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기록', 만만찮은 현실에도 청춘을 버틸 수 있게 해준 건

 

"사랑해. 우리 헤어지자." 사혜준(박보검)에게 안정하(박소담)가 한 그 말에는 여러 가지 뉘앙스들이 담겨 있다. 사랑하는데 왜 헤어지냐고 사혜준은 묻지만, 그 역시 안정하가 왜 그렇게 말했는지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결코 사랑하는 사람에게 미안한 일은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만만찮은 현실은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만날 때마다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는 사혜준이었으니.

 

이제 마지막회만을 남긴 tvN 월화드라마 <청춘기록>은 한 마디로 '덕질' 드라마다. 남다른 열정을 갖고 있고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오롯이 노력해 모델에서 배우가 되는 사혜준을 덕질하고, 부모가 이혼하고 혼자 독립해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되려고 꿋꿋이 노력해온 안정하를 덕질하며, 많은 걸 갖고 태어났지만 부모 도움 없이 스스로 노력해 꿈을 이루려는 원해효(변우석)를 덕질하는 드라마.

 

스타에게 하는 덕질을 이렇게 청춘들에게 투사한 <청춘기록>은 그래서 시청자들이 이들의 성공과 성장을 응원하게 만들었다. 흙수저라는 현실을 깨치고 어렵게 얻은 기회를 잘 살려내 톱배우로 성장하는 사혜준을 응원하면서 그가 처한 현실을 공감하게 했다. 그것이 부모 찬스가 자식의 미래까지 결정해버리는 허탈한 현실을 깨고 자신의 힘으로 성공하는 사혜준을 보며 뿌듯해한 이유였다.

 

하지만 막상 성공하고 나자 그 성공만으로 그가 행복해지는 건 아니라는 걸 드라마는 역시 보여줬다.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고 집으로 돌아와 방으로 들어온 사혜준이 '홀로 울 수 있는 방'이 있는 것에 행복하다 말하며 우는 장면은, 그 어떤 거대한 성공도 거창한 행복이 아닌 소박한 행복을 우선하지 않는다는 걸 말해준다. 그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만 사랑하는 안정하나 가족들, 친구들과 그저 단란하게 지내고 싶을 뿐이다.

 

또한 서로 다른 환경에서 서로 다른 부모를 만나 자라났어도 사혜준과 원해효라는 청춘이 보여주는 아름다운 우정은, 현실을 수저로 나누어버리는 어른들과 사회를 되돌아보게 했다. 엄마 김이영(신애라)이 자신도 모르게 뒤에서 힘을 쓰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원해효가 그 사실을 알고는 무너진 자존감에 눈물 흘리며 절규하는 장면은, 가진 게 없어 애초 꿈조차 꾸지 말라 막아섰던 아버지가 이제는 미안하다며 사과할 때 사혜준이 씁쓸해하는 장면과 겹쳐진다. 가진 게 많아도 가진 게 없어도 청춘들의 앞길을 자신들의 삶에 비추어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이 얼마나 당사자들을 힘겹게 하는가를.

 

<청춘기록>은 그래서 여기 등장하는 청춘들이 저마다의 어려움을 딛고 성장해가는 과정을 시청자들로 하여금 덕질하게 함으로써, 그 덕질의 시선을 통해 그들에 공감하고 때론 스스로를 반성하게 하는 드라마였다. 어른들이라면 한번쯤 자신이 지금의 청춘들에게 어떤 추억의 기록으로 남겨질지 생각해보게 하는 드라마.

 

그 기록의 한 줄 한 줄은 결코 쉽게 얻어진 경험들이 아닐 게다. 만만찮은 현실 앞에 드디어 마주하는 시기가 청춘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 어려운 시기를 무너지지 않고 버텨낼 수 있게 해준 힘은 바로 가족, 친구, 연인의 토닥이는 말 한 마디가 주는 위로와 공감이 아닐까. 적어도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해주던 바로 그 '덕질' 말이다.(사진:tvN)

코로나 시대, 제한적인 소재들이 만든 쏠림현상

 

코로나 시대에 할 수 있는 것이 제한적이어서 그런 걸까. 한번 성공한 소재를 여기저기서 끌어다 쓰는 프로그램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래서 시청자들로서는 그 프로그램이 그 프로그램 같은 혼동을 일으킬 지경이다.

