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된 실패와 논란, JYP 신뢰하락의 원인

 

이대로 가다간 국내 3대 기획사의 하나로 지칭하기도 어려울 것 같다. 최근 MBC <뉴스데스크>로 불거진 JYP 소속 아이돌 스타 캐릭터 상품 사업 논란은 작금의 JYP가 처한 위기 상황을 그대로 보여준다. 물론 JYP의 주장처럼 속사정을 전혀 몰랐을 수 있다. 그리고 손해를 영세 하청업체들이 떠안은 것은 계약서 상에 명시된 대로 판매수익에 따른 정당한 것이었을 게다. 따라서 이를 가지고 섣불리 ‘갑의 횡포’니 ‘을의 눈물’이니 말하는 건 합당하지 않을 수 있다. 결국 제 아무리 갑과 을의 관계라고 해도 사업이란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순간 해당자의 책임이 아닌가.

 

'뉴스데스크'(사진출처:MBC)

하지만 다른 회사도 아니고 JYP다. 국내 3대 기획사로 손꼽히고 해당 연예인들은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아는 히트곡을 갖고 있는 가수들이다. 물론 최근 들어 가요계의 흐름이 아이돌 그룹에서 솔로 아티스트로 바뀌면서 예전만큼 주목을 받지 못하는 건 사실이다. 신곡을 발표했던 2AM도 과거만큼 화제를 불러일으키지 못했고, 한때 닉쿤의 음주운전으로 최근 활동을 재개한 2PM은 도쿄돔 사진 조작 논란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한때 국민적인 반향까지 만들었던 원더걸스는 미국 활동을 접고 국내로 복귀했으며, 미쓰에이의 수지가 영화, 드라마, CF에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지만 음악적인 그룹 활동은 잘 보이지 않는다. 항간에 ‘JYP를 수지가 먹여 살린다’는 얘기가 나돌만한 상황이다.

 

하지만 그래도 JYP인데 그것도 대표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2PM의 의류앨범이 5천여 장을 찍었으나 겨우 140여 장이 팔렸다는 <뉴스데스크>의 보도 내용은 충격적이다. JYP의 이름을 믿고 투자한 영세 의류업체로서도 당혹스러운 일이었을 게다. 결국 계약서에 명시된 대로 판매수익만 계산해 460여만 원을 받은 해당업체는 재고 처리도 하지 못하고(2PM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가 아닌가) 1억여 원의 손해를 떠안게 되었다고 한다. <뉴스데스크>는 이뿐만이 아니라 JYP의 또 다른 캐릭터 상품을 만든 업체들(티셔츠, 캐릭터 칫솔)도 각각 1억여 원, 2천만 원이 넘는 손실을 입었다고 보도했다. 하청에 재하청을 받은 업체까지 줄줄이 경영난을 겪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일련의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여전히 JYP는 국내 기획사들 중에서 갑일 것이다. 수많은 을들이 달라붙어 사업을 꾀하려한다는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하지만 적어도 이번 논란을 통해 드러난 것은 생각만큼 갑으로서의 위력을 발휘하지는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일련의 무리한 투자가 가져온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2009년 JYP USA로 시작해 2011년 말에 JYP크리에이티브로 본격적인 도전에 나섰던 미국진출은 상당한 적자를 기록하며 결국 문을 닫았다. JYP크리에이티브는 2012년에만 17억 8천만 원의 적자를 냈고, JYP USA는 지난 3년간 무려 103억의 적자를 기록했다고 한다.

 

이것보다는 소소하지만 그래도 약 11억 원을 투자해 설립한 JYP푸드도 2012년 한 해 14억이 넘는 적자를 기록했고, 그 와중에도 영화 진출을 위해 설립한 JYP픽처스를 설립했지만 역시 지난해 7월 자신이 주연을 맡은 영화 <500만 불의 사나이>는 초라한 성적을 거두며 막을 내렸다. JYP가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은 겉으로 보기엔 여전히 3대 기획사라는 갑으로서의 위상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무리한 투자로 손실이 누적되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수익이야 언제든 새로운 기회를 통해 벌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JYP에 계속해서 불거져온 논란으로 기업 이미지와 신뢰도가 점점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비의 미국진출에서 생겨났던 수많은 잡음을 비롯해서, 박진영에게 계속 불거져 나온 표절 논란(결국 ‘썸데이’는 표절소송에서 박진영의 패소로 끝나버렸다), 무엇보다 미국진출이나 영화 진출 혹은 푸드 사업 진출 등의 거듭된 실패가 가져온 부정적인 기업 이미지는 상장사인 JYP엔터로서는 큰 타격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이번 <뉴스데스크> 보도를 통해 불거진 캐릭터 상품 사업 논란의 대상이 된 2PM은 JYP엔터테인먼트의 상장사인 JYP엔터가 아니라 비상장사인 JYP 소속이다. 따라서 이번 문제로 JYP엔터의 투자자들이 피해를 보는 것은 억울한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논란이 최근 남양유업 사태를 통해 생겨난 이른바 ‘갑을 정서’에서 불통이 튀었다는 점을 두고 볼 때 무관하다 할 수도 없다. 사실상 같은 JYP에 대한 정서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논란을 그저 일회적인 소소한 해프닝이라고 바라보기는 어렵다. 거기에는 그간 JYP가 겪은 일련의 논란과 추락의 과정들을 지켜봐온 대중 정서가 들어가 있다.

