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재, 우리 시대의 아버지를 연기하다

도대체 이순재 연기의 끝은 어디일까. 현재 ‘이산’의 영조 역할 하나만 봐도 그렇다. 우리가 역사책을 통해 막연히 알고 있던 영조는 카리스마 넘치는 성군의 이미지. 하지만 이순재라는 연기자를 통해 드러나는 영조의 모습은 한 가지로 설명할 수 없는 복합미를 갖고 역사 속 박제된 인물에서 살아나고 있다. 때론 자애가 넘치는 모습을 보이다가도 일순간 추상같은 불호령을 내리고, 때론 인간적인 부족함을 드러내기도 하는 인물이다. 게다가 매병(치매)을 앓는 모습 속에서도 진지함을 잃지 않는 영조의 면면은 실로 천변만화의 얼굴을 순간적으로 바꾸면서도 전혀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는 이순재라는 연기자를 통해서만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이순재의 연기가 늘 그러했듯이 거기서 발견되는 것은 여지없는 우리 시대 아버지의 모습이다.

연기자 이순재는 우리에게 아버지의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다. 그것은 아마도 1991년 김수현표 드라마라는 호칭이 붙었던 ‘사랑이 뭐길래’의 대발이 아버지라는 캐릭터 때문일 것이다. 대발이 아버지는 아무리 짜도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치약을 가까스로 짜내고는 ‘아직도 일주일은 더 쓰겠네’하고 말할 정도로 절약정신(?)이 생활화된 조금은 궁상스러우면서도, 가장 보수적이고 엄격한 아버지였다. 그 전까지 드라마 상에서 드러나는 아버지상이 ‘전원일기’의 김회장(최불암)처럼 인자하고 털털한 모습이었다면, 이순재가 연기한 아버지상은 이중적인 모습을 드러내면서 엄격함이나 고집 이면에 포착되는 궁상으로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조금씩 달라져 가는 세상 속에서 젊은 세대들에게 고집스런 아버지, 가부장적인 아버지로 비추어졌던 당대의 아버지들의 모습은 그러니까 ‘아껴야 산다’거나 ‘부지런해야 잘 산다’는 식의 사고방식이 생활이 된 경제 개발 시대를 살아온 당대 아버지들의 이 양면성 때문이기도 하다. 이순재는 바로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때론 이빨 하나 들어가지 않는 엄격함으로, 때론 한없이 부드러워지는 아버지의 모습을 오가며 연기했고 그것으로 시청자들에게 열렬한 공감을 얻어냈던 것이다.

하지만 시대는 계속 변해 아버지들의 고개는 점점 더 숙여졌다. IMF라는 파고를 넘으면서 권위는 추락했고, 구조조정과 조기퇴직이란 칼날 아래 그 어깨는 더 작아졌다. 반면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지면서 가족 내 여성들의 목소리는 더 커졌다. ‘거침없이 하이킥’의 이순재는 이렇게 달라지고 있는 아버지상을 다시 보여주었다. 가족 내에서 여전히 호통을 치  
   만 그 권위의 힘은 사라진지 오래다. 며느리인 박해미가 늘 ‘OK’를 연발하는 당당함을 보이는 반면, 이순재는 ‘야동순재’ 같은 굴욕의 모습을 보여주는 아버지가 되었다.

‘야동순재’라는 조어는 당대 달라지고 있는 사회와 아버지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야동’이라는 인터넷 사회를 대변하는 용어와 아버지상을 대변하는 ‘순재’가 만나자 권위적인 아버지상은 사라져버렸다. 또한 젊은이들의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문화를 기웃거리는 아버지의 모습은 수많은 젊은 세대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면서 이 시대의 아버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순재의 아버지 연기는 여기서 그친 것이 아니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한없이 무너지던 모습을 통해 친근한 아버지상을 만들었던 이순재는 ‘이산’의 영조 역할로 오면서 권위를 되찾았다. 추상같은 말 한 마디로 대소신료들을 어쩔 줄 모르게 만드는 그 권위는 카리스마 자체였다. 그 앞에서 이산(이서진)은 물론이고 부인인 정순왕후(김여진)나 며느리인 혜경궁 홍씨(견미리)는 한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순재는 영조를 그저 권위적이고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로만 만들지 않았다.

