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싱어게인3’, 다시 부른다는 취지가 주는 이 오디션의 특별함

JTBC <싱어게인3>는 그 제목에 ‘다시 부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는 서바이벌에서 ‘다시’라는 말은 어딘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단 한 번의 기회를 살려야 살아남는 게 오디션이 아닌가. <싱어게인3>의 어떤 차별점이 이 오디션을 돋보이게 할까. 

싱어게인3

유정석의 ‘질풍가도’와 <싱어게인3>의 만남

‘나는 응원을 부르는 가수다.’ JTBC <싱어게인3>에 등장한 74호 가수는 자신을 그렇게 먼저 소개했다. 그러면서 그 이유로 자신이 부른 애니메이션 OST가 ‘응원가’로 사용되고 있다는 걸 들었다. 야구장과 농구장 같은 각종 스포츠 응원가로 유명하다는 것. 심사위원들은 무슨 곡일지 궁금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서 ‘나는 응원을 부르는 가수다’라는 의미는 실제 응원가로 쓰이고 있어서이기 때문인 줄 알았다. 하지만 거기에는 또 다른 깊은 이유가 있었다. 개인사정으로 노래를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안 좋은 생각을 하셨던 분이 제 노래를 듣고 생각을 바꿨다”는 그런 글들을 굉장히 많이 받았다고 했다. 그 때 자신도 좀 힘들 때였는데 그 글들이 위로가 됐다는 거였다. 즉 그가 자신을 소개하는 글귀로 써 놓은 ‘응원’은 야구장만이 아니라 삶이 힘든 분들이 힘을 얻게 되는 그런 응원의 의미도 담겨 있었다. 그 응원이 그가 <싱어게인3>에 나오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 

 

그리고 시작된 무대. “한 번 더 나에게, 질풍 같은 용기를-” 그 첫 소절만으로 충분했다. 유정석이 부른 ‘질풍가도’로 알려진 이 곡을 모두가 바로 떠올렸다. 애니메이션 <쾌걸 근육맨 2세>의 OST였지만 야구장에서 더 많이 울려 퍼져 익숙해졌던 그 노래였다. 규현 심사위원은 이 곡이 <싱어게인>의 주제가로 쓰여도 좋을 것 같다고 했는데, 실제로 “한 번 더 나에게, 질풍 같은 용기를-”이라는 가사는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모두의 심장을 울리게 만드는 면이 있었다. 모두가 한번 더 용기를 내서 나온 무대가 아닌가. 이 순간은 그래서 <싱어게인3>의 상징 같은 장면으로 남았다. 그리고 그 응원의 ‘질풍가도’는 대중들에게도 질풍처럼 번져나갔다.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이 무려 796만 조회수를 기록했고 유정석을 응원하는 댓글이 2만1천개가 넘게 붙었다. 

 

그런데 유정석의 ‘질풍가도’와 <싱어게인3>의 만남은 이 오디션 프로그램이 갖는 차별점과 가치를 다시금 되새겨주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즉 이 프로그램은 무대 하나로 당락이 결정되는 오디션이지만, ‘다시 부른다’는 취지가 더해져 있다. 자신들의 인생의 무대에서 저마다의 이유로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됐거나, 이름이 알려지지 않아 아르바이트를 하며 무명 가수로 살아가거나 혹은 이름이 잊혀진 가수가 됐거나 하는 이들에게 ‘다시’ 주어진 무대라는 것이다. 실제로 현실은 ‘질풍가도’의 가사처럼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경우가 드물다. 오디션 서바이벌이 사실상 우리의 실제 현실이라는 거다. 그래서 <싱어게인>에 등장한 유정석은 그 ‘한 번 더’가 갖는 이 프로그램의 응원과 위로의 의미를 ‘질풍가도’라는 곡을 통해 보여준 면이 있었다. 대중들이 반색한 이유다. 

