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상토론’, 풍자 가뭄 '개콘'에 단비로 촉촉
KBS <개그콘서트>의 새 코너 ‘민상토론’. 개그맨 박영진은 역시 이런 개그에서 자기 존재감을 확 살려낸다. 먹는 게 섹시한 자칭 ‘먹섹남’ 유민상과 여자보다 더 섹시한 남자라고 스스로 선언하는 김대성을 출연시킨 이른바 ‘뻔뻔한 이슈 토크’에서 박영진은 이 두 사람에게 뜬금없이(?) ‘무상급식 중단 논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개그콘서트(사진출처:KBS)'
“지난3월 경상남도에서 무상급식이 중단돼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무상급식 찬반여론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데요. 유민상씨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몰아붙이기와 덮어씌우기 식의 질문이 박영진의 트레이드마크라면 뚱한 표정으로 ‘내가 왜?’하는 얼굴만으로도 빵빵 터트리는 건 유민상의 장기다.
‘먹섹남’을 거론한 것처럼 유민상은 ‘먹는 얘기’를 하러 토론 자리에 나왔다가 ‘무상급식’ 질문을 받고 황당해 한다. 무상급식에 대한 찬반을 묻고 답을 못하자 박영진은 “설마 무상급식 모르는 아니냐”며 유민상을 무식한 사람 취급한다. 그래서 뭐든 얘기해보려 “아이들 먹는 거니까 중요한 얘긴데...”라고 말을 꺼내는데 그 이야기를 곧바로 박영진이 가져가 “아 무상급식 찬성입니까?”하고 질문을 던진다. 급히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자 이제는 “반대입니까?”하고 질문을 던진다. 그것도 아니라고 하니 이제는 “나는 잘 먹고 잘 살면 된다, 알겠습니다”하고 마무리를 지어버린다.
유민상과 김대성이 처한 상황은 아마도 <개그콘서트>의 상황을 에둘러 말하는 것일 게다. 사실 그간 풍자가 사라져버린 <개그콘서트>에 대해 많은 이들이 아쉬움을 토로하곤 했다. 하지만 개그에 대해 심지어 법적인 잣대를 드리우기까지 한 일련의 경험들은 개그맨들이 좀더 과감하고 자유로운 풍자를 하지 못하는 이유가 되어왔다. 김영진의 질문은 그래서 지금 현재 대중들이 <개그콘서트>에 요구하는 현실에 대한 생각을 묻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이런 실로 뜨거운 현실적 이슈에 대한 질문에 유민상과 김대성은 당황하고 어떤 이야기를 건네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한다. 작은 얘기도 침소봉대되고 때로는 엉뚱하게 해석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찬성이냐 반대이냐를 강요받고 이도 저도 아니라면 아예 “얘기할 가치가 없다”는 식으로 매도되기도 한다.
홍준표라는 이름을 거론하면 “홍준표 도지사가 뭐 잘못됐다는 겁니까?”하고 질문을 던지고, “중요한 문제인데...”라는 말은 갑자기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 문재인”으로 뒤바뀐다. 여기에 시민논객으로 등장한 개그우먼 김니나는 유민상에게 ‘유장프(유민상 장가보내기 프로젝트)’를 얘기하다가 갑자기 “좋아하는 스타일의 도지사가 누굽니까?”라는 질문을 받는다. “좋아하는 스타일의 도지사 같은 게 어딨냐?”고 되묻자 박영진은 또 “지금 현재의 도지사들은 다 마음에 안 든다 갈아엎어야 된다”는 식으로 몰고 간다.
민감한 정치 사안이나 현실적인 이야기를 피하려는 개그맨들은 “가벼운 얘기”를 하자고 하지만 그런 가벼운 얘기가 덮는 중요한 이야기들이 있다는 걸 ‘민상토론’을 슬쩍 수지와 이민호 열애설 기사 밑에 묻혀 있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2800억 기업특혜 의혹’ 기사를 통해 드러낸다. 계속 현실적인 질문을 던지는 박영진과 그런 민감한 얘기는 피하고 싶은 유민상. 그러자 김장군이 시민논객으로 일어나 이명박 전 대통령의 2천8백억 의혹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얘기한다면서 입에 물을 넣고 웅얼웅얼댄다. 그러자 터져 나오는 박수갈채.
이 지점은 그간 많은 <개그콘서트>의 풍자 개그가 있었지만 ‘민상토론’이 흥미로워지는 부분이다. ‘민상토론’은 어떤 현실 문제를 풍자의 장으로 끌어오긴 하지만 거기에 대해 특별한 코멘트를 달지 않는다. 박영진은 계속 질문으로 몰아갈 뿐 어떤 답을 던지지 않고 질문을 받는 유민상도 그 질문을 회피할 뿐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지 않는다. 심지어 시민논객도 입에 물을 넣고 웅얼거려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한다.
결국 ‘민상토론’은 현실적 사안들을 개그의 장으로 끌고 오지만 거기에 대한 어떤 입장도 얘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건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다. ‘민상토론’은 응답보다는 질문에 더 무게중심이 가 있기 때문이다. 무상급식 문제나 연예인 열애 기사에 묻혀버린 이명박 전 대통령의 2천8백억 특혜의혹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풍자의 역할을 해낸다는 점이다.
‘민상토론’은 풍자가 사라진 시대에 대한 풍자를 담아낸다. 할 말을 할 수 없는 현실을 끄집어내면서 그 질문들을 통해 오히려 어떤 답을 제시하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대중들이 <개그콘서트>에 그토록 원해왔던 현실 풍자에 대한 기막힌 접근방식이 아닐 수 없다. 개그가 어떤 입장이나 답을 제공할 필요는 없다. 그보다는 문제의식을 던지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박수갈채가 이어지지 않던가. 풍자 가뭄으로 말라가던 <개그콘서트>에 오랜만에 단비가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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