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자', 영웅은 있지만 본색은 없다

'무적자'라는 제목에는 두 가지 의미가 들어 있다. 하나는 말 그대로 ‘당할 적이 없는 자’란 뜻이고 다른 하나는 ‘국적이 없는 자’란 뜻이다. 80년대 홍콩 느와르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영웅본색’은, 2010년 우리나라로 오는 과정에서 그 시대적 간극과 국가적인 정서의 차이를 메우기 위해 이런 변화를 모색했던 모양이다.

여기서 ‘국적이 없는 자’란 의미의 ‘무적자’는 탈북자로서 국내에 들어와 무기밀매를 하며 살아가는 김혁(주진모)과 영춘(송승헌) 그리고 김혁의 동생 김철(김강우)을 일컫는 말이다. 이로써 ‘영웅본색’이라는 느와르는 남북문제 같은 우리식의 의미가 덧씌워지게 된다.

혹자들은 이것이 흥미롭게 여겨질 지도 모르겠지만, 문제는 이 탈북자가 갖는 의미가 ‘영웅본색’이라는 스토리 속에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가이다. 이 영화가 다루어야 할 것은 형제애나 우정이 뒤섞인 액션 느와르이지 탈북자들의 애환이 아니다. 따라서 탈북자 설정은 다분히 작위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김혁과 영춘이 부산에서 무기물매를 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근거가 탈북자들이 갖는 무국적자 같은 위치라면 그 부분에 대한 이야기들이 존재해야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부연 설명이 없다. 그저 탈북자라면 어딘지 절망적이고 호전적일 것이라는 선입견을 바탕에 깔아놓고 있을 뿐이다.

김혁의 동생, 김철이 경찰이 돼서 한 조직폭력배를 심문하는 장면은 그래서 그다지 공감이 가지 않는다. “너 사람 죽여본 적 있어? 너 사람 고기 먹어본 적 있어?”하고 물으며 물론 과장이 섞인 것이겠지만 북한에서 사람 고기를 먹게 된 사연을 얘기할 때, 그 얘기에 부들부들 떠는 폭력배는 어딘지 비현실적이다.

이렇게 된 것은 ‘영웅본색’이라는 느와르 장르가 사실은 실제 현실이라기보다는 과장된 이야기나 판타지를 근거로 하고 있는데, ‘무적자’는 여기에 갑자기 현실을 들이대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이것은 ‘영웅본색’에서 쌍권총이나 기관총을 마구 쏘아대고 아무리 적이 많아도 죽지 않는 소마(주윤발) 같은 인물이 하나의 장르적 재미로서 용인됐던 것과는 상반된 결과다.

‘무적자’에 등장하는 총과 유탄 발사기, 기관총이 생뚱맞아 보이는 건 그 때문이다. 우리는 홍콩이라는 떨어진 공간만큼, 또 느와르 장르라는 과장이 용인되는 공간만큼 ‘영웅본색’의 비현실적인 장면들을 받아들였지만, ‘무적자’는 그렇지 못하다. ‘무적자’에는 탈북자라는 현실적인 문제들이 거기에 들어가 있고, 또 그것도 부산이라는 우리에게 가깝고도 친숙한 현실공간이 들어있다.

우리네 액션에 대해 세계가 주목한 것은 그것이 장르적 재미를 주면서도 꽤 현실적인 연출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깔끔하게 주먹을 주고받거나 폼 잡고 총을 쏴대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막싸움 같은 액션들은 그 장면에 실감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무적자’가 가진 액션은 그렇지 못하다. 홍콩 느와르의 향수를 자극하기는 하지만 그 총기 액션과 우리네 정서 사이에 불협화음이 있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무적자’가 홍콩 느와르의 향수를 자극할만한 통쾌한 액션을 보여주지도 못하고 또 그렇다고 우리식의 정서들(예를 들면 탈북자 문제 같은)에 천착하지도 못하는 이유는 느와르를 복원할 것인지 아니면 드라마로 그릴 것인지, 어정쩡한 선택에서 비롯된 것이다. 느와르를 가지고 드라마를 만들어서는 이도 저도 아닌 것이 되기 쉽다. ‘무적자’가 결과적으로 국적 없는 작품 같은 인상을 주는 것은 이 시대와 국가를 넘어선 혼종이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다는 반증일 것이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신인이 해야 할 역할