자애로운 눈길로 이산의 가녀린 어깨를 두드려주기도 하며, 자신의 인간적인 과오를 한없이 뉘우치기도 한다. 이러한 ‘이산’의 아버지상은 좀더 현대 사회가 희구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그려낸다. 즉 ‘거침없이 하이킥’의 이순재가 무너져 내리는 아버지를 현실적으로 포착했다면, ‘이산’의 아버지, 영조는 그 시대를 과거로 돌려 다시 세워지는 아버지에 대한 환타지를 끄집어냈다. 강하면서도 자애로운 모습으로의 복권을 희구하게 된 것이다.

이순재의 연기인생을 들여다보면 거기서 우리 시대의 아버지들을 만날 수 있다. 그것은 도무지 이해되지 않을 것 같은 고집과 권위를 내세우던 아버지이기도 하고, 한없이 권위가 무너져 내리던 아버지이기도 하며, 우리가 드라마 속에서라도 발견하고 싶은 강한 아버지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이순재의 아버지 연기는 그 겉모습에 머물지 않고 그 고집이나 굴욕 이면에 숨겨진 아버지들의 속내를 잡아낸다는 점이다. 그래서일까. 이제는 이순재의 얼굴 표정 하나를 살피는 것으로 이 시대 아버지들을 이해하게 되는 것은. 모쪼록 이순재의 얼굴이, 아니 이 시대 아버지들의 얼굴이 환하게 웃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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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호세대 다른 드라마와 시청률

방송 3사 드라마의 나이는 어떻게 될까. 이것은 물론 각 방송사별로 성공하는 드라마를 만든 주력 세대가 누구냐는 질문이다. 천편일률적으로 세대를 나눌 수는 없지만 대체로 MBC는 3,40대가 주 시청세대이며, SBS는 4,50대로 그보다 시청세대가 높다. 반면 KBS는 3,40대에서부터 5,60대까지 고른 시청층을 보유하고 있다. 어느 방송사의 드라마이건 10대와 20대는 이제 TV 시청률에서 그 중요성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른바 ‘닥본사’보다는 TV 이외의 다른 매체를 통해 보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이들 현재 방송사별 드라마들의 나이에 따라 주중과 주말에서 시청률의 희비쌍곡선이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주중에는 주로 3,40대의 시청층이 드라마 시청률을 좌우하고 있는 반면, 주말에는 그 보다는 윗세대인 4,50대의 시청층이 그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주중에 ‘이산’이나 ‘뉴하트’ 같은 MBC 드라마들이 인기를 끌고, 반면 주말에는 SBS ‘황금신부’나 KBS ‘대왕 세종’같은 드라마들이 인기를 끄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중 드라마 3,40대가 좌우
주중 드라마의 수위를 차지하고 있는 MBC 드라마들의 최근 특징은 그 타깃을 3,40대 여성에 맞추고 있다는 점이다. AGB 닐슨의 세대별 시청률 백분율 자료(1월1일∼1월20일)에 의하면 주중 드라마를 이끌고 있는 ‘이산’과 ‘뉴하트’ 모두 3,40대 여성의 분포도가 가장 높았다. ‘이산’은 3,40대 여성이 30%(30대 16%, 40대 14%)였고, ‘뉴하트’는 31%(30대 17%, 40대 14%)였다. 여기에 같은 세대 남성들까지 포함하면 ‘이산’은 총 51%(30대 남성 11%, 40대 남성 10% = 21%), 즉 반 이상의 시청자가 3,40대라는 얘기가 된다. 마찬가지로 ‘뉴하트’도 총 48%(30대 남성 9%, 40대 남성 8% = 17%)로 반 수에 육박한다.

