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니', 당신의 추억만큼 재밌는 건 없다

'써니'(사진출처:토일렛픽쳐스(주))

익숙한 80년대 풍경. 매캐한 최루탄 냄새와 일렬로 도열해 있는 전경들. 그리고 그들과 대치해 있는 학생들. 일촉즉발의 상황. 그리고 급기야 뒤엉켜버리는 전경들과 학생들, 시민들. 그런데 엉뚱하게도 이 순간 배경음악으로 흐르는 Joy의 'Touch by touch'. 80년대를 살았던 사람치고 이 잿빛 기억의 시대를 순식간에 발랄한 추억으로 만들어놓은 이 장면에서 빵 터지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써니'가 위치한 유쾌한 지점은 바로 이 장면 속에 압축되어 있다.

어떻게 보면 유쾌하고, 어떻게 보면 도발적인 '써니'의 이 기묘한 조합은 어떻게 가능한 걸까. 광주 민주화 운동을 초반에 겪은 80년대는 시대적으로만 보면 암울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심지어 어떤 이들에게는 돌아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참담하기까지 한. 그러나 이것은 사진처럼 찍혀진 현실이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리의 기억을 통과해 덧붙여지고 각색된 추억의 그림이 아니다. 기억이란 우리가 겪었던 그 힘겨운 삶과 고통스런 시간들마저 달콤한 추억으로 바꾸어놓는 기묘한 생물이 아닌가. 피가 튀고 심지어 사람이 죽어나가는 살벌한 데모의 현장마저 Joy의 'Touch by touch'가 흐르는 고고장의 한 풍경처럼 발랄해질 수 있는 건 그 때문이다. '써니'가 관객들을 흐뭇하게 만드는 것은 다소 왜곡되어 있지만 그것이 허용되는 추억의 시간대를 포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현재 중년이 된 나미(유호정)가 여고시절 써니파 7공주의 리더였던 춘화(진희경)를 병원에서 만나면서 시작한다. 말기암인 춘화는 죽기 전에 써니파 7공주들이 보고 싶다 말하고 나미는 그녀들을 찾아 추억의 여행을 떠난다. 특별할 것 없는 뻔하디 뻔한 '영화는 사랑을 싣고'류의 스토리인 셈이다. 하지만 '써니'는 어떤 새로운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당대를 살아왔다면 겪었을 만한 공감대 가는 이야기들을 줄줄이 풀어놓는다. "설마 불치병은 아니겠지?"하는 물음에 "얼마 못산대."하는 드라마의 클리쉐 앞에 병실이 온통 뒤집어지는 풍경은 위안 없던 시절 드라마에 푹 빠져 살던 서민들의 씁쓸하지만 우스꽝스런 삶을 공감가게 포착하고, 패싸움에서 기가 눌리자 뒤돌아서며 괜스레 "젊음의 행진 보러 안가냐?"하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당대의 코드들이 우리의 추억을 자극한다.

특히 80년대라면 꼭 있었을 법한 캐릭터들은 이 영화의 최대 강점이다. 늘 고등학교라면 존재하던 18대1의 신화로서 진덕여고 의리짱 춘화(강소라)가 있고, 외모에 집착하는 쌍꺼풀에 목숨 건 못난이 장미(김민영), 욕으로 싸우는 욕쟁이 진희(박진주), 문학소녀 금옥(남보라), 미스코리아를 꿈꾸는 복희(김보미) 그리고 누구나 꿈꾸었을 하이틴 잡지 표지모델 수지(민효린)가 있다. 영화는 이 어디선가 누구나 한번쯤 봤음직한 캐릭터들에, 당대의 코드들인 나이키, 교복자율화, '젊음의 행진'이나 '영11' 같은 TV 프로그램, 당대 최고의 인기를 끌었던 소피 마르소 등등 추억의 그림들을 덧붙여 영화를 풍성하게 만든다. 이처럼 굳이 새로운 이야기를 하지 않는 이유는 이 코드들만으로 관객들이 저마다 자신의 추억을 끄집어내게 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써니'는 타자의 이야기에서 이제 관객들 자신의 이야기로 전화된다. 물론 추억이라는 필터를 낀 청춘의 달콤 상큼한 이야기로.

