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경’, 운명을 알면서도 피하지 않는 자의 쓸쓸함

원경

차주영이 이토록 매력적인 배우였던가. tvN, 티빙 월화드라마 ‘원경’의 힘은 이 배우의 아우라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특히 우아함 속에 슬쩍 드러나는 쓸쓸한 눈빛은 작품 속 원경(차주영)이라는 인물의 깊은 내면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그 눈빛은 마치 앞으로 자신이 마주할 비극적인 운명을 알면서도 피하지 않는 자의 쓸쓸함을 담고 있다. 

 

‘원경’이 흥미로운 건 조선 초기의 혼돈기를 다루면서 이성계(이성민)와 이방원(이현욱)이 아닌 원경왕후라는 인물에 초점을 맞춘 점이다. 그 역사적 사실은 이미 여러 차례 사극으로 재현된 바 있어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이처럼 관점을 바꿔 놓으니 또 다른 서사가 가능해졌다. 지금껏 주목하지 않았던 원경이라는 인물이 재조명되었고, 조선의 역사에 이 인물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가가 새삼 주목되게 했기 때문이다.

 

이 사극에서 이방원은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인물이다. 자신만의 조선에 대한 야망이 있었고, 그걸 펼쳐내기 위해 형제들마저 죽이는 난을 일으켰다. 여기에 격분한 이성계는 계속 해서 자신의 세력들을 동원해 이방원을 위협했다. 그건 왕의 입장에서 보면 역모에 해당하는 일이지만, 그 주축이 아버지라는 점은 이방원을 복잡한 심경 속에 빠뜨린다. 야망과 불안감 그리고 분노와 회한이 뒤섞여 흔들리는 그런 인물. 

 

이 인물을 붙잡아 주는 이가 바로 원경이다. 이방원이 감정이 폭발하고 마구 흔들리고 있을 때 원경은 흔들림 없이 차분한 모습으로 그를 붙잡아준다. 결단이 필요할 때는 이방원을 결심하게 만들고, 지쳤을 때는 기대게 해준다. 이성계가 군사를 일으켜 이방원을 위협할 때도 원경은 부자 관계인 그들의 연을 끊어지지 않게 하면서도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묘안을 내놓는다. 이성계 앞에 이방원 홀로 다가가게 한 것이다. 

 

하지만 이방원과 이성계가 그 깊은 갈등을 풀어내고 같은 목표를 갖게 되면서, 원경이 오히려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될 거라는 건 어느 정도 예측된 일이다. 이방원은 이성계와 마찬가지로 권문세족들의 힘을 약화시켜 왕권을 강화하려 했고, 그래서 특히 원경의 외척세력인 민씨 일가들과 대립하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원경은 이 사실을 알고 동생들인 민무구(한승원), 민무질(김우담)은 물론이고 아버지인 민제(박지일)에게도 자중하라는 조언을 해왔다. 

 

또 권문세력들의 힘을 누르기 위해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후 이방원과 새 조선을 만들어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내지만, 원경의 이 마음이 자신의 집안 사람들과 같을 리가 만무다. 민무구와 민무질이 야망을 드러내고 그래서 결국 이방원에 의해 숙청되는 일이 예고된 이유다. 대범하기 그지 없는 원경이 동생들의 숙청까지는 받아들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이상의 위협이 다가올 때 과연 그것까지 받아들일 수 있을까. 

 

원경이 매력적인 건, 바로 그렇게 흘러갈 운명이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피하지 않고 걸어나가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 복잡한 내면을 차주영은 흔들리지 않는 차분한 어조와 어딘가 쓸쓸한 눈빛으로 표현해낸다. 이방원이 원경을 견제하기 위해 여러 후궁들을 들이고, 그들이 용종을 잉태해도 이 인물은 대담하고 대범하기 이를 데 없는 모습이다. “왕자를 낳으면 내 아들로 알고 키우면 그만이네”라고 말하는 대범함이라니.

