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챔프', 반칙 쓰는 세상과의 한판 승부

"만약에요. 운동을 되게 열심히 했는데, 상대선수가 나보다 힘도 너무 세고 반칙도 막 쓰고 그러면 어떻게 해요?" "방법이 없어요. 죽어라 더 노력해서 그 놈만큼 세지는 수밖에." "그거는 결국 못이기는 거 아닌가? 정정당당한 방법으로는." "아니요? 이겨요. 반칙패. 심판이 있잖아요. 반칙하면 다 걸리지 심판한테." "심판. (웃고는) 나한텐 심판이 없는데." - '닥터 챔프' 유도선수 박지헌(정겨운)과 스포츠의학 전문의 김연우(김소연)가 택시 안에서 나누는 대화 中에서

새벽 4시. 그 택시 안의 공기는 얼마나 신산했을까. 동상이몽. '닥터 챔프'의 김연우와 박지헌은 같은 대화 속에서 각자의 상황을 떠올렸을 것이다. 김연우가 떠올린 것은, 서교수(조민기)의 의료사고를 덮지 않고 내부고발한 일로 병원에서도 쫓겨나고 다른 병원에도 취직하지 못하게 된데다 겨우 들어가게 된 태릉선수촌에서조차 쫓겨나게 될 자신의 처지였을 것이다. 힘도 세고 반칙도 막 쓰는 이는 다름 아닌 바로 서교수를 지칭하는 것. 반면 박지헌이 떠올린 건, 5년 만에 태릉선수촌에 들어가게 됐지만 여전히 자신의 앞길을 막아서는 라이벌 상봉(정석원)이다.

이 대화처럼 '닥터 챔프'가 그리는 것은 힘도 세고 반칙도 막 쓰는 세상과 한판 승부를 벌이는 풋풋한 청춘들의 이야기다. 죽어라 노력하고 더 강해지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그들이 기대하는 것은 그래도 정정당당한 판결을 내려줄 심판. 반칙하는 자들에게 반칙패 판정을 내려줄 그 누군가의 격려다. 한 명은 유도의 세계에서, 또 다른 한 명은 병원의 세계에서 만만찮은 대결을 벌이지만, 그래도 이들은 한 택시에 탔다. 비록 새벽4시, 피곤한 하루를 눕히지도 못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택시 안에서 그들의 대화는 무심한 듯 보이지만 서로에 대한 따뜻함이 묻어난다. 방법을 제 나름대로 말해주며 결국은 '이길거라' 말해주는 지헌이 그렇고, 그 말에 하루의 고단함을 잠시 잊고는 풋 웃는 연우가 그렇다. 그래서 "나한텐 심판이 없는데"라는 연우의 대사는 어떤 여운을 남긴다. 이것은 이 드라마 속에서 앞으로 이 두 사람이 어떻게 서로의 힘겨운 어깨를 두드려주며 사랑의 감정을 키워나갈 지를 예감하게 한다. 서로의 심판이 되어줄 그들.

'닥터 챔프'는 새벽4시 한 스포츠 선수와 한 스포츠의학 전문의가 한 택시 안에서 나누는 대화처럼 풋풋하고 신선하고 때론 긴장감이 넘치면서도 따뜻한 드라마다. 이 이질적으로 보이는 두 분야는 몸이라는 공유지점으로 훈훈한 온기를 전한다. 한쪽은 진한 땀 냄새와 승부의 세계가 그 몸에 걸쳐있다면, 그 상처 난 몸을 치유해주는 치유의 세계가 다른 한쪽이다. 그래서 '닥터 챔프'라는 제목은 여러 가지 의미로 들린다. 결국 승리하게 된(챔프) 닥터 혹은 닥터의 남자가 된 챔프. 달콤한 멜로의 세계와 팽팽한 긴장감이 도는 병원과 스포츠의 세계가 공존하는 드라마. 바로 '닥터 챔프'다.

