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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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매뉴얼 전쟁, 이미 시작됐다

D.H.Jung 2011. 10. 7.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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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마케팅 시대, 콘텐츠가 서말이도 꿰어야

'댄싱 위드 더 스타'(사진출처:MBC)

최근 들어 해외 포맷을 들여와 만드는 프로그램들이 많아졌다. 그 전위에는 케이블이 있다. '프로젝트 런웨이 KOREA', '도전! 수퍼모델 KOREA', '러브스위치', '트라이앵글', '순위 정하는 여자', '코리아 갓 탤런트', '탑기어 코리아'. 모두 케이블 방송 프로그램으로 일정료의 로열티를 지불하고 해외 프로그램의 포맷을 가져와 만든 프로그램. 일단 해외에서 검증받은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시행착오를 줄인다는 점에서 리스크는 적은 편이다. 그래서인지 프로그램은 몇 차례 시즌을 거치며 충분한 존재감을 만들어내고 있다. 온스타일의 '프로젝트 런웨이 KOREA'는 2009년 시즌1을 내보낸 후 시즌3까지 방송되며 '일반인 서바이벌 리얼리티의 원조'로 자리매김했다. 실제 실적도 좋아서 '도전! 수퍼모델 KOREA', '러브스위치' 모두 기대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하는 프로그램들이다.

물론 지상파도 해외 포맷을 가져와 프로그램을 만들지만 케이블만큼은 아니다. 이것은 지상파와 케이블의 사정이 그만큼 다르기 때문이다. 케이블의 자체제작은 최근 들어 많이 늘어났지만 몇 년 전만 해도 그 비중이 상당히 적었다. 하지만 tvN 등의 케이블이 자체제작으로 성과를 내기 시작하면서 분위기는 바뀌었다. 자체 제작 비율이 높아졌고, 그러자 시청자들 역시 이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물론 여전히 꽤 공격적인 투자를 하는 케이블이라고 할 지라도 리스크는 여전하다. 그러니 어느 정도 검증된 해외 포맷을 들여오는데 케이블이 좀 더 적극적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해외 포맷을 가져와 만든 프로그램의 성공확률에 있어서도 지상파보다는 케이블이 유리하다. 케이블은 성격상 어느 정도 마니아층을 겨냥한다. 그만큼 보편성보다는 차별적인 점, 즉 특수성이 용인되는 프로그램이다. 해외 포맷을 가져올 경우에 그 이질적인 분위기는 지상파로서는 어딘지 보편성이 부족한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다.

최근 시즌1을 끝낸 MBC의 '댄싱 위드 더 스타'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영국 BBC에서 포맷을 사와 만든 이 프로그램은 금요일 밤 줄곧 10% 대의 괜찮은 시청률을 기록했다고 볼 수 있지만 춤과 노래, 거기에 스타들의 스토리가 엮어진 강력한 포맷이라는 걸 염두에 두면 오히려 저조한 시청률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해외 포맷 프로그램의 현실이 반영된 것이다. 이것은 이른바 '바이블'이라고 불리는 매뉴얼이 가진 이중적인 성격 때문이다. 사실 포맷 수입의 핵심은 바로 이 매뉴얼이다. 이 방송 프로그램의 룰이자 툴인 매뉴얼 속에는 구체적으로 벌어질 수 있는 거의 모든 상황에 대한 대처방식이 들어가 있다. 사실상의 노하우인 셈이다.