무엇보다 '써니'에 깔리는 음악은 이 영화가 전해주는 추억 불러내기 효과의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Joy의 'Touch by touch'는 물론이고, 나미의 '빙글빙글'이나 이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보니엠의 ‘Sunny'에 맞춰 춤을 추는 장면, 또 소피 마르소가 주연했던 영화 '라붐'의 주제가로 리차드 샌더슨의 'Reality'가 이 영화를 오마주해 흘러나오는 장면은 '써니'라는 추억 열차를 타는 마법의 열쇠 역할을 한다. 음악만큼 즉각적으로 추억과 접점을 만들어주는 장르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음악은 또 얼마나 이성을 무장해제시키며 사람을 감성적으로 만드는가.

입소문을 타고 점점 흥행을 향해 달려가는 '써니'의 성공은 추억이 어떻게 대중들을 열광시키는 콘텐츠로 자리해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굳이 어떤 특정한 스토리를 만들어내기 보다는 그저 공감할 수 있는 소재와 아이디어를 던져주는 것만으로 추억은 대중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추억을 다루는 콘텐츠는 물론 과거라는 부품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모든 게 만들어져 나오는 완제품이 아니라, 저마다 자기 것으로 재조립되는 조립품의 특징을 갖는다. 저마다의 기억을 환기시켜 추억으로 조립되는 콘텐츠일수록 저변은 더 넓어지기 때문이다.

'써니'는 이 저변을 넓히기 위해 심지어 '7공주'가 가질 수 있는 여성들만의 공감대라는 틀마저 깨버린다. 여성의 시선이 아니라 남녀를 떠난 인간이라는 보편적 시선을 담아놓은 것. 그래서 '써니'는 출연하는 인물들이 대부분 여성이지만 남성들도 공감할 수 있는 영화가 된다. 그 누구의 것이든, 또 아무리 힘겹다고 하더라도, 추억 속에서 찬란하지 않은 청춘이 있으랴. 눈물이 나면서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게 되는 것은 그 추억이 갖는 힘겨움과 찬란함이 공존하기 때문일 것이다. '써니'는 그 햇빛 가득한 나날의 한 자락을 환기시키는 유쾌한 영화다.


국보급 개그 '달인', 개그의 차원을 넘다

'개그콘서트'의 달인(사진출처:KBS)

"그만 하려다가도 끝나고 나면 벌써부터 다음 회를 준비하게 된다." '밤이면 밤마다'에 나온 '달인들'의 진술이다.

KBS '개그콘서트'의 대표 코너인 '달인'의 김병만, 류담, 노우진이 SBS 토크쇼에 등장한 것은 이례적이다. 물론 심증은 있다. 이제 곧 SBS에서 시작할 '김연아의 키스 앤 크라이'에 김병만이 투입되었기 때문이다. 전문 스케이터와 스타들이 짝을 이뤄 피겨스케이팅을 배우는 이 프로그램에서 김병만에 대한 기대는 크다. '달인'을 통해 이미 보여주었듯이 그의 기예에 가까운 미션적응능력은 피겨스케이팅이라는 새로운 분야에서 빛을 발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또 예능 프로그램으로서 기예와 웃음을 동시에 엮는 지점에서도 김병만에 대한 기대감은 높을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개그콘서트'에만 집중하던 김병만이 새 프로그램에 도전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무려 3년 5개월 동안(약 260여회)이나 '달인'을 해왔기 때문이다. 김병만으로서는 '달인'으로 굳어지는 것이 부담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달인'에 대한 애착이 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다만 오래 지속되면 자칫 정체될 수 있기 때문에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일 뿐이다.

'개그콘서트'의 서수민 PD는 김병만의 새 도전을 격려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상에 대한 우려를 감추지 못했다. 피겨스케이팅 기술 자체가 고난도인데다가 부상 위험이 있고, 그 부상은 또한 '달인'에도 그대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수민 PD의 '달인'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다. '달인'이 언젠가 '개그콘서트'의 코너에서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그 '달인 캐릭터'마저 사라지면 안 된다고 말한다. 이것은 '달인 캐릭터'만큼 강렬한 새로운 캐릭터를 현실적으로 만들어내기 어려운 김병만에게도 중요한 얘기다.