'지붕뚫고 하이킥'에서 이기광의 존재는 미미했다. 하지만 그 시트콤을 겪고 난 후, 기광은 부쩍 자랐다.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예상을 깨는 예능감을 선보인 이기광은 결국 '일밤-뜨거운 형제들'에 발탁되었고, 이어 '김승우의 승승장구'에도 MC로 자리를 잡았다. 아이돌 그룹 비스트의 멤버로서 활약하는 기광은 이로써 연기, 노래, 예능까지 섭렵한 만능돌이 되었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쌈디(사이먼 디) 역시 처음 '뜨거운 형제들'에 들어왔을 때만 해도 지금처럼 프로그램에 쉽게 안착할 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기광처럼 자체발광의 외모는 아닌데다, 어딘지 능글능글한 면모가 나이와 어울리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쌈디는 특유의 능글맞음을 캐릭터로 세우면서 '뜨거운 형제들'에서 활약하기 시작했다. 슈프림팀의 멤버로서 그가 부른 '땡땡땡' 같은 곡은 특유의 이런 캐릭터가 돋보이는 곡으로, 예능과 가수활동이 어떤 시너지까지 만들어낸 결과를 가져왔다.

사실 연예계 활동이 그다지 오래 되지 않은 신인들로서 이처럼 예능 프로그램에 쉽게 안착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주말 프라임 타임 대의 예능 프로그램은 기량이 뛰어난 MC들의 격전장이다. '뜨거운 형제들'에서 함께 서 있는 탁재훈, 김구라, 박명수, 한상진, 박휘순 같은 MC들은 이들에 비하면 엄청난 선배들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당연히 주눅이 들 수밖에 없는 일이다.

하지만 바로 이 상식적인 생각을 뒤집음으로써 이들은 오히려 예능 프로그램에 안착할 수 있었다. 쌈디는 '박휘순 장가 보내기' 프로젝트에서 박휘순을 조종하는 역할을 맡아 활약했다. 나이는 어리지만 여성들 앞에서의 능수능란함은 오히려 능구렁이 캐릭터를 가진 쌈디가 더 선배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쌈디는 일련의 아바타 프로젝트에서 전혀 주눅 들지 않는 모습으로 일관했다. 학교를 배경으로 한 가상극에서 곤혹스런 상황 속에 들어와서도 전혀 밀리지 않고 오히려 "얘 완전 내 스타일이야"라고 애드립을 치는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이러한 '대선배들 속에서도 주눅 들지 않는 모습'은 이기광도 마찬가지다. 그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김구라와 씽크로율 100%의 아바타 역할을 천연덕스럽게 해낼 정도로 자신감을 보였다. 게다가 그는 예능 속에서 자신을 버릴 줄도 아는 아이돌이다. 작은 키를 캐릭터로 세우기도 했고, 여성들 앞에서 조금은 민망할 수 있는 미국춤을 추고 의외로 선배들을 조종할 때 독한 면모도 보이기도 했다. 물론 그런 망가짐은 선한 웃음 한 방과 잘 빠진 복근 하나면 쉬 날아가 버리는 것이지만.