 

이번에도 넘쳐나는 숨은 실력자들

오디션 프로그램의 성패는 얼마나 많은 개성의 실력자들이 출연하는가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싱어게인3>은 그 오디션의 취지 자체가 다양한 숨은 실력자들을 끌어모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는 점이다. 조편성을 보면, ‘찐무명’도 있지만 ‘재야의 고수’ 같은 이미 다운타운에서는 유명한 가수들도 있고, ‘슈가맨’이나 ‘OST조’처럼 얼굴은 낯설어도 노래만 들으면 단박에 기억나는 가수들도 있다. 심지어 타 오디션 참가자들을 묶어 놓은 ‘오디션조’는 그 오디션에서 1등을 했던 가수들까지 참가했다. 그 면면을 보면 특유의 허스키 보이스로 이미 다운타운에서는 유명가수인 김마스타, 국카스텐 하현우와 함께 이른바 4대 천왕 출신인 김길중, 신촌블루스 보컬 강성희 같은 재야의 고수는 물론이고,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OST로 잘 알려진 가수 소수빈, ‘질풍가도’의 유정석 같은 OST로 유명한 가수들도 있다. 또 <팬텀싱어> 시즌1 우승팀 포르테 디 콰트로의 김현수, <슈퍼밴드>에 출연했던 홍이삭, 임윤성, 오디션 프로그램 <새가수> 우승자 류정운, <보컬플레이> 우승자 임지수 등등 타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왔던 가수들도 다수다. 

 

사실 이런 실력자들이 찐무명들과 한 무대에 올라 경연을 벌인다는 건 오디션 프로그램으로서 공정하지 않다고 여겨질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싱어게인>의 출연자들이나 이를 바라보는 시청자들 모두 이 부분을 그다지 불편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것은 이들에게 적어도 무대에 설 기회를 제공하고 ‘다시 부른다’는 그 취지가 이 모든 것들을 허용하게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찐무명이라고 해서 우승이 요원한 일도 아니다. <싱어게인> 시즌1의 우승자 이승윤은 실제로 ‘찐무명조’로 출연했던 가수다. 

 

<싱어게인>이 가진 ‘다시 부른다’는 콘셉트는 무명 가수들에게 다시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의미도 있지만, 또한 실력자들을 모을 수 있는 장치도 되어준다. 다시 부른다는 건 이미 불렀다는 의미다. 즉 이미 데뷔한 가수이고 그래서 자기 노래가 하나 이상은 있는 것이 참가자격이 된다. 이 오디션은 그래서 아마추어들의 그것과는 다르다. 이미 프로들이고 그래서 실력은 갖추고 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무명이 된 가수들이다. 예를 들어 신촌블루스의 강성희 같은 가수는 이 블루스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유명가수다. 그럼에도 그가 무명가수를 자청하고 나온 건 ‘블루스’라는 장르를 좀더 대중적으로 알릴 수 있는 기회도 된다. 무대에 서는 자세는 더 진지하고 절박할 수밖에 없다. 

 

무명을 유명으로 만드는 시간

오디션 프로그램은 대부분 최후의 승자를 뽑는 걸 목표로 세운다. <싱어게인>도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 목표에만 집중하는 게 아니라 그 과정의 무대들 하나하나에 공을 들이는 것이 여타의 오디션 프로그램들과 다른 지점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여기 나온 가수들이 그간 무명의 세월 속에서 해온 노력들에 대한 예우가 당연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색채를 극명하게드러내는 건 심사위원들의 심사다. 이들은 엄밀한 심사를 하면서도 표현에 있어서 극도의 조심스러움과 예우를 담는다. 김이나 심사위원이 문학에 가까운 표현으로 가수들의 목소리와 무대를 해석해낸다면, 규현이나 이해리 같은 심사위원들은 찐 팬에 가까운 리액션을 심사에 담는다. 또 백지영이나 윤종신 심사위원은 가창력에 대한 부분들을 좀더 분석적으로 해석해 그 가수의 매력을 설명해줌으로서 시청자들이 받은 감동이 어디서 온 것인가를 깨닫게 해준다. 여기에 이번에 처음으로 심사위원으로 합류한 임재범은 많은 말 대신 한두 마디의 ‘촌철살인’으로 참가한 가수들을 먹먹하게 만들기도 하고 활짝 웃게 만들기도 하며 때론 더 정진하게 만들기도 한다. 

