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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드라마 곱씹기

'며느라기', 같은 사람인데 역할에 따라 왜 이렇게 다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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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라기'가 보여주는 비뚤어진 역할 고정관념 문화

 

부부 두 사람만 살면 별 문제가 없을 듯싶다. 하지만 시월드에 한 번 갔다 오면 부부 사이에서는 냉기가 흐른다. 카카오TV <며느라기>가 보여준 제삿날 시댁 풍경은 며느리 민사린(박하선)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너무나 차별적인 모습에 불편함이 느껴질 수밖에 없다. 남편과 시아버지 그리고 작은 아버지가 한 편에서 술판을 벌일 때, 시어머니 박기동(문희경)은 마치 그게 당연하다는 듯 민사린과 부엌에서 제사상을 차린다.

 

그런데 남편 무구영(권율)도 아내 민사린이 그렇게 혼자 고생하는 걸 모르거나 당연히 여기는 건 아니다. 다만 시월드의 분위기가 며느리들이 일하는 게 당연한 듯 흘러가고, 그래서 민사린이 희생하는 것으로 그 화목한 분위기가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감수할 뿐이었다. 그래서 무구영은 민사린에게 그 일을 진심으로 미안해했다. 그 역시 남편과 아들로서 모두 잘 하고 싶어 한다는 것.

 

"그런데 사린아. 부모님 만나는 날만 그냥 그렇게 있어주면 안될까?" 무구영이 원하는 건 그런 날들만 아내 민사린이 그렇게 해줬으면 하는 거였다. 민사린 역시 자식으로서 부모에게 잘 하려는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혼돈스럽다. 그 제삿날의 풍경이 어딘가 잘못되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또 남편의 마음도 이해되는 면이 있어서다.

 

무구영은 자신 역시 장모님에게 잘하기 위해 노력하는 남편이었다. 장모님을 찾아가 가게 정리하는 걸 도와주고 노래방에서 오랜만에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민사린은 엄마와 함께 잠자리에서 아빠가 효자라 엄마가 힘들지 않았냐고 묻는다. 그러자 엄마는 "자기 부모한테 잘 하는 사람이 상대방 부모한테도 잘한다"며 "시집가면 여자가 많이 참아야 되는 부분이 있는데.. 그래야지 또 가정의 평화가 오고 또 그게 나중에 다 내 복으로 돌아온다"고 말한다.

 

그런데 과연 민사린의 엄마가 말하듯 자기 부모한테 잘 하는 사람이 상대방 부모한테도 잘할까? 또 시집가면 여자가 참야 되는 게 당연한 일일까. 가정의 평화가 오고 나중에 내 복으로 돌아온다고 해도 그걸 감당하는 게 과연 괜찮은 일일까. <며느라기>에서 민사린의 고충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엄마다. 그 역시 며느리로서 겪었던 일들이 아닌가. 하지만 어째서 엄마가 자신이 겪은 일들을 딸도 당연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는 걸까.

 

생각해보면 민사린의 시어머니인 박기동도 무씨 집안의 며느리로 감당해온 세월이 있다. 그런데 어째서 며느리에게도 자신이 겪은 일들을 반복하게 하는 걸까. 그가 딸 무미영(최윤라)에게 하는 말과 행동이 며느리에게 하는 그것과는 왜 그렇게 다를까. 무미영 역시 누군가의 며느리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같은 며느리로서 민사린에게 전화한 무미영은 자신의 엄마와 함께 찜질방에 간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라는 걸 안다며 미안해한다.

 

딸과 시누이, 며느리와 엄마, 시어머니, 장모. 모두 다른 호칭으로 불리고 있지만 잘 들여다보면 한 사람이 모두 가질 수 있는 호칭들이다. 그런데 그 같은 사람이 가는 곳에 따라 관계 속에서 이렇게 다양한 호칭으로 불리는 건 왜일까. 그건 그 호칭에 따른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단단한 가부장적 문화 속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사람인데 딸로서 하는 역할과 시누이, 며느리, 엄마, 시어머니, 장모의 역할이 왜 이렇게 다를까. 그런 역할에서 벗어나 그냥 한 개인으로서 똑같이 대할 수는 없는 걸까.

 

"그런 날만 그렇게 있어주면 안될까?"라는 무구영의 말은 그래서 언뜻 이해되는 듯싶지만 사실은 그런 상황에서 가부장적 문화들이 부여했던 역할들을 당연히 받아들여 달라는 말이 아닐 수 없다. 그 비뚤어진 관계들이 굳어져 버리고 심지어 당연시됐던 건 '그런 날들'만 그렇게 있어준 일들이 반복되면서였으니 말이다.(사진:카카오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