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하숙’, 어째서 이 소소한 반복에 빠져드는 걸까

 

무려 25인분의 닭볶음탕을 준비한다. 손님이 몇 명이 올지 모르지만 마음만은 그만큼의 기대감이 음식을 준비하는 차승원의 손길에 담긴다. 엄청나게 큰 스페인 닭 몇 마리를 손질해 놓자 마음까지 푸근해진다. 거대한 들통에 먼저 우려내놓은 빨간 국물과 거기 수북하게 담기는 닭고기들은 그래서 미각보다 먼저 마음을 데운다. 저렇게 넉넉하게 준비된 닭볶음탕을 먹고 다시 기운 낼 순례자들에 대한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다.

 

설비부 유해진은 박과장과 또 무언가를 뚝딱 뚝딱 만들어낸다. 뭐든 주문하면 뚝딱 만들어내는 설비부에 차승원이 ‘이런 건 못하겠지’ 하며 요청한 와이파이를 만드는 것. 합판 위에 와이파이 문양을 그리고 전기코드를 재활용해 하트모양으로 자른 합판과 연결한 이른바 ‘샘나?π’는 실용성(?)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보기 힘들지만 보는 이들을 기분 좋게 만드는 ‘작품’에 가깝다. 애초 진짜 기능을 갖춘 와이파이를 기대한 것도 아니지만 이보다 만족스러울 수 있을까.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아지는 마음과 마음을 따뜻하게 연결해주는 유머 가득한 와이파이.

 

tvN 예능 <스페인 하숙>은 어찌 보면 하릴없어 보이는 일들을 매일 반복한다. 아침이면 어김없이 새벽같이 일어나 음식을 준비하고 하숙집 구석구석 청소를 한다. 치우면 또 떨어지는 나뭇잎을 매일매일 치우는 그 반복들. 손님을 기다리고, 맞이하고, 대접하고 또 함께 밥을 먹고 수다를 떨며 그렇게 하루가 지나간다. 손님의 숫자는 그 때 그 때 다르고 예측 불가다. 25인분의 닭볶음탕을 준비했지만 저녁 시간까지 단 한 명의 손님도 오지 않는 일이 생긴다.

 

하지만 그렇다고 걱정할 건 없다. 손님 없으니 하숙집 사람들의 회식(?) 자리가 벌어진다. 설비부에 승진(?)한 박과장이 회식의 명목이다. 박과장과 함께 차승원, 유해진, 배정남이 둘러 앉아 손님을 위해 만든 닭볶음탕과 회식을 위해 새로 준비한 삼겹살 볶음을 먹으며 즐거운 저녁 시간을 보낸다. 지금껏 촬영하느라 스페인식 식사만 해온 제작진들은 손님이 없어 잔뜩 남은 닭볶음탕으로 오랜만의 한식을 즐긴다. 그간 차승원은 그 제작진들이 밟혀 일부러 음식을 많이 해왔다.

 

기분이 좋아진 유해진은 박과장에게 괜한 호언장담을 한다. 이참에 김치냉장고로 ‘IKEYO’가 아닌 ‘IKHYEOYO(익혀요)’를 만들어보는 건 어떻냐는 농담. 뭘로 만드냐는 차승원의 물음에 유해진은 당당하게 “합판”이라고 답한다. 그 농담이 우스워 회식은 화기애애한 웃음이 터져나온다.

 

그렇게 하루가 끝나는 줄 알았는데, 조금 늦은 시간 잔뜩 지쳐 보이는 순례자가 하숙집을 찾는다. 무려 100킬로를 쉬지 않고 걸어왔다는 그 순례자에게 부랴부랴 따뜻한 밥과 국을 만들어 내놓는다. 벌써 네 번째 순례길이라는 순례자는 처음에는 두 달이 걸렸다며 여기가 너무 좋다고 말한다. 하루 100킬로를 걷고 걷지 못할 정도로 힘든 그 길을 왜 그는 걷고 또 걸었을까. 그리고 그 고행이 왜 좋다고 말할까.

 

<스페인 하숙>은 굉장한 먹방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더 많은 손님을 받으려는 장사를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음식은 물론 차승원의 정성이 가득하고 스페인이라는 외지에서의 한식이라는 특별함이 있지만 대단히 놀랍거나 새로운 건 아니다. 또 25인분을 준비해서 대부분은 회식을 하고 그 날 한 명의 순례자에게 대접하는 그 광경이 먹방이나 장사의 묘미를 담을 리 없다.

 

순례자가 늦은 밤에 차승원이 차려준 김치볶음밥과 계란국을 먹는 장면에서 ‘리액션’은 그다지 담기지 않는다. 대신 화면이 전환되며 어둑해진 밤하늘에 이런 자막이 더해진다. ‘우리는 무엇을 얻고자 이 길을 걷고 있는가... 이 길의 끝에서는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고단했던 하루 그 하루도 끝이 났다.’