SBS의 ‘왕과 나’는 이에 비해 시청층이 더 높은데, 최근 들어 완성도에 대한 비판이 높아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시청률이 14% 내외를 유지하는 비결은 이 드라마가 사극이라는 점도 있지만 장년층 시청자들의 충성도가 그만큼 높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SBS의 ‘불한당’ 역시 주 시청층이 4,5,60대 여성으로 이 시청세대가 41%(남성까지 포함하면 무려 61%다)나 되는 반면, 30대는 10%(남성 포함해도 16%)에 불과했다. 역시 주중 드라마를 이끄는 주 시청층이 3,40대라는 걸 말해주는 대목이다.

한편 주중 드라마로서 MBC의 아성을 공략하는 유일한 드라마는 KBS의 ‘쾌도 홍길동’이다. 이 사극의 세대별 시청률은 특이한데, 남성 시청층은 적은 반면(40대 10%가 최고치), 여성 시청층은 30대부터 60대까지 고루 분포(30대 12%, 40대 12%, 50대 9%, 60대 9%)하고 있다. 여러 모로 사극의 진화와 맞물려 시청층이 다양해지고 있다는 반증인 셈이다.

주말 드라마 4, 50대 이상이 좌우
주중 드라마에서 3,40대 시청자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수위를 차지한 MBC 드라마. 하지만 주말 드라마의 성적표는 그다지 좋지 않다. 주말에 예능 프로그램으로서 ‘무한도전’이 드라마만큼의 시청률을 얻고 있는 것에 반해, 정작 드라마는 시청률 경쟁에서 멀어져 있다. 과거에 주말 드라마 하면 MBC를 떠올릴 정도로 강세였지만 그것은 옛말이 되었다. ‘깍두기’가 종영한 ‘며느리 전성시대’에 눌려 빛을 보지 못했고, ‘겨울새’는 조기종영 얘기까지 흘러나오고 있을 정도다.

반면 주중에서 별다른 힘을 쓰지 못했던 SBS는 주말 드라마에서 활짝 웃고 있다. 대표적인 드라마가 ‘황금신부’. 이 드라마의 주 시청층은 4,5,60대(전체의 38%)여성으로 이 세대의 남성 시청자까지 합치면 59%나 된다. 한편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이고 있는 KBS 대하사극 ‘대왕 세종’은 주 시청층이 40대 이상 남성(33%)으로 여성 시청층까지 합치면 61%를 차지하고 있다. ‘대왕 세종’ 의 특이한 점은 시청률의 미세한 차이가 있지만 60대 시청자들의 높은 지지를 얻고 있다는 점(남 11%, 여 10%)이다.

시청률과 달라진 생활 패턴의 상관관계
이처럼 주중 드라마와 주말 드라마의 선호 세대가 다르고, 각 방송사별 드라마의 나이가 다른데서 현재의 시청률 등락을 이해할 수 있다. 주중 드라마를 이끄는 3,40대 시청층과 잘 맞아떨어진 주중 MBC 드라마들의 나이는 시청률 수위를 차지하게 하는 힘이며, 상대적으로 드라마 나이가 높은 주중 SBS 드라마들이 고전하는 이유가 된다. 반면 이런 상황은 주말에 와서는 역전된다. 그만큼 달라진 주말 생활 패턴과 맞물려 주말 드라마 시청층의 주 세대가 장년층이 되었다는 걸, SBS 드라마나 KBS 사극이 말해준다.