상황극 버라이어티, ‘오늘을 즐겨라’의 한계와 가능성

‘일밤’의 새 코너 ‘오늘을 즐겨라’에는 두 가지 키워드가 들어가 있다. 그것은 ‘오늘’과 ‘즐거움’이다. 이 두 키워드는 현재의 라이프 트렌드를 잘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프로그램의 기획 포인트는 꽤 잘 맞춰져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지금은 과거나 미래가 아닌 지금 현재, 즉 ‘오늘’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시대고, 또 어떤 진지함만큼 ‘즐거움’의 가치가 조명 받는 시대다.

'오늘을 즐겨라'는 즉 이 두 키워드에 합치되는 미션을 통해 웃음과 의미를 지향하는 프로그램이다. '1박2일'이 1박2일이라는 시간적 제한 속에서 다양한 여행의 재미를 추구하고 있다면, '오늘을 즐겨라'는 오늘이라는 시간적 제한 속에서 다양한 즐거움을 찾는다는 점에서 '1박2일'보다 더 포괄적이다. 즉 여행은 즐거움의 한 부분이 된다.

따라서 '오늘을 즐겨라'가 처음 가진 미션이 일상탈출을 모토로 한 여행이었다는 점은 이 프로그램이 가진 기획의 폭이 상당히 유리한 가능성들을 많이 갖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하지만 같은 여행이라고 해도, '1박2일'이 보여주는 여행과 '오늘을 즐겨라'가 하는 여행은 다르다. '1박2일'이 좀 더 날 것의 다큐멘터리 같은 여행을 추구해왔다면, '오늘을 즐겨라'가 일상탈출 편에서 보여준 여행은 상황극에 가까웠다.

시골로 떠난 정준호, 신현준, 공형진, 김현철은 낚시터에서 때 아닌 상황극을 벌였다. 몰래 라면을 먹고 온 정준호와 김현철을 신현준과 공형진이 취조하듯 몰아세우는 장면은 코미디 영화처럼 연출되었다. 어색함을 없애려고 시도한 일일커플(?) 미션 역시 상황극의 연속이다. 신현준은 김현철과 '우리 오늘 커플 됐어요'를 찍고, 정준호와 서지석은 스승과 제자 상황극을 만들어 웃음을 준다.

시골과 도시로 나뉘어 불가능할 것 같은 물건을 파는 미션을 선보인 '세일즈를 즐겨라'편은 그 미션 자체가 상황극이다. 도시에서 가마솥을 리어카에 싣고 광화문 한복판을 지나가는 장면은 마치 한 편의 영화 포스트를 연상시킨다. 임권택 감독을 위해 '최고의 밥상'을 차리는 과정을 보여준 '감사의 마음을 즐겨라'편 역시 마치 '식객'을 패러디한 것 같은 인상이 강하다. 배고픔을 시로 표현하기 위해 신현림 시인과 떠난 '시를 즐겨라' 편은, 이 시와는 어울리지 않는 MC들이 '시를 쓴다'는 것 자체가 웃음을 주는 상황이 된다. 또 '빵을 즐겨라'편은 '제빵왕 김탁구'의 예능 버전이다.

잘난 체에 일장연설을 해대는 정준호의 캐릭터는 본래 있던 내면이 자연스럽게 겉으로 표출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정준호가 일련의 상황극에 맞게 연출해낸 연기의 한 부분이다. 즉 이들이 '오늘을 즐겨라'에서 보여주는 웃음은 날 것 그대로가 아니다. 그것은 상당부분 연기에 의한 것들이다. 정준호, 신현준, 공형진이 배우라는 점은 이들이 얼마나 상황극에 능한가를 에둘러 말해준다.

사실 아무리 리얼 예능이 대세라고 하더라도, 그것만이 재미를 줄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즉 리얼한 상황극 속에서 보여주는 어떤 연기를 통한 웃음 역시 예능 프로그램이 만들어줄 수 있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라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오늘을 즐겨라'는 여타의 리얼 예능과 확실한 차별점을 갖는다. 따라서 이 프로그램에 일단 눈을 맞추기 시작하면 리얼 예능이 보여주지 못하는 꽤 흥미로운 웃음들을 우리는 발견해낼 수 있다.

