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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의 말에 귀기울이는 시간, ‘미지의 서울’ 그 위로가 더 큰 까닭이주의 드라마 2025. 6. 25. 11:44728x90
‘미지의 서을’, 박보영과 원미경이 꼬집는 피해자 핍박하는 세상
미지의 서울 “그게 바로 나니까. 김로사가 아니니까. 너도 들었을 거 아냐. 배운 거 하나 없는 천애고아가 사람까지 죽이면 원래 이런 대접을 받는거야. 그게 당연한 거야.” tvN 토일드라마 <미지의 서울>에서 김로사는 자신이 김로사가 아니고 그녀의 둘도 없는 친구였던 현상월이라는 게 밝혀지면서 세상이 지탄을 받게 된다. 시인 김로사 행세를 하며 인세는 물론이고 가게까지 모두 자기 걸로 만든 파렴치한 인물로 세상은 쉽게 낙인 찍어 버린다. 심지어 김로사의 아들은 요양원에 보내버린 비정한 인물로까지.
현상월은 그런 비정한 세상이 씁쓸하면서도 자조한다. 늘 그런 식으로 자신을 대했던 세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미지(박보영)는 다르다. 그녀는 가까이서 선생님을 보면서 결코 그렇게 세상이 함부로 손가락질할 사람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어떻게든 도우려 한다. 하지만 선생님은 자조적인 말로 “이유 없이 남을 돕는 사람은 없어. 살면서 배운 건 그거 하나야.”라고 선을 긋는다. 하지만 유미지는 말한다. “그럼 아직 덜 배우셨나보죠. 절 이제야 만났잖아요.”
실제로 현상월이 김로사가 되어 그 삶을 대신 살게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지독한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김로사는 아이를 데리고 도망나와 현상월과 행복한 나날을 보냈지만 끝내 찾아온 남편의 폭력 앞에 우발적으로 그를 때려 죽게 만든다. 하지만 현상월은 김로사 대신 감옥에 갔고, 출감한 후에도 김로사와 아이의 생계를 책임지며 살았다. 전과자라는 이유로 뭐든 할 수 없게 되자 김로사의 제안으로 그 이름을 쓰게 됐고 그렇게 홀로 고군분투해 가게도 차린 거였다. 그녀는 누군가의 인생을 훔친 파렴치한 인물이 아니라, 그 사람을 사랑해 그 인생까지 온전히 짊어지려 했던 숭고한 사람이었다.
<미지의 서울>이 김로사(실은 현상월)라는 인물을 통해 세상에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그건 피해자를 오히려 가해자로 둔갑시키는 세상의 엇나간 시선이다. 그런 시선은 누군가의 이득을 위해 잔인하게도 이용되어 생겨난 것이고, 사람들은 그 이면을 보지 않고 섣불리 소문에 동조해 돌팔매질을 한다. 그건 유미래(박보영)에게도 또 회사에 바른 말을 했다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았던 김수현(박예영)에게도 똑같이 벌어진 일이었다. 회사 비리 앞에 맞섰던 김수현은 직장내 따돌림을 당했고, 유일하게 그녀의 편에 섰던 유미래 역시 같은 취급을 당했다.
게다가 유미래는 상사였던 박상영(남윤호)에게 더 지독한 일을 당했다. 술에 취해 성추행을 하려던 박상영을 밀어낸 후, 유미래는 오히려 유부남 박상영에게 꼬리친 부하직원 취급을 당했다. 피해자였지만 가해자 취급은 당한 것. 회사도 불륜이 아니라 성추행이라는 유미래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오히려 그녀에게 2차가해가 되는 질문만 던졌다. ‘근데 사건 발생하고 바로 신고 안했냐?’ ‘사건 이후에도 커피를 왜 계속 사다 줬냐?’ ‘평소에도 둘이 매일 야근도 하지 않았냐?’ 같은 질문들이 그것이다. 신고 안하고 커피 사다 주고 평소 야근을 같이 한 것으로 피해자의 입장을 듣지 않고 피해자를 가해자로 몰아가는 그런 질문들은 고스란히 가해자의 입장만을 대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또 다른 상처를 주는 건 물론이고.
<미지의 서울>은 뭣도 모르고 함부로 떠들어대는 잔혹한 세상 앞에서 오히려 더 힘겨운 삶을 버텨내는 피해자들을 위한 위로를 담았다. 그 누구도 이해해주지 않을 것 같고 그래서 그런 대접을 받는 것조차 당연한 일처럼 자조하는 피해자들에게 다가가 그건 결코 당연한 게 아니고 부당한 것이라고 말해주고, 그 피해자의 말에 귀 기울인다. 이호수(박진영)가 청력에 장애를 가진 변호사라는 설정은 그래서 작가의 역설적인 일침이 들어있다. 잘 듣지 못하는 그가 오히려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더 잘 듣는 사람이라는 것. 누군가의 진심을 들어주는 건 귀가 아니라 마음이라는 걸 이 인물은 말해준다.
그렇게 <미지의 서울>에는 저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떠드는 소문에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이 고통받는다. 하지만 그 피해자들이 죽을 것만 같은 절망 속에서도 살아가게 하는 건 단 한 사람이라도 그 이야기를 들어주는 누군가다. 김수연의 진심을 유미래가 들었고, 유미래의 진심을 한세진(류경수)이 듣는다. 김로사의 진심을 유미지가 봤고 이호수가 듣는다. 하다 못해 제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엄마에게도 또 딸에게도 그 마음이 닿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김옥희(장영남)의 말을 둘도 없는 절친인 염분홍(김선영)이 듣는다.
누군가의 진심에 귀기울이는 사람들의 따뜻한 이야기를 보다보면, 이 드라마의 제목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유미지가 유미래가 되어 서울에 오게 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뤘다는 의미로 처음에는 보였던 <미지의 서울>이, 우리가 익숙하게 다 알고 있다 치부해왔지만 사실은 미지인 무수한 서울의 삶들이 있다는 의미처럼 다가오는 것이다.
‘인생은 시와 닮아서 멀리서 볼 땐 불가해한 암호 같지만 이해해 보리란 마음으로 들여다보면 비로소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알게 되지요.’ 먼저 간 현상월의 친구 시인 김로사는 훗날 친구가 당할 수도 있을 일들에 대비해 남긴 편지에서 그렇게 적었다. ‘이해해 보리란 마음으로 들여다보면’ 이라는 문장이 가슴을 깊게 파고 든다. 세상의 억울한 피해자들 입장에서는 그 한 줄이 엄청난 위로가 될 법하다.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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