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가족영화, 어른들의 눈높이, 아이들의 눈높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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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명절 영화들

본격적인 설 명절이 시작되면서 영화관은 벌써부터 북새통이다. 특히 이번 명절에는 어른과 아이들이 함께 볼만한 가족영화들이 대거 포진해 있어 주목을 끈다. 1천만 관객 파워를 갖고 있는 강우석 감독의 '글러브'와 이준익 감독의 '평양성', 김명민의 코믹 명연기로 주목을 끄는 '조선명탐정', 잭 블랙의 코믹 연기와 걸리버라는 소재로 주목을 끄는 '걸리버 여행기', 또 기존의 공주이미지에서 탈피한 모습으로 돌아온 월트디즈니의 애니메니션 '라푼젤'이 그 작품들이다.

먼저 가족영화에 걸맞게 이 다섯 작품은 각각의 장르적 성격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메인으로 코믹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조선명탐정'은 코믹 연기에도 명품이 있음을 확실히 보여주는 김명민이 역시 코믹의 미친 존재감을 과시하는 오달수와 콤비를 맞춰 말 그대로 빵빵 터지는 웃음을 선사한다. 정조 시절의 아마도 정약용을 모델로 한 추리이야기 속에 당대의 사회적 문제들, 예를 들어 신분의 문제, 종교의 문제, 빈부의 문제 같은 것들을 코믹하게 녹여냈다.

아이와 함께 모처럼 극장을 찾은 어른들이라면 이 다양한 장르적 재미와 팩션이 던져주는 역사적인 의미, 게다가 추리가 주는 즐거움까지 다양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시선에서 보면 이 웃음의 코드 속에 녹아들어 있는 다양한 함의들을 즐기기는 조금 무리일 수 있다. 게다가 후반부에 급한 속도로 계속해서 이어지는 반전에 반전은 다소 복잡하게 여겨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명민과 오달수의 코믹한 연기에 몰두하며 보는 재미만으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영화다.

기존 사극의 틀을 완전히 벗어나 있는 '평양성'은 기존 사극에 익숙한 어른들 입장에서는 다소 가벼운 느낌을 가질 수 있다. 아이들 입장에서도 삼국과 당나라와의 심리전은 그리 쉽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중간 중간 빵빵 터지게 만드는 이문식, 류승룡, 윤제문, 정진영의 연기가 압권이다. 역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허용한다면 이 서민들의 눈높이에 맞춰진 '평양성'은 어떤 카타르시스를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강우석 감독의 '글러브'는 실화를 소재로 한 스포츠 영화라는 장르에 충실한 작품이다. 코믹한 설정들이 전면에 깔려 있지만, 중반 이후를 지나면서는 말 그대로 눈물 폭풍을 만드는 휴먼드라마다. 청각장애인 야구단과 사고뭉치에 이제 퇴물이 된 한때 야구스타와의 소통이 절절한 감동을 만들어내는 작품이다. 강우석 감독의 전작 '이끼'에서 보여주었던 정재영과 유선은 이 작품에서는 완전히 다른 훈훈함을 전해준다. 어른과 아이 모두 편안한 작품이지만 한 가지 아쉬운 건 실상 장애인의 현실은 그다지 많이 보여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상업영화로서의 당연한 선택이겠지만.

'걸리버 여행기'는 거인과 난장이를 오가며 일상을 벗어난 판타지의 세계를 다룬 원작 스토리가 가진 장점을 영리하게 풀어내, 어른과 아이의 눈높이를 맞춘 작품이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그 거인이 되는 잭 블랙의 상황 자체가 주는 재미를 충분히 느낄 수 있고, 어른들 입장에서는 소심하게 버텨내고 살아온 잭 블랙의 일상 탈출에 어떤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어른과 아이들에게 모두 충분한 재미를 주지만, 비판적인 관객이라면 그 지나친 미국 문화 우월의식에 거부감을 느낄 수도.

'라푼젤'은 기존 라푼젤 스토리가 갖는 공주 이야기의 컨셉트를 확 뒤집음으로써 새로운 재미를 선사한다. 공주는 '엽기적인 그녀'이고 왕자는 좀도둑에 가깝다는 설정만으로도 충분히 현재적인 재미를 주는 작품이다. 특히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하는 어른들이라면 아이와 손잡고 들어가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다.

