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꼬면에서 짜파구리까지 예능에 푹 빠진 라면업계

 

꼬꼬면에 이어 이제 짜파구리다. 2011년 <남자의 자격>에서 이경규가 선보여 화제가 되었던 꼬꼬면은 한국야쿠르트가 그 해 8월 시판에 나서면서 라면업계를 뒤흔들었다. 이른바 ‘하얀 국물’ 라면의 공습. 덩달아 기스면과 나가사키 짬뽕까지 새롭게 주목받으면서 라면시장은 한동안 하얀 국물 열풍에 빠져들었다. 그 열풍은 물론 그다지 오래가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그 파장은 라면업계로 하여금 방송, 특히 예능 프로그램이 가진 힘을 확인시켜주기에는 충분했다.

 

'아빠 어디가'(사진출처:MBC)

그리고 이번엔 <아빠 어디가>에서 김성주가 만들고 먹방의 지존 윤후가 먹으면서 화제가 된 짜파구리 열풍이다. 짜파구리는 심지어 꼬꼬면 열풍 시절에도 그 아성을 넘보지 못했던 신라면의 벽마저 무너뜨렸다고 한다. 지난 3월 매출 상위 3개 라면인 신라면, 짜파게티, 너구리의 판매 순위가 뒤바뀌었다는 것. 3월에는 짜파게티(37.4%), 신라면(32.0%), 너구리(30.6%), 4월에는 너구리(37.4%), 짜파게티(33.2%), 신라면(29.4%) 순으로 팔렸다는 것이다. 그 순위가 무엇이든 농심으로서는 꼬꼬면 열풍과 신라면 블랙의 부진으로 궂긴 자존심을 제대로 세운 셈이 되었다.

 

만일 라면업계가 방송을 활용한 것이었다면 아마도 그 논란은 클 수밖에 없었을 게다. 하지만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으로 우연히 방송을 통해 화제가 된 이후에 그것은 해당 라면업계의 마케팅으로 이어졌다. 꼬꼬면은 이경규를 광고모델로 전면에 내세웠고, 짜파구리 역시 김성주와 윤후를 모델로 세워 그 방송 이미지를 극대화시켰다.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보여진 방송과 라면의 조합은 기막힌 시너지로 이어졌다. 꼬꼬면이나 짜파구리는 물론 애초부터 짜여진대로 방송과 마케팅이 이어지지 않았겠지만 이러다 보면 향후에는 아예 짜고 치는 고스톱에 대한 유혹이 생길 법도 하다. 이만한 열풍을 만들어낼 마케팅이 어디에 있겠는가.

 

도대체 라면의 무엇이 이런 예능 프로그램과의 행복한 동거를 만들었을까. 김이 모락모락 나는 라면을 한 젓가락 집어 후후 불며 먹고 뜨끈한 국물을 마시며 좋아하는 모습은 이제 예능 프로그램에서 흔하디흔한 장면이 되었다. 라면 스프는 <패밀리가 떴다>에서 윤종신의 ‘기적의 레시피’로 국물 요리에 투하되었고, 이제 <정글의 법칙>에서는 살짝 맛만 봐도 정신이 돌아오는 충격적인 맛의 결정체로 그려진다. 또 <진짜 사나이> 같은 군대 소재 예능에서는 ‘뽀글이’ 같은 형태로 군대 시절의 추억을 자극한다.

 

라면이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이처럼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는 것은 그 조합이 찰떡궁합이기 때문이다. 서민에게 있어 예능프로그램이나 라면은 닮은 구석이 많다. 모두 적은 돈으로 행복감을 주는 존재들이 아닌가. 예능프로그램이 공감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라면처럼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저마다의 기억과 향취를 가진 소재는 그 어떤 음식보다 훌륭한 소재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라면이 주는 포만감과 공복감의 기억은 서민을 지향하는 예능으로서는 맞춤의 감성을 제공한다.