하지만 '달인 캐릭터'를 보존(?)해야 하는 이유는 단지 김병만과 류담, 노우진 당사자들 때문만은 아니다. '달인'이 가진 가치가 국보급(?)이기 때문이다. '달인'만큼 우리네 고전 연희의 전통을 잇고 있는 개그 코너를 찾을 수 있을까. 대표적으로 남사당패 줄타기로 대변되는 우리네 연희의 독특함은 기예와 해학이 잘 어우러져 있다는 점이다. 줄 위에서 "잘 하면 살판, 잘 못하면 죽을 판"이라고 사설을 늘어놓으며 때론 넘어질 듯 아슬아슬함 속에서 빵 터지는 웃음을 만들어내는 그 독특함은, 아찔한 기예를 천연덕스럽게 해 보이며 그 속에서 웃음을 주는 '달인'을 그대로 떠올리게 한다.

사실 이런 기예와 해학이 어우러진 우리 식의 연희는 유랑극단이나 서커스의 광대놀음으로 이어졌지만 안타깝게도 그 명맥은 거의 사라진 상황이다. TV와 영화가 대중화되면서 이러한 연희 중심의 볼거리에서 대중들이 눈을 돌렸기 때문이다. 기예를 웃음과 연결시키는 웃음코드는 물론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에서 아슬아슬한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장면에서도 등장하는 것처럼 우리 것만이 아닌 보편적인 소재다. 하지만 '달인'의 기예와 웃음은 저 찰리 채플린보다 좀 더 우리네 토속적 정서와 연결되어 있다. 좀 과장해서 말하면 줄타기 위에서 웃음을 주는 광대들처럼, 죽음 자체를 웃음으로 전화시키는 그 강렬한 긴장 속의 이완이 '달인'에서는 엿보인다. 그런 점에서 '국보급 개그'라는 상찬은 단지 수사가 아니다.

흥미로운 건 이 '국보급 개그'가 단지 국내용이 아니라는 거다. 이미 알려진 것처럼 일본에서의 '달인' 퍼포먼스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은 뜨거웠다고 한다. 게다가 '달인' 퍼포먼스에서 또 한 가지 연상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이미 '난타'나 '점프' 같은 우리네 논버벌 퍼포먼스에 대한 해외에서도 열광이다. '달인'은 여러 모로 그 코드가 논버벌 퍼포먼스를 닮았다. 말이 주가 되는 게 아니라 몸으로 전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해외에도 먹힐 가능성이 높다.

또한 '달인'은 말 그대로 실제 보여주는 리얼 개그다. 바로 이 리얼리티적 요소는 '달인'이 현 세계적인 트렌드에도 그만큼 잘 맞아떨어진다는 걸 말해준다. 이것만이 아니다. '달인'은 콘텐츠적으로도 현 매체 상황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유튜브 같은 채널을 통한다면 '달인' 같은 짧게 짧게 끊어지면서 연결성을 갖는 콘텐츠는, 마치 K-pop이 짧은 동영상의 강점으로 전 세계로 퍼져나간 것처럼 굉장한 파급력을 보여줄 가능성이 높다.

'달인'을 통해 우리네 문화를 전 세계에 자연스럽게 소개할 수도 있을 것이며 어쩌면 전 세계에 숨겨진 달인들을 찾아가는 글로벌한 도전을 통해 문화적인 교류의 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우리네 숨은 달인들, 예를 들면 남사당패 같은 경우 '달인' 같은 현재적 관점이 들어가면 훨씬 더 글로벌한 경쟁력을 가질 수도 있다. 무엇보다 우리네 문화를 지켜가고 있는 재야에 숨겨진 달인들을 발굴한다는 것만으로도 큰 가치가 되지 않을까.

물론 이 모든 건 '달인'을 지금처럼 소소한 개그 코너로 인식해서는 이뤄질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좀더 '달인'을 글로벌한 트렌드로 인식하고 다양한 문화 상품으로 개발해낼 때 가능해지는 일이다. '달인'을 낳은 KBS는 좀 더 제 자식의 뛰어난 가치를 보고 투자하는 마인드를 갖춰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이 국보급 개그 '달인'이 가진 수많은 가능성들을 놓치지 않는 길이며 공영방송인 KBS의 명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인기투표로 흐르면서 사라진 각본 없는 드라마

'위대한 탄생'

'위대한 탄생'의 톱3가 결정됐다. 김태원 3인방 중 미라클맨 손진영이 탈락했고, 이태권, 백청강, 쉐인이 살아남았다. 많은 이들은 이 결과에 대해 그다지 놀라거나 화제에 올리지 않는다. 당연하고 어느 정도는 예상했다는 눈치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톱3가 결정된 것 치고는 그 반응이 너무 미지근하다. 작년 '슈퍼스타K2'에서 톱3로 장재인과 존박, 허각이 남았을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본래 오디션 프로그램은 그 특성상 뒤로 갈수록 긴장감도 높아지고 화제도 커지기 마련이다. 시청률도 당연히 상승곡선을 그린다. 그런데 '위대한 탄생'은 어딘지 생기를 잃은 모습이다. 누가 합격하고 누가 탈락할 것인가에 대한 기대감과 긴장감이 떨어진 상태다. 그러니 시청률도 오를 수가 없다. '위대한 탄생'의 시청률은 지난주 21.3%(agb닐슨)에서 오히려 1% 정도 하락했다. 도대체 왜 이런 상황에 이른 것일까.