 

매일의 일상이 반복되는 <스페인 하숙>의 풍경들은 그래서 소소한 반복이 만들어내는 재미와 의미가 담긴다. 사실 무엇 때문에 우리는 아침 일찍 일어나 하루 종일 몸을 바쁘게 놀리고 저녁에 돌아와 따뜻한 한 끼로 그 피곤을 풀어내는 삶을 반복하는지 알 수 없다. 살아가기 위해서일 수 있지만, 그게 아니라도 우리는 늘 그렇게 하루를 반복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소소한 반복이 다 똑같은 반복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깔깔 웃던 웃음이 있었고, 누군가와 나누던 훈훈한 소통이 있었고, 또 때론 지쳤다가도 그 피로를 풀어주는 따뜻한 밥 한 끼가 있었다. 그것이 <스페인 하숙>이 그 멀리까지 가서 포착해내려는 삶의 비의가 아닐까. 그 멀리까지 가서 굳이 힘겨운 순례길을 걷는 이들이 찾아내려는 그것.(사진:tvN)

‘현지먹3’, 존박의 발견이 말해주는 소통 포인트의 중요함

 

tvN 예능 <현지에서 먹힐까>는 시즌3를 하고 있다. 태국에서 했던 첫 시즌은 홍석천이 메인 셰프를 맡아 현지에서 팟타이를 파는 도전을 시도했지만 예상보다 잘 되지 않았다. 먼저 관전 포인트가 생각만큼 주목되지 않았다. 태국에서는 국민푸드인 팟타이 팔기라는 콘셉트가 특별한 지점이 없었고, 물론 국내에 태국음식점을 알렸고 요리도 잘하지만 셰프로서의 존재감이 생각보다 크지 않았던 홍석천도 첫 시즌을 어렵게 만들었다. 최고 시청률 1.8%(닐슨 코리아)로 2% 시청률을 넘기지 못했다.

 

하지만 장소를 중국으로 옮기고 셰프로 이연복으로 교체했던 시즌2는 최고 시청률 5.3%(닐슨 코리아)를 기록할 정도로 화제가 되었다. 주효했던 건 ‘중국에서 짜장면을 판다’는 기획 포인트였지만 그것 못지않게 더 무게감을 준 건 이연복 셰프의 출연이었다. 중국인들이 짜장면을 잘 먹고 좋아한다는 사실은 신기하긴 했지만 놀랄만한 일은 아니었다. 다만 갑자기 생겨나는 변수들에 척척 임기웅변으로 대처하고, 매일 신선한 재료를 준비하는 기본이 맛의 핵심이라는 이연복 셰프의 면면이 시청자들의 호감을 이끌었다. 역시 관찰카메라 형식의 프로그램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인물이다.

 

시즌2의 큰 성공으로 시즌3를 맞게 된 <현지에서 먹힐까>는 시작 전부터 정준영 사태가 터지면서 난항을 겪었다. 또 방송 전에 불거진 ‘한국인 거부’에 대한 논란은 오해에서 비롯된 일이라고 해도 프로그램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게다가 너무 많이 쏟아져 나온 외국인 먹방은 시청자들에게 피로감을 주기도 했다.

 

물론 미국인들도 좋아하는 짜장면과 만두 그리고 짬뽕, 볶음밥은 흥미로운 기획 포인트였고, 그들이 중국인들처럼 스스럼없이 합석을 하고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며 대화를 나누는 그런 문화는 보기에 훈훈했다. 또 푸드트럭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그 트럭들이 서로 음식을 주고받아 먹으며 일종의 ‘동료의식’을 갖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 하지만 거의 반복적으로 음식을 주문하고 만들고 먹는 모습을 보는 일은 처음엔 시선을 끌어도 점점 감흥을 잃어가기 마련이다.

 

결국 외국인 먹방이라는 포인트는 <현지에서 먹힐까> 시즌3의 강점이라고 말하기는 어렵게 됐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프로그램에 훈훈한 호감을 주는 포인트가 없는 건 아니었다. 그건 바로 존박이라는 인물이 주는 호감이다. 노래 잘 하고 가끔 예능 프로그램에서 엉뚱한 모습으로 웃음을 줬던 그지만, 이 프로그램에서는 ‘손님 응대’를 전담하며 드러나는 몸에 배인 듯한 매너가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끈다.