문제는 이렇게 제시되는 상황극의 미션들이 '오늘을 즐겨라'라는 프로그램 기획의도와 얼마나 잘 맞아 떨어지는가 하는 점이다. 상황극이 그저 웃음만을 끌어내기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프로그램의 정체성과 겉돌면서 자극으로만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세일즈를 즐겨라', '감사의 마음을 즐겨라', '빵을 즐겨라' 같은 아이템은 이 프로그램 기획의도를 생각해보면 억지로 짜 맞춘 느낌이 짙다.

물론 '즐긴다'는 키워드에는 어느 정도 맞을 지 몰라도 여기에는 '오늘'의 키워드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가 간과되고 있다. '오늘'이 의미하는 것은 단지 시간적인 한정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좀 더 일상을 지향한다는 의미다. 좀 더 우리 생활 주변의 것들을 소재로 삼는다는 이야기다. 그런 점에서 '오늘을 즐겨라'는 아이템 선정에 있어서 좀 더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것들을 끌어올 필요가 있다. 기자간담회에서 승리가 얘기한 것처럼, '하루 100원을 가지고 즐기기' 같은 소소한 아이템이 세일즈를 하거나 최고의 밥상을 만드는 거창한 아이템보다 훨씬 더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다는 것이다.

결국 '오늘을 즐겨라'가 이러한 소소한 아이템들을 통해 거둬야 하는 성과는 우리네 일상이 얼마나 소중하고 또 즐거운 것인가를 복원하는 일이다. 매일 매일 반복되는 그 일상에 즐거움을 되돌려주는 일. 그것은 소소해 보이지만 또 그것만큼 거대하고 거창한 일은 없다.

외국인 근로자와 청년 실업은 어떻게 만났나

육상효 감독의 영화는 어딘지 사람 냄새가 난다. 첫 단편작이었던 '슬픈 열대'가 그랬고, 시나리오로 청룡영화상, 대종상, 백상예술대상에서 상을 받았던 '장미빛 인생'이 그렇다. 그는 사회의 그늘 속에 가려진 낮은 존재들을 프레임 속에 넣어 그들이 얼마나 반짝반짝 빛나는 존재인가를 보여준다. '방가 방가'가 비추는 그늘은 두 가지다. 하나는 지옥 같은 취업전쟁 속에 스펙 없이 내던져진 고개 숙인 청춘이고, 다른 하나는 인권 사각지대에 놓여진 외국인 근로자들이다.

영화는 마치 '폭소클럽'에서 "사장님 나빠요"하고 외국인 노동자를 흉내냈던 블랑카(정철규)처럼 외국인 특유의 말투가 주는 웃음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그 자리에 누가 봐도 한국 사람인 김인권이 얼굴을 들이민다. "저는 부탄 사람입니다"하고 꺼내는 그의 말은 그 '내추럴 본 동남아 삘'이 나는 김인권의 얼굴 때문에 빵 터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는 스펙 없이, 그럴 듯한 외모 없이 취업이란 언감생심인 우리 사회의 차가운 현실이다.

취업이 안돼 부탄 사람으로 위장해 외국인 노동자로 취업하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은 결코 웃을 일이 아니다. '나는 부탄사람입니다'라는 말에는 먼저 웃음이 묻어나지만, 한국인이 한국 사람이라 말하지 못하게 된 그 현실은 눈물 나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의 시선은 이 낮은 자들의 생고생담을 리얼하게 보여주면서 풍자의 웃음을 이끌어낸다. 부탄 사람으로 위장한 방가(김인권)는 취업한 의자 공장에서 심지어 외국인 노동자의 구박을 받으며 생활한다. 그러면서 이 청년 실업자와 외국인 노동자는 그 낮은 위치에서 맞이하는 똑같은 사회의 냉대를 공감하게 된다.

