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2일'에 새로운 시점을 던져준 엄태웅

'1박2일'(사진출처:KBS)

흔히들 '1박2일'의 엄태웅을 말하길, '보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지는 존재'라고 한다. 이것은 능력의 문제라기보다는 매력의 문제다. 즉 어떤 기술적인 면을 갖고 있기 때문에 엄태웅이 대중들에게 호감을 주는 것이 아니고, 타고난 성정과 행동이 대중들에게 어필한다는 얘기다. 투입된 지 몇 주가 지난 것뿐이지만 이미 이 '기분 좋은 캐릭터'로 자리하고 있는 엄태웅. 도대체 어떤 점이 엄태웅을 이렇게 만드는 걸까.

엄태웅은 이미 잘 알려진 것처럼 그다지 예능감을 갖고 있지는 않다. 심지어 '1박2일'에 첫 출연하고 처음으로 낙오 미션을 했을 때, 엄태웅은 우연히 만난 대학생에게 열심히 조언을 듣는 장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고, 못하는 것은 못한다고 하는 이 순박한 연예인보다 더 전문가(?)인 대학생은 어쩌면 '1박2일'의 팬들이 엄태웅을 보는 시선을 그대로 보여준 셈이다. 그러니 그렇게 진지하게 조언을 들어주는 엄태웅은 일단 대중들에게 전폭적인 호감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첫 여행에서 강호동이 엄태웅을 "특별한 재능은 없어 보이지만 다행스러운 건 승부욕이 있다"고 말한 것처럼 그 후의 울릉도와 남해에서 보여준 그의 미션에 대한 열성은 '1박2일'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선하고 순박한 웃음을 만면에 짓는 것만으로도 확실한 존재감을 남기는 '순둥이' 캐릭터가 우선 부각되었지만, 사실 숨겨진 엄태웅만의 장점은 바로 이 바로 이 미션에 빠져드는 모습에서 발견된다. 이것은 그에게 특히 돋보이는 '몰입의 능력'이다.

이 능력이 도드라진 건 무섭당과 바보당으로 나뉘어 게임을 맞춰가며 칠갑산 천문대를 찾아가는 미션에서다. 이 미션에서 엄태웅이 보여준 진지함과 즐기는 모습은 무섭당에 함께 한 은지원 대장(?)과 이승기와 잘 어우러졌다. 즉 그는 내내 '1박2일'의 미션들이 주는 새로운 경험들이 '즐겁고 재미있어 죽겠다'는 얼굴이었다. 그래서일까. 미션을 얘기하면서, "만약에 우리가 이겨서 퇴근 두 명을 해야 돼. 진짜 갈거야?" 하는 은지원의 질문에 "가면 심심할 텐데... 가야지 뭐."하는 엄태웅의 말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1박2일'은 몇 년 간 같은 멤버들의 미션들이 반복되면서 미션에 대한 체감이 상당히 둔감해진 게 사실이다. 처음에 연예인들의 야외 취침은 실로 파격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야외취침이나 밥을 굶기는 복불복은 하나의 게임처럼 여겨지는 면이 있다. 그래서 강도는 점점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계곡만 보면 입수하고, 겨울 바다에 뛰어들며, 게임 하나에 스텝 전원의 입수를 걸기도 한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 수위를 계속 높일 수도 없는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제 첫 경험을 하는 엄태웅의 이러한 몰입은 시청자들에게 그대로 전이되는 효과를 가져온다. 즉 이미 야생에서 다져진 백전노장들 사이에 들어가 함께 미션을 하는 엄태웅이라는 존재는 시청자들에게 새로운 시점을 만들어준다. 그것은 모든 게 신기하고 재밌고 짜릿한 엄태웅의 시선이다. '저런 멤버들과 함께 여행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즐거움의 판타지를 엄태웅이라는 새로운 감정이입 대상으로 갖게 되는 셈이다.

엄태웅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이유는 그저 그가 선하고 호감가는 캐릭터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거기에는 이제 '1박2일' 멤버들을 통한 몇 년 간의 대리충족으로 똑같이 베테랑이 되어있는 팬들이 조언하고픈 엄태웅이란 막내가 있기 때문이고, 어느 정도 강한 미션에 둔감해진 팬들에게 다시 첫 경험을 상기시키는 엄태웅이란 감정이입 대상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가 '1박2일'을 그저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니라 진짜 몰입해서 즐기고 있는 그 자세의 진정성에서 나온다.