 

심사는 그래서 <싱어게인3>에서는 당락을 결정하는 시간만이 아니라, ○○가수라고 달고 나온 무명가수들을 유명가수로 만들어가는 시간의 의미도 담겨 있다. 심사위원의 심사들은 그래서 이들 가수들의 서사가 되기도 한다. 그 서사는 오디션이 뒤로 갈수록 쌓이고 쌓여 어엿한 팬덤을 확보한 가수들로 이들을 변모시킬 것이다. 과연 이번 시즌3에는 얼마나 많은 이들이 유명가수로서의 서사를 갖게 될까. 다시 부르는 그들을 통해 얻는 위로와 그래서 하게 되는 응원이 교차되는 특별한 오디션이 지금 펼쳐지고 있다. (매일신문)

‘싱어게인3’, 다시 부른다는 포용성이 빨아들인 실력자들

싱어게인3

“제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1등을 하기는 했는데 화제성이... 많이 차이가...” JTBC <싱어게인3>에서 타 오디션 우승자로 나온 37호 가수는 그런 말로 자신이 이 프로그램에 나온 이유를 설명했다. 그녀는 이미 시청자분들도 다 알고 있을 KBS <새가수>의 우승자인 류정운이다. 그녀의 말대로 우승까지 했지만 그 이름은 낯설다. 물론 <새가수>라는 오디션 프로그램 역시 낯설긴 마찬가지지만. 그녀는 “<싱어게인> 특유의 기준이 너무 부럽다”고 했지만 네 개의 어게인만을 받아 합격 보류 판정을 받고 최종에서는 결국 탈락했다. 

 

역시 타 오디션 우승자로 나온 38호 가수는 다름 아닌 <팬텀싱어> 시즌1 우승팀 포르테 디 콰트로의 김현수였다. 그는 <싱어게인3>에 나온 이유로 “성악 베이스로 노래를 하고 무대에 섰었는데 여러 장르를 노래 하다 보니까 발성적으로 한계도 있고 사실 헤매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 역시 다 한 개의 어게인만을 받아 탈락했다. 

 

27호 가수 역시 채널A <보컬플레이>의 우승자인 임지수였지만 <싱어게인3> 무대에 서게 된 이유는 코로나19였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우승했지만 코로나가 터지면서 자신을 찾아주는 무대가 없었다는 것. 그래서 유튜브에서만 노래를 해왔는데, 구독자분들이 <싱어게인3>에 꼭 나와 달라는 메시지를 달아줬다고 했다. 그녀는 <싱어게인>이라는 프로그램이 타 오디션에 참가했던 분들도 “당당하게 참가할 수 있는 오디션>”이라고 했다. 그녀는 7개의 어게인을 받아 말 그대로 당당하게 합격했다. 

 

이번 <싱어게인3>는 유독 실력자들이 쏟아졌다. 그걸 알 수 있는 대목은 1라운드만 무려 3화까지 채워질 정도였다는 점이다. 한 회 당 두 시간이 넘는 방영시간을 갖고 있다는 걸 감안하면 얼마나 많은 실력자들이 1라운드 경연을 치열하게 치렀는가를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실력자들이 이번 시즌에 특히 쏟아져 나온 건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류정운이 말한 것처럼 <싱어게인>이라는 프로그램이 가진 인지도와 화제성이 이제 하나의 브랜드가 될 정도로 확고해진 게 그 하나라면, 김현수처럼 성악을 했지만 새로운 도전을 하고픈 이들에게도 문이 열려있기 때문이다. 

