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을 보면 세상이 보인다

개그가 공감을 바탕으로 한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세상의 모습이 들어있기 마련. 지금 ‘개그콘서트’가 담고 있는 세상은 어떨까.

어려운 경기? 한민관이 주목받는 이유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전체적으로 경기 침체에 따른 힘겨움을 바탕에 깔고 있다는 점이다. ‘대포동 예술극단’은 북한의 상황을 보여주면서 거꾸로 남한 상황을 패러디 하는 코너. ‘파리의 연인’을 패러디한 ‘공복의 연인’에서 박지선이 꼬르륵하는 소리를 내자, 남자친구로 등장하는 비쩍 마른 한민관이 “배고프면 배고프다 왜 말을 못하네?”하고 호통을 친다. 그러자 박지선이 한민관의 얼굴을 가리키며 하는 말. “어떻게 말을 합니까? 이따구 얼굴 앞에서.” 왜 북한 상황을 굳이 설정하는가 하는데는 많은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이 좀더 절실한 상황을 연출하기 위한 것이라는 건 분명하다.

어려운 경제상황을 제대로 다루는 코너는 단연 새롭게 등장한 ‘로열 패밀리’다. ‘엄마가 뿔났다’의 고은아(장미희)를 패러디한 듯한 이 코너는 모두 교양 있고 어딘지 귀티가 나는 듯 행동하지만 실상은 거지인 가족을 그려내며 큰 웃음을 준다. 구걸을 하다 들어온 시아버지가 며느리에게 수박껍데기를 주며 “알맹이가 많이 붙었더라”고 하거나, 아들이 돌아와 “이제 사천식당하고는 거래를 끊어야겠습니다. 개를 키운다고 합니다”하자 아버지가 “개도 안 먹는 음식이 있을거야”라고 되받는 식이다.

이밖에도 구두닦이들의 일상적인 대화를 담은 “그려 안 그려”, 그리고 ‘베토벤 바이러스’를 패러디한 ‘악성 바이러스’에서 강마에를 흉내낸 싼마에(김준호)가 프랑스 혁명당시 국민들의 배고픔을 표현한 곡이라며 연주 끝에 갑자기 “밥 주세요!”로 마무리하는 대목 역시 간접적으로 경기상황을 담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아마도 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 가장 배고픔을 느낄 개그맨들이 그것을 소재로 담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 특기할만한 점은 이 상황에서 한민관 같은 부실한 몸의 개그맨이 이 코너들(대포동 예술극단, 로열 패밀리)에 집중 배치되어 인기를 얻고 있다는 점이다.

허위의식 가득한 세상, 황현희가 주목받는 이유
‘개그콘서트’가 보여주는 또 하나는 허위의식이 가득한 세상이다. 물론 ‘달인’의 김병만은 일찍이 이 허위의식 가득한 세상을 몸으로 직접 보여준 바 있다. 하지만 요즘 들어 주목받는 코너는 ‘황현희 PD의 소비자 고발’이다. 물론 여기서 황현희 PD가 딴지 거는 것들은 사실 얼토당토않은 것들이지만, 그 형식 자체는 실제로 과장광고가 판을 치는 세태를 정면에서 꼬집는 것이다. “아무도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하지만 전화하자 이름부터 물어보는 이 어처구니없는...” 황현희 PD의 황당한 진술 속에는 그러나 “실제로 그럴까?”하는 의구심이 묻어난다.

상조전문CF를 패러디한 ‘도움상회’는 ‘황현희 PD의 소비자 고발’의 한 분파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조금 방향성이 다르다. 그것은 ‘소비자 고발’이 광고 문구 그 자체를 시비 걸고 있는 반면, ‘도움상회’는 사회의 잘못된 환부를 이 패러디된 상조CF 속으로 끌어들여 보내버리는(?) 것이 주요 컨셉트이기 때문이다. 학력위조자를 보여준 후, 등장한 박성호, 김대범은 “학력 위조하시느라 정신 없으시죠? 큰 학교 가서 별 다시는 일 도와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거나, 부실공사를 한 사람을 보여준 후, “편안하게 때려주겠습니다. 맞은 자국 푸르게 푸르게. 집단 구타 서비스. 아무도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후려 쳐드립니다.”라고 하는 식이다.