'천국보다 낯선'

낯선 곳에 가는 걸 원체 좋아하질 않는다. 그런 내가 20대 중반에 혼자 12시간 비행을 해서 말도 잘 통하지 않는(그 때는 영어가 젬병이었다) 멜버른의 그것도 한참 외곽에 있는 대학교 기숙사를 찾아갔다는 건, 지금 생각해도 놀라운 모험이었다. 홍콩에서 비행기를 갈아타면서 포비아(Phobia)를 경험했다. 탑승시간은 30분밖에 안 남았는데 이국의 공항에서 길 잃은 청년이 겪었을 공포감을 생각해보라. 가까스로 비행기를 타고 멜버른에 도착해서 택시 타고 물어물어 기숙사에 도착했는데, 마침 토요일이었다. 주말이면 주변의 모든 상점이 문을 닫는 바람에 거의 이틀을 굶다시피 살아야 했다. 문밖을 나서면 외계인이 달려들기나 하는 것처럼, 기숙사 방에 콕 박혀서. 그 때 기숙사 벽 한쪽에는 내가 가져간 '천국보다 낯선'이라는 영화의 포스터가 걸려 있었다.

짐 자무쉬의 '천국보다 낯선'이란 영화는 영화보다 포스터를 먼저 알게 되었다. 영어로 'Stranger Than Paradise'라고 크게 적힌 포스터 속에는 두 남자가 차 밖에 서 있고 차 안에는 여자가 앉아 있었는데, 모두 선글라스를 낀 그 모습에 유난히 풍성한 뭉게구름이 피어난 하늘은 정말 이국적이었다. 영화는 못 봤어도 그 포스터는 내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어딘가 떠날 때 갖게 되는 막연한 설렘 같은 것들이 거기에서는 느껴졌다. 말 그대로 막연한.

멜버른 다운타운에서 빌려와 본 '천국보다 낯선'은 그러나 전혀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헝가리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찾아온 에바가 뉴욕에 사는 건달 친척 윌리와 그 친구인 에디와 함께 클리브랜드를 여행하면서 철도길에서 하는 대사는 정말 인상적이었다. "엄청 멀리 온 것 같은데, 여기도 똑같네." 그러니까 포스터에 있는 그들은 그렇게 멀리까지 천국처럼 낯설 것이라 여겨진 미국을 찾아왔지만, 여전히 다를 바 없는 스산한 거리에 서 있는 자신들을 발견한 것이었다. 영화를 보고 포스터를 보고 나니 그간 멜버른 생활에 적응해온 나 자신이 다시 보였다.

사실 피부색만 조금 달라도 마치 잡아먹을 것처럼 여기며 눈을 피하던 나는 어느새 동네 펍(Pub)에 앉아 주민들과 맥주를 마시며 안 되는 영어로 더듬더듬 농담을 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이 때 음주영어를 한 탓에 술을 마셔야 영어가 되는 부작용이 생겼다). 이질적인 것에 대한 거부반응? 낯선 것을 워낙 싫어하는 나만큼 별의 별 포비아를 가진 사람도 드물다. 낯선 사람을 만나는 것조차 힘겨워 평생 친구도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사귀는 나로서는, 신종 인플루엔자니 방사능이니 하는 각종 살벌한 이질적인 것들의 틈입을 잘 견디지 못한다. 그래도 그나마 이정도 버티고 사는 건 아마도 그 때 멜버른에서 겪었던 '천국보다 낯선' 경험 덕분일 게다. 세상에 어디 낯선 곳(것)이 따로 정해져 있을까. 이 곳에 있으면 저 곳이 저 곳에 있으면 이 곳이 낯설 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1년 후 밟은 한국땅에서 그 낯설음에 일순 포비아를 느꼈다. 맙소사! 인간의 간사함이라니.
(이 글은 사보 모터스라인에 게재된 글입니다)


김태원의 기적, 대중은 반전드라마를 원한다

'위대한 탄생'(사진출처:MBC)

김태원의 멘티들, 백청강, 이태권, 손진영이 또 Top4에 살아남았다. 김태원 스스로 말했듯이, 많은 이들이 기적을 말한다. 그 누구도 이들이 여기까지 살아남을 것이라고 쉽게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손진영은 그야말로 미라클맨이 되었다. 그는 예심에서도 거의 떨어질 뻔한 상황을 겪었다. 그 때마다 김태원은 변함없이 그를 지지해주었고, 그는 말 그대로 기적을 만들었다.