방송사의 드라마 성격이 특정 세대를 공략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드라마는 그 방송사의 이미지를 만들기도 하는 상황에서 이렇게 한 세대에 국한되는 이미지를 형성하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이것은 어떤 면으로 보면 특정 세대에 대한 쏠림 현상을 말해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타깃 세대가 고정되면 당장은 시청률을 확보할 수 있겠지만 향후에는 비슷비슷한 톤의 드라마들이 등장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한 방송사에서도 여러 세대들이 향유할 수 있는 다채로운 프로그램과 드라마가 다양하게 포진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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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티쇼에 웃음만큼 필요한 진정성

흔히들 무정형, 무개념, 무의미로 정의하는 리얼리티쇼 전성시대. 이 정의는 재미만이 오락 프로그램의 지상과제가 된 현실을 말해주는 것 같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리얼리티쇼에서 무정형은 이해가 되지만 무개념과 무의미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프로그램은 기본적으로 그 자체의 개념과 의미를 갖기 마련이며, 그것을 상실한 재미추구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리얼 버라이어티쇼 형식의 대부분을 만들어낸 ‘무한도전’이 한 때 인기도가 주춤했던 것은 바로 재미추구에만 몰두하면서 드러난 한없는 무의미, 무개념에 조금씩 지쳐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순간, ‘댄스스포츠 특집’편은 이 무의미와 무개념을 일거에 날려버리면서 다시금 ‘무한도전’의 상승세를 만들었다. 그 이유는 이 특집이 그간 무의미와 무개념으로 보이던 ‘무한도전’ 멤버들의 맨 얼굴을 드러내면서 이면에 숨겨졌던 진정성을 끄집어냈기 때문이다.

가끔은 마음을 보여주세요
‘무한도전’, 독주 체제에 뛰어든 ‘라인업’과 ‘1박2일’은 처음 기획단계부터 이 부분을 염두에 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라인업’이 주창하는 ‘생계 버라이어티’는 그 자체로 개그맨들의 진정성을 담보한다. 프로그램 안에서의 경쟁은 물론 과장된 부분들이 있지만 실제 개그맨들 사이에서의 경쟁이기도 하다. 따라서 김경민이 보여준 뜻밖의 눈물은 실제상황의 진정성을 확보하면서 동시에 리얼리티쇼의 신뢰성을 부가시킨다.

하지만 ‘라인업’의 생계를 위협하는 장본인은 말 그대로 ‘무한도전’ 자체이기 때문에 ‘라인업’은 초반부, ‘무한도전’에 대한 과도한 경쟁의식을 의도적으로 드러냈다. 따라서 프로그램은 종잡기가 어려웠다. ‘무한도전 따라하기’라는 비아냥이 나온 것은 그 경쟁의식으로 인해, 이 프로그램의 정체성인 무거운 생계와 ‘무한도전식’의 가벼운 재미가 겉돌았기 때문이다.

‘라인업’이 ‘태안봉사활동’을 통해 방향성을 재미보다는 진정성에 맞춘 것은 따라서 적절한 것이라 여겨진다. 태안기름유출사고 현장이나, 군인들에게서조차 오지로 인식되는 최전방, 그리고 그 자체로 숭고함을 가진 일터로 달려가 말 그대로의 ‘체험 삶의 현장’을 리얼 버라이어티쇼와 접목시키려는 노력은 이제 이경규식의 공익적 개그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경규의 개그세계는 ‘양심냉장고’와 함께 빛을 발했던 경험이 있다.

때론 따뜻함을 전해주세요
한편 ‘1박2일’은 여행이라는 컨셉트 자체가 의미를 내포한다. 해외여행이 일반화된 요즘, 국내 여행지로 달려간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네 산천에 대한 애착을 드러낸다. 이것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성격상 오지로 달려가기에,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왔던 지역에 대한 따뜻한 조명의 의미를 갖게 된다. ‘독도편’에서 그 곳을 지키는 분들에게 자장면을 손수 만들어준다거나, ‘가거도편’에서 오지 학교를 찾아 아이들에게 피자를 만들어주는 장면들은 그 자체로 프로그램에 의미를 부가해준다.