 

이토록 왕후로서의 대범함을 가진 인물이지만 남편 이방원에 대한 애증 또한 원경은 드러내는 인물이다. “그대는 결국 나의 사랑을 잃게 될 것이오”라고 말하는 이방원에게 원경은 “전하의 사랑을 잃는 것이 저를 잃을 이유가 되지는 않습니다”라고 말하고는 사가로 떠난다. 그리고 그 곳에서 결국 원경이 보고싶어 찾아온 이방원을 맞이한다. 또 이성계와 일전을 벌이기 위해 떠나는 이방원에게 합방을 스스로 요청해 자신의 뜨거운 사랑을 드러낸다.

 

왕후로서의 면모와 더불어 한 여인으로서의 모습을 모두 가진 이 인물이 이토록 매력적으로 그려질 수 있었던 건 다름 아닌 차주영의 깊이 있은 내면연기 덕분이다. 특히 강인함 속에 언뜻 드러나는 쓸쓸한 눈빛은 이 인물에 대한 연민의 감정마저 느끼게 만든다. 흔들리지 않는 자에게서 언뜻 비쳐지는 감정만큼 보는 이들의 마음을 뒤흔드는 게 있을까. 차주영은 원경이라는 인물을 통해 그걸 꺼내 보여주고 있다. (사진:tvN)

‘나완비’의 이준혁, ‘옥씨부인전’의 추영우, 외조하는 남성 판타지에 쏠린 시선

나의 완벽한 비서

배우 이준혁과 추영우에 대해 쏠린 대중적 시선이 어딘가 예사롭지 않다. 이준혁은 최근 출연하고 있는 SBS 금토드라마 ‘나의 완벽한 비서’로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글로벌 OTT 라쿠텐 비키에 따르면 이 작품은 전 세계 123개국에서 시청자 수 1위를 기록하며 이준혁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을 만들어내고 있다. 한편 JTBC 토일드라마 ‘옥씨부인전’으로 추영우 역시 대세 배우로서 급부상중이다. 이 작품에 이어 올해 방영될 차기작 세 편(중증외상센터, 광장, 견우와 선녀) 또한 기대를 모으고 있는 것. 

 

이 두 배우가 주목되는 건 역시 이들이 출연하고 있는 작품 덕분이다. 올해 들어 시청률과 화제성에서 가파른 성장곡선을 그리고 있는 드라마는 단연 이들이 출연하고 있는 두 작품이다. 물론 두 작품은 성격이 다르다. 하나는 오피스 로맨스물이고 다른 하나는 사극이다. 하지만 이 두 작품에는 공통되는 지점이 하나 눈에 띤다. 그것이 외조하는 남성 판타지가 들어 있다는 점이다. 

 

‘나의 완벽한 비서’의 유은호(이준혁)는 딸을 홀로 키우는 싱글대디다. 딸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직장에서의 불이익까지 감수하고 육아휴직을 할 정도로 이 인물은 일단 가정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살림은 물론이고 가사까지 완벽하다. 아이를 위한 건강식은 물론이고 일정까지 착착 정리해 관리하는 프로 살림꾼이다. 그런데 이 완벽한 살림의 능력은 고스란히 비서로서의 능력으로도 발휘된다. 

 

엄청난 열정으로 스카우트라는 일에 뛰어들어 자수성가했지만 자기 관리는 도무지 하지 않는 강지윤(한지민)에게, 갑자기 나타난 비서 유은호는 그래서 구원의 존재가 된다. 보기만 해도 정신 사나워지는 사무실을 완벽하게 정리해주고, 처리해야 할 업무에 맞게 자료를 준비해주며, 실제 스카우트 업무에서도 전직 회사 인사팀에서 발휘했던 능력을 활용해 성과를 낸다. 그저 업무적인 도움만 주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강지윤이 기댈 수 있게 해주는 역할도 한다. 이러니 강지윤에게 유은호는 저 숱한 드라마 속 재벌2세보다 더 한 판타지가 아닐 수 없다. 

 

유은호가 보여주는 외조하는 남성 판타지는 현재 여성들의 달라진 욕망을 보여준다. 스스로 거둔 성취를 일의 영역에서도 느끼고 싶어하는 무수한 직장여성들은 이제 그저 돈많은 재벌3세가 판타지가 되지 못한다. 다른 세계의 저들과 어우러지는 것 자체가 피곤할뿐더러, 그것이 진정한 자아성취의 행복감을 주지도 못할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대신 자신이 하는 일을 묵묵히 한 발 뒤에서 밀어주고 응원해주는 그런 판타지가 훨씬 더 강력하다. 유은호 같은 남성 판타지가 단박에 여심을 사로잡은 이유다. 

