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우시절', 멜로를 넘어 삶을 관조하다

"그땐 참 좋았었지"하고 말하는 자의 눈빛은 쓸쓸하다. 시간은 그 좋았던 시절이 늘 좋은 시절이 되게 놔두질 않는다. 흘러가고 흘러가면서 시간은 심지어 그 좋았던 시절의 기억마저 마모시킨다. 그러니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건, 누군가의 잘못이 아니라 바로 그 무차별로 흘러가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허진호 감독의 다섯 번째 멜로, '호우시절'은 바로 이 시간을 응시하면서 과거의 기억으로만 존재하는 좋았던 시절을 현재진행형으로 돌려놓는 영화다.

영화는 출장을 가게 된 박동하(정우성)가 이제 막 중국 청두에 내린 비행기 안에서 시차에 맞게 시계를 돌려놓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그것은 앞으로 벌어질 시간여행(?)에 대한 짧은 암시다. 그 여행은 대나무 숲길을 걸어가는 휴식 같은 여행이자, 두보의 시집을 들고 가는 사색의 여행이자, 그 길에서 우연히 만난 과거의 좋은 기억 같은 설렘의 여행이면서, 그 위로 갑자기 쏟아져 내리는 감정의 폭우 같은 여행이다.

박동하가 청두 땅에서 우연히 메이(고원원)를 만나 보내게 되는 3박4일은 우리가 살아가는 일산의 시간과는 전혀 다른 밀도를 보여준다. 그 3박4일 속에는 박동하와 메이가 과거로 묻고 살아가는 미국 유학 때의 좋은 시절이 들어있고, 그 이후 어찌 어찌 하다가 시를 포기하고 직장생활에 안착해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된 박동하의 시간이 들어있으며, 중국으로 돌아와 불행을 겪고 여전히 그 불행의 시간 속에 살아가는 메이의 시간이 들어있다.

영화는 이 중첩된 시간들을 박동하의 시선으로 관조하면서 삶의 어떤 깨달음 같은 것을 살짝 보여준다. 박동하와 메이가 우연히 만나게 되는 공간이 메이가 가이드로 일하는 두보초당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두보는 이처럼 이 영화의 공간이면서 두 사람을 다시 만나게 해주는 시간이고, 또 그 공간과 시간 위에 흐르는 삶에 대한 관조이기도 하다. '호우시절'이라는 제목은 두보의 시, '춘야희우(春夜喜雨)'의 첫 구절인 '好雨知時節(호우지시절-좋은 비는 때를 알고 내린다)'에서 따온 것이다.

이 화두 같은 싯귀는 메이가 말장난처럼 동하에게 하는 질문, 즉 "꽃이 피니 봄이 오는 걸까. 봄이 오니 꽃이 피는 걸까."라는 말과 조우하면서, 이 두 사람의 만남과 사랑의 감정을 보다 보편적인 인간의 삶과 연결시킨다. 허진호 감독의 멜로가 여타의 멜로와 다른 점은 그 속에 남녀 간의 아주 사소해 보이는 사랑을 그려 넣으면서도 그 위에 삶을 관조하는 시간을 부여한다는 점일 것이다.

'호우시절'은 그 멜로를 통한 삶의 관조라는 어찌 보면 균형 잡기 힘든 그 줄타기를 가장 자연스럽게 하고 있는 영화로 보인다. 마치 출장길에서 잠시 일을 벗어나 여유로운 여행자의 마음을 만끽하는 자의 그것처럼 이 영화에 대한 허진호 감독의 시선은 충분히 어깨에 힘을 뺀 편안함이 묻어난다. 영화 내내 정우성과 고원원이라는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배우들과 함께 편안하고 달콤한 여행을 떠나는 듯한 느낌이 전해지는 것은,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바로 이 허진호 감독의 편안해진 영화의 걸음걸이 탓이다.

이 선남선녀의 자연스러운 만남과 헤어짐 위에서 두보의 시는 입가에 저절로 미소를 짓게 만드는 삶에 대한 어떤 울림을 전해준다.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서로 다른 언어를 쓰며 각자의 삶을 살아가던 그들이 같은 시간과 공간에 서서 같은 언어를 소통하며 사랑하게 되는 바로 그 순간이, 한때 과거의 것으로 치부해두고 마모시키고 있었던 바로 그 '좋은 때'라는 것. 즉 좋은 비가 때를 알고 내리는 것이 아니라, 좋은 때가 그 비를 좋게 느끼게 하는 것이다.

