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적 틀에 갇혀버린 tvN 드라마, 기획만 보인다

 

한때 잘 나가던 tvN 드라마가 어찌된 일인지 주춤하고 있다. tvN 월화드라마 <유령을 잡아라>는 애초 문근영의 주연작이라는 점과 지하철 경찰대라는 소재가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었지만 갈수록 기운이 빠져간다. 첫 회 4.1%(닐슨 코리아)의 높은 시청률로 시작했던 드라마는 매회 뚝뚝 떨어지더니 급기야 2.4%까지 추락했다.

 

이유는 첫 회에 끌어 모았던 주목을 드라마가 계속 이어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메인 스토리라고 할 수 있는 연쇄살인범 지하철 유령을 추적하는 이야기에 집중하기보다는 곁가지 스토리들로 매회 채워지고 있고 그 스토리들도 그다지 큰 몰입감을 주지 못하고 있다. 겨우겨우 유령(문근영)과 고지석(김선호)의 멜로 라인으로 이어가려 하고 있지만, 이 지하철 범죄 수사라는 공적 사안과 사적인 멜로의 결합은 어딘지 언발란스하게 느껴진다. 애초 기획과 소재는 그럴 듯했지만 빈약한 스토리가 만들어낸 결과다.

 

수목극으로 방영되고 있는 <청일전자 미쓰리>도 사정은 비슷하다. 사이다 풍자 코미디를 기대했던 시청자들은 퍽퍽한 고구마 현실로 가득 채워져 있는 드라마를 답답해하고 있다. 무엇보다 말단경리직원으로 있다 등 떠밀려 사장 자리에 앉게 된 이선심(이혜리)의 캐릭터는 누가 봐도 코미디 장르에 어울리는데, 스토리는 짠 내 나는 을의 위치에서 핍박받는 중소기업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어 시청자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 큰 문제다. 이 작품 역시 기대를 채워주지 못하는 미숙한 스토리 전개가 발목을 잡았다.

 

tvN이 <미스터 션샤인>이나 <아스달 연대기>, <호텔 델루나> 같은 작품들로 어느 정도 시청자들을 끌어 모았던 토일 시간대도 마찬가지다. <날 녹여주오>는 점점 관심에서 벌어져 이제는 1%대 시청률로 뚝 떨어져 버렸다. 지창욱이 주연으로 등장한 작품으로 이렇게 화제조차 안 되는 드라마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그나마 최근 tvN에서 화제성을 이어가고 있는 건 금요일 드라마 <쌉니다 천리마마트> 정도다. 하지만 <쌉니다 천리마마트>는 본래 웹툰 원작을 충실히 담아온 부분과 이를 과감하게 드라마화하겠다는 그 기획적 선택이 가장 주효했던 작품이다. 물론 연출이나 연기는 충분히 칭찬받을 만하지만 그래도 <쌉니다 천리마마트>의 성공이 tvN드라마의 기획 그 이상의 성취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은 이유다.

 

이렇게 tvN 드라마가 주춤하고 있는 사이 지상파 드라마들이 약진하고 있다. 월화에 새로 들어온 SBS <VIP>는 6.8%로 시작했던 시청률이 9.1%까지 올랐다. 불륜이라는 소재를 가져왔지만 우리네 사회의 위계구조를 VIP 전담팀이라는 특정한 직업군의 이야기를 더해 들여다본다는 점이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었다. 수목에는 KBS <동백꽃 필 무렵>이 신드롬을 만들고 있다. 6.3%로 시작했던 드라마는 입소문이 점점 퍼지더니 이미 18%를 넘겨서며 20% 시청률까지 기대하게 만들고 있다. 많은 드라마들이 물량공세에 도회적인 이야기들의 틀에 갇혀 있을 때 정반대로 촌스러움의 가치를 끄집어낸 역발상이 주효했다.