 

특히 최근의 예능 프로그램들이 점점 야외로 나가게 되면서 라면은 더 훌륭한 감각적인 소재가 되었다. 야외에서 벌이는 버라이어티에서 음식을 활용하는 것은 프로그램이 단지 시청각의 감각을 넘어서 입안에 침이 고이게 되는 미각과 나아가 공복감이 주는 촉각까지를 자극하기 위함이다. 야외에서 고생하며 배고픈 이들에게 라면 한 그릇이 주는 포만감은 보는 이들마저 행복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꼬꼬면에서부터 짜파구리까지 예능과 만난 라면의 열풍은 물론 방송 프로그램을 활용한 새로운 마케팅의 한 방식일 수 있다. 따라서 본말이 전도되어 방송이 특정 상품을 위해 활용된다면 큰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라면이란 존재가 환기시켜주는 기억들은 저마다 소중할 수밖에 없을게다. 그것이 부자이든 가난한 자이든, 나이든 분이든 어린 아이든, 남자건 여자건... 그래서 특정 상품의 방송 활용은 곤란하겠지만, 라면과 예능 프로그램의 행복한 동거는 한동안 계속될 듯싶다.

을의 반란, 더 이상 <직장의 신> 같은 판타지 아닌 이유

 

“혼자서는 못가. 시계가 어떻게 혼자서 가. 다 같이 가야 나 같은 고물도 돌아가는 거야. 그런데 김양은 맨날 혼자서 큰 바늘, 작은 바늘 다 돌리면 너무 외롭잖아. 내 시계는 멈출 날이 많아도 김양 시계는 가야 될 날이 더 많은데...” <직장의 신>의 만년 과장 고정도(김기천)의 이 대사는 늘 로봇 얼굴의 무표정했던 미스 김(김혜수)은 물론이고, 무수한 직장인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거기에 권고사직, 정리해고로 점철된 우리네 파리 목숨 직장인들의 자화상이 그려졌기 때문이다.

 

'직장의 신'(사진출처:KBS)

오죽하면 직장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오로지 업무로만 무장하려는 미스 김 같은 캐릭터가 각광을 받겠는가. 스스로 비정규직을 선택한 그녀의 말대로 작금의 직장인들은 심지어 “회사의 노예”로 취급되는 을 중의 을이 아니던가. 그러니 <직장의 신> 같은 드라마에 대한 열광과 미스 김 신드롬에는 우리네 아픈 현실이 묻어난다. “IMF 이후 16년 비정규직 노동자 8백만 시대에 이제 한국인의 소원은 통일이 아니라 정규직 전환이 된” 아픈 현실.

 

하지만 최근에 벌어진 일련의 ‘을의 반란’을 보면 이제 이런 현실을 그저 한탄하거나 감내하면서 잠시나마 드라마 같은 판타지로 아픈 속을 달래는 단계를 넘어서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이른바 라면 상무와 빵 회장에 이어 이른바 조폭 우유(?) 사태까지. 그간 이른바 갑에게 짓눌려 왔던 을의 정서는 최근 인터넷과 SNS를 통해 폭발하는 인상이다. 이러한 정서의 폭발이 드라마 같은 대리충족 콘텐츠 안에서 소극적으로 벌어졌던 것과는 달리, 이제는 실제 현실을 바꾸고 있다는 점은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한 때 인터넷을 달궜던 ‘대나무 숲’ 열풍은 그래서 어쩌면 지금 같은 ‘을의 반란’의 전초전 같은 징후였을 지도 모른다. 이 누군지 이름을 숨긴 채 ‘대나무 숲’에 들어와 회사의 비리나 고충을 한껏 소리 지르고, 그 소리가 인터넷을 타고 일파만파 전파되는 그 소극적인 쾌감을 만끽했던 이 땅의 수많은 을들은 이제 현실 위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중이다. 인터넷과 SNS라는 뉴미디어를 통해 집결된 여론들은 이제 말에 머물지 않고 어떤 실행력을 갖추기 시작한 셈이다. 이제 공감하거나 공분할 수 있는 대중정서가 밑바탕 된다면 인터넷 여론은 그간 갑으로 군림하던 이들까지 뒤집을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다.