 

한국음식이 낯선 미국인들에게 음식을 친절히 설명해주고, 먹는 방법까지 알려주며 나아가 무언가 필요한 게 있으면 먼저 나서서 챙겨주는 세심한 배려. 환하게 웃으며 손님이 밀려 늦은 음식을 전해줄 때마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꼭 전하는 그 모습은 보는 이들마저 푸근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또 처음 만나도 스스럼없이 말을 거는 미국인들 특유의 친화력에 몇 번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 마치 친구 같은 편안함까지.

 

역시 관찰카메라에서는 인물이 주는 힘이 훨씬 강력한 면이 있다. <현지에서 먹힐까> 시즌3는 ‘복스푸드’를 찾는 외국인들의 면면이 그래서 관전 포인트가 된다. 혼자 왔다가 우연히 다른 혼자 온 손님과 합석하면서 그 곳에 오게 된 사연이나 하는 일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는 미국인들이나, 평범해 보이는 가족의 단란한 저녁 한 때의 풍경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하지만 그런 소소하고 특징적인 이야기들이 아닌 단순히 음식이 맛있었는가에 집중하는 ‘외국인 먹방’은 이제 생각보다 흥미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런 현지인들과 소통하는 존박의 존재가 더 두드러진다. 메인 셰프인 이연복이나 이전 시즌에서 웃음을 줬던 허경환 그리고 <삼시세끼>의 요리사(?)였던 에릭의 존재감이 상대적으로 잘 보이지 않는 건 바로 그 소통 지점에서 존박 만큼 가까이 있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이전 시즌에 이연복이 주목되었다면, 이번 시즌은 존박이 단연 두드러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사진:tvN)

‘백상예술대상’ 만장일치 대상의 품격 보여준 김혜자의 수상소감

 

김혜자의 말대로 지금은 “위로가 필요한 시대”가 맞는 것 같다.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대상을 받은 김혜자가 수상 소감으로 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우리의 가슴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그 따뜻해진 가슴들은 얼었던 무언가를 녹여내며 건조했던 눈을 촉촉하게 적셨다. 시상식을 보며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될 줄이야...

 

수상 소감은 소탈했지만 그 소탈함에 더해진 진정성은 묵직했다. 그것은 지금껏 오래도록 해온 연기자로서의 삶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기에 느껴지는 묵직함이었다. <눈이 부시게>라는 인생작을 만들어준 김석윤 감독과 이남규, 김수진 작가에 대한 고마움을 전한 김혜자는 혹여나 상을 받을지 몰라 무슨 이야기를 할까 고민하다 드라마 엔딩에 나왔던 내레이션 대사를 다시 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다시 외우고 외워도 자꾸 잊어먹는다며 대본을 찢어왔다는 김혜자는 대사를 해나가기 시작했다. 그건 드라마 속 대사였지만 어쩌면 연기자 김혜자가 진심으로 지금의 대중들에게 전하고픈 이야기이기도 했을 게다. 그래서 수상 소감에서 다시 듣는 <눈이 부시게> 엔딩의 대사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인생의 선배인 김혜자가 대중들에게 직접 전하는 위로.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에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큰한 바람. 해질 무렵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 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은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엄마였고 누이였고 딸이었고 그리고 나였을 그대들에게.”

 

드라마 속 대사가 그대로 김혜자라는 인생선배의 위로로 들리는 그 순간, 후배 연기자들의 눈은 촉촉이 젖어들었다. 그것은 어쩌면 그들 또한 가야할 길을 얘기하는 것이고, 그것이 결코 쉽지 않으며 또 후회와 불안으로 채워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누구나 ‘눈이 부시게’ 오늘을 살아갈 자격이 충분하다고 김혜자는 전하고 있었다. 그건 또한 후배 연기자들만이 아니라, 이 시상식을 바라보는 관객과 시청자들에게도 마찬가지의 위로로 다가왔다.

 

김혜자의 수상소감은 그가 이 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는 걸 그대로 입증했다. 진정한 연기의 끝은 그가 배역인지 배역이 그인지 알 수 없는 그 경지가 아니던가. 그러고 보면 김석윤 감독이 <눈이 부시게>에 굳이 주인공 이름을 김혜자라고 한 이유를 알 것 같다. 그건 배역이긴 하지만 김혜자라는 연기자 그 자체를 담고 있는 배역이었으니. 수상 소감 간간이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며 찢어온 대본을 보는 모습까지 <눈이 부시게>의 김혜자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거의 공로상급의 대상 수상이었지만, 결코 이 대상은 공로상이 아니라 그의 연기가 지금도 많은 이들을 울리고 웃기는 ‘현재진행형’ 연기자라는 데서 결정된 대상이었다. 이것이 필자도 참여했던 심사에서 심사위원들이 일찌감치 김혜자의 대상을 ‘이견 없는 만장일치’로 정한 이유였다. 김혜자는 충분히 대상을 받을 자격이 있었다. 여전히 오늘을 살아가며 ‘눈이 부신’ 연기로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고 있으니.(사진:JTBC)

