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성 + 아이템 + 시스템

본래의 시간대였던 9시로 돌아온 ‘개그콘서트(이하 개콘)’의 상승세가 심상찮다. 올해 초 한 시간 뒤로 밀리면서 10% 초반대의 시청률에 만족하던 것이 이제 20%대를 넘어서고 있다. 불황에 개그 프로그램은 호황이라는 말이 있지만 경쟁 프로그램들인 ‘웃찾사’나 ‘개그야’가 고전하고 있는 상황에 ‘개콘’의 약진은 어딘지 특별해 보인다. 도대체 무엇이 ‘개콘’을 이렇게 특별하게 만드는 것일까.

9시 대로 돌아온 편성, 넓어진 시청층
‘개콘’이 주말 9시로 복귀되었다는 사실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다. 프로그램 성격상 너무 늦은 시간대는 젊은 시청층들의 호응을 끌어내기가 어렵기 때문. 타방송사와의 뉴스와 겹치는 이 9시라는 시간대는 과거에도 ‘개콘’만이 가진 성공적인 편성 전략이었다. 주말의 뉴스라는 것이 주중의 그것과는 달라서 주목도가 그만큼 떨어지는 상황에, 요즘처럼 하수상한 뉴스들이 쏟아져 나오는 시기에는 차라리 ‘개콘’처럼 잠시 현실을 잊고 한바탕 웃기를 바라는 게 인지상정. ‘개콘’의 9시 복귀는 사회적 상황과 절묘하게 어우러져 그 힘을 제대로 발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SBS의 ‘웃찾사’는 시간대가 1시간 늦춰진 금요일 10시로 편성되었다. 사실상 금요일이라는 특수성, 즉 ‘주5일 근무제’시대를 맞아 대부분이 TV앞에 자리를 하지 않는 이 상황은 그 시간대에 편성된 프로그램들의 어려움을 예고한 바 있다. 경쟁작이 없는 금요일의 그것도 두 시간 연속 편성되는 금요드라마가 결국에는 폐지된 것은 이러한 상황을 에둘러 말해준다. 한편 MBC의 ‘개그야’는 토요일 12시까지 시간대가 밀려났다. 사실상 ‘개그야’의 전성기는 ‘주몽’이 시청률 패권을 쥐고 있을 때, 이어서 월요일 11시에 방영되던 때였다. 하지만 ‘주몽’이 끝나고 점점 시들해진 ‘개그야’는 편성에서 이리 저리 방황하는 유목민 신세가 되었다.

공감 아이템, 깊어진 공감대
‘개콘’만이 가진 강점은 실험적이면서도 동시에 공감할 수 있는 아이템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난... 했을 뿐이고!’라는 유행어로 주목받고 있는 안상태는 그 대표주자라 할 수 있다. 그는 답답하고 억울한 현 시대의 절박한 상황을 기자라는 입을 빌려 콕 집어냄으로써 대중들의 공감을 얻어냈다. 이밖에도 ‘황현희 PD의 소비자고발’은 과대포장되기 일쑤인 믿기 어려운 세상을 막무가내로 고발하는 그 까칠함을 통해 대중들의 밑바닥에 깔려있는 앙금을 속시원히 털어낸다.

‘도움상회’ 역시 사회적인 사건들에 대한 불만사항을 상조전문CF를 패러디해 비판하고 있으며, ‘로열패밀리’는 상류층인 척 행동하는 거지가족을 통해 한편으로는 현실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거꾸로 상류층의 특권의식을 꼬집는다. ‘할매가 뿔났다’, 혹은 ‘박대박’같은 코너는 소통되지 않는 상황을 통해 웃음을 전달한다. 이처럼 ‘개콘’의 강점은 시대의 트렌드를 재빠르게 개그 코너로 끌어들이는 순발력에 있다.

보다 안정적인 시스템
‘개콘’이 이처럼 순발력 있는 대응을 할 수 있는 힘은 그 안정적인 시스템에서 나온다. 무대개그의 경쟁시스템을 최초로 도입한 ‘개콘’은 늘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넘쳐난다. 단 몇 분 몇 초라도 자신을 내보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이 시스템은 어찌 보면 개그맨들에게는 가혹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개콘’은 이미 이 시스템을 통해 많은 스타들을 발굴한 전적이 있다. 박준형, 정종철, 정형돈, 유세윤 같은 무대 밖에서도 정력적으로 활동하는 스타들의 면면은 그대로 후배 개그맨들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도 강력한 자극이 된다.

게다가 경쟁만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시스템에도 선후배 개념의 끌어주고 밀어주는 보이지 않는 손들이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시스템 자체를 좀더 공고하게 만들어주는 ‘개콘’만이 가진 힘이 아닐 수 없다.