이밖에도 ‘개그콘서트’의 개그가 보여주는 현실은 소통부재로 파편화된 관계다. ‘대화가 필요해’는 대화부재의 가족을, ‘할매가 뿔났다’에서는 약자로서의 노인들이 겪는 소통부재의 상황을, ‘춘배야’와 ‘박대박’에서는 말은 많지만 소통은 되지 않는 현실을 개그로 담아낸다. ‘개그콘서트’에 유난히 패러디가 많은 것은 그만큼 세태 풍자를 이 프로그램이 많이 다루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그 세태는 어려운 경제상황, 허위의식 가득한 세상, 그리고 소통부재의 사회다. 이 답답한 세상을 ‘개그콘서트’처럼 진짜 한 바탕 웃음으로 날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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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귀, 드라마 ‘타짜’가 가진 선악구도를 깰 수 있을까

‘타짜’에 새롭게 투여된 짝귀(조상구)는 드라마에 새로운 활력을 줄 수 있을까. 그 결과는 알 수 없지만 짝귀가 적어도 지금까지 들고있던 ‘타짜’의 패 중 가장 좋은 패라는 것은 분명하다. 먼저 드라마 ‘타짜’가 지금까지 들었던 나쁜 패들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 진원지는 분명한 선악구도다. 본래 ‘타짜’ 원작이 가진 가장 큰 힘은 선악구도를 뛰어넘는 인간욕망의 집합체로 도박을 그렸다는 점이다. 이 작품의 제목이 ‘도박’이 아니고 ‘타짜(도박판에서 기술로 남을 속이는 자)’인 것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선도 없고 악도 없는 그 상황을 영화는 잘 그려냈다. 주인공인 고니 못지 않게 아귀와 정 마담 같은 욕망의 화신들이 열광적인 환호를 받았던 것은 그 때문이다.

하지만 드라마 ‘타짜’는 선악 자체가 불분명한 타짜의 세계에 그 선악구도를 끼워 넣는다. 그것이 드라마라는 한계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것은 패착이다. 평경장(임현식)과 고광열(손현주), 그리고 작두 대호(이기영)는 착한(?) 타짜이고, 아귀(김갑수)와 정마담(강성연) 그리고 영민(김민준)은 나쁜(?) 타짜다. 나쁜 타짜들이 돈에 대한 욕망으로 도박에 손을 댔다면, 평경장과 대호는 은퇴한 자이며, 고광열은 생계형 타짜이고, 고니는 복수의 방법으로서 도박에 손을 대게 되는 타짜로 그려진다.

‘타짜’가 도박의 세계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선악 구도를 세워두면 그 결과가 뻔해진다. 결국은 선이 이기고 악은 지게 된다는 스토리가 그 구도 속에서 미리 읽혀지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에게 너무 쉽게 패가 읽히게 되는 이 구도는 긴장감을 앗아가 버리는 동시에 리얼리티마저 손상시킨다. 도박이라는 강력한 욕망 앞에는 적도 없고 아군도 없는 그런 상황이 진짜 리얼한 상황이다.

영화 ‘타짜’에서는 정 마담이 그 중간 역할을 잘 해줬다. 즉 아귀와 고니의 대결이 박빙일 때, 그 결정적인 승부의 패를 정 마담이라는 이 편도 저 편도 아닌 인물에게 던짐으로써 그 결과를 알 수 없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 ‘타짜’에서 정 마담(강성연)은 그렇게 매력적인 캐릭터로 자리하지 못하고 있다. 영민을 사랑하는 그런 모습은, 사랑마저도 도박 설계의 한 무기로 사용하던 정 마담의 캐릭터를 약화시킨다.

반면 새롭게 등장한 짝귀는 저 스스로 고니에게 밝히듯 “적이 같은 아귀일 뿐, 절대로 자신을 믿지 말라”고 할 정도로 어떤 중간지대를 밟고 있다. 이렇게 되면 지금까지의 양자 구도는 새롭게 삼자 구도로 재편될 가능성을 만들게 된다. 마치 삼국지의 조조와 맞서기 위해 유비와 손권이 일시적으로 손을 잡는 그런 형국이 되는 셈이다.

짝귀가 진짜 좋은 패라는 것은 그 캐릭터가 ‘타짜’의 재미 그 이상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갖기 때문이다. 도박을 소재로 하는 드라마에서 자칫 선악구도는 그 도박의 위험성 자체를 상쇄시킬 수 있다. ‘타짜’가 도박을 내세워 그 위의 욕망에 굴절된 인간군상이 가진 다양함을 그려내고 또 그를 통해 어떤 관조적인 입장까지를 담을 수 있으려면 적어도 욕망 앞에 승자도 패자도 없는 그 리얼한 상황을 그려내야 한다. 선악구도가 만들어내는 영웅은 그만큼 위험하다는 말이다.

