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프'의 공주 이야기, 현대인과 공감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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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프린세스'(사진출처:MBC)

이 시대에 공주 이야기는 대중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 전형적인 공주 캐릭터에 대한 판타지는 물론 여전하겠지만, 현대인들에게 왕자님을 수동적으로 기다리고 왕자님에 의해 구원받는 그런 공주는 어딘지 공감이 잘 생기지 않는다. 이유는 당연하다. 현대여성들은 그렇게 수동적인 존재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심지어 애니메이션을 봐도, '라푼젤'이나 '슈렉'의 피오나 공주처럼 이제 전통적인 공주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다면 아예 제목에 공주를 달고 나온 '마이 프린세스'는 어떨까. 초반부까지만 해도 이 드라마가 그려낼 공주에 대한 기대감이 충분했다. 무엇보다 장차 공주가 될 이설(김태희)이란 캐릭터가 한없이 망가지고 무너지는 모습이 그랬다. 게다가 공주병까지 있는 공주라니. 얼마나 절묘한 캐릭터인가. 이 공주님 앞에 선 왕자님인 박해영(송승헌) 역시 기대감을 높였다. 초기에 이 왕자님은 어딘지 허당 기질이 다분해 보였다.

특히 그동안 보지 못했던 김태희의 망가지는 모습은 작품에 대한 기대감은 물론이고, 김태희의 연기자로서의 기대감도 높였다. 그런데 이런 기대감이 무너진 건, 이설이 공주임이 밝혀지고 궁에 들어가면서부터다. 궁에 들어오면서 이야기는 지나치게 단순하게 반복되었다. 즉 공주 되기의 어려움, 공주가 되는 걸 방해하는 오윤주(박예진), 이설을 보호해주려는 남정우(류수영) 교수 그리고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박해영과의 로미오와 줄리엣 식 로맨스. 이런 스토리는 전형적인 공주 스토리로 드라마를 회귀시켰다.

이설도 수동적인 캐릭터로 그려졌다. 오윤주의 방해와 모략에 늘 당하는 입장에 서게 되는 이설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박해영이나 남정우의 도움을 받는 존재로 바뀌었다. 씩씩했던 캐릭터가 그저 대책 없이 눈물만 흘리는 캐릭터로 변하자, 박해영도 왕자 캐릭터로 회귀했다. 발랄함과 풋풋함이 사라지고 전체적으로 과거 전형적 공주 이야기로 돌아가면서 드라마는 식상해지기 시작했다.

'시크릿 가든'이 신드롬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이 드라마가 기본적으로 신데렐라 스토리를 갖고 있으면서도 그 틀을 과감히 벗어났기 때문이다. 구원받는 존재로서의 신데렐라가 아니라 늘 당당하고 스스로 결정하는 신데렐라. 길라임(하지원)은 늘 도도함과 자존감을 유지하면서 김주원(현빈)과 늘 동등한 위치에 서 있었다. 이렇게 된 데는 길라임이나 김주원 모두 확실한 자기 직업, 즉 자기 세계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쉽게도 '마이 프린세스'에서는 주인공 캐릭터들의 자기 세계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설은 공주이고, 박해영은 외교관이지만 그들이 일을 제대로 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전문직 드라마일 필요는 없지만 주인공이 가진 일의 세계는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사랑만큼 중요하다. 당당함과 능동성 그리고 자존감이 그 일에서부터 나타나기 때문이다. 일이 사라진 멜로드라마는 반복적이고 틀에 박힌 사랑타령으로만 매몰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마이 프린세스'가 초반부의 기대감을 다시 살리기 위해서는 주인공들이 자기 세계를 빨리 되찾았어야 했다. 이설은 조금은 엉뚱해도 보다 적극적인 공주로서의 행보를 보일 필요가 있었고, 박해영 역시 이설 바라기로서만의 캐릭터에서 벗어났어야 한다. 그리고 본래 그리려 했던 이설의 성장과정에 집중할 필요가 있었다. 멜로드라마는 물론 사랑을 그리지만, 요즘처럼 자기 성장에 주목하는 시대에는 사랑에만 목매는 드라마는 매력이 없다. 자기 성장으로서 자연스럽게 획득되는 사랑이 더 주목되는 시대다. '마이 프린세스'는 왜 처음의 기대감처럼 좀 다른 공주 이야기를 펼쳐나가지 못했을까.