 

항공기 승무원에게 폭언에 폭행을 한 상무는 결국 회사에 사표를 쓰게 되었고 호텔 종업원에게 장지갑으로 뺨을 때린 한 중소기업 회장은 결국 자신이 납품하던 코레일에 빵 납품을 못하게 되었다. 이 회장은 심지어 회사를 폐업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리고 이어 터진 이른바 조폭 우유 사건은 회사 대표의 공식사과문이 발표됐고 현재 제품 강매가 있었는지에 대해 검찰이 조사 중이라고 한다.

 

우리에게 있어서 사회생활에서의 갑을관계는 이미 일상화된 지 오래다. 그래서 갑을관계를 다루는 풍자는 코미디의 단골소재가 되어오기도 했다. 일찍이 80년대 정치풍자 코미디의 대가였던 고 김형곤 개그맨은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이라는 코너를 통해 회장님 말이 곧 법인 회사의 갑을관계를 풍자한 바 있다. “딸랑 딸랑”으로 대변되는 김학래의 “저는 회장님의 영원한 종입니다”라는 유행어는 그러나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유효한 모양이다. 최근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였던 ‘갑을컴퍼니’의 직장 내 풍경 역시 그다지 달라진 것처럼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겉보기는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이지만 그 속으로는 우리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중이다. 그것은 이른바 ‘대중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래된 갑을 관계를 깨는 진짜 힘은 ‘을’로 대변되는 대중들이 소비자의 위치를 넘어서 같은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의 목소리를 점점 내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소비자들은 상품만을 사는 것이 아니다. 그 상품이 갖고 있는 기업이미지는 구매의 중요한 조건이 되었다.

 

그러니 이제 스스로 갑이라 생각하며 군림해왔던 이들은 이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진정한 갑이 누군가를 다시 바라봐야 할 시점이다. <직장의 신>에서 미스 김이나 고 과장 혹은 <무한도전> 무한상사의 정 과장 같은 존재를 만들어낸 시스템이 상정하고 있는 갑을관계는 이제 조금씩 역전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대중의 시대에 슈퍼 갑은 대중일 수밖에 없다.

<무도>, 시간 없다더니 그것마저 도전소재

 

<무한도전>에게 도전 소재가 아닌 것은 없다? <무한도전> 빙고특집은 지난 8주년 특집으로 무한상사에 너무 심혈을 기울인 관계로 촬영 시간이 이틀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시작됐다. 당일 녹화해서 모레 방송으로 나간다는 것이 가능하냐고 묻자 김태호 PD가 가능하다고 했다며 유재석은 기막힌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사실 이번 빙고특집은 바로 이 시간에 쫓겨 즉석에서 아이템을 선정하고 그걸 도전으로 소화해내는 것 자체가 소재가 되었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멤버들은 먼저 회의를 통해 저마다 자신들이 가진 아이디어를 마구 던지는 과정을 방송분량으로 만들어냈다. 정형돈은 (시간을 아끼기 위해) “방송에 나갈 말만 해야겠다”고 말했고, <아빠어디가> 촬영현장을 무작정 찾아가자는 이야기부터 유재석 아들 지호와 박명수 딸 민서를 출연시켜 대결을 벌어자는 제안이 이어졌다. 특히 노홍철은 “폐쇄된 개성공단을 가보자”는 황당한 제안을 해 멤버들을 포복절도하게 만들었다.