‘개콘’의 승승장구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먼저 시기적으로 잘 맞아떨어진 편성시간대의 변경은 시청층이 세대별로 다양하게 존재하는 ‘개콘’에 힘을 실어주었다. 시청층은 그만큼 넓어졌다. 게다가 어려운 사회환경은 ‘개콘’만이 가진 순발력 있는 개그의 즉각적인 소재가 되어 주었다. 그만큼 공감의 폭은 더 깊어졌다. 그리고 오래 지속되면서 공고해진 시스템은 넓어진 시청층과 깊어진 공감대를 생산해내는 원천적인 힘이 되어 주었다. 이것이 웃음이 사라진 세상 속에서 더욱 웃겨진 ‘개콘’만의 인기비결이다.

‘종합병원2’보다 ‘하얀거탑’에 끌리는 이유

‘종합병원2’의 정하윤(김정은)이란 캐릭터에 대해 말들이 많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캐릭터인데다가, 어떠한 끌리는 면모도 발견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자 당연히 그 역할을 연기하는 김정은에게도 화살이 날아간다. 실제로 ‘종합병원2’의 김정은이 연기하는 정하윤이라는 옷은 잘 어울리지 않는 면이 있다.

드라마 초반의 정하윤이란 캐릭터는 좀 과장된 성격으로 김정은이 지금껏 빛을 발해왔던 코믹 연기와 잘 어울리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이 캐릭터가 초반부의 발랄함에서 어느 순간 진지해지는 시점에서부터(바로 이 시점부터 캐릭터에 대한 매력도 떨어졌다) 연기자와 캐릭터 사이에 균열이 생겼다. 도대체 왜 주인공이 매력이 떨어지는 이런 상황이 생긴 걸까.

정하윤은 의사이면서 변호사의 마음을 갖고 있는 복합적인 성격의 캐릭터다. 변호사로 일해왔으나 아버지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의사가 되는 이 인물은, 병을 고치는 의사이면서도 그 의사의 의료행위를 감시하게 되는 변호사의 입장을 동시에 갖게 되면서 동료 의사들과 대립하게 된다. 이 드라마가 제시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이 캐릭터를 통해 명확해진다. 의사들의 의료사고 문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면서, 동시에 의사의 입장까지도 포착하려는 시도다.

하지만 의학드라마의 계보 속에서, 또 우리네 고질화된 집단적 사회 풍토 속에서 이 낯선 정하윤이라는 인물은 그다지 환영받을 만한 캐릭터는 아니다. 집단주의에 경도되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내부고발자를 보는 시선은 여전히 차갑다. 분명 이런 주제의식을 드라마로 풀어내겠다는 시도 자체는 대단히 신선한 것이다. 하지만 이 대중들에게 환영받지 못할 캐릭터를 어떻게 매력적인 캐릭터로 만들 것인가 하는 고민은 이것과는 다른 문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지금껏 ‘종합병원2’가 그려낸 정하윤이란 인물은 그다지 매력적이지가 않다는 점이다.

이미 의료사고에 대한 메시지를 건드렸던 드라마가 있다. 그것은 ‘하얀거탑’이다. 여기서는 장준혁(김명민)과 최도영(이선균)이 부딪친다. 사실 최도영은 의료정의를 구현하려는 인물이었지만 대중들은 오히려 장준혁에 더 열광했다. 그것은 이 드라마가 정의를 구현하는 내부고발자인 최도영보다는 집단주의의 희생양으로 그려지는 장준혁에 더 집중한 이유다. 장준혁에 포커스를 맞췄지만 결과적으로 이 드라마는 의료사고에 대한 메시지를 충분히 얘기했다. ‘종합병원2’가 가진 대중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캐릭터의 문제를 거꾸로 뒤집어 접근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하윤을 연기하는 김정은이라는 배우가 가진 아우라가 여전히 코믹쪽에 더 기울어 있다는 것도 이 드라마로서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이 복잡한 심리상태를 이해시키는데 적어도 배우가 어떤 틀에 갇힌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은 그만큼 어렵다는 이야기다. 물론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에서 무언가 다른 내면연기를 보여주었던 김정은이지만, TV 속에서 우리에게는 여전히 ‘파리의 연인’의 태영으로 더 남아 있는 게 사실이다. 어딘지 상큼 발랄한 이미지를 기대했던 시청자라면 정하윤이라는 매력이 떨어지는 캐릭터의 옷을 입은 김정은에게 실망감을 느꼈을 수 있다.

