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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세상’이 사이다 판타지보다 고구마 현실을 담는 건

 

JTBC 금토드라마 <아름다운 세상>이 그리는 세상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권력의 힘으로 거짓이 진실을 덮고 있고, 그 앞에서 힘없는 서민은 무력하기 이를 데 없다. 학교 이사장인 오진표(오만석)는 그 권력을 통해 자신의 아들 준석(서동현)이 저지른 죄를 은폐하고, 심지어 그건 가진 자들의 당연한 삶이라고 아이에게 말하는 인물이다.

 

준석의 엄마 서은주(조여정)는 사고를 당한 선호(남다름)의 엄마 강인하(추자현)의 친구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만 아들을 위하는 일이라며 그 은폐에 동참한다. 강인하의 남편 박무진(박희순)은 끝까지 진실을 향해 나가려 하지만 사고에 대한 결정적 증거를 말하려던 신대길(김학선)이 뺑소니로 사망하고 그것이 오진표의 사주라는 걸 직감으로 알게 되자 분노한다.

 

그래서 오진표를 찾아가 주먹질을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그를 무력감에 빠지게 한다. 분명한 진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겨우 그런 폭력에 불과하다는 것에 절망한다. 심지어 사람까지 사주해 죽이고도 버젓이 조문을 가는 오진표의 뻔뻔함과, 아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친구에게조차 하지 말아야할 짓을 하는 서은주의 답답함, 그리고 그 부모 밑에서 역시 거짓 연기를 하며 진실을 은폐하는 준석의 엇나감까지 박무진이 처한 현실은 너무나 비틀려 있다.

 

아마도 시청자들은 <아름다운 세상>이 담고 있는 전혀 ‘아름답지 않은’ 현실을 보며 고구마를 꾸역꾸역 넘기는 듯한 답답함을 느낄 게다. 진실이라는 사이다는 등장할 듯 등장하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 고구마 은폐와 범죄의 연속. 도대체 이 드라마는 왜 이토록 답답함만을 의도적으로 안기고 있는 것일까.

 

뺑소니로 죽은 신대길이 박무진에게 선물로 준 선인장은 그래서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진실을 향해 나가는 박무진에게 신대길은 이렇게 말하며 선인장을 선물했다. “선인장을 닮으셨네요. 사막에서도 우직하게 버티는 놈이 선인장 아닙니까. 하지만 제가 오아시스가 될 수는 없을 것 같네요.” 우리가 이 드라마를 통해 느끼는 감정은 바로 그 사막 한 가운데 놓여진 선인장과 그리 다르지 않다.

 

이것은 <아름다운 세상>이 단지 진실을 은폐하는 자들에게 한 방을 먹이는 통쾌한 사이다 드라마가 아니라는 걸 말해준다. 사실 고구마니 사이다니 하며 단순화되어 표현되는 작금의 드라마들은 너무 현실을 단순화해서 담아내는 면이 있다. 즉 답답한 현실 상황을 드라마 속으로 슬쩍 가져와 비현실적이지만 그 순간만큼의 속 시원함을 안겨주는 사이다 판타지로 그려내는 것. 하지만 그런 판타지로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오히려 바뀐 듯한 느낌만 주어 현실에 대한 무감함만 커질 수도 있다.

 

<아름다운 세상>은 쉬운 사이다 판타지보다는 답답한 고구마 현실을 제대로 느껴보기를 요구한다. 무엇보다 어른들이 자신들의 행동에 따라 얼마나 아이들이 영향을 받고 커나가는지, 또 그렇게 큰 아이들이 사회에서 어떤 일에 닥쳤을 때 어떻게 그 일을 해결해나가는지에 대한 양상을 들여다보라 말하고 있다. 그래서 이 드라마의 주제의식은 통쾌한 결말이 아니라, 그 과정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시선에 담겨 있다.

 

힘겨워도 진실을 향해 한 걸음씩 나가는 강인하를 바라보며 그래도 어떤 희망을 갖게 만드는 딸 박수호의 긍정적인 시선과, 심지어 살인을 사주하고도 이를 은폐하려는 오진표와 서은주를 보며 점점 그들을 닮아가는 오준석의 점점 희망을 찾아보기 어려운 시선이 대비되는 건 그래서다.

 

하지만 그 답답한 사막을 걷다보면 결국 오아시스를 만날 거라고 드라마는 말한다. 진실을 향해 내딛는 그 걸음은 결코 쉽지 않지만 그래도 결국 우리는 진실이 의외로 가까이 있다는 걸 알게 될 거라고. 선인장 화병 속에서 선호의 사라졌던 휴대폰이 발견되는 것처럼, 아름다운 세상은 그냥 주어지는 사이다가 아니라 넘기기 힘든 고구마 현실을 꾸역꾸역 넘기고 나서야 비로소 만나게 되는 어떤 것이라고.(사진:JTBC)

Posted by 더키앙

‘스페인 하숙’, 어째서 이 소소함에 우리는 빠져들었을까

 

“언제가 제일 행복했냐고 했잖아요. 샤워하고 침대에 누워서 완전 배부른 상태에서 노래를 들었을 때 제일 행복했어요. 시원한 바람도 솔솔 들어오고 밖에 보이는 창문에는 파란 하늘이 보이고 그 때가 제일 행복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스트레스 많이 받잖아요. 한국에 있을 때는 일해야 되고 공부해야 되고 빨리 자리 잡아야 되고... 여기는 그냥 그런 것도 없이 매일 걸으면서 한 끼 먹고 이런 게 되게 행복하잖아요. 걷고 밥 먹는 것만으로도 내가 행복한 사람인데 근데 왜 이렇게 한국에서 풍족하고 좋은데서 살았으면서 스트레스 받으면서 살았는지 모르겠어요.”