이기광이 '승승장구'에까지 안착할 수 있었던 건 바로 이 특유의 자신감 때문이다. 도대체 김승우 같은 아버지뻘(?)의 대선배 밑에서 자칫 건방져 보일 수 있는 농담까지 툭툭 던질 수 있는 아이돌 찾기가 쉬운가. 하지만 쌈디나 이기광이 선배들을 몰아세우고 때론 굴욕을 주는 농담을 던지는 것은 선배 당사자들에게나 예능 프로그램에도 좋은 일이다. 예능 프로그램은 바로 이런 뒤집기(선후배)에서 웃음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예능이 웃음을 줄 생각은 안하고 선후배 간의 예의 차리는 모습만을 연출하는 것만큼 손발이 오글거리는 장면도 없다. 게다가 이 어린 친구들의 무례(?)는 마치 형 동생 사이 같은 친근함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악의가 없다.

예능 프로그램에 나이든 MC들과 함께 젊은 MC가 나란히 세워지는 것은 그 형식 속에 젊은 MC가 해야 할 역할이 있다는 말이다. 그것은 젊은 세대들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나이든 세대와의 교감을 대리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예의를 차리는 모습 보다는 성큼 성큼 선을 넘어버리는 이들의 자세는 그들이 어떻게 예능에서 제 역할을 해내고 있는지를 잘 말해준다.

디지털 시대를 울린 소박한 아날로그 감성

'놀러와'의 골방 브라더스, 이하늘과 길은 평소와는 완전히 다른 진지한 모습이었다. 깨방정에 게스트들을 몰아세우기까지 하던 이들은 다소곳이 출연한 세시봉 전설들, 조영남,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이 들려주는 추억어린 이야기와 아름다운 포크 선율에 빠져들었다. 이야기 중간 중간 즉석에서 즉흥적으로 벌어지는 이들의 음악은 '놀러와'를 과거 라디오 공개방송 같은 아날로그 감성으로 적셔주었다.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그 감성 속에 빠져있던 악동 김하늘은 결국 눈물을 흘렸다.

혹자는 김하늘의 눈물이 지나친 감수성이 아니냐고 말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거 아날로그 음악의 끝단을 경험했던 이들이라면 이 세시봉 전설들이 환기해낸 정서들이 특별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거기에는 이제는 디지털에 화려한 무대와 댄스 속에 잊혀진 것처럼 여겨지던, 소박하지만 놀라울 정도로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아날로그 정서가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기타 한 대와 이미 스스로 하나의 악기가 되어버린 그들이 아무런 사전 준비 없이 서로의 눈빛만으로 척척 하모니를 이루는 장면은 작금의 음악세태로 보면 기적과 같은 경험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40년 가까운 교감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오로지 음악이라는 본연의 세계가 가진 힘이기도 하다. 단지 음의 고저와 말장난에 가까운 가사들 그리고 자극적인 박자의 조합이 노래로 여겨지는 지금, 그들의 소박한 음악 속에는 아름다운 음과 시가 되어버린 가사가 어우러져 우리네 가슴을 파고드는 그 무엇이 있었다.

조영남이나 송창식이 가수라기보다는 하나의 기인처럼 여겨지는 것은 그들의 입지전적인 삶과 거기서 만들어낸 음악들이 작금의 자본에 의해 생산되는 음악과는 사뭇 다른 뉘앙스를 전해주기 때문이다. '웨딩케이크'나 '두 개의 작은 별'에 얽힌 포복절도의 에피소드를 전해준 윤형주는 놀라운 예능감으로 시청자들을 웃게 했지만, 그 아름다운 가사들은 그의 시적 감성을 잘 드러내주었다. 즉석에서 만난 여자들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라라라' 같은 곡이 단 40분 만에 그런 가사를 담아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이들의 자리를 감동적으로 만든 것은 이 나이든 아저씨들이 여전히 개구쟁이들처럼 옥신각신하면서도 보여주는 선후배를 넘어서는 진한 형제애다. 조영남이 즉석에서 노래를 하기 시작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기타와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하고 하모니를 넣는 모습은 백 마디 말보다 그 깊은 마음의 교감을 전해주었다. 누군가는 그 단 한 번의 경험만으로도 삶 전체를 살맛나게 할 그 마음이 전해지는 순간.

