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천당과 지옥 오간 '철인왕후', 믿을 건 신혜선 원맨쇼뿐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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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당과 지옥 오간 '철인왕후', 믿을 건 신혜선 원맨쇼뿐

D.H.Jung 2020. 12. 29.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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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인왕후', 굳이 유쾌한 코미디를 길티 플레져로 만들 필요는 없다

 

tvN 토일드라마 <철인왕후>는 2회 만에 천국과 지옥을 겪었다. 첫 회에 8%(닐슨 코리아)가 넘는 시청률을 내면서 일찌감치 대박드라마를 기정사실화하는 듯 했지만 2회가 방영된 이후 갖가지 논란들이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혐한, 역사왜곡, 명예훼손에 이어 성인지 감수성 부족 논란까지 겹쳤다. 방통위에 민원이 쏟아졌고 급기야 청와대 국민청원에까지 올랐다. 

 

결국 제작진은 "건강한 웃음을 드리고자 했던 의도와 달리 불편을 드린 점 다시 한 번 죄송한 말씀을 드린다"고 공식사과 했고, 신정왕후가 '온갖 미신을 믿는' 인물로 묘사됐다며 강력대응을 경고한 풍양조씨 종친회의 입장이 나온 후, '풍안조씨', '안송김씨'로 이름을 바꿨다. 또 다소 과한 표현으로 문제를 촉발시킨 "조선왕조실록도 한낱 찌라시네"라는 대사는 다시보기에서는 삭제했다.

 

사실 사극에서 역사왜곡 논란이 터질 때마다 나오는 이야기가 허구와 역사 사이의 갈등이다. 사극은 상상력이 들어간 허구이니 실제 역사 그 자체로 보는 건 무리가 있다는 입장과, 그럼에도 실제 역사적 인물들이 등장할 때는 자칫 그 상상력의 허구를 진짜로 오인하게 할 수 있다며 왜곡의 가능성을 우려하는 입장이 부딪친다.

 

<철인왕후>는 그 형식적 틀만 보면 당연히 허구일 수밖에 없는 드라마다. 조선을 배경으로 하는 사극이긴 하지만, 현대에서 과거로 날아가 그것도 남성이 여성의 몸으로 들어감으로써 발생하는 코미디를 그리고 있으니 말이다. 현대의 바람둥이 장봉환(최진혁)이 하필이면 조선시대 중전 김소용(신혜선)의 몸으로 들어와 벌어지는 궁궐에서의 소동은 전혀 현실적이지 않다. 중전이 제대로 옷도 갖춰 입지 않은 채 맨발로 궁궐을 뛰어 다니는 모습이 어찌 허구가 아닐 수 있나. 

 

이 허구는 그래서 사극이 주로 보여주던 '엄숙'한 분위기를 현재의 관점에서 비틀거나 희화화함으로써 웃음을 만들고 있다. 우리가 흔히 "지금이 조선시대야?"라고 묻는 시대착오적 상황들을 실제 조선으로 날아간 인물을 통해 보여줌으로써 풍자적으로 그려내는 것. 그래서 여성이(그것도 궁궐에서 살아가는 중전이나 후궁 같은) 그 곳에서 해야 하는 불편한 억압들이나 차별적인 요소들을 뒤틀어낼 때 만들어지는 카타르시스 같은 걸 작품은 의도하고 있다. 

 

그래서 그 의도는 충분히 이해되고, 또 그 뒤틀어내는 부분이 주는 카타르시스도 분명히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이지만, '조선왕조실록'이나 철종 같은 실재 역사 속 소재나 인물이 등장한다는 건 상상력의 허용에 있어 불편한 지점을 만든다. 그래서 만일 이런 다소 과감한 선택들이 아니라 조선만을 배경으로 하고 모든 걸 허구로 채웠다면 제작진이 얘기한대로 '건강한 웃음'이 됐을 가능성이 높다. 

 

시청자들은 <철인왕후>가 주는 재미와 더불어 실제 역사를 가져온 부분에서 생겨나는 불편함을 동시에 느낄 수밖에 없다. 특히 신혜선의 인생연기가 들어간 코미디는 빵빵 터지고, 그래서 이 원맨쇼를 마음 편하게 즐기고 싶지만 정반대로 터져 나온 논란들 속에서 과연 이렇게 즐기며 봐도 되나 하는 불편함이 생겨난다. 

 

흔히들 죄의식을 느끼면서도 즐기는 콘텐츠를 이른바 '길티 플레져'라고 부른다. 물론 길티 플레져에는 자신이 그런 걸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정당화하기 위해 죄의식을 갖는 심리가 들어 있다. <철인왕후>가 사전에 이런 논란의 소지들을 세심하게 고민했다면 어땠을까. 시청자들에게 괜한 '길티 플레져'의 감정을 느끼게 만들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지금이라도 불편의 요소들은 바꾸거나 지워내는 편이 시청자들을 위한 일은 아닐까.(사진:tv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