 

결국 유재석의 제안으로 결정된 빙고 게임 역시 즉석에서 게임 아이템을 결정하는 과정 모두가 방송분량이 되었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서 시민들과 함께 하는 첫 게임으로 길거리에서 5분 안에 ‘지연’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 찾기는 그 이름 선정에서부터 큰 웃음을 주었다. 갑순이, 말자, 순득이, 심지어 김깝십 같은 찾기 힘든 이름들이 쏟아져 나왔고 결국 그래도 평범한 ‘지연’으로 선정된 것.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무한도전> 특유의 게임에 대해 시민들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참여했다는 점이다. ‘지연 이름 찾기’에서는 한 남자가 자기가 지연이라고 거짓말을 하는 너스레를 떨기도 했고 ‘시민 말 넘기’ 게임에서는 정형돈이 아무 말도 없이 말 자세로 있는 모습에 시민들은 자연스럽게 하나 둘 모여들어 말을 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말을 탄 인원이 짝수냐 홀수냐로 승자를 정하는 방식은 그 자체로 긴박감을 만들어주었지만, 결국 이 게임이 가능했던 건 시민들의 참여 덕분이었다.

 

‘개구기 스피드 퀴즈’나 ‘시민이 엉덩이로 이름 쓰고 그걸 맞추는’ 게임, 또 ‘시민이 찬 축구공 빨리 주워오기’, 또 순대를 1미터에 가깝게 끊어오는 게임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빛난 아이템들이었다. <무한도전>이 처한 위기상황(시간에 쫓기는)을 시민들의 도움으로 넘어서는 이 게임 아이템들은 그래서 꽤 의미심장한 풍경을 그려냈다. 대중들과 함께 해왔기에 지금의 <무한도전>이 있었다는 전언.

 

‘물을 머금고 간지럼 15초 견디기’ 게임이나 ‘핫도그 빨리 먹기’ 게임은 <무한도전> 특유의 몸 개그와 먹방의 묘미를 선사했고, 길이 이효리에게 전화를 걸어 “오빠 너무 섹시해”라는 말을 들어야 하는 ‘지정어 듣기’ 게임은 이효리 특유의 ‘쿨한 응대’로 빵빵 터지는 웃음을 선사했다. 이런 순발력 있는 아이템들을 쉽게 방송분량화 하는 능력은 역시 <무한도전> 8년의 관록을 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무한도전>이 이처럼 시간에 쫓겨 방송분량을 이틀만에 만들어내는 이번 특집은 어떤 면에서는 어려운 여건에도 쉬지 않고 달려왔던 <무한도전>의 고충이 느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템을 개발하고 도전하는 과정을 무려 8년 간 지속해왔다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다행스러운 것은 그들이 어느 날 갑자기 거리 한 복판에 나타나 무언가를 해도 거기에 참여해주고 호응해주는 시민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있었기에 <무한도전>의 도전이 멈추지 않을 수 있었을 게다.

 

빙고특집은 급조한 방송 자체를 아이템화함으로써 뭐든 ‘도전과제’로 승화해버리는 <무한도전> 특유의 힘을 느낄 수 있게 했다. 동시에 그것은 쉼 없이 달려온 <무한도전>의 어려운 처지를 보여주기도 했고, 또한 그러면서도 거기 함께 해준 대중들과의 호응으로 <무한도전>이 계속 도전할 수 있었다는 것도 알게 해주었다. 이 정도면 급조한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아이템이 아닐 수 없다.

<내연애>가 그저 그런 멜로라고? 실험작이다

 

신하균이 이처럼 달달했던 적이 있었나. 과거 신하균이 했던 작품들 속 인물들을 보면 어딘지 신경쇠약 일보직전의 캐릭터들이 대부분이었다. 대중들의 뇌리에 깊게 박힌 이미지는 그래서 아마도 하균신이라는 닉네임이 붙을 정도로 강렬했던 <브레인>의 이강훈이라는 캐릭터일 게다. 그런 신하균이 눈웃음을 살살 치고 심지어 애교를 떤다. <내 연애의 모든 것>의 김수영 의원을 연기하는 신하균의 모습은 확실히 낯설면서도 신선하다. 물론 초반에는 예전 신하균의 이미지 그대로 까칠하기 이를 데 없는 정치인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 그는 차츰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내 연애의 모든 것'(사진출처:SBS)