인간 취급 받지 못하는 건, 취업을 못하는 청년 실업자들이나, 또 취업을 했다고 해도 외국인 노동자들처럼 온갖 착취를 당하면서 하루하루를 불안하게 살아가는 비정규직이나 다르지 않다. 영화는 이처럼 가장 낮은 지대에서 현재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노동의 문제를 바라본다. 하지만 놀라운 건 이 결코 가볍지 않은 문제들에 의해 영화가 지나치게 심각해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육상효 감독의 따뜻한 시선과 김인권이라는 배우가 가진 발군의 코믹 연기는 영화를 보는 내내 웃음을 터트리게 하고, 또 가슴 한 구석을 따뜻하게 만든다. 영화의 압권(?)이라고 할 수 있는 방가가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욕 강의'를 하는 장면은 이 낮은 자들의 심정을 담아내면서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욕 먹기를 밥 먹듯 하며 살아왔으리라 짐작되는(그래서 그들은 그토록 욕에 익숙하다) 그들이 거꾸로 욕을 배워 욕하던 이들에게 되돌려주는 통쾌함. '강아지 계열 17번'에 해당하는 욕은 어쩌면 이 힘없는 이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하지만 강력한 저항처럼 여겨진다.

물론 영화는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 현실에 침잠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판타지라고 할 수 있을 법한 전망을 보여주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전하려는 주제의식은 전혀 훼손되지 않는다. 즉 실컷 웃은 뒤에 남는 진한 가슴 저림은 이 영화의 전망이 하나의 현실이었으면 하는(그러나 현실은 결코 그렇지 않은) 깊은 바람에서 나오는 것이다.

김인권이라는 배우는 어쩌면 이 영화 속 방가가 느꼈던 그 감정을 영화판에서 느꼈을 지도 모르겠다. 꽃미남이 아니면 주연이 될 수 없는 세상에서 늘 주변에서 머물렀던 그가, 영화 속에서 "나는 한국사람 입니다. 한국에서 일하고 한국에서 돈 벌고 한국에서 밥 먹고 살아가는 나는 한국사람 입니다."라고 말할 때, 그 '한국사람'이라는 지칭이 마치 '배우'로도 들리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 주변인들, 즉 외국인 근로자나 스펙 없는 청년 실업자 그리고 김인권처럼 만년 감초로 불리던 배우가 주연이 되는 영화. '방가 방가'가 유쾌한 건 그 전복이 주는 통쾌함 때문이다.

'슈퍼스타K'가 배출해야할 슈퍼스타는 어떤 가수일까

장재인이 기타 하나 달랑 들고 나와서 "바닥이 더 편해요"하며 털썩 주저앉아 또박또박 가사를 음미하듯 노래할 때, 아주 오랜만에 가슴 한 켠을 가득 채우는 어떤 설렘을 느낀 것은 거기에서 '음악'을 보았기 때문이다. 일렉트릭 사운드와 현란한 댄스, 그리고 음악 자체는 물론이고 비주얼조차 점점 찍어낸 듯 비슷비슷해진 작금의 가요계에서 그 노래를 들으며 어떤 정서적 감흥을 느끼기란 실로 어려운 일이 되었다. 아마도 음악이라기보다는 프로듀서에 의해 잘 포장된 하나의 음악상품을 보는 것 같은 느낌 때문일 것이다.

심사위원으로 경쟁자들을 심사하던 윤종신이 한 후보자에게 "당신은 좋은 프로듀서를 만나야 될 것"이라는 지적은 작금의 현실을 잘 말해주는 것이다. 목소리나 가창력 자체가 가진 거칠지만 독특한 개성은 작금의 가요계에서는 프로듀싱 되는 과정에서 연마되기 마련이다. 좀 더 폭넓은 대중을 상대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강렬한 개성 자체보다,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보편적인 어필이다. 원석은 아무리 크다고 해도 연마되어 상품화되지 않으면 아무런 가치가 없다.

'슈퍼스타K'는 이승철이 매번 입에 달고 말하는 것처럼, "프로가 될 사람을 뽑는 자리"다. 따라서 아마추어들의 실력 없는 치기는 모두 '불합격'을 받기 마련이다.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130만 명이 넘는 경쟁을 뚫고 11명에 안착한 생존자들(?)은 이미 어느 정도 기본적인 실력을 갖춘 이들이다. 포크를 하는 장재인이나 김지수는 바로 그 포크라는 장르가 갖는 어쿠스틱한 매력을 통해 자신들의 음악성을 드러내고, 존박의 재즈적인 느낌마저 주는 R&B 스타일이나 허각의 감성적인 발라드 역시 그들만이 가진 개성적인 보컬에 의해 평이해 보이는 음악조차 돋보이게 만들어낸다.