물론 짝귀라는 좋은 패를 가졌다고 해서 ‘타짜’가 그 판을 따낼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마치 고니의 귀환을 위한 한 때의 캐릭터로 다뤄지다가 은근슬쩍 사라져버리거나 해버린다면 짝귀는 아무 것도 아닌 패로 전락할 수도 있을 것이다. ‘타짜’는 분명 짝귀라는 좋은 패를 잡았다. 하지만 제대로 된 레이스(게임진행)를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저 버려지는 패만도 못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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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크쇼에서 퇴조한 독설, 무대개그로 옮겨가는 이유

한때 토크쇼의 대세처럼 보였던 독설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이경규의 버럭이 사라진 지는 오래고 박명수의 호통은 기력 빠진 아버지의 지청구처럼 힘이 빠진 지 오래다. 독설의 대명사처럼 자리잡았던 김구라는 잇단 사과방송을 통해 유한 이미지를 또한 획득했다. ‘라디오스타’같은 프로그램에서 김구라는 번번이 신정환에게 당하는 모습을 연출하며 이른바 독설에 균형을 잡아갔다. 그의 독설은 과거의 그것처럼 독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반면 독설은 토크쇼가 아닌 무대개그에서 번창(?)하고 있다. 무대개그에서 왕비호(윤형빈)는 자타가 공인하는 현재의 독설가로 자리잡았다. 비슷한 유형으로 세 명이 나와 번갈아 가며 서로가 독하다고 과시하는 ‘독한 놈들’은 왕비호의 그 성공전략에 영향을 받은 코너다. 한편 ‘황현희 PD의 소비자 고발’은 이 독설을 연예계가 아닌 타 분야로 넓힌 사례다.

이처럼 독설이 토크쇼에서 점차 사라지고 무대개그 속으로 편입되는 이유는 무얼까. 그 해답은 왕비호의 그 특유한 의상에서 찾아질 수 있다. 딱 붙는 반팔 쫄티에 핫팬츠를 입고 등장하는 왕비호는 그 자체가 하나의 연기하는 캐릭터다. 즉 왕비호의 독설은 일상의 리얼한 토크 속에서 우연히 던져지는 것이 아니고, 하나의 짜여진 틀 속에서 준비되어진 독설이다.

대본으로 준비된 독설에 사적인 감정은 전혀 개입될 여지가 없다. 물론 다른 토크쇼 속에서도 김구라 같은 독설가가 사적인 감정을 실어 독설을 퍼부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그 리얼 토크쇼의 형식상 그의 독설은 사적인 감정까지도 리얼로 포장되곤 한다. 반면 무대개그 속에서의 왕비호는 이 사적 감정을 배제할 수 있는 안전막을 여러 겹 갖고 있는 셈이다. 그것은 무대, 비일상적인 의상, 분장 같은 것이다.

개그 프로그램에서 독설이 가능한 유일한 이유는 그것이 웃음을 주기 때문이다. 어떤 권위적인 것이 독설로 인해 유쾌하게 해체됐을 때, 그 이완감 속에서 우리는 웃음을 터뜨리게 된다. 하지만 그 독설이 웃음의 목적을 넘어서서 실제로 타인에게 크나큰 상처를 주게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존재의 이유를 잃게 된다. 무대를 넘어서서 현실까지 영향을 주는 개그 프로그램의 독설은 웃음이 아닌 불쾌감을 주게 된다.

방송에 리얼리티를 요구하는 시대에 접어들면서 독설은 토크쇼 어디에서든 발견할 수 있는 것이었다. 사회는 그 독설을 받아들일 만큼 아직까지는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심각한 경기침체로 인해(이것은 연예계도 마찬가지다) 그런 여유는 사라져버렸다. 여유 있는 자에게 날리는 독설은 그 자체가 관심의 표현으로 변모할 수 있지만, 여유조차 없는 자에게 던져지는 독설은 그 자체가 칼날이 된다. 왕비호가 톱스타들만 그 독설의 도마 위에 올리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왕비호의 독설에는 정해진 룰이 있다. 그 독설은 그 틀 속에서 대중들과 웃음을 나누기 위한 어떤 게임일 뿐, 진짜 속내를 드러내는 독설은 아니다. 한번 웃고 나면 그뿐, 앙금이 남지 않는 독설. 그것은 어쩌면 이제 더 이상 독설이 아닌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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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바' 강마에, 문화현실과 맞서다

정치인이 바뀌면 문화도 다른 길을 걷게 된다는 건 우리나라 문화계의 비극이다. 문화적 소양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어느 한 구획을 책임지게 될 정치인에게는 실로 중요한 문제다.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강마에(김명민)는 문화적 소양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새로 취임한 시장을 불러 자신이 들려주는 음악의 느낌을 다섯 가지 말하라고 한다. 시장은 아름답다, 좋다는 식으로 그것을 단순히 표현한다. 강마에는 거기에 대해 수많은 표현들이 가능한 그 음악을 그런 식으로 표현하는 건 본인의 자유지만, 그걸 모든 시민들에게 강요하지는 말라고 말한다. 문화에 대해 모를 수는 있지만 그것을 자기 식으로 마음대로 재단하지는 말라는 말이다.