가장 큰 것은 결과가 이미 예상된다는 데 있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긴장감을 갖게 되는 것은 아무리 기량을 갖고 있어도 당일 무대에서 실수를 하거나 제 실력을 못 보여주게 되면 떨어질 수 있는 '각본 없는 드라마'가 연출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대한 탄생'은 당일의 무대는 그다지 당락과는 상관없는 오디션이 되어가고 있다. 이미 많은 이들이 지적했듯이 '위대한 탄생'은 당일의 오디션에 대한 투표라기보다는 인기투표로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인기투표 역시 대중들의 선택이기 때문에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어느 정도여야 한다. 어떻게 하더라도 그 날의 무대와는 상관없이 팬들의 인기투표로 결정된다면 오디션은 하나마나한 것이 되어버린다. '위대한 탄생'이 맥 빠지는 오디션이 된 이유는 바로 이 하나마나한 오디션이 되면서 무대의 긴장감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무대에 서는 경쟁자들 역시 점점 도전적인 무대보다는 안정적인 무대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렇게 되면 오디션은 더 무기력해진다.

인기투표로 당락이 결정되는 이 시스템의 더 큰 문제는 심사위원의 권위가 사라지게 된다는 점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긴장감은 당락에만 있는 게 아니라, 심사위원의 냉정한 심사에도 있다. 심사위원에게 어떤 평가를 받을 것인가에 대해 경쟁자들이 긴장하는 모습을 보여야 오디션 프로그램은 재미를 갖게 된다. 즉 혹평을 받았을 때 거의 울 듯한 얼굴을 보여주고, 또 호평을 받았을 때 그 평이 세간에 화제가 되는 것은 사실상 심사위원의 권위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위대한 탄생'에서는 이은미와 방시혁이 백청강의 무대에 제 아무리 혹평을 하고 낮은 점수를 줘도 긴장감은 생겨나지 않는다. 이유는? 심사위원이 아무리 그렇게 해도 결국 인기투표에 의해 당락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심사위원의 심사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도 못하고 의미도 별로 없다. 왜 심사위원이 필요한가, 하는 볼멘 네티즌들의 이야기는 그만큼 설득력이 있는 셈이다. 오히려 심사를 하지 않고 매번 '감동'과 '아름다움'을 상찬하는 김태원이 당락에 더 영향을 미치는 것 역시 이런 심사위원이 불필요해진 '위대한 탄생'이라는 이상한 오디션 시스템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제 톱3가 결정되었지만 벌써부터 많은 사람들은 저마다 다음 회에는 누가 떨어질 것이고 최종 우승자는 누가 될 것이라는 것을 이미 얘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지금까지 이런 예측은 대체로 맞아떨어져가고 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 양상이 벌어진다면 '위대한 탄생'이라는 오디션은 각본 없는 드라마를 기대했던 시청자들에게 정해진 대로 굴러가는 반전 없는 드라마로 실망감을 안겨줄 수밖에 없다. 과연 '위대한 탄생'은 어떤 길을 가게 될까.


'나가수', 음악 듣는 귀를 살려낸 비결

'나는 가수다'(사진출처:MBC)