흔히들 가족영화라고 가족이 함께 영화를 보고 나오면 각자 반응은 상이하게 나오기 마련이다. 가족영화는 어른과 아이가 함께 본다는 점에서 이 두 시각차를 어떻게 줄여나가는가가 관건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올해 설 가족영화들은 비교적 이 시각차를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쓴 흔적이 역력해 보인다. 연휴 동안 온 가족이 함께 취향에 맞는 영화 한 편 챙겨보는 건 어떨까.

눈 높아진 시청자들, 막장을 외면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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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생뎐'(사진출처:SBS)

막장드라마, 여전히 시청률 보증수표인가. 작금의 경향을 보면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아내의 유혹'으로 심지어 즐기는(?) 막장드라마의 세계를 펼쳐 보인 김순옥 작가는 그 연작이라고 할 수 있는 '천사의 유혹'에서 주춤하더니, 가족극을 표방했지만 여전히 막장에서 벗어나지 못한 '웃어요, 엄마'에서는 아예 시청자들에게 외면 받고 있다. 막장이라면 작품의 완성도와 상관없이 논란이라도 생겨야 하는데 그것조차 없는 존재감 없는 드라마로 전락한 것.

이런 상황은 '시크릿 가든'의 후속작으로 세워진 임성한 작가의 '신기생뎐'도 마찬가지다. 2회 연속 방영으로 힘을 모은 데다가, 이른바 '시크릿 가든'이 세운 30%대의 시청률의 후광효과를 기대했지만 상황은 정반대다. 오히려 잘 만들어진 드라마의 대명사격이 되고 있는 '시크릿 가든'과 비교되면서 더 외면 받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희한한 일이지만 이미 종영한 '시크릿 가든'에 대한 이야기가 여전히 화제가 되는 반면, 이 자극으로 똘똘 뭉친 '신기생뎐'에 대한 이야기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도대체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신기생뎐'은 아직 초반부지만 이미 임성한식 막장 월드의 대부분 코드들을 포석해 놓은 상태다. '출생의 비밀'이 그 중심 코드다. 금라라(한혜린)의 어머니가 3명이나 등장하고, 그녀가 친어머니를 아직 모르고 있다는 사실은 저 '하늘이시여'의 기상천외한 모녀 관계를 환기시킨다. 또 단사란(임수향)의 죽은 어머니 역시 친어머니가 아니었다는 설정까지 들어있는 걸 보면 이 드라마는 이 '출생의 비밀'이 갖는 자극의 끝을 보겠다는 의도가 다분하다. 비록 욕은 좀 먹겠지만, 그래도 볼 것이라는 막장드라마의 성공코드를 기대하고 있는 셈이다.

이른바 막장이라 불리는 드라마들의 자극은 점점 강력해지고 있다. 하지만 강해진 자극에 반해 시청률은 비례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이 단서로 제공되는 작품이 '욕망의 불꽃'이다. 물론 이 작품은 물론 막장이 아니다. 하지만 흔히들 말하는 막장의 요소들, 즉 '출생의 비밀'이나 복수, 패륜 등 자극적인 소재들이 등장한다. '시크릿 가든'이 끝나고 시청자들은 대부분 '욕망의 불꽃'으로 옮겨갔다. 10% 초반대에 머물던 '욕망의 불꽃'은 순식간에 20%를 돌파했다. 이유는? 같은 자극적인 소재지만 완성도가 있기 때문이다.