 

특히 임지수가 말한 것처럼 코로나19는 더더욱 설 무대가 없던 가수들을 <싱어게인3>로 모여들게 만든 이유가 됐다. 물론 거기에도 전제가 있었다. <싱어게인>이라는 프로그램이 가진 포용성이 그것이다. 이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은 ‘다시 부른다’는 단 하나의 기획 의도로 다양한 영역의 가수들을 한 자리에 모을 수 있었다. 완전한 ‘찐무명’도 있지만, 이미 아는 사람은 아는 ‘재야의 고수들’도 참여하고, 한 때 그 시대를 떠올리게 할 정도의 히트곡을 냈지만 기억에서 잊혀진 슈가맨들이나 OST를 부른 가수들도 심지어 타오디션 우승자들에게도 문이 열려 있다. 

 

<슈퍼밴드> 참가자들로 이미 익숙한 58호 가수로 참가한 홍이삭이나, 12호 가수 임윤성 같은 이미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가수들도 들어와 있지만, 국카스텐 하현우와 함께 이른바 4대 천왕 출신이라는 26호 가수 김길중이나, 특유의 허스키 보이스로 재야에서는 이미 유명한 5호 가수 김마스타, <사랑의 불시착> OST로도 잘 알려진 49호 가수 소수빈, 신촌블루스의 보컬로 블루지한 감성에 국악 창법에 가까운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유명한 25호 가수 강성희 등등 엄청난 실력자들이지만 대중들에게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가수들이 이번 <싱어게인3>에는 줄줄이 등장했다. 

 

여기에 진짜 찐무명이지만 매력적인 보이스에 만만찮은 실력을 보여준 ‘<싱어게인> 키드’ 31호 가수 서윤혁이나, 연천군 캠핑장에서 노래를 불렀다는 46호 가수 신해솔, 다비치 같은 여성 듀오가 되고픈 포부를 드러낸 52호 가수 아샤트리, 자신만의 그루브로 박진영의 ‘니가 사는 그 집’을 불러 올 어게인을 받은 56호 가수 다린, 독보적인 음색으로 다른 공간으로의 순간이동을 시켜주는 듯한 무대를 선사했던 47호 가수 테종 같은 막강한 라인업들이 채워졌다. 

 

사실 어찌 보면 방송과 동시에 인터넷을 통해 그 가수가 누구인가를 쉽게 찾을 수 있어 ‘○호가수’라고 부르는 것이 무슨 소용일까 싶다. 그만큼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진 않았어도 이미 실력이 검증된 가수들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이름을 일부러 가리고 ‘다시 부른다’는 기치를 내세워 그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포용성은 이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을 독보적으로 만드는 중요한 이유다. 그 가수가 누구인가를 찾는 과정 또한 그 가수를 알아가는 과정으로 채워지고 있으니 말이다. 

 

결국 막강한 실력자들이 쏟아진 <싱어게인3>가 말해주는 건 대중적으로 알려지진 않았어도 저마다의 매력을 가진 다양한 가수들이 넘쳐난다는 것이다. ‘무명가수전’이라는 부제를 단 <싱어게인>은 그래서 이들 실력자들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이 됐다. 이제 겨우 첫 라운드를 마친 <싱어게인3>가 펼쳐놓을 화수분 같은 매력의 무대들이 기대되는 이유다. (사진:JTBC)

‘운수 오진 날’이 담은 타인의 고통에 대한 사회적 의미

운수 오진 날

“저, 고통을 못 느껴요.” 금혁수(유연석)는 사고로 편도체에 문제가 생겨 공포도 고통도 못느끼게 됐다고 한다. 그런데 금혁수(유연석)는 그걸 ‘신기한 능력’이라며, 운전을 하고 있는 택시기사 오택(이성민)에게 굳이 손바닥을 칼로 긋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모습을 보며 오택은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른다. 마치 제 손을 긋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금혁수는 무표정하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장면은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운수 오진 날>이 이 살벌한 논스톱 스릴러를 통해 담고 있는 게 무엇인가를 정확히 드러낸다. 그건 ‘타인의 고통’에 대한 이야기다. 한 평범한 택시기사가 연쇄살인범을 손님으로 태우게 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스릴러의 근간은 바로 금혁수라는 사이코패스에서 나온다. 별 이유 없이 재미로 무고한 이들을 살해한 이 사이코패스는 이제 해외로 밀항을 하려 하고, 거기에 택시기사가 말려들게 된 것. 

