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궁’, 이무기와 육성재, 도대체 누가 누구를 삼킨 걸까 

귀궁

‘이 아이의 손길이 이리 부드럽고 따뜻했구나. 또다. 왜 이리 또 쿵쾅대는 거야? 망할 놈의 윤갑 놈. 어찌 이 인간의 몸은 허술하지 않은 곳이 하나도 없어.’ SBS 금토드라마 <귀궁>에서 강철이는 화살을 맞은 상처를 치료해주는 여리(김지연)의 손길에 가슴에 속절없이 쿵쾅댄다. 윤갑(육성재)의 몸에 빙의된 강철이는 본래 이무기다. 그러니 인간의 손길 같은 감각을 경험해본 적이 없다. 무려 13년 간이나 여리의 몸주신이 되려 졸졸 따라다녔지만 여리의 손길을 경험하게 된 건 윤갑의 육신에 들어오게 되면서다. 

 

<귀궁>의 이무기 강철이가 빙의된 윤갑이라는 설정은 이런 지점에서 흥미로워진다. 보통 귀신이 등장하는 퇴마 판타지나 한국형 오컬트 장르에서 빙의는 귀신에 영혼을 빼앗긴 인간이 겪는 공포로 그려지곤 한다. 하지만 <귀궁>은 조금 다르다. 강철이라는 이무기의 인간 체험처럼 그려지기 때문이다. 윤갑의 몸으로 들어온 후 강철이는 죽 한 그릇에도 환장하는 미각을 경험한다. 갖가지 음식 맛에 눈뜬 강철이는 천상을 나는 듯한 쾌감을 경험한다. 

 

미각만이 아니다. 뜨끈한 온돌에서 등을 지지는 경험을 한 강철이는 잠자리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을 정도로 그 감각의 제국에 빠져든다. 궁궐에 가서도 그 곳의 화려한 장식들에 눈호사를 하고 푹신한 방석의 편안함을 즐긴다. 그러니 여리가 별 생각도 없이 열이 있는 것 아니냐며 얼굴을 만질 때 심장이 쿵쾅대고 볼이 빨개지는 건 당연지사다. 알고보면 여리가 어려서부터 산길 호랑이를 번개로 쫓아버릴 정도로 강철이는 여리에 대한 마음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사랑의 감정이란 결국 서로의 체온과 감각을 나누는 몸이 있어야 불이 붙는 것이었다. 

 

윤갑의 몸에 들어간 이무기 강철이가 그 몸의 감각과 이를 통한 교감을 통해 여리에게 감정을 느끼는 상황은 그래서 <귀궁>에서는 반전의 이야기를 예고한다. 애초 윤갑의 몸을 이무기 강철이가 차지한 것처럼 보였지만, 이 상황은 거꾸로 이무기가 윤갑의 몸에 갇힌 것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여리가 찾아간 가섭스님은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한데 어쩌다 죽은 인간의 몸에 저리 옴짝달싹 못하게 갇히게 됐누?”

 

즉 윤갑의 몸을 통해 인간의 감각과 욕망을 경험하게 된 강철이는 그 몸에 갇힌 채 인간을 보다 잘 이해하게 된다. 그 감각을 통해 여리에 대한 감정을 느끼게 되고, 그래서 마음이 가는 이가 위험에 처했을 때 구하려는 마음 또한 간절해진다. 여리를 통해 경험하고 알게 되는 인간에 대한 공감은, 이 이무기 강철이가 인간을 해코지 하려는 팔척귀 같은 악귀와 그 악귀를 불러내는 풍산(김상호) 같은 사악한 술사와 맞서게 되는 이유가 된다. 