이것은 비단 오지에서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는 젊은이들이 도시로 떠나버리고 시골을 지키고 있는 어르신들을 찾아가 그 따뜻함을 전해주는 ‘1박2일’의 멤버들은 때론 거기서 역시 시골에 계실 자신들의 부모님의 자화상을 찾아내기도 한다. 그 멤버들과 어르신들의 공감대는 때론 도시와 시골을 연결하고, 계층을 아우르며, 세대를 끌어안는 효과를 만들어낸다.

때론 그 힘을 의미 있는 곳에 써주세요
최근 들어 ‘무한도전’이 ‘피로도’가 극에 달했다는 이야기가 많다. 김태호 PD 역시 한 인터뷰를 통해 재충전의 시간을 갖고 싶다는 의견을 표명하기도 했다. 게다가 ‘무한도전’은 요즘, 너무 많은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다. 방송국 입장에서는 그 인기도를 타 프로그램과 접목시켜 시너지를 얻으려는 것이지만 그것이 실효성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오히려 ‘무한도전’의 이러한 무한노출이 가져오는 이미지의 과잉소비가 자칫 생명을 단축시키지나 않을까 애청자로서 저어되는 부분이 있다.

여기에 ‘무한도전’만이 가지는 무한재미의 추구는 피로도를 더 깊게 만든다. 재미란 점점 더 큰 것을 요구하게 만드는 속성이 있다. 따라서 조금 떨어지는 재미에 대해 그만큼 가혹한 평가를 받는 상황을 만든다. 그러니 이제는 ‘무한도전’도 웃음과 재미에 대한 강박을 조금 벗어내도 좋을 것이다. ‘라인업’이 ‘체험 삶의 현장’에서 삶의 진솔한 이야기를 찾아내려 하는 것처럼, ‘무한도전’은 ‘도전 지구탐험대’같은 ‘도전하는 자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 어쨌든 캐릭터가 완벽하게 자리를 잡은 상황이기에, 이제는 무얼 해도 큰 웃음을 끄집어낼 수 있는 힘을 가진 만큼, 그 힘을 조금은 의미 있는 쪽에 활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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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부외과, 사랑, 휴머니즘의 심장

‘외과의사 봉달희’에 이어 또다시 흉부외과가 소재가 된 ‘뉴하트’. 왜 의학드라마에는 흉부외과가 단골로 등장할까. 그 이유는 병원에서 흉부외과가 차지하는 특별한 위치 때문일 것이다. 생사가 왔다갔다하는 긴박한 분야로서 가장 병원에 근접한 과이면서도, 실상 현실은 대부분의 의사들에게 외면 받는 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흉부외과만의 특징은 드라마의 극적 스토리 전개에 있어서 좋은 소재가 된다.

하지만 이것은 비단 흉부외과만이 아닌 일반외과(물론 성형외과 같은 분야가 아닌)에 대부분 해당되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왜 굳이 흉부외과일까. 그것은 흉부외과가 여러 의미로 포착되는 심장을 다루기 때문이다. 그것은 물리적인 의미로서의 심장, 즉 흉부외과라는 전문직과, 예로부터 남녀간의 사랑으로 상징되던 하트(♡), 그리고 휴머니즘으로서의 따뜻함을 상징하는 심장을 말한다.