이태권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뛰어난 가창력을 가졌지만 가수로서 거의 무표정에 가까운 표정과 노래 표현력은 두드러지는 약점이었다. 또 백청강은 특유의 비음이 계속 단점으로 지적되었고 외모에 있어서도 다른 경쟁자와 비교해 세련된 인상을 주지 못했다. 하지만 김태원은 이들을 멘티로 뽑으면서 이른바 '외인구단'의 이미지를 부여했다. 그러자 이 약점은 순식간에 장점을 바뀌었다. 이태권의 무표정은 그가 살짝 미소 지었을 때, 그조차 매력적인 것으로 바뀌어버렸고, 백청강의 세련되지 못한 이미지는 순수청년으로 바뀌었다.

이것은 아무도 기대하지 못했던 것이지만, 우연히 벌어진 일은 아니다. 즉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는 전형적인 틀 속에서 기대하기 어려운 결과가 벌어지긴 했지만 그것이 그저 아무런 노력이나 이유 없이 생겨난 기적이 아니라는 얘기다. 김태원이 '위대한 탄생'을 통해 만들어내려한 '아름다운 이야기'는 다름 아닌 그의 이미지이기도 한 부활의 스토리다. 아무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일어나는 기적 같은 이야기.

어쩌면 김태원의 이런 스타일이 '위대한 탄생'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이 요구하는 것일 지도 모른다. 즉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대중들이 보고 싶은 것은 뻔하게 '될 사람이 되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대중들은 거기서 반전의 주인공을 원한다. 그래서 일찌감치 프로 가수 같았던 노지훈은 탈락한 것이고, 실력은 갖추었지만 어떤 매력적인 반전스토리를 만들어내지 못한 김혜리는 탈락한 것이며, 자꾸만 기성가수를 따라하려 한 데이비드 오가 떨어진 것이다.

물론 방시혁이나 이은미는 충실하게 자신의 스타일대로 심사위원과 멘토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김태원이 이끄는 이 기적의 반전 스토리로 '위대한 탄생'을 다시 그려보면 그들은 결과적으로 이 스토리에 악역을 맡은 격이 되어버렸다. 그들의 심사위원으로서의 가창력 지적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기적의 스토리의 주인공들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김태원의 반전 스토리에 들어가면 그저 반감을 갖게 되는 '지적질'이 되어 버린다.

결국 김태원의 기적의 스토리라는 빛에는 방시혁과 이은미가 받는 비난이라는 어둠이 존재하는 셈이다. 물론 이것은 이 모든 것을 스토리텔링으로 읽은 김태원의 능력이며, 오디션 프로그램을 실제 오디션과 착각한 방시혁과 이은미의 실패다. 방시혁은 실제 오디션처럼 가요계에 바로 투여될 수 있는 가수(여러 번 '음악중심'이라고 지적된 것처럼)를 뽑으려 했고, 이은미는 진정 가창력 있는 가수를 만들어내기 위해 지적에 지적을 아끼지 않았다. 어찌 보면 김태원의 승승장구는 이들과의 비교지점에서 발생한다고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최후의 12인에 들어간 생존자들에게서 실력의 차이는 그다지 눈에 두드러지는 요소가 아니다. 다만 그들이 어떤 무대를 선보이느냐가 당락에 중요한 차이를 만들어낸다. 그러니 무대에 계속 설 수 있는 기대감을 부여하는 것만큼 중요한 건 없다.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는 것처럼 김태원은 분명 기적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 기적은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반전의 주인공에 대한 대중들의 갈증과, 결과가 아닌 과정의 기적을 만들어나가는 김태원 스타일, 그리고 여기에 적절한 악역을 하게 되어버린 타 심사위원들의 역할이 잘 맞아떨어진 결과다.