 

tvN 예능 <스페인 하숙>이 만난 어느 젊은 순례자는 자신이 살아왔던 한국에서의 삶을 새삼스럽게 느끼고 있었다. 그는 행복이 그리 멀리 있는 게 아니라고 말했다. 매일 걷고 한 끼 먹고 하는 일이 행복이라는 걸 순례길을 걸으며 깨닫게 되었고, 행복하기 위한 것이라는 명목으로 그토록 스트레스를 받으며 일하고 공부해야만 했던 한국에서의 삶을 낯설게 느끼고 있었다.

 

그의 진솔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세계일주 여행을 하고 있는 다른 순례자는 그의 말에 공감하는 눈치였다. “주어진 상황에서 행복을 찾으면 최소한 불행해지지는 않겠죠.” 그 역시 고민이 있어 이 긴 여행을 떠나온 것이었고, 지금도 그 해답을 찾고 있었다. “그냥 회사 다니고 있었는데.. 그냥 그냥 살 것 같은 그런 기분.. 변화의 계기를 만들어보고 싶어서 나온 여행인데 그 정도로는 답이 명확하게 나온 것 같지는 않아.” 하지만 “갖고 있는 걸 놓으면 할 수 있다”는 그의 말처럼 그 결단만으로도 그는 벌써 해답에 가까워지고 있을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다른 순례자는 도대체 ‘가진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얘기했다. “저는 갖고 있는 게 되게 사실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되게 많았고 그리고 제가 갖고 있었다고 생각한 건 하나도 가진 게 아니었어요. 그래서 너무 힘들었어요. 여기 올 때는 사실은 처음에는 도피였어요. 걸으면서 잊고 싶었어요. 돌아갈 때쯤이면 뭐 하나라도 해결책이 나오겠지. 근데 제가 여기 온 다음에 제가 일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는데 두 개 정도 일은 잘 풀렸어요. 근데 어제 한 개는 완전히 엉망이 되어버렸어요. 나는 여기에 대해서 아무 것도 관여한 일이 없었는데...”

 

우리네 삶이 그러하듯이 우리는 늘 손아귀에 무언가를 쥐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 행복은 그 쥐고 있는 것에 비례한다고도 생각한다. 그래서 그걸 쥐고 놓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자신이 그걸 쥐고 있지 않으면 행복이란 파랑새는 날아가 버릴 것처럼. 하지만 순례자가 말하듯 그건 착각일 뿐이었다. 자신이 없이도 될 일을 되고 안 될 일은 안 된다. 쥐고 있다 생각하지만 어쩌면 그것이 당신을 쥐고 있는 지도.

 

다시 처음 이야기를 꺼냈던 순례자가 행복에 대해 이야기한다. “근데 저는 매일 매일이 스트레스인거에요. 누구 잘되는 사람 보는 것도 힘들고 매일매일 스트레스 받으면서 살았는데.. 내 두 발로 걷고 숨 쉬고 숙소 도착해서 빨래만 해도 행복하잖아요. 밥 먹고 이러는 게 행복하다는 게...”

 

그렇다. <스페인 하숙>이 열흘 간의 알베르게를 통해 보여주려 한 건 바로 이들의 이야기에 담겨 있는 것처럼 ‘행복의 소소함’이 아니었을까. 때론 손님들이 한꺼번에 몰려오지만 때론 단 한명도 오지 않는 날도 있다. 하지만 찾아올 손님을 기다리며 매일 일어나 청소하고 요리를 준비한다. 그저 한 끼 식사이고 하룻밤의 잠자리지만, 그 한 끼 식사와 하룻밤의 잠자리는 누군가에게는 인생 전체를 통틀어 잊지 못할 행복이 된다. 그러니 그 한 끼와 하룻밤은 심지어 숭고한 어떤 일이다.

 

차승원, 유해진, 배정남이 하루 종일 준비하고 준비하는 그 과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편안해진 것은 대단한 것도 아닌 그 소소함을 위한 노력들이 진정한 행복의 실체를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어서가 아닐까. 마지막 날 단 한 명의 손님도 오지 않자 이들은 마치 손님이 오는 것처럼 몰래카메라를 하거나 상황극을 만들며 허허 웃는다. 그리고 함께 둘러 앉아 손님을 위해 준비했던 음식을 먹는다. 손님이 많이 오거나 적게 오거나 그리 행복의 크기가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밥 한 끼의 따뜻함에 누군가의 기분 좋은 농담에 웃는 것이 어쩌면 우리네 삶과 행복의 실체라고 <스페인 하숙>은 말하고 있다. 우리가 <스페인 하숙>에 빠져들었던 바로 그 소소함과 위대함이 바로 우리가 잊고 있던 삶의 실체라고.(사진:tvN)

Posted by 더키앙

드라마·영화 악당들의 전성시대, 더 지독한 놈들을 잡으려면

 

한 마디로 ‘악당들의 전성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종영한 KBS 드라마 <닥터 프리즈너>에서 나이제(남궁민)는 주인공이지만 액면으로 보면 범죄를 수시로 저지르는 악당 중의 악당이다. 교도소 VIP들을 ‘형 집행 정지’로 풀려나게 하려고 약물을 주입하거나 갖가지 몸을 망가뜨리는 처치를 내려 심지어 죽을 위기에까지 환자를 몰아넣는다. 의사지만 ‘활인(活人)’이 아닌 ‘살인(殺人)’을 하는 의사.

 

하지만 그런 악당을 지지하고 더 악독하게 하라고 만드는 건 그보다 더 지독한 악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선민식(김병철) 같은 교도소 의료과장이라는 위치를 이용해 치부를 해온 인물이 그렇고, 이재준(최원영)처럼 욕망을 위해 존속살해도 서슴지 않는 싸이코가 그렇다. 그들과 싸워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악독해지는 주인공이 허용된다는 것.