 

따라서 JYP는 이제 좀 더 행보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사업 확장이 문제가 아니라 내실을 다져야 할 때이며, 일련의 논란들이 야기한 JYP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일소할 수 있는 새로운 기업 이미지 창출이 절실한 상황이다. 국내 3대 기획사로서 JYP가 대중문화에 해온 일은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대중들과의 신뢰 구축과 함께 좀 더 민첩한 위기관리 능력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신사(神社)가 젠틀맨? <무도>가 알려준 우리 역사의 현실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어쩌다 우리는 역사를 예능으로 배우는 지경에까지 이른 것일까. <무한도전>이 ‘역사 특강’을 통해 준 감동은 역사적인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깊은 여운을 남겼다. 특히 수통 폭탄과 함께 자결을 위해 도시락 폭탄까지 준비한 윤봉길 의사의 이야기나, 열여덟 꽃다운 나이에 만세 시위를 주도하다 일본군에게 체포되어 옥사한 유관순 열사의 이야기 또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인 조 마리아 여사가 ‘당당하게 죽으라’며 보낸 편지는 듣는 이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빛바랜 사진으로 남아있는 유관순 열사의 퉁퉁 부은 얼굴이 일본 순사에게 양 뺨을 스무 차례 이상 맞아 그렇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나라를 되찾기 위해 자결하려는 이와, 또 죽음을 앞두고 있는 자식에게 ‘당당하게 죽음을 맞이하라’고 편지를 보낸 어머니의 마음이 오죽했을까. 그들이 있어 지금의 우리가 있는 셈이지만, 정작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너무 쉽게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사실 많은 예능 프로그램들이 퀴즈 형식을 내세워 역사에 무지한 현실을 드러내곤 했었다. <1박2일>이나 <남자의 자격> 같은 리얼 버라이어티는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들 프로그램에서는 역사 퀴즈가 예능의 아이템에 머물렀을 뿐이었다. 누군가의 무식함을 보며 한바탕 웃었을 뿐, 그 뒤에 남는 씁쓸함을 본격적으로 다루지는 않았다. 그것이 자칫 예능을 무겁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한도전> ‘역사 특강’은 그런 선입견과 한계를 훌쩍 넘어섰다. 본격적으로 역사를 다루면서도 웃음과 의미를 모두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역사 특강’ 전에 아이돌들을 대상으로 치러한 ‘헐 장학퀴즈’는 그 스튜디오 구성 자체가 <스타골든벨>을 가져온 것처럼 전형적인 예능식 퀴즈로 진행되었다. 말도 안 되는 답을 적는 것으로 무식을 드러내며 웃음을 주는 방식. 하지만 이 웃음은 우리가 너무나 역사를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심각해졌고 ‘역사 특강’이라는 새로운 도전으로 멤버들을 이끌었다. 멤버들이 스스로도 배우고 아이돌들에게도 역사를 알리고자 특강을 준비하는 과정은 <무한도전> 특유의 깨알 같은 웃음을 놓치지 않았지만 또한 진지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하지만 바로 <무한도전>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서조차 ‘우리 역사를 배우자’고 나서는 작금의 현실은 씁쓸한 뒷맛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지금 우리네 국사 교육은 고등학교 전 과정이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되어 있다. 국사 과목이 점수 받기 힘들다는 인식은 많은 청소년들이 이를 선택하지 않는 이유이다. 고등학교에서 국사를 선택하지 않으면 3년 내내 우리네 역사에 대한 지식은 잊혀져버리고 마는 셈이다. 역사왜곡과 독도분쟁 등 우경화되어가는 일본과 동북공정이 나오고 있는 중국 사이에서 역사의식마저 희미해진다면 우리네 미래는 얼마나 불투명할 것인가.