‘종합병원2’는 ‘하얀거탑’과 비교하면 착한 드라마다. 거기에는 의료사고에 대해 고민하고 후회하는 의사들이 자기반성의 과정을 거치는 장면들을 보여준다. 이것은 ‘하얀거탑’과는 정반대의 행보다. ‘하얀거탑’은 대신 강력한 욕망을 가진 한 인간의 질주에 더 집중하고, 그 추락의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거꾸로 의료사고에 대한 문제의식을 끌어낸다. 차이는 그 과정을 보여주는 캐릭터에 대한 대중들의 매력도다. 우리는 아직은 ‘종합병원2’의 정하윤보다는 ‘하얀거탑’의 장준혁에 더 끌린다. 어쩌면 그것이 대중들에게는 더 리얼하게 의사집단을 그려낸 것이라 여겨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실제 현실은 다를 수도 있겠지만.

‘과속스캔들’의 겸양어법 통했다

“좀 합디다.” ‘과속스캔들’에서 남현수(차태현)는 다 커서 애까지 딸린 미혼모로 찾아온 딸 황정남(박보영)이 노래하는 걸 보고는 이렇게 말한다. 이 말의 뉘앙스는 보통의 아버지가 딸에게 하는 말과는 다르다. “잘했다”도 아니고 “아직 부족하다”도 아닌 그 중간쯤에 위치한 이 말은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던지는 화법이기도 하다.

이 영화 속에서 차태현이 연기하는 남현수는 차태현이 그런 것처럼 더 이상 아이돌 스타가 아니다. 이제는 30대 중반의 연예인으로 그럭저럭 인기를 유지하고 있는 존재. 그런 그에게 갑자기 다 큰 딸이 애까지 데리고 찾아온다. 영화는 이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이질적인 존재들이 한 집에서 살아가며 좌충우돌하는 코믹을 선보인다.

재미있는 것은 이 가족 드라마적인 요소 위에 다양한 재미의 지층들을 깔아두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늘 함께 있어서 발견하지 못했던 가족들의 놀라운 면면을 발견하는 것과 같다. 그저 미혼모로만 생각되었던 황정남은 사실 노래에 재능을 갖고 있으며, 황정남의 아들 황기동(왕석현)은 피아노 천재다. 영화는 평범하게만 보였던 가족의 모습에서 비범함을 발견했을 때 느껴지는 그 기쁨의 순간들을 포착한다.

자신의 사회적인 위치 때문에 가족이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딸이 “왜 내가 없어야 하는데. 여기 있잖아 내가 여기 있는데 왜 내가 없어야 하냐고!”라고 외쳤을 때의 그 기분. 사실 늘 보석처럼 반짝이며 곁에 있었지만 그 존재를 무시해왔다는 자괴감. 그래서 잠시 사회라는 무대를 내려와 그 무대를 오롯이 가족을 위해 쓰고 싶은 이 영화의 마음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남현수가 건네는 “좀 합디다”라는 말 속에는 그 표현 자체가 어색해진 현대인들의 정서와 함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식으로든 마음을 표현하고픈 욕구가 공존한다. 한때 잘나가던 아이돌이 이제는 아저씨돌로 돌아오는 이 영화가 포착한 문화현상은 사회경제적인 분위기를 그대로 대변한다. 삶이 어려워지면 가족은 더 그리워지게 마련이다. 아이돌과 아저씨돌이 가진 이미지의 기본적인 차이는 가족의 유무에서 비롯된다.

이 영화는 또한 우리영화계가 한때 가졌었던 아이돌 시절의 화려함보다는, 이제 겸양 어린 마음을 담은 아저씨돌의 수수함을 진솔하게 드러낸다. 이 영화는 화려한 수식어로 과장 광고되던 여타의 한국영화들과는 다른 방향으로 접근했다. 그것은 오히려 3류의 냄새를 풍기면서 한껏 낮추었고, 그것은 거꾸로 의외의 재미를 통한 상승효과를 만들었다. 이것은 재미없을 것처럼 보이는 아저씨가 의외의 재미를 선사하는 토크쇼에서의 한 장면을 떠오르게 만든다.

“좀 합디다.”라는 말로 대변되는 이 영화는 그러나 조금이 아닌 꽤 많은 즐거움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차태현은 능수능란 한 코믹연기의 진수를 보여주고, 박보영은 때론 귀엽고 때론 당차며 때론 성인연기자의 모습을 보여주며, 아역으로서 왕석현은 촌철살인의 웃음과 감동을 전달한다. 이렇다할 크리스마스 영화 한 편 개봉되지 않는 작금의 영화현실, 경제현실 속에서 이처럼 힘겨워진 가족들의 어깨를 두드리는 영화는 좀체 발견하기 힘들 것이다. ‘과속스캔들’은 ‘좀’이 아닌 ‘꽤’하는 영화다.