'호우시절'은 바로 그 좋은 때로 우리를 인도해, 일상의 시간이 갉아버린 그 촉촉한 감성의 시간을 충분히 우리의 머리 위로 뿌려주는 영화다. 그러니 이 두 시간이 채 안 되는 시간여행은 우리의 좋은 때를 떠올리게 하는 여행이자, 현재를 좋은 때로 바꿔주는 여행이기도 하다.

신조어 속에 숨겨진 세태

드라마 '결혼 못하는 남자'가 방영될 때, 우리는 초식남이라는 신조어를 듣게 되었다. 초식남. 풀만 먹는 남자를 지칭하는 말이 아니다. 위키디피아의 정의를 보면, 초식남은 '남성다움(육식적)을 강하게 어필하지 않으면서, 주로 자신의 관심분야나 취미활동에는 적극적이나 이성과의 연애에는 소극적인 남성을 일컫는 말'이다. 초식남과 함께 고개를 든 신조어가 건어물녀다. 이 신조어는 2007년 방영된 일드 '호타루의 빛'의 주인공인 호타루라는 여성에게서 비롯된 말이다. 일 잘하고 능력 있는 여성이지만 연애에는 도통 관심이 없어 퇴근하고 나면 후줄근한 트레이닝복에 대충대충 살아가는 싱글 여성을 뜻하는 말이다. 연애세포가 말라 건어물처럼 되었다고 해서 건어물녀라고 불린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우엉남, 토이남, 품절남, 엣지녀, 인상녀, 짐승남... 이 끝없는 신조어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생겨나는 양상이다. 그리고 그런 신조어들 옆에는 늘 연예인들의 이름이 달라붙는다. 오지호는 대표적인 우엉남이고, 유희열은 토이남, 빅뱅의 탑은 짐승남... 이런 식이다. 신조어가 어떤 트렌드를 대표한다는 점에서 연예인들은 어떻게든 이 신조어와 만나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이러한 신조어가 붙는 연예인들은 뜨고 있는 연예인을 표상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

복잡한 세상, 정리가 필요해
이렇게 ○○남, ○○녀처럼 어떤 특정 성향을 가진 이들을 지칭하는 신조어들은 최근에 갑자기 나타난 경향은 아니다. 과거에도 신세대, X세대, 와인세대 같은 세대를 지칭하는 신조어들이 있었고, 오렌지족, 낑깡족, 야타족 같은 족속들을 지칭하는 신조어들이 있었다. 깊게 들여다보면 그 신조어들은 다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각기 조금씩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그것은 과거처럼 성별의 구분이 되어있지 않은 신조어들과 달리, ○○남, ○○녀 같은 최근 신조어들은 남성과 여성을 마치 성별 구분하듯 나누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또 이러한 신조어들이 한번 나오면 일정 기간 동안 홀로 트렌드를 유지하던 과거와는 달리, 요즘은 거의 매일같이 새로운 신조어가 쏟아져 나온다는 것도 다른 점이다.

먼저 남성과 여성이 나누어지는 양상은 그만큼 성별이 동등하게 자신들의 개성을 드러낼 정도로 다채로운 성향이 구분되는 사회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을 에둘러 말해준다. 그리고 여기에 하나 덧붙여지는 것은 ○○남, ○○녀 같은 용어들이 그 자체로 재미있는 놀이의 성격을 갖는다는 점이다. 이러한 신조어들은 현재 인터넷이라는 공간 속에서 특정 부류와 특정 성향을 분류하는 놀이가 하나의 트렌드가 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러한 놀이성은 신조어들이 폭발적으로 쏟아지는 이유를 어느 정도는 설명해준다.

하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왜 이런 놀이가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는가 하는 질문을 통해서야 비로소 알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인터넷이라는 공간으로 표면화 되는 사회의 복잡성이 그 원인을 제공한다. 물론 사회는 예전부터 복잡했지만, 인터넷이라는 공간은 다른 매체와 달리 복잡한 사회의 구석구석에 있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저마다의 개성을 드러내는 곳이다. 그러니 그 다양한 성향과 특징들이 몇 마디로 정리되고 구획되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요구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다양한 별종들이 공존하는 세상
중요한 것은 이렇게 신조어로 정리되는 성향들이 갖고 있는 독특함이다. 신조어가 만들어지는 조건 중 독특함이나 특별함은 가장 중요한 요건이다. 그것을 듣고 신기하다거나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평범한 신조어는 그저 사장될 뿐이다. 초식남을 예로 들면 과거에는 이런 성향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구석이 많았다. 남성이 남성다움을 어필하지 않고 연애에도 그다지 관심이 없는 인물은 별종으로 여겨지곤 했다.