 

금혁수가 살인까지 아무런 감정없이 하게 된 건 자신은 물론이고 타인의 고통을 전혀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는 저들이 어떤 고통을 당하는지에 대한 감각 자체가 없다. 하지만 그와 달리 오택은 자신은 물론이고 심지어 사이코패스가 자랑하듯 제 손을 긋는 장면을 보면서도 견디지 못한다. 그러니 금혁수와 오택 사이에는 고통과 공포에 대한 간극이 극명하게 존재한다. 바로 이 간극이 이 작품의 스릴러가 극대화된 이유다.

 

휴게소에서 누군가 시비를 걸어와 분노를 느낀다고 해도 오택은 화가 날 뿐 그 이상의 행동을 하지는 않는다. 만일 폭력을 행사한다면 그것이 타인에게 미칠 고통을 그가 알고 있고, 또 그 폭력이 자칫 자신에게도 돌아올 상처에 대한 공포도 갖고 있어서다. 하지만 고통도 공포도 없는 금혁수는 다르다. 그는 기분 나쁘게 한 그를 그저 살해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마치 자신이 대신 한 것이라는 식의 무용담처럼 오택에게 늘어놓는다. 

 

<운수 오진 날>은 이 차이에서 오는 공포감을 다양한 상황 속에서 스릴러로 꺼내놓는다. 오택이 지나는 차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금혁수 모르게 비상등을 켜고 달리고, 무언가 위급한 상황에 놓였다는 걸 알게 된 한 차량의 사내들은 두려우면서도 오택을 도우려 한다. 오택이 처한 고통을 공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혁수는 그들마저 잔혹하게 살해한다. 

 

원작 웹툰에는 없는 캐릭터지만 드라마 리메이크에 새롭게 창조된 황순규(이정은)는 그래서 금혁수와는 정반대에 서 있는 인물이다. 아들을 죽인 금혁수를 추적하는 이 엄마는 자신이 느끼는 고통만큼 오택이 느낄 고통도 공감한다. 금혁수가 오택의 딸마저 납치 감금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복수와 처벌만큼 딸에 대한 오택의 절절한 마음을 이해한다. 금혁수에게 협박받으며 어쩔 수 없이 그를 돕는 오택이 자신마저 따돌리려 해도 그걸 이해하는 것이다. 

 

‘타인의 고통’이 어떤 지를 그 누구보다 절절하게 아는 황순규는 금혁수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그에게 공격받아 죽어가는 한 사내를 발견한다. 황순규는 죽어가는 사내의 손을 잡고는 하는 말은 그래서 너무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내가 옆에 같이 있어 줄게요. 좋은 것만 생각해. 사랑하는 사람들, 가족들 떠올려 봐요.” 그건 마치 죽어가는 아들에게 미처 하지 못했던 말을 사내를 빌어 하는 말처럼 들린다. 

 

아들의 고통을 누구보다 자신의 고통처럼 느끼기에 낯선 사내의 고통 또한 절감하며 그 옆을 지켜주려는 황순규의 모습은, 아무런 고통도 공포도 없는 걸 ‘신기한 능력’이라 치부하며 살인행각을 벌이는 금혁수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그리고 그 공감은 죽어가는 사내에게도 그대로 전이된다. 황순규의 말을 듣던 사내가 힘겹게 그의 손을 잡아주는 것.  