 

그래서 <무한도전>이 역사를 다루면서 웃음기를 지우고 자못 진지해지는 그 지점은 우리에게 시사 하는 바가 크다고 여겨진다. 젊은 세대들이 역사를 너무 모른다고 탓하기 전에 역사 교육을 사실상 포기한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아야 하지 않을까. 유재석이 담담히 읽어가는 조 마리아 여사의 편지에 눈물 글썽이는 아이돌들을 보라. 그들 역시 우리네 역사의 아픔에 가슴 아파 하지 않는가. 역사교육에 대한 경종을 다름 아닌 예능 프로그램이 하고 있다는 것은 깊이 반성해야 할 일이다. 이런 아이러니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출생의 비밀 없는 <출생의 비밀>, 그 진면목은

 

왜 제목을 굳이 <출생의 비밀>이라 했을까. 최근 막장드라마하면 바로 떠오르는 코드가 바로 ‘출생의 비밀’이다. 그런데 그것을 제목으로 세웠으니 <출생의 비밀>은 막장일까. 그렇지 않다. 이 드라마는 막장드라마들이 흔히 사용하는 전형적이고 상투적인 ‘출생의 비밀’ 코드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물론 ‘출생’의 문제가 다뤄지기는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비밀’이다. 정이현(성유리)에게서 어느 날 사라져버린 10년 간의 기억. 그 속에 담겨진 비밀을 찾아가는 드라마가 바로 <출생의 비밀>이다.

 

'출생의 비밀'(사진출처:SBS)

자고 일어났더니 10년 간의 기억이 사라졌다는 설정은 파격적이다. 무언가 엄청난 충격을 겪은 후, 정이현은 스스로 기억을 봉인해버렸던 것. 깨어나 보니 굴지의 예가그룹 총수 최석(이효정)이 작은 아버지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그녀에게는 잘 나가는 커리어우먼의 삶이 펼쳐진다. 하지만 그 잃어버린 기억 속에서 남편 홍경두(유준상)가 찾아오고 그는 딸 해듬(갈소원)을 그녀가 낳았다는 걸 인정하라고 종용한다.

 

즉 이 드라마는 기억으로 나눠진 두 개의 인생 사이에서 정이현이 갈등하는 이야기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이 두 인생이 완전히 상반된 가치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홍경두와 해듬이로 대변되는 잊혀진 기억 속의 삶은 가난해도 인간적인 행복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하는 세계다. 홍경두는 가난하지만 순박한 진심을 가진 남자. 거칠어도 인간 냄새가 풀풀 나는 인물이다.

 

반면 예가그룹 최석의 집안은 부유하지만 가족의 정이 전혀 없는 세계다. 정이현의 친구로 예가그룹의 장남 기태(한상진)와 결혼한 선영(이진)은 정이현에게 자신은 전혀 행복하지 않다고 말한다. 남편 기태는 그녀를 유령인간 취급하고 시어머니 조여사(유혜리)는 그녀를 사사건건 무시하며 시아버지 최석은 걸핏하면 폭언과 폭력을 일삼아 그녀를 극도의 불안 증세에 빠뜨린다. 즉 부유하지만 불행한 현재의 기억 속의 삶과 가난하지만 행복했던 잊혀진 기억 속의 삶 사이에서 정이현은 갈등하게 된다.

 

정이현이 모든 것을 보기만 하면 다 외워버리는 포토그래픽 메모리의 소유자라는 것은 그래서 아이러니다. 모든 걸 기억해내는 그녀지만 10년 간의 기억이 지워졌다는 것은 기억의 이중성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모든 걸 기억해내는 능력은 천부적인 재능처럼 여겨지지만 그 망각 없는 기억은 어떤 삶의 충격에 있어서는 잊혀지지 않는 천형이 되기도 한다는 것. 정이현이 10년 간의 기억을 스스로 지웠다는 건 그래서 그녀의 포토그래픽 메모리 능력의 반작용인 셈이다.

 

<출생의 비밀>은 그래서 인생의 행복은 결국 기억의 문제가 아닐까 하고 조심스레 질문하는 드라마다. 우리는 결국 기억이라는 가녀린 능력에 의지해 삶의 행복과 불행을 저울질 하고 있으니 말이다. 좋은 추억들이 모여서 행복한 삶이 기억되는 것이고, 충격적인 사건들이 모여 불행한 삶이 기억되는 것은 아닐까. 가슴이 터질 듯한 홍경두의 바보 같은 진심은 그래서 정이현이 누리고 있다 생각하는 행복의 허상들을 사정없이 부수고 있는 중이다.