멜로의 귀환 ‘스타의 연인’에 교차하는 우려와 기대

멜로는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었다. 다만 정체를 숨기고 있었을 뿐이다.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김명민)와 두루미(이지아), ‘이산’의 정조(이서진)와 성송연(한지민), ‘엄마가 뿔났다’의 영미(이유리)와 정현(기태영). 전문직 장르를 표방한 드라마, 사극, 가족 드라마, 그 어느 것에도 늘 멜로는 중심에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멜로가 정체를 숨겼던 것은 멜로 하면 ‘틀에 박힌 설정의 드라마’라는 등식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부터다. 하지만 그렇게 숨죽이고 있던 멜로가 이제 본격적으로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스타의 연인’이 그것이다.

어린 시절에 만났다 헤어져 오랜 세월이 흐른 후, 한 명은 화려한 스타로 다른 한 명은 가난한 시간강사로 서로 만나 사랑하게 된다는 이 설정은 고전적이다. 가깝게는 ‘노팅힐’에서 보았고 멀게는 ‘로마의 휴일’에서 보았던 그 지위의 격차를 넘는 사랑의 이야기. 늘 반복되는 이야기의 틀이지만 늘 먹히는 이야기다. 물론 여기서 반복되는 이야기란 고전적이란 의미지, 틀에 박힌 설정이란 말은 아니다. 어떻게 매번 반복되는 틀이 매번 먹히게 될까. 이유는 멜로 드라마의 관전포인트가 가진 특징 때문이다. 멜로는 그 안전한 기대감을 주는 틀을 제공하고, 각각의 드라마는 그 틀 위에 자신만의 주제의식을 외피로 갖게 된다. 따라서 진짜 포인트는 틀이 아니라, 그 틀 위에 존재하는 외피가 된다.

‘스타의 연인’이 멜로의 틀 속에 외피로 입고 있는 것은 스타라는 이 시대의 주목받는 코드와 그 스타를 바라보는 작가의 눈이다. ‘한 아이는 하늘의 별이 되고 한 아이는 땅의 풀이 되어’ 만나는 그 거리감에서부터 드라마는 시작한다. 스타를 보는 시각은 저 연예기자 전병준(정운택)이 동네 아줌마들을 모아놓고 하는 것처럼 얼토당토않은 가십들로 가득 차 있다. 가난한 시간강사인 김철수(유지태)는 연예인에 관심이 없고 모든 일에 진지하며 심각한 인물. 톱스타인 이마리(최지우)가 누군지 조차 잘 모르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이마리의 대필작가가 되면서 그녀를 이해해 가는 과정이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다.

멜로라는 안전한 구도와 그 위에 입혀지는 ‘사람에 대한 이해’라는 주제의식은 이마리와 김철수라는 두 캐릭터 사이의 긴장감으로 유지된다. 이마리가 전형적인 멜로의 캐릭터라면 김철수는 이 드라마의 주제의식을 입혀주는 캐릭터다. 김철수는 스타라면 선망의 눈을 가지는 보통의 그런 캐릭터가 아니다. 김철수에게는 이마리에 대한 선망이 없다. 다만 이마리라는 조금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스타라는 존재에 대한 호기심이 있을 뿐이다. 자기의 시선, 즉 작가의 시선을 유지하고 있기에 단순히 스타의 외형을 보지 않게 될뿐더러, 막연한 선망으로서의 사랑을 할 위험성도 사라진다. 결국 멜로의 틀을 따라가면 김철수가 완벽한 이해에 도달하는 순간에 그가 사랑에 빠지게 될 것이 뻔한 일이지만 멜로 드라마에서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닌 과정이다.

‘겨울연가’의 오수연 작가는 그 작품에서 형성되었던 최지우라는 배우의 이미지를 드라마 속에 제대로 붙잡아두고, 그 위에 유지태라는 조금은 심각하고 진지한 배우를 접근시킨다. 최지우의 이미지는 조금은 반복적인 면이 있지만 이 멜로의 틀 속에서 가장 안정적이고, 드라마 첫 출연인 유지태는 ‘가을로’나 ‘봄날은 간다’같은 영화 속에서 보여주었던 진중한 면모를 드라마 속으로 끌어들여 가벼워질 수 있는 극에 무게감을 주고 있다. 일단은 안정감 있는 출발이지만 ‘스타의 연인’이 본격 멜로의 귀환을 성공적으로 이룰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스타의 연인’은 틀에 박힌 설정의 반복에 그치게 될 것인지, 아니면 더 이상 멜로가 정체를 숨기지 않아도 되는 선례를 남기게 될 지 우려와 기대가 교차하는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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