자극적인 드라마들에 그 모자라는 완성도에 '욕을 하면서도' 봤던 시청자들은 작년 새로운 경험을 했다. '제빵왕 김탁구'가 그렇다. 자극적인 소재를 바탕에 깔고 있음에도 이 드라마는 높은 완성도를 보였다. 즉 '출생의 비밀' 같은 소재를 다룬다고 모두 막장이 될 필요는 없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완성도를 경험한 시청자들의 눈높이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전개가 느슨하다거나 작위적이거나 개연성 없는 드라마에 눈이 가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최근 들어 드라마가 방영되는 기간 동안의 시청률 흐름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결과가 드러난다. 즉 초반에 일찌감치 20%대의 시청률로 시작한 드라마들 중, 많은 드라마들이 중간에서시청률 하락을 경험하며 이른바 용두사미 드라마가 되곤 한다는 것이다. '도망자'는 초반 20%에서 시작했지만 서서히 시청률이 떨어지더니 결국 반 토막 난 시청률로 끝을 맺었다. '아테나' 역시 초반 강력한 힘을 발휘하며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했지만, 차츰 밀리더니 월요일 드라마 시청률 경쟁에서 바닥을 경험하고 있다. 왜 이런 시청률 등락의 변화가 생기는 걸까. 물론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과거처럼 첫 시청률이 그 드라마 전체를 결정짓지는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드라마 시청에 있어서 관성적인 시청보다는 좀 더 선택적인 시청으로 시청자들의 시청 패턴이 바뀌고 있다는 징후가 아닐까. 언제든 재미가 없거나 스토리가 허술하거나 개연성이 떨어지거나 하면 이제 언제든 시청자들은 채널을 돌리게 됐다는 얘기다. 그러니 눈이 높아진 시청자들에게 막장드라마가 계속 통할까. 물론 어떤 기상천외하고 엄청난 자극이 시청자들의 눈을 마비시키고 중독시킬 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 막장드라마의 막장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예감이다.

'무한도전', 도대체 뭐가 달라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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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사진출처:MBC)

'무한도전'이 달라졌다. 먼저 시청률이 다르다. 작년 12월 '무한도전'의 평균적인 시청률은 14%(agb닐슨)대였다. 그런데 1월1일에 방영된 '연말정산 뒷끝 공제 특집'이 15.8%를 기록한 데 이어, 1월8일 '정총무가 쏜다' 17.8%, 1월15일 '타인의 삶1' 18.4%, 1월22일 '타인의 삶2' 18.9%를 기록했다. 1월 한 달 만에 2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회복한 셈이다.

물론 '무한도전'의 가치를 시청률로만 판단하기는 어렵다. 그것은 '무한도전'이라는 예능이 가진 독특한 형식적 특징 때문이다. 보통 호평을 받는 포맷이 생기면 그 형식을 반복하는 여타의 예능과 달리, '무한도전'은 매번 새로운 형식을 도전한다. 따라서 시청률 기복은 어쩔 수 없는 결과일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무한도전' 역시 시청률의 잣대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조금은 마니아적이고 비교적 젊은 층들에게 소구되는 전위적이고 도전적인 느낌은 '무한도전'만이 갖는 아우라지만, 바로 그 점은 좀 더 폭넓은 시청층을 끌어들이는 데는 분명 벽으로 작용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2011년을 맞아 '무한도전'은 확실히 이 보다 넓은 시청층을 겨냥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게 바로 '타인의 삶'이라는 아이템이다. 박명수와 재활의학과 의사인 김동환 교수가 서로 하루 동안을 바꿔 살아보는 이 컨셉트 속에는 전에는 발견하기 힘들었던 이른바 '감동 모드'가 발견된다. 병원에서 일일의사인 박명수와 환우로 투병하는 예진이의 예쁜 만남이 그것이다. 쿨하기만 한 줄 알았던 '무한도전'이 이토록 훈훈한 모습을 연출하는 건 여러모로 보다 넓은 시청층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얘기다. 물론 이 훈훈함도 박명수가 했기 때문에(그는 버럭 캐릭터다) '무한도전'만의 쿨함을 유지하지만.

또한 '타인의 삶'에서 일일 박명수로 김영환 교수가 멤버들과 나란히 서 있는 장면은 굉장히 상징적으로 다가온다. '무한도전' 속에 중년남자가 들어와 함께 어우러지고 과거를 추억하는 게임을 하는 장면은 그 자체로 중년 세대들의 마음을 잡아끈다. 이런 정도의 아이템이라면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 앞에 온가족이 둘러앉아 보아도 분명 어떤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29일 방영되는 '무한도전'의 소재는 '무한도전 TV는 사랑을 싣고'다. 이 아이템 역시 '타인의 삶'이 보여주었던 그 폭넓은 세대에 대한 배려가 엿보인다. 'TV는 사랑을 싣고'라는 프로그램이 가진 '만남'이라는 아이템은 누구에게나 가슴을 울리는 소재가 아닌가.