 

OCN 수목드라마 <구해줘2>에도 비슷한 악당이 등장한다. 김민철(엄태구)가 바로 그 악당이다. 툭하면 사고치고 동네 사람들 괴롭히고 얼마나 지독했으면 감옥에서 나와 고향에 돌아오자 고향사람들이 보고 화들짝 놀랄 정도다. 하지만 그는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다. 이렇게 된 건 이 수몰예정지구 마을에 슬쩍 들어와 그 보상금을 통째로 털어먹으려는 사기꾼 최경석(천호진)이라는 악마 같은 인물이 있어서다.

 

김민철은 악당이지만 그가 최경석과 맞붙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가 가장 싫어하는 게 ‘구라치는 놈’이기 때문이다. 최경석은 갖가지 감언이설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래서 영혼까지 빼먹으려는 사기꾼. 순박한 마을 사람들이(심지어 목사까지) 그에게 하나둘 넘어가기 시작하는 상황, 김민철만이 이들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처럼 보이는 건 워낙 최경석이 용의주도한 사기꾼이어서다.

 

최근 개봉해 화제가 되고 있는 마동석 주연의 영화 <악인전>의 사정도 똑같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눈에 보이는 이들을 마구 죽이고 다니는 연쇄살인범을 잡기 위해 조직 보스 장동수(마동석)와 강력반 미친 개 정태석(김무열)이 손을 잡고 공조한다는 이 범죄액션은 ‘악당이 악마를 잡는다’는 그 지점이 가장 매력적인 관전 포인트다.

 

장동수는 조직의 보스로서 주먹으로 피떡을 만들고 살해를 사주하기도 하는 잔인한 인물이지만 이 끔찍한 연쇄살인마 앞에서 어딘지 ‘든든한’ 느낌을 주는 주인공이 된다. 정태석도 형사지만 나쁜 놈이기는 마찬가지다. 살인범을 잡기 위해 뭐든 하는 이 형사는 어떨 때는 장동수보다 더 잔인한 느낌마저 준다. 그래서 이들이 공조(?)를 하는 장면 속에서 누가 형사이고 누가 조폭인지 알 수 없는 유머러스한 장면까지 연출된다. 그래서 <악인전>의 대결구도는 두 명의 나쁜 놈들(조폭과 형사)이 악마 연쇄살인범을 잡는 방식으로 그려진다.

 

그런데 악당이 악을 잡는 이런 스토리들이 부쩍 늘고 있는 건 왜일까. 그건 우리네 사회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을 듯싶다. 누가 봐도 뻔히 아는 범죄자들조차 법망을 빠져나가고, 갈수록 흉악한 범죄들이 사회면을 장식하고 있는 요즘, 이런 악들과 대적하기 위해서 더 이상 ‘순진한 선이나 정의’가 힘을 발휘할 수 없다고 대중들이 생각하기 때문이다. 악당조차도 좋게 보일 정도로 더 악독한 현실. 그것이 악당들의 전성시대를 불러온 이유다.(사진:영화'악인전')

Posted by 더키앙

‘현지먹3’, 이연복이 보여주는 한식보단 한국식의 가능성

 

이건 한식이라기보다는 한국식(코리안 스타일)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 같다. tvN 예능 프로그램 <현지에서 먹힐까>가 지난 시즌에 중국에서 짜장면과 깐풍기를 팔았듯, 이번 시즌에서는 미국에서 치킨에 이어 핫도그를 팔고 있다. 그런데 그 반응들이 흥미롭다. 단지 ‘맛있냐. 맛이 없냐’는 차원의 흥미로움이 아니라, 이 음식들을 현지인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느냐에 대한 흥미로움이다.

 

포털사이트 다음 백과사전을 들여다보면 치킨은 프라이드치킨의 줄임말로 18-19세기 미국남부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돼지나 소보다 상대적으로 구하기 쉬운 닭을 요리해 먹으면서 시작됐다고 한다. 물론 ‘닭튀김은 스코틀랜드-아일랜드계 이민자들을 통해 미국에 전해진 스코틀랜드 전통요리’다. 이 닭튀김은 별 양념 없는 요리였지만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여기에 조미료와 향신료를 첨가해 프라이드치킨을 만들었다는 것. 물론 훨씬 대중적인 이름이 알려진 건 커넬 샌더스가 개발한 양념으로 탄생한 KFC지만.

 

하지만 우리는 물론 한국전쟁 이후 미군을 통해 치킨이 유입되긴 했지만, 1970년대 식용유가 양산되면서 치킨이 본격화됐고 이미 1980년대 양념치킨이 등장했다. KFC가 1984년에 들어와 성행했지만, 최근까지 무수히 많은 치킨의 실험(?)이 이뤄지면서 한국 스타일의 치킨이 완성됐다. <현지에서 먹힐까>의 이연복이 내놓은 양념치킨과 간장치킨(이건 사실 깐풍기에 가깝지만) 같은 치킨은 그래서 한식이라기보다는 한국식 음식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인들도 이 치킨을 ‘코리안 스타일 치킨’으로 받아들인다. 치킨이지만 무언가 좀 더 바삭하고 거기에 한국을 떠올리게 하는 단짠 혹은 매콤달콤한 소스가 얹어져 그들이 먹던 치킨과는 사뭇 다른 맛을 내는 음식.

