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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혹은 킬러, 힐링 혹은 킬링

 

KBS 월화드라마는 <힐러>라는 낯선 제목을 달았을까. 우리 식의 슈퍼히어로를 담아내고 있는 이 드라마에서 그 영웅적 존재가 힐러라 불린다는 건 의미심장하다. 슈퍼맨이나 배트맨처럼 즉물적인 느낌을 주는 것도 아니고 X맨처럼 세련된 느낌이 있는 것도 아니다. 힐러는 그림자처럼 다가와 비밀스런 일들을 하는 존재다.

 

'힐러(사진출처:KBS)'

힐러라는 제목이 더 명쾌하게 이해되려면 그 반대의 의미를 가진 킬러를 떠올려보면 된다. 즉 이 드라마에서 힐러인 서정후(지창욱)는 밤에 어둠 속에서 나타나 누군가를 죽이고 사라지는 킬러와는 정반대되는 인물이다. 그는 누군가를 살리고 위로하며 구원하는 존재다. 그를 사랑하게 된 영신(박민영)이 정후가 킬러인지 힐러인지를 헷갈려하는 장면은 그래서 흥미롭다. 어린 시절 버려진 충격에 정신적인 장애를 겪는 그녀는 그녀를 구원해줄 힐러를 기다린다.

 

<힐러>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MBC 수목드라마 <킬미 힐미>는 적어도 그 제목만으로는 <힐러>와 유사한 연관성이 엿보인다. 7개의 인격을 가진 다중인격 차도현(지성)의 자아 중 하나인 요섭은 자살을 기도하는 인물이다. 건물 옥상 위에 올라가 킬 미(KILL ME)’라는 죽음의 표식을 남기고 자살하려는 그를 구해낸 오리진(황정음)은 그 글자를 힐 미(HEAL ME)’로 바꿔 놓는다. 이 장면은 이 드라마의 메시지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죽게 놔둘 것인가 아니면 구원해낼 것인가.

 

<힐링캠프>에게서 점점 멀어지는 대중들의 관심이 힐링 트렌드의 종언을 얘기하는 것처럼 여겨졌지만 사실 힐링에 대한 갈증은 여전하다. 다만 <힐링캠프><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같은 힐링에 대한 조금은 여유 있는 접근방식이 당장이 갈급한 대중들에게는 점점 공감대를 잃어버렸을 뿐이다. 지금 새롭게 떠오르는 힐링은 그래서 킬링을 전제한다. 구원받지 않으면 죽음을 맞게 되는 급박한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그 죽음의 공포까지 느끼는 그 급박함은 도대체 뭐고 어디서부터 비롯되는 것일까. <힐러><킬미 힐미> 그리고 <하이드 지킬 나> 같은 드라마들이 거의 모두 정신증을 다루고 있다는 건 흥미롭다. <힐러>의 영신은 일종의 공황장애 같은 걸 겪고 있고, <킬미 힐미>의 도현이나 <하이드 지킬 나>의 구서진(현빈)은 모두 다중인격 장애를 겪고 있다. 공황장애가 죽을 것 같은 고통이라면, 다중인격 장애는 자신의 정체성이 지워질 것 같은 공포감이다.

 

최근 들어 드라마에 등장하는 질환이 과거 같은 외과적 문제가 아니라 정신과적인 문제라는 점은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이른바 멘탈붕괴의 시대다. 작년 한 해를 두고 봐도 우리는 너무 많은 사건 사고를 통해 아주 가까이서 죽음을 들여다봐야 했다. 게다가 그 죽음에 대해 무력하고 심지어는 무책임하기까지 했던 공권력의 부재를 보면서 그 사회적 불안감은 더 증폭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들 드라마들이 모두 멜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한계는 있지만, 그래서 이렇게 죽음의 공포 앞에 놓여진 정신증의 문제들을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문제해결이 아닌 개인적인 사랑으로 넘어서려는 한계를 보이고 있지만 그나마 힐링을 갈구하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드러낸다는 건 의미 있는 일이다.

 

정신증의 문제는 외과적 문제와는 그 치료의 접근방식에 있어서 근본적인 차이를 보인다. 외과적 문제는 병변을 적으로 간주해 제거하는 것으로 치료를 꾀하지만, 정신증은 그럴 수가 없다. 다중인격으로 드러난 또 다른 자아는 적이나 타인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다. 나는 나와 싸울 수 없다. 그러니 함께 공존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것은 요즘처럼 적을 외부에서 발견하기보다는 우리 내부에서 발견하는 사회의 구조를 닮았다. 지금을 정신증의 시대라고 말하는 건 세상을 치유하는 방식으로서 외과적인 방식이 아닌 정신증적인 방식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문제는 저 SBS드라마 <펀치>가 보여주는 것처럼 어디가 적이고 어디가 아군인지 전혀 알 수 없는 오리무중 상태라는 점이다. 좋은 내 편과 나쁜 적이 있는 게 아니라, 덜 나쁜 놈과 더 나쁜 놈이 있고, 그것도 영원히 유지되는 게 아니다. 때론 적과도 손을 잡는 그 비정한 세상에 남아있는 건 법과 정의 따위가 아니다. 법은 이미 권력을 잡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고, 선량한 국민조차 그 과정에서는 희생자가 된다.

