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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영의 완벽한 1인2역이어서 ‘미지의 서울’의 매순간이 좋았다이주의 드라마 2025. 7. 3. 12:07728x90
‘미지의 서울’, 박보영이 완성한 상처 입은 이들의 아름다운 회복기
미지의 서울 상처 입은 이들은 어떻게 회복되는가. 어쩌다 생긴 상처는 시간이 흐르면 딱지가 생기고 아물기도 하지만 그 상처가 끝없이 만들어내는 가려운 기억들은 때론 딱지를 건드려 상처를 덧나게도 한다. 그럴 때 필요한 건 누군가 옆에서 호호 불어주고 약도 발라주고 때론 아팠던 순간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어떤 존재가 아닐까. 그런 존재가 있어서 잠시 잊고 있다 보면 어느새 아물어버린 상처를 마주하게 될 지도 모르니.
tvN 토일드라마 <미지의 서울>이 종영했다. 이 드라마가 하려 한 이야기는 바로 그 상처에 대한 것이다. 육상선수를 꿈꿨지만 좌절되어 방안으로 숨어들어갔던 미지(박보영), 가족에 대한 부채감으로 명문대를 졸업하고 공사에도 들어갔지만 지독한 직장내 괴롭힘과 성추행을 겪은 미래(박보영), 자신 때문에 아빠가 돌아가셨다 자책하며 새엄마에 미안함과 평생 몸에 새겨진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호수(박진영), 절실하게 자신을 찾았던 할아버지를 옆에서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모든 걸 버리고 귀농한 세진(류경수)... 상처 없는 이들이 없다.
모두가 상처를 안고 살아가지만, 이들은 그 상처로 인해 마치 자신들이 무언가를 잘못한 사람인 양 자책한다. 잘못한 게 아니라면 자신들이 이토록 무거운 마음의 짐을 지고 살아갈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우연한 사고 혹은 실수이거나, 다른 가해자가 있거나 해서 벌어진 일들일 뿐,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미지의 서울>은 끝내 그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했다. 어쩌면 현재를 살아가면서 저마다 힘겨움을 겪는 모든 이들에게 이 이야기는 그들이 잘못해서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처럼 들린다.
무고하고 무해한 삶을 살아가지만, 상처로 아파하며 자책하는 그들에게 드라마는 한 걸음 더 다가간다. 멀리서 보면 이해하기 어렵고 심지어 피해자가 가해자처럼 둔갑되기도 하는 그 오해들을 보다 가까이 다가가 풀어내려 한다. 유미지와 유미래라는 쌍둥이 설정까지 굳이 넣은 건 그래서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이 쌍둥이는 그래서 다른 삶 속으로 들어가 그 삶이 얼마나 무고했고 무해했는가를 목도한다. 그리고 이 과정이 계기가 되어 그들은 지금까지 와는 다른 새로운 삶 속으로 들어간다.
실로 유미지와 유미래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는 걸 실감하게 만드는 박보영의 1인2역이 완벽하지 않았다면 애초 몰입 자체가 불가능한 드라마다. 하지만 박보영은 이 두 인물을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연기해낸다. 유미지가 한없이 밝고 에너지가 넘치는 긍정적인 인물이라면, 유미래는 좀체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시크한 면이 있는 인물로 표현됐다. 물론 그 이면에는 유미지도 또 유미래도 애써 저마다의 방식으로 속내를 숨기려는 면모가 있다. 유미지는 애써 밝게 보임으로써 속내를 숨긴다면, 유미지는 무표정으로 속내 자체를 숨기는 인물이다.
그래서 성격은 완전히 달라보이지만 그것은 드러나는 겉면의 표현이 다를 뿐 두 사람 모두 착한 심성과 특히 정의감 넘치는 면이 닮아 있다. 박보영이 이 두 인물을 얼마나 실감나게 연기해냈는가는 두 사람이 마주하고 서로 다른 의견 때문에 말다툼을 하는 그런 장면에서 증명된다. 그 장면 속에서 두 사람은 실제 완전히 다른 성격을 가진 사람들처럼 대화한다. 얼굴만 같을 뿐.
박보영의 완벽한 1인2역 위에서 <미지의 서울>은 매 순간 가슴을 건드리는 이야기들을 건넬 수 있었다. 미래의 삶 속에서 그 아픔을 고스란히 느끼고 그 부당함에 대항하는 미지의 모습이 그렇고, 미지의 입장이 되어 자신과 미지를 비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미지가 느꼈을 감정을 공유하는 미래의 모습이 그러하다. 또 호수의 평생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봄날의 햇살’처럼 보듬는 미지의 밝은 에너지나, 힘겹지만 속내를 숨겨왔던 미래가 세진을 만나 주체적인 새 삶을 찾아가게 되는 그 과정이 주는 카타르시스도 박보영의 양자를 오가는 연기가 아니고서는 가능할 수 없는 것이었다.
박보영에게 이런 기회가 가능했던 건, 물론 이러한 매력적인 캐릭터와 심도 있는 서사 그리고 울림과 여운이 가득한 대본을 쓴 이강 작가 덕분이다. 우리에게는 <오월의 청춘>으로 기억되는 작가지만 아마도 <미지의 서울>은 이 작가에게 완전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방영된 어떤 드라마들보다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이 느껴지는 그 시선은 향후 이 작가의 작품세계가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를 기대하게 만든다.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로 이 작품의 근원적인 정서를 꺼내놓은 김로사 역할의 원미경 배우나, 할머니 강월순 역할의 차미경 배우, 김옥희와 염분홍 두 사람의 티격태격하면서도 끈끈한 우정을 보여준 장영남, 김선영 배우, 또 냉철하게 이기는 것만 생각하는 차가운 변호사 역할로 극에 긴장감을 줬던 임철수 배우, 더할 나위 없는 남사친의 매력을 보여준 문동혁 배우 등등 모든 배우들의 호연에도 박수를 보낸다. 좋은 대본은 이처럼 좋은 연기를 동반하기 마련이다.
지금도 아픈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는 분들이라면, 그것이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이 드라마는 끝까지 강변한다. 그리고 새로운 삶을 향해 계속 나아가는 유미지와 유미래를 통해 위로와 응원의 말을 건넨다. 이제 이 작품을 통해 박보영 배우나 이강 작가도 이제 새로운 길을 마주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들의 앞길에 나 역시 응원의 말을 보탠다. 아마도 그건 이 작품을 끝까지 본 시청자들의 마음 그대로일 게다.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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