옥씨부인전

외조하는 남성 판타지는 ‘옥씨부인전’의 송서인(추영우)이었지만 천승휘로 또 성윤겸으로 정체를 바꿔가며 살아가는 인물에서도 똑같이 드러나는 모습이다. 본래는 송씨 집안의 자제인 줄 알았지만 기녀에게서 난 서자라는 사실을 알고 이 인물은 천승휘라는 전기수로서 살아간다. 송서인 시절부터 마음에 뒀던 노비 구덕이(임지연)를 변함없이 사랑하지만 이 인물의 사랑법이 독특하다. 물론 구덕이가 옥태영이라는 양반집 딸로 정체를 바꿔 성윤겸이라는 인물과 혼례를 이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천승휘의 사랑은 전면에 나서는 게 아니라 한 발 뒤로 물러나 도와주는 사랑이다. 

 

집 나간 성윤겸이 사망했다며 과부로서의 삶을 강요받을 위기 상황에 몰리자 천승휘는 성윤겸인 척 연기를 해 옥태영을 구해낸다. 얼굴이 비슷하게 생긴데다 천승휘가 타고난 연기자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렇게 옥태영과 부부처럼 살게 된 천승휘는 집안 일을 도맡아 하며 외지부로 일하는 아내를 돕는다. 사극이라는 외형을 갖고 있지만 일하는 여성으로서의 옥태영을 외조하는 천승휘의 남성 판타지가 도드라지는 지점이다. 

 

‘나의 완벽한 비서’의 유은호나 ‘옥씨부인전’의 천승휘를 통해 드러나는 외조하는 남성 판타지가 예사롭지 않게 보이는 건, 이 두 작품의 강력한 힘이 바로 이 판타지에서 나오고 있다는 걸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이 판타지를 실감하게 만드는 이준혁과 추영우의 호연이 바탕이 된 것이지만, 이렇게 연기와 역할이 맞아 만들어내는 판타지의 동력에는 현실적인 욕망이 공조하기 마련이다. 

 

일하는 여성들의 자기 성취에 대한 욕망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요즘이다. 물론 그 욕망은 육아나 가사 같은 여전히 힘겨운 현실에 부딪쳐 좌절되거나 꺾이는 일이 적지 않다. 그래서 생겨난 외조하는 남성 판타지는 아마도 향후에도 드라마의 중요한 동력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준혁과 추영우의 급부상이 단지 좋은 배역을 잘 소화해낸 것에 머물지 않고 신드롬적인 느낌을 주는 건 이런 현실이 밑그림에 깔려 있어서다. (사진:SBS,JTBC)

달리는 속도에서 걷는 속도로

응답하라 1988

급한 일이 없는 날이면 약속장소에 늘 30분 정도 일찍 나간다. 서촌이나 북촌, 인사동, 종로에서 주로 약속을 잡는데 그곳 골목길들을 걷는 게 재미있어서다. 30분 정도 먼저 도착해 골목길들을 슬슬 걸어 다니며 돌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지금은 카페와 음식점들로 가득 채워져 말 그대로 인파가 몰리는 익선동 골목도 7,8년 전만 해도 한옥의 처마를 그늘 삼아 슬슬 걷기 딱 좋은 길이었다. 비 오는 날 우산 하나 들고 그 길에 들어서면 고즈넉한 분위기에 순간 도시 한 복판에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 아늑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당시에는 그 골목길에 '거북슈퍼' 하나가 달랑 있었는데, 비 오는 날 그 가맥집에서 병맥주를 마시며 빗소리를 듣는 기분이 그만이었다. 물론 거북슈퍼가 있던 자리에 세련된 음식점들이 잔뜩 들어선 지금은 그곳을 잘 찾지 않는다. 그때의 정취가 잘 느껴지지 않아서다. 대신 요즘은경복궁역 뒤편 서촌 쪽에 약속을 하고 그 골목길들을 쏘다닌다. 그곳 골목길은미로처럼 뻗어있어 일단 들어서면 다른 세계로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을 준다. 구불구불 이어진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발길이 어디에 닿을지 못내 궁금해진다. 어쩌다 길을 따라 수성동계곡까지 올라가 겸재 정선이 그린 그림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걸 보다 보면 이곳이 서울 한복판에 숨겨진 별천지라는 생각이 든다. 구석구석 걸어 다녀야 비로소 보이고 발견되는 별천지.

