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그런거야>, 김수현 작가의 가족드라마 비기닝
과연 김수현 작가의 가족드라마는 통할 것인가. 사실 가족드라마는 더 이상 힘을 발휘할 수 없는 구시대의 유물처럼 여겨져 왔던 게 사실이다. 지금의 드라마판을 보라. 지상파 드라마들의 메인이라고 할 수 있는 가족드라마는 이제 대중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지 오래다. 물론 가족드라마의 전형이랄 수 있는 KBS 일일드라마와 주말드라마가 여전히 시청률이 높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관습적 시청을 빼놓고 보면 가족드라마가 화제가 되는 일은 거의 사라진 지 오래다.
'그래 그런거야(사진출처:SBS)'
그래서인지 지상파는 가족드라마의 자리에 자극을 잔뜩 집어넣은 막장드라마를 세워 놓았다. MBC는 그 첨병 역할을 했다. 막장의 대모 임성한 작가가 일일드라마를 두 차례에 걸쳐 150회 가까이 이끌며 갖가지 논란을 양산했다는 건 현재의 가족드라마가 선 처지를 잘 말해준다. 자극의 끝단으로까지 밀고 나감으로써 일일드라마의 대명사처럼 여겨져 왔던 가족드라마는 가족끼리 서로를 파탄 내는 복수극으로 치달았다.
가족드라마가 서는 자리로 늘 여겨져 왔던 주말드라마도 마찬가지였다. MBC 주말드라마로 <왔다 장보리>, <내 딸 금사월> 같은 드라마들은 가족드라마를 자극의 끝단으로 몰아 막장드라마로 세움으로써 높은 시청률을 가져갔지만 그만큼 잃은 것도 많았다. 더 이상 훈훈한 가족드라마가 설 자리를 조금씩 지워버린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tvN에서 방영됐던 <응답하라1988>이 오히려 가족드라마의 그 전형들을 가져오면서 대박드라마가 됐던 것. 지상파가 가족을 해체시키며 자극적인 설정을 끝까지 밀어 붙여 결국 막장드라마로 전락시킨 그 가족드라마가 여전히 대중들에게 힘이 있다는 걸 확인시킨 사건이었다. 막장드라마로 인해 변질된 가족드라마에 식상해진 시청자들은 오히려 훈훈한 정을 보여주는 정통 가족드라마에 대한 갈증을 <응답하라1988>로 풀어낸 것이었다.
결국 <응답하라1988>은 정통 가족드라마가 여전히 힘이 있다는 걸 확인시켜준 셈이다. 그러니 김수현 작가가 본래 자신의 본류라고 할 수 있는 정통 가족드라마인 <그래 그런거야>를 들고 나온 건 이런 분위기를 염두에 둔다면 괜찮은 기대감을 만들어내는 게 사실이다. 짧게 본 ‘<그래 그런거야> 비기닝’을 통해 예측해본다면 김수현 작가의 가족드라마가 늘 그래왔듯 3대가 등장하고 윗세대부터 젊은 세대까지 현재적인 갈등들이 쉴 새 없이 이어진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늘 당대의 가족상을 자신의 가족드라마에 투영시키려는 노력은 이번 <그래 그런거야>에서도 여전하다. 사고로 먼저 아들과 아내를 보내고 며느리와 함께 살아가는 시아버지의 이야기에서는 색다른 가족의 의미가 되새겨진다. 마치 딸과 아버지의 관계가 되어 며느리를 이제는 새출발 시키려는 시아버지의 이야기는 참신한 설정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김수현표 가족드라마에 단골로 등장하곤 하는 툭탁대면서 문제를 만들면서도 잘 살아가는 장년의 부부나 나이 들었어도 여전히 가족의 중심을 잡아가는 집안 어른의 이야기는 여전하다.
김수현표 가족드라마는 항상 새롭게 변화하는 혁신적인 가족의 양태를 끌어오지만 그것은 결국 보수적인 대가족 형태로 묶여진다. 동성애 같은 문제도 그 사안 자체가 아니라 아들을 껴안는 부모의 모습으로 해결점을 보여주는 게 김수현표 가족드라마의 힘이자 한계다. <그래 그런거야>는 그 가족드라마의 전형으로 돌아간 느낌이다. 적어도 막장드라마들이 변질시켜 놓은 가족드라마의 원형을 찾아준다는 점에서는 반가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그 전형적인 가족드라마의 틀이 얼마나 지금의 시청자들에게 소구할 것인가는 의문이다.
<응답하라1988>은 가족드라마를 그려내되 세련된 연출과 지금 시대의 화법을 동원함으로써 더 폭넓은 공감대를 가져갈 수 있었다. <그래 그런거야>는 과연 이런 가족드라마를 바라보는 시청자들의 달라진 눈높이에 응답할 수 있을까. 가족드라마 비기닝으로 돌아간 김수현 작가의 해체되고 난자되어 온 가족을 복원하고픈 그 진정성은 분명히 느껴진다. 일단 그것만이라도 충분히 주말 막장드라마들에게서 채널을 돌려볼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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