가부장적 사고관이 지배했던 사회는 다양한 성향을 배제하고 누구나 따르기를 요구되는 성향이 획일적으로 제시됐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런 과거의 별종들은 이제는 다양성의 품속으로 들어와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심지어는 그 성향에 대한 공감대까지도 넓혀나간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초식남이나 건어물녀로 지칭되는 이들이 과거 신세대나 X세대처럼 다수의 트렌드를 반영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과거의 신조어가 구획하는 인물군들이 소품종 다수를 지칭했다면, 지금은 다품종 소수를 지칭하는 경향이 짙다.

즉 특이한 성향을 가진 소규모 집단들이 생겨나고 있고 그 특이한 성향에 대한 거부보다는 수용하는 자세가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다양성의 추구의 또 다른 얼굴이다. 인터넷은 이제 다채로운 인간군상들을 서로서로 뽐내듯 드러내고 또 인정하는 다양성 게임의 재미에 빠져있다는 것. 획일적인 과거를 생각해보면 그것을 하나하나 깨부수는 이 작금의 다양성 게임이 주는 매력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신조어, 시대를 읽는 기호 혹은 상품을 위한 포장
하지만 이처럼 다양성의 한 양상으로 나타나는 신조어들을 그저 긍정적인 것으로만 치부해도 좋을까. 문제는 과거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그러한 발 빠른 마케터들의 상품 판매를 위한 성향에 대한 선점이다. 신조어는 때로는 자생적으로 생긴다기보다는 이해관계를 가진 특정인들에 의해 제시되고 배포되어 조장된다는 점이다. 실제로 신세대니 X세대니 와인세대니 할 때 그 용어들은 새롭게 부상하는 개성을 가진 이 세대들을 특정 감성을 가진 상품 마케팅의 영역으로 묶어두는 방식으로 활용된다.

상품의 구매가 멋져 보이는 세대로의 편입으로 이어지는 심리적인 효과를 유발시키기 위함이다. 이런 세대나 성향을 구획하는 신조어들이 가진 마케팅 경향은 지금에도 달라진 것이 없다. 이것을 쉽게 알 수 있는 것은 인터넷에 한 신조어를 검색해보는 것이다. 초식남이나 건어물녀라고 치면 그 키워드를 가진 무수한 상품들과 회사들이 줄줄이 창에 떠오르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신조어들이 다양해진 것은 현재의 다원화된 사회 속에서 상품 마케팅 역시 좀 더 구체적이고 다양해진 특정 세력들을 겨냥한다는 점을 말해준다. 즉 이 시대는 다양한 개성들에 맞추는 맞춤 생산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시대다.

신조어는 이처럼 작금의 시대를 읽어낼 수 있는 기호로서 존재하면서, 동시에 산업과 만나면서 거꾸로 사회에 제시되기도 하는 마케팅의 그물이기도 하다. 그러니 자신은 가만히 있지만 어느 순간, 어떤 부류로 분류될 때 그것은 자신이 이미 어느 그물 속에 들어가 있다는 얘기다. 신조어가 갖는 다양성의 놀이에 빠지는 것은 긍정적일 수 있으나, 그 상품성의 그물에 걸려드는 것은 조심해야 될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신조어를 표상하는 연예인이라는 존재 역시 마찬가지다. 연예인을 지칭하는 신조어는 그 시대를 읽어내는 기호로 읽히기도 하지만, 또 거꾸로 연예 비즈니스를 위해 만들어지고 조장되는 것이기도 하다.

'미남이시네요', '꽃보다 남자'일까, '커피 프린스 1호점'일까

선망의 대상이 되는 멋진 꽃미남들. 여성들이 들어갈 수 없는 그 금남의 공간에 남장여자로 들어가는 여성. 새로운 수목드라마 '미남이시네요'에서 먼저 떠오르는 건 '커피 프린스 1호점'이다. '커피 프린스 1호점'이 왕자님들이 모여 있는 금남의 커피 전문점으로 성별을 숨긴 채 여자 주인공이 들어갔다면, '미남이시네요'에서는 여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남성 아이들 그룹 속으로 역시 남장여자인 주인공이 들어간다.