 

수목에 포진된 MBC <어쩌다 발견한 하루>는 시청률은 3%대에 머물러 있지만 화제성이 높은 드라마로 호평 받고 있다. 웹툰 속 캐릭터들에게 의식이 생겨나고 그래서 그 정해진 설정값(운명)을 넘어서려 노력하는 이야기는 판타지 설정이지만 현실적인 공감대까지 만들었다. 우리네 삶의 모습이 태생부터 정해진 설정값에 의해 움직이는 것과 그다지 다를 바 없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tvN 드라마가 이렇게 주춤하며 위기에 몰리게 된 건 어딘가 공식적 틀에 갇혀버린 느낌 때문이다. 이미 <위대한 쇼> 같은 전작들을 통해서도 느껴진 것이지만 창대한 기획 그 이상의 스토리의 완성도를 최근 방영된 tvN 드라마들은 보여주지 못했다. 적당한 스릴러나 코미디에 멜로를 더하는 방식은 과거 지상파 드라마들이 위기에 처하게 됐던 이유가 아니었던가. 애초 지상파에 밀리던 시절 tvN 드라마의 과감했던 그 선택들을 다시금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그게 아니라면 잠시 주춤하는 것이 아니라 어렵게 만든 위치가 무너지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니 말이다.(사진:tvN)

 

심상찮은 'VIP' 반응, 불륜을 통해 담아내는 사회적 의미

 

SBS 월화드라마 <VIP>에 대한 반응이 심상찮다. 지속적으로 오르는 시청률도 그렇지만, 이 작품이 단지 불륜만은 아니라는 징후들이 기대감을 증폭시키는 상황도 그렇다. 사실 불륜을 소재로 한다고 해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불륜 드라마’가 되는 건 아니다. 불륜을 소재로 담으면서도 그것을 통해 색다른 사회문제나 의미를 가진 드라마들 역시 존재했기 때문이다.

 

<VIP>는 분명 초반 불륜을 전면에 내세웠다. 어느 날 갑자기 나정선(장나라)에게 온 문자 하나가 그 시작점이었다. ‘당신 팀에 당신 남편 여자가 있어요’라는 문자. 그 후 나정선은 남편 박성준(이상윤)을 의심하고 그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려 하기도 하고 그 뒤를 따라가기도 한다. 또 그 ‘여자’가 누구인가 사무실에서 함께 동고동락하던 동료들을 하나둘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결국 거짓말을 한 사실이 발각된 박성준은 나정선의 의심이 사실이라고 털어놓고 평생 사죄하며 살겠다고 하고, 고통스럽지만 나정선 역시 용서하려 노력해보겠다 말한다.

 

이런 전면에 드러난 스토리만을 두고 보면 <VIP>는 불륜을 다룬 드라마가 맞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불륜 소재만을 자극적으로 펼쳐놓은 드라마가 아니라는 건, 나정선과 박성준을 부부이면서 한 팀의 팀장과 차장으로 구성해놓고 있는 점이나, 또 그 팀이 다름 아닌 백화점 VIP를 전담하는 부서라는 점에서 드러난다. 어째서 이 드라마는 VIP 전담팀이라는 구체적인 직업의 세계를 가져왔고 그 팀에 부부가 팀장과 차장으로 있는 설정을 해놓은 걸까.

 

그건 우리네 관계가 공과 사를 구분한다고는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그것이 구분되지 않는 어떤 지점이 있다는 걸 드러내기 위함이다. 나정선과 박성준이 어느 VIP 고객과 자연스런 인사를 하기 위해 레스토랑에서 사적인 부부의 저녁을 가장해 앉아 있을 때, 그 고객이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와 불륜을 맺고 있다는 걸 발견한 부부의 시선은 애매모호해질 수밖에 없다. 자신이 하는 공적인 일은 VIP들을 케어하는 것이고, 그래서 그들의 사적인 불륜 같은 것들조차 숨기고 감춰주는 것이 그들의 일이 된다.

 

그래서 공적인 일로서는 그걸 당연히 받아들이지만, 사적으로 들여다보면 용납하기 어려운 불륜일 뿐이다. 이미 박성준의 불륜을 의심하게 된 나정선은 그래서 그 VIP의 불륜을 보면서 복잡한 감정을 갖게 된다. 저들의 불륜은 넘어가면서 내게 닥친 불륜을 넘어갈 수 없게 만드는 차이는 그것이 내 일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거기에는 돈으로 얽혀져 있어 불륜마저 그 힘에 의해 덮여지는 사회의 보이지 않는 위계 구조가 들어가 있다.

