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도 드라마를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용두사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드라마들이 기대한 만큼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시청률에서 성공하면 완성도에서 떨어졌고, 완성도에서 어느 정도 성공하면 시청률이 난항을 겪었다. 또 시청률도 괜찮고 완성도도 괜찮다 싶은 드라마는 초반의 모양새를 끝까지 유지하지 못하고 중반 이후부터 어그러지기 일쑤였다. 물론 최근 들어 시청률과 완성도가 반비례로 가는 경향이 있다고 해도 이처럼 극과 극으로 치닫는 것은 올해 드라마들의 한 특징이 될 것이다.

먼저 완성도에서 성공적이었지만 시청률이 그만큼 따라주지 못한 드라마로 최근 종영한 ‘베토벤 바이러스’와 ‘바람의 화원’을 들 수 있다. 그나마 ‘베토벤 바이러스’는 김명민 파워를 통해 어느 정도의 시청률을 거두었지만 ‘바람의 화원’은 그 훌륭한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끝내 시청률을 얻지 못했다. 어찌 보면 이 두 드라마는 애초부터 마니아적인 성격을 띄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클래식이나 고미술이라는 소재 자체가 그러했다. 하지만 이 비대중적인 소재를 대중적인 틀 안으로 끌어온 그 시도는 좋은 결과를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한편 소재에 있어서 대중적일 것이라 생각되었던 ‘그들이 사는 세상’ 역시 이 범주를 향해 가고 있다. 방송가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완성도를 높였지만 그만큼 대중성을 확보하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 이들 드라마들이 보여주는 것은 역시 드라마는 소재 자체가 아니라 그 소재를 어떻게 요리하느냐는 것이 관건이 된다는 점이다.

다음은 완성도는 떨어지지만 시청률은 높았던 드라마들이다. 대표적인 예로 ‘조강지처클럽’이나 현재 방영중인 ‘에덴의 동쪽’을 들 수 있다. 완성도로만 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 억지설정에 과장된 캐릭터들, 흐름의 비일관성, 앙상한 주제 등등, ‘조강지처클럽’은 전형적인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의 계보를 이으면서 시청률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에덴의 동쪽’은 상대적으로 세련된 외피를 입고 있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조강지처클럽’의 다른 줄기라고 보여진다. 역시 과장된 캐릭터들과 인물설정 등이 시대극을 표방하면서(전혀 그러나 시대극은 아니다)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이 드라마들의 특징은 주로 과거 드라마들이 했던 문법들, 그 중에서도 특히 신파를 그 바닥에 깔고 간다는 점이다. 이것이 현 어려운 현실과 맞아떨어지면서 향수마케팅과 함께 TV의 실 시청자로 자리하고 있는 비교적 나이든 시청층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던 점이다. 이들 드라마들이 말해주는 것은 드라마의시청률이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공감지수는 아니라는 점이다. 어찌 보면 드라마 시청률은 단지 상업적인 의미로서 존재하며, 따라서 업계가 불황이 되면 될수록 완성도로의 접근은 더 요원하다는 점이다.

마지막은 용두사미가 되어버린 드라마들이다. ‘스포트라이트’, ‘이산’, ‘왕과 나’, ‘타짜’같은 드라마들을 비롯해 현재 방영되고 있는 ‘종합병원2’나 ‘바람의 나라’같은 드라마들도 이 경향을 띄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방영 이전부터 화제가 되었다가 방영과 함께 고꾸라진 경우도 있고, 또 방영 초기에는 화제를 일으켰지만 차츰 그 불씨가 가라앉은 경우도 있다. 올해 특히 이런 드라마들이 많이 양산된 것은 드라마가 거꾸로 마케팅이나 기획쪽에 더 많이 힘이 실렸었다는 반증이다. 따라서 소재로 치면 누가 봐도 관심을 가질 만한 것들을 끄집어오고, 또 출연진들도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스타들을 배치했지만 결과적으로 그 요소들을 작품으로 끌어안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다. 한 마디로 포장은 요란했지만 그 내용물은 볼품이 없었다는 말이다. 올해 유난히 이런 작품들이 많았던 것은 그만큼 우리네 드라마 제작에 거품의 요소들이 실체로 드러났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렇게 보면 최근 박신양 사건을 계기로 드라마 제작에 대한 거품을 걷어내자는 여론이 일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로 보여진다. 완성도는 높지만 시청률이 떨어지는 마니아 드라마 경향과, 시청률은 높지만 완성도는 떨어지는 퇴행적인 드라마 경향, 그리고 초기에는 창대했지만 결과물은 앙상해지는 용두사미 드라마 경향. 이것은 올해 우리네 드라마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이자, 내년 드라마들의 숙제가 될 것이다.
(이 원고는 스포츠칸에 게재되었던 칼럼입니다.)