 

tvN <바닷길 선발대>와 MBC 에브리원 <요트원정대:더 비기닝>은 콘셉트 자체의 차별점을 찾기가 어렵다. 요트라는 소재와 바닷길 원정을 관찰카메라 형태로 담아내는 것이나, 그간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많이 등장하지 않았던 배우들이 주축이라는 점이 그렇다.

 

물론 <바닷길 선발대>는 김남길과 고규필이 과거 함께 했던 <시베리아 선발대>의 연장선에 있다는 점에서 나름 이해되는 기획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이찬현 PD의 연작으로서 코로나 시국에 맞는 '선발대' 시리즈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트 소재의 예능 프로그램은 <요트원정대>가 먼저다. 진구와 최시원, 장기하, 송호준이 태평양 항해에 도전하는 과정을 담았다. 10부작으로 마무리된 <요트원정대>는 이제 '더 비기닝'이라는 새로운 시즌으로 다시 돌아온다, 그런데 그 콘셉트가 <바닷길 선발대>와 유사해졌다. 요트를 배우고 한강에서 서해안을 종주하며 섬을 다니는 소재가 그렇다.

 

요트가 새 예능 프로그램의 소재로 떠오른 건 그 자체로 비대면이 가능한 콘셉트이기 때문이다. 요트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촬영이 이뤄지고, 중간중간 요트가 정박하는 섬도 도시와 비교해 비대면이 쉽다. 게다가 바다와 섬 같은 자연이 주는 탁 트인 정경들은 코로나 시국에 답답한 시청자들의 가슴을 펑 뚫어주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비슷한 소재와 콘셉트의 프로그램들이 동시에 쏟아져 나오는 건 시청자들로서는 그리 반가운 일은 아니다. 심지어 프로그램이 헷갈릴 정도로 유사한 건 더더욱.

 

코로나 시대에 캠핑카라는 소재를 끌어와 괜찮은 성적을 냈던 tvN <바퀴달린 집> 이후 캠핑카가 등장하는 JTBC <갬성캠핑>이나 KBS joy <나는 차였어> 같은 예능 프로그램들이 생겨나고, 무인도 죽굴도에 들어가 섬 생활의 즐거움을 담았던 tvN <삼시세끼> 어촌편5가 큰 성공을 거둔 후 무인도는 예능 프로그램의 핫 플레이스로 떠올랐다.

 

안정환과 이영표의 케미 이후 이제 박명수와 하하가 짝을 이뤄 무인도에 들어가 거기 사는 자연인의 삶을 체험해보는 MBC <안싸우면 다행이야>도 무인도 콘셉트에 MBN <나는 자연인이다>를 섞어 놓은 듯한 느낌을 줬다. 물론 파일럿 때 꽤 괜찮은 시청률과 화제성을 만들었지만 어째 정규 편성된 후에는 힘이 빠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고유한 이 프로그램만의 정체성을 제대로 내세우지 못하고 있어서다.

 

코로나 시국은 예능에 직격탄을 날린 게 사실이다. 야외로 나가거나 누군가를 대면하는 일은 이제 예능에서는 시도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일이 되었다. 그래서 섬이나 캠핑카 그리고 요트로 쏠리는 예능프로그램이 처한 현실에 일부 공감가는 면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이렇게 비슷한 소재들을 가져오면서 명쾌한 그 프로그램만의 차별성을 내세우지 못하다가는 그 소재 자체가 식상해지는 결과가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되는 상황이다.(사진:tvN)

'써치', 멜로가 죄는 아니지만, 굳이 멜로 없어도 충분한

 

멜로가 죄는 아니지만, 굳이 멜로가 없어도 충분히 괜찮을 법한 드라마가 있다. 팽팽한 긴장감과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 전개만으로도 이제 장르물에 익숙한 시청자들은 더 열광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OCN 드라마틱 시네마 <써치>가 딱 그렇다. 이 작품이 흥미로운 건 좀비 장르의 보편적인 재미를 주는 괴생명체라는 소재에 비무장지대라는 우리식의 차별적인 요소가 더해져 있어서다. 민간인들이 들어가지 않은 천혜의 자연 속에서 탄생한 괴생명체와 군인들의 피 튀기는 대결은 그래서 영화 <프레데터>의 공포감을 유발하고, 여기에 겹쳐진 남북한 대치국면은 상황을 더 쫄깃하게 만들어준다.