 

에릭이 만들어 놀이공원에서 미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한국식 핫도그도 마찬가지다. 본래 핫도그는 비엔나프랑크 소시지를 사용하는데서 알 수 있듯이 독일계 이민자들에 의해 미국으로 전파된 것으로 본다. 처음에는 소시지만 먹던 방식이었는데 뜨거워 이를 싸는 빵을 더해 핫도그의 형태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우리식의 핫도그는 옥수수가루 반죽으로 만든 콘도그에서 시작했지만 최근 들어 다양한 형태로의 진화를 겪었다. 마치 치킨이 진화하듯 한국식 핫도그도 비슷한 진화를 겪었던 것.

 

미국으로부터 전파되어 온 음식이지만 거기에 한국식의 맛들이 개발되고 더해져서 만들어진 한국식 핫도그에 미국인들이 흥미를 느끼는 건 그것이 익숙하지만 색다른 조합이기 때문이다. <현지에서 먹힐까>의 미국인들이 그 맛이 “흥미롭다”고 표현하는 건 그래서일 게다. 바삭한 식감이 더해진데다 케찹, 머스타드에 설탕까지 더해져 독특한 맛을 내고 있으니.

 

<현지에서 먹힐까>는 프로그램이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그 형식 때문에 국적을 뛰어넘어 경계를 무색하게 만드는 어떤 지점들이 있다는 걸 발견하게 만든다. 물론 독특한 그 나라만의 음식문화가 있는 건 사실이고 또 중요한 일이지만, 이미 글로벌한 환경 속에서 음식의 국적성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누가 원조냐가 중요한 게 아니고, 어떤 것이든 그 위에 저마다의 색깔을 더해 경쟁력 있는 어떤 걸 만들어내느냐가 중요한 시대가 됐다.

 

최근 들어 한류를 지칭하면서 앞에 K를 붙이는 일들이 부쩍 늘었다. K팝, K뷰티, K푸드, K패션 등등. 그런데 여기서 K는 무얼 말해주는 걸까. 그것은 원조의 의미보다는 ‘코리안 스타일’이라는 우리식의 해석의 의미가 강하다. 이미 있었던 팝이고 화장품이고 음식이고 패션이지만 거기에서 우리식의 스타일이 더해져 독특한 색깔을 낸다는 것. <현지에서 먹힐까>는 부지불식간에 이러한 코리안 스타일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사진:tvN)

Posted by 더키앙

‘닥터 프리즈너’, KBS도 이런 웰메이드가 가능한데 어째서

 

KBS 드라마 <닥터 프리즈너>가 종영했다.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전개였다. 나이제(남궁민)와 이재준(최원영)의 대결은 결국 나이제의 승리로 돌아갔다. 되돌아보면 약자들 위에 군림해 권력을 휘두르며 그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흔들던 이재준 같은 인물이 제대로 처벌받기 위해서는 얼마나 힘겨운 싸움이 필요한가를 보여준 드라마였다. 엔딩에 이르러 감옥 속에서 이재준이 끝까지 나가겠다고 의지를 밝히고, 나이제가 “그냥 거기서 죽어”라며 짓는 미소는 사이다 엔딩이면서도 씁쓸함을 줬다. 결국 복수를 끝내고 성공한 나이제 역시 어딘가 저들을 닮은 미소를 짓고 있으니 말이다.

 

<닥터 프리즈너>는 최고 시청률 15.8%(닐슨 코리아)를 기록했고 방영 내내 화제성도 뜨거웠다. 처음에는 나이제의 선민식(김병철)과의 대결을 보여주더니 그 다음에는 이재준과의 대결이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이재준이 공동의 적이 되면서 나이제와 선민식이 손을 잡았지만,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선민식이란 캐릭터는 극을 뻔하지 않게 만들었다.

 

감옥과 병원이라는 공간을 이어 붙여 이 두 공간이 만들어내는 장르적 특징을 이색적으로 결합한 면도 <닥터 프리즈너>의 성취였다. 흔히 감옥드라마라고 하면 탈옥 혹은 탈출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의학드라마라고 하면 병원에서 환자를 치료하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지만, 두 장르를 이어 붙이자 전혀 다른 결의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감옥은 VIP들의 형 집행 정지가 시도되는 공간이 되었고, 누군가를 살리는 의사가 아닌 죽이는 의사들이 등장했다.

 

나이제라는 인물은 ‘복수의 화신’으로서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 독특한 캐릭터로 그려졌다. 그래서 드라마는 단순한 선악구도 혹은 갑을대립의 형태를 벗어날 수 있었다.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건 이 드라마가 바라보는 현실인식이 그만큼 무거웠기 때문이다. 세상은 그렇게 단순한 선의로만 바뀌지 않는다고 이 드라마는 말하고 있었다. 저들처럼 독해지지 않으면 성실한 악을 결코 처단할 수 없다고.

 

<닥터 프리즈너>의 성취는 KBS 드라마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지워버리기에 충분했다. 최근 들어 KBS 드라마라고 하면 뻔한 멜로거나 흔한 출생의 비밀이거나 여전히 가족드라마의 범주 안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여겨질 정도로 어떤 성취를 발견하기가 어려웠다. 지난해에는 그래도 실험적인 장르드라마들을 선보이기도 했지만 시청률에서 난항을 겪으면서 올해는 수목 시간대에도 <왜그래 풍상씨> 같은 주말에 어울릴 법한 드라마를 편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실험적이면서도 완성도도 높은 <닥터 프리즈너>의 성공은 KBS 드라마도 그만한 투자가 전제된다면 좋은 장르물을 편성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KBS라고 해서 뻔한 드라마들만 세워질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또 다소 복잡해 보이는 장르물이라도 완성도가 높은 드라마에는 채널과 상관없이 시청자들이 찾아본다는 걸 <닥터 프리즈너>의 성공은 말해준다.