첫 번째 심장, 흉부외과라는 전문직
새로 시작한 의학드라마 ‘뉴하트’가 그리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네 기초의학이 처한 자화상이다. 최강국(조재현)은 최고의 흉부외과의지만 그가 맡고 있는 흉부외과는 이른바 ‘꼴찌 수용소’다. 공부 잘하는 친구들은 대부분 좀더 편하고 좀더 돈벌이가 될 수 있는 과로 가기 때문에 흉부외과처럼 고되고 힘겨운 과에는 아무도 지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현실의 의료계를 거의 그대로 반영한다. 드라마 상에서는 외과와 내과의 선택 사이에서 남혜석(김민정)이 갈등하지만, 실제 상황에서는 외과를 전공하고서도 성형외과나 정형외과(그 중에서도 관절 클리닉 같은) 혹은 남성클리닉이나 대장항문과처럼 비보험이 적용되는 분야로 개업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항간에는 진짜 실력 있는 외과의들은 대부분 개업의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을 정도다. 따라서 ‘뉴하트’가 포착하는 심장은 그것을 다루는 우리네 흉부외과 의사들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디테일은 어떨까. ‘뉴하트’가 그리고 있는 흉부외과의 풍경은 실제와는 다르다. 드라마이기 때문에 극적 구성을 위해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의사 가운을 입은 채 술집을 전전한다거나, 레지던트 1년 차가 자리를 번번이 비우고 찜질방에 간다거나, 협진 체제로 운영되는 내과와 외과가 지나치게 경쟁적으로 그려진다거나 하는 것들은 실제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 또한 지나치게 최강국(조재현)에 집중하다보니 의사는 최강국 하나만 있는 것처럼 되어버리는 상황도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다. 그나마 미덕으로 꼽히는 것은 적어도 이 드라마가 우리네 사회 속에서 흉부외과의들이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한 문제제기는 하고 있다는 점이다.

두 번째 심장, 멜로 드라마로서의 사랑(♡)
전문직을 다루는 장르 드라마들 속에서 멜로 구도는 늘 비판을 받아왔다. 하지만 꼭 그렇게만 볼 것은 아니다. ‘외과의사 봉달희’의 작가가 밝혔듯이 병원에서 의사들간의 사랑과 연애는 실제로도 공공연한 것이니까. 문제는 멜로 구도 속에서 전문직이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그리고 이러한 우려는 종종 현실로 나타난다. 장르 드라마들이 추구해나가는 드라마의 긴장감은 멜로가 끼여들면서 자칫 흐트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뉴하트’의 멜로는 이은성(지성)과 남혜석(김민정)의 라인을 중심으로 이동권(이지훈)이 포진하면서 삼각 구도를 이룬다. 멜로 드라마로만 보면 싱거운 구도이다. 남혜석이 이은성과 이동권 사이에서 갈등하는 전형적 구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전형성은 어쩌면 전문직과의 봉합에서 필요한 부분일지도 모른다. 과도한 멜로 구도의 복잡성은 의학드라마의 본질을 흐릴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은성과 남혜석의 러브라인은 너무 익숙하다. ‘외과의사 봉달희’에서 보았던 것처럼 까칠한 남혜석과 착한 이은성은 버럭범수 안중근과 착한 봉달희의 캐릭터를 뒤집어 놓은 것처럼 보인다. 의사의 인간적인 모습을 통해 상대방에 대한 호감을 얻고 있는 멜로의 과정 또한 유사하다.

게다가 여기에 삼각 구도로서 등장시킨 이동권이란 캐릭터는 좀 어색하게 느껴진다. 일회성의 이벤트적인 스토리로 끝났으면 좋았을 이 캐릭터의 활용이 계속 이어지는 것은 궁극적으로 이은성과 남혜석의 멜로를 구축하기 위한 안일한 선택으로만 보인다. 가장 큰 문제는 너무 급격한 멜로 구도가 만들어지면서 남혜석의 캐릭터 또한 너무 극과 극의 변화를 겪고 있다는 점이다.

세 번째 심장, 휴머니즘
우리네 현실에서 의사들이 처한 상황은 꿈으로부터의 도피거나, 꿈속으로의 추락이다. 물론 애초부터 돈벌이나 사회적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의사의 길을 선택한 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할 때만이라도 그들의 심장은 뛰었을 것이 틀림없다. 의사란 직업은 다름 아닌 ‘사람을 살리는 숭고한 일’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부분은 한 인간으로서의 의사가 생명을 두고 벌이는 휴머니즘의 등장을 가능케 한다.