‘무한도전’ 봉우리 우화가 환기시키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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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사진출처:MBC)

이것은 하나의 우화다. 높이 90미터의 스키점프대 꼭대기에 깃발이 하나 꽂혀 있고, ‘무한도전’ 멤버들 전원은 그 경사를 올라가야 된다. 지금껏 ‘무한도전’이 제시했던 미션들과 비교해보면 지극히 단순하다. 하지만 이 단순한 미션의 과정이 보여주는 장면들은 너무나 감동적이다. 왜? 그 과정이 자꾸만 다른 현실들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우리가 ‘무한도전’의 이 단순한 미션과정을 보며 느낀 감동의 실체는 바로 여기에 있다.

오르는 길은 하나지만 그 길을 오르는 이들은 천차만별이다. 다리 부상으로 미션에 참가하지 못한 정형돈은 말 그대로 ‘성대투혼’의 응원을 벌여주고, 유재석은 그 특유의 체력과 순발력으로 제일 먼저 정상에 오른다. 하하와 노홍철이 가까스로 정상에 오르지만 거구의 정준하와 나이 많은 박명수는 자꾸만 밑으로 미끄러진다. 그건 꼭 오르고 올라도 제자리로 되돌아가는 시지프스의 신화를 보는 것만 같다.

결국 제일 먼저 정상에 오른 유재석이 줄을 타고 밑으로 내려가 정준하에 이어 박명수를 끌어올린다. 도무지 오르지 못할 것 같아 거의 포기상태에 이른 길에게 유재석은 아이젠을 풀어주고 그래도 오르지 못하자 심지어 줄을 놓고 맨 밑으로 다시 내려간다. 다시 올라와 뒤에서 길을 밀어주기 위함이다. 미안해하는 길에게 “포기만 하지 마라”는 유재석은 결국 길과 함께 동료들이 끌어주는 줄을 잡고 다시 정상에 오른다.

마침 배경음악으로 깔린 이적의 ‘같이 걸을까’는 이 우화 같은 장면에 울림을 더해준다. ‘길을 잃은 때도 있었지. 쓰러진 적도 있었지. 그러던 때마다 서로 다가와 좁은 어깨라도 내주어 다시 무릎에 힘을 넣어 높은 산을 오르고 거친 강을 건너고...’ 이 노래가 전해주는 ‘같이’라는 의미는 말 그대로 포기하지 않고 같이 오르고 또 오르는 ‘무한도전’ 멤버들의 훈훈한 장면들과 어우러졌다.

이 우화가 환기시킨 것은 무엇이었을까. 지병과 배고픔에 ‘남은 밥’이라도 달라는 쪽지를 남긴 채 저 세상으로 떠난 고 최고은 작가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 생활고에 시달리다 뇌출혈로 작년 말 숨진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고 이진원씨가 떠오르는 건? 지금도 장벽처럼 놓인 사회로의 좁은 통로 앞에서 절망하고 있을 수많은 청춘들이 생각나는 건?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적인 대우를 생계란 이름으로 받아들이고 있을 노동자들이 아른거리는 건? 도대체 왜일까. 이 ‘무한도전’이라는 우화의 세계 속에 찍혀지던 ‘우린 원래 평균이하이니까’라는 자막이 못내 눈에 밟히는 이유는?

물론 ‘무한도전’이 의도적으로 이런 우화를 그려낸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웃음을 전제로 우연히 해보자던 미션에서 갑자기 피어난 웃음기 사라진 감동적인 이야기는 결코 연출로는 만들어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돌발 상황 속에서 피어난 멤버들의 동료애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는 프로정신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하지만 ‘무한도전’의 이런 비의도적인 장면들이 가끔 우화처럼 그려지고 사회적 현실을 떠올리게 하며 그로 인해 우리 가슴을 파고드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여기에는 독특한 ‘무한도전’만의 심지어 카프카적인 색채가 돋보인다.