하지만 이 매뉴얼이 '바이블'이라고까지 불리는 것은 거꾸로 그만큼의 완고함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댄싱 위드 더 스타'를 연출한 임연상PD는 실제로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초기 전체 춤 레퍼토리를 정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진통이 있었다는 얘기다. 또 조금만 매뉴얼 바깥으로 나가려고 해도 절대 허용하지 않는 BBC측 때문에 힘겨웠다는 것. 이것은 특히 지상파처럼 보편성을 추구하는 방송에서 해외 포맷을 수입한 프로그램이 왜 어느 정도의 시청률은 거두면서도, 그 이상의 성취를 하지 못하는가에 대한 단서를 준다. '댄싱 위드 더 스타'는 영국에서 포맷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우리에게 직접 적용됐을 경우 여러 가지 문화적인 간극을 만들어낸다. 댄스 스포츠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 차이 때문이다. 영국은 파티문화 속에서 춤에 대해 그만큼 자연스럽지만, 우리는 정서적으로 다른 느낌을 갖고 있다. 따라서 매뉴얼의 토씨 하나만 달리 해도 난리를 치는 포맷 수입 프로그램에서, 그것도 댄스 스포츠라는 이질적인 소재를 영국 매뉴얼 그대로 만드는 것은 무리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어느 정도의 한국적인 요소를 끼워 넣으려 안간힘을 썼지만 해외 포맷을 수입해 만들어본 경험 또한 일천한 상황에서는 이것도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댄싱 위드 더 스타'는 시즌1을 통해 이 시행착오를 제대로 겪은 셈이다. 임연상 PD는 "시즌1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는데 이것이 시즌2에서는 어떤 결실로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향후 시즌2는 그러면 좀 더 한국적인 상황을 반영할 것이냐는 질문에 임연상 PD는 의외의 대답을 한다. "시즌2는 오히려 원작에 충실한 프로그램을 만들 것"이라는 얘기다. 왜 그럴까. 이유는 매뉴얼이 그만큼 정확했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저런 변화를 무리를 해서라도 시도를 해봤지만 그다지 효과도 없었고, 점점 진행될수록 왜 BBC측이 매뉴얼대로의 진행을 고집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는 것. 노하우는 역시 노하우인 셈이다.

그렇다면 이다지도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기 어려운데 왜 자체 제작을 하지 않고 굳이 해외 포맷을 사와서 만드는지 그 이유가 궁금할 수 있다. 단지 좀 더 쉽게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서? 이것은 과연 '손 안대고 코 푸는' 식의 안이한 태도일까. 굳이 돈까지 써가면서 해외 포맷을 사와 한국 상황에 맞춰보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만드는 것이 편의주의적인 발상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여기에는 방송사의 또 다른 계산이 들어가 있다. 해외 포맷을 굳이 사오는 것은 물론 그것이 방송으로서 충분한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향후 콘텐츠 수출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매뉴얼을 경험해보지 않으면 매뉴얼을 만들기도 쉽지 않은 셈이다. 실제로 매뉴얼이 어떤 것인지조차 모르는 상황에서 매뉴얼을 만든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댄싱 위드 더 스타'는 물론 방송 그 자체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지만, 매뉴얼을 경험한다는 측면에서 더 큰 의미가 있을 수 있다.

물론 '댄싱 위드 더 스타'나 여타의 해외 판권 수입 프로그램들이 이런 매뉴얼을 경험하기 위해 프로그램을 만드는 건 아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얘기하듯이 향후 방송이 나가야할 길로서 콘텐츠 매뉴얼 사업은 그 핵심적인 것이 사실이다. '무한도전'의 김태호PD는 "콘텐츠를 매뉴얼화해 수출하는 등의 다각적인 사업화가 필요하지만 이것을 백업해주는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무한도전'은 그나마 캐릭터 사업 등 몇 가지가 런칭 되어 있는 상태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이 포맷의 수출이다. 실제로 관심을 가지는 해외의 방송사들이 많지만 중요한 건 매뉴얼이다. 수출을 하려고 해도 매뉴얼 작업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또 누가 그걸 해야 하는지에 대해 지금의 방송사들은 조금은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나는 가수다' 같은 콘텐츠에 대한 해외 판권 수출은 지금도 계속 나오고 있다. 일본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는 상황인데, 이 역시 매뉴얼 작업이 만만찮은 일인 건 분명하다. 사실 '나는 가수다'는 현재 방송에서조차 룰이 정확히 정해지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는 가수다' 같은 프로그램이 일본에 판권 수출을 한다면 그 부가이익은 생각보다 엄청날 수 있다. 해외 판권 수출은 단순히 방송제작을 허용하는 수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수익배분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나는 가수다'의 수익은 음원수익을 동반한다는 점에서 세계 2위 음반시장인 일본에서의 파급력은 놀라울 수 있다.

물론 이것도 모두 매뉴얼을 작업할 수 있는 제반조건이 방송사에 마련될 때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이미 방송사들은 그 가능성을 깊이 인식하는 눈치다. 결과적으로 미디어에 의해 지구촌화될 미래에 콘텐츠는 그 핵심적인 힘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콘텐츠 매뉴얼에 대한 새로운 집중은 이제 우리가 문화로 먹고사는 시대에 돌입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반증이다. 이 즈음에서 콘텐츠의 생산만큼 중요한 것이 그것의 다각적인 사업화다. 앞으로 다가올 콘텐츠 시대에 이 노하우는 어쩌면 우리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칠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