 

그때는 가치를 미처 몰랐던 것들이 있다. 집에 놓여있던 유선전화기 앞에서 사랑하는 누군가의 전화를 애타게 기다리던 시간과, 마음을 글 몇 줄에 담아 적어보던 편지들 그리고 한쪽 귀로 나누어 듣던 워크맨 노래들 같은 게 그것이다. 골목길도 그랬다.그저 좁기만 했던 골목은 더럽게만 느껴졌고, 그 골목 한편에 놓인 평상에서 골목으로 들어오는 아이들 하나하나에 인사를 하고 참견을 하던 이웃 아주머니들의 오지랖은 불편하게만 생각되었다. 하다못해 왁자하게 떠들며 골목을 누비고 다니는 아이들은 시끄럽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그 골목이 싹 밀어진 자리에 세워진 말끔한 아파트에 살다 보니 이제 알게 되었다. 그것이 꽤 그립고 따뜻한 시간들이었다는 것을.

응답하라 1988

‘응답하라 1988’은 쌍문동 봉황당 골목 풍경으로 시작한다. 택이네 집에서 함께 ‘영웅본색’을 보던 친구들이 6시 괘종시계 소리와 함께 집집마다 “밥 먹어라” 하고 부르는 엄마들의 소리에 집으로 돌아간다. 변진섭의 ‘새들처럼’이 배경으로 흘러나오는 가운데, 카메라가 훑어 보여주는 골목길 정경은 당대를 살았던 이들의 기억을 되살려 놓는다.익숙한 철제문들과 현관 위에 놓인 화분들, 포스터들이 잔뜩 붙였다 떨어진 흔적이 가득한 담벼락, 위로 넣고 앞으로 빼내는 시멘트로 만들어진 옛날 쓰레기통과 그 옆에 놓인 연탄재들, 버려진 의자들, 대야들. 도둑이 넘어올 수 없게 깨진 사이다병과 맥주병을 거꾸로 꽂아 놓은 담장, ‘사글세 있습니다’, ‘잠잘 방 있습니다’ 같은 전단이 붙어 있는 전봇대, ‘양담배 있습니다’라 적힌 담뱃가게, ‘금은보석 고급시계’라 적힌 촌스럽기 이를 데 없이 화려한 봉황당이라는 간판... 그 풍경들 위로 훗날 이때를 회고하는 덕선의 내레이션이 들려온다.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 봉황당 골목. 난 이 골목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인터넷도 없고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 지금 생각하면 그 많은 시간들을 우린 대체 뭘 하면서 보냈을까?”

 

'응답하라 1988'이라는 드라마가 건드린 정서적 뇌관은 지금은 찾기 힘든 그 골목길 풍경에 있었다. 지금은 사라져 버렸거나 혹은 사라져 가는 것들을 그 1988년의 쌍문동 골목길에 옮겨 놓은 것이다. 이제 보니 그 골목길은 사람과 사람을 얇디얇은 벽으로 막아놓은 아파트와는 달리, 사람과 사람이 길로 연결된 정이 넘치는 공간이었다. 아이들은 그 골목에서 함께 놀며 자랐고 부모들은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실감 날 정도로 이웃인지 가족인지 알 수 없는 정이 있었다. '응답하라 1988'의 그 쌍문동 골목길은 지금의 차가운 디지털 세상의 풍경에 결핍된 어떤 것들을 채워주기에 충분했다. 그 풍경을 보고 지금 도시에 하나둘 생겨나고 있는 골목길로 자꾸만 마음이 이끌리는사람들은 아마도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게다. 저런 곳에서 살고 싶다.