 

<귀궁>이 신박하게 느껴지는 건 이러한 이야기가 우리네 무속의 한 면들을 흥미진진한 서사 속에 녹여내고 있다는 점이다. 아직까지 내림굿을 받지 않았지만 여리는 무당이 될 팔자인 영매다. 자신을 몸주신으로 받아들이라며 13년 간이나 따라다닌 이무기 강철이를 거부해왔지만 윤갑을 되살리기 위해 그녀는 강철이를 받아들이겠다고 말한다. 즉 <귀궁>은 무속인이 인간을 구하기 위해 몸주신을 받아들이고 사악한 무리들과 싸우는 이야기를, 여리의 윤갑에 대한 사랑(무속인의 인간에 대한 사랑), 강철이의 여리에 대한 마음(신의 인간에 대한 이해), 여리와 강철이가 힘을 합쳐 팔척귀와 벌이는 사투(무속인이 신을 불러 인간을 구하는 과정)로 그려낸다. 

 

그래서 혐관 로맨스와 휴머니즘이 더해지고 퇴마 판타지까지 넘나드는 <귀궁>은 그 재미를 통해 우리네 무속의 세계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도 담고 있다. 다양한 장르적 결이 더해져 있고 가벼움과 진지함을 오가는 작품이지만, 육성재, 김지연, 김지훈, 김상호, 김인권 등등 연기자들의 안정감 있는 연기가 이물감 없이 이 다양함을 잘 엮어내고 있다. 특히 여러 전작들에서 1인2역 연기를 줄곧 해왔던 육성재와 달달함과 절절함을 오가는 김지연이 보여주는 연기앙상블은 칭찬 받아 마땅하다. (사진:SBS)

‘옥씨부인전’, 추영우라는 색다른 이야기꾼 남성상의 등장

옥씨부인전

“너는 네가 방금 먹은 게 주먹밥 같고 여기가 폐가 같으냐?” 불법으로 금광을 채굴하는 이들을 찾아내고 그 작업에 동원된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산을 헤매다 폐가에서 하룻밤을 기거하게 된 옥태영(임지연)이 뭐가 그리 즐겁냐고 묻자 천승휘(추영우)는 그렇게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전기수 답게 자신의 상상력을 더해 이야기를 들려준다. “여기는 아늑한 주막이다.” 

 

그러면서 이야기로 그 주막이 어떤 곳인지 그 곳을 그 두 사람이 함께 찾아오면 주모가 부부로 생각해서 한 방을 주고 커다란 암탉을 잡아 저녁을 먹는 풍경을 풀어 놓는다. “어떠냐? 지금도 네가 먹은 게 주먹밥 같으냐?” 그 이야기와 더불어 두 사람 저편으로 그림자극처럼 상상의 영화관이 펼쳐진다. 깔깔 웃으며 함께 암탉을 나눠 먹는 두 사람의 모습이 그려진다. 옥태영은 말한다. “도련님은 참으로 대단한 이야기꾼이십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저를 웃게 만들고 시름을 잊게 하시니까요.” 그러자 천승휘가 답한다. “내가 오늘은 너만의 전기수가 돼 주마.”

 

색다른 남성상의 등장이다. 송서인이라는 본래 이름을 버리고 천승휘라는 가명으로 전기수의 삶을 살아가는 남자. 이 남자는 그간 사극에서 봐온 남자주인공들과는 사뭇 다르다. 먼저 왕이나 권세가의 권력을 쥔 인물이 아니다. 또 공부 깨나 해서 장원급제한 선비도 아니다. 송씨네 가문의 아들로 살아왔지만 자신이 기생의 몸에서 난 서자라는 사실을 알고는 그 곳을 떠나 자신이 원하던 전기수라는 삶을 선택한 인물이다. 신분을 오히려 낮춰서 얻은 자신의 삶이다. 