 

이런 일들은 이 VIP 전담팀에 소속되어 있는 이들에게 모두 발생하고 있는 일들이다. 예를 들어 온유리(표예진)는 하재웅 부사장(박성근)과의 부적절한 관계를 통해서라도 자신의 가난을 넘어서려 하는 인물이다. 공적인 위치를 사적인 관계를 통해 넘어서려는 욕망을 드러내는 인물. 이현아(이청아)는 정선과 입사동기이고 친구였지만 무슨 일 때문인지 휴직을 하고 돌아와서는 그와 미묘한 관계가 형성된다. 그 역시 무언가 회사 내 위계구조 안에서 일을 겪었던 것으로 예상된다. 그것이 정선과의 사적인 관계 또한 바꿔놓고 있는 것.

 

송미나(곽선영)는 육아 때문에 회사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워킹맘으로 사적인 문제로 공적인 위치에 영향을 받은 인물이다. 그는 회사에서 승진해 정당한 사회적 위치를 차지하고 싶어하지만 두 아이를 낳으며 육아휴직을 하면서 승진이 누락되어 6년째 사원이다. 훨씬 더 절실해진 그는 그래서 공적 관계를 넘어서는 어떤 짓이라도 할 것처럼 위태롭게 보인다. 결국 그는 집을 나가겠다 선언한다.

 

VIP 전담팀을 굳이 드라마의 배경으로 설정한 건, 이런 돈과 지위로 결정되는 위계가 심지어 윤리적인 부분까지 넘어서는 걸 가장 잘 극명하게 드러내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VIP라는 이유로 저들은 군림하고 뭐든 하대하며 누리려 한다. 저들은 선을 넘는 일조차 당연하듯 행하고 거기에 죄책감도 별로 느끼지 않지만, 이들을 대하는 전담팀은 다르다. 그들은 VIP를 응대하는 일이 자신의 업이지만, 집으로 돌아가면 평범한 사람들일 뿐이다. 하지만 완전히 다른 저들을 목격한 이들의 삶이 과연 온전할 수 있을까.

 

<VIP>는 그래서 불륜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를 건드린다. 그건 우리가 그간 별로 의심하지 않고 살아왔던 우리네 사회의 위계구조다. 돈 있는 이들이 결국 VIP로 불리고 군림하는 사회. 하지만 VIP의 의미 그대로 진정으로 ‘아주 중요한 사람’이 돈으로 좌지우지되는 것이 과연 온당한 일일까. 이런 부분들을 이 드라마가 어떻게 그려낼지 기대되는 대목이다.(사진:SBS)

<용팔이>, 한여진과 김태희의 반전은 가능할까

 

무릎 꿇어!” 한여진(김태희)의 이 한 마디는 <용팔이> 핏빛 복수극의 서막이 될까. VIP 병동에 따로 마련되어 있는 한여진의 개인병동은 병실이라고 하기 어려울 정도로 화려한 최첨단 시설들이 들어차 있다. 마치 SF 장르에 나오는 미래의 공간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최첨단의 공간은 그간 한여진을 묶어 놓는 감옥이었다. 그녀는 그 곳에 눕혀진 채,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처지였다.

 


'용팔이(사진출처:SBS)'

그런데 이제 깨어나 다시 그 병실로 돌아온 한여진에게 그의 아버지는 그 곳이 바로 너의 왕좌라고 말했다. 눕혀져 있던 병상은 세워져 왕좌가 되어 있었고, 그 곳에 앉은 한여진은 아버지가 남겨놓은 한신그룹의 비자금 내역을 손에 쥐고 회사의 모든 중역들과 정재계 인물들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다.

 

병상을 용상으로. <용팔이>에서 이 한여진의 병실은 중요한 이중적인 의미를 띄고 있다. 한편으로는 일반 서민들의 병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최첨단 시설이 들어간 화려한 외관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외관에도 불구하고 한여진은 그 시설에 갇히고 묶여진 존재로 그려졌다. 만일 이 화려한 병실이 부유한 삶이 가진 자본의 풍경을 표징하는 것이라면 한여진이라는 인물의 기구함은 재벌의 화려함이 아니라 자본에 포획된 기구한 운명을 말해주는 것일 게다.