반면 이민정은 신하균과는 정반대의 이미지 변신이다. 늘 풋풋한 사랑의 아이콘이었던 이민정은 이 드라마 속 노민영 의원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정치인들에게 거침없이 쓴 소리를 쏟아 붓는 정의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대한국당, 민우당, 녹색진보당이 룸싸롱에서 술판을 벌이고 밀실회의를 하는 광경을 보고는 치밀어 오르는 혐오감에 그녀는 컵을 집어던지며 이렇게 일갈한다. “애국이 국어사전에서 썩어 빠지겠다 이 개자식들아! 이러니까 국민들이 정치가 정치인들이 국민 뜯어먹고 산다고 생각하는 거거든요!”

 

사실 이 드라마에서 연기변신을 하고 있는 건 신하균과 이민정만이 아니다. 김수영 의원의 수석보좌관 맹주호 역할을 연기하는 장광이나 김의원의 비서 김상수 역할을 연기하는 진태현도 지금껏 보지 못했던 모습을 보여준다. 둘 다 강렬한 악역을 주로 해왔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이보다 더 웃길 수 없고 이보다 더 귀여울 수 없는 그런 캐릭터를 연기해내고 있다. 신하균과 진태현 또 신하균과 장광의 연기 합은 그래서 이 드라마가 그리고 있는 멜로만큼 충분한 재미를 선사한다.

 

그러고 보면 <내 연애의 모든 것>은 그간 우리가 생각해왔던 정치라는 소재가 가진 상투적인 이미지를 뒤집는 작품이기도 하다. 정치만큼 대중들에게 첨예하고 무겁고 심지어 역겹게 느껴지는 것은 없지만, 실상 그 정치를 하는 정치인들도 결국 개인으로 돌아오면 우리와 똑같이 사랑에 빠지고 고민하는 사람일 뿐이다. 어떤 국가나 정당을 위한 선택과 소신 같은 공적인 결정은 그래서 누구나 다 똑같을 수밖에 없는 사적인 연애가 생겼을 때 그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김수영 의원과 노민영 의원의 연애가 쉽지 않은 건 그 때문이다.

 

정치와 로맨틱 코미디의 결합은 그래서 대단히 신선한 화학적 실험이다. 정치가 가진 무거움과 로맨틱 코미디가 가진 가벼움은 과연 공존할 수 있을까. 정치인으로서의 공적 존재가 연애하는 사적 존재와 공존할 수 있을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내 연애의 모든 것>이 꽤 괜찮은 완성도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시청률이 낮은 건 그래서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정치 이야기를 원하는 시청층과 로맨틱 코미디를 원하는 시청층은 다를 수밖에 없다.

 

<대물> 같은 드라마의 성공을 빗대 대중들이 정치 이야기를 좋아한다고 말 할 수는 없을 게다. 왜냐하면 그것은 본격 정치 이야기라기보다는 아줌마의 정치인 성장담에 더 초점이 맞춰지는 것이고, 정치 역학보다는 대중정서에 더 어필하는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수사반장>이 수사물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80% 범죄자가 된 사연을 소개하고는 나머지 20% 그 범죄자의 등을 최불암이 두드려주는 <수사반장>은 인간극장이자 휴먼드라마일뿐이다. 즉 우리네 드라마의 특성상 본격적으로 정치 역학을 소재로 활용해 성공한 드라마는 많지 않다.

 

따라서 본격적인 정치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으면서도 그 위에 멜로라는 사적인 문제를 얹어 놓은 <내 연애의 모든 것>은 그저 그런 멜로가 아니다. 신하균과 이민정의 달달한 로맨스를 전면에 보여주려 하는 것은 그것이 좀 더 대중적이기 때문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전부라는 얘기는 아니다. <내 연애의 모든 것>은 꽤 많은 것들을 뒤집는 실험작이자 문제작이다. 신하균과 이민정의 연기 변신을 통해 그 화학작용이 만들어내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적어도 정치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갖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시청률이 좀 낮다 해서 이 작품을 폄하할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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