 

전기수로서 이야기를 들려주며 연기도 하기 때문에 몸은 잘 쓰지만 그렇다고 무공이 뛰어난 것도 아니다. 적들이 나타났을 때 몇 명 정도는 쉽게 해치우고 여인을 보호해주는 그런 능력이 없다. 대신 연기를 한다. 칼을 쓰는 듯한 연기를 하지만 그건 사실은 춤에 가깝다. 옥태영과 한께 그 험한 산에서 사라진 아이들을 찾아다니며 마주하는 위험 속에서 이 남자는 별 힘을 쓰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천승휘는 이야기를 할 줄 안다. 남들이 못하는 상상을 한다. 폐가에 주먹밥 하나 들고 있어도 이 인물이 해주는 이야기는 그 곳을 주막으로 바꾸고 주먹밥을 암탉으로 바꾼다. 금광을 이끄는 지동춘(신승환)과 그 무리들의 공격을 피해 불도 못피우고 한데서 밤을 지새우게 됐을 때도 이 인물은 이야기로 그 어려운 상황들을 반전시키려 한다. “불을 못 피우니까 별이 보인다. 왠지 오늘은 쉽사리 잠들지 못할 거 같아.” 그 두려움과 긴장감을 설렘으로 바꿔 놓는다. 

 

천승휘라는 이 새로운 남성상은 옥태영를 연모하지만 그렇다고 그녀를 소유하려 하지는 않는다. 이미 혼인을 한 유부녀라는 사실 때문이기도 하지만, 천승휘는 옥태영이 원하는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크다. 그래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그 삶을 살 수 있게 도와주고 응원해준다. 이상화된 캐릭터지만 천승휘라는 남성상은 그래서 기존 드라마들이 세우고 있는 남성들의 클리셰에서 살짝 벗어나 있다. 

 

‘옥씨부인전’이 이러한 남성상을 이상형으로 세워 놓은 건, 이 작품의 성격과도 맞닿아 있다. 이항복이 실화를 바탕으로 쓴 ‘유연전’을 모티브로 하고 있는 이 작품은 이야기와 상상력이 가진 힘을 주제의식으로 가져온 점이 도드라진다. 노비였던 구덕이가 옥태영이 되고, 양반 자제였던 송서인이 천승휘가 되어 한 바탕 살아가는 그 과정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새롭게 스토리텔링하는 과정을 닮았다. 새로운 자신을 상상하고 그래서 현실에서는 할 수 없는 것들을 해나가는 힘. 그것이 바로 스토리의 힘이 아닌가. 

 

레오 리오니의 동화책 ‘프레드릭’에는 시인에 가까운 쥐 프레드릭이 등장한다. 겨울이 다가오자 모두가 먹을 걸 준비할 때 프레드릭은 일을 안하고 햇볕을 쬐면서 놀지만, 겨울이 되고 동굴에서 버텨내며 먹이가 떨어졌을 때 프레드릭의 진가가 발휘된다. 그는 모두 눈을 감게 하고 햇볕이 내리쬐던 바깥 세상에서의 날들을 상상하게 함으로써 모두를 버텨내게 해준다. 스토리가 가진 힘을 말해주는 이 작품처럼, ‘옥씨부인전’은 전기수 천승휘를 통해 이야기와 상상력의 힘을 그리고 있다. 

 

천승휘 역할에 그와 똑같은 얼굴을 가진 옥태영의 남편 성윤겸까지 1인2역을 소화하는 추영우는 그래서 ‘옥씨부인전’을 통해 대중들의 눈도장을 찍는 중이다. 그가 하는 한 마디 한 마디나 어딘지 어설퍼도 매력적인 행동들 하나하나가 극중 스토리와 엮어져 그의 존재감을 한껏 높여주고 있다. ‘오아시스’로 주목을 받았지만 ‘옥씨부인전’으로 이제 여성들의 새로운 이상형을 그려나가고 있는 추영우는 그래서 이 작품 최대의 수혜자가 아닐까 싶다. (사진:JTBC)

나의 해리에게

한 사람이 두 개 이상의 서로 다른 정체성을 번갈아 나타내는 정신질환. 이것이 ‘해리성 정체성 장애(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로 흔히 ‘다중인격 장애’라고도 부른다. 한 사람 안에 두 명의 다른 인격체가 존재한다는 건 신기한 일이지만, 왜 그런 장애를 겪게 됐는가를 들여다보면 그저 신기하다고 치부할 수는 없다. 대부분은 충격적인 스트레스나 고통스러운 경험이 그 원인이기 때문이다. 지니TV 오리지널 드라마 ‘나의 해리에게’에서 그 ‘해리’는 바로 해리성 정체성 장애의 그것을 뜻한다. 이 드라마 속 주인공인 주은호(신혜선)는 이 장애를 통해 주혜리라는 새로운 인격이 발현된다. 