 

한신그룹이라는 재벌가는 그래서 마치 자본 쟁탈을 위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자본기계들의 정글이다. 고사장(장광)이 자본을 위해서라면 살인도 서슴지 않는 범죄자의 얼굴을 갖고 있고, 그와 모의하는 한도준(조현재) 회장과 나누는 이야기들이 마치 조폭의 세계를 보는 듯한 인상을 주는 건 자본의 세계가 얼마나 폭력적인가를 에둘러 말해준다.

 

결국 <용팔이>에서 이 비정한 자본의 세계와 맞설 수 있는 인물은 한여진이다. 그녀는 오랜 동안 병상에 묶여진 사슬을 끊고 나와 이제 그 곳을 용상으로 바꾸려 한다. 물론 그녀의 옆에서 그녀가 싸울 수 있게 지지해주는 김태현(주원)이란 존재가 있지만, 그녀의 핏빛 복수극이 향후 어떤 방식으로 흘러갈 지가 <용팔이>의 주요 관전 포인트가 되는 셈이다.

 

<용팔이>가 초반의 그 몰아치는 힘을 가질 수 있었던 원동력은 김태현이라는 캐릭터에서 비롯됐다. 스스로 속물의사라고 말하면서 사실은 돈 없으면 살 사람도 죽을 수밖에 없는 병동에서 어떻게든 환자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 이 숨은 휴머니스트의 안간힘에 시청자들은 공감하고 몰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김태현이라는 휴머니스트의 동분서주에만 머물 수는 없는 일이다. 결국 이 한신병원으로 표징되는 자본의 부조리한 세계와 그 폭력을 해결하는 방법은 이 시스템 자체를 바꾸는 일이다. 그 열쇠를 쥔 인물은 결국 한여진이다. <용팔이>의 후반부 이야기가 한여진에 의해 주도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늘 누워 있고, 깨어나서도 얼굴을 가리고 있었으며, 심지어 실어증을 가장한 채 한신병원에 숨어들어 있는 한여진이란 존재는 마치 연기자 김태희의 처지를 그대로 닮았다. 물론 그 누워 있는 연기가, 얼굴을 가린 채 실어증을 가장하는 연기가 쉬운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연기자로서 드라마에서 확실한 자기 존재를 드러낼 기회가 별로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병상을 용상으로 바꾸려는 한여진이라는 인물의 변신과 누워만 있다가 이제 깨어나 핏빛 복수극을 시작하려는 김태희라는 연기자의 반전은 서로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과연 한여진은 병상을 용상으로 바꿀 수 있을까. 또한 김태희는 이 연기를 통해 자신의 연기자로서의 존재를 드러낼 수 있을까. 한여진과 김태희의 반전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용팔이>의 갑질 폭로 그 어떤 것보다 센 까닭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차별, 병원이라고 다를까. <용팔이>의 김태현(주원)이 돈만 주면 어디든 달려가는 속물의사가 된 건 바로 이 점 때문이었다. 휴머니즘? 사람을 살리는 건 의사의 의지이지 돈이 아니다? 그런 선배의사의 말이 그저 순진한 이야기일 뿐이라는 걸 <용팔이>는 보여준다.

 


'용팔이(사진출처:SBS)'

김태현이 일하게 된 한신병원 12층은 이런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이 한신그룹의 회장 아내인 이채영(채정안)의 동선을 따라가 보자. 아무 데나 차를 세워두자 그러면 안 된다고 하는 주차요원을 발로 차고, 곧바로 12VIP 병동으로 와서는 자신의 전용 방에 다른 이가 진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에 버럭 화를 낸다. 백화점에서 벌어지곤 하는 VIP의 갑질 논란의 한 장면을 보는 듯 하지 않은가.

 

그 곳의 코디네이터 신씨아(스테파니 리)VIP병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CS(customer satisfaction) 즉 고객만족이라고 한다. 그들은 병원 가면 진료를 받기 위해 줄을 서야 하는 환자가 아니라 언제나 준비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기만 하면 되는 고객님들이다.