응답하라 1988

내게도 그런 골목길들이 있었다. 포장도 되지 않은 흙길들이 대부분이었던 70년대 나의 고향 경기도 안성의 골목길들에는 여지없이 아이들이 와하고 소리치며 달려가곤 했다. 나뭇가지로 땅바닥에 금을 그어 놓고 무슨 뜻인지도 모른 채 ‘십자 가이상’, ‘팔자 가이상’, ‘오징어 가이상’, ‘접시 가이상’ 같은 놀이들을 하곤 했다. '오징어게임'이라는 드라마가 바로 그때 했던 ‘오징어 가이상’을 소재로 한 것이다. 놀이터도 별로 없던 시절, 우리의 골목길은 땅만 있으면 뭐든 놀 수 있던 놀이 공간이었다. 방과 후 집에 돌아와 가방을 던져 놓고 그 골목길로 나가면 항상 같이 놀 수 있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 친구들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다 보면 골목길 집집마다 밥 냄새가 피어올랐고, 엄마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밥 먹어라!”

 

새마을 운동의 물결이 그 시골 마을에도 일렁이기 시작하면서 땅에 금 긋고 놀던 놀이들은 학교 운동장으로 밀려났다. 비가 오면 푹푹 들어가던 흙길은 널찍한 신작로로 바뀌었고 그 위로는 시멘트가 덮여 트럭 같은 차들이 달리기 좋은 길로 바뀌었다. 우리들은 금 그을 수 있는 새로운 땅을 찾았고, 방과 후 집으로(사실은 골목길로) 가던 발길은 이제 학교 운동장으로 모여들었다. 가끔 소나기라도 내리면 시멘트로 포장된 신작로 위로 먼지들이 몽글몽글 떠오르곤 했는데 그때 풍기던 텁텁한 냄새는 지금도 갑자기 소나기를 맞아 처마 끝에 비를 피할 때면 속절없이 코끝을 스치는 기억이 됐다. 빼앗긴 자의 아련함이랄까. 마음껏 금을 그으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곤 했던 우리들의 골목길이 시멘트로 덮이고 그 위로 신난다는 듯 자동차들이 쌩쌩 달리는 빨라진 세상의 변화 속에서 친구들은 뿔뿔이 흩어져갔다...

 

김훈은 '밥벌이의 지겨움'이란 에세이의 ‘길의 원리 행함의 원리’라는 글을 통해 ‘길은 명사라기보다는 동사에 가깝다’고 했다. 길이란 사람의 ‘행함’에 맞게 나는 것이고 그래서 논두렁길의 구부러짐은 농사꾼의 몸의 조건에 따라 ‘이리저리 휘어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 길들이 어느 날 차들이 달리는 도로로 바뀌었다. 구불구불 넘어야 했던 산길 대신, 터널을 뚫어 낸 길로 차들이 쌩쌩 달려가면서 그 고갯길들의 ‘존엄’은 사라지게 됐다. 나의 기억 속에 구불구불 미로처럼 펼쳐져 있고 비가 오면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흙들을 오목하게 파이게 했던 그 골목길 대신, 일직선으로 뻗어있어 편리하긴 하지만 각진 길들 과 빗물이 스미지 못해 하수도를 향해 흘러내려가는 시멘트길로의 변화는 그래서 사람의 길에서 자동차의 길로 바뀌며 생겨난 삶과 생각의 변화처럼 다가온다.

 

골목길의 땅은 빈 공간이었다. 거기에는 아무 표식도 기능도 강요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빈 도화지나 마찬가지였다. 그 위에 우리들은 매일 오징어도 그리고 접시도 그리고 팔자도 그려가며 놀았다. 동그랗게 원을 그려놓고는 돌을 세 번 튕겨 만들어지는 공간만큼을 내 땅으로 삼을 수도 있었다. 물론 우리들의 놀이가 끝나고 나면 슥슥 다른 친구들의 발길에 지워진 후 그들의 도화지가 되었다. 무한한 가능성과 상상의 공간. 하지만 그 공간 위로 시멘트와 아스팔트가 덮이고 금이 그어졌다. 차도와 인도가 나뉘고 횡단보도가 생겼다. ‘사람은 왼쪽 자동차는 오른쪽’으로 가야 한다는 규칙도 생겼다.