 

<닥터 프리즈너>는 성공했지만 여전히 KBS 드라마는 위기다. 물론 이건 KBS만이 아니라 지상파들이 모두 처한 위기지만, 그걸 깨칠 수 있는 건 역시 보다 완성도 높은 드라마에 더 많은 투자를 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 <닥터 프리즈너>의 성취가 KBS 드라마에 시사하는 건 바로 그것이다.(사진:KBS)

Posted by 더키앙

1000회 맞은 ‘개콘’, 전유성의 조언 곱씹어야하는 이유

 

“시청자들이 재미없다고 하면 프로그램은 없어질 수밖에 없다.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해보는 수밖에 없다.” 오는 19일 1000회를 맞는 KBS <개그콘서트>를 기념해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전유성은 이렇게 말했다. 사실 1000회를 축하하는 자리로 마련된 자리였다. 하지만 현재 위기를 맞고 있는 <개그콘서트>에 대한 기자들의 쓴소리가 쏟아져 나왔고 결국 무거워진 분위기 속에서 나온 날카로운 현실인식이었다.

 

원종재 PD는 노력하고 있지만 “가시적 성과가 보이지 않아” 제작진이나 개그맨들 모두 힘들어한다고 했다. 하지만 프로그램이 왜 추락하고 있는가에 대한 현실을 토로했을 뿐, 이렇다 할 대안을 내놓지는 못했다. 그 현실은 몇 가지로 압축된다. 유튜브 같은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해 웃음의 코드도 달라지고 있고, 인권의식이나 성인지 감수성이 높아지면서 과거에 대부분의 개그코드를 차지하던 여성, 외모 비하, 가학, 피학 등등의 소재들을 사용할 수 없으며, 능력 있는 개그맨들과 연출자들의 이탈 등이 그것들이다.

 

하지만 제작진과 개그맨들이 그런 현실 인식에도 불구하고 어떤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반면, <개그콘서트>를 보는 기자들을 포함한 시청자들 모두 내고 있는 한 목소리는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사실 과거 <개그콘서트>가 잘 될 때는 코너 하나하나가 빵빵 터지는 웃음으로 가득 채워진 바 있고, 그 개그맨들도 유행어로 스타가 되는 일이 흔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매 코너가 어디서 웃어야할지 난감한 상황이다. 특히 유튜브의 짧지만 강력한 현장형 코믹 짤영상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은 한 마디로 ‘노잼’이라고 말한다.

 

물론 실제로 최근 인권감수성이 높아지며 제약이 많아진 건 사실이다. 특히 KBS라는 공영방송의 위치는 tvN <코미디 빅리그>가 상대적으로 수위 높은 개그 코드를 자유롭게 선보이면서도 별다른 논란을 맞지 않는 것과는 사뭇 다른 결과를 만든다. 작은 대사 하나나 캐릭터 하나에도 예민한 시청자들의 질타가 쏟아지기 일쑤다. 그러니 어떤 개그를 짜면서 재미에 집중하기보다는 이런 논란의 여지들을 스스로 검열하게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제약을 잘못됐다 보긴 어렵다. 그건 어쩌면 지금껏 잘못 해온 코미디의 코드들을 이제야 바로잡아가고 있는 과정에서 나오는 어려움이기 때문이다. 이를 뛰어넘는 부분에서 새로운 개그의 코드들이 생겨날 수도 있다. 지금의 <개그콘서트>는 그런 시도를 하고 있는가가 의문일 정도로 매주 분량 채우기에 급급한 느낌이 아닌가.

 

<개그콘서트>는 딸린 식구들이 많고, 그 개그맨들이 어떤 면에서는 우리네 예능의 중요한 자원들이라는 점에서 섣불리 폐지를 얘기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대로 방치해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는다면 결국 폐지될 수밖에 없다. 전유성의 말이 아프지만 직시해야 하는 현실이라는 것.

 

매주 코너들을 준비해 내놓는 이 꽉 짜인 일정 속에서 <개그콘서트>가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잠시 멈추고 현재의 문제들을 제대로 직시하고 새로운 동력을 찾아낼 수 있는 휴지기를 가지는 일은 어쩌면 향후 더 오래도록 <개그콘서트>가 시즌을 거듭할 수 있는 길이 되지 않을까.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고 그 새로움을 받아들이지 않는 프로그램은 설 자리를 잃을 수밖에 없다. 유튜브 1인 미디어 시대에 무대개그 형식이 과연 지금도 어울리는가를 고민해야 하고, 인권감수성이 시대적 요구로 떠오르는 시대에 바람직한 웃음의 방향이 무엇인가를 숙고해야할 시점이다. 이런 고민과 숙고를 위한 준비과정이 지금의 <개그콘서트>에는 절실하다. 단지 1000회에 과거 레전드 코너들을 소환해 “그 때는 좋았지”하는 향수에 젖어 있다가는 진짜 고사할 수 있으니.(사진:KBS)

Posted by 더키앙

‘조장풍’, 송옥숙의 실감나는 갑질 연기...어디서 봤더라

 

“너 내가 누군 줄 알아?!” MBC 월화드라마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에서 최서라(송옥숙) 회장은 툭하면 이 말을 습관적으로 내뱉는다. 또 분노를 참지 못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돌고래 아줌마’로도 통한다. 그런데 이런 장면 어디선가 많이 봤던 모습이다. 이른바 ‘회장 사모님’이라고 불리는 몇몇 사람들의 이른바 ‘갑질 영상’을 통해서다.

 

뉴스의 한 장면에서 그대로 튀어나온 듯한 이 인물은 그러나 이 드라마 속에서는 한없이 망가진다. 실제로는 벌어지지 않을 듯한 그 통쾌한 장면은 그래서 시청자들을 점점 빠뜨린다.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에 대한 반응이 갈수록 뜨겁고 예사롭지 않게 느껴지는 건 이러한 갑질 고구마 현실과 다른 을들의 사이다 판타지를 이 드라마가 시원하게 그려내고 있어서다.