 

처음에는 비무장지대에서 출몰하던 괴생명체가 DMZ내 민간인이 거주하는 천공리 마을에 출몰하고, 야간수색에 군인들이 나가 빈틈을 타고 심지어 군부대까지 들어와 습격하는 괴생명체가 주는 공포감과 몰입감이 만만찮다. 말년 병장 용동진(장동윤)이 군견병으로서 항상 동고동락했던 군견을 잃게 되고 조금씩 괴생명체에 대한 감정을 얹어가고, 괴생명체를 제거하기 위해 꾸려진 특임대의 송민규(윤박) 팀장과 이준성(이현욱) 부팀장의 속내도 갈수록 궁금해진다.

 

그들은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채 서로를 주시하고 각각 누군가의 지휘라인을 따르고 있다. 그들 뒤에 존재하는 이혁(유성주) 국방위원장과 한 대식(최덕문) 국군사령관이 과거 비무장지대에서 벌어진 남북 간의 총격전 속에서 벌인 비밀스런 사건은 이 괴생명체의 탄생과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야기를 확장시킨다. 그것은 남북 간 대치상황이라는 특수한 한반도에서 부당한 권력이 탄생되기도 했던 우리네 불행했던 과거사를 떠올리게 한다.

 

군대 소재를 다루고 있어 상대적으로 역할이 적게 나올 수도 있는 여성 캐릭터들의 활용도 나쁘지 않은 편이다. 손예림(정수정) 중위는 특임대의 브레인으로 괴생명체와의 대결에 있어서 과학적인 접근을 한다. 공수병의 징후를 갖고 있을 거라는 판단 하에 괴생명체를 물로 유인하는 작전을 시도하게 한다거나, 세포 검사를 통해 괴생명체의 정체를 파악해 그 약점을 노리려는 접근방식이 그것이다. 게다가 현재는 기념관에서 해설을 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어딘가 만만찮은 전투력(?)을 숨기고 있는 듯한 김다정(문정희)의 활약도 기대된다.

 

이처럼 <써치>는 다양하게 건드릴 수 있는 이야기들이 많다. 좀비도 아니고 군인도 아닌 존재로서 굉장한 속도로 움직이는 괴력을 가진 괴생명체가 어떻게 탄생했는가 하는 궁금증이 있고, 그런 괴생명체 때문에 비무장지대에서 벌어지는 남북 간의 관계 변화도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또 이 실체를 숨기려는 자들과 진실을 밝히려는 자들 간의 치열한 대결도 기대되는 대목이다.

 

그런데 군대 소재의 드라마라는 점 때문에 그랬을까. 굳이 용동진과 손예림을 예전에 사귀었다 소원해진 연인으로 세워 놓은 건 드라마의 흐름을 조금 느슨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본격 장르물의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긴박감으로 가득 채워 넣어도 충분했을 이야기에 갑자기 멜로가 들어가서 생겨나는 느슨함은 <써치>의 아쉬운 지점이다.

 

좋은 소재와 장르적 퓨전을 잘 엮어낸 데다 비무장지대라는 우리네 특수한 상황이 주는 차별점까지 가진 <써치>다. 이 정도면 괜한 우려에 멜로를 기웃거릴 필요 없이 본격 장르물의 팽팽한 스토리를 정주행 해줘도 충분하지 않을까. 괜한 멜로보다 살아남아야 하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의 전우애가 <써치>에는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사진:OCN)

'스타트업', 새롭게 출발선상에 서는 청춘들의 성장기

 

"저는 32층에 가고 싶거든요. 근데 저층부 엘리베이터 백날 타봤자 못가잖아요." 남다른 열정과 능력을 가진 서달미(배수지)는 정규직 전환을 해주지 않으면서 그 미끼로 자신을 계속 붙잡아 놓으려는 회사에 사표를 던지며 그 이유를 묻는 팀장에게 그렇게 답한다. 사장실을 올라가려면 32층까지 가는 엘리베이터를 타야 한다. 하지만 자신이 늘 타는 엘리베이터는 저층부 엘리베이터. 제아무리 노력해도 32층을 갈 수 없다는 걸 그는 깨닫는다. 그것이 퇴사의 이유다.

 

"아버지 덕분에 비싼 수업했네요. 쉽게 시작하면 쉽게 뺏긴다는 거. 지분 없는 CEO는 씹던 껌만 못하다는 거. 좋은 가르침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저 미국 안갑니다. 미국 지사도 저 덜떨어진 팔푼이한테 맡겨 보시던가." 자신이 고생 고생해 일궈놓은 회사를 새 아버지가 자신의 아들에게 넘겨주자 원인재(강한나)는 그 이사회에서 그렇게 쏘아대고는 나온다. 그건 다 버리고 홀로 가겠다는 선언이다.