‘한반도의 공룡’, ‘누들로드’, ‘북극의 눈물’

다큐멘터리를 규정하는 키워드는 ‘기록’이다. 거기에는 드라마 같은 허구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생생한 현장의 기록이 있다. 하지만 최근 우리에게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는 이른바 명작 다큐들에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해야 할 것 같다. 그것은 볼거리다. 물론 이 볼거리란 단지 스펙타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시청자들에게는 도달하기 어려운 시간과 공간의 장벽을 뛰어넘는 영상으로서의 볼거리를 말하는 것이다. 최근 연달아 TV를 통해 방영되고 있는 명작 다큐들, 즉 ‘한반도의 공룡’, ‘누들로드’, ‘북극의 눈물’에는 바로 이 시공을 초월하는 볼거리들의 유혹이 넘쳐난다.

EBS ‘한반도의 공룡’은 공룡이 존재했던 8천만년 전의 시간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그 볼 수 없는 시간을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컴퓨터 그래픽 애니메이션이다. 정교한 실사와의 합성으로 만들어진 이 다큐는 또한 한반도를 공간으로 상정함으로써 이미 익숙하게 보았던 공룡 다큐와 선을 긋는다. 이 작품은 타르보사우르스인 점박이의 일생을 스토리로 엮어가면서 자연스레 당대 우리네 한반도에 살았던 공룡들의 궤적을 찾아간다. 이야기를 통해 엮어진 이 기록물은 그 정보들을 따라가다 보면 거기서 문득 감동과 조우하는 순간을 경험하게 해준다.

KBS의 ‘누들 로드’는 국수 만드는 기술이 탄생하고 전파되었던 그 궤적을 추적한다. 한 개인이라면 도저히 체험할 수 없는 시공간을 뛰어넘는 길들을 카메라는 종횡무진 찾아다닌다. 중국 산시성에서 시작한 여행은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세 이태리 파스타의 발상지였던 시칠리아로 날아가고, 영국 옥스퍼드 도서관에 보관된 고문서를 통해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파스타가 이태리로 전파된 것을 확인한 후, 다시 일본의 사찰로 날아가 중국에서 어떻게 국수를 만드는 기술이 전파되었는가를 보여준다. 여행은 계속되어 몽골에 쫓겨 남하한 중국인들에 의해 동남아로 전파된 쌀국수를 찾아간다. 2500년에 달하는 그 긴 생명력을 가진 국수의 탄생과 전파 경로를 지금 이 순간 시간과 공간을 가로지르는 카메라가 시청자들의 눈앞에 생생히 펼쳐놓는 것이다.

한편 MBC의 ‘북극의 눈물’은 온난화로 인해 녹아가고 있는 북극의 상황을 이제 30명 정도 남아있는 마지막 사냥꾼들의 행로를 따라 담담하게 보여준다. 북극의 얼음 위에서 펼쳐지는 바다사자나 일각수 고래의 사냥 장면들은 또한 그 얼음과 함께 생사를 같이하는 북극의 생명들과 같이 조명됨으로써 이 재앙 앞에 동시에 터전을 잃어가고 있는 인간과 자연을 상징적으로 말해준다. TV를 통해 날아든 이 매서운 영상들은 문명에 가려져 보지 못하는 그 파괴되어 가는 환경의 모습을 우리 눈앞에 펼쳐놓는다. 그 아름다운 북극의 영상과 그것이 눈물처럼 녹아 사라져 가는 모습의 대비는 그 자체로 이 다큐의 주제를 압축한다.

이 명작 다큐들이 집 안으로 배달해주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볼거리들은 HD로 보다 선명해진 화면 속에서 더 생생하게 우리의 눈을 유혹한다. 우리가 도달할 수 없는 곳, 또 우리가 도달하지 못하는 시간 속으로 우리를 초대하는 이 볼거리들은 우리에게 관조적인 입장이 주는 즐거움과 깨달음을 동시에 전해준다. 땅에 발붙여 살아가면서 잊고 있었던 것들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재조명해주는 것, 이것이 이들 명작 다큐들이 가진 진짜 매력이다. 이것은 어쩌면 그간 우리가 주목하지 못했던 다큐의 진짜 얼굴인지도 모른다.

여름에 빛나는 ‘패떴’, 겨울에 돋보이는 ‘1박2일’

날씨와 여행은 상관관계가 있다. 이것은 아마도 소풍 전날 다음날 비가 온다는 기상정보에 잠 못 드는 밤을 지낸 적이 있는 초등학생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일 것이다. 날씨가 좋으면 여행이 산다. 만일 출사여행이라도 갈라치면 날씨는 절대적이다. 수백 킬로를 달려가 일출을 찍으려 했는데, 마침 먹구름에 해가 가려버렸다면 낭패가 아닐 수 없다. 날씨는 그림(사진 혹은 영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날씨가 여행에, 특히 영상에 영향을 미친다는 건 여행버라이어티 역시 날씨와 상관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대표적인 여행 버라이어티로 주말 저녁을 즐겁게 해주는 ‘1박2일’과 ‘패밀리가 떴다’는 날씨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그것은 단지 그림의 변화가 아닌 이들 버라이어티쇼들이 갖는 독특한 분위기의 변화다.