 

이것은 정신병증의 사회다. 우리는 한 가지 일관된 자아를 유지하고 산다기보다는 무한한 욕망 속에서 분열된다. 그 분열된 자아는 어쩌면 자신을 보호하려는 수단으로 우리 스스로 만들어낸 보호색일 것이다. 그리고 보호색을 갖지 못한 자는 알 수 없는 불안을 넘어서 죽을 것 같은 공포와 마주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아무런 도움도 테두리도 되어주지 못하는 국가나 법은 방관자이자 공범자가 된다.

 

지금 우리 대중문화를 뒤덮고 있는 힐링에 대한 새로운 갈증은 그래서 킬링하고 있는 현실의 암담함을 전제하고 있다. 누군가를 살려야할 이들이 오히려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고, 누군가를 지켜야할 이들이 오히려 그들을 더 힘겨운 현실 앞으로 내몰고 있다. 정작 여기서 말하는 힐링이란 저 <힐링캠프>가 가끔 보여주는 그런 사치스러운 고민 따위가 아니다. 그저 <삼시세끼> 걱정 없이 편하게 먹고 싶다는 것뿐이다. 도대체 어쩌다 이런 소박한 욕심조차 허락되지 않는 현실이 된 걸까.

 

 

Posted by 더키앙

유지태도 주진모도 가리지 못한 지창욱의 존재감

 

어딘지 어눌한 듯한 모습과 동시에 강인한 면을 갖고 있는 배우. 바로 지창욱이다. 그의 연기는 그래서 약하고 비굴하고 때로는 바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안에 단단한 내면을 숨기고 어떤 목적을 수행하거나 야망을 드러낼 때 더욱 돋보인다. <기황후>에 이어 <힐러>의 지창욱은 그래서 완전히 다른 연기 도전처럼 여겨지지만 그의 특징을 여전히 잘 보여주고 있다고 여겨진다.

 

'힐러(사진출처:KBS)'

그의 연기가 평범한 데서 시작해 비범하게 변화하고 성장하는 데서 돋보이듯이, 그의 드라마에서의 존재감은 조금씩 커져간다는 특징이 있다. <기황후>에서는 그래서 시작은 조연처럼 했지만 뒤로 가면서 주연인 주진모의 존재감을 흐리게 만들만큼 그의 파괴력이 전체 드라마를 흔들었다.

 

이것은 <힐러>에서도 마찬가지다. 물론 <힐러>는 시작부터 건물과 건물 사이를 뛰어다니며 보여주는 야마카시를 통해 그의 강렬한 액션을 보여줬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얼굴을 가린 힐러라는 다크히어로로서였다. 그런 그가 점점 얼굴을 드러내며 여심을 공략하기 시작한 것은 오히려 봉수라는 어딘지 어눌한 가면의 얼굴을 한 채 영신(박민영)에게 본격적인 접근을 하면서부터다.

 

그는 그렇게 종이에 물기가 스며들 듯 조금씩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늘 어둠 속에 있어야 하는 힐러라는 존재는 그래서 그에게는 자신의 매력을 드러내는데 맞춤이다. 어둠 속에서 바라보기만 해야 하던 그가 영화관을 나서는 영신(박민영)의 손을 덥석 잡는 장면이나, 건물 옥상에서 눈을 가린 영신에게 키스하는 장면에서는 여심을 녹일 수밖에 없었다.

 

마치 슈퍼맨처럼 일상의 어눌함과 이면의 비밀스런 신비로움을 가진 존재로서의 힐러는 그렇게 조금씩 영신이라는 여성 앞에서만 자신의 비밀을 걷어내면서 한 남자로서 다가온다. 이 양면적인 모습을 지창욱이 자연스럽게 연기하는 건 그의 남다른 디테일들 덕분이다. 그는 작은 눈빛 하나 손끝의 떨림 하나로 숨겨진 내면의 감정을 표현할 줄 아는 배우다.