 

엄마는 그에게 아버지 비위라도 맞춰 그 자리를 지키라고 했지만, 원인재의 선택의 엄마의 표현대로 '깽판 치는 것'이다. "그동안 치고 싶었는데 자격이 없어서 못 쳤거든. 깽판도 자격 있어야 치잖아. 누릴 거 다 누리면서 깽판 치면 염치 없단 소리 들어. 엄마처럼. 그래서 다 버렸어. 아 더럽고 치사해서 깽판 치려고." 엄마 앞에서는 속이 후련하다 말했지만 홀로 걸어나오며 인재는 "엿같다"고 속내를 토로한다.

 

tvN 토일드라마 <스타트업>에서 자매지만 부모가 이혼하고 다른 삶을 선택했던 서달미와 원인재가 결국은 둘 다 스타트 라인에 다시 서게 되는 이야기를 담았다. 그들은 모두 스타트업 기업인 샌드박스에 입주하기 위해 지원서를 낸다. 그리고 한쪽 벽에 마련된 포스트잇으로 꿈을 적어 놓는 게시판에 각자의 꿈을 적는다. 서달미는 '고층부 엘리베이터로 갈아타기!'라 적고, 원인재는 '씹던 껌이 되지 않기'를 적는다.

 

또 서달미가 어려서 힘겨웠던 시절 할머니 최원덕(김해숙)의 부탁으로 그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편지를 써왔던 한지평(김선호)과 뒤늦게 그를 만나려 하자 마치 그 편지를 쓴 장본인처럼 내세워진 삼산텍의 대표 남도산(남주혁)도 그 게시판에 저마다의 소망을 적어 붙인다. 남도산은 '오해를 현실로 만들기!!!'라 적고, 한지평은 힘겨웠던 시절 최원덕에게 입은 큰 은혜에 대한 '빚을 갚기'라고 적는다.

 

<스타트업>은 꿈꾸는 것조차 또 사랑하는 것조차 포기하게 되는 현실 속에서도 이를 깨치고 나와 새롭게 출발선상에 선 청춘들의 성장기를 그리려 한다. 그래서 우리가 실리콘 밸리에서 처음 사용되어 젊은 IT기업을 떠올리게 하는 '스타트업'이라는 의미는 이 드라마에서는 중의적으로 사용된다. '출발(스타트)'과 '성장(업)'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런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이들이 다시 출발선상에 서게 하는 힘은 어디서 나온 걸까. 서달미는 한지평에 의해 남도산이 성공한 사업가로 거짓 꾸며졌다는 사실을 모른 채 그 성공을 통해 자신의 꿈을 세우게 된다. "(위상이) 딸리는 게 나이 탓 세상 탓이다 생각했는데 널 보니까 내 탓 맞더라."며 자신도 성공한 남도산의 행보를 따라해 보려 한다고 말한다.

 

물론 그건 한지평에 의해 거짓으로 꾸며진 판타지지만 이를 통해 서달미가 새로운 꿈을 꾸고 출발선상에 서게 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청춘들이 최소한 그것이 모두 현실은 아니라고 해도 꿈을 꿀 수 있는 사회여야 그들이 시작하고 그래서 성장도 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닐까. 그래서 청춘들에게는 넘어져도 다치지 않을 수 있는 '샌드박스'가 필요하다고 드라마는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건 서달미의 이런 오해로 빚어진 시작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 지가 궁금해지는 이유다.

 

흥미로운 건 이 드라마 속 주인공들인 배수지와 남주혁도 연기 영역에 있어서 새로운 출발선상에 서 있는 것 같은 좋은 인상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청춘의 좌절과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보여주는 서달미 역할을 극의 중심에 서서 쥐락펴락 끌고 나가는 배수지의 연기나, 어딘지 어눌하고 바보스럽게까지 보이지만 '연알못(연애를 알지 못하는)' 공대생의 풋풋한 매력을 드러내는 남도산 역할의 남주혁의 연기가 새롭게 보인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작품 속 주인공들처럼 이들을 연기하는 배수지와 남주혁이 새로운 출발선상에서 과연 어떤 성장을 보여줄 지가 궁금해지는 작품이기도 하다.(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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