‘뉴하트’가 보여주는 휴머니즘은 주로 이은성, 최강국과 환자들 간의 이야기에 의해 구축된다. 최강국은 아버지가 의사면허증을 빼앗기고 쫓겨난 것에 대한 울분을 떨치지 못하면서 그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욕망에 사로잡히지만, 그 스스로도 밝히듯 ‘사람 살리는 의사’라는 직업 앞에서 욕망조차 무색해진다. 최강국은 오로지 환자만을 생각하는 이은성을 ‘꼴통’이라 부르지만 그 자신도 그 범주의 의사라는 것을 부인하지 못한다. 이 둘의 돈키호테 같은 휴머니즘을 바라보면서 점차 차가운 심장을 녹여 가는 남혜석은 시청자의 감정이입을 원활하게 만든다.

‘의사는 기술자가 아니다’, ‘환자만 있을 뿐이지 VIP는 없다’, ‘의사는 머리로만 되는 게 아니다’ 같은 말들은 의사라는 전문직종에서 휴머니즘을 끌어내는 과정에서 등장한다. 이러한 주제의식은 물론 좋은 것이지만 그것을 구현해나가는 드라마의 에피소드들은 어떨까. 에이즈 모티브나 강간범 환자 이야기, 외도하는 의사, 바른 소리했다가 쫓겨나는 의사 같은 것들은 이미 ‘외과의사 봉달희’나 ‘하얀거탑’을 통해 익숙해진 에피소드다.

정신대 할머니의 에피소드는 그 자체로 괜찮은 소재이지만 쑥국에 대한 이야기는 ‘식객’을 떠올리게 만든다. 열심히 일하는 의사들의 모습 자체에서 자연스럽게 휴머니즘이 발현되어야 하지만, ‘뉴하트’의 휴머니티는 극적으로 짜여진 연출로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장르화된 의학드라마의 한 전형을 걷고 있다는 말이다.

세 심장의 봉합, 성공하려면
‘뉴하트’는 흉부외과와 사랑, 그리고 휴머니즘이라는 세 가지 심장의 의미를 봉합하려 하고 있다. 제목인 ‘뉴하트’에서 유추해보면 이 드라마는 새로운 의학드라마, 새로운 멜로드라마 그리고 새로운 휴먼드라마를 지향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시도들이 새로운 것인지는 의문이다.

심혈관센터장 자리를 놓고 최강국(조재현)과 민영규(정호근)가 벌이는 대결구도는 ‘하얀거탑’의 권력다툼을 연상케 하고, 인간으로서의 의사라는 측면을 부각시키면서 휴머니즘과 멜로를 봉합하려는 것은 ‘외과의사 봉달희’를 닮았다. 따라서 ‘뉴하트’가 지향하는 새로움이란 이러한 의학드라마라는 장르의 전통들을 한 군데 엮어 놓았다는 것을 빼곤 그다지 발견하기가 어렵다. 이것은 캐릭터들의 전형성을 통해 드러난다. 등장인물들은 새로운 캐릭터라기보다는 의학드라마 어디선가 보았던 익숙함을 갖고 있다.

‘뉴하트’가 의학드라마의 ‘새 심장’이 되려면 장르 전통들을 꿰고 있는 것만큼 이 드라마만의 차별성이 필요하다. 장면 전환에 사용되는 9개로 나뉘어진 분할화면이 새롭다기보다는 그저 이 드라마가 가진 복잡한 상황을 말해주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 전체를 아우르는 ‘뉴하트’만의 독특함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의학드라마는 분명 그 자체만으로도 기본적으로 시청자들에게 어필하는 면이 있다. 하지만 ‘뉴하트’에 그저 장르적인 재미 그 이상을 요구하게 되는 것은 이제 우리네 의학드라마도 어떤 전통을 갖춰가고 있으며, 따라서 조금씩 진화되는 모습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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