 

이 드라마에서 발견하는 현실 어디에선가 본 듯한 인물은 최서라만이 아니다. 그의 아들로 등장하는 양태수(이상이)가 그렇다. 다짜고짜 연봉이 얼마냐고 묻고는 맷값 운운하며 사무실에서 주먹을 휘두르는 재벌2세. 결국 구속됐지만 형 집행 정지로 버젓이 풀려나고 그렇지만 향정신성 의약품 졸피뎀 같은 마약에 빠져 다시 구속을 반복하는 양태수의 면면 또한 시청자들에게는 뉴스에서 익숙하다.

 

최서라 같은 인물이 양태수 같은 망나니에게 경영권을 통째로 물려주기 위해 불법 사찰을 통해 이사들을 좌지우지하는 장면은 과장된 면이 있지만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우리네 현실이기도 하다. 재벌들의 2세 경영은 우리에게는 늘 벌어지는 일들이 아닌가. 하지만 양태수의 아버지이자 최서라의 남편인 양인태(전국환) 의원에 비하면 이들은 순진한 수준이 아닐까 싶다. 앞뒤가 완전히 다른 그의 실체가 이제 다음 조진갑(김동욱)과 그 을들이 끄집어낼 이야기일 테니 말이다.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은 제목에 담겨 있듯이 비뚤어진 노동현실을 바로잡으려는 조장풍이라는 괴짜 공무원의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갈수록 판이 커지면서 갑질하는 대기업 회장과 재벌2세 그리고 국회의원까지 확장되었다. 그러고 보면 조장풍으로도 불리는 이 인물의 이름을 ‘조진갑’이라고 지은 것 속에 이 드라마의 의도가 이미 들어있었다고 보인다. 갑질하는 이들을 ‘조지는’ 인물에 대한 사이다 이야기.

 

조진갑의 맹활약도 통쾌하지만 이들을 받쳐주는 든든한 제자 천덕구(김경남), 백부장(유수빈), 오대리(김시은) 같은 캐릭터들도 매력적이고, 조진갑과 이혼했지만 어딘지 그 관계에서 달달함이 느껴지는 전 아내 주미란(박세영) 형사나 최서라의 개인비서로 정보를 캐기 위해 접근한 천덕구가 점점 사랑하게 되는 고말숙(설인아)도 볼수록 매력덩어리다. 게다가 조진갑과 같은 목표를 공유하지만 다른 방법을 선택하는 우도하(류덕환)라는 인물은 너무 단선적으로 보일 수 있는 갑을 대결을 흥미롭게 변화시키는 캐릭터로 조금씩 부각되고 있다.

 

선명한 갑을 대결구도와 심지어 악역까지도 매력적인 캐릭터들 그리고 무엇보다 현실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갑질 캐릭터들을 통쾌하게 응징하는 돈키호테들의 사이다 한 방은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에게서 열광적인 호응을 얻었던 <열혈사제>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마치 <열혈사제>의 근로감독관 버전을 보는 듯한 통쾌한 전개가 잠시나마 현실을 잊게 해주기 때문이다. 도대체 우리는 얼마나 많은 갑질을 경험하고 있는 걸까. 드라마를 보는 우리의 통쾌함이 이토록 크게 느껴지는 걸 보면.(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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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백’이 이은 ‘비밀의 숲’ 이후 달라진 장르물

 

16부가 마치 한 편의 영화 같다. tvN 주말드라마 <자백>의 종영에 이르러 돌아보면 이 드라마의 밀도와 완성도에 새삼 놀라게 된다. 곁가지 사건들처럼 여겨졌던 것들이 하나하나 연결고리를 드러내고, 그 속에서 무관해 보였던 인물들이 과거사로 얽혀 있는 게 조금씩 드러난다. 그리고 결국 이 모든 사건이 어느 요정에서 벌어졌던 국방비리로 인해 비롯된 총성으로 귀결된다. 거대한 한 게이트를 열기 위해 조금씩 사건을 파헤치고 어렵고 더뎌도 진실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과정. <자백>은 그 과정을 놀랍게도 한 호흡으로 담아냈다.

 

보통의 장르물의 경우 여러 사건들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영화라면 한 사건을 다뤄도 되겠지만, 드라마는 적어도 16부를 이어가야 하기 때문에 한 사건으로 그걸 채우는 건 실로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러 사건들이 등장했을 때 생기는 문제는 이야기가 몇 회를 기점으로 뚝뚝 끊긴다는 점이다. 물론 주인공이 확실한 캐릭터를 세우고 그렇게 끊어진 이야기를 이어붙이는 역할을 해준다.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병렬적인 사건의 나열은 작품의 밀도를 떨어뜨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자백>은 하나의 사건과 그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벌어졌던 또 다른 사건들을 연결함으로써 이런 문제를 해결했다. 블랙베어라는 차세대 헬기 도입에 대해 그 문제를 담은 문건을 작성한 차승후 중령이 대통령의 조카인 박시강(김영훈) 의원에게 우발적으로 총에 맞아 죽게 되고, 그 사건을 덮기 위해 그 자리에 있었던 추명근(문성근)과 오택진(송영창) 회장이 그 자리에 있던 최필수(최광일)에게 아들 최도현(준호)의 심장이식 수술을 대가로 살인범이 되도록 회유했던 것. 그 상황을 목격한 김선희는 이를 빌미로 추명근에게 돈을 요구하다 청부살해 당하고 당시 사건을 추적하던 진여사(남기애)의 아들 노선후 검사와 하유리(신현빈)의 아버지 또한 살해당한다.