김이영 작가의 성장이 돋보인다

 

SBS 월화드라마 <해치>는 융복합이 돋보이는 사극이다. 연잉군(정일우)이 자신의 출생적 한계를 뛰어넘어 강력한 군주이면서 민생을 돌본 영조가 되어가는 역사적 사실을 가져왔지만, 그 사실을 풀어나가는 과정들은 상상력이 더해진 ‘역사적 재해석’에 가까웠다. 예를 들어 경종(한승현)의 독살설 같은 역사를 <해치>는 밀풍군(정문성)이 왕의 탕약에 독을 넣게 사주하는 사건으로 풀어낸 방식이 그렇다. 이를 알게 된 연잉군이 탕약을 쓰지 못하게 하자 마치 약을 못 쓰게 해 경종을 사살했다는 식의 이야기가 흘러나오게 된 것으로 해석해낸 것.

 

특히 이인좌(고주원)의 난을 해석한 부분은 신묘한 면이 있다. 즉 우물에 독을 풀어 괴질이 생기게 만들고 이를 ‘자격 없는 왕 때문’이라는 괘서를 뿌려 민심을 흔든 후 난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그렇다. 이인좌의 난을 환란과 변란으로 해석했고, 이 과정에서 남인으로서 늘 소외받아왔던 이인좌 수뇌부의 내분을 일으키기 위해 영조가 ‘탕평책’을 내놓는 이야기로 풀어냈다. ‘이인좌의 난’이나 ‘탕평책’ 같은 실제 역사적 사실들이 들어가 있지만 이를 상상력을 더해 재해석해낸 <해치>의 성취가 돋보이는 지점이다.

 

게다가 이런 재해석에는 과거의 역사를 가져와 현재를 이야기한다는 사극의 중요한 형식적 특징 또한 담겨있다. 환란과 변란과 이로 인해 만들어지는 ‘거짓 소문’들은 최근 우리네 사회가 겪은 현실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재현해낸다. 세월호 참사 당시 부재했던 콘트롤 타워의 문제는, <해치>에서 괴질이 퍼져 민심이 이반되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저잣거리로 왕이 직접 나가 민초들과 소통하는 모습과 대비되는 풍경으로 그려진다. 또 괘서는 최근 인터넷 시대에 골칫거리로 등장한 ‘거짓 뉴스’를 환기시키는 면이 있다.

 

<해치>가 이른바 ‘신세대 사극’이라고 여겨지는 건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가져오되 과감한 상상력으로 해석해내는 그 신묘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금껏 사극하면 떠올리곤 하던 <조선왕조실록> 같은 정치사극의 풍경과는 너무나 다른 장르사극의 풍모를 지녔기 때문이기도 하다. <해치>에서는 이른바 <왕좌의 게임> 같은 미드적인 장르적 특징들이 묻어난다. 왕좌를 놓고 벌이는 연잉군과 경종, 밀풍군의 이야기나, 노론, 소론, 남인이라는 파벌이 만들어내는 복잡미묘한 사건들이 그렇다.

 

여기에 ‘해치’라는 상징물이 보여주듯이 당대의 사헌부의 개혁과 연잉군이 왕좌를 얻어가는 과정을 액션 수사 장르물의 신세대적인 접근방식으로 이어 붙였다. 그래서 계속 터지고 덮여지는 사건들의 진실을 파헤치고, 그것을 통해 적을 무력화시키며 결국은 왕좌에 앉게 되는 과정을 담을 수 있었다. 그 왕좌가 주는 만만찮은 무게감을 버텨내는 과정 또한.

 

김이영 작가가 이처럼 역사와 상상력, 과거와 현재, 국내 사극과 미드적 장르를 성공적으로 퓨전해낼 수 있었던 것은 그간 그가 걸어온 작품의 길과 무관하지 않다. 이병훈 감독과 함께 <이산>, <동이>, <마의> 같은 퓨전사극을 만들며 사극의 잔뼈가 굵은 김이영 작가는, <화정>을 통해 미드적 감성을 더한 독립적인 자기만의 세계를 시도했지만 미완의 시도에 그친 바 있다. 결국 이런 실패의 경험이 <해치>라는 작품의 완성도를 만들었을 거라 여겨진다.

 

<해치>는 이병훈 감독이 추구했던 역사적 사실과 상상력의 조화는 물론이고, 현재적인 메시지를 담아내는 깊이와 현재의 시청자들이 빠져들 만한 장르적 운용을 통한 긴박감까지 훌륭한 융복합을 보여준 작품이다. 이로써 김이영 작가는 확실히 자기만의 세계를 가진 사극 작가로 서게 됐다. 다음 작품이 벌써부터 기대되는.(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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