 

그 규칙을 가진 길은 ‘생산성’이라는 척도로 채워졌다. 느긋이 걷곤 하던 길을 이제 사람들은 경쟁하듯 달리기 시작했다. 차들이 쌩쌩 달렸고, 때론 사람과 사람이, 때론 차와 차가, 때론 사람과 차가 부딪쳐 사고를 냈다. 경쟁사회의 시작이었다. 땅에 금을 몇 개 긋고 하던 놀이의 ‘오징어 게임’은 이제 선을 넘으면 진짜 죽는 살벌한 경쟁의 ‘오징어 게임’이 됐다. 저녁이 되면 풍겨오던 밥 냄새와 “밥 먹어라” 외치던 엄마들의 목소리가 있던 자리는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갔다.

오징어 게임

변화의 물결에 휩쓸려 서울로 전학을 온 나는 한동안 차만 타면 멀미를 했다. 차의 속도로 쌩쌩 달려가던 그 변화 앞에 몸이 미처 적응하지 못했던 거였다. 하지만 내가 서울의 속도에 적응하며 더 이상 차멀미를 하지 않게 되던80년대를 거치며 도시는 급속도로 변했다. 땅은 포장되었고, 오래되고 낡은 집들은 밀어내지고 그 자리에 아파트와 빌딩들이 세워졌다. 외국인들의 시선에 특히 민감한 한국인들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이런 변화를 가속화했다. 개발 위에 다시 개발을 얻는 재개발이 서울 전역에서 이뤄졌다. 그렇게 30여 년 간 자잘한 도시의 골목길들이 사라져 갔다.

 

그런데 이건 웬일일까. 신사동 가로수길, 이태원 경리단길, 마포구 연남동길, 망원동 망리단길... 최근 몇 년 간 도심을 중심으로 골목길들이 곳곳에서 생겨나 증식하고 있다. 거기에는 저 '응답하라 1988'이 상기시켰던 잃어버린 골목길에 대한 향수와 추억 그리고 나아가 어떤 보상심리 같은 것들이 어른거린다. 물론 개발과 재개발 속에서도 골목길들은 늘 존재했다. 70년대의 종로와 명동, 무교동거리가 상업화의 물결을 탄 도시의 활기였다면, 80년대 야타족과 오렌지족으로 대변되는 압구정동 로데오거리는 과시경제의 상징이었고, IMF의 그늘 속에서 9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커져온 홍대거리는 젊은이들의 문화적 갈등과 고민의 흔적이었다. 그렇다면 최근 생겨난 가로수길부터 망리단길에 이르는 골목길들의 전성시대는 도대체 뭘까. 압축성장과 개발의 뒤안길에서 사라져 버린 길들에 대한 회한이자 그리움 같은 게 아닐까.

응답하라 1988

압축성장과 개발시대의 길이란 속도를 의미하는 차들이 장악한 공간이었다. 본래 마을이란 삶의 공간과 어우러져 자연스럽게 생겨난 상점들로 구성되어야 하지만, 그저 빨리 지나치게 만드는 차들의 길이 생겨나면서 공간은 사람이 머무는 곳이 될 수 없었다. 최근 들어서는 골목길들이 차들을 밀어내고 대신 ‘걷는 사람들’을 애써 채워 넣고 있는 건 그래서 반가우면서도 안쓰럽다. 사람들이 차에서 내려 걷기 시작하자 신사동 가로수길은 그 골목골목까지 도시에 걷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거리가 되었고, 부암동길은 도시적인 풍경 속에 자연을 느끼며 걸을 수 있는 길이 됐으며, 삼청동길은 역사가 보이는 길, 이태원 경리단길은 이국적인 풍경을 걷는 길이 되었다. 하지만 거기 그냥 있는 것이 당연한 길이 아니라 굳이 무슨무슨 길이라고 지칭되는 것 자체가 얼마나 우리에게 골목길 같은 사람들이 걷는 길이 낯선 공간이 되었는가를 말해주는 것만 같다.