 

즉 <자백>은 거대한 게이트와 그것을 감추기 위해 벌어진 또 다른 사건들이 존재했기 때문에 이 모든 이야기들을 하나로 묶어낼 수 있었다. 그래서 초반 드라마는 저들이 감추기 위해 저지른 ‘연쇄살인’처럼 위장된 청부살인을 추적하는 과정으로 시작하지만, 드라마가 중반을 넘어가면서 이 사건들이 단순한 살인이 아니라 무언가 더 큰 사건으로 이어진다는 걸 드러낸다. 사건 해결에 집중하던 시청자들이 ‘진상 규명’에 더 관심을 갖게 되고 끝까지 갈증을 느끼며 드라마를 들여다보게 만든 힘이 여기서 생겨났다.

 

법정물의 묘미와 사건을 추적해가는 과정을 담는 추리와 스릴러의 맛에 ‘비선실세’라는 그 단어만 들어도 실감하게 되는 현실인식과 공감을 넣어 <자백>은 재미와 의미를 모두 갖춘 완성도 높은 드라마를 선사했다. 꽤 단단한 연기를 보여준 이준호, 유재명, 신현빈, 남기애 같은 주인공들은 물론이고 역시 명불허전의 문성근, 송영창 게다가 류경수, 윤경호 같은 악역들까지 빈틈없는 배우들의 호연이 있었고, 이제는 믿고 보는 김철규 PD의 촘촘하고 섬세한 연출에 신예라고는 믿기지 않는 임희철 작가의 놀라운 대본이 삼박자를 이루며 <자백>이라는 명작을 탄생케 했다.

 

넓게 보면 <비밀의 숲> 이후 장르물들은 변화하고 있다. 과거처럼 캐릭터를 중심으로 여러 사건을 풀어나가는 장르물에서, 이제는 하나의 사건을 다각도로 풀어나가는 밀도 높은 장르물로 바뀌고 있는 것. <자백>은 이런 완성도 높은 시도가 충분히 가능하고, 또 그것이 복잡해 보여도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다는 걸 증명했다. 앞으로도 이런 완성도, 밀도를 가진 장르물들이 더 많아지길 기대하게 만든 작품이 아닐 수 없다.(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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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혁명 다룬 ‘녹두꽃’, 어째서 민초의 역사 외면 받았나

 

5월 11일은 동학농민혁명 기념일이다. 이 날을 동학농민혁명을 기리는 공식적인 국가기념일로 정하게 된 건, 이 날이 125년 전 동학농민군이 관군을 크게 이긴 황토현 전투 전승일이기 때문이다. 지금껏 소외되어 왔던 동학농민혁명이 법정기념일로 선정된 건 지난해였다. 무려 125년 만에 기념일로 제정된 것. 무엇이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평가를 이토록 늦게 만들었던 걸까.

 

이 날 SBS 금토드라마 <녹두꽃>은 바로 그 황토현 전투를 다뤘다. <녹두꽃>이라는 드라마의 탄생에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이런 재조명의 움직임이 전제되어 있었다는 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니 마침 그 기념일인데다, 황토현 전투 전승일이 5월 11일에 맞춰 그 전투를 재연해낸 건 드라마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녹두꽃>은 백이강(조정석), 백이현(윤시윤) 이복형제가 동학농민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동학농민군 의병대와 관에 의해 동원된 향병으로 나뉘어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복형제인데다 적자와 서자로 나뉘어 있어 두 사람은 너무나 다르게 자라났지만,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은 형제 그 이상이다. 탐관오리에 붙어 악랄한 이방으로 치부해온 백가(박혁권)는 서자인 백이강을 민초들의 고혈을 빠는 ‘거시기’로 키우지만, 적자인 백이현은 유학까지 보낸 도련님으로 키운다. 하지만 백이현은 부친의 악행에 죄책감과 부끄러움을 느끼며 살아왔고, 백이강을 형님으로 대해왔다.

 

녹두장군 전봉준(최무성)이 등장하긴 하지만, <녹두꽃>이 그리는 건 그런 드러난 인물이 아니라 동학농민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이름 없이 살다 죽어간 백이강이나 백이현 같은 민초들의 삶이다. 그들은 의병과 향병으로 나뉘어 있지만, 전투 속에서도 서로를 구해내고 챙기려 한다. 결국 향병들도 관군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징발된 무고한 민초들이다. 그래서 녹두장군 전봉준은 향병들은 죽이지 말라고 명을 내린다. 그들은 관군에 의해 총알받이로 내세워지고, 도망치려는 자들은 저들의 칼날 아래 처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녹두꽃>이 재연해낸 황토현 전투 속에서도 의병들과 향병들이 모두 관군에 의해 핍박받는 상황을 그려낸다. 백이현이 이 전투 속에서 처음으로 죽이게 되는 사람이 적이 아니라 같은 향병이라는 사실은 이런 상황을 잘 보여준다. 대신 이 와중에도 술과 향락을 즐기는 탐관오리들은 동학농민혁명의 정당성을 드러낸다. 그들이 방심하고 있을 때 별동대 대원들이 적의 진지로 숨어들어가고 의병대가 습격을 해 시작된 것이 바로 황토현 전투다.

 

사실 그토록 많은 사극들이 만들어졌지만, 동학농민혁명을 소재로 한 드라마는 거의 없었다. 그것은 지난해에 비로소 기념일이 제정된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1970~,80년대 군부독재 시절에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레드 콤플렉스는 동학농민혁명을 역사적으로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게 된 원인이 됐다. 왕에 대한 이야기들이 사극의 소재로 쏟아져 나왔지만, 민초들의 역사가 상대적으로 소외되었던 건 이런 시대적 상황 때문이었다.