 

잠을 경계로 주은호는 PPS 아나운서지만 주혜리는 미디어N 주차관리소의 아르바이트일을 한다. 자고 나면 주은호가 되지만 또 자고 일어나면 주혜리가 되는 삶. 주은호가 이 장애를 겪게 된 건 자신을 유달라 따랐던 동생이 실종되는 사건 때문이다. 사망도 아니고 실종됐다는 사실은 남은 이들의 삶을 바짝바짝 말라들게 만든다. 주은호는 자신을 동경하던 동생이 아나운서가 됐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방송국 주차장의 아르바이트를 하는 게 꿈이라고 적은 일기를 보고는 주차관리소의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동생에 대한 절절한 마음이 주은호로 하여금 동생의 삶을 이어가려는 열망을 만들어 내고 결국 주혜리의 정체성 또한 생겨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나의 해리에게’는 왜 해리성 정체성 장애 같은 소재를 가져온 것일까. 물론 이 작품은 이렇게 두 개의 인격체로 나뉜 주은호와 주혜리가 각각 사랑에 빠지게 되는 로맨스의 재미를 담고 있다. 주은호는 8년 간 사귀었다 헤어진 같은 회사 아나운서 정현오(이진욱)와 다시 사랑을 이어가게 되고, 주혜리는 주차장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강주연(강훈)과 사랑에 빠진다. 이러니 정체성 간의 대결구도가 생겨난다. 강주연과 사랑에 빠진 주혜리는 행복을 느끼며 그 정체성에 머물고 싶어하지만, 주은호는 정현오와 관계를 이어가며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고 싶어한다. 그건 주혜리라는 다중인격을 지워내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나의 해리에게’가 이러한 색다른 멜로 구도를 해리성 정체성 장애라는 소재를 통해 가져오고 있지만 그 이야기 자체가 로맨스에만 머물러 있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그건 결국 상처 입고 과거에 머물러 있는 주은호가 주혜리라는 다중인격의 등장과 그로 인해 생겨나는 사건들을 통해 그 과거에서 벗어나 다시금 자신 그대로 현재를 살아가게 되는 과정을 그릴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주혜리라는 다중인격은 사실상 동생을 흉내내는 것이지만, 동시에 주은호가 자신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창출해낸 존재다. 그래서 주혜리가 하는 행동이나 말들은 주은호와는 상반되어 있는데, 그건 사실상 주혜리가 주은호에게 하는 위로에 가깝다. 

 

“행복을 눈으로 본 적은 없지만 볼 수만 있다면, 만질 수만 있다면 이런 게 아닐까요?” “살아 있다는 건 좋은 거거든요.... 그럼요 너무너무 좋은 거예요.” “따뜻하다는 건 좋은 거예요. 왜냐아면 그건 살아있는 거니까.” 주혜리가 누군가를 만나 건네는 말들은 그들에게 하는 말이면서 동시에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들린다. 과거에만 머물러 있고 그래서 죽음의 그림자를 무겁게 짊어지고 있는 주은호에게 주혜리는 삶이 너무나 좋은 것이라고 애써 말한다. 그래서 자신이 자신에게 던지는 위로 같은 이 말들은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며 차라리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만드는 현대인들의 마음을 툭툭 건드린다.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나로서 살아있고, 그래서 누군가의 손을 잡거나 키스를 하거나 하는 그 순간이 주는 행복을 느끼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이냐고 주혜리(주은호 깊숙이 자리한 내면의 목소리)는 말하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두 사람의 인격을 넘나들며 이를 통해 마음을 툭툭 건드리는 기적 같은 드라마지만, 이 작품을 진짜 기적으로 만드는 건 신혜선의 연기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서로 다른 성격을 오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이토록 자유자재로 넘나들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 연기가 자연스러우니 말이다. 특히 주혜리 역할은 엉뚱하면서도 의외의 감동을 주는 이런 면모들을 신혜선이 아니면 그 누가 할 수 있을까 싶다.(글:일간스포츠, 사진:ENA)