악동 김하늘의 눈물은 아마도 이들을 바라보다가 시청자들이 문득 느끼게 된 가슴 먹먹함과 같은 것일 것이다. 그것은 전자음과 디지털과 자극과 현란함에 어지러운 우리의 눈과 귀를 정화시키는 진짜 음악의 세계가 주는 날 것의 감동이다. 세월이 묻어난 그 음악은 덧없어 보이는 우리의 삶마저 아름답게 만드는 그 무엇이 있다.

'남자의 자격'이 보여준 하모니의 매력

'남자의 자격' 합창단원들은 왜 대회에 참가한 할머니 할아버지로 구성된 실버합창단의 하모니를 들으며 눈물을 흘렸을까. 방송 자막에는 스스로도 '알 수 없는 눈물'이라고 그 감동의 실체를 표현하지 못했지만, 그 눈물에는 합창만이 갖고 있는 매력이 응축되어 있었다. '남자의 자격' 합창단이 실버합창단을 통해 언뜻 보게 된 것은 하모니의 진짜 의미였기 때문이다.

대회에 참가하기까지 '남자의 자격' 합창단원들은 꽤 긴 시간 동안 연습을 해왔고, 그 과정은 쉽지만은 않았다. 안되는 성량과 훈련되지 못한 목소리, 게다가 몸치에 박치까지 있었지만 합창단원들은 차츰 노래 하나로 묶이기 시작했다. 합창단으로 묶여지기까지 서로 잘 몰랐던 그들처럼, 각자 놀던 목소리들이 하나의 하모니를 이루기 시작할 때 그들이, 그리고 그걸 바라보는 우리들의 가슴이 먹먹해졌던 것은 그 마음들의 교감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회는 대회인지라, 그리고 너무나 높아진 기대감에 부담감도 큰데다, 그것도 첫 번째 대회출전 경험인지라 아마도 숨 가쁘게 달려온 그들은 바로 이 '합창의 본질'을 잠시 잊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객석의 자리에 앉아 거기 출전한 다른 합창단의 노래를 들으면서 그들은 다시 합창의 진정한 매력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하나하나의 다른 마음이 모여 노래 하나로 한 마음이 되는 그 순간의 감동.

특히 두 번째 참가자였던 60세 이상으로만 구성된 '한사랑 실버 합창단'은 합창의 진가를 보여주었다. 거기에는 '소박할수록 아름다운' 마음들이 거대한 하모니가 되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대회라는 경쟁적 의미는 사라지고, 그저 그렇게 마음들이 서로를 어루만지는 합창 본연의 힘을 느끼며 어찌 '남자의 자격' 합창단이 눈물을 참을 수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남자의 자격' 합창단 스스로 합창을 하면서 느꼈던 그 알 수 없는 감동의 실체이기도 하니까.

멋 내지 않은 수수한 곡들과, 나이 같은 것은 마음을 나누는 데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 하모니의 어우러짐,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이 보여준 진지함에서 어떤 숭고함까지 느껴진 것은, 그것이 마치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그대로 닮아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결국 혼자일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하지만 바로 그 혼자일 수밖에 없다는 점 때문에 하나가 되기를 희구한다. 그 하나됨의 기쁨을 경험하기를 원한다. '남자의 자격'이 알려준 하모니의 매력은 바로 이것이다. 방송이 시작되기 전에는 생면부지였던 그들이 이제 저마다 반짝반짝 빛나는 존재들로 서로에게 그리고 그걸 바라보는 우리들에게 다가오는 것은 하모니를 통해 그 각자 존재들의 소중한 삶을 우리가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알게 되었다. 그들은 달라도 모두 서로가 하나 되길 원하는 같은 존재라는 것을. 노래를 조금 못 불러도, 나이가 들어도 그것은 바꿀 수 없는 마음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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