 

그러다 정통사극에서 퓨전사극으로 바뀌어가는 과정에 차츰 역사 바깥을 탐색하던 사극들이 민초들의 역사를 담으려 했다. <대장금>에서부터 <추노> 같은 작품들이 그러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상상력으로 그려낸 민초들의 역사였다. 그런 점에서 보면 <녹두꽃>이 비로소 동학농민혁명을 통해 진짜 민초들의 역사를 재현해내고 있다는 건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것이 가능해진 건 촛불 혁명 같은 민초들의 역사가 다시금 피어나고 있어서다. 기념일에 즈음해 이낙연 국무총리가 “촛불혁명도 잘못된 권력을 백성이 바로잡는다는 동학정신의 표출”이라고 말한 건 이런 변화된 현재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이 기념일에 <녹두꽃>의 황토현 전투 재현이 더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다.(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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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밴드’, 밴드 음악의 진수, 음악 실험이 이렇게 즐겁다니

 

그래 이것이 밴드 음악의 진수였지. JTBC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밴드>를 보다 보면 새삼 떠오르는 생각이다. 조금 과장해서 표현하면 마치 1969년 우드스톡 페스티벌의 세련된 현재 버전 같은 그런 느낌.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클래시컬한 악기와 밴드가 실험적으로 어우러지는 무대가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던 그 시절의 음악적 자유로움이 느껴지는 밴드 오디션이라니.

 

물론 이미 KBS에서 <톱밴드> 같은 밴드 오디션을 치른 바 있지만, 그것과 <슈퍼밴드>는 형식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완전히 다르다. <톱밴드>는 완전체 밴드들이 나와 오디션 무대에서 대결을 벌이는 형식이라, 경연의 대결구도가 중요한 포인트가 됐다. 하지만 밴드 음악처럼 자유분방하고 스타일도 다른 음악을 동일선상에 놓고 우열을 가린다는 것이 과연 가능하기나 한 일일까. 무엇보다 완전체 밴드가 등장해 끝까지 함께 간다는 구조는 우승한 밴드의 이름을 알리는 데는 효과적일지 몰라도 다양한 밴드 음악의 묘미를 들려주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슈퍼밴드>는 완전체 밴드가 아니라, 저마다 다양한 악기를 다양한 분야에서 연주하는 연주자들과, 다양한 스타일로 노래하는 보컬들을 모이게 만들고 그들이 스스로 조합을 해 밴드를 구성해가는 과정을 오디션 형식으로 담았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로 비유하면, <톱밴드>가 이미 완성한 그룹 퀸의 무대를 계속 보여주는 반면 <슈퍼밴드>는 퀸이 만들어지기 전 로컬 밴드에 프레디 머큐리가 만나는 그 과정을 담는 식이다.

 

이 과정을 <슈퍼밴드>는 한 번에 보여주지 않고 1라운드, 2라운드 식으로 나누어 여러 조합을 경험하면서 차츰 하나의 밴드로 구성되는 방식을 취한다. 그래서 본선 1라운드에서 매력적인 보컬리스트 아일이 드럼 김치헌, 색소포니스트 김동범, 기타리스트 박지환과 함께 방탄소년단의 ‘봄날’을 불렀을 때의 느낌은 기타리스트 김영소, DJ 노마드, 첼리스트 홍진호와 함께 앤드 시런의 ‘Castle on the hill’을 불렀을 때와는 완전히 다르다. 전자가 깔끔한 모던락의 느낌으로 재해석했다면 후자는 훨씬 더 감성적인 클래식이 얹어져 아이리시 락을 듣는 느낌을 줬다.

 

또한 클래식 피아노 전공자지만 록을 좋아하고 또 하고 싶어 했던 이나우가 2라운드에서 채보훈과 정광현 같은 록커들과 어우러져 놀라운 변신을 보여주는 맛은 <슈퍼밴드>에서만이 가능한 무대가 아닐까 싶다. 록과 클래식이 어떻게 어울릴까 싶지만, 의외로 웅장한 사운드가 가능하다는 걸 이들은 오아시스의 ‘Stop crying your heart out’을 편곡해 들려주는 것으로 입증했다. 특히 클래식 피아노 위에 신디사이저를 놓고 클라이맥스에서 신디사이저와 병행해 연주를 해낸 이나우의 변신은 밴드의 실험 정신을 다시금 떠올리게 만들었다.

 

흥미로운 건 <슈퍼밴드>가 그 구성적인 힘만으로도 조금씩 시청자들을 밴드 음악의 묘미에 빠뜨리고 있다는 점이다. 즉 첫 무대에서 각자 출연자들이 저마다의 악기와 음악을 들고 나와 피아노에서부터 기타, 첼로, 드럼 등등 밴드를 구성할 음악적 요소들을 소개하고 그 요소마다의 매력을 보여준 후, 본선 1라운드에 가서 이들의 조합을 통한 밴드 음악을 본격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이 그렇다. 이렇게 순차적으로 각각의 악기의 묘미를 먼저 느낀 후, 밴드 음악을 들으면 그 뭉쳐진 음악 속에서도 저마다의 악기 소리가 새삼 달리 들리는 걸 경험할 수 있게 된다.

 

프로듀서들은 ‘심사평’이 아니라 ‘감상평’을 한다고 했고, 오디션이라 어쩔 수 없이 당락이 결정되지만 그것은 우열이 아닌 취향일 뿐이라고 했다. 그만큼 저마다의 기량이 뛰어난 아티스트들이 모였고, 그들은 이런 저런 조합의 음악 경험을 통해 차츰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모습을 보여준다. 우승자가 누가 될까는 이제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됐다. 다음에는 어떤 조합의 밴드가 나와 어떤 새로운 음악적 실험으로 우리를 놀라게 할 것인지가 궁금할 뿐. 그것이 <슈퍼밴드>에 자꾸만 입덕하게 만드는 요인이다.(사진:JTBC)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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