그 새 시장은 자신의 취임식을 빛나게 할 목적으로 시향을 불러 자신의 애창곡인 ‘마이 웨이’를 연주하라고 했다. 이것은 아주 오래 전 군부독재 시절을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자기 취향을 위해 문화를 굴종시키려는 것. 거기에 대해 강마에가 한 것은 존 케이지의 ‘4분33초’다. 이 전위음악은 4분33초 동안 침묵함으로써 그 즉흥적인 반응으로 들려지는 소리들을 음악으로 전화시킨 곡이다. 즉 이 4분33초 간의 침묵 속에서의 자신의 반응은 자신 스스로 연주한 음악이 되는 셈. 새 시장은 침묵으로 꺾어지는 자신의 욕망에 화를 냄으로써 자신의 음악, 즉 음악적 소양의 조야함을 드러낸다. 여기서 강마에의 선택이 보여주는 것은 문화 그 자체가 어떤 잘못된 정치적 선택에 대한 저항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새 시장이 시향의 존폐를 결정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에서 한 정치인은 이렇게 말한다. “먹고살기가 힘든데 그깟 시향이 뭔 소용입니까 그 돈으로 길이나 하나 더 내세요.” 경제가 어려운데 문화가 다 무슨 소용이냐는 말이다. 그러자 반박이 날아든다. “아무리 어려워도 밥만 먹고삽니까? 향기가 있어야죠.” 그 논박이 오고가는 자리에서 강마에는 귀에 헤드셋을 끼고 클래식을 듣는다. 이 말 저 말 다 듣기 싫다는 무언의 반항인 셈이다. 이 돈을 벌어주는 것도 아니고, 길을 내주는 것도 아닌 음악의 무모성에 대한 시퀀스는 이미 희망을 잃어버린 수재민들에게 아무 소용이 없을 것만 같은 베토벤의 합창교향곡이 진짜 희망을 줄 수 있다는 에피소드에서 이미 나왔던 대목이다. 클래식으로 대변되는 문화는 불황에는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는 고상한 취미처럼 여겨져 왔지만, 실상은 그것이 오히려 힘겨움에 빠진 서민들을 위무하고 희망을 주는 존재라는 걸 말해준다.

강마에는 이 가녀리고 우리의 현실과 유리되어 보이는 문화(클래식으로 대변되는)가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가 하고 계속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러니 석란시향의 지휘자를 그저 5급 공무원으로 생각하는 새 시장과 맞설 수밖에. 이러한 인식은 강마에가 이 오합지졸 오케스트라를 끝까지 마음 한 구석에 세워두고 보이지 않게 도움을 주게 하는 힘이기도 하다. 적어도 이 오합지졸 오케스트라들은 이 어려운 경기와 현실 속에서도 희망과 꿈을 잃지 않는 존재이며, 그래서 실제 현실과는 아무 상관없어 보이는 오케스트라 연주를 위해 밤잠도 설쳐가며 연습을 하는 이들이다.

이들의 모습은 경제를 내세워 문화나 생태 같은 것은 아무 소용도 없다는 식의 경제 강박증을 가진 정치인들보다 훨씬 건전하고 건설적이다. 이들은 백도 없고 학벌도 별로 없는 보통 사람들이다. 특히 클래식이라는 세계에서 보면 애송이들에 불과한 것이다. 하지만 이 애송이들은 클래식 즉, 문화의 힘이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그 꿈은 우리네 서민들의 꿈과 맞닿아 있다. 전문가 입네 하면서 꿈은 이미 버린 지 오래인 그들과는 대립되는. 강마에가 그들을 보며 안타깝게 생각하고 또 지켜주고 싶어하는 것은 바로 그 꿈이다. 그 꿈을 이루게 하기 위해서 강마에는 저 스스로도 그러했듯 때로는 냉혹한 현실이 되어주기도 하고, 때로는 굳건한 버팀목이 되어주기도 한다.

그래서 그는 재능도 있고 열정도 넘치며 근성도 있는 강건우(장근석)를 현실 앞에 몰아세우면서도 “독해져라”하고 조언을 해준다. 또 클래식계에 아무런 프로필도 없는 강건우가 더 이상 연주할 수 없는 상황에 몰려 “죄송해요. 제가 너무 못나서”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그를 껴안아주며 “아니야. 넌 훌륭해. 대단해.”하고 말해주기도 한다. 그런데 그 강건우에게 하는 강마에의 말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 울림은 고스란히 어려운 시기를 마치 단원들이나 강건우처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도 전달된다. 강마에가 껴안은 건 강건우뿐만이 아니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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