물론 '무한도전'은 '데스노트'처럼 여전히 '무한도전'다운 실험적인 놀이를 즐길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보다 폭넓은 세대들이 모두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아이템에 대한 기대감이 생기는 건 왜일까. 이건 혹시 '무한도전'이 올해 던지는 승부수가 아닐까.

'싸인', 그 무서운 뒷심은 어디서 오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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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인'(사진출처:SBS)

'싸인'의 상승세가 무섭다. 첫 번째 에피소드였던 한 유명가수의 죽음은 고 김성재의 의문사를 떠올렸지만 그다지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아마도 CSI 같은 세련됨을 기대했던 시청자들의 기대치에는 맞지 않는 우리식의 법의학 드라마라는 점도 작용했을 듯 싶다. 하지만 회를 거듭하면서 오히려 우리 식의 정서가 묻어나는 '싸인'은 힘을 발하고 있다. 두 번째 에피소드로 연쇄살인범의 등장과 함께, 긴박한 사건들을 다차원적으로 엮어내는 연출의 힘이 예사롭지 않다.

하지만 우리네 드라마에서 스릴러 같은 장르적 성격이 성공한 적은 극히 드물다. 고현정이 출연했던 '히트'가 그랬고, 손예진이 맹렬 기자로 등장했던 '스포트라이트(물론 이 작품은 스릴러는 아니지만 그런 요소가 강했다)'도 그랬다. 이유는 당연했다. 우리 드라마에는 멜로 같은 말랑말랑함에 시청자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싸인'은 이례적이다. 물론 멜로가 예고되어 있지만, 아직까지 본격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스릴러적인 사건들만으로 시청률이 급상승했다. 도대체 무엇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잡아 끈 걸까.

사실 작년 내내 우리 문화계에 불어 닥친 '정의' 신드롬은 이례적이다.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베스트셀러에 오른 건 출판전문가들의 분석에 의하면 '정의'라는 키워드가 대중들에게 자극하는 부분이 컸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이 책은 미국 내에서는 그다지 큰 반향을 얻지 못했다고 한다. '정의' 신드롬은 EBS에서 방영하는 샌델 교수의 강의로 이어지고 있다. 한번쯤 본 사람들은 그 강의가 대단히 매력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유머가 넘치는데다가 어려운 철학적 문제도 명쾌하게 구체적 사례를 통해 풀어내주는 샌델 교수의 힘이다.

작년 영화계를 강타한 건 스릴러 장르였다. '아저씨', '이끼', '악마를 보았다', '부당거래' 등등 그 어느 때보다 스릴러가 강세를 보였다. 그 안을 들여다보면 역시 '정의'라는 키워드가 보인다. 특히 '아저씨'의 대성공은 물론 원빈이라는 배우의 힘이 작용했지만, 현실적으로 구현되지 않고 있는 사회정의라는 차원과 거기에 어떤 부채감 같은 걸 느끼는 고개 숙인 아저씨 감성이 맞물리면서 흥행에 불씨를 던졌다. 그만큼 현실이 채워주지 않는 '정의'에 대한 갈망을 영화라는 판타지 속에서나마 충족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싸인'은 영화가 아니라 드라마다. 스릴러에도 어느 정도의 수위조절이 필요한 상황이다. 연쇄살인범이 여주인공을 잡아 두고 마치 장난치듯 죽음으로 몰아넣는 장면은 그래서 영화보다는 약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싸인'이 힘을 발휘하는 건 이 '정의'에 대한 갈망이 안방극장으로도 침투하는 것만 같다.

여기에는 장항준 감독의 촘촘한 연출력과 그저 연기로 부딪치는 박신양과 전광렬의 팽팽한 대결, 그리고 푼수 같은 털털한 이미지로 변신에 성공한 김아중의 몫이 크다.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와 긴장을 풀어주는 코믹한 설정들, 그리고 적절히 이어지는 멜로의 균형 감각도 좋은 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목을 끄는 건, 역시 올바른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성공하기를 바라는 그 '정의'에 대한 갈망이다. '싸인'의 다음 에피소드는 과연 그 갈망을 더 키워놓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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