‘패밀리가 떴다’에 드리워진 추위라는 야생
석모도에 간 ‘패밀리가 떴다’에게 체감온도가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지는 칼바람을 맞으면서 하는 게임은 과거 이 프로그램의 최대 강점이었던 그저 웃고 즐기던 분위기를 변모시킨다. 이전만큼 이야기를 나누지 못할 정도의 추위 앞에서 그나마 프로의식을 발휘한 건 유재석이다. 그는 그 와중에도 끊임없이 떠들어대면서 사리지 않는 몸 개그를 보여줘 가라앉을 수 있는 분위기를 띄우려 노력한다. 이러한 날씨의 침공은 이 프로그램의 가장 중심적인 아이템인 저녁 차려 먹기에서도 이어진다.

야외에서 밥을 지어먹는 즐거움은 차가운 날씨 속에서는 고역으로 변모한다. 문제는 이 버라이어티쇼가 지금껏 지향해온 것인 리얼리티 자체가 아니라 설정을 통한 유쾌한 즐거움이었다는 점이다. 야외에 나가서도 대외적인 접촉이 주는 스트레스를 피해, 저들만의 관계가 주는 폐쇄적인 즐거움에 몰두해온 그들에게 차가운 날씨란 꼭꼭 닫아놓은 문틈으로 들어오는 야생 그 자체다. 그들은 여전히 이 프로그램의 성격대로 설정된 즐거움을 보여주려 노력하지만 그 설정을 파고드는 차가운 날씨 앞에서는 어색해질 수밖에 없다.

반면 충남 보령시 외연도를 찾아간 ‘1박2일’에게 추운 날씨는 오히려 그림을 살린다. 야생과 리얼리티를 주창하고 있는 ‘1박2일’은 사실상 이러한 도전상황이 없으면 그림이 생기지 않는 프로그램이다. 이들에게 추위라는 상황은 어떤 사건을 더 강하게 만들어주고, 심지어 아무런 사건이 없어도 그 자체로 이야기가 되어준다. ‘혹한기 대비캠프’편은 아무런 외부적 상황 없이도 날씨 하나만으로 ‘1박2일’이 충분한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걸 보여주었다. 확실히 겨울은 ‘1박2일’에게는 제철이다.

제철 만난 ‘1박2일’, 새로운 재미 보여주어야
야생을 피하고 안전한 즐거움을 찾는 ‘패밀리가 떴다’와 야생 그 자체가 주는 생고생을 통해 웃음을 주는 두 프로그램의 다른 분위기는 겨울이라는 도전을 만나 시청자에게 전혀 다른 느낌을 전해준다. 혼자 버려져 있다가 팀과 합류하려 새벽에 어선을 타고 팀에 합류하는 이승기의 모습은 ‘1박2일’에서는 그다지 독한 영상이 되지 않는다. 이것은 현실적으로는 ‘패밀리가 떴다’에서 잠깐 벌어진 야생 상황이 주는 불편함 그 이상이지만 ‘1박2일’이라는 프로그램 속에서는 편안한 상황일 뿐이다. 추운 날씨라는 도전 앞에서 시청자들이 느끼는 두 프로그램에 대한 편안함은 이렇게 달라진다.

이것은 거꾸로 이번 여름시즌 내내 ‘패밀리가 떴다’가 승승장구할 때, 작년 겨울 혹한기에서의 잠자리 복불복으로 승승장구하던 ‘1박2일’이 추락했던 이유가 되기도 한다. 자연스러운 도전상황이 없을 때, ‘1박2일’의 영상은 단조로워진다. 그러니 무언가 인위적인 상황을 만들기도 하고 되는 그림을 무리하게 찾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하룻밤의 야외 체험을 담아내는 여행 버라이어티쇼에 날씨는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겨울을 맞이하여 ‘패밀리가 떴다’는 추운 날씨에 무리한 야외 게임과 취사로 일관되는 그 패턴을 바꿔줄 필요가 있다. 만일 그 패턴을 유지한다면 자칫 ‘1박2일’을 넘어설 수 있었던 그 편안함을 무기로 하는 차별점을 잃게 될 수도 있다. 반면 제철을 만난 ‘1박2일’에도 위험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작년 겨울에 재미를 보았던 패턴의 유혹이 그것이다. 이미 한 해를 보낸 상황에서 ‘1박2일’은 한 단계 나아가는 새로운 재미를 보여주어야 호응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겨울을 맞아 두 여행 버라이어티쇼들이 어떤 변화를 겪게 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경기불황 속 음악전문프로그램들의 특별한 선택