 

<운수 오진 날>은 눈을 뗄 수 없는 스릴러의 진가를 보여준다. 그래서 전체 10부작 중 6부작까지 공개했지만 그 6회를 단번에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몰입이 나오는 건 여기 등장하는 금혁수라는 괴물에 의해 끔찍한 고통과 공포를 겪는 오택이나 황순규 그리고 무고한 피해자들을 바라보며 그 고통과 공포가 끝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이를 통해 <운수 오진 날>은 인간다운 것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나의 고통만큼 타인의 고통이 어떠하다는 걸 느낄 수 있는 바로 그것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는 거다. 그리고 이건 굳이 연쇄살인범 같은 살벌한 범죄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게다. 자신이 하는 어떤 말과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상처와 고통을 주는 지 모르는 이들을 우리는 정치, 경제, 사회 곳곳에서 마주하고 있으니. (사진:티빙)

‘사랑한다고 말해줘’, 정우성이 11년만에 선택한 멜로 뭐가 다를까

사랑한다고 말해줘

산 속 외딴 곳에 있는 집. 정적 속에 산새 몇 마리의 지저귐은 유독 크게 느껴지는 그 곳에 고독의 표상처럼 서 있는 그 집을 차진우(정우성)는 사진에 담는다. 마치 그렇게 침묵과 고요 속에 외롭게 살아온 자신의 모습을 담아내듯이. 지니TV 오리지널 드라마 <사랑한다고 말해줘>는 이 남자에 대한 이야기다. 이 남자의 특별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 

 

제주공항에 도착해 바닷가 촬영장을 찾은 정모은(신현빈)은 ‘여자4번’으로 불리는 무명배우다. 스튜어디스였지만 배우의 꿈을 시작한 그 선택은 쉽지 않다. 연기가 어색하다며 제주까지 온 그녀를 감독은 다른 배우로 바꾸겠단다. 그러면서 그녀가 배역을 위해 고심해서 산 스카프는 마음에 든다며 팔라고 한다. 정모은이 마주하고 있는 세상은 무례한 말들로 가득하다. 

 

그 바닷가를 찾았다가 우연히 정모은을 멀리서 보게된 차진우는 그녀를 사진에 담는다.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장애를 가진 차진우의 시선에는, 들을 수 있고 말할 수 있는 이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이 들어온다. 그래서 무슨 사연인지 제주를 찾아 하염없이 바다만 보고 앉아 있다 결국 죽어버린 한 남자를 벽화로 남긴다. 그 남자는 그렇게 외로운 모습 그대로 벽화 속에 남았다. 그 벽화를 보게 된 정모은은 거기에 포스트잇으로 메모를 남긴다. 

 

말이 있는 세계와 말이 없는 세계. 말로 하는 소통이 더 잘 될 것 같고, 침묵은 불통일 것 같지만 실은 정반대인 경우도 있다. 정모은이 마주한 세계가 그렇다. 그녀는 자신의 세계가 무심코 던지는 무례한 말들 속에서 상처받는다. 반면, 차진우가 그린 말없는 고요의 벽화를 보며 알 수 없는 위로 같은 걸 받는다. 갑자기 벌어진 화재 사고 속에서 저마다 빠져나가라며 아우성을 치지만, 정모은은 그런 ‘말’ 대신 듣지 못하는 차진우를 구해 함께 나가야 한다는 ‘마음’에 발길을 돌린다.  

 

정모은이 병원에서 깨어났을 때 차진우가 전하는 감사의 표시는 말이 아니라 스케치북에 한 자씩 눌러쓴 글귀라 더 마음을 움직인다. ‘괜찮아요? 고맙습니다. 도와주셔서 그리고 무사해주셔서.’ 듣지 못하는 이와 듣는 이가 서로 다른 세계에 놓여 있다는 건 먼저 마음이 움직이면 그리 불편한 일만은 아니다. 꼬르륵 소리에 배를 만지자, 이를 오해해 ‘아파요’라고 적은 차진우의 글에 정모은이 ‘고파요’라고 정정해줌으로써 피어나는 웃음처럼 말이다.  