 

흥미로운 건 이번 <힐러>가 유지태의 오랜만의 드라마 복귀작이었다는 점이다. 그의 존재감이 드라마 전체를 채울 것이라 여겨졌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그것은 유지태가 맡은 역할이 이 드라마의 중심 축이라고 할 수 있는 멜로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워낙 지창욱의 액션과 멜로를 오가는 연기가 돋보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차가운 얼굴처럼 무심한 표정이 어느 순간 바보처럼 편안하게 변신하고, 그 얼굴이 또 한 여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진지해졌다가, 자신의 부모를 위협하는 이들을 향해 분노로 일그러지고, 부모처럼 자신을 키워준 영재(오광록)의 죽음 앞에 오열하면서 영신의 품 안에 무너져 아이처럼 우는 이 일련의 연기 변화의 과정은 그래서 시청자들을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연기에 있어서는 한 획을 그었던 선배들이 할 수 있는 주진모도 또 유지태도 그의 존재감을 가리지 못했다. 그것은 아마도 선배들의 배려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지창욱이라는 괜찮은 몰입을 가진 배우의 잠재력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늘 기대 이상의 결과를 보여주는 배우다.

 

Posted by 더키앙

'힐러', 지창욱의 사랑, 유지태의 성장

 

<힐러>에 출연하는 박상원은 과거 송지나 작가의 <모래시계>에서 강우석 검사로 나왔었다. <모래시계>80년대 격동의 시절을 태수, 혜린, 우석 같은 젊은이들의 사랑과 우정으로 그려내면서 당시로서는 귀가시계라고 불릴 만큼 사랑받았던 드라마다.

 

'힐러(사진출처:KBS)'

그 때의 번듯했던 박상원은 그러나 <힐러>에서는 김문식이라는 악역이다. 겉보기엔 성공한 사업가 정도로 보이지만 그는 지금의 아내를 얻기 위해 과거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 그 아내의 아이를 내다버린 것. 그 때의 고통으로 심적 트라우마를 갖고 성장한 영신(박민영)을 김문식의 동생인 김문호(유지태)가 찾아내고 보호하려 한다. 그 사이에 김문호가 영신을 찾고 보호하기 위해 고용한 힐러 정후(지창욱)는 그녀에게 점점 빠져든다.

 

<힐러>에는 80년대 독재 타도를 외치던 젊은이들의 과거가 드리워져 있다. 그리고 그들은 현재 성장해 저마다의 삶을 살아간다. 과거 벌어졌던 어떤 사건이 현재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발목을 쥐고 있다. 힐러 정후나 영신은 모두 과거의 어른들에게서 버려져 외롭게 자라온 청춘들이다.

 

드라마의 과거가 되고 있는 80년대 젊은이들의 이야기에서 언뜻 과거 <모래시계>의 뉘앙스가 풍겨나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시대는 바뀌었고 그 때 그렇게 세상을 구원하겠다고 이상을 외치던 젊은이들은 이제 나이 들었다. 그 중에는 김문식처럼 당시 그토록 혐오했던 권력의 심층부에 들어와 있는 인물도 있다. <모래시계>의 박상원이 <힐러>의 박상원으로 나이든 모습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한 캐스팅이 아닌가 생각된다.

 

80년대의 정서를 살짝 담고 있기 때문인지 드라마의 구도 역시 익숙한 옛 구도를 재연하는 느낌을 준다. 사랑하게 됐지만 돈 받고 의뢰받아 접근하게 된 힐러 정후의 사랑은 그래서 <모래시계>의 보디가드로 이름 높였던 이정재의 사랑을 떠올리게 한다. 숨어서 사랑하는 것. 이것은 확실히 요즘처럼 대놓고 키스 먼저 하는 사랑법과는 사뭇 다르다.

 

정후가 <힐러>의 사랑법을 대변하는 인물이라면, 김문호는 <힐러>의 여주인공인 영신의 성장을 이뤄주는 인물이다. 일과 사랑은 역시 여성들에게는 판타지가 아닐 수 없다. 그러니 김문호를 통해 한 단계씩 성장해가면서 정후와 조금씩 사랑을 알아가는 영신은 여성 시청자들의 판타지를 건드린다.

 

조금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이야기가 반복되어 나오는 듯한 느낌과, 요즘 숨 가쁘게 몰아치는 드라마들과는 달리 조금은 유유자적하는 한가로움이 단점을 다가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는 그 80년대식 정서를 여전히 담고 있다는 점이 은근한 매력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슈퍼맨적인 힐러 설정과 권력자들의 비리를 파헤치는 언론의 이야기는 마치 <인간시장>의 장총찬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물론 <힐러>는 요즘 드라마 같은 팽팽한 긴장감을 유도해내지는 못하고 있다. 죽음의 위협까지 겪은 인물이 한가롭게 <영웅본색>의 한 시퀀스처럼 공중전화 부스에서 남자와 달달한 전화통화를 하는 장면은 그래서 낯설게 다가오는 면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조금은 구닥다리의 정서가 주는 따뜻함과 편안함이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힐러>는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현재의 팍팍한 삶의 치유로서 과거적인 정서를 끌어오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Posted by 더키앙