가상의 설정이나 놀이로 하나의 세계를 구축하고 그 속에 리얼한 멤버들의 반응을 담아내는 방식은, 완전히 가상의 세계처럼 보이면서도 보는 이마다의 현실을 자꾸만 떠올리게 만드는 카프카식의 세계를 떠올리게 한다. 이게 가능한 것은 그 가상의 상황 속에서도 목숨을 거는 멤버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무한도전’은 그렇게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끊임없는 우화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우화는 현실에 닿아있어 우리의 마음을 속절없이 울린다.

시사랭크쇼 '열광', '명작스캔들', 코멘트로 즐거워지는 토크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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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스캔들'(사진출처:KBS)

코멘테이터(commentator). 쉽게 말해 '해설자'다. 흔히 우리가 보는 코멘테이터는 스포츠 해설가다. 경기를 보면서 흐름과 전략 등을 짚어주고 전체의 맥을 그려준다. 코멘테이터가 얼마나 중요한 지는 축구경기를 볼륨 없이 보면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다. 어떤 사안에 대한 해설은 그 사안 자체를 더 즐기게 해준다.

그런데 최근 들어 방송에 이 코멘테이터의 영역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 물론 지식이나 정보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에서 코멘테이터들은 늘 등장해왔다. 하지만 정보에 재미가 겹쳐지면서 코멘테이터로 방송 출연하는 전문가들은 정보만이 아니라 재미까지 전해주고 있다.

시사랭크쇼 '열광'은 아예 엔터테이너에 가까운 코멘테이터들의 각축장이다.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의 저자이자 명지대 여가문화연구센터 소장인 김정운 교수는 깊이 있는 해설과 함께 재치 있는 예능감으로 정평이 나 있다. '열광'은 시사를 소재로 끌어온 예능 프로그램으로 이러한 예능감을 가진 코멘테이터의 역할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 프로그램에 함께 출연하는 팝 칼럼니스트 김태훈은 독특한 캐릭터의 소유자다. 거의 모든 사안들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잡학의 달인'으로 불리는 그는 방송 내내 쉴 새 없이 이야기에 토를 단다. 심지어 김정운 교수가 혀를 내두를 정도. "얘기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게 오히려 더 힘들다"고 할 정도로 재치 있는 코멘테이터로서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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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랭크쇼 열광'(사진출처:tvN)

클래지콰이의 호란 역시 독특한 코멘테이터다. 연세대 심리학과 불어불문학을 전공한 그녀는 겉보기에는 섹시한 이미지를 풍기지만, 일단 어떤 사안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면 그 누구보다도 지적인 변신을 보여준다. 사실 코멘테이터로서 이런 양가적인 모습을 모두 갖추기란 쉽지 않다. 무엇보다 진지함과 솔직함이 그녀가 던지는 코멘트의 매력이다.

최근 KBS에서 새로 시작한 '명작스캔들' 역시 코멘테이터들의 프로그램이다. '열광'에 이어 이 프로그램에도 출연하는 김정운 교수는 조영남과 함께 그 날 그 날 소개되는 명작들에 대한 재치 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명작을 놓고 다차원적인 이야기를 풀어내는 독특한 이 프로그램의 형식 상, 다채로운 코멘터이터들은 필수적이다. 드가의 '스타'를 놓고 발레리나 김주원의 코멘트를 듣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미술관에 도슨트(Docentㆍ안내인)가 명작 감상에 깊이를 더해주듯이 '명작스캔들'의 코멘테이터들은 좀 더 즐겁게 명작에 빠져들게 해준다.