'내거해', 이 로맨틱 코미디가 남다른 이유

'내게 거짓말을 해봐'(사진출처:SBS)

첫 시작은 마치 '시크릿 가든' 같다. 백화점을 둘러보며 직원들을 긴장시키는 김주원(현빈)처럼, 현기준(강지환)은 호텔을 들어서며 꼼꼼하게 상태를 체크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길라임(하지원)이 스턴트우먼으로 등장해 시선을 잡아끄는 것처럼, 공아정(윤은혜)은 야외에서 개최된 관광장관회의가 벌떼의 공격으로 아수라장이 되는 장면에서 등장한다. 그리고 우연한 일로 두 사람은 서로 얽히게 되고 사랑하게 된다...

이것은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의 틀이다. 남자와 여자가 어찌 어찌 하다 만나게 돼서 알콩달콩 싸우고 화해하다가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 수많은 로맨틱 코미디들이 여러 겉옷을 입고 등장하지만 그 알맹이는 이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 틀은 이미 장르적 관습처럼 드라마가 주는 견고한 재미의 형식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든 로맨틱 코미디가 다 같은 건 아니다. 그 차이는 캐릭터에서 생긴다. 어떤 성격과 환경, 혹은 상황을 가진 남녀가 만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로맨틱 코미디의 결이 생긴다. '시크릿 가든'은 판타지적 요소를 덧붙였지만 캐릭터만 놓고 보면 결국 계층이 다른 두 남녀의 그 계층을 넘어서는 사랑이야기다. 즉 신데렐라 스토리가 그 밑바탕인 셈이다.

캐릭터를 중심으로 보면, 새롭게 시작한 '내게 거짓말을 해봐'의 캐릭터는 좀 남다른 편이다. 현기준은 물론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의 남성상, 즉 잘 생기고 매너도 좋고 능력도 있는 그런 남자지만, 그의 앞에 서게 되는 공아정이란 캐릭터는 조금 다르다. 그녀는 고시를 패스한 5급 공무원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 사회적인 위치를 갖춘 성공한 인물인 공아정과 현기준이 만들어갈 로맨스는 일단 신데렐라 이야기와는 다른 궤도를 걸어가게 된다.

'내게 거짓말을 해봐'는 제목에서부터 드러나듯 이 둘의 로맨스가 계층적인 이야기와는 상관없는 '거짓말'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도 두 사람이 결혼했다는 아주 황당한 거짓말. 그런데 이 황당한 거짓말이 어느 순간 두 사람 모두에게 이득을 주기 시작하고, 그래서 그냥 내버려두자 그 관계(물론 거짓이지만) 속에서 사랑의 감정이 싹트기 시작한다. 사랑이 관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관계가 사랑을 만들어낸다.

우리는 이런 거짓 결혼 설정이 만들어내는 가슴 뛰는 사랑이야기를 이미 목도한 적이 있다. 바로 '우리 결혼했어요'다. 가상이지만 "이미 결혼했다 치고" 시작하는 이 버라이어티한 이야기 속에서 가끔은 진짜 감정이 움직이는 것을 발견하곤 한다. '결혼했다'는 관계 설정이 다른 행동을 하게 하고, 그 행동 속에서 사랑의 감정이 생겨나는 이 화학반응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사랑을 다시 되돌아보게 한다.

'내게 거짓말을 해봐'는 계층적인 만남이 갖는 신데렐라적 사랑 이야기를 벗어나, 두 남녀를 결혼이라는 틀로 묶어버림으로써 벌어지는 한바탕 좌충우돌을 유쾌하게 그려내는 드라마다. 하지만 이 코믹한 예능 프로그램 같은 설정의 드라마가 그저 가벼운 이야기에 그치는 건 아니다. 즉 여기에는 '거짓(상황)'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사실은 그 자체로 진실이 될 수 있다는 것(그것으로 실제 사랑의 감정이 생겨난다)을 에둘러 말해주기도 한다. '내게 거짓말을 해봐'라는 로맨틱 코미디의 남다르고 또 기대되는 점은 바로 이 지점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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