 

서울 구석구석에 골목길이 생겨나는 건 도시에 인간적인 온기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나를 설레게 한다. 하지만 '젠트리피케이션'이 생겨나는 골목길을 보다 보면 그곳 역시 자본화의 고속도로가 깔림으로 해서 밀려나고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피할 수 없다. 카페와 음식점들로 가득 채워지기 전, 고즈넉한 한옥의 처마를 내주던 익선동 골목길이 그립다. 그곳 거북슈퍼에서 잠시 다리를 쉬게 하고 병맥주 한 잔을 홀짝이던 그 한적한 온기가 자본의 열기로 채워져 있는 것이 못내 아쉽다. 그래도 나는 약속시간 30분 전에 도착해 골목길을 찾는다. 그렇게 한 명 두 명 걷다 보면 없던 길도 만들어질 거라고 믿으며.

2024.11.4

‘하얼빈’의 안중근 의사로 돌아온 현빈의 어른이 되는 과정

하얼빈

영화 ‘하얼빈’은 끝없이 펼쳐진 꽁꽁 얼어붙은 강 위를 걸어나가는 안중근(현빈)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영화 ‘듄’을 촬영했던 카메라 ARRI 65에 담겨진 광활한 압도적인 광경 속에 홀로 걸어가는 안중근의 모습은 너무나 외롭고 고독하며 힘겨워 보인다. 영화 속에서 안중근은 육체적인 고통보다 더 큰 정신적인 고통을 감내하는 중이다. 신아산 전투에서 ‘만국공법’을 지켜야 한다며 풀어준 적장 때문에 동료들이 희생되는 사건을 겪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포기하고픈 마음에 얼음바닥에 눕기도 하지만, 그는 끝내 일어나 다시 그 얼음 위를 걸어나간다. 그 때 내레이션으로 흘러나오는 안중근의 목소리는 그가 무엇 때문에 포기하지 않았는가를 드러낸다. “그 순간에 깨달았습니다. 나는 죽은 동지들의 목숨을 대신하여 살고 있다는 것을.” 바로 먼저 간 동지들이 그를 계속 걷게 만들었던 거였다. 

 

‘하얼빈’에서 안중근을 연기한 현빈은 그 두만강을 건너는 장면을 몽골의 홉스골이라는 호수에서 홀로 그 한복판으로 들어가 걷고 쓰러지고 누워버리다 다시 일어나 걷는 그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 찍었다고 한다. 영화만 봐도 그 촬영이 얼마나 힘겨웠을지 느껴지는데 이에 대해 ‘유퀴즈 온 더 블럭’에 나왔던 현빈은 의외의 말을 꺼내놨다. 힘들기보다는 그 “고립되어 있고 외로이 있는 상황들이” 오히려 안중근 의사를 연기하는데 도움이 됐다는 거였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얼음 위를 한 발 한 발 끊임없이 내디뎌야 되는 그 마음이 어땠을지 그 혹독한 촬영 현장 덕분에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얼빈’ 촬영 당시, 홉스골에서 있었던 이 이야기는 현빈이라는 배우의 현재를 잘 보여준다. 한때는 비현실적으로 잘 생긴 외모 이야기가 배우로서의 이야기보다 더 많았던 현빈이었다. 하지만 그의 필모를 잘 들여다보면 그가 배우로서 얼마나 노력해왔고, 그 결과 현재의 아우라를 갖게 됐다는 걸 실감할 수 있다. 실제로 그를 스타덤에 올린 ‘내 이름은 김삼순’을 보면 당시 그가 연기했던 현진헌이라는 인물이 가진 새로움이 느껴진다. 김삼순을 직원으로 둔 까칠한 연하남 사장이다. 그 까칠한 인물이 김삼순에게 점점 빠져들고 그래서 한라산 꼭대기에서 “누구 맘대로 김희진이야! 난 삼순이가 좋다고 그랬지?”하고 말하는 장면에서 시청자들이 울컥하게 된 건 현빈의 눌러주는 연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무려 5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한 이 작품을 통해 현빈은 폭넓은 팬층을 확보한 배우가 된다. 