여 주인공인 고미남(박신혜)이 본래 수녀였다는 점은 이 아이들 그룹이라는 금남의 공간에서 앞으로 벌어질 우정과 애정을 넘나드는 로맨스를 더욱 강력하게 만든다. '미남이시네요'라는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이 드라마는 이른바 '꽃미남 드라마'의 계보를 잇고 있다. 국내최고의 인기그룹 A.N.JELL의 멤버들은 저마다의 개성을 갖고 있는 꽃미남들이다. 황태경(장근석)은 능력과 카리스마를 겸비한 인물이고, 제르미(이홍기)는 웃는 모습이 예쁜 꽃미소 꽃미남이라면, 강신우(정용화)는 웃지 않는 꽃미남이다.

이 꽃미남들의 면면은 '꽃보다 남자'의 F4를 연상시킨다. 이른바 '꽃미남 드라마'라는 지칭은 '커피 프린스 1호점'이 방영되었던 시기만 해도 어색한 것이었지만, 올 들어 일련의 꽃미남들이 쏟아진 드라마들을 통해 이제는 어떤 계보를 형성하는 느낌이다.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이민호)는 '내조의 여왕'의 30대 구준표 윤상현 신드롬으로 이어졌고, 그 윤상현과 '커피 프린스 1호점'의 윤은혜는 여성판 '꽃보다 남자'라는 '아가씨를 부탁해'에서 만났다. '미남이시네요'는 그 연장선 위에 서 있는 드라마라고 볼 수 있다.

도대체 무엇이 우리 드라마를 온통 꽃미남의 세상으로 만든 것일까. 그것은 꽃미남이 드라마에 부여하는 판타지가 가진 파괴력을 먼저 들어야 할 것이다. 주 시청층인 3,40대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꽃미남들은 향수어린 순정만화 속 판타지를 그 드라마 속에서 찾게 만든다. 어딘지 구질구질한 현실이 삭제된 그 공간 속에서는 여성들이 원하는 모든 판타지가 꽃미남들과 함께 구현될 수 있다.

물론 과거에도 꽃미남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최근 들어 나타나는 경향은 마치 게임을 하듯 꽃미남을 아예 전면에 내세운다는 점이다. 순정만화 속에서 갓 밖으로 튀어나온 듯한 이들 꽃미남들에게서 현실성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현실과는 상반된 세계 속에 살아가는 듯한 그들은 상대적으로 보잘것없고 지극히 현실적인 여성을 중심으로 포진해 그녀를 꿈꾸게 만든다. 이 비현실성과 현실성의 부조화가 판타지를 만들어내는 핵심이다. TV 이편에 앉아있는 시청자를 TV 저편의 세계와 이어주는 역할.

드라마가 현실에 부재한 판타지를 충족시키는 기능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꽃미남 드라마'의 계보화를 탓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것이 어떤 공식처럼 굳어지는 것은 그다지 좋은 현상은 아니다. 또한 '꽃미남 드라마'는 어떤 선망의 대상을 다루기 때문에 그 위에 손쉽게 상업적인 덧칠이 가능해진다. 드라마의 구도가 공식처럼 세워지고, 그 공식 위에 역할 놀이 하듯 꽃미남들이 포진된 상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마치 이들이 패션쇼라도 하듯 드라마가 상품의 전시장이 되고 마는 것은 이 드라마들이 갖는 상업적인 편향을 잘 말해준다.

물론 '미남이시네요'가 이른바 '꽃미남 드라마'들이 걸어가는 그 계보를 따라갈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 매력적인 소재를 가진 드라마가 '꽃미남 드라마'들이 가는 그 길 밖으로 도드라져 나오기를 기대하는 마음이다. 적어도 지나치게 꽃미남을 표방한 '꽃보다 남자'보다는, 그래도 그 속에 여성들의 꿈을 잘 담아냈던 '커피 프린스 1호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아니 그 이상을 뛰어넘을 수 있다면 더더욱 좋겠다.

