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몽의 음원차트 장악, 정작 그의 목소리는 왜 안들릴까

 

MC몽에 대한 평가는 거의 음악 외적인 것으로만 반복되었다. 그의 발목을 잡은 군 기피 의혹 문제가 계속 거론되었고, 앨범에 대한 이야기도 그 타이틀인 미스 미 오어 디스 미(Miss me or Diss me)’가 가진 도발에 집중되었다. 그 와중에 실종된 것은 정작 그가 낸 음악에 대한 평가다. 이번 앨범은 과연 성공적인 것일까. 아니 다른 말로 표현하면 그것은 MC몽의 성과일까.

 

'MC몽(사진출처:웰메이드예당)'

거의 노이즈 마케팅에 가까운 행보들에 가려져, 그의 이번 앨범에 대한 음악적 성과는 차트 장악이 마치 모든 걸 설명해준다는 식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그것이 음악적인 성과인지 아니면 노이즈 마케팅에 의해 생겨난 주목 덕분인지는 잘 알 수 없다. 그의 노래가 여전히 살아있다고 평가하지만 그것이 어떤 기준에서 그런지는 공감이 잘 가지 않는다.

 

거의 5년 간을 칩거하며 지냈다고 하지만 그의 이번 앨범은 5년 전과 거의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다. 거의 모든 곡들이 도입부에 MC몽의 랩이 들어가고 메인에 이르러 피처링으로 곡의 멜로디 라인을 각인시키는 방식으로 되어 있다. 사실 동시에 전곡이 발표되어서인지 그 곡이 그 곡 같은 느낌마저 준다. ‘미스 미 오어 디스 미라는 도발적인 제목은 좀 더 강렬한 힙합을 기대케 하지만 정작 곡은 자기 복제에 가깝다. 항간에는 그의 곡은 힙합이 아니라 힙합을 가장한 랩 발라드라고 말하기도 한다.

 

여기서 생각해봐야 할 지점이 있다. 그것은 곡에 대한 집중도가 MC몽의 랩에서 생겨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피처링에서 생겨나고 있는 건인지 하는 점이다. 가사에 담긴 MC몽 자신의 처지가 귀에 먼저 들어오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랩이 대단히 세련됐다거나 무언가 새롭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최근 들어 <쇼 미더 머니> 같은 힙합 오디션을 통해 세상에 나온 뮤지션들 때문인지 대중들의 힙합을 듣는 귀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아져 있다. 바비 같은 천재적인 힙합 뮤지션의 노래를 듣다보면 노래는 역시 귀에만 꽂히는 게 아니라 가슴에 꽂힌다는 걸 실감할 수 있다. 최근 육군 현역에 입대한 스윙스의 세련된 곡들을 들어보라. MC몽의 랩은 거기에 비하면 너무 안이하게 다가온다.

 

MC몽의 최고점은 여전히 과거 찬바람 불 때 내게 와줄래-”로 시작했던 서커스에 멈춰져 있다. 이번 앨범을 통해 5년 간 음악적인 성과를 발견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음악적 성취가 잘 느껴지지 않는 상황에서 음원 차트 장악 같은 현상은 어떻게 나타난 것일까. 그것은 음악적인 성취라기보다는 프로듀싱의 성취라고 하는 편이 맞을 듯싶다. 곡을 구성하고 배열하는 능력이나 적절한 지점에 적절한 멜로디 라인을 넣는 능력은 여전하다.

 

이것은 어쩌면 MC몽의 성과라기보다는 이단옆차기의 성과라고 보는 편이 나을 지도 모른다. 또한 랩 파트가 가진 지루함을 상쇄시킨 다양한 피처링의 효과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내가 그리웠니에 피처링으로 참여한 진실이나, ‘마음 단단히 먹어에서 절정의 가창력을 보여주는 에일리, ‘도망가자의 린 같은 피처링은 그 자체만으로도 귀에 착착 감기는 힘을 발휘한다.

 

사실 MC몽의 일련의 곡 자체가 피처링에 의지하고 있다는 건 과거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5년의 시간이 흘렀다. 같은 랩 파트라고 해도 그 시간 동안 대중들의 듣는 귀는 확실히 높아졌다. 기왕에 논란을 떠안고 굳이 가수로서 MC몽이 나서려 했다면 먼저 음악적인 면들을 진일보 시킬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

 

MC몽은 이번 앨범을 발표하면서 노래 이외에 아무런 대중들과의 소통채널을 갖지 않고 있다. 이것은 오직 노래를 통한 소통을 하겠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그 소통이 제대로 음악적으로 이뤄졌는지는 알 수 없다. 비교점이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최근 발표된 에픽하이의 곡들을 들어보라. 그들이야말로 노래를 통해 대중들과 소통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지 않은가. 거기에 비하면 MC몽의 곡은 진정성있는 소통보다는 상업성이 더 느껴진다. 노래는 들리지만 MC몽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는 건 실로 아쉬운 대목이다.

 

행오버’, 변함없는 싸이의 성공 키워드 집적물

 

싸이의 신곡 행오버는 여러모로 지금껏 쌓여진 그의 성공 노하우가 집적된 작품이다. B급 정서 가득한 뮤직비디오, 한국의 문화와 서구의 유머 코드를 접목시키는 코미디적 요소, 명곡이기보다는 중독성 있는 음악, 유튜브라는 새로운 디지털 유통 채널을 통한 국제적인 규모에 초스피드로 전개되는 유포과정, 따라서 엄청난 속도로 퍼져나가는 조회수 기록만으로도 화제를 만드는 마케팅 등등.