‘나의 해리에게’, 사랑을 넘어 삶을 이야기하는 로맨스라니

나의 해리에게

“선생님. 사랑을 하니 모든 게 반짝반짝거린다고요. 행복을 눈으로 본 적은 없지만 볼 수만 있다면 만질 수만 있다면 이런 게 아닐까요?” 지니TV 오리지널 드라마 ‘나의 해리에게’에서 주혜리(신혜선)는 정신과 의사에게 그렇게 말한다. 주혜리, 아니 주은호(신혜선)는 해리성 정체성 장애를 겪는 중이다. 본래는 PPS 아나운서지만 또 다른 인격으로 생겨난 주혜리는 미디어N 주차관리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런데 그 곳에서 만난 미디어N 아나운서 강주연(강훈)과 사랑에 빠진다. 

 

주혜리는 그렇게 강주연을 사랑하게 되지만, 잠을 자고 일어나면 되돌아오는 주은호는 8년 동안 만나왔던 같은 회사 에이스 아나운서 정현오(이진욱)와 헤어졌다. 하지만 헤어진 후에도 정현오가 주은호에게 일을 챙겨주는 식으로 두 사람의 관계는 끊어진 듯 끊어지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정현오는 주은호에게 네가 “창피하다”며 헤어진 후에도 왜 너 같은 사람을 사귀었냐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핑계 삼아 자꾸 주은호를 도와주려 한다. 

 

“네가 좀 괜찮은 사람이면 좋겠거든?” 이렇게 말하는 정현오는 사실 헤어진 후에도 주은호가 신경쓰인다는 걸 그렇게 말하는 것이지만, 주은호는 그 말에 상처받는다. “근데 내가 좀 별로면 안되나? 아니 그렇잖아. 내가 좀 별로고 괜찮지 않은 게 뭐. 그게 뭐 어떻다는 거야?” 주은호가 발끈하는 건 사실 그 스스로도 불안감을 느끼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애써 안하던 현장 리포트를 나가서라도 VCR 분량을 독점하고 싶어하고 그렇게라도 자기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어한다. 하지만 주은호의 그런 선택은 다른 아나운서들의 반발을 불러온다. 아나운서의 명예를 실추했다며. 

 

‘나의 해리에게’는 그래서 로맨스 드라마의 틀로만 보면 해리성 경계성 장애를 가진 주은호가 주은호로서 정현오와 주혜리가 됐을 때 강주연과 엮이게 되는 기막힌 멜로의 구도를 그려낸다. 정체성이 왔다 갔다 하는 것도 힘겨운 일이지만, 각각의 정체성이 사랑을 하게 되면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행복감을 느끼고 그래서 그 정체성을 잃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혜리가 강주연이 점점 좋아지는 상황에, 주은호 역시 정현오의 진심을 알게 되는 사건을 겪는다. 생방송 중 실종된 언니를 찾는 동생의 사연을 보다가 사라진 동생을 떠올리며 충격에 빠져 방송사고가 날 뻔한 주은호를 정현오가 챙겨주게 되면서다. 