코멘테이터들의 시대가 오는 이유는 그 어느 때보다 정보에 대한 지적인 갈증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제 정보는 더 이상 배워야할 어떤 것이라기보다는 즐길 수 있는 것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지식은 물론이고 끼로 무장한 코멘테이터들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예능보다 재미있는 해설이 가능해진 요즘, 시사나 교양 프로그램 역시 고리타분함을 벗어던지고 부쩍 대중들에게 다가오고 있다. 코멘테이터가 코멘테이너(코멘테이터+엔터테이너)로 넓혀져 가는 과정. 어쨌거나 대중들 입장에서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두분토론', 희화화된 캐릭터가 가진 장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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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콘-두분토론'(사진출처:KBS)

"참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 그죠?" 여자가 당당해야 나라가 산다는 여당당의 김영희는 개그콘서트 '두분토론'에서 매번 이 멘트로 말문을 연다. 남자는 하늘이라고 주장하는 남하당 대표 박영진의 전 근대적인 남성우월주의 발언들 때문이다. 박영진은 "여자들이-", "건방지게-" 같은 남녀 차별적 발언을 거침없이 던져댄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그것도 모자라서 뭐?"하고 되물으면서 여성들의 행동을 비아냥거린다.

사실 이런 박영진식의 말투는 여성들 입장에서는 듣기조차 싫은 기분 나쁜 얘기들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박영진이 이런 여성 비하 발언을 쏟아낼 때마다 관객에서는 남녀 할 것 없이 웃음이 터져 나온다. 마치 자신들에게 욕을 하는데 그걸 보며 웃는 격이다. 도대체 왜 이런 반응이 나올까. 박영진이 보여주는 캐릭터가 여성들을 비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현실의 남성 우월적 태도를 가진 남자들을 비하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같으면 이런 얘기가 심지어 개그의 소재로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여성단체들의 비판을 받았을 것이다. 그 때는 박영진의 이런 얘기들이 농담이 아니라 그 자체로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박영진이 연기하는 캐릭터는 이제는 사라진 과거의 유물이 되었다. 물론 여전히 그 과거에 묶여 지내는 이들도 있겠지만, 대부분 그런 남성들은 가족에서건 사회에서건 비난받기 십상이다. 이 개그가 공개적으로 보여지고 김영진식의 발언에 심지어 웃음을 던질 수 있는 건 전적으로 달라진 남녀 관계에서 비롯된다.

반면 매번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여당당의 김영희는 이런 전 근대적인 남성에게 어이 없다는 표정을 짓다가 자기가 발언할 시간이 돌아오면 거침없는 공격을 해댄다. 남자들이 뭔가 했다는 식으로 하는 행동에 대해 여성적인 입장에서 "대단한 ○○○ 나셨다 그죠?"하며 반문한다. 그 때마다 역시 남녀 관객 모두가 웃음을 터트린다.

김영희의 발언에 터지는 웃음은 박영진의 그것과는 결이 다르다. 박영진이 주는 웃음은 희화화된 자기 캐릭터에서 나오지만, 김영희가 주는 웃음은 그런 구시대적 캐릭터에 맘껏 비난을 쏟아 붇는 그 속 시원함에서 나온다. 그 속 시원함은 여성들에게만 해당하는 얘기가 아니다. 젊은 남성들이라면 권위적인 나이든 세대가 보이는 행동에 똑같은 불편함을 느끼기 마련이다. 김영희의 촌철살인은 그 권위를 순식간에 해체시키며 어떤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두분토론'은 남녀가 싸우는 것처럼 되어 있지만 사실은 둘 다 권위를 해체한다는 점에서는 같은 기조 위에 서 있다. 여기에 남녀 간의 다른 심리가 바탕에 깔리고, 각종 토론이 가진 공허함에 대한 풍자가 곁들여지니 금상첨화다. 물론 어떤 면에서 보면 박영진이 스스로를 희화하며 마구 쏟아내는 남성우월적 발언들 속에는 위축된 남성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한 기조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희화화된 캐릭터 위에 서있을 뿐이다.

남녀의 심리를 소재로 하는 개그는 늘 있어왔다. 하지만 '두분토론'은 좀 더 직설적인 발언대 위에 서 있다는 점에서 훨씬 강하다. 하지만 심지어 위험하다싶은 발언조차 과감하게 풀어내질 수 있는 희화화된 분위기는 이 코너가 가진 최대의 미덕이다. 그 바탕 위에서 남녀는 서로 싸우는 것 같지만 때론 같은 얘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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