 '강심장', '야심만만2'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강심장'은 시작 전부터 이미 화제를 모았다. 대결형식의 신개념 토크쇼. 이승기의 첫 MC 도전. 게다가 무엇보다 주목을 끌게 만든 '강호동쇼'라는 지칭. 항간에는 이미 강호동이 MBC에서 하고 있는 '무릎팍 도사'와 콘셉트가 겹치게 될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왔다. 하지만 이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베일을 벗은 '강심장'은 일단 '무릎팍 도사'에 가깝다기보다는 '스타킹'이나 '세바퀴'에 가깝고, 일단 강호동쇼라고 하기에는 형식 자체가 강호동에 집중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강심장'은 '세바퀴' 형식의 집단 토크쇼에 배틀 개념이 부가된 토크쇼다. 스튜디오에 일정한 배치로 앉아있는 세대와 성별을 넘어서는 다양한 출연진들, 그들이 쏟아내는 거침없는 사생활 고백, 간간이 보여주는 몸 개그가 접목된 퍼포먼스들. 이제 토크쇼의 새로운 경향으로 제시되고 있는 이런 형식 속에 강호동이 서 있다는 점이 다르다면 다른 점이다. 강호동은 '스타킹'에서 보여주었던 특유의 리액션으로 게스트들의 토크에 힘을 불어넣어주기도 하고, 게스트들에게 멍석을 깔아주기도 하며, '야심만만'에서 보여주었던 특유의 감각으로 게스트의 숨겨진 이야기를 술술 이끌어낸다.

이승기는 아직까지 적응이 덜 된 상태이지만 첫 MC 도전이라는 타이틀이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이미 드라마, 예능, 가수로서 성공한 그가 MC라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한다는 것 자체가 일단 화제를 끌기 마련이고, 실제로 이승기가 가진 젠틀하면서도 엉뚱한 모습은, MC라고 하면 늘 보던 얼굴들이 하는 늘 비슷한 모습들과는 다른 신선함이 있다. 무엇보다 이승기가 갖고 있는 폭넓은 팬층은 그가 그 자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토크쇼에 어떤 힘을 불어넣는다.

여기에 대거 출연자들이 갖는 배틀 형식의 토크쇼가 갖는 장점이 한 몫을 차지한다. 이제는 토크쇼의 대세로 굳어져가고 있는 이런 형식의 특징은 그 자체로 경쟁적인 토크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개그콘서트'가 흘러가는 시간 위에서 편집되지 않기 위해 경쟁하는 구도라면, '강심장' 같은 형식은 같은 공간 위에서 묻혀버리지 않기 위해 하는 경쟁 구도다. 강한 인상을 주지 않으면 거기 있었다는 사실조차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토크는 강해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 경쟁 구도로 인해 어떤 게스트는 아예 말 한 마디 못하고 묻혀버리기도 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첫 방송이 된 '강심장'에서 김영호는 단 한 마디 없이 자리만 지키고 앉아있는 신세가 되었다.

화려한 출연진과 강호동, 이승기라는 맨 파워, 그리고 무엇보다 시작 전부터 강호동쇼로 화제가 된 점. 이런 것들이 모여 일단 시청률에서는 성공적이다. 토크쇼 첫 방으로는 꽤 높은 17%대의 시청률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토크의 형식이나 내용은 어디에서 많이 보았던 것들을 뒤섞어 놓은 것처럼 신선함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특히 거의 사생활 폭로에 가까운 내용들과 재미 그 이상을 발견하기 어려운 자극적인 토크들이 대부분인 점은 못내 아쉬운 점이다. 또한 특별한 '강호동쇼'를 기대했던 분들이라면 그 기대감에 못 미치는 형식이나 내용에 실망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강심장'은 나름 가능성도 있는 토크쇼다. 비슷한 형식이라고 해도 그것을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첫 방은 아무래도 시선을 끌어야 하니 자극적인 사생활 토크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야심만만2'가 겪었던 실패의 경험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공감 없는 자극적인 대결구도의 이야기만으로는 절대로 토크쇼로서 성공하기가 어렵다는 사실 말이다. 이미 진영은 갖춰져 있다. 다양한 세대가 함께 앉아 있기 때문에 그 안의 토크들이 경쟁구도 이상의 훈훈함을 가져가준다면 세대를 넘어서는 공감의 소통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수 있다. '강호동쇼'가 아닌 익숙한 토크쇼의 강호동 버전이 된 '강심장'은 이제부터가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소통의 토크쇼가 되느냐 아니면 그저 그런 사생활 토크쇼의 연장이냐는 앞으로의 행보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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