2006년 한 가수가 '윤도현의 러브레터'에 올랐다. 그녀는 노래를 하기 전에 이렇게 말했다. "꿈은 이루어진다. 노력하는 자한테만. 여러분, 꿈을 꾸십시오. 꿈을 이루십시오. 그리고 꿈을 지키십시오. 그리고 꿈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시작된 '거위의 꿈'. 바로 인순이가 재발견되는 순간이었다. 그녀는 음악 자체에 푹 빠진 채 노래를 열창했다. 그러다 "이 무거운 세상도-"에서 자기도 모르게 그만 짧은 순간 음을 놓쳤다. 감정이 북받쳐 올라서였을 것이다. 그 노래를 하는 그 때 그녀는 이 짧은 노래 속에서 수십 년 간 '자신을 묶어두었던 무거운 세상'을 느끼는 듯 했다. 차마 눈물을 보이지 못해 담담히 인사하고 불빛이 쏟아지는 무대 밖으로 나갈 때 언뜻 눈물을 훔치는 그녀의 모습이 실루엣으로 잡혔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게시판에 호평이 쏟아지고 그녀의 동영상은 인터넷에서 여기저기로 퍼 날라졌다. 인순이는 과거에도 그렇고 그 때도 그랬으며 지금도 그런 놀라운 가창력의 가수다. 하지만 그 무대 이전까지 인순이는 평가절하 되어 있었고, 그 무대에 선 이후부터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 시작했으며 그 후 자신감을 얻은 그녀는 아이돌이나 힙합 가수들과 함께 무대에 서도 반짝반짝 빛나는 가수가 되었다. 도대체 뭐가 달라진 걸까.

많은 사람들이 음악은 작곡가나 작사가 혹은 가수 그리고 프로듀서에 의해 성패가 갈린다고 생각한다. 즉 그들에 의해 음악은 완성되고 그것을 우리는 선택해 듣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모든 예술이 다 그러하듯이 음악 역시 그 완성은 대중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만들어지는 소리와 음과 비트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그걸 듣는 귀다. 인순이의 노래가 달리 들린 것은 노래 자체가 달라졌기 때문이 아니다. 그걸 듣는 대중들의 귀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대중들은 인순이의 이야기를 들었고, 그래서 더 집중해서 그녀의 노래를 듣게 되었다. 그러자 늘 배경음악처럼 훅 지나가버리던 음악은 대중들의 귀에 꽂히기 시작했던 것이다.

라이브 무대에서 들으면 깊은 감동이 몰려오다가도 음악 프로그램을 통해 듣게 되면 그 감동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물론 그 라이브가 주는 직접적인 음향의 차이 때문이기도 하지만, TV라는 공짜 미디어가 갖는 산만한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일단 돈 내고 음악을 들으러 극장에 가는 사람은 이미 그 귀가 준비되어 있지만, 그저 틀어놓으면 흘러나오는 TV 음악 프로그램에 귀는 좀체 준비하려 들지 않는 경향이 있다.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의 성공을 얘기하면서 우리는 흔히 중견 가수들의 놀라운 가창력을 말한다. 맞는 얘기다. 이 오디션 형식의 무대는 중견 가수들조차 잔뜩 긴장하게 만들어 그 집중력을 높여놓기 때문이다. 곡에 대한 해석이 과감해지고, 짧은 시간 동안 혼신을 다해 부르는 그 무대에서 가수들의 가창력은 더 도드라져 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가창력만큼 중요한 것은 이들의 노래를 집중해서 듣게 만드는 프로그램의 힘이다. 본 경연이 시작되기 전, 서로의 심경이나 그간의 이야기를 인터뷰하고, 당일에 차에서 내려 자신의 대기실에 대기하면서 갖는 긴장감을 포착하면서 서서히 집중력을 높여놓는 이 프로그램의 전반부는 그래서 경연 무대 그 자체만큼 중요하다. 또 경연 중간 중간에 삽입되는 가수들의 반응과 관객의 반응 역시 마찬가지다. 이 모든 것들이 느슨해지고 흐트러질 수 있는 TV라는 매체의 긴장감을 끌어올려 끊임없이 대중들로 하여금 음악을 들을 준비를 하게 만들어준다.

사실 중견가수들의 무대는 늘 있어왔다. 즉 '콘서트 7080'이나, '열린 음악회', '유희열의 스케치북' 같은 프로그램은 늘 중견가수에 열려 있었다. 하지만 그 무대가 '나는 가수다'만큼 파괴력을 보이지 못한 것은 가수도 있고 노래도 있었지만 대중들의 귀를 준비시키는 프로그램의 장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듣는 음악을 지향하던 프로그램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라라라'나 '스페이스 공감' 같은 프로그램이 그랬다. 하지만 이들 프로그램은 자정에 편성됨으로써 대중들의 주목에서 멀어진 것이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나는 가수다'가 성공한 비결은 바로 이 프로그램 형식을 통해서나, 편성시간대를 통해서나 대중들의 TV를 통해 음악을 듣는 귀를 되살려놓은 것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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