 

<출생의 비밀>은 그래서 화려한 부의 허상 앞에 행복의 실체를 놓치고 살아가는 수많은 현대인들에게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지는 드라마다. 요즘 사람 같지 않은 경두의 진심을 보게 된다면 어쩌면 우리는 잊고 있던 행복을 다시 되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제목이 <출생의 비밀>이지만 이 드라마에 이른바 막장드라마에서 활용하는 ‘출생의 비밀’ 코드는 발견하기가 어렵다. 대신 거기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는 삶의 비밀이다. 정이현의 잃어버린 기억처럼 현대인들이 잊고 있던 그 ‘행복의 비밀’을 우리는 어쩌면 <출생의 비밀>에서 발견할 지도 모르겠다.

<구암허준>, 허준과 예진, 예수와 마리아처럼 보이는 이유

 

<구암허준>에서 허준(김주혁)과 예진(박진희)의 관계는 여타의 드라마들이 그리는 남녀 관계와는 사뭇 다르다. 허준은 이미 다희(박은빈)와 혼례를 치른 기혼자. 허준과 다희의 부부관계는 그 누구보다 애틋하다. 드라마는 사실상 허준이라는 명의를 만든 것이 다희의 내조였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토록 구박하는 오씨(김미숙) 밑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모은 돈을 내의원 시험 보러가는 허준에게 건네는 다희의 모습은 전형적인 조강지처 그대로다.

 

'구암허준'(사진출처:MBC)

그렇다면 이 사극에서 사실상의 여주인공인 예진이 있는데 왜 허준은 다희와 이미 혼례를 치른 인물로 설정되어 있는 걸까. 전형적인 드라마라면 남주인공과 여주인공의 멜로는 어찌 보면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구암허준>은 애초부터 남녀 간의 멜로를 포기했다. 예진이 허준을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것은 사랑이라기보다는 존경에 가깝다. ‘부디 심의가 되셔서 천형을 지고 사는 병자들의 고통을 벗겨주십시오.’ 과거를 보러가는 허준에게 보낸 예진의 편지에는 그 마음이 가득 담겨있다.

 

허준과 예진의 관계는 <구암허준>이 그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구암허준>은 서자로 태어난 것을 한탄하며 저잣거리에서 행패나 부리던 허준이 의술을 배워가면서 차츰 심의(心醫)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것은 인간의 길이 아니라 성인의 길이다. 대풍창(나병) 환자들을 돌보는 삼적대사(이재용)가 약재를 실험하기 위해 스스로 독한 약을 먹는 모습이나, 그의 밑에서 환자들을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허준, 예진은 그래서 인간이라기보다는 성자에 가깝게 그려진다. 허준과 예진은 마치 성경에서 나병환자를 구하는 예수와 마리아를 닮았다.

 

과거시험을 보러 가다가 가난 때문에 약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시름시름 앓는 병자들을 구하는 허준은 이미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의성(醫聖)의 모습을 보여준다. 유도지(남궁민)와 그 일행들이 과거시험 때문에 눈앞의 병자를 내치는 것과는 정반대의 길. 그 많은 병자들을 돌봐주고 떠나는 길에 마을주민들이 “이 은혜를 어떻게 갚냐”고 하자 허준은 오히려 이런 말을 한다. “병자들을 다 보지 못하고 떠나 죄송한 마음일 따름입니다.”

 

자신의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허준에게 거짓말을 해 자신의 집으로 데려간 돌쇠(이계인)의 에피소드 역시 의성 허준의 면모를 발견할 수 있는 대목이다. 과거시험을 보러 가겠다며 뿌리치던 허준은 결국 쓰러진 병자를 외면하지 못한다. 자신의 노잣돈을 털어 약을 사오게 하고 갑자기 쓰러진 병자를 살리기 위해 심지어 자신의 손가락을 깨물어 병자의 입에 넣어준다. 과거시험을 보러가는 길을 막은 돌쇠에게 화가 날 법도 하지만, 허준은 그 돌쇠의 절실함을 이해한다.

 

<구암허준>은 그저 의술의 길을 통해 어의에까지 오르는 허준의 그 출세와 성장담을 그리는 드라마가 아니다. 그것은 대신 인간의 길과는 전혀 다른 성인의 길을 택한 한 의원의 이야기다. <구암허준>이 우리에게 진한 감동을 선사하는 것은 작금의 출세와 성공에 목매는 세태와는 정반대의 길을 걸어간 한 성자의 모습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구암허준>이 때로는 종교적인 느낌마저 들게 해주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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