정의와 진실, 요즘 대중들의 갈망

 

센 놈들 잡으려면, 뭐가 필요한지 아냐. 다른 힘센 놈의 허락이다.” <오만과 편견>의 문희만(최민수) 부장검사는 만류에도 불구하고 수사를 강행하려는 구동치(최진혁)에게 이렇게 일갈한다. 이 대사 속에는 우리네 검찰이 처한 쓰디쓴 현실이 묻어난다. 정의를 구현해야할 검찰이 사실은 권력에 의해 휘둘리는 모습을 <오만과 편견>의 문희만(그래서 이름이 의미심장하다) 부장검사는 보여준다.

 

'오만과 편견(사진출처:MBC)'

검사는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 외부에 공표할 수 없다. 죄송하다.” <펀치>에서 검찰총장의 인사청문회에 서게 된 신하경(김아중)은 결국 눈물을 머금고 총장의 비리를 폭로하지 못했다. 전 남편이 자신이 데리고 살고 있는 딸 예린이(김지영)의 양육권을 갑자기 들고 나오며 그녀를 협박했기 때문. 이 장면 속에는 검찰이라는 조직이 가진 권력적인 속성이 묻어난다. 쟁취하기 위해서는 딸까지 볼모로 내세우는 것.

 

누군가 그러더군요. 사람들은 피노키오가 진실만 말할 거라고 생각한다고, 또 사람들은 기자들도 피노키오처럼 진실만을 전한다고 생각합니다. 피노키오도 기자들도 사람들이 자기 말을 무조건 믿는다는 걸, 그래서 자기 말이 다른 사람들 말보다 무섭다는 걸 알았어야죠. 그걸 모른 게 송기자님의 잘못입니다... 13년 전 그런 일을 겪고도 아직도 임팩트를 운운하시는 걸 보니 송기자님은 13년 전과 똑같은 기레기시네요.”

 

<피노키오>에서 국민의 알권리 운운하며 자신은 기자로서 할 일을 했다 말하는 송차옥(진경)기자에게 그녀의 딸인 최인하(박신혜) 기자는 기레기라는 강한 표현을 쓴다. 여기에는 과잉 취재 경쟁 속에서 팩트보다 임팩트가 더 중요해진 우리네 언론의 현실이 묻어난다. 바로 그 임팩트는 어떤 경우에는 한 가족을 풍비박산 내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너무 늦게 와서 죄송하다.” <힐러>의 정의로운 기자 김문호(유지태)는 노조파업 현장에서 분신한 노동자의 병원을 찾아 그렇게 말했다. 귀 기울여주지 않는 세상에 분신이라도 해서 자신들의 말을 들어달라고 했던 것이지만 아무도 병원을 찾지 않았다는 노동자의 이야기에 김문호가 기자로서 사과한 것. 물론 김문호라는 인물은 판타지에 가깝다. 그 판타지 속에는 약자의 편에 서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길 바라는 서민들의 갈증이 느껴진다.

 

최근 주중 드라마들은 왜 이렇게 연달아 검찰과 기자를 드라마의 소재로 다루고 있을까. 드라마가 대중들의 정서를 반영한다고 보면 이 두 직종이 환기하는 건 정의와 진실에 대한 서민들의 갈망이다. 언젠가부터 정의를 구현하기보다는 권력기관처럼 받아들여지게 된 검찰에 대한 서민들의 감정은 그다지 좋지 않다. <오만과 편견>이나 <펀치> 모두 검찰의 비리 척결을 주요 주제로 다루는 건 그래서다.

 

한편 검찰만큼 믿지 못하게 된 것이 바로 언론이다. 팩트보다는 임팩트를 강조하고, 때로는 정치적인 입장에 따라 권력의 하수인 역할을 하는 언론을 대중들은 신뢰하지 않는다. 그러니 <피노키오><힐러>가 다루는 언론의 문제는 자기반성으로 가득 차 있다. 잘못된 언론의 뉴스나 조명하지 않는 사건들이 누군가의 죽음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자각이 그 밑바닥에는 깔려 있다.

 

검찰과 기자를 소재로 하는 드라마에서 대중들이 기대하는 건 정의와 진실의 승리다. 하지만 흥미로운 건 이들 드라마들이 과거와 달리 손쉽게 정의와 진실의 손을 들어주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현실은 더 변하기 어렵다는 것을 이미 대중들이 실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 같은 허구 속에서나마 카타르시스를 느끼기에도 버거운 현실이다.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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