 

그렇게 마음이 조금씩 열리면서 이들은 상대가 살고 있는 다른 세계를 알고 싶어진다. 식당이 모두 문을 닫아 차진우는 자신의 캠핑카로 정모은을 초대한다. 함께 라면을 끓여먹는다.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자 비를 피해 앉은 정모은은 천둥소리에 깜짝 놀라는데, 그 와중에도 차분한 차진우를 보고는 자신도 귀를 막아 본다. 그가 사는 세계가 궁금한 것. 그녀는 나직이 말한다. “소리없이 내리는 비도 나쁘지 않네.”

 

<사랑한다고 말해줘>는 청각 장애를 가진 차진우와 배우로서의 꿈을 키워가는 정모은을 통해 서로 다른 세계에 사는 이들이 과연 서로에게 얼마나 다가갈 수 있고 또 사랑할 수 있는가를 멜로라는 장르적 틀을 통해 묻는다. 그런데 여기에는 무수한 가시 같은 말들이 쏟아져 나오고 그래서 무시로 상처받고 상처주는 세상이 밑그림으로 깔려 있다. 정모은이 차진우가 마주하고 있는 ‘침묵과 고요의 세계’를 궁금해하게 되는 이유다. 물론 그건 차진우에겐 고독이겠지만. 

 

서울로 돌아온 차진우는 한 아트센터에서 청각장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수업을 수어로 하지만 이들의 손으로 하는 대화는 화기애애하다. 반면 배역 캐스팅을 위해 심사위원들 앞에서 연기를 선보인 정모은은 가시 같은 말들에 상처받는다. “열심히 한 티가 나요. 근데 우리가 연기 보자고 했지 암기 실력 보자고 했나 열심히 하는 사람은 뭐랄까 난 재미가 없어.” 그러자 정모은은 “제가 부족할 수는 있지만 열심히 한 게 잘못 된 건가요?”하고 되묻는다. 하지만 결과로만 판단하는 그들끼리 나누는 대화에서 성희롱에 가까운 말까지 듣게 된다. “아니 승무원 출신이면 좀 타이트한 유니폼이라도 좀 입고 와 가지고 어필이라도 좀 하지 이게 뭐예요.” 

 

‘거리의 이방인 옆에 잠시 머물다 갑니다. 부디 지금은 외롭지 않길.’ 제주 어느 바닷가에서 외롭게 죽어간 사내를 그린 벽화에 정모은은 그런 포스트잇을 남겼다. 그 포스트잇에 화답하듯 차진우는 그녀의 그림을 그려 ‘배우님께’라는 글귀를 남긴 스케치북을 건넸다. 정모은은 그 글귀를 떠올리며 혼자 생각한다. ‘나, 배우라는 말 처음 들어봐요. 보조출연, 단역, 엑스트라 뭐 그렇게들 말하니까.’ 말보다 소리없이 마음을 담은 글 하나가 더 마음을 움직인다. 

 

정우성이 11년만에 하는 멜로는 이처럼 말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사랑 혹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그들은 말의 세계와 침묵의 세계에서 살아왔지만, 이제 그 서로 다른 세계를 향해 마음이 움직인다. 우연히 서울 한 복판에서 만난 자리에서 여자는 ‘열심히’ 연습한 수어로 남자의 세계를 향해 들어온다. 남자는 침묵 속에서 말한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건 당연히 내 몫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엔 노력하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으니까. 그런데 그 많은 사람들 중 누군가 다가와 먼저 인사를 건넸다. 나를 다시 만나게 돼서 반갑다고 준비한 말을 천천히 한 뒤엔 웃었다. 가벼운 인사 몇 마디에 무슨 생각이 그리도 많냐는 듯이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그건  소리없는 사랑의 시작이었다.(사진: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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