 

'싸이의 행오버(사진출처:YG엔터테인먼트)'

물론 이러다보니 싸이의 신곡에 대한 반응 역시 과거 젠틀맨이 나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극과 극으로 양분된다. 정통 힙합이 낯선 이들에게 행오버이게 음악이냐는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 하지만 스눕독 같은 세계적인 힙합 아티스트의 면면을 인지하는 힙합 팬들에게는 이 곡이 젠틀맨에서 확실히 진일보했다고 평가된다.

 

싸이의 B급 정서에 공감대와 나아가 통쾌함까지 느끼는 이들에게 행오버의 뮤직비디오는 여전히 신선하게 다가온다. 이 뮤직비디오는 폭탄주로 대변되는 한국 특유의 음주문화가 가진 어두움을 풍자하면서 동시에 한바탕 놀아보자는 싸이 특유의 디오니소스적 끼를 덧붙이고 있다. 즉 이 뮤직비디오가 보여주는 한국의 음주문화는 부정성과 긍정성을 동시에 갖고 있다.

 

그러니 이에 대한 평가도 양분될 수밖에 없다. 폭탄주를 제조하고, 러브샷을 하고, 마치 이소룡이 대결하듯 술 대결을 벌이는 장면들은 우리가 늘상 술판에서 보던 풍경들이다. 그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이들이라면 왜 싸이가 한국 문화의 어두운 면들을 자꾸만 들춰내나 싶을 수 있다. ‘강남스타일이 강남의 허위의식을 끄집어냈다면, ‘젠틀맨은 동방예의지국의 이면을 끌어냈고 이제 행오버는 우리네 극단적인 술 문화의 일단을 끌어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술 문화는 긍정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때로는 한국인들이 외국인들에게 과시하듯 보여주는 어떤 면이기도 하다. 거기에는 잔치와 축제가 가진 특성, 즉 모든 걸 잊어버리고 한 바탕 놀아보자는 한국인 특유의 흥이 자리 잡고 있다. ‘행오버에서 간간이 들어가는 받으시오-”라는 싸이의 목소리는 그래서 은근하게 우리의 욕망을 건드린다. 단단한 사회의 억압된 틀 속에서 술이라는 뮤즈를 통해 잠시나마 꿈꾸는 일탈을.

 

한국적인 문화의 이면을 끌어오는 싸이 특유의 뮤직비디오는 우리에게는 공감대를 서구인들에게는 신기함을 느끼게 만드는 요소다. 이것은 한류 콘텐츠들이라면 공통적인 요소로 꼽히는 특수성과 보편성의 적절한 결합이다. 우리 것이 바탕이지만 또한 그것을 바라보는 세계인들의 공통적인 공감대도 끌어안으려는 노력. 싸이의 유머코드가 한국적이면서 동시에 서구적일 수 있었던 건, B급 정서를 바탕으로 우리네 문화의 이면을 보여주는 특유의 시선 덕분이다.

 

물론 싸이의 신곡 행오버를 명곡이라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이 곡이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의 팬들에게 어느 정도 즐길 거리를 마련해주는 곡이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사실 명곡이라는 잣대는 싸이에게는 어울리지도 않지만 또한 그가 추구하는 것도 아니다. 싸이는 오히려 그 명곡이라는 권위적 틀을 해체하고 그 허위를 폭로할 때 비로소 자기 존재를 드러내는 가수다. 이 음악을 듣고 나면 그래서 아름다운 멜로디가 기억 남기보다는 끝없이 반복되는 행오버라는 후렴구의 중독성이 저도 모르게 입가를 씰룩이게 만든다.

 

스눕독이라는 힙합의 거장이 함께 출연하고 있어서인지 싸이의 음악적 분량이 적다고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뮤직비디오와 음악은 싸이라는 국제가수의 색채와 존재감이 아니라면 도무지 가능한 것 같지가 않다. 싸이와 함께 한국의 음주문화를 즐기는 스눕독 역시 그 그림 속에 들어온 한 부분처럼 여겨질 정도다.

 

유튜브를 통한 엄청난 전파 속도와 조회 수는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싸이는 이미 강남스타일에서부터 유튜브라는 새로운 매체의 힘을 알리는 스타로서 아이콘화된 인물이다. 그래서 공개 하루만에 1200만 뷰를 돌파했다는 식의 기사들은 숫자에 민감한 우리 정서를 건드리면서 동시에 외국의 반응까지 이끌어내는 마케팅적인 효과를 만들어낸다. ‘싸이의 뮤직비디오라는 타이틀 하나만으로 일단 클릭하고픈 욕구를 전 세계적으로 만들어냈다는 건 실로 대단한 일이다.

 

신곡 행오버는 변함없는 싸이의 성공 키워드들이 집적된 산물이다. 거기에는 풍자와 일탈 양극단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싸이에 대한 역시 양극단의 반응이 쏟아져 나오고, 그 반응은 화제로 이어지며 노래는 디지털을 타고 전염병처럼 퍼져나간다. 명민한 선택이다. ‘강남스타일이 그의 존재감을 처음 알렸고 젠틀맨이 그 존재감을 어떻게든 이어가려 한 선택이었다면, ‘행오버에서는 이제 조금은 안정된 국제가수로서의 그의 면모가 느껴진다. 때로는 불편함에 지끈지끈하다가도 때로는 이성의 끈을 잠시 놓아둔 듯한 그 편안함을 그는 자신의 음악 스타일로 담아내고 있다. 마치 숙취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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