기억 모티브

 

도대체 이 인어라는 존재의 진짜 능력은 무엇일까. SBS 수목드라마 <푸른바다의 전설>을 보다 보면 슬쩍 드는 의문이다. 인간보다 오래 산다? 인간을 사랑하게 되고 사랑받지 못하게 되면 심장이 서서히 굳어 먼저 죽을 수 있는 존재로 인어가 그려지고 있는 마당에 이런 삶의 길이는 그다지 중요한 능력이 아닌 것 같다. 물에서도 살 수 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인어의 관점으로 보면 뭍에서 잘 살 수 없다는 이야기일 수 있다. 역시 능력이라 부르긴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힘이 세다? 이건 능력일 수 있다. 하지만 <푸른바다의 전설>에서 이 능력을 발휘하는 장면은 스페인 바닷가 마을에서의 추격전 정도다. 그것도 코미디로 처리된.

 

'푸른바다의 전설(사진출처:SBS)'

조금씩 드러나고 있는 것이지만 이 인어의 진짜 능력은 기억과 관련되어 있다. 누군가의 아픈 기억을 지워줄 수 있는 존재. 이것은 실로 아픈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능력이다. 중간에 살짝 에피소드를 들어간 의료사고로 죽은 딸의 아픈 기억을 가진 예은 엄마 이야기가 그렇다. 웃으며 돌아오겠다던 아이가 싸늘하게 돌아왔을 때 찢어지는 부모의 마음이 어떻겠는가. 그 기억은 너무나 아파 지우고 싶지만 또한 지울 수도 없는 것일 게다.

 

하지만 이 인어가 기억을 지우는 능력을 가진 것으로 드라마가 설정하고 있지만 아픈 기억을 가진 이들은 아파도 결코 기억을 지우려 하지 않는다. “아파도 사랑할 수 있으니까. 우리 딸 기억하지 못해서 사랑하지 못하는 것보다 아파도 기억하면서 사랑하는 게 나아요.” 예은 엄마의 이 한 마디는 그래서 이 드라마가가 내세우고 있는 주제의식이나 마찬가지다. 인어는 상처를 보듬어주기 위해 기억을 지워주겠다고 하지만, 그 상처는 다름 아닌 사랑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즉 기억을 지운다는 건 사랑을 지운다는 것이나 마찬가지.

 

이 기억 모티브의 이야기는 그래서 다시 허준재(이민호)의 아픈 기억의 이야기로 돌아온다. 허준재는 계모 강서희(황신혜)로부터 어린 시절 깊은 상처를 받았다. 엄마가 떠나버리고 남은 자리에 계모가 들어서더니 그녀가 데려온 배다른 형 허치현(이지훈)이 그의 자리마저 빼앗아버린 것이다. 그는 결국 그 기억으로부터 도망친다. 그래서 아버지를 떠나 최면술로 누군가의 기억을 조작함으로써 돈을 뜯어내는 사기꾼으로 살아간다.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 앞에서 그는 본심을 내보이지 않는다. 아버지에게 그는 아버지 곁을 떠나 훨씬 좋았다. 홀가분했다. 뒤도 안 돌아보고 포기한 건 미련 갖지 말고 잊어버려라아버지에게서 아무것도 안 받고, 안 엮이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건 거짓이었다. 그는 청이(전지현)에게 진짜 보고팠던 아버지에 대한 속내를 이야기하며 눈물을 흘린다. 청이는 누구에게 하지 못했던 그런 이야기들을 언제든 자기에게 털어놓으라고 말한다.

 

허준재는 또한 꿈속에서 전생의 자신이었던 담령을 만난다. 담령은 이미 과거에 인어와 인연을 맺었고 동시에 그녀를 죽이려는 마대영(성동일)과 악연을 맺었다. 어찌 된 일인지 담령은 시간을 뛰어넘어 이 악연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허준재에게 알리려고 한다. 그래서 남기는 것이 바로 자신의 자화상이다. 허준재는 담령의 거처에서 발굴된 유물 속에서 잘 보존되어 있는 자화상 속의 자신의 얼굴을 목도하며 놀란다.

 

허준재는 그래서 두 개의 자신과 마주하게 되는 셈이다. 하나는 어린 시절의 상처받은 자신이고 또 하나는 전생의 담령이다. 그 과거의 두 자신들은 모두 상처받은 존재들이다. 그래서 허준재는 그 기억들로부터 도망쳐 왔다. 하지만 그 기억들이 인어의 등장과 함께 다시금 그의 앞에 나타난다. 인어는 기억을 지울 수 있는 존재지만 동시에 기억을 상기시키게 해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아픈 사랑이란 망각으로 지워지기도 하지만 그 아름다운 기억으로 끊임없이 되살아나기도 하니 말이다.

 

오랜 세월을 묻혀 있던 유물들이 발굴되어 허준재의 지워진 기억을 깨운다는 이야기의 설정은 그래서 흥미롭다. 결국 아픈 기억들을 지우려 했지만 결코 지워서는 안되는 기억들도 있기 마련이다. 그 기억을 지우지 않고 떠올리는 것이 남아 있는 이들이 똑같은 비극을 겪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허준재는 그렇게 지우려 했던 기억들이 유물로서 자신의 눈앞에 돌아온 것을 마주하게 됐다. 묻는다고 묻히는 게 아니다. 그리고 묻어서는 또 다른 아픈 일들이 우리 앞에 부메랑처럼 돌아오기 마련이다. 우리가 지금 마주하고 있는 현실처럼.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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