중요한 것은 이미 실력도 갖추었고, 인지도도 갖춘 이들이 실제로 가요계에 슈퍼스타로 자리하는 문제일 것이다. 작년 '슈퍼스타K'가 배출한 가수들은 슈퍼스타K가 된 서인국, 박세미, 길학미 등이다. 어느 정도 인지도는 갖고 있지만 이들이 말 그대로 슈퍼스타인지는 의문이다. 물론 작년 '슈퍼스타K'는 올해처럼 많은 스타성 있는 후보들을 배출해내지 못한 결과가 크다. 만일 이런 상황이 올해도 반복된다면 이것은 '슈퍼스타K'라는 프로그램의 정체성에 흠집을 낼 것이다. 아무리 '슈퍼스타K'가 되도 실제로 슈퍼스타가 배출되지 않는다면 그 오디션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슈퍼스타K'에 의해 실력을 검증받고 인기도 얻은 이들이 진정한 슈퍼스타로 서는 과정에는 반드시 상품화의 과정을 거치게 마련이다. 이른바 되는 음악과 되는 스타일을 잘 알고 있는 프로듀서들이 이 개성 넘치는 신인들을 어떻게 상품화시키느냐는 문제는 실로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개성은 무시될 수도 있고, 어울리지 않는 옷을 억지로 껴입을 수도 있다. 개성 있고 실력 있는 가수들이 프로듀싱 과정에서 색깔을 잃어버리는 건 천편일률적인 가요시장의 흐름과 거기에 편승하려는 제작자들의 잘못된 마인드 때문이다.

아직 '슈퍼스타K'를 뽑는 오디션이 끝나기도 전에 거기 참가한 이들이 앞으로 걸어갈 길에 대한 섣부른 걱정이 앞서는 것은, 오디션 과정에서 어떤 설렘까지도 던져주었던 날 것의 개성 넘치는 후보자들의 노래와 스타일이 훗날 프로듀싱 과정에서 똑같은 상품으로 찍혀 나오면 어쩌나 하는 우려 때문이다. 제발 장재인이 지금처럼 털털하게 바닥에 앉아 기타 하나 들고 노래하는 모습을 앞으로도 계속 보고 싶기 때문이며, 김지수가 특유의 소울 가득한 목소리로 포크를 하는 모습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이들이 댄스가수들 속에 들어가 춤을 추고 전자음 가득한 음악을 부르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도 우리나라 가요시장에서 버텨내려면 가장 상품화가 잘 되는 댄스음악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일 시장이 진정 이렇다면 그것은 시스템이 잘못된 것이다. 어쿠스틱한 노래 하나로도 충분히 화제가 되고 인기를 끌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슈퍼스타K'는 그런 점에서 보면 우리네 가요시장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아이돌 그룹이 거의 장악해버린 가요 순위 프로그램들은 몇 분 안 되는 시간 동안 무대 위에서 자신들을 어필하기 위해 댄스와 자극적인 음악을 선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슈퍼스타K' 같은 무대는 자연스럽게 스토리가 엮일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좀 더 다양한 음악 스타일이 대중들에게 어필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필요하다면 무대를 바꿔야지, 무대에 맞춰 가수들을 바꾸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원석을 세공할 때, 비죽비죽 삐져나온 부분은 잘려져 버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것은 보석에 대한 비유일 뿐, 한 사람의 가능성을 똑같이 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 정사각형을 둥그런 원으로 만드는 방법은 각을 잘라내는 방법도 있지만, 사각형 바깥으로 두툼한 원을 덧붙이는 방법도 있다. 날 것의 강렬한 개성을 버리기보다는 좀 더 감싸서 두드러지게 어필하는 방식은 어쩌면 지금 막 가요계로 발을 딛고 있는 이들 11명의 후보자들에게 필요한 일일 것이다. '슈퍼스타K'가 오디션 과정에서 보여주었던 진정한 음악인들의 다듬어지지 않았어도 그대로 느껴지던 그 묵직한 진정성의 감동을 오래도록 느끼고 싶다. 만일 이렇게 된다면 상품성과는 별개로 '슈퍼스타K'는 이 시대에 진정한 슈퍼스타를 뽑는 대회로서 자리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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