힘겨운 삶에 노래만큼 위안을 주는 게 있을까. 최근 음악전문프로그램들의 ‘선택’을 보면 경기불황에 지친 대중들에게 음악이 어떻게 다가갈 수 있는 지를 확인하게 된다. 보여주는 ‘윤도현의 러브레터’에서 들려주는 ‘이하나의 페퍼민트’로 바뀐 것이나, EBS ‘스페이스 공감’ 같은 작은 공간 속의 음악으로 대중들을 초대하거나, ‘라라라’처럼 아예 대중들과의 직접적인 소통을 추구하는 것은 그 단적인 예가 될 것이다. 그 선택은 조금씩 다르지만 그 지향은 하나, ‘소통과 공감’이다.

윤도현이 가진 록커로서의 이미지가 투영되어 힙합과 록밴드 같은 ‘한번 놀아 보자!’는 분위기가 러브레터에 있었다면, ‘페퍼민트’는 고스란히 ‘감상하고 느껴보자’는 분위기가 스며있는 이하나의 ‘들어주는 귀’ 이미지가 투영되어 있다. 윤도현이 게스트들과 같은 가수의 입장에서 얘기를 했다면, 이하나는 노래를 사랑하는 관객의 입장에서 게스트들을 만난다. 바로 이 점은 윤도현과 이하나를 가르는 가장 큰 차이다. 두 음악프로그램이 확연히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공연되는 음악은 같다고 하더라도 ‘들어주는 귀’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진행자라기보다는 관객과 거의 같은 위치에 서 있는 이 ‘들어주는 귀’가 들어주는 음악은 좀 더 ‘듣는 음악’으로 대체되었다. ‘크라잉넛’이나 ‘노브레인’ 같은 가사 그 자체보다는 강렬한 사운드와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던’ ‘러브레터’는 이제 ‘장기하와 얼굴들’ 같은 주저리주저리 떠들어대는 가사들까지 마음속에 콕콕 박히는 음악들을 ‘들려주었다.’ 대형 라이브 공연장 같은 넓이의 ‘러브레터’의 무대가 ‘페퍼민트’로 와서 소극장 같은 크기로 줄어든 것은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다. 무대가 작아질수록 관객과 소통하는 귀는 더 열려진다.

EBS의 ‘스페이스 공감’은 바로 눈앞에서 대면하는 이 라이브의 공감을 극대화한 음악프로그램이다. 이 공간 속에 들어가면 주류이던 비주류이던 비슷한 색깔을 가지게 된다. 그동안 생소하게만 들어왔던 재즈 연주자들의 음악조차 이 속에 들어가면 대중들과의 직접적인 접촉, 즉 숨소리가 들릴 듯한 거리에서 건반과 기타 줄에 닿는 손가락 하나하나가 생생한 그 특별한 경험을 하게 만든다. ‘스페이스 공감’은 그 프로그램 이름에서 뉘앙스를 잡아낼 수 있듯이 공간이 같은 음악이라도 어떤 다른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지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물론 이것은 ‘페퍼민트’에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MBC에서 새롭게 시작한 ‘라라라’의 경우는 어쩌면 여기서 한 발 더 나간 경우다. ‘라라라’에서는 관객이 없고 따로 만들어진 무대가 없다. 녹음실 같은 밀폐된 공간에 가수 혼자 서서 노래를 할 뿐이다. 대신 카메라는 좀 더 밀착돼서 가수의 노래 하나하나를 얼굴 표정과 동작에서까지 포착하려 한다. 기존 음악프로그램들이 가지고 있던 관객을 통한 우회적 공감을 벗어나 카메라를 통한 대중들과의 직접적인 공감을 시도하는 것. 라디오의 음악이 TV 쇼 프로그램의 음악보다 더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내 귀에 직접 대고 속삭이는 듯한’ 그 음악을 좀 더 개인적인 공감으로까지 끌어안을 수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라라라’는 가수의 밀착된 모습을 삽입함으로써 시각적인 직접소통의 효과까지 만들어낸다.

최근 음악프로그램들의 한 경향은 ‘대중들과 좀 더 가까이’로 표현될 수 있다. 집단적인 놀이로서 음악에 참여하던 시대는 점점 저물어가고 있다. 이제 대중들은 좀 더 음악을 듣고 공감하고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아마도 이것은 작금의 어려운 상황이 대중들로 하여금 노래에서 어떤 위안을 찾게 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거기에 부응하듯 음악프로그램들은 성큼 대중들 앞으로 더 다가왔고 그만큼 공감의 폭도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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