 

의사가 환자를 고치기 위해 어디든 달려가는 건 당연하지만 그것이 이 세계에서는 돈으로 좌우된다는 것이 차이다. 고객님들이 부르는 곳으로 왕진을 간 김태현이 재벌가 자제가 휘두른 깨진 병에 찔려 쓰러진 연예인을 고쳐주는 일은 의료행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범죄 사실을 덮는 또 다른 범죄행위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게 재벌가 자제의 폭력을 덮어주고 돌아온 김태현에게 병원장은 또 다른 의료상품이 생겼다며 칭찬해준다.

 

영화 <베테랑>이 돈이면 뭐든 다 할 수 있다는 재벌 3세의 갑질 폭력을 폭로함으로써 폭발적인 흥행을 거두고 있다면, <용팔이>의 갑질 폭로 역시 결코 약하지 않다. <베테랑>이 그리는 건 조폭과 그리 다르지 않는 재벌가의 갑질이지만, <용팔이>는 그것조차 돈만 주면 다 덮어주기도 하는 VIP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갑질 세계의 또 다른 실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곳은 병원이 아닌가.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의료행위조차 돈에 의해 좌우되는 거래행위로 구현되는 현실을 바라본다는 건 실로 씁쓸한 일이다.

 

<용팔이>의 김태현은 서민의 눈으로 그 세계를 들여다본다. 그 곳은 멋진 옷에 잘 빠진 자동차, 게다가 야외 경관이 뛰어난 창을 가진 개인 진료실을 갖고 있지만 그것은 돈에 의해 덮여진 포장지일 뿐이다. 그 포장지를 떼어내면 추악한 욕망들이 꿈틀댄다. 무려 3년이 넘게 그 12VIP 층의 제한구역에 누워 있는 한여진(김태희)이 그 욕망의 실체다.

 

그녀는 그녀를 대신해 한신그룹 회장의 일을 하고 있는 배다른 오빠 한도준(조현재)에 의해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한신그룹의 상속녀이지만 그녀를 병원에 묶어두고 대신 그룹을 장악하려는 한도준의 욕망이 만들어낸 범죄다. 그녀에게 병원은 생명이 아니라 감옥이다.

 

하지만 어둠의 세계에서 용팔이(용한 돌팔이)로 불리는 김태현은 이들과는 다른 존재다. 그 역시 멋진 옷에 멋진 차 그리고 화려한 진료실을 포장지로 갖게 되고 무엇보다 돈이면 다 하는 속물 의사의 겉모습을 드러내지만, 그 포장지 이면에는 가난하든 부자든 모두 똑같은 생명이라는 진정한 휴머니즘이 숨겨져 있다. 그래서 그가 이 VIP 층에 들어가는 이야기는 흥미로워질 수밖에 없다. VIP 층은 용팔이가 대결하고 있는 돈으로 갑질 하는 세상의 축소판인 셈이다.

 

바로 이 지점은 한여진에게 왜 용팔이가 구원의 존재로 다가오는가를 설명해준다. 모든 것이 자본이라는 철창으로 둘러싸고 있는 한여진에게 그것을 거두고 살아있는 존재로 만들어줄 인물은 용팔이 같은 자본의 갑질을 극복하려는 인물 밖에 없기 때문이다.

 

VIP 병동에 들어간 서민 의사(겉으론 속물의사라는 가면을 쓰고 있지만)라는 설정은 지금껏 우리가 의학드라마에서 좀체 보지 못했던 새로운 장면들을 가능하게 한다. 마치 폐쇄공포증을 일으킬 정도로 병원과 병실 그리고 환자와 의사의 관계 속에서만 뱅뱅 돌던 의학드라마는 VIP 병동 의사라는 설정을 통해 병원 밖으로 나와 웬만한 범죄 영화를 연상시킬 정도의 이야기들을 가능하게 만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용팔이>가 괜찮다고 여겨지는 건 물론 극화된 면이 있지만 이 드라마가 지금 현재 병원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빈익빈 부익부를 고발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의료민영화가 본격화된다면 이 빈익빈 부익부는 가속되어 생명, 나아가 범죄까지 돈 앞에서 거래되는 현장을 당연하듯 바라보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용팔이>가 그려내고 있는 씁쓸한 세계처럼.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