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재킹’으로 또다시 극한의 상황 연기 선보이는 하정우
이번에도 또 극한의 상황이다. 그런데 이 배우 극한 상황에만 들어가면 펄펄 난다. 하정우 이야기다. 지난 21일 개봉한 영화 ‘하이재킹’에서 하정우는 여객기 조종사 태인 역할을 맡았다. 제목에서부터 무슨 이야기일지 짐작이 가는 이 영화에서 조종사 역할인 하정우는 하이재킹을 시도해 북으로 넘어가려는 테러범에 맞서 끝까지 싸우는 민항기 조종사 태인(하정우)이라는 인물을 맡았다. 폭탄이 터져 바닥이 뚫려버린 비행기를 무사히 조종해내야 하고, 테러범의 위협을 받는 승객들의 안전을 위해 순간적인 선택들을 해야 하며, 나아가 테러범과 협상을 시도하기도 해야 한다. 비행기 안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영화이고, 또 하정우로서는 극 중 거의 조종석에 앉아서 하는 연기를 펼치는 것이지만 어찌 보면 단조로울 수 있는 그 장면들이 끝까지 긴장감을 잃지 않는다. 너무나 평온한 상황에서부터 시작해 시시각각 변화하는 위급한 상황들을 맞이할 때마다 하정우의 변화하는 얼굴이 관객들의 감정을 쥐락펴락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극한 상황에서 펼쳐내는 연기는 이제 하정우에게는 익숙할 정도가 됐다. 그간 다양한 영화에서 납치부터 고립, 테러 등등 극한의 상황들을 보여주는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용서받지 못한 자’로 배우로서 시선을 끌었고, ‘추격자’의 섬뜻한 사이코패스 역할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으며 ‘국가대표’로 스키점프하는 주인공처럼 비상했던 하정우지만, 그의 연기 인생에서 확연한 변곡점을 찍은 작품은 2013년 상영된 ‘더 테러 라이브’였다. 이 작품이 독특했던 건, 테러범이 앵커인 윤영화(하정우)에게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그 자리를 벗어나거나 하면 인이어 헤드폰에 장착된 폭탄을 터뜨리겠다고 위협을 하는 설정을 담고 있어서다. 결국 이 테러라는 위협 속에서 하정우는 내내 스튜디오에 앉아서 하는 연기를 선보일 수밖에 없게 됐다. 모니터를 통해 보여지는 바깥 상황들과, 테러범과의 대화와 협상 등을 하면서 변화하는 상황들을 관객들은 하정우의 얼굴을 통해 실감하게 된다. 어찌 보면 영화 내내 하정우의 얼굴만 보다 나오는 상황일 수 있는 영화지만, 놀랍게도 그의 연기는 지루할 틈을 보여주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감정들을 얼굴표정의 변화를 통해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을 끝까지 몰입시킨다.
이후 2016년 상영된 ‘터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차를 몰고 터널로 들어갔다가 갑자기 매몰되어 갇히게 된 정수(하정우)가 보여주는 사투를 담은 영화였다. 흥미로운 건 이 작품이 재난영화의 공식처럼 등장하는 절망적 현실에 대한 이야기에 매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신 터널에 갇힌 사람이 하는 행동에서나 또 갇힌 생존자를 구해내기 위해 목숨을 거는 119대원들의 이야기에서도 그저 절실함과 간절함만이 아닌 훈훈한 웃음과 유머를 넣었다. 이것은 자동차 영업사원 정수라는 인물을 굉장히 낙천적인 성격을 가진 자로 작품이 그려내고 있어서다. 그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희망의 끈을 끝까지 놓지 않고 때로는 유머감각을 발휘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 폐쇄 공포증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답답한 공간에 고립된 상황을 보여주는 영화는 이 인물을 통해 숨통을 틜 수 있게 된다. ‘더 테러 라이브’에서 두 시간 가까이 얼굴만 쳐다봐도 쫄깃한 긴장감과 재미를 줄 수 있다는 걸 알려줬던 하정우의 연기는 여기서도 단연 돋보인다. 위협적인 상황 속에서의 긴장과 더불어 이를 풀어주는 낙천적인 모습을 왔다갔다 하는 연기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2018년 선보인 ‘PMC: 더 벙커’에서도 하정우는 CIA의 의뢰를 받아 군사분계선 지하 30미터 비밀벙커에서 북측 고위급 인사를 망명시키는 미션을 수행하는 글로벌 군사기업(PMC)의 팀장 에이헵 역할을 맡았다. 벙커에 갇힌 채 시시각각 변해가는 국제 정세 속에서 에이햅이 처한 상황도 바뀌게 되는데 영화는 이 인물을 초근접으로 따라다니며 그 위기일발의 상황들을 담아낸다. 이 영화가 특이했던 건, 마치 미로 속에서 에이햅의 시점으로 벌어지는 1인칭 슈팅게임을 보는 것 같은 연출이다. 역시 폐쇄된 공간에 갇힌 상황 속에서 그 단조로움을 깨주는 하정우의 연기가 돋보인 작품이다. 또 작년 상영된 ‘비공식작전’ 역시 밀실 같은 폐쇄된 공간은 아니지만 1986년 레바논 베이루트라는 특정 지역에 갇혀버린 외교관 민준(하정우)의 위기탈출을 그린 작품이라는 점에서 역시 비슷한 결의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니 하정우를 ‘재난 전문 배우’라고 하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질 수밖에 없다.
물론 하정우를 ‘재난 전문 배우’라는 수식어 하나로 묶어두는 건, 그가 그간 해온 필모들을 들여다보면 합당한 일이 아니다. 그는 ‘추격자’의 연쇄살인범, ‘비스티 보이즈’의 비열한 호스트, ‘황해’의 조선족, ‘의뢰인’의 변호사, ‘범죄와의 전쟁’의 조폭은 물론이고, ‘베를린’의 비밀요원과 ‘허삼관’의 아버지 등등 무수히 많은 다양한 역할들을 연기했다. 그 중에서 ‘재난 전문 배우’라고 지칭하는 건 그래서 아마도 이 연기가 한정된 공간에서 다양한 감정들을 끄집어내야 하는 난점을 가진 것으로 그걸 해낸 하정우의 연기력에 대한 상찬이 담긴 의미일 게다.
그런데 이번 ‘하이재킹’의 경우는 그가 해온 일련의 재난영화들 속의 연기와는 또 다른 면들이 드러난다. 그건 아무래도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 허구의 ‘재난영화’와는 사뭇 다른 진정성을 요구했기 때문일 게다. 이 작품은 1971년에 실제 벌어졌던 대한항공 납북 미수사건을 소재로 했다. 끝까지 테러범과 맞서 싸우다 터지는 폭탄을 온몸으로 끌어안음으로써 승객과 승무원들을 모두 살린 의인 전명세 조종사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과장없이 의인에 대한 예우를 담아 진지한 연기를 펼쳤다.
하정우가 특히 극한의 상황에 내몰린 인물의 연기로 대중들의 주목을 받은 건,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이른바 ‘위험사회’가 주는 불안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위급한 상황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버텨내고 때론 타인을 위한 희생까지 감수하는 선택을 하는 이들에 대한 공감이 그가 연기해낸 인물들을 통해 느껴졌을 테니 말이다. (글:국방일보, 사진:영화'하이재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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