 

이처럼 ‘나의 해리에게’는 주혜리로 정체성이 분리된 주은호가 정현오와 강주연과 각각 사랑에 빠지면서 겪게 되는 로맨스를 그리고 있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진짜 하려는 이야기는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해리성 정체성 장애라는 병명에서 드러나듯이 어째서 이런 장애를 이 인물이 갖게 됐는가가 더 중요하다. 주은호가 그 장애를 갖게 된 건 늘 자신처럼 되고 싶어하고 따랐던 동생이 실종되어서다. 실종된 지 오래되어 사망한 것처럼 처리되어 있지만 실종자 가족들이 이를 받아들일 리가 없다. 주은호는 그 상처가 깊어지며 동생 주혜리의 삶과 꿈을 이어주고 싶어지고 그것이 해리성 정체성 장애로 나타난다. 그렇게라도 동생을 붙들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그런 상처를 겪은 건 주은호만이 아니다. 그가 주혜리가 되어 만나게 된 강주연 역시 아버지 같던 형이 교통사고를 겪고 식물인간이 됐다. 강주연의 어머니는 그가 육군사관학교 임관식에 형을 부르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거라 원망한다. 결국 강주연은 군인의 길을 포기하고 형의 꿈이었던 아나운서의 길을 선택한다. 그래서 그의 삶은 마치 그의 것이 아닌 것처럼 무감해진다. 그 무감한 삶에 어느 날 갑자기 주혜리가 뛰어든 것이다. 

 

그래서 ‘나의 해리에게’는 사라진(어쩌면 죽은) 이들 때문에 상처 입고 그들을 끝내 보내지 못하는 남은 자들의 상처를 그리는 작품이기도 하다. 주은호는 동생 주혜리를 보내지 못해 해리성 장애를 겪고 있는 것이고, 강주연은 형을 보내지 못해 자신의 삶이 아닌 형의 삶을 대신 살아가는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두 인물의 삶에 뛰어들어 그걸 변화시켜 나가는 존재는 바로 주혜리다. “행복을 눈으로 본 적은 없지만 볼 수만 있다면 만질 수만 있다면 이런 게 아닐까요?” 주혜리는 단순하게 삶을 직시한다. 그러면서 과거에 집착해 사라진 것들을 놓지 못한 채 힘겨워하는 주은호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병상에 있는 강주연의 어머니가 강주연을 형과 혼돈하자 주혜리는 그 손을 덥석 잡아주며 대뜸 “밥을 잘 드셔야 한다”는 엉뚱한 말을 한다. 그러면 아가씨처럼 예뻐지냐고 강주연의 어머니가 묻자 주혜리는 놀랍게도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아니요. 살아있을 수 있죠. 살아있다는 건 좋은 거거든요 아줌마.... 그럼요. 너무너무 좋은 거예요. 그러니 감사해주세요. 아줌마가 살아있다는 것과 주현씨가 살아있다는 것에.” 그러면서 주현이가 잘해주냐고 묻자 그가 아줌마 손처럼 따뜻하다며 “따뜻하다는 건 좋은 것”이라고 한다. 그건 살아있다는 거니까. 과거와 죽음의 그림자를 놓지 못하고 사는 이들에게 현재와 삶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알려주는 이 장면은, 마침 쓰러질 뻔했던 주은호의 손을 잡아 준 정현오의 에피소드와 교차 편집된다. 손을 잡는다는 것. 그건 현재의 온기를 느낀다는 것이고 바로 살아있다는 것이라는 걸 이 손을 잡는 시퀀스들의 교차가 보여준다. 

 

대본이 기막힌 작품이지만, 주은호와 주혜리를 넘나들어야 하는 1인2역 연기가 밑바탕되지 않으면 감흥을 주기 어려운 작품이다. 그런 점에서 흔히 표현하는 ‘연기차력쇼’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신혜선의 연기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여기에 이진욱, 강훈의 단단한 연기가 받쳐주고 조혜주, 강상준, 김나미, 오경화 같은 배우들의 호연도 빼놓을 수 없다. 또한 복잡할 수 있는 서사 구조를 감정선이 느껴지는 미장센으로 풀어낸 연출의 공도 칭찬할만하다. 사랑을 넘어 삶을 이야기하는, 오랜만에 보는 기막힌 힐링 로맨스다. (사진: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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