 

그리고 김은숙 작가의 ‘시크릿 가든’으로 현빈은 스타 배우로서의 정점을 찍는데 이 작품 역시 쉬운 역할은 아니었다. 백화점을 소유한 재벌3세 역할이었지만 스턴트우먼인 길라임(하지원)과 몸이 바뀌게 되고 사랑에 빠지게 되는 판타지가 들어 있는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으로 백상예술대상에서 대상을 받은 현빈은 무수한 광고의 모델이 될 정도로 신드롬급의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현빈은 이러한 초절정의 인기 속에서도 그 순간에 깊숙이 빠져들지는 않았다. 그건 평소 부모님이 현빈에게 “큰 거에 빠져 심취해 있으면 작은 것의 감사함을 모를뿐더러, 그것이 없을 때의 상실감도 클 수 있다”고 말해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세상의 이목이 다 집중되던 그 순간에 현빈은 해병대에 입대했고, 그래서 백상예술대상의 대상 수상소감도 군대에서 군복을 입고 찍은 영상으로 전해졌다.

 

‘유퀴즈 온 더 블럭’에서 그는 군대가 차분하게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해줬다고 말했다. “제 일과 현빈이라는 사람을 떨어져서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그 시기가 굉장히 좋았던 시기였던 것 같아요. 내무반에서 TV를 보다가 다른 사람들의 작품이 나오면 그게 어느 순간 하고 싶은 거예요. 내 직업을 내가 이만큼 좋아하고 있고 이걸 놓지 않고 있구나 하는 걸 새삼 느끼게 된 좋은 시간이었죠.” 

 

이 시간들이 자양분이 되어 현빈은 전역 후 보다 성숙한 배우로서의 면모들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영화 ‘역린’으로 첫 사극을 찍었는데, 단 한 줄로 ‘세밀한 등 근육’이라고 써 있는 그 몸을 만들기 위해 헬스가 아닌 맨 몸 운동으로 잔근육을 만들 정도로 그는 연기에 진심이었다. 드라마 ‘하이드 지킬, 나’에서는 이중인격을 가진 인물을 연기했고, 영화 ‘공조’에서는 임무를 받고 남한으로 내려와 남한 형사와 공조 수사를 진행하는 북한 형사를 연기했다. ‘협상’에서는 처음으로 악역에 도전했고,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에서는 실제 게임 속으로 들어가는 판타지 설정의 드라마에 그의 연기가 현실감을 부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사랑의 불시착’으로 또 한 번의 신드롬을 불러 일으키며 함께 연기했던 손예진과 세기의 결혼에 골인해 가정을 이뤘다. 

 

이러한 일련의 성장 과정들이 있어서일까. ‘하얼빈’으로 돌아온 현빈은 어딘가 달라보인다. 안중근이라는 인물의 내면을 보다 깊이있게 담아내고 있는데, 그건 그 서른 즈음에 죽을 걸 알면서도 그 길을 외면하지 않고 걸어간 안중근을 이해하려한 그의 노력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또한 ‘하얼빈’에서 현빈은 다른 배우들과의 앙상블에 있어서도 도드라진 면모를 보인다. 물론 그가 주인공이지만 함께 독립 투쟁을 한 다른 인물들이 똑같이 주목될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하얼빈’은 안중근 한 사람만이 아니라 우덕순(박정민), 이창섭(이동욱), 김상현(조우진), 공부인(전여빈) 같은 여러 독립군의 면면이 살아있는 작품이 됐다. 

 

“내가 한발짝 뒤로 물러나면서 어른이 되는 것 같다.” ‘유퀴즈 온 더 블럭’에서 현빈은 가정을 꾸린 후의 변화를 그렇게 말했다. 자신이 점점 뒤로 가면서 이 상황들을 책임져가는 것. 내 중심에서 내가 중심이 아닌 사람이 점점 되어가는 것이 바로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라는 이야기다. 아마도 현빈의 연기에서 느껴지는 깊이는 여기서 나오는 게 아닐까. 한발짝 뒤로 물러남으로써 생겨나는 여유는 깊이를 만든다. 연기에 있어서나 삶에 있어